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79코스(대산버스터미널 - 삼길포항)

 

여 행 일 : ‘25. 10. 25()

소 재 지 : 충남 서산시 대산읍 일원

여행코스 : 대산버스터미널롯데케미칼사택화곡1리 마을회관삼길산아라메길관광안내소(거리/시간 : 11.9km, 실제는 14.82km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남파랑길·서해랑길·평화의길)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09 : 40. 대산버스터미널(충남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

서해안고속도로 송악 IC에서 내려와 38번 국도(서산방면)를 타고 44km쯤 들어오면 대산읍에 이른다. 서해랑길(서산 79코스) 안내도는 대산버스터미널 옆에 세워져 있다.

 대산버스터미널에서 삼길포항까지 고즈넉한 마을길과 들길, 숲길을 걷는 11.9km의 여정. 그 끝에서 서해의 풍부한 해산물을 만난다. 김홍욱 묘역과 삼길포항이 주요 볼거리로 꼽힌다.

 09 : 41. 시내 쪽으로 50m쯤 들어오면 삼거리. 서해랑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충의로를 따라간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도반들과 함께 대산리 비석군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불망비가 있다고 해서이다.

 09 : 44. 서산 방면으로 150m쯤 걸으면 대산종합시장이 나온다.

 대산리비석군은 시장 맞은편 산비탈에 위치하고 있다.

 대산리비석군은 조선 후기 대산 지역에서 어사(御使)와 첨사(僉使) 등을 역임한 인물들, 근대의 면장 등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이중 김정희 선생의 불망비는 호패형으로, 1826(순조 26)에 건립됐다. 비의 전면 좌우측에는 충청우도 암행어사로 임명된 김정희가 대산 지방을 시찰할 때 베푼 선정이 4연시로 기록되어 있다.

 추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 유홍준 선생의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추사가 아닌 어사 김정희는 낯설기 짝이 없다. 1826년 김정희가 충청우도(충청남도와 얼추 비슷하다)를 다니면서 수령 59명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보고를 올렸다는 것이다. 이때 남포현감 성달영(成達榮)의 비리를 적발하고 파면하면서 품계까지 깎아버렸던 모양이다. 이에 주민들이 영방가렴(永防加斂), 즉 가렴주구가 더함을 영원히 막아주었다며 불망비(不忘碑)를 세웠단다. 참고로 보령시 남포읍성는 성달영의 영세불망비도 있다. 남포현 주민들이 세운 것으로 은덕을 영원토록 잊지 못한다는 뜻을 담았다. 물론 주민들을 들볶아 억지로 세우도록 했다.

 09 : 52. 시점(서산수협 대산지점)으로 되돌아와 본격적인 트레킹을 나선다. 충의로(대호방조제 방면)를 따라간다.

 이때 까딱산이 눈에 들어왔다. 대산읍의 중심에 놓인 산으로 까딱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산꼭대기까지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나지막하다. 하지만 톱스타 김주혁이 아버지인 배우 김무생과 함께 영면하고 있다니 영화마니아들에게는 높디높은 산이라 할 수 있겠다.

 09 : 56. ‘농협주유소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건너편에는 대산정형외과 버스정류장이 있다.

 09 : 57. 버스정류장 옆, 이정표(삼길포항 11.8km/ 대산버스터미널 0.4km)가 충의로(국도 29호선)를 잠시 벗어나란다. 도로변에 보행자 길이 따로 나있지 않다면서.

 잠시지만 국도 아래로 난 농로(대산4)를 따라간다. kakaomap 큰매남골로 적고 있는 들녘이다.

 큰매남골.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매남리 쌀바람이란 옛 얘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어느 해 모내기철에 서산 일대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이에 원님이 기우제를 지내기로 했는데, 그 와중에 매남리의 한 농민이 건조한 북서풍인 하늬바람(풍년을 암시)이 불자 쌀바람이 불어온다며 좋아했던 모양이다. 자신은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원님이 다른 동네 주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며 그 농부의 볼기를 쳤다나?

 10 : 02. 나지막한 구릉지를 넘자 이번에는 작은매남골이란다. 조금 전의 큰매남골과 함께 매남리를 구성하는 모양이다.

 10 : 04. 다시 충의로로 올라선다. ‘삼호아파트(틀목)’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이다.

 매산리(梅南里)’ 표지석. 대산리(大山里) 6개 행정 동리(洞里) 중 하나(4)로 옛 이름이 매산이었던 모양이다.

 10 : 08. 이정표(종점까지 10.7km)가 또 다시 충의로에서 내려가란다. 길은 내륙을 향해 깊숙이 파고든다.

 대산5 마을회관. 물고기가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다. 만선을 예상이라도 한 듯 어부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그물을 끌어올린다. 옛날, 물길이 막히기 전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다는 암시일 수도 있겠다.

 서해랑길은 이제 대산 들녘을 누비며 간다. 함께 하는 이들의 정겨운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기분 좋은 구간이다.

 붉은부리들로 들어섰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이 지나서인지 들녘은 이미 벼 베기를 끝냈다.

 왼쪽에는 몰니산(沒泥山, 170.7m)’이 있었다. ‘망일지맥 마룻금에 놓인 산으로 물혼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나 더. ‘대산리 대로리는 저 산을 경계로 나뉜다.

 갈대로 한가득인 각골 소류지(沼溜地)’나 야산 자락의 주택단지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했다. 돈 깨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듯 하나같이 멋들어지게 지어놓았다.

 10 : 28. 대산리에서 대로리로 넘어온 길은 수로 앞(이정표 : 종점까지 8.7km)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서 둑길을 타고 롯데케미칼사택으로 간다. 참고로 대로리(大路里)’는 말 그대로 큰길이라는 뜻이다. 마을 앞에 사람들이 많이 통행하는 한길이 있어서 마을의 명칭을 한길말이라 하다가 자가 탈락하면서 한길이 되었단다.

 대산저수지(물안지나 명지지로도 불린다)’에서 내려오는 수로. 이곳 붉은부리들이 넓어서인지 수로치고는 널찍한 편이다.

 지금도 대로리 앞을 지나가는 도로는 교통체증으로 유명하단다. 하루 평균 3만여 대의 차량이 출퇴근 시간에 집중된단다. 그러다보니 출퇴근 때 농로를 이용하는 차량이 많은 모양이다.

 물안3로 올라선 서해랑길은 롯데케미칼 사원아파트의 담벼락을 왼쪽에 끼고 에돌아간다.

 길은 자그마한 들녘을 가로지르며 이어진다. 구릉지치고는 제법 너른 들녘이 오른쪽으로 펼쳐진다. kakaomap은 이곳을 영자모골로 적고 있었다.

 이즈음 망일산(望日山, 302.1m)’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공군 레이더기지가 정상에 자리하고 있어 올라갈 수는 없지만 시민들이 산책코스로 많이 찾는다.

 10 : 38. ‘영자모골의 언덕을 넘어간다. 서해랑길은 바닷가 여행길이다. 그런데도 79코스는 본분을 잊고 마을길과 논길, 심지어는 산길까지 신나게 헤매며 돌아다닌다.

 잘 익은 감에서 가을의 풍요를 느낀다. 작은 감 안에 한 해의 태양과 노을이 층층이 담겼다. 볕과 바람, 비 어느 하나도 거부하지 않고 품어온 결과이다.

 고개를 넘으면 대로리의 또 다른 들녘이 펼쳐진다. 대로리는 산이 많은 편이다. 산과 산 사이에 크고 작은 들녘들이 들어서 있다.

 다음 구간(80코스)에서 우린 당진화력이라는 무척 큰 발전소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일까 고압송전탑이 유독 우람해 보인다. 345KV 선로가 아닐까 싶다.

 진행 방향에는 옥녀봉이 놓여있다. 길은 옥녀봉의 동쪽 산자락을 넘어간다. ‘지관들이 명당으로 꼽는 산이다. 그렇다고 산 전체가 명당은 아닌 듯 길흉(吉凶)이 함께 한 산이기도 하다.

 10 : 49  11 : 09. ‘김적 및 김홍욱 묘역에 이른다. 4기의 분묘와 신도비가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410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밖에도 후손들의 묘로 여겨지는 분묘가 대여섯 기 모셔져 있었다.

 최근에 세운 듯한 비석들.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 1602-1654)의 연보비와 시비 말고도 거대한 빗돌 두 개를 더 세워놓았다. 정자까지 지어져있어 걷기여행자들의 좋은 쉼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김홍욱의 시비. 1654, 김홍욱은 8년 전에 사사(賜死)된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의 신원을 상소했으나, 효종의 노여움을 사서 곤장을 맞아 죽었다. 속칭 강옥(姜獄)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왕위의 종통(宗統)에 관련된 민감한 사안으로 조정에서는 언급이 금기시 되던 시절이었다. 잘못을 깨달은 효종은 6년 만에 복관(復官)시키고 문정(文貞)이란 시호를 내린다. 학주 선생이 죽기 전 언론을 가지고 살인해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는가?’라고 한 말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초입은 신도비(神道碑) 차지다. 김홍욱의 장자 세진(世珍)이 덕원에 유배 중이던 우암을 방문하여 비명을 받아두었다가 1746년 박필주(朴弼周)가 묘지명을 완성하고 이재(李縡)가 신도비명 후기를 찬한 것을 1772 5세손 구주(龜住)가 세웠단다.

 김홍욱의 묘역. 부인인 동복오씨와 함께 모셔져 있다. 부친인 김적(金積, 1564-1646)의 묘역은 소나무에 살짝 가려져 있다. 참고로 김적은 김정희의 8대조이다. 추사의 가문은 10대조인 김연(金堧)이 서산 대교리, 속칭 한다리에 자리 한 이후 한다리 김문(金門)’으로 통했다. 여담 하나. 어느 지관은 김홍욱의 억울한 죽음을 아버지 김적의 묫자리에서 찾고 있었다. 대신 김홍욱의 묫자리는 제대로 잡았단다. 8명의 정승에다 왕비(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까지 배출한 것이 증거란다.

 11 : 09. 다시 길을 이어간다. 옥녀봉 능선을 넘은 길(대로화곡길) 먹수지 들녘으로 들어간다.

 길은 옥녀봉 자락과 먹수지 들녘을 양옆에 끼고 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퉁이를 돌아서자 화곡리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들녘 너머 중세 유럽의 성처럼 보이는 건물은 서산수골프&리조트일 것이다.

 누가 뭐래도 가을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들녘이 제멋이다. 고개 숙인 벼가 부른다고나 할까? 아니 누렇게 물든 들판이 부른다고 해야 맞겠다. 하지만 2주 만에 찾아온 서산의 들녘은 텅 비어버렸다.

 아니 벼가 남아있기는 했다. 쓰러져 있는 게 콤바인 작업이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11 : 21. 민가 대여섯 채가 들어선 작은 마을(‘먹수지 마을인 듯)을 지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들녘을 횡단해 버린다.

 도중에 큼지막한 수로를 건너기도 한다. 대호방조제가 만들어놓은 들녘이 그만큼 넓다는 얘기일 것이다.

 수로는 화곡저수지에서 시작된다. 매년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연꽃이 만개하여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11 : 31. 농로에서 도로, 그것도 2차선 도로로 바뀌는가 싶더니 화곡1에 이른다. 화곡리(花谷里)를 구성하는 3개 행정 동리 중 하나다.

 화곡1리 마을회관. 화곡리에는 평신진(平薪鎭)이 있었다고 한다. 1711(숙종 37)~1895(고종 32) 사이 충청도 북서부 해안을 수호하던 진으로 종3품의 첨사가 관할했었다. 1866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탄 Rona호가 이도면 영전리 조도 앞바다에 몰래 정박했을 때 평신첨사 김영준과 해미현감 김응집 등이 쫓아내기 했단다.

 그래선지 박윤묵(朴允默김완식(金完植) 첨사와 김윤옥(金胤鈺) 첨절제사의 공적을 적은 불망비가 세워져 있었다. 나머지 1개는 일본인 와다나베가 저수지를 만들고 바다를 막아 개척한 공을 기리는 빗돌이라는데 일부러인지는 몰라도 내팽개쳐지듯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11 : 35. 잠시지만 반곡길을 따라간다. 그러다 반곡교차로 직전(이정표 : 종점까지 5.2km)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반곡교차로를 건너 화곡로로 갈 수도 있다. 횡단보도에 교통섬까지 만들어져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형 차량들이 많이 다니는 6차선 산업도로라서인지 서해랑길은 길을 돌려놓았다. 맞다. 걷기 여행은 안전이 최우선 아니겠는가.

 잠시 후, 이번에는 충의로(38번 국도) 아래로 나있는 굴다리를 건넌다.

 굴다리를 빠져나오니 도로 확·포장으로 여겨지는 공사가 한창이다.

 11 : 41. 잠시 후 화곡로로 올라선다. 38번 국도(반곡교차로) 대산항을 연결하는 4차선 도로이다. 이후부터는 대산항 방면의 화곡로를 따라간다.

 화곡2란다. 현대오일뱅크 사원아파트가 위치하고 있어 화곡리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2에서 살아간다.

 11 : 52. ‘대산항터널 조금 못 미치는 지점. 이정표가 종점인 삼길포항까지 4km밖에 남지 않았다며 삼길산쪽으로 난 샛길로 들어가란다.

 100m 남짓 들어가자 삼길산의 숲속에 들어앉은 화곡어린이집이 반긴다. 탐방로는 어린이집을 오른쪽에 끼고 에돌아간다.

 서해랑길은 이제 삼길산 임도를 따라간다. ‘서산 아라메길’ 3코스(황금산에서 삼길포항까지 18km)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구간은 삼길나루길로 불리기도 한다. 삼길포와 삼길산을 지날 때 인근 항구에 많은 배가 보이는 것에서 착안한 이름이란다.

 한 쌍의 목장승이 서산 아라메길을 걷고 있음을 알려준다. 삼길나루길의 삼길산길과 벚꽃길을 걷게 된단다. 참고로 서산아라메길 중 하나인 삼길나루길은 삼길산 주위에 조성된 트레킹 코스이다. 삼길포관광안내소를 중심으로 순환하는 등산로(3km)’와 삼길포관광안내소와 화곡어린이집을 잇는 벚꽃길(4.2km)’로 이루어져 있다.

 코로나19(COVID-19)의 확산으로 시작된 언택드 걷기여행이 아직도 시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름처럼 임도는 벚나무로 치장되어 있었다. 어른 허리통만한 벚나무들이 길 양옆에 도열해 있다.

 소문난 걷기 길답게 임도는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여행자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벤치를 놓아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하지만 삼길산의 높이가 166m에 불과한데다, 임도가 105m까지만 올라가서인지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걷기 여행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임도를 걷다보면 너덜겅지대 두어 곳을 지나게 되는데 돌이 굴러 내려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가을색이 완연한 숲 속 임도를 걸으며 동쪽으로 향한다. 늦가을이어선지 햇살이 작렬하는데도 덥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아니 울창한 숲이 그런 생각조차 찾아오지 못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조망이 별로라는 단점도 있다. 가뭄에 콩 나듯이 트이는 조망도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나타났다 사라져버린다.

 12 : 25. 길이 둘로 나뉜다. 오른쪽은 삼길포관광안내소에서 출발, 삼길산의 산허리를 한 바퀴 돌아오는 삼길나루길 등산로가 아닐까 싶다.

 12 : 31.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널따란 광장이 나타난다. ‘삼길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뉘는 지점인데, 주요 포인트이어선지 화장실까지 만들어놓았다.

 200m만 올라가면 정상에 있는 봉화대를 만날 수 있단다. 조망의 명소로 알려지는 곳이다.

 삼길산은 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해발 166m에 불과하니 동네 뒷동산 정도의 높이다. 하지만 산은 역시 산. 올라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오르막 전체를 계단, 그것도 단고(段高)가 높은 계단을 놓아야만 했을 정도로 가팔랐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200m 밖에 안 되는 구간에 저런 쉼터까지 만들어놓았겠는가.

 12 : 39. 땀을 한바가지나 흘린 뒤에야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다.

 정상에는 봉화대(烽火臺)’가 있었다. 삼길산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정상에서 서면 서해바다와 대호만 일대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래서 옛날부터 봉화대가 있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터만 남아있던 것을 서산시가 전망대를 설치하면서 봉화대까지 복원해 놓았다.

 이제는 조망을 즐겨볼 차례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호지(大湖)‘. 대호방조제가 만들어놓은 내수면이다. 그 오른쪽에는 대산읍의 진산인 망일봉이 있다. 삼길산은 서해바다가 대호만으로 꺾여 들어가는 그 모서리에 우뚝 솟아 있다. 덕분에 서해바다는 물론이고 서산·당진의 내륙까지 두루두루 눈에 담을 수 있다.

 대호만 건너는 도비도항이다. 포구 뒤로 길게 뻗어나가는 대호2방조제 너머에는 당진화력발전소가 있다.

 서해바다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다도해의 풍광이 펼쳐진다.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비경도, 분도, 우무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국화도와 입파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수많은 섬들이 겹쳐 모이는 풍경은 영락없는 한려수도였다.

 왼쪽에는 대산항 대산산업단지가 놓여있다.

 앱이 올라왔던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란다. 삼길포항으로 곧장 내려갈 수 있단다. 하지만 필자는 되돌아가기로 했다. 집사람이 서해랑길만 걷겠다며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봉화대는 서해랑길에서 살짝 비켜나 있다.

 12 : 48. 공터로 되돌아와 서해랑길을 이어간다. 임도는 이제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간다.

 12 : 54. 그렇게 얼마간 걷자 전망대가 반긴다. 서해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간 지점에 전망 데크를 만들어놓았다.

 전망대는 서산시청에서 공들여 가꾼 흔적이 역력했다. 각종 시설물은 물론이고 서산  공모전에 입상한 작품까지 시판으로 만들어 게시했다.

 서산시에서 설치한 안내판들은 이곳을 삼길산 전망대로 적고 있었다. 반면에 정상에 있던 전망대는 봉화대로 단순화시켰다. 헷갈리기 딱 좋은 작명이다. 정상을 삼길산 전망대’, 대신 이곳은 벚꽃길 전망대로 하면 어땠을까 싶다.

 조망의 명소답게 조망도까지 설치해 놓았다. 실물과 대조해가며 꼼꼼히 살펴보라는 모양이다. 하지만 조망도 아래는 삼길포항에 대한 자랑으로 가득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럭회 먹고 갈래?’

 난간에 서자 서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은 덤이다. 서산시에서 내 마음을 바다 줄래?’로 표현해 놓은 풍경이다.

 ·소조도와 도비도항. 당진화력발전소도 보이나 아까 봉화대에서 바라보던 것만은 못하다. 하긴 높은 것만큼 시야가 넓어지는 게 아니겠는가.

 대산항과 대산산업단지의 풍경도 봉화대만은 못했다.

 12 : 59. 조망을 즐기다 다시 길을 나선다. 내려가는 길에는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차량으로 올라오는 이들도 눈에 띈다. ‘삼길나루길이 입소문을 탔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13 : 07. 봉화대에서 내려오는 등산로. 안내판이 조금 전 들른 전망대의 이름이 삼길산이었음을 알려준다.

 임도가 가파르게 떨어진다. 종점이 가까워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13 : 18. 삼길포항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서해랑길 안내도(당진 80코스)는 삼길포수산시장 앞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오늘은 13.65km 3시간 30분에 걸었다. 삼길산 정상까지 올라갔던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은 셈이다.

 삼길포는 서산의 특산물인 우럭이 특히 유명하다. 10월에는 우럭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그래선지 수산시장 앞에 우럭 조형물까지 세워놓았다.

 삼길포항에서는 해상관광유람선을 타고 대산석유화학단지나 대난지도, 풍도 등 주변의 크고 작은 섬들을 둘러볼 수 있다. 또한 낚싯배를 타고 짜릿한 손맛을 느껴볼 수도 있다.

 바다에는 작은 고깃배들이 즐비했다. 그게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며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하긴 저런 풍경이 있었기에 서산9으로까지 꼽혔을 것이다. ‘삼길나루길이란 이름도 저런 풍경에서 착안했을 것이고 말이다.

 배 위에서 회를 맛볼 수도 있다. ‘회 뜨는 선상이라는 정박 구역으로 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정박한 배 위에 올라 횟감을 고르면 즉석에서 회를 떠주고 매운탕 등을 끓여준다.

 바닷가에는 조각공원이 조성됐다.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하도 많아 편하게 쉴만한 공간은 없었다. 한 인터넷 언론에서 내비게이션의 통계를 살펴본 모양이다. 20대부터 60대까지 티맵 모빌리티 내비게이션을 활용해 검색한 건수의 합계를 통해 관광지의 선호를 분석했다나? 그 결과 이곳 삼길포가 충청남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더란다.

 삼길포를 사랑하라?’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 받는 삼길포는 세 개의 ()’이 모인 포구라는 뜻이다. 풍요와 길함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민들이 길한 기운이 세 갈래로 모인다라는 뜻을 담아 삼길포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 부근에 있던 삼정리(三井里), 길산리(吉山里), 포구리(浦口里)에서 앞 글자를 따왔다는 설도 있다. 세 마을이 함께 터전을 이룬 공동의 포구라는 의미란다.

 유명 관광지답게 포구는 번화했다. 소문난 낚시터이니 낚시도구를 파는 잡화점은 기본, 횟집과 식당도 줄줄이 늘어서 있다. 삼길포를 대표하는 우럭회 등 다양한 수산물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날것을 못 먹는 우리 부부는 소 내장 전골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 가마쿠라시대의 승려 잇펜 쇼닌(一遍上人)‘ 인생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 남과 함께 산다 해도 결국은 혼자. 죽음을 같이 하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난 집사람과 늘 함께 있다가, 죽을 때도 함께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