연점산(鉛店山, 868m)-천지갑산(天地甲山, 462m)
산행코스 : 명곡부락 버스정류장→계곡→연점산 8부 능선→716봉(연석봉)→천지갑산(4봉~1봉)→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30분)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과 청송군 안덕면의 경계
산행일 : 2010. 7. 31(토)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天地間의 山중에서, 十干(天干이라고도 부르며 甲,乙,丙,丁...壬,癸를 말한다)의 우두머리인 甲에 해당하는 산이니, 대단한 山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봄은 어쩌면 當然之事, 그러나 막상 내가 찾아온 천지갑산은 그런 내 기대를 채우기에는 뭔가 부족한 산이었다. 그저 우리 주위에서 가끔 볼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갖춘 바위산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부족한 2%는 안동지역의 넉넉한 인심으로 충분히 채우고도 남았다. 폭염속의 산행으로 인해 몸속의 수분을 다 빼앗겨버린 후, 갈증에 허덕이며 도착한 공원(하산지점)에서 건네주던 시원한 생맥주 한잔은 그야말로 감로주였다. 다시한번 안동산악연맹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 산행들머리는 길안면 명곡부락의 버스정류장 안동시내에서 길안천을 따라 이어지는 35번 국도를 타고 영천방면으로 달리다가 천지갑산의 들머리인 송사리를 지나서, 조금 더 달리다보면 왼편으로 명곡부락이 보인다. 오늘의 불행한 산행은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뭔가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쉽게 도착할 수 있는데도, 주차장이 되어버린 영동고속도로를 피하다보니, 우린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상주시에서 의성군과 청송군을 통과해서 안동시로 들어가는 엄청나게 먼 거리를 우회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 산악회의 봉고차량의 고장 등, 자질구레한 사고까지 겹쳐 산행들머리에 도착할 때는 오후 한시가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이었다. 늦게 도착해서 마음이 급했던 때문이었을까? 산행들머리로 예정했던 설록펜션산장을 지나쳐버리고, 별수 없이 우린 명곡부락 앞을 산행 들머리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
▼ 옛말에 ‘늦을수록 천천히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원래 우리가 가고자 했던 연점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명곡부락에서 오른편으로 올라가야하건만 우린 왼편으로 진행, 연점산은 오르지도 못하고 결코 길이랄 수 없는, 길 위에서 목 놓아 울고 싶었던 오늘의 고달픈 산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풋사과가 대롱거리는 과수원 사잇길로 접어들면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옆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20분정도 걷다보면 마중 나오는 비포장 임도... 즐기는 산행은 여기에서 끝내야만 한다. 곧이어 이가 갈리게 만드는 산행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 산딸기넝쿨의 가시에 찔리면서 ‘씨~~“ 소리 두어 번 내뱉으면 계곡, 그나마 여기까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곡이 희미해지면서 만나게 되는 너덜지대는 그야말로 生地獄이다. 경사가 심한 너덜지대는 작은 돌맹이, 조금만 잘못 디뎌도 돌맹이들이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뒤에서 오르는 사람들에게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앞사람과 간격을 벌리세요!‘ ’돌맹이 구르니 조심하세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산행이 되어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고생한 산행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난 이런 산행은 결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 ‘길 아닌 길 위에서 울다‘ 지금 내 심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길이 아니니 당연히 잡목을 헤치고 나갈 수 밖에 없는데, 주변은 온통 산딸기넝쿨과 가시가 무성히 돋아있는 굵은 두릅나무 천지다. 몸은 긁혀 따끔거렸고 얼굴은 거미줄로 뒤덮였다. 거기다 소름끼치는 옻나무가 드문드문 보이기까지... 머리염색을 못할 정도로 옻에 약한 난 더욱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산행을 하고 있다.
▼ 결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길 아닌 길, 거기다 경사까지 심해서 허리를 펼 수도 없을 정도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나무 등걸을 부여잡으며 한시간 정도 안간힘을 쓰면 능선에 있는 제대로 된 등산로를 만나게 된다.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봉우리 하나가 언뜻 보이는데, 어느 봉우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눈짐작만으로 산지봉으로 결정을 내려버리고, 왼편으로 내려선다.
▼ 왼편 안부에 세워져 이정표, 앗불싸! 아까 언뜻 보았던 봉우리가 연점산이란다. 여기서 연점산 정상까지는 1.4Km, 아까 만났던 지점에서는 700~800m만 더 걸었으면 정상이었을텐데... 한참을 망설인 끝에, 다시 돌아서서 연점산으로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천지갑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안부에서 천지갑산으로 가는 길은 기분 좋은 오솔길이다. 잠깐 급경사 오르막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휘파람이 나올 정도의 걷기 좋은 오솔길은 719봉(연석봉)까지 이어진다. 719봉 정상은 두어평 되는 공터에 이정표가 하나, 그리고 허리 높이의 돌 무더기가 빈 자리를 지키고 있다.
▼ 719m봉 이후로는 그간의 참나무 일색이던 등산로 주변이 짙푸른 송림들이 섞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백년은 넉넉히 되었음직한... 급작스레 뚝 떨어지는 급경사 날등에서는 언듯언듯 나뭇가지 사이로 길안천과 송계천 건너편의 금학산이 보이고...
▼ 천지갑산 정상은 20평은 족히 됨직한 널따란 공터, 정상표지석과 여기가 4봉임을 알리는 이정표, 그리고 나무벤치 4개를 설치해서 등산객들에게 쉼터를 만들어 주고 있다. 쉼터의 반대편에는 납작한 봉분 한 기가 넓게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서 하산길은 날등길로 내려설 수도 있지만, 오른편 ‘하산길’의 안내문을 따라야 천지갑산의 비경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 천지갑산은 조선조 철종 때 武科에 급제한 金仲鎭선생이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마을에서 보면 산의 형태가 옛날 양반들이 정자관을 쓰고 서 있는 모습과 닮았다’해서 관악봉이라 부른단다. >
▼ 밧줄에 의지해서 정상을 내려서면 5봉, 등산로에 빗겨나 있다고 그냥 지나치면 안될 일이다. 5봉의 끄트머리 전망대에 서면 水太極을 이루고 있는 길안천과 한반도의 지형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 천지갑산은 해발 462m에 불과한 야산이다. 그럼에도 산중에 제일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듯... 어쩌면 老松과 어우러진 奇巖絶壁, 그 위에서 바라보는 8자 모양으로 돌아나가는, 水太極의 風光이 가히 압권이기 때문일 듯 싶다.
▼ 다시 밧줄에 의지하다보면 6봉, 이곳도 그냥 지나치기 보다는 절벽 쪽으로 더 나아가봐야 될 일이다. 약간의 두려움을 떨치면 더 좋은 경관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 6봉에서부터 등산로는 경사도를 더 심하게 만든다. 天涯絶壁으로 형성된 6봉, 5봉 아래로 난 난간위에서 바라보는 왼편 조망은 오늘 산행의 백미... 건너편 금학산이야 차지하고라도 발아래 펼쳐지는 한반도 지형과 水太極은 어디서도 쉽게 대할 수 없는 경관이니까...
▼ 5봉과 6봉을 거쳐 내려가는 등산로 주변은, 엄청나게 굵은 소나무들이 즐비하고 솟아오른 바위봉우리가 수려하다. 5봉을 지나고 6봉에서 내려서면 太極모양으로 돌아가는 길안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연은 저렇게 그 스스로 모습을 인간에게 내보여주고 있다.
▼ 모전탑, 5봉과 6봉을 거쳐 절벽틈새의 로프를 잡고 내려서면, 자연 巖盤 위에 축조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인 ‘안동 대사동 모전석탑’을 만날 수 있다. 편마암으로 축조된 모전석탑은 탑의 기단과 탑신의 일부만 남아 있을 뿐 윗부분은 허물어지고 없다. < 모전탑은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판석형상을 띤 돌을 적당히 다듬어 사용하였고, 단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뿐더러 투박한 느낌이다. 탑 아래로 제법 널찍한 터는 절집이 있었다는 증거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이 절은 빈대를 잡으려던 스님의 실수로 불에 절이 타버리자 스님들은 인근 용담사와 불국사로 떠났다는 전설만이 남아 있다.>
▼ 석탑 주위는 억새와 칡넝쿨로 뒤엉켜 길을 찾기가 힘들 정도, 석탑을 지나서 내려가는 길 주변의 거대한 바위절벽은 온통 굵은 담쟁이 넝쿨들로 뒤덮여 있다. 가을쯤에 다시한번 이곳을 찾아볼 수 있다면, 붉게 물들어가는 담쟁이와 어우러진 또 하나의 절경을 맛볼 수 있을 듯 싶다.
▼ 가파르게 내려가는 하산 길은 미끄럽다. 그러나 굵은 동아줄을 매어놓아서 결코 위험하지는 않을 정도... 비탈의 끝에서 만나는 길안천을 따라서 철제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절벽과 강의 경계를 따라 이어진 小路에서 보는 강에는 푸른 하늘이 비치고 있고, 그 강물 위는 어린이들의 내뿜는 열기로 뒤덮여 있다. 그 너머에 한반도의 지형이 보이지만 여기서는 그저 밋밋한 분지로 보일 따름이다.
▼ ‘산이 높으면 당연히 골은 깊어진다.’이라는 先人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송계천의 물은 깊고 푸르렀다. 하긴, 연점산과 금학산이라는 原始의 산을 左右에 끼고 있는 골짜기이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 정자를 벗어나면서 천지갑산을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정자 옆 길안천변에 서서 뒤돌아본 천지갑산은, 언젠가 중국에서 바라봤던 경관을 떠올리게 만든다. 깎아지른 절벽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 그리고 그 밑을 휘돌아 감는 강물, 한 폭의 동양화를 가만히 가슴에 담아본다. ‘山勢가 천지간에 으뜸’이라는 뜻의 천지갑산은 정상을 이루고 있는 봉우리들마다 기암절벽 위에 老松이 울창하며, 특히 산자락을 휘감아 太極形을 만들며 흐르는 길안천은 시선을 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천혜의 눈요깃감을 선사해 주고 있다.
▼ 산행 날머리는 송사마을 주차장, 주차장이라기 보다는 운동기구, 파고라, 팔각정 등으로 단장된 테마공원이라고 불러야 더 어울릴 정도로 잘 가꾸어져있다. 오늘은 안동지역의 산악회들의 축제가 있는 날인지 이곳저곳에 천막들이 둘러져 있고,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지역에서의 5시간 가까운 산행, 갈증에 목말라 하던 나에게 건네주는 생맥주 한 잔은 곧 감로수였다. 한잔을 더 청해 마신 후에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오늘의 산행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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