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방산 (掛榜山 339m)


위치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역과 안인진역 사이


산행코스 : 안인진리-삼우봉-괘방산-당집-212봉-정동진역(산행시간 : 3시간30분)

산행일 : '08. 12. 13(토)

함께한 산악회 : 청계산악회

특징 : 산의 모양이 옛날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의 명단을 붙이던 방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 96년 북한 무장공비들의 잠수함 침투를 계기로 안보체험 등산로를 개설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산으로, 요즘엔 정동진을 끼고 있어 신년 일출산행지로 많이들 찾고 있으나, 일출을 빼놓곤 짬을 내어 찾아볼 특별한 의미는 주지 못하는 산이다.  

 

 

산행 들머리는 안인진리 삼거리

동해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끼고 남북으로 이어지는 연인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소문난 7번 국도의 도로변에 차를 세우면 서쪽으로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입구 감시초소에선 등산객들의 인적사항을 체크, 안보체험 등산로답게 비록 간이화장실이지만 공중화장실이 깨끗하게 유지․관리되고 있다.

 

 

들머리입구 나무계단을 올라서자 안인진 앞바다의 망망대해가 더 할 수 없이 시원하게 다가오고, 동해 한 가운데서 밀려온 파도가 해안선에 부딪쳐 생기는 새하얀 포말이 순백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겨울바람은 불고 있으나 그 끝은 맵지 않다. 그저 산 오름길의 목덜미 땀이나 닦아 줄 정도... 

 

 

가파른 나무계단을 잠시 올라서면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가 이어지고, 등산로 주변은 소나무 일색... 우리나라 나무 중에 치톤피트를 제일 많이 내품는 나무가 소나무라는데 아무래도 오늘 산행은 횡재 웰빙산행이 아닐까 싶다. ‘당신 피부 최소 5년은 젊어질 것 같다’는 내말에 집사람도 기분 좋은지 싱글벙글 걷는 발걸음이 웬지 가볍다.

 

 

괘방산은  산행을 마칠 때까지 이렇 듯 줄곳 바다와 산이 하나가 된다. 섬이 아닌 육지에서 이런 등산로는 흔치 않을 듯... 서울에서 정동쪽이 된다는 정동진리와 안인진리 사이에 동해를 따라 남북으로 산줄기가 뻗어 있다. 옛날에는 돌김과 미역이 유명하고 산에는 곰솔이 빼곡하여 사람은 물론 범도 운신하기에 힘든 곳이었단다.

 

 

산은  산이라서 가끔은 이런 돌부리를 만나기도 한다. 괘방산은 육산으로 등산로 또한 대부분이 소나무 낙엽이 곱게 쌓인 부드러운 길이나, 간혹 이렇게 심은 듯 바위가 박혀 있는 길도 만나게 된다.

 

 

산을 걷다 보면 산사태로 무너진 절개지가 보이는데 흙이 붉은 게 아니고 검은 색에 가깝다. 이는 이곳이 바로 삼척탄전의 일부분이라는 증거... 삼척탄전은 태백, 삼척, 강릉을 잇는 무연탄 생산지로 80년대 말에는 국내 무연탄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했던 곳이다. 80년대 초반 공직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이곳에 있던 탄광을 방문한 일이 있었고, 갱도에 들어갔다가 동해바다 밑으로 향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행여 수장될까봐 엄청 가슴 졸였던 쓰디쓴 기억이 있는 곳이다.

 

 

계속 이어진 등산로를 오르다보면 “삼우봉2.5km”의 이정표가 나타나고 곧 이어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에 설치된 전망대인 정자에 도착하게 된다,  소나무사이로 안인진리의 항구와 동해바다가 한폭의 그림처럼 멋스럽게 조망된다.

 

 

하얀 연기를 품고 있는 것은 영동화력, 삼척탄전에서 생산된 열량이 떨어지는 무연탄 소모를 위해 만든 발전소이다. 4년전 한파로 무연탄 공급에 애로가 생겼을 때, 이곳에 들렀었고 며칠을 여기서 머물며 가슴 졸였던 추억이 서린, 나에겐 애환의 장소다.  

 

 

괘방산 방향 능선

고려산성지를 지나 삼우봉으로 가는 길에는 주위의 능선들이 물결치듯 눈앞에 펼쳐진다. 동쪽으론 해변의 멋스런 풍광들이 한폭의 그림인양 떠오르고...  능선은 계곡의 깊이와 물길을 먼저 정해 놓고 흙을 쌓아  산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해안선을 마주 보는 산 능선은 넉넉하고 편안하다.

 

 

고려(괘방)산성터

능선과 동해바다가 좌우로 조망되는 능선길을 이어가다 보면 돌무더기를 만난다. 언제 어떤 규모로 만들어 졌는지도 모를 돌무더기가 20m 정도 이어지는데, 과연 이걸 보고도 산성의 흔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고개를 갸우둥거리게 만든다.

 

 

 

삼우봉

괘방산 정상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로 342m. 괘방산은 봉우리인지 등산로인지 잘 구분이 안가는 능선들이 많은데, 삼우봉도 정복의 희열은 느낄 수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봉우리중 하나이다. 다만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이용하고 있어 전망은 매우 좋다.

  

 

‘삼우봉 정상은 상어이빨처럼 생겼다’는 얘길 듣고 유심히 살펴보지만 글쎄..., 아마 이빨처럼 생긴 이런 바위들이 듬성듬성 서 있어 그러나 보다.

  

바다가 지칠 줄 모르는 파도의 솟구침이 있다면 산은 일상의 번뇌를 다 보듬어 주는 평온함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괘방산이 유명하게 된 것은, 은밀히 넘어온 북한의 잠수정이 안인진리 앞바다에서 고기잡이 그물에 걸리는 통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서이다. 이 일을 계기로 국산 어망의 품질 우수성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나? 믿거나 말거나 ^^-*

 

 

괘방산 정상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거기다 정상표지석도 없어 잘못하다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정상에는 표지석 대신 등명락가사 에서 써 붙인 경고판이 설치되어있다. “여기는 등명락가사 부처님 기를 모신 정봉이다. (괘방산의 맥이다) 자장율사께서 이산맥을 중심으로 등명락가사를 창건하셨다. 이러한 명산을 잘못건드려 불행한 일을 절대로 없어야 하겠다. 그러니 누구든지 여기는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둔다” 정상석을 세우지 않은 것은 이 경고판 때문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입맛이 별로~~^^-*

 

 

괘방산 정상에서 중계탑을 우회하여 하산길에 접어들면 “괘일재0.3km"의 이정표가 있는 임도가 나타난다. 능선길을 따라가다 보면 푸른 동해바다가 눈앞에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해안에 부딪치는 파도의 하얀 포말이 가깝게 다가온다.

 

 

당집

멋스런 노송들이 치톤피트를 내뿜고 잇는 평탄한 산길을 이어가다보면 낡은 함석을 머리에 인 초라한 건물을 만난다. 하나 있는 쪽문이 굳게 닫힌 씨멘트 움막집이 울타리도 없이 폐허마냥 서 있는 당집은 널따란 터에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유원지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데, 평상 두어개와 돌무덤이 곁을 지키고 있다. 

 

 

괘방산 산행의 묘미는 여느 산과는 달리 연인들의 아베크 코스를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동해바다를 조망하면서 고즈넉한 산길을 걷다보면 마치 동네 뒷산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대모산 같은 기분이 드네요'는 집사람의 멘트... 대모산이 얼마나 좋은 산인데 그러시나요~~

 

 

이곳은 옛날 탄광이 있었던 곳... 마치 석탄 운반도로 같은 널다란 길을 걷다보면 솔방울이 유난히도 많이 달린 죽은 소나무 군락이 나타난다. ‘나무는 종족 번식을 위하여 씨앗을 남기는 것’이니 애달픔의 한 자락이 아닐까?   

 

   

문득 ‘대나무는 매 60년마다 꽃을 피운다’라는 속설에 대하여 ‘대나무는 환경요인 등으로 인해 그 수명을 다할 때 종족 번식을 위해 꽃을 피운다’며 반론을 펴던 어느 전문가의 글이 떠오른다.  아 생존욕구의 위대함이여~~

 

 

‘괘방산의 지표는 산불조심?’ 리본, 프랭카드, 입간판 등등.. 온통 산불조심 표어들이 산을 둘러싸고 있다. 심지어 강릉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괘방산 정상에 널따란 프랭카드를 설치하면서  ‘금품수수나 향응을 제공받으면 벌금이 얼마, 신고하면 포상금 얼마’와 함께 산불조심 표어를 적어 놓았다. 산속에서 웬 선거운동???

 

 

주저리주저리 솔방울을 매단 소나무들의 시체를 지나고 나면 또 다시 삶은 시작되고, 나아 갈수록 그 삶의 색깔은 짙어만 간다. 산의 초입 넘치는 젊음을 자랑하는 푸르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간어림의 사색이 완연한 흑갈색은 더욱 아닌, 비록 누르스름하지만 삶의 의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해풍에 시달렸기 때문일까 더디게 자라며 꿈틀거린 형상은 분재용으로 적격이다.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으나, 죽음은 또 다른 탄생의 시작이니 삶과 죽음은 하나가 아닐까? 밀레니엄 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취도 없이 절개수술을 당해야 했던 난 종합병원의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다. 문득 떠오른 화두는 ‘삶과 죽음은 하나’... 그리고 새로운 삶의 지표는 당연히 오늘을 마음껏 즐기는 것일 수 밖에 없었다.

 

 

212봉을 지나면서 부터는 정동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정동진 선크루즈 호텔의 모습도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지고... 쌍쌍이 걷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도 정동진 해수욕장의 너른 모래사장에 점점이 박혀간다.

 

 

산행의 날머리는 정동진역 앞

나는 오늘도 산을 오른다. 운동만을 목적으로 산을 가는 것이 아니라, 산이 품고 있는 계곡이나 그 산을 이루고 있는 나무의 모양새나 땅의 냄새나 풀의 향기나 혹은 수줍게 얼굴을 감추고 있는 소로나 툭트인 능선의 후련함을 즐기기 위해 산에 간다. 

 

 

정동진역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전에는 길손 드문 적막한 간이역이었다. 우주의 미아처럼 철저히 고독해진 자가 하오의 한나절을 즐기기에 충분한 사색의 공간... 어느 한 장소가 이토록 급속하게 변할 수 있을까? 인기드라마 몇 장면이 그토록 한적했던 촌락을 순식간에 관광명소로 바뀌어 버렸으니 불가사의 자체이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등산객이 아니면 대부분 청소년들 일색이다.  

 

 

정동진 앞바다

고운 모래사장과 파도속에 간간이 들어나는 바위들은, 사계절 바다 여행으로 또 추억을 하나쯤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기차길옆 오막살이 동네는 약삭빠른 상흔이 판치는 상업의 거리로 확실하게 변해버렸다. 짬을 내어 자리잡은 자그마한 주막, 어묵꼬지 두 개에 떡볶이 하나, 그리고 소주 한병이 1만2천냥이니 그런 소리 들을 만하다.  

 

 

“正東津”은 조선시대 한양의 광화문으로부터 정확히 동쪽으로 내달으면 닿게 되는 나룻터라 해서 이름 붙여진 곳으로, 1995년 방영돼 인기를 끌었던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보다 역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훨씬 많은 곳이다.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밭, 그리고 짝을 지어 깔깔거리는 젊은이들은 겨울바다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 겨울바다 위로 흐르는 공기는 맑고 기운찼으며, 젊은이들의 주체 못할 감정들이 갈매기들의 날갯짓과 함께 대기속으로 녹아들었다. 

 

 

걷는다는 것은 우선 흙을 느끼며, 가두고 있던 나를 자연에 던지고 맡기는 일이다. 입은 닫되 귀를 열고, 소로를 따라 걷는 걸음에 행여 허황된 욕심이 붙어 있지는 않는지, 몸이 마음을 앞지르지는 않는지, 불필요한 것에 매여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 지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저 그렇게 나를 돌아보며, 난 집사람과 함께 오늘 하루를 마음껏 즐기며, 오늘 하루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사랑에 충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