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벼락같이 만들어낸 이틀간의 휴가...
어디로 갈까?
절정의 여름 뙤약볕이 독수리의 부리만큼이나 맵고 날카롭습니다.
말복이 어제인데 어디 불볕더위를 시원스럽게
씻어버릴 만한 곳을 찾아야겠습니다.
인파로 넘치는 피서지는 싫습니다.
몇시간째 움직이지 않고 앞차 꼬리만 물고 있는 여행이 지겨워서이지요.
자리를 잡은
뒤에도 노심초사하며 남들의 침범을 감시해야 하는 그런 여행은 피곤하니까요.
인적이 없는 산길에서 만나는 건강하게 쭉 뻗은 나무와 풀, 바위들...
그 속에서 산이 되고 물이 되어 살아가길 꿈꾸는
사람들이 그리워 산행을 결심합니다.
공자님의‘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라는 말을
기억의 끄트머리에서
찾아내고 싱겁게 웃으며 “나도 어진 사람이로소이다”
속리산, 관악산, 대모산과 구룡산... 그 끝에 백두대간이 내 휴가가 반갑다 손 흔들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모신 모처럼의 外食까지도 산행 일정을 핑계삼아 일찍 끝낼 수 밖에 없습니다.
힘들게 찾은 교대역엔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리운 얼굴들이 날 반기는군요.
오늘은 새내기들보다는 백두로 낮익은 얼굴들이 더 많아 기쁨도 더 큰 것 같습니다.
소리 잘하는
분의 춘향가를 음미하다 슬며시 단잠속으로 빠져듭니다.
두런거리는 소음에 눈을 뜹니다.
두시반에 산행을 시작한다고 했으니 서서히 준비를 해야겠군요
하늘에 별은 없으나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소슬함에 가을을 연상시키는 버리미기재의 밤...
낯선 이방인들을 맞이한 것은 어스름하게 보이는 신작로뿐입니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미명의 순간, 작지만 세상을 비추는데 모자람이 없는 랜턴에
몸을 맡긴 사람들은 앞사람의 발쿰치만 바라보며 걷는데
분주합니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급한 오르막의 연속입니다.
아무래도 오늘 산행이 힘들다는 안내가 아닐까요? 희양산까지 통과한다니 분명할
것입니다.
악휘봉 못미쳐 부지런한 산새의 문안인사를 뒤따라 서서히 여명이 찾아옵니다
그리도 아름답다는 악휘봉 구경은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후미 때문에 지체되어 그냥 통과해야 한다는군요. 그저 먼발치에서
입맛만 다셔봅니다.
25분이면 다녀올 수 있다는데... 뛰어갔다 와도 안될까? 궁시렁 궁시렁....
산길옆으로 우거진 숲은 원시림을 방불케합니다.
날렵하게 뻗은 낙엽송과 힘차게 뒤틀고 서있는 우람한 적송들이 한데
어우러져있습니다.
첩첩산중. 좌우로 산과 산이 서로 겹쳐지면서 잇닿아 펼쳐지고 능선과 봉우리가 끝간데 없습니다.
가끔 숲사이로 다람쥐가 눈을 맞추다가 재빨리 길을 건너는군요..
주치봉을 지날 즈음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가늘었다 굵어졌다...
대간의 봉우리들은 온통 안개와 구름에 휘감겨
있습니다.
언뜻 언뜻 봉우리들이 안개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가는 곧 사라지는군요.
장쾌하게 가지를 뻗어낸 소나무 둥치에 귀를 대보면
‘맥박이 뛰는 소리’가 들릴 듯 싶습니다.
사람들의 손길이 거의 닿지않은 건강한 산의 원초적인 모습이란 이런것이 아닐까요?
새로운
풍경들과 만나고 산과 나무와 물에게 말을 걸어보는 것, 산을 찾는 이유일 것입니다.
구왕봉에서 내 특기를 살려 길도 잃어보면서.... 운명의 장소인 지름티재에 도착합니다.
산행중에 비와 만나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장거리 산행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오늘은 오히려 줄기차게 내리는 비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그 무서운 봉암사
스님들의 모습이 안 보이는 건 다 비 때문일 터이니까요.
다시 한번 비에 고마워하고 또 비의 삼총사에게도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드립니다.
“우쒸~ 깔딱고개는 20분 정도라고 했잔여?”
“1시간 20분인데 아마 1시간을 생략했을걸요?”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오르막길...그 끝엔 나무 뿌리를 잡고 올라야하는 낭떠러지가 기다립니다.
정상을 향해 오를수록 안개와 구름의 밀도가 높아집니다.
안개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고사목들. 아름드리 나무둥치가 쓰러져 길을
막네요.
어느분이 가르키는 손가락 끝에 자리잡은 봉암사는 자욱한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습니다.
일행의 정상주 제의에 재빨리 자릴
잡습니다. 그래야 한잔이라도 더 마시니까요.
산행을 끝내고 하산하는 길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예정된 산행을 무사히 마친 성취감에 더하여 우릴 기다리는 푸짐한 먹거리가
있거든요.
계곡 하산길 너럭바위 사이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흘러내립니다.
예로부터 삼복에 산에서 떨어져내리는 물을 맞으면,
땀띠도 쑥 들어가고 일년 내내 부스럼도 안 나는데다 감기도 들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탁족하는 길에 머리까지 감았으니 이 또한 세시풍속중의 하나인 물맞이 행사라 봐도 되겠죠?
계곡에 발 담그고 크게 심호흡을 해봅니다.
새소리 물소리와 더불어 숲속 나무들이 발하는 짙은 향기가 가슴 한가득
밀려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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