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75코스(청산리나루터 - 구도항)

 

여 행 일 : ‘25. 8. 30()

소 재 지 : 충남 태안군 원북면 및 서산시 팔봉면 일원

여행코스 : 청산리나루터시우치저수지갈두천석선리생태공원어은리어송교구도항(거리/시간 : 20.8km, 실제는 14.77km 3시간 5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남파랑길·서해랑길·평화의길)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09 : 50. 들머리는 청산리나루터(충남 태안군 원북면 청산리)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에서 내려와 32번 국도로 태안까지 온다. ‘두야교차로에서 38번 국도(이원방면)를 타고 10km쯤 올라오다 태안농업기술센터(북부지소) 앞에서 나루터길로 옮겨 4km쯤 들어오면 청산리나루터이다. 서해랑길(태안 75코스) 안내도는 풍경펜션 주차장에 설치되어 있다.

 청산리나루터에서 구도항까지 가로림만의 남쪽 해안을 돌아나가는 20.8km 여정. 산길과 바닷길, 들길, 마을길 등 충남 해안지방의 다양한 풍경들을 만날 수 있는 구간이다. 난이도는 보통. 선돌바위가 주요 볼거리로 꼽힌다.

 10: 50. 실제 출발은 태성골(청산2)’. 기상청은 오늘도 33도를 넘길 거란다. 거기다 75코스는 20.8km. 건강을 핑계 삼아 코스를 단축하기로 했다. 문제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석암 작가님과 태안에서 택시를 불러 갈두천제방까지 가자는 얘기를 나누는데 산악회에서 들었던 모양이다. 갈 수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것이다. 두 번의 고행(도로가 좁아져서 진행이 불가능한데다 차를 돌릴 수도 없어 한참이나 후진으로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끝에 내린 곳이 태성골이다.

 후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산악회 황사장님께 감사드린 뒤, ‘갈두천 방향으로 힘차게 출발한다. 물론 농로가 나있다. 그런데도 몽중루 작가님은 시골길은 시골다워야 한다며 부득부득 논두렁을 타고 간다.

 10 : 56. ‘갈두천을 만난 다음에는 둑길을 따라 가로림만으로 간다. 하나 더. 새섬리조트에서 시작되는 솔향기길 4코스는 종점이 풍천교회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둑길이 4코스인 셈이다. 그런데도 갈두천 방조제까지 가는 동안 솔향기길 시설물(이정표 같은)이 일절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뭘까?

 목네미(청산2)’마을. 질그릇을 굽던 가마터에서 산기슭 좁은 목을 넘어가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질그릇을 굽던 가마터를 가마피라 불렀는데, 그곳에서 구워진 도기들을 목네미나루터에서 인천으로 실어 날랐다고 한다. 또한 덕적도에서 온 새우젓 배들이 새우젓을 파는 등 상거래가 왕성하던 시절도 있었단다.

 15분쯤 내려갔을까? 하구역에 이른 갈두천이 등치를 한껏 부풀렸다. 품에는 웃자란 습지식물을 가득 안고서.

 11 : 15. ‘갈두천 제방으로 올라섰다. 앱이 2.15km를 걸어왔단다. 두루누비(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한 앱은 6.17km로 표시하는 지점이다. 남은 거리는 14.6km, 앱을 살펴보던 집사람의 표정이 울상이 되어버린다. 12km를 목표로 삼고 있는데 16.8km를 걸어야하니 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이정표는 갈두천을 풍천으로 적고 있었다. ‘풍천이란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역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갈두천 방조제의 수문은 평소에 열어놓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왼쪽은 가로림만’. 두 번째 하얗게 보이는 부분은 보타락가사일 것이다. 그 왼쪽의 하얀 지점은 청산리오토캠핑장이다. 산악회 황사장님이 우리 일행을 저곳까지 데려다 주려다가 낭패를 당했다.

 보타락가사는 길이 10m 열반와불상으로 유명하다. 평소에는 법당 안에 모셔져 있다가 매일 정오가 되면 대웅전 위로 올라와 서해를 바라보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사진은 직접 다녀오신 총무님의 것을 빌렸다.

 습지식물로 뒤덮인 갈두천 하구역. 갈두천(葛頭川)은 철마산 중턱에서 발원 장대리·양산리·대기리를 지나 청산리에서 가로림만으로 흘러드는 지방하천이다. 주민들은 칡 머리(葛頭)처럼 강한 생명력으로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지켜준다고 믿고 있었다.

 둑 중간쯤에는 조망대를 만들어놓았다. 75코스의 명물인 선돌바위를 꼼꼼히 살펴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안내판과 함께 조형물도 두엇 세워두었다.

 여심(女心)’. 사랑은 움직이는 것. 관심이 떨어지면 사랑은 날개를 달고 떠난다는 부연 설명을 달았다. 사랑은 표현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맞습니다. 맞고요.

 포토 죤에는 다이아몬드 반지 한 쌍을 배치했다. 보석만큼이나 귀한 풍경이니 그 풍경을 반지 안에 담아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맞다. 거기에 연인의 얼굴까지 함께 담는다면 인생사진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태안의 푸른 바다와 솔숲이 어우러진 솔향기길은 총 5개의 코스(총 연장 51.4km)로 이루어졌는데, 이곳 갈두천은 4코스의 경유지이자 5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래선지 다섯 개 코스 전부가 들어간 안내도를 세워놓았다.

 선돌바위. 가로림만의 갯벌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선돌바위는 마을에서 신성시 여기던 바위로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고 한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바위를 깨뜨려 배에 실어 어디론가 나르기 시작한 걸 뒤늦게 마을주민들이 알고 더 이상 바위를 깨뜨리지 못하도록 막아내 지금의 크기와 형태로나마 남게 되었단다.

 안내판은 바위가 마을을 바라보는 형상이라고 했다. 일본인들의 만행을 저지시켜 준 고마움을 가득 담고서 말이다.

 선돌바위의 오른쪽 멀리 보이는 두 개의 작은 섬은 쌍도(雙島)’이다. 섬이 작아 군현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조선지형도에서 처음으로 엿볼 수 있다. 봄에는 바지락, 여름이면 갯벌낙지와 고동, 가을이면 굴, 겨울이면 감태 등 사시사철 주민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해주는 곳이란다.

 방조제 끝도 만만찮은 경관을 보여준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해안이 해송과 어우러지며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11 : 24. 갈두천 제방의 끝에 이르면 태안위생처리장 쪽으로 내려간다. 울타리를 장식하고 있는 우람한 은행나무들이 쏠쏠한 눈요깃거리가 되어주는 구간이다.

 오른편의 습지는 갈대 가득한 생태연못으로 꾸몄다. 연못을 관찰할 수 있도록 빙 둘러 데크길을 설치했다. 걷다보면 갈두천에서 많이 서식한다는 민물장어나 참게, 붕어, 잉어가 눈에 띌지도 모르겠다.

 11 : 27. 태안위생처리장 모퉁이에서 길이 둘로 나뉘고 있었다. 직진하면 갈두천의 둑길을 따라 풍천교로 간다. 솔향기길 4코스의 종점이다. 하지만 서해랑길은 5코스를 따라 백화산 방향으로 간다.

 위생처리장 정문 쪽으로 간다. 그리고는 금굴산(151m)’ 임도를 따라 산속으로 파고든다.

 두메바늘꽃’. 긴 씨방이 바늘을 닮았다는 바늘꽃이다. 물가나 습지에 자란다. 그에 비해 높고 깊은 산 양달에 자란다고 해서 두메바늘꽃이 됐다. 꽃말은 환영(歡迎)’. 그 기운을 빌어 75코스를 걷는 동안 우릴 환영해주는 주민을 하나라도 만났으면 좋겠다.

 태안웰스리조트 앞을 지나기도 한다.

 한낮에 가까워지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길이 숲속을 헤집는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이즈음 금골산(金骨山, 149m)’ 정상이 살짝 얼굴을 드러낸다. 태안군지는 행주산(行舟山)’이라고도 부른다며 금굴산(金屈山으로 적고 있었다. 옛날 저 산에서 금을 캤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란다. 정상에는 가로림만으로 들어오는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석축 산성()도 있다.

▼ 길은 여러 곳에서 나뉘고 있었다하지만 이정표가 지키고 있어 길이 헷갈릴 일은 없었다.

 11 : 47. 용주사 표지석. 길이 나뉘는 지점으로 서해랑길은 오른쪽 용주사 방향으로 올라간다. 반면에 직진하면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길을 따라 태안군환경관리사업소로 간다. 두 길은 삭선리생태공원에서 다시 만난다.

 환경관리사업소로 가는 평지길을 따르기로 했다. 집사람의 체력을 감안한 첫 번째 배려이다. 기껏해야 200m를 단축할 수 있겠지만 고도를 60-70m까지 올려야 하는 고생은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들르지 못한 용주사의 사진은 총무님 것을 빌려왔다. 대한불교총화종 소속 용주사(龍珠寺)는 고려 말 금굴사로 창건되어 매우 번창했다고 한다. 그러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사세가 약화됐고, 6.25동란 때는 아예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후 수월암(水月庵)으로 바뀌어 명맥을 이어오다 1971년 대웅전을 신축하고 용주사라 개칭해 오늘에 이른다.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십이신장을 조각하여 모시고 있다.

 11 : 52. 커다란 태양광발전소를 지나자 태안군환경관리사업소가 얼굴을 내민다. 환경체험학습장을 겸하고 있어선지 엄청나게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환경관리사업소를 지나면서 길이 2차선으로 넓어졌다.

 12 : 04. 모퉁이를 돌아서자 삭선리와 산후리 사이 바다를 가로막은 산후방조제가 반긴다. 그 초입에 삭선천의 배수갑문이 있다. 아까 헤어졌던 서해랑길과 다시 만나는 지점이다.

 종합안내판부터 살펴본다. 가로림만을 막아 간척농지를 만들고 그 언저리 유휴지에 공원과 산책로, 숲관찰로, 암석관찰로, 갈대습지 등을 조성해놓았다.

 오른쪽, 서해랑길(솔향기길)과 맞닿은 곳에 삭선리 생태공원이 들어앉았다. 아기자기한 공원과 놀이터가 있고, 쉼터용 정자도 지어져 있다. 참고로 삭선리는 세곡을 모아 놓던 해창(海倉)이 있던 곳이다. 고을에서 모아진 세곡을 한양으로 실어 나르던 시절에는 사람들의 발길로 붐비기도 했단다.

 생태공원 안내도.

 12 : 06  12 : 24. ‘산후방조제는 여느 방조제들과는 달리 커다란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늘에는 벤치까지 놓여있어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푹 쉬다 갈 수 있었다. ! ‘솔향기길과 헤어진 탓인지 이곳에는 서해랑길 이정표(종점 10.9km/ 시점 9.9km)가 세워져 있었다.

 이곳은 호리병처럼 남쪽으로 움푹 들어온 가로림만의 가장 남쪽 지역이 된다. 가로림만은 태안에서 서산까지 걸쳐있는 만()이다. 남쪽으로 바다가 쑥 들어와 북쪽으로 바다가 열려있고, 다른 방향은 육지로 막혀있는 해안이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큰 규모로 갯벌이 형성되어, 지역민들은 이를 활용한 어업활동으로 삶의 터전을 일궈 나간다.

 이를 감안해서인지 안내판을 세우고, 탐방객들에게 갯벌의 역할과 가로림만 갯벌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을 소개해준다.

 세상은 스마트시대로 변했다. 기상이나 선박접근 등의 정보는 물론이고, 구조요청, 목적지 검색 등 바다와 관련된 모든 행위가 핸드폰만 있으면 가능해진다.

 12 : 24. 삭선천의 왼쪽 둑길을 따라 남진한다. 삭선천은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굴·능쟁이(칠게황발이(농게박하지(돌게낙지 등 서해안 어류들이 알을 풀던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간척사업으로 인해 바다 생물들은 삶의 터전을 인간에게 양보하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삭선천의 냇물은 그렇게 바다를 향해 무심히 흘러간다.

 12 : 26. 이번에는 삭선천을 떠나 들녘을 가로지른다. 삭선천의 하구역은 지금 간척사업으로 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앞뒤를 둘러봐도 그 옛날 어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하나 더.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이제껏 함께 해오던 가로림만과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는 어은리를 향해 내륙으로 파고든다. 바다가 뒤로 멀찍이 물러나는 구간이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집사람이 쓰고 가던 양산이 졸지에 우산으로 변했다. 햇볕이 나 있는데 잠깐 내리다가 곧 그치는 비를 여우비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30분이나, 그것도 양동이 물을 쏟아 붓듯이 거세게 내려 우산도 도움을 주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비가 그치자마자 뙤약볕이 다시 쏟아졌으니 여우비임은 분명했다.

 12 : 38. 간척지를 왼쪽으로 돌아 언덕으로 오르면 산후리 전원주택단지가 나온다.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지 하나같이 부티 나게 지어져 있다. 대문 앞 승용차도 외제, 그것도 배기량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다. 참고로 산후리(山後里)는 백화산 뒤쪽에 형성된 동네라는 뜻이다. 과거 산후리 주민들은 굴·바지락·낙지 등 가로림만에서 잡은 해산물을 태안 장에 나가 팔아가며 살았단다. 하지만 바다가 떠난 마을은 이제 어린 시절 먹던 추억의 입맛만 남아있다나?

 전원주택단지가 들어선 언덕을 넘으면 새발간석지들’. 서해랑길은 들녘의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간다. 이처럼 생태공원을 지나고 난 후부터는 들길, 마을길을 따라 한참을 걷게 된다.

 세발간석지 들녘과 방조제. 뒤쪽은 이적산과 이교산, 이화산 능선일 것이다.

 잠시지만 소하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중말천이라는 이도 있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12 : 48. 이정표(종점까지 9.2km)가 직진하면 마애삼존불입상(국보 제84)으로 연결됨을 알려준다. 서해랑길 64-3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가운데 석가여래입상은 엄숙하면서도 넉넉한 미소로, 왼쪽의 제화갈라보살입상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오른쪽 미륵반가사유상은 천진난만하고 꾸밈없는 미소로 중생들을 맞이한다.

 12 : 56. 서해랑길은 중말천을 건넌다. 이어서 농로(초가지길)를 따라 어은리 초가지마을로 올라간다. 초가지마을은 예로부터 최씨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해서 최가지(崔哥址)’로도 불린다고 했다.

 백로(白露)가 일주일 남았다.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연해지는 절기, 오곡백과가 여무는 데 더없이 좋은 때이다. 처마 밑에서 말라가고 있는 저 고추가 그 증거이다.

 초가지길은 제법 높은 고개를 넘기도 한다. 참고로 초가지길은 634번 지방도(진벌로) 산후1버스정류장에서 감절버스정류장까지 초가지골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농로에 가까운 1차선 도로이다.

 고개를 넘어 감절마을로 내려간다. 어은동 남쪽, 산후리 금암동마을과 인접해 있는 동네로 인근에 감절이라는 큰 절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폐가(廢家)가 눈에 들어온다. 요즘은 귀향·귀농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사연 많은 젊은 날을 보내고, 후반을 시골 산기슭에서 자연의 속살을 누빈다는 것이다. 세척된 채소를 문 앞에서 받는 편리함 대신, 가축 분뇨 섞인 흙에서 살아있는 먹거리를 마련하려고 밤낮으로 힘을 쏟는다. 하지만 불편함보다는 편리함이 좋은 이들도 많은 모양이다.

 13 : 08. ‘감절(어은2)’ 버스정류장. 서해랑길은 이제 진벌로의 지선을 따라간다. ! 말뚝형의 표지판에는 강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두 지명을 함께 쓰는 동네인 모양이다.

 13 : 12. 잠시 후, 이번에는 진벌로(634번 지방도)로 올라선다. 2차선 도로라선지 횡단보도에 교통신호등까지 설치되어 있다. 주요 포스트인지 서해랑길에서도 이정표(종점까지 7.7km)를 세워놓았다.

 13 : 16. ‘어은2 입구까지는 진벌로를 따라간다. 도로 갓길이 제법 넓어서 위험을 느끼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갈려나가는 어은길을 따라간다. 그리고는 바닷가인 염장(鹽場)까지 갔다가 안도내, 으뜸말 등을 거친 다음 진벌로로 되돌아온다. 거리는 5.5km쯤 된다.

 생략하게 되는 어은리 들녘. 초입에 어은2리 마을회관과 정자(어연정)가 있다. 그 뒤는 염장이다. 어은리에서 가로림만으로 돌출된 곳인데, ‘마치 염소가 입을 벌린 것처럼 생겨 고장(羔場)이라고 했는데, 뒤에 이곳에서 소금이 많이 생산되면서 염장(鹽場)으로 고쳐 부르게 된다.

 하지만 우린 계속해서 진벌로를 따라가기로 했다. 집사람의 체력을 감안한 두 번째 배려이다. 이곳에서 어송교까지가 3.2km이니 2.3km나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 : 40. ‘탄동(어은1)’ 버스정류장. 마침 군내버스에서 할머니가 내리시기에 몇 마디 주고받았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살림이니 어디서 산들 어떻겠냐면서도, 병원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는데 군내버스가 하루 3번만 운행해서 시골살이를 만만찮게 만든다고 하신다.

 표지판에 옛 지명인 탄동을 적어 넣었다. 74코스에 이어 75코스에서도 심심찮게 만나는 풍경이다. 이런 이름들은 지도보다도 오래된 기록이다. 땅을 닮았고 사람을 닮았다. 이들은 걷는 이에게 여기 누군가 살았고, 살아간다고 말없이 속삭여준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길인데도 눈에 들어오는 풍경 하나하나가 아름다워지는 이유이다.

 방향을 잘못 짚은 탓에 잠시지만 어은·도내 방조제 방향으로 내려갔다 되돌아오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

 어은1리는 마을회관 대신 문화회관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쉼터이자 참새방앗간이다. 태안에서는 마을관리소라는 기능 하나를 더 보탰다고 한다. 각종 공구를 비치·대여해주는가 하면, 전등·수도·방충망 등의 수리를 주민들이 협동해서 자체적으로 해결해나간다는 것이다. 마을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생활밀착형 복합 편의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계속해서 진벌로를 따라간다. 갓길이 넓어서 걷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14 : 02. 고가다리인 도내교(島內橋)’ 아래를 지난다. 반면에 안도내에서 오는 서해랑길은 저 다리를 건너 솔감저수지로 간다.

 14 : 09. ‘어송교를 건넌다. ‘솔감저수지와 가로림만 사이 수로에 놓인 다리다. 다리를 건너 어송리(漁松里)’에 이름을 따온 듯. 아무튼 태안군의 산하를 숨 가쁘게 달려온 서해랑길은 어송교에서 서산시에 바톤을 넘겨준다.

 오른쪽은 솔감저수지이다. 서산시와 태안군 경계에 놓인 48ha 규모의 저수지로, 전국의 낚시꾼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민물낚시의 명소이다.

 탐방로는 이제 도내-덕송 방조제 위로 난 둑길을 따라간다. 오른쪽 아래로는 634번 지방도가 함께 간다.

 왼쪽은 숲에 이슬을 더한다는 가로림만(加露林灣).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처럼 생긴 바다, 내륙 깊숙이 바닷물을 끌어드려 크고 둥글게 안고 있는 곳이다. 절반은 태안이, 절반은 서산이 사이좋게 감싸고 있는 청정해역이며, 세계 5대의 청정갯벌을 가진 곳으로 다양한 어족의 최대 산란장이자 서식처로 법적 보호종(무척추동물 2, 물새10, 점박이물범)을 가지고 있는 112의 바다이다.

 무인도인 덤섬은 감태(甘苔)의 주 서식지라고 했다. 갯벌에서 자생하는 데 쌉쌀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난다고 달 감()’자를 쓴단다. 매생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약간 거칠고 파래보다는 부드럽다. 일반 해조류들이 돌·나뭇가지·밧줄 등에 포자가 부착되어 자라는 것과 달리, 감태는 청정한 게르마늄이 함유된 갯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이때 바닷물과 갯벌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미네랄을 흡수하여 미네랄의 보고라고도 불린다.

 이즈음 팔봉산(八峰山, 364.4m)이 눈에 들어온다. 해발고도는 높지 않지만 서해안의 저지대에 위치하여 상대적으로는 우뚝 솟아 보인다. 하나 더. 태안과 서산 사이의 굴포와 가로림만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며 400여 년간 끈질기게 공사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천수만으로 흘러드는 흥인천과 가로림만 사이 약 3km에 달하는 거리를 운하로 연결시키려 했다. 기술 부족과 높은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하지 못해 실패했지만 우리나라 운하의 효시가 됐다.

 14 : 16  14 : 39. 방조제 끝에 정자를 지어놓았다. 덕분에 더위에 지친 몸을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었다.

 14 : 39. 다시 길을 나선다. 한월당로의 지선을 따라 구도항 쪽으로 간다.

 14 : 42. 가로림만을 뜨락 삼은 노을길펜션’. 목장승을 소품삼아 예쁘게 꾸며놓았다. 목장승을 포함한 조형물들은 자연물과 폐자원을 활용하여 주인장이 직접 제작하였다고 한다.

 바다로 내려가는 길목에 낚싯대를 놓아두었다. 목장승에 적힌 ~ 대박은 입질이 괜찮다는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가로림만 갯벌은 예술가이다. 동그란 고둥이 갖가지 모양을 그려놓고 다시 모래 속을 파고 들어간다. 젊은이들에게는 금기라는 라때 시절 즐겨 먹었던 간식이다. 먹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고동 끝을 잘라내고 잘린 부분을 입으로 쪽 빨다가 반대쪽 눈 있는 쪽을 빨면 부드러운 속살이 입속으로 빨려 나온다. 그렇게 먹다보면 짭조름한 바다가 입안을 떠돌았다.

 14 : 43. 몇 걸음 더 걸으면 덕송리 방조제’. 초입에서 펜션단지 진입로가 갈려나간다.

 서산으로 들어오니 이정표(구도항까지 1.9km) 주인이 아라메길로 바뀌었다. ‘서산 아라메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를 합친,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길이다. 앞으로는 아라메길이 서해랑길과 함께 해준다는 얘기일 것이다.

 로즈, 팜파스, 그림나래, 솔바다이야기 등등. 이름처럼 아름다운 건물들이 산자락을 등지고 빼곡히 들어서 있다.

 갯벌은 하루 두 번 물이 들고 나면서 스스로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물이 빠져나간 바다는 갯길이 또렷해졌다. ‘생명의 땅 갯벌을 보듬은 실핏줄로, 바닷가 사람들은 갯벌과 마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저 실핏줄을 통해 자연과 소통해왔다.

 14 : 48. 방조제 끄트머리서 산속으로 파고든다. 바닷가로 내려가 곶부리()를 에돌아갈 수도 있지만 물이 찰 경우 통행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붉은색 바위를 덧대고 있는 해안은 무척 아름다웠다.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만 해도 빼어난데 금상첨화로 붉은 색까지 더했다.

 나무계단을 올라 숲속으로 들어간다. 이어서 피톤치드 가득한 해송 숲길을 잠시 걷는다.

 14 : 52. 산자락을 빠져나오면 덕송리의 또 다른 해안이다. 이곳에도 방조제를 쌓아 간척지를 만들었다. 탐방로는 이 둑길을 따라간다.

 방조제가 만들어놓은 간척지에는 대하양식장이 집단으로 들어서 있었다. 수많은 수차가 물살을 일으키는 풍경이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하다.

 가로림만은 서해안에서 가장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고 있다고 했다. 빼앗긴 바다 천수만을 반면교사 삼은 태안 주민들이 온 힘을 다해 지켜낸 결과이다. 가로림만 조력발전사업도 개발귀신으로 여기고 반대투쟁을 벌인 끝에 백지화를 이끌어냈다나? 덕분에 일반인들도 가로림만 어디에서나 가을 한철 망둥이낚시를 할 수 있고, 어촌계 양식장이 아닌 곳에서는 마음대로 조개를 캐고 굴을 따고 낙지도 잡을 수 있단다.

 방조제 끄트머리서 이번에는 임도와 연결된다. 이어서 나지막한 능선을 횡단하여 호리 해안으로 간다.

 15 : 05. 호리해안에 이르면 또 다시 방조제 둑길을 탄다.

 간척지에는 아까보다도 훨씬 큰 대하양식장이 들어섰다. 1996년 무렵 정부는 소금 수입을 개방했고, 수입 소금에 가격 경쟁력에서 뒤진 국내 염전들은 존폐의 위기를 맞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바로 새우양식장이었다. 싸디 싼 수입소금에 부담금을 매기고 그 재원으로 양식장 등 다른 사업으로의 전환을 원하는 염전들을 지원했다. 당시 소금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날밤을 새우던 기억이 생생하다.

 15 : 15. ‘구도항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서쪽으로 새로운 선착장이 만들어져 있지만 꼬맹이 배들은 여전히 옛집이 더 좋은 모양이다.

 서해랑길(서산 76코스) 안내도는 구도항 초입(방조제 끝)에 세워져 있다. 오늘은 총 14.77km 3시간 50분에 걸었다. 시간당 4km를 채 못 걸었으니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아니 33도가 넘는 무더위에 이보다 더 빨리 걸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구도항은 역사가 매우 깊은 항구다. 1930년대부터 인천까지 정기여객선이 운항했다. 내륙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여객선의 운항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였다. 인천으로 가는 뱃길은 시골에 싫증을 느낀 젊은이들의 꿈과 설렘으로 가득했고, 그렇게 7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만 해도 서산·태안에서 시외버스나 기차로 서울을 가려면 하루를 잡아먹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 뱃길이 끊기고 고파도로 들어가는 배편 하나만 달랑 남은 포구는 한적하기 짝이 없었다. 식당이나 상점도 절반은 문을 닫고 있었다.

 바다 건너는 아침에 75코스를 출발했던 청산리나루터. 그 사이 바다에는 여객선이 뱃고동 울리며 떠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풍랑이 심한 겨울, 주민들은 인천에서 며칠씩 발길이 묶이면서 고생했었다. 그러다 보니 아예 인천에서 눌러앉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당시는 교육여건도 안 좋아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뱃길을 따라 인천으로 유학하는 것이 붐이었단다. 그 숫자가 많다보니 서산보이·태안보이·당진보이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인천으로 유학 갔다는 쇠섬(태안군) 출신 안상수(전 인천시장)씨도 그중 하나란다.

 오늘은 변화가 많은 여정이었다. 20.8km의 코스를 14.5km만 걷겠다고 설계했으나 판단 착오로 거리는 16.8km로 늘어나버린다. 부랴부랴 다시 설계를 했고, 두 번의 코스 단축을 거친 끝에 14.77km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스펜서 존슨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발 빠르게 대처하는 스커리, 새로운 도전을 위해 떠나는 허, 변화를 두려워하는 헴을 통해 각각 변화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 우리부부가 겪었고 대처했던 상황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