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78코스(도성3리 마을회관 – 대산버스터미널)
여 행 일 : ‘25. 10. 11(토)
소 재 지 : 충남 서산시 지곡면 및 대산읍 일원
여행코스 : 도성3리 마을회관→진충사→환성3리 마을회관→염전저수지→대산버스터미널(거리/시간 : 13km, 실제는 14.82km를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남파랑길·서해랑길·평화의길)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 09 : 10. 도성3리 마을회관(충남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에서 내려와 32번 국도로 ‘서산’까지 온다. ‘일람교차로’에서 29번 국도(대산방면 6km), ‘화천2리’에서 ‘도성로’로 옮겨 3km쯤 들어오면 ‘도성3리’에 이른다. 서해랑길(서산 78코스) 안내도는 마을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 도성3리(마을회관)에서 대산버스터미널까지 가로림만의 동쪽 해안 어림을 따라가는 13km 여정. 간척지 논길과 해안 둑방길, 구릉지의 마을길을 번갈아 걷는 경로가 북쪽으로 이어진다. ‘진충사’가 유일한 볼거리. 두루누비에서 추천하는 ‘웅도’와 ‘한글도서관 글램핑’은 멀리 떨어져 있어 탐방이 불가능하다.

▼ 도성리는 ‘칠지도(七支刀)’가 만들어진 곳이다. 백제 웅진·사비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 중국을 오가는 사신과 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드나드는 ‘닷개포’를 끼고 있던 서산은 다른 지역보다 먼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곳 도성리는 넉넉하게 생산되던 철을 바탕으로 금속공예가 발달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 유명한 ‘칠지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 옛날에는 바다가 마을 앞까지 들어왔었음을 벽화가 암시해준다. 무릇 공급은 수요가 창출해준다. 이를 매개해 주는 게 물류라 할 수 있다. 도성리에서 생산된 제품을 운반해 줄 배들이 마을 앞까지 들어왔기에 금속기술은 한층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 09 : 14. ‘도성1길’을 따라 북서진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초입의 이정표(대산버스터미널 13km)가 주요 기점 중 하나인 진충사가 3.8km 전방에 있음을 알려준다.

▼ 09 : 15. 첫 번째 삼거리(이정표 : 대산버스터미널 12.9km/ 도성3리마을회관 0.1km)에서 왼쪽으로 갈려나가는 샛길로 들어간다. 조금이라도 짧고 편하게 진행하고 싶으면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길은 다시 만난다.

▼ 승용차나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아진 길은 ‘고지기골’로 들어간다. 이어서 마을 뒤 고갯마루를 넘어간다. 하나 더. ‘고지기’란 창고나 묘 등을 지키는 관리인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근처에 알만한 창고나 묘가 있었다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 이때 ‘벌담들’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망미산이 뒤를 받쳐주고, 사진에는 나타나있지 않지만 방조제와 중리포구도 가늠된다.

▼ 09 : 21. 아까 헤어졌던 도로(이정표 : 종점까지 12.4km)와 다시 만났다. 1차선이지만 시내버스까지 다니는 간선도로이다.

▼ 09 : 24. ‘바깥 고잔’이란다. ‘고잔’은 ‘도성리(道成里)’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부락 중 하나다. 이를 안팎으로 나누어놓은 모양이다.

▼ 09 : 26. 200m쯤 더 걷다가 바닷가로 내려가기로 했다. 서해랑길은 계속해서 도로(도성1길)‘를 따른다. 하지만 도성1리 곶부리(串)를 에돌아가는 해안이 그렇게나 곱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 몇 걸음 더 걷자 ‘가로림만’이 드넓게 펼쳐진다. 물 빠진 바다는 검붉은 뱃살을 통째로 드러내고 있다. 가로림만은 드넓은 갯벌을 품은 바다다. 육지가 둥글게 감싼 듯한, 항아리 모양의 지형이 갯벌과 그 안에서 다채롭게 살아가는 생태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 방조제를 따라 맞은편 도성1리 곶부리(串)로 간다.

▼ 오른쪽은 ‘안고잔’이라고 했다. 서해랑길을 따랐더라면 저 마을 뒤 고개를 넘어갔을 것이다.

▼ 09 : 30. 방조제 끝에서 바닷가로 내려섰다. 그러자 ‘솔섬’이 길손을 맞는다. 서해랑길을 따르다보면 시도 때도 없이 ‘솔섬’이 나타난다. 손바닥만 한 섬에 소나무 몇 그루 걸터앉아 있으면 너나없이 ‘솔섬’이 된다.

▼ 09 : 36. 모퉁이 하나를 돌아서자 ‘닭섬’이 자신도 보아달라며 얼굴을 내민다.

▼ 이즈음 해식동굴도 만날 수 있었다. 가로림만의 입구가 가까워진 탓인지 해식애(海蝕崖)가 잘 발달되어 있다. 먼 바다로부터 몰아쳐온 거세 파도가 바닷가 암반을 갈고 닦으면서 그 사이사이에 동굴까지 뚫어놓은 것이다.

▼ 동굴 안에 서면 피사체는 어둡지만 두 개의 아치는 푸른 바다(지금은 온통 갯벌이지만)로 채색된다. 어떤 포즈를 취하든 근사한 사진을 얻게 되는 이유다. 얼굴 표정이 잘 나오지 않는데다 실루엣 처리될 수밖에 없지만 그 모습이 동굴에 더해진 바다, 하늘과 아름드리 조화를 이룬다.

▼ ‘닭섬’은 이름처럼 포근하면서도 풍만한 어미 닭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솔섬은 병아리다. 엄마 품이 그리워 졸졸 따라다니는 모양새이다.

▼ ‘솔섬’은 섬이라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작고 외로운 섬이다. 하지만 섬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그런 편견들을 불식시켜버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멋지다. 특히 저녁노을 때의 낙조 풍경이 일품으로 알려진다. 붉은 해가 솔섬을 넘어가는 길에 소나무에 잠시 걸리는데, 이게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 09 : 42. 앗! 사람의 얼굴을 빼다 닮았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가로림만에는 백제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 대 중국 사신단과 무역상들이 드나들던 ‘닷개포’가 있었다. 그러니 장사를 떠난 서방님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바다를 향해 튀어나가던 곶부리는 ‘닭섬’의 코앞에서 다시 내륙으로 돌아선다. 자갈과 갯벌이 뒤섞여있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고운 모래사장을 걷게 된다.

▼ 09 : 52. 도성리 선착장? 아니 가로림만을 향해 끝 간 데 없이 뻗어나가는 것이 영락없는 ‘노두길(간조시 노출되는 길)’이다. 도성리 어민들이 양식장으로 가는 길목인데, 간조 때라서 선착장으로 이용하고 있을 것이다.

▼ 09 : 56. kakaomap은 ‘선배골’로 적고 있었다. ‘도성리(道成里)’는 구릉성 산지와 곡간지(谷間地)로 이루어져 있다. 그 구릉지 주변에 성동·안태·고잔·닭전·잔넘어·시드물 등의 자연부락이 들어서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곳 선배골은 어느 부락에 소속되어 있을까?

▼ 길은 이제 ‘도성리-대요리’ 방조제를 향해 간다.

▼ ‘도성리 선착장’은 방조제 곁에 만들어져 있었다. 물양장(物揚場)은 물론이고 배를 끌어올릴 때 사용하는 크레인까지 갖추었다.

▼ 걸어온 길. ‘도성1리 곶부리’가 가로림만을 향해 길게 뻗어나간다. 그 끄트머리쯤에 ‘선배골’이 있다.

▼ 10 : 02. 도로(진충사길)로 올라서면 ‘도성1리 버스정류장’이다. 서해랑길은 저 도로를 따라 이곳으로 온다. 하나 더. 핸드폰의 앱이 3.4km를 걸었다고 알려준다. 두루누비가 ‘1.8km’를 찍는 지점이다. ‘닭섬’과 ‘솔섬’ 등 멋진 경관을 보려고 1.6km를 더 걸은 셈이다.

▼ 서해랑길은 이제 방조제를 건넌다. 도성리와 대요리를 잇는 길이가 400m쯤 되는 방조제이다.

▼ 오른쪽은 방조제를 쌓으면서 생긴 ‘저류지(貯留池)’이다. ‘지곡저수지’에서 흘러온 물이 바다로 나가기 전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다.

▼ 방조제는 둑 위로 건널 수도 있다. 하지만 웃자란 잡초가 발목을 휘감기에 중간쯤에서 도로로 내려왔다.

▼ 10 : 09. 방조제 끝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러자 또 다른 바다가 얼굴을 내민다. 만(灣) 속의 만이라고나 할까?

▼ 그 사이에는 멋진 풍광의 작은 곶부리(串)가 놓여있었다. 그럴듯한 바위섬 하나를 매달고 있는 자태가 여간 고운 게 아니다.

▼ 길이 산속으로 파고든다. 울창한 숲속을 헤집으며 임도(진충사길)가 나있다. 참! ‘상무지골’과 ‘여우성골’이란 골짜기를 좌우에 끼고 길이 나있다고 했는데 어느 곳을 이르는지는 알 수 없었다.

▼ 10 : 24. 산속을 빠져나오면 ‘대요리’의 ‘아뫼골(이정표 : 종점까지 9.4km)’이다. 대요리(大要里)는 가야산 줄기인 망미산맥이 대산 쪽으로 이어지는 산지에 들어앉았다. 국사봉 같은 낮은 구릉성 산지의 계곡 주변에 한우물·무수점·반계 등의 자연부락이 분포되어 있다. 하지만 대요리의 부락들도 어디를 이르는지는 알 수 없었다.

▼ ‘진충사’로 가는 꽃길. 백일홍과 코스모스가 꽃망울을 활짝 열고 길손은 맞는다.

▼ ‘가을의 전령’이라는 코스모스. 바람에 흔들리며 한들한들 춤을 추는 그 모습은 소박하고도 청초하며, 계절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가을 들녘의 보초인 허수아비가 곡식 지키듯 눈을 부라리고 있다.

▼ 10 : 29 - 10 : 35. 잠시 후 ‘진충사’에 이른다. 충무공(忠武公) 정충신(鄭忠信, 1576-1636) 장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충무공’하면 대부분 ‘이순신 장군’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충무‘(忠武)’란 조선시대 최고 무관에게 내려지던 시호였다. 총 9명에게 충무공의 시호를 내려졌고, 임진왜란 때만 해도 2명(김시민·이순신)이나 받았다. 이밖에도 개국 초의 혼란기(조영무), 세조 때의 반란진입(이준·남이), 후금(청)과의 전쟁(이수일·정충신·구인후·김응하) 때 7명이 받았다.

▼ 진충사(振忠祠). 정충신을 제향하고 있는 사우로 1636년(인조 14) 왕명에 의해 건립되었다. 안에는 장군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홍살문과 삼문, 동서 양재, 고직사 등이 더 있다. 1984년 충청남도문화재자료(제206호)로 지정되었으며, 중요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정충신의 유품도 여러 점 소장하고 있단다.

▼ 정충신은 선조·광해군·인조 대에 활약한 조선의 무신이자 외교관이다. 다른 한편으론 조선에서 유일하게 노비에서 양반이 되고 부원수까지 출세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광주에서 태어난 정충신은 어머니가 노비였다고 한다.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법에 따라 그도 노비가 됐다. 임진왜란 때 광주목사 권율이 의주로 파천한 선조에게 장계를 올리는데, 17세의 정충신이 단신으로 적병을 뚫고 장계를 임금에게 올린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면천되었고, 권율의 사위 이항복이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면서 학문을 가르쳤다. 그해 가을 의주에서 치러진 무과시험에서 그는 놀랍게도 병과(3등급 중 3등급)로 급제한다.

▼ 10 : 35. 다시 길을 나선다. 50m쯤 걸었을까 이정표(종점까지 9.1km)가 왼쪽 방향을 가리킨다. 4.7km 전방에 주요 기점 중 하나인 ‘환성3리 마을회관’이 있다면서.

▼ 같은 ‘진충사길’이지만 길이 확 좁아졌다. 포장도 아스팔트에서 시멘트로 바뀌었다. 차도가 농로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 10 : 41. 길은 푸른 지붕의 농가(폐가인 듯)를 지나 ‘대요벗개길’ 언덕(이정표 : 종점까지 8.7km)으로 오른다.

▼ 10 : 43.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요벗개길’을 따라간다. 100m쯤 더 걸어 만나게 되는 작은 마을(이정표 : 종점까지 8.6km)에서는 오른쪽으로 간다.

▼ 최근 일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고 인건비가 싼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선지 농가마다 트랙터는 기본. 수확한 벼도 자동건조기로 말리는 세상이 됐다.

▼ 10 : 46. 마을을 빠져나오면 ‘무쇠점골(종점까지 8.3km)’이다. 길의 이름도 ‘대요벗개길’에서 ‘대요무쇠점길’로 바뀌었다. 탐방로는 이제 구릉성 산지 사이에 들어선 들녘을 따라 내려간다.

▼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한로(寒露)’가 그끄제였다. 가을이 깊어져 추수를 서둘러 마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가을걷이에 여념이 없는 저 콤바인이 그 증거이다.

▼ 10 : 51. 300m쯤 더 걸었을까 이번에는 ‘무쇠점골’을 횡단해버린다. 조금 더 가면 방조제가 나오지만, 에돌아오는 거리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 ‘무쇠점골’ 들녘을 횡단한 길은 ‘환성리’로 들어간다. 길의 이름도 ‘환성절골길’로 바뀌었다.

▼ 앗! 이럴 수가. 송전철탑에 154,000볼트의 고압 전선이 지나간단다. 그러면서 5m 이내는 위험하다고 적어놓았다. 그렇다면 이 길은 뭐란 말인가. 송전탑을 옮기던지 아니면 길을 다른 데로 돌려야하지 않을까?

▼ 탐방로는 ‘절골’로 들어간다. 이어서 마을 뒤 고개를 넘는다.

▼ 11 : 02. 고개를 넘자 ‘큰골’이 어서 오라며 손짓한다. 이즈음 총무님 도움으로 트럭을 히치하이킹 해 1.2km 정도를 이동할 수 있었다. 사진은 트럭 짐칸에서 찍었다.

▼ 탐방로는 큰골 들녘을 따라 ‘가로림만’ 방향으로 내려간다. 아니 나뉘고 합쳐지기를 반복하는 농로를 따라 들녘을 헤집는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수도 있겠다. 그래선지 길을 헷갈려하는 걷기여행자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 11 : 06. 트럭에서 내린 곳이다. kakaomap은 ‘통개’로 표기하면서 민가 앞에다 저수지(파란색)를 그려 넣었다. 하지만 논으로 바뀌었는지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첨부된 지도에서 ‘덕적저수지’ 아래 ‘ㄴ’자로 휘는 지점이다.

▼ 11 : 10. 차에서 내린 다음, 이번에는 ‘고라지골’로 올라간다. 150m쯤 걸으면 삼거리. 이정표(종점까지 5.7km)가 환성3리 마을회관까지 1.3km가 남았다며 왼쪽으로 가란다.

▼ 탐방로는 이제 ‘환성고라리길’을 따라 구릉지로 올라간다. 이렇듯 가로림만의 리아스식 해안에 위치한 ‘환성리’는 차별 침식을 받아 광범위하게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다.

▼ 11 : 12. 구릉지 위. 노송 아래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뉘고 있었다. 서해랑길은 왼쪽으로 간다. 그리고는 ‘ㄷ’자 모양으로 돌아 나온다. 잠시 후, 두 길은 다시 만난다.

▼ 우리 부부는 지름길인 오른쪽으로 진행했다. 특별한 볼거리도 없는 구간을 일부러 에둘러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00m쯤 진행하면 아래 사진의 하얀색 건물(펜션인 듯) 앞에서 서해랑길을 다시 만난다.

▼ 이즈음 가로림만, 그중에서도 환성리 해안이 눈에 들어온다. 아까 일부러 찾아갔던 ‘도성1리 곶부리’와 ‘닭섬’도 가늠된다.

▼ 임도(환성고라리길)을 따라 ‘환성3리’로 넘어갔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는 ‘환성3길’을 따른다. 이름만 바뀌었지 여전히 임도다.

▼ 11 : 22. 임도를 빠져나와 도로(이정표 : 종점까지 4.6km)로 올라선다. 1차선이지만 시내버스까지 다니는 의젓한 간선도로다.

▼ 11 : 25 – 11 : 36. 이후부터는 도로(환성3길)를 따라간다. 150m쯤 더 걸었을까 ‘환성3리(노룡곶)’ 마을회관이 잠시 쉬어가란다. 환성리(環城里)는 원래 ‘골환이(谷環里)’로 불리었다고 한다. 마을 모습이 문고리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러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문곶리(門串里)와 대요리 사이에 동서로 쌓은 토성(土城)인 나성(羅城)이 있다고 해서 골환이의 ‘환’과 토성의 ‘성’을 따서 환성리가 되었단다.

▼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참새 방앗간이다. 그게 풍치까지 갖추면 ‘정자’가 되고, 서해랑길에 놓이면 둘레길 나그네들에게 좋은 쉼터가 되어준다. 덕분에 준비해간 간식을 나누며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

▼ 11 : 36. 다시 길을 나선다. 계속해서 ‘환성3길’을 따라간다. 국도 29호선(충의로, 환성2리 마을회관 앞)에서 갈려나와 환성3리와 퉁퉁재를 거쳐 가로림만 해안(수용곶이)까지 가는 군도이다. 시내버스가 다니는 구간이어선지 길이 널찍했고, 도로변에도 제법 큰 마을(배나무골?)이 들어서 있었다. 참고로 환성리는 밤골·절골·목재·토성골·문꼬지·헌터울 등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도 어디를 이르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 길가 구릉지에는 배추가 한가득. 배가 불룩한 것이 하시라도 김장을 할 수 있겠다. 맞다. 홍천의 농장에서도 비슷한 연락이 왔었다. 가을걷이가 거진 끝났으니 찬바람만 나면 김장하러 곧장 내려오라고.

▼ 11 : 45. 그렇게 700m쯤 진행했을까 ‘환성3리 버스종점’을 50m남짓 앞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정표(종점까지 3.7km)가 1.3km 전방에 있는 염전저수지를 가리키고 있다.

▼ 이후부터는 ‘환성배나무골길’을 따라간다. 이곳 삼거리에서 시작해 영탑리 부성염전까지 가는 군도로, 노선버스가 다니지 않는 농로에 가까운 길이다.

▼ 구릉지치고는 제법 너른 들녘이 오른쪽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kakaomap은 ‘피나무골’로 적고 있는데 들녘 너머로 보이는 산은 망일산(望日山, 302.1m)이 아닐까 싶다.공군 레이더기지가 정상에 자리하고 있어 올라갈 수는 없지만 산 중턱에 천년고찰 망일사(해발 170m 저점)를 품고 있어 시민들이 산책코스로 많이 찾는다.

▼ 11 : 56. 그렇게 10분쯤 걸었을까 길은 ‘가로림만’으로 내려간다. 그리고는 ‘부성염전’을 가로질러 맞은편 곶부리로 간다. 지곡면의 구릉지를 오르내리며 달려온 서해랑길이 ‘대산읍’에 바톤을 넘겨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 ‘부성염전’은 문을 닫았다. 그것도 꽤 오래되었는지 길가 소금창고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2013년인가? EBS에서 양 손이 없는 염부 강경환씨가 소금밭을 일구며 불우이웃돕기까지 하고 있다는 훈훈한 미담을 방영했었다. 그래서 먼발치에서라도 그를 볼 수 있었으면 했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그의 고운 뜻만큼은 아니어도 급여에서 빠져나가도록 하고 있는 기부금을 내년부터는 조금 더 올려보도록 해야겠다.

▼ 소금밭은 태양광발전소로 바뀌었다. 소금을 모으던 곳이 지금은 햇빛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간척지의 농지가 태양광발전소로 바뀌어가는 게 요즘 추세다. 그게 한걸음 더 나가 이제 염전까지 잠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 오른쪽은 칠면초와 갈대 등의 염생식물이 무성한 습지로 변해있었다.

▼ 12 : 03. 영탑리(令塔里)로 들어오면서 길이 ‘탑성골1길’로 변하더니 맞은편 곶부리 앞에서 둘로 나뉜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놓고 고민해봐야 하는 지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왼쪽이 정규 코스이다. 하지만 가로림만의 바닷가를 따라가기 때문에 만조 때는 통행이 불가능하다. 물때를 못 맞추면 우회로(오른쪽)로 가야한다는 얘기다.

▼ 이정표(종점까지 2.4km)의 ‘우회로’ 표시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일출 전과 일몰 후, 그리고 만조 전후 1시간은 통행을 금지한다는 안내판까지 세워놓았다.

▼ 만조시간은 오후 2시 전후일 것이다. 아직 2시간이 남았으니 마음 놓고 해안 길을 따르기고 했다. 일단은 염전저수지를 왼편에 끼고 바닷가로 간다.

▼ 염전 폐쇄와 함께 할 일이 없어진 ‘염전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낸 채 습지로 변해있었다. 갈대와 칠면초 등 염생 식물로 가득하다.

▼ 12 : 06. ‘영탑리방조제’가 염전저수지와 태양광발전소를 드넓게 감싸고 있다. 초입에는 영탑2리 주민들이 화장실까지 만들어놓았다.

▼ 서해랑길은 ‘영탑리 곶’을 향해 간다. 아니 ‘영탑리방조제’와 ‘대산리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지금은 밋밋한 형상의 해안으로 변해버렸다.

▼ 둑에는 조명시설이 되어 있었다. 한화토탈에너지스에서 ‘대산2리-영탑2리 산책로’에 설치한 ‘태양광 정원등’이란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만들기의 본보기라고나 할까?

▼ 둑으로 올라서자 눈앞에 광활한 ‘땅’이 펼쳐진다. 분명 갯벌인데도 바다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 넓은 땅 어디에도 바닷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먼발치 낮은 땅을 향해 불쑥 튀어나온 ‘검은뿌리 곶부리(串)’와 그 아래 기우뚱한 모습으로 엎드려 있는 배 몇 척마저 없었더라면 어느 누가 바다인줄 알겠는가.

▼ 12 : 08. 방조제 끝에서 바닷가로 내려섰다. 이어서 어민들이 갯벌에 나갈 때 이용하는 듯한 ‘노두길’을 따라간다. ‘노두길’이라는 게 본디 간조 때마다 물에 잠기는 길이니, 때를 못 맞추면 우회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겠다.

▼ 갯벌은 칠면초로 가득했다. 칠면초로 뒤덮인 가로림만 풍경은 서산의 자랑거리라고 했다. 갯벌을 뒤덮은 칠면초(해마다 색깔이 7번 변한다는 바다의 단풍)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으면 서산 전역도 가을 풍경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가을철 서산은 그래서 더 예뻐진단다.

▼ ‘노두길’답게 어민들이 채취한 수산물이나 어구를 씻는 저수장치도 눈에 띈다. 서해랑길을 걸어오면서 심심찮게 보아왔던 풍경이다.

▼ 해식애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했다. 저런 것을 ‘형이상학적 문양’이라고 해야 하나? 비례이듯 비례이지 않은 문양들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 앗! 갯벌에 솟대가 세워져 있다니. 마을이나 들녘에서는 많이 보았지만 바다에 있는 것은 처음이다. 솟대는 장승처럼 마을의 상징 또는 수호신(神木)으로 세워진다. 성역이나 경계의 상징으로 삼기도 한다. 그렇다면 저 솟대는 무슨 의미를 담았을까?

▼ 볼거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네를 매달아 잠시나마 놀다갈 수도 있게 했다.

▼ 12 : 16. 노두길이 끝나자 이번에는 둑길이 맞는다. 대산리 들녘을 감싸고 있는 방조제 위로 길이 나있다. 그런데 이게 여간 멋진 게 아니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여느 방조들과는 달리 한없이 구불대고 있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쌓은 둑이 자연을 품었다고나 할까?

▼ 고개를 돌리자 ‘웅도’가 눈에 들어왔다. ‘두루누비(코리아둘레길 앱)’에서 갯벌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며 관광 포인트로 추천하는 곳이다. 하지만 다녀오기에는 너무 멀었다. 함께 추천한 ‘한글도서관 서산글램핑’은 더 멀었지만.

▼ 건너편에는 ‘새우양식장’이 있었다. 그런데 익히 아는 ‘대하’가 아닌 ‘한새우’를 판매한단다. 그러고 보니 지역에 따라 대하, 왕새우, 백새우, 흰새우, 흰다리새우 등으로 불리던 ‘흰다리새우’를 ‘한새우’로 통일시켰다는 뉴스를 본 것도 같다. 기사는 ‘한우’나 ‘한돈’처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국내산 새우라는 뜻을 담았다고 전하고 있었다.

▼ 12 : 25. 이후부터는 ‘구진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제방 위로 자동차가 다닐만한 길(정자동1로)이 나있다.

▼ 도심에 가까워지자 둔치에 산책로까지 만들어놓았다. 시골 ‘읍’답지 않게 규모가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대산일반산업단지의 배후 도시인 대산읍은 찾는 이들에게 수도권의 어느 외곽 도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 12 : 43. 대산버스터미널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서해랑길(서산 79코스) 안내도는 근처 ‘서산수협(대산지점)’ 앞에 세워져 있다. 그나저나 오늘은 14.82km를 3시간 30분에 걸었다. 길이 없는 바닷가를 1.2km나 걸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였다고 보면 되겠다.

▼ 진주는 고단한 탄생 과정으로 인해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 불리기도 한다. 진주는 모래알이 조갯살에 박히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때 자신의 피라 할 수 있는 진주층(nacre)이라는 특수한 물질을 분비해 모래로 인한 상처를 감싸고 치료한다. 그렇게 수없이 모래알을 계속 감싸면서 하나의 아름다운 진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나오는 진주의 체액은 아주 조금씩, 천천히 생성되기 때문에 조개에겐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귀한 진주는 ‘부부가 진주처럼 사랑이 익어 빛난다’라는 뜻의 상징이 됐다. 우리 부부에게 그런 고통이나 고난은 없었다. 그럼에도 진주처럼 빛나는 사랑이 익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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