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80코스(삼길포항 - 장고항)

 

여 행 일 : ‘25. 11. 8()

소 재 지 : 충남 서산시 대산읍 및 당진시 석문면 일원

여행코스 : 아라메길관광안내소도비도항당진전력문화홍보관왜목마을용무치항장고항2리 버스정류장(거리/시간 : 17.6km, 실제는 17.02km 4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남파랑길·서해랑길·평화의길)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09 : 35. 삼길포항(충남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서해안고속도로 송악 IC에서 내려와 38번 국도(서산방면)를 타고 35km쯤 들어오면 삼길포항에 이른다. 서해랑길(서산 79코스) 안내도는 삼길포 수산시장 앞에 세워져 있다.

 삼길포항에서 장고항까지,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과 마주하며 당진의 북쪽 해안선을 따라가는 17.6km의 여정. 바다가 시작되는 길목에서 만나는 싱싱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왜목마을과 용천굴이 주요 볼거리로 꼽힌다.

 삼길포항은 대호방조제 서단에 위치한 자그마치만 정겨운 포구이다. 전성기에는 50여 척의 뱅어잡이 정치망 어선이 몰려들어 초봄부터 가을까지 파시를 이루기도 했으나 1984년 대호방조제가 축조되면서 기능이 많이 쇠퇴했다. 하지만 서산에서는 가장 큰 포구라고 한다. 우럭과 노래미가 많이 잡혀 가을에는 우럭축제가 열리기도 한다나?

 09 : 35. ‘삼길포1를 따라 남진(대호방조제 방향)하며 트레킹을 시작한다. 바닷가에 조각공원을 조성해놓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구간이다.

 바다에는 삼길포 9 중 하나인 선상횟집이 떠있다. 어부가 직접 잡은 활어를 배 위에서 회로 떠 포장해 주는가 하면, 배 위에 식당을 차려놓고 생선회를 먹게 해놓은 곳도 있다. 어선마다 자신의 배 이름을 쓴 깃발이 만장처럼 펄럭이고, 잡아 온 해산물 종류도 직접 써서 내걸었다.

 잠시 후 이번에는 바닷가를 따라간다. 데크 산책로를 만들어놓았다.

 배수갑문은 낚시꾼들이 선호하는 주요 포인트 중 하나다. 물고기를 꼬드기느라 여념 없는 낚시꾼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10 : 47. 대호방조제 초입의 빗돌. ‘대호(大湖)’는 큰 호수라는 뜻이다. 방조제가 바닷물을 막으면서 이 거대한 호수가 생겼다. 그리고 허허벌판이었던 서산과 당진에 논과 밭이 생겨났는가 하면, 삼길포항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10 : 47  09 : 56. 서해랑길은 대호(1)방조제를 따라간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3.3km쯤 되는 이 구간을 산악회 버스로 이동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방조제 구간을 조금 줄이는 대신 용천굴 등 서해랑길에서 살짝 비켜나있는 명소들을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09 : 56. ‘대호(1)방조제 끝에 도비도(都非島)’가 있었다. 면적 0.07에 최고점이 45m인 꼬맹이 섬이다. 그게 방조제로 연결되면서 지금은 육지가 되었다. ‘도비도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전란을 피해 피난 온 사람들이 붙였다고 전해진다. 도읍이 아닌 섬,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평화로운 피난처라는 뜻이란다.

 09 : 56. 배수갑문 직전에서 도비도항으로 들어간다. 도비도항은 난지도로 향하는 여객선의 선착장이다. 바다·육지·민물습지 등 다양한 자연생태자원이 존재하고 있는 당진의 명소이기도 하다. 덕분에 좌대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고 한다.

 도비도는 서해안의 관문 같은 포구라고 했다. 여객선 매표소는 물론이고, 해양경찰서(파출소)와 휴게소까지 들어서있는 이유이다. 식당도 여럿 눈에 띈다.

 도비도항은 대난지도와 소난지도로 들어가는 여객선의 출발지이다. 그래선지 섬에 들어가면 꼭 찾아봐야 할 곳을 소개하고 있었다.

 여객선 선착장은 무던히도 길었다. 그 끝은 썰물 때인데도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고깃배들은 다른 선착장에 매어있었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인지 부잔교 형태로 만들어놓았다. 부잔교란 배에 화물을 싣고 내리거나 사람들이 쉽게 탈 수 있도록 물위에 띄워 만든 구조물로 일종의 간이부두다.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는 푸르고 잔잔했다. 그 바다에는 두어 척의 여객선이 떠있었다. 출항시간에 맞춰 선착장에 대는 모양이다.

 배수갑문으로 연결되는 저 섬이 도비도 본섬일 것이다. 도비도는 물이 들면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되는 반도형 지형이었다고 한다. 그런 특성 때문에 섬()과 언덕()을 함께 써서 도부섬으로 불렀는데, 이게 세월이 흐르면서 도비도로 변형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10 : 06. 선착장에서 빠져나와 시화환경을 왼쪽에 끼고 90도로 돈다. 이어서 무지개다리를 건너 도비도 본섬으로 들어간다. 오른쪽에서 다리와 평행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방조제 배수갑문이다.

 길은 섬을 오른쪽에 끼고 에돌아간다.

 우리 부부는 섬을 횡단하기로 했다. kakaomap에 적힌 목조각 공원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섬을 누비듯 다녔는데도 끝내 눈에 띄지 않았고, 주민 두엇에게 물어봐도 금시초문이란다. 덕분에 뭔가 허전하게 느껴지는 동네 풍경만 실컷 눈에 담을 수 있었다. 1998년 농어촌관광휴양지로 개발되었으나 2015년 지정 취소된 이후 장기간 방치되어 온 탓이란다.

 10 : 15. 동네를 빠져나오니 대한민국 지형도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표지석(대호간척친환경농업시범지구)이 바닷가에 세워져 있었다.

 이즈음 대호만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 왼쪽은 대조도. 오른쪽에는 분도와 우무도가 있다. 그 사이에서 대죽산업단지가 나도 있다며 고개를 내민다.

 대죽산업단지를 클로즈업 시켜봤다.

 삽을 든 주민 한 분이 앞서간다. 이곳 주민들은 물이 빠져 나가면 조개 양식장으로 가고, 물이 들어오면 배를 타고 그물을 통해 고기를 잡으며 산다고 한다.

 도비도 앞바다는 썰물 때 갯벌이 바다 쪽으로 길게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이 연출된다. 갯벌은 넓은 편은 아니다. 좌우는 좁지만 가운데가 길게 형성된 형태다. 삼각형 모양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형성된 갯벌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조개를 캐고 있었다.

 10 : 24. 섬을 빠져나오면, 길은 대호(2)방조제로 연결된다. 이후부터는 방조제 위를 걷는다. 방조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걷다 보면 바닷바람 사이로 갯벌의 짠내와 달큰한 단내가 동시에 실려 온다.

 뒤돌아 본 풍경. 도비도가 섬이 아니라 나지막한 산으로 보인다. 그 위에 전망타워가 걸터앉았다. 대호방조제와 국내 5대 철새도래지로 알려진 대호만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곳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개방을 하지 않는 듯, 한국농어촌공사로 들어가는 도로는 외부인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을 매달고 있었다.

 둑에 올라서면 바깥쪽으로 푸른 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 바다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같은 귀에 익은 섬들은 물론이고, 우문도·분도·대조도·비경도 등 이름조차 낯선 섬들이 한려수도에서나 볼 법한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나 더. 물 빠진 갯벌을 따라 바다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도비도 갯벌의 특성이다. 덕분에 조개··고동·낙지 등을 직접 잡아보는 생태체험이 가능하단다.

 오른쪽에는 방조제가 만들어놓은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들녘이 넓다보니 보여주는 풍경도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철새 도래지를 껴안고 있는 푸른 호수와 간척한 농경지대에서 눈부시게 휘날리는 갈대도 눈에 담을 수 있다.

 10 : 36.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방조제에 잇대어 쌓아올린 또 다른 둑이 눈에 들어온다. 탐방로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둑길을 따라간다.

 그렇게 쌓아올린 둑 안에는 인공호수가 만들어져 있었다. 당진화력에서 석탄재를 매립하기 위해 조성했지 않나 싶다.

 그 호수는 지금 철새 놀이터로 변해 있었다. 그만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마냥 놀리는 것만도 아니었다. 수면 위에다 대단위 태양광발전소를 지어놓았다.

 오른쪽, 들녘의 민물호수에서는 더 많은 철새들이 노닐고 있었다. 맞다. 대호만은 유명 철새 도래지 중 하나로 꼽힌다고 했다.

 11 : 03. 인공호수의 절반쯤은 이미 매립을 끝냈나 보다. 당진화력의 연소 잔재물(석탄재)을 매립했다는 안내판을 걸어놓았다.

 매립지에는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서 있었다. 석탄 연소 후에 발생하는 저회(低灰)는 입자가 작아 일정 시간이 흐르면 일반 부지만큼 지반강도가 단단해진단다. 저런 발전소가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다.

 방조제로 올라선지 40분이나 지났지만 방조제 끝은 아직도 아득하기만 하다. 하늘은 구름에 싸여 짙은 회색이었고, 저 멀리 당진화력발전소 굴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른다. 참고로 대호방조제는 서산시(대산읍) 삼길포에서 당진시(석문면) 도비도까지 길이 3,253m 1, 도비도에서 교로리까지 4,554m 길이의 2호 방조제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부턴가 들녘이 다시 농경지로 변해있다.

 11 : 18. 드디어 방조제가 끝났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당진화력의 서문으로 연결된다. 서해랑길은 오른쪽이다.

 이후부터는 대호만로(615번 지방도)’를 따라간다. 발전소 건립을 반대한다는 현수만이 눈길을 끈다. 당진화력에서 한두 기 증설이라도 하는가 보다.

 이곳 교로리는 당진화력의 배후 마을쯤으로 보면 된다. 한국동서발전()의 핵심 발전소답게 마을도 크게 들어섰다. 하지만 막상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펜션이나 식당, 상점 등 대부분이 문을 닫아걸었다. 심지어는 다세대 주택까지도 텅텅 비어있는 듯 했다.

 인적도 느껴지지 않는다. 30분 가까이를 걸어가는 동안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면 대충 어느 정도인지 이해할 것이다.

 발전소도 문을 닫아 건 것은 아니겠지?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어야할 굴뚝이 개점휴업 상태다.

 11 : 42. 당진화력 동문. 당진화력은 교로리 일대에 개발 붐이 일게 만들기도 했었다. 현대식 건물이 돋보이는 발전소에 홀린 사람들은 드넓은 간척지 들판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고 한때 번성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게 허상이었던지 차도를 따라 지어진 건물들은 지금 하나같이 텅텅 비어있었다.

 인걸은 간 데 없고 누군가를 헐뜯는 현수막만 남았다.

 대호만로(615번 지방도)’를 따라가는 여정은 이후로도 한참이나 더 계속된다

 11 : 57. ‘왜목마을 입구 삼거리. 서해랑길은 왜목마을을 향해 왼쪽으로 간다.

 왜목마을에서도 레저스포츠 체험이 가능한 모양이다. 해변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Buggy Car가 여행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12 : 01. ‘왜목마을에 이른다.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유명 관광지로 탈바꿈된 마을이다. 그래선지 웬만한 지방도시가 부럽지 않을 만큼 높다란 건물들이 도로변을 장식하고 있다. 싱싱한 횟감을 파는 식당도 하나 둘이 아니다.

 마을로 들어서자 하얀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진다. 총연장 650m에 폭도 100m나 된다니 왜목마을의 유명세에 걸맞는 해수욕장이라 하겠다.

 시선을 조금 옮기면 노적봉과 촛대바위가 얼굴을 내민다. ‘노적봉은 오늘의 왜목마을이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1990년대 중반 경향신문 기자가 왜목마을에 머물며 노적봉 위로 해가 솟는 장면을 촬영했고, 그걸 계기로 서해에서도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게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기존의 해넘이를 보탰고,  밀레니엄 열풍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이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앞바다에는 국화도가 떠있다. 도지섬과 매박섬 등 부속섬은 물론이고 저 멀리 입파도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왜목이란 지명은 마을 지형이 왜가리의 목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모래사장에 새빛 왜목이란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소재로 꿈을 향해 비상하는 왜가리의 모습을 표현했는데, 높이가 무려 높이 30나 된다나? 이는 국내 해상 조형물 중 가장 유명한 포항 호미곶의 상생의 손(8.5)’보다 3.5배나 높단다.

 조형물을 가장 멋지게 연출할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해 놓았다. 왜가리의 날개에 앉아 양팔을 벌리면 왜가리를 타고 날아오르는 모습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제일의 신조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안에 담는 게 가장 좋았다.

 이젠 선착장으로 가볼 차례다. ‘삼길포항처럼 배 위에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선착장으로 가는 도중 왜목마을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왜목마을은 일출과 일몰, 심지어는 월출(月出)까지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서해에 위치한 땅끝 마을로, 해안이 동쪽을 향해 돌출되어 있고 인근 남양만과 아산만이 내륙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요트 세계일주 홍보전시관도 눈에 띈다. 왜목마을은 지난 2014 10월 김승진 선장이 아라파니호를 타고 단독무동력무기항 요트 세계일주에 나선 곳이자 항해 210일 만에 성공적으로 귀항한 베이스 캠프였다. 김승진 선장의 희망항해 성공을 기념하고 국가 거점 마리나 항만으로의 도약을 기원하며 당진시에서 세웠다.

 12 : 15. 왜목마을 선착장. 어선 두세 척이 배 위에서 선상횟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제철 활어회와 해산물을 한 접시 넉넉하게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란다.

 하지만 내 관심은 온통 바닷가로 쏠려있었다. 거대하지는 않지만 해식애로 이루어진 해안선이 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해식동굴은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사진까지 작지는 않단다. 안쪽에서 역광으로 촬영하면 서해와 함께 인생 최고 장면을 찍을 수도 있단다. 날씨가 좋지 않아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지만.

 12 : 20 : 12 : 35. 왜목해변의 가장 큰 특징은 배후 숲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해변 곳곳에 나무를 심고 그늘에다 벤치를 놓아두었다. 덕분에 준비해 간 간식을 나누며 푹 쉬어갈 수 있었다. 막걸리 한 잔에 하늘이 보이고, 과일 한 점에 푸른 바다가 일렁이니 이 아니 행복할 손가.

 12 : 35. 다시 길을 나선다. 데크 산책로를 따라가며 아까 놓쳤던 풍경들을 느긋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이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이근배의 시비(왜목마을에 해가 뜬다) 앞에서는 한참이나 머물다 왔다.

 12 : 45. 월야성(모텔) 앞에서 오른쪽으로 빠져나간다. 150m쯤 걷다가 이번에는 석문해안로(용무치항 방면)’를 따라간다.

 12 : 52. 잠시 후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갈려나가는 샛길(새터말길)로 들어간다. 도로를 따라 용무치항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인도는 물론이고 갓길까지 나있지 않아 바람직하지는 않다.

 고개를 넘으면 음샘말골’.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산돌교회가 반긴다.

 12 : 56. 산돌교회를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서 나지막한 고개를 넘는다.

 고개를 넘으면 원머리골이다. 농로에 가까운 길은 이미 원광길로 바뀌어 있다. 원광과 원머리의 관계가 궁금했지만 알아낼 수는 없었다.

 민가 두어 채가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 또 다른 고개를 오른다.

 고개를 넘자 규모가 제법 큰, 그러나 이름을 알 수 없는 자연부락이 맞는다.

 13 : 19. 배수갑문을 지나 석문해안로로 올라섰다. 20분쯤 전에 헤어졌던 도로다. 서해랑길은 이제 해안도로를 따라 용무치항으로 간다.

 고개를 돌리자 국화도가 성큼 다가온다.

 조금 더 돌리면 이번에는 석문산을 배경으로 삼은 왜목마을이 펼쳐진다. 석문산(79m)은 일몰과 일출 포인트다. 야트막한 동산이어서 오르기도 수월해 10분도 채 안 걸린다.

 13 : 23. ‘용무치항에 이른다. 30년쯤 전, 실치(뱅어)를 잡기 위해 생긴 작은 포구로 소형 고깃배들의 입출항이 많다. ‘용무치라는 지명은 옛날 이곳에 용못(龍淵)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단다.

 서해랑길은 석문해안길을 따라 장고항으로 간다.

 하지만 우린 바닷가를 따라 용무치 선착장으로 갔다. 당진의 비경으로 알려지는 노적봉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용무치항은 엄청나게 넓은 주차장을 갖고 있었다. ‘어촌뉴딜300사업에 선정되었다더니 활기 넘치는 정주어항이자 도시민들의 휴양공간으로 꾸며놓은 모양이다.

 선착장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나간다. 조수간만의 차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다행히도 바닷길이 열리고 있었다. 썰물 덕분에 자갈과 모래가 반반쯤 섞인 해변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13 : 38. 빼어난 주변 경관에 푹 빠져 걷다보면 어느덧 노적봉(露積峯)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쳐들어오자 노적봉에 가마니를 쌓아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위장하여 적들이 달아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바위 아래에 10미터 정도 되는 작은 동굴이 하나 있는데 정변으로 귀양을 가게 된 부모에게 버림받고 자수성가한 어느 재상의 사연이 담겨 있다.(디지털당진문화대전 노적봉과 동굴 전설 참조)

 고개를 들자 뻥 뚫린 구멍 너머로 하늘이 보인다. 오랜 세월 바닷물과 해풍에 시달리면서 만들어진 자연의 작품이겠지만, 사람들은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용천굴이란 이름까지 떡하니 붙여놓았다.

 노적봉 일대는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감성사진 명소로 주목받는 곳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싱싱한 굴에 더 관심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인근 바닷가에서 사는 할머니들이 직접 채취한 자연산 굴(남해안에서는 이라고 부를 정도로 맛있다)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다 팔려버린 탓에 굴은 눈요기도 못해봤지만.

 노적봉 능선, 단절된 두 바위절벽 사이에는 촛대바위가 있었다. 왜목마을에서 바다 너머로 보이는 이 바위는 자연의 비경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곳이다.

 13 : 48. ‘장고항으로 간다. 서해를 향해 툭 튀어나간 노적봉 곶()을 사이에 두고 왼쪽(서쪽)에는 용무치 포구가, 오른쪽인 동쪽에서는 장고항이 있다. 그러니 동쪽을 향해 간다고 보면 된다.

 13 : 50. 장고항(長鼓港). 주변 연안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배들이 모여드는 포구이다. ‘장고란 지명은 포구의 생김새가 장고(장구)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단다. 장고항은 포토 스팟으로도 유명하다. 바다와 맞닿은 빨간등대와 하얀등대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드리우는 일몰이 장관을 연출한단다.

 (3월에서 4월 초순)이면 장고항 어부들의 몸짓이 부산해진단다. 실치잡이를 해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실치는 장고항의 봄의 전령사라고 했다. 흰 몸에 눈 점 하나 있는, 애써 눈여겨봐야 할 정도로 작은 물고기인 실치가 작은 몸을 흐느적거리면서 장고항 앞바다를 회유한다나?

 선착장에는 수산물유통센터가 들어서 있었다. 수산물판매장 20개소와 건어물매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코너별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이 있어 현장에서 해산물을 구매 후 바로 맛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란다.

 장고항도 엄청나게 너른 주차장을 갖고 있었다. ‘국화도로 들어가는 교통의 중계지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는 모양이다.

 13 : 55. 주차장이 끝나갈 즈음, ‘장고항로를 따라 작은 고개를 넘어오는 서해랑길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어서 2차선으로 변한 장고항로(석문방조제 방면)를 따라 동쪽으로 간다.

 횟집들이 들어서있어 당진 8중 하나인 실치(뱅어)회를 먹어볼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14 : 00. 해양경찰파출소(이전했는지 텅 비어있다) 앞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서해랑길(당진 81코스) 안내도는 파출소 옆에 세워져 있다. 오늘은 17.02km 4시간 10분에 걸었다. 시간당 4km쯤 걸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은 셈이다.

 칠십 줄에 들어선 우리 부부는 누가 봐도 노인이다. 하지만 둘 모두 노인보다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지는, 넓은 아량으로 주변을 챙기고 배려하는, 젊은 사람에게도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신을 비우고 나누려는,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가득 찬 내면을 볼 줄 알며 이에 기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나도 저런 엄마·아빠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