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도 내게 있어 변하지 않는 것 중에 하나는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 늘 가슴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그 설렘이 새벽까지 퍼마신 술의 피로도 잊은 채 또 다시 산을 오르게 만듭니다.
부지런한 이들의 부스럭거림에 눈을 뜨니 벌써 이화령입니다.
더 이상 잠을 청하기 뭐해 차를 나서봅니다.
어~ 추워!
霜降이라 서리라도 내렸나요? 옷깃을 고추세우게 만드는군요.
앗! 이번 구간은 처음부터 급경사입니다.
고개를 들 필요도 없이 밤하늘이 눈 위에 떠 있군요.
눈앞에 다가온 밤하늘엔
총총히 박힌 별이 조각달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눈 속으로 와르르 쏟아져 내려올 듯 별빛이 총총한데도 다들 조용한
것은
아마 시작부터 반기는 급경사 오름 길에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조령산을 지나자 동이 터 오는지 동쪽하늘이 붉게 물들어 오네요.
산행 초입에 본 하늘의 별빛이 총총했으니 오늘은 틀림없이
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무당의 찢어진 빤스는 빌려 입지 않아도 경험으로 일출을 볼 수 있는지 않은지는
어느 정도 맞출 수 있거든요.
일출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징조는 전날 오후 갑자기 비라도 한차례 퍼부을 듯
하늘이 잔뜩 흐려지는 것입니다. 소낙비를
한차례 뿌리는 것도 괜찮지요.
그렇지 않으면 밤에 오줌 누러 일어났다 하늘을 봤을 때 별빛이 금방이라도 눈
속으로 쏟아져 내릴 듯
총총한 게 흔들려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밤하늘 별빛이 흔들려 보인다는 것은 심하게 바람이 분다는 것이고, 바람이 분다는
것은 아침
기상이 좋지 않다는 징조이거든요.
일출의 장관에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아직 갈길이 멀거든요.
부지런히 배낭챙겨 풀숲과 나뭇가지 매달린 아침 이슬을
톡톡 떨구며 조령으로 향합니다.
우리나라 산에는 참으로 바위가 많은가 봅니다.
능선은 병풍을 두르듯 즐비하게 늘어선 기암괴석의 연속입니다.
저 멀리 이름
없는 산들이 병풍처럼 늘어선 모습도 장엄하기 이를데 없네요.
로프에 매달려도 보고, 바위 틈새를 잡고 용트림도 해보고...
앗뿔사 잠깐의 방심이 끝내 위험지역에서 미끄러지게
만드는군요.
더 미끄러졌으면 낭떠러진데 다행히 바위틈을 잡고 멈춥니다.
다 평소에 착하게 살아온 탓일 것입니다(^-^)
조그만한 부상은 있었지만 큰 사고없이 조령3관문에 도착해 아침상을 폅니다.
사십대들끼리 둘러앉은 아침상... 역시 사십대는
풍요로운 세대가 맞은가 봅니다.
넉넉한 밥에 가지가지 반찬... 거기다 금술에 마가목주, 복분자술 참 다양하게 나오는군요.
후미가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길을 나섭니다.
다시 잇는 산길은 마폐봉 오르는 길만 급경사지 나머진 평탄의
연속입니다.
순탄한 산길에 마음까지 여유로와 주위 경관과 하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군요
하늘이 점점 비취빛으로 변해갑니다.
도심의 가을이야 잿빛 하늘이 걷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높고 신령스런
산봉우리들 사이로 솜덩이 같은 구름을 흘려보내는 가을의 쪽빛 창공은
눈과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어주기에 넉넉합니다.
눈과 마음의 때 말끔히 씻어낼 즈음 난 하늘재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오겹살 구워 한잔 쭈욱~
또다시 찾아온
사십대의 풍요로움에 취할 즈음 꼬옥 필요한 그 무엇이 떨어져버립니다.
한숨으로 산행을 마감하려는데 누군가 불쑥 내미는 소주 한병... 이뻐
죽겠습니다.
20㎞ 조금 넘는 산길을 11시간에 주파했으니 과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당한 산행에
천m 안팎의 능선 나무들은 이미 앙상한
갈비뼈를 들어냈지만 덕택에 조망은 훌륭하더군요.
이번 산행은 참 마음에 든 산행이었습니다.
일단 날씨가 좋아서 마음에 들었고, 능선이 너무나 시원하고 멋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기암절벽이 마음에 들었고, 특히 능선에서의 조망이 마음에 쏘~옥 들었습니다.
이 맛에 틈날 때마다 백두대간을 찾고 있는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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