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77코스(팔봉초등학교  도성3리 마을회관)

 

여 행 일 : ‘25. 9. 27()

소 재 지 : 충남 서산시 팔봉면 및 지곡면 일원

여행코스 : 팔봉초등학교흑석소류지검은굿지산서산창작예술촌도성3리마을회관(거리/시간 : 12.3km, 실제는 12.51km 3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남파랑길·서해랑길·평화의길)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10 : 10. 들머리는 팔봉초등학교(충남 서산시 팔봉면 양길리)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에서 내려와 32번 국도로 서산까지 온다. ‘일람교차로에서 32번 국도(대산방면 1km), ‘일람사거리에서 634번 지방도(태안방면 8km), ‘팔봉교회 앞에서 오른쪽으로 0.3km쯤 들어오면 팔봉초등학교에 이른다. 서해랑길(서산 77코스) 안내도는 초등학교 축대 아래 버스정류장에 세워져 있다.

 구도항에서 팔봉초등학교까지 가로림만과 어깨를 맞댄 들녘들을 따라가는 12.3km 여정. 바닷가와 간척지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코스로, ‘두루누비는 서산창작예술촌과 중리어촌체험마을을 주요 볼거리로 꼽는다. 하지만 창작예술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어촌체험마을도 갯벌체험 말고는 활기를 잃고 있었다.

 10 : 10. 문 닫은 지 이미 오래인 학교 앞 가게를 오른쪽에 끼고 들어가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길은 민가 두어 채를 지나 양길리 들녘(마른들)으로 파고든다.

 마른들로 불리는 양길리(陽吉里) 들녘. 팔봉산과 연화산에서 발원한 작은 물길들이 양길리를 품어 주며 방길천을 만든 다음, 북서쪽으로 흘러 가로림만에 유입한다. 이 방길천을 가운데 두고 좁게 형성된 평지가 북서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10 : 16. ‘양길교를 건너 대황리로 들어간다. 다리 아래는 방길천’, 양길리와 대황리 들녘을 공평하게 나누며 흘러간다.

 이때 팔봉산(八峰山, 362m)이 눈에 들어온다. 낮지만 산이 뿜어내는 기세가 실로 대단하다. 무수한 기암괴석으로 치장돼 서해 가로림만 앞에서 하늘을 뚫을 듯이 불끈 솟아 있다. 일부 호사가들이 한국의 마테호른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중국 위왕의 세숫물에 8개의 봉우리가 비쳐 그 산세가 중국에까지 떨쳤다는 고흥의 팔영산에 뒤지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다. 홍천의 소금강이라는 팔봉산은 말할 것조차 없고.

 서해랑길은 이제 갈대가 무성한 방길천 둑길을 따른다. 블로거 산들애()길 문화여행은 서산의 가볼만한 곳을 소개하면서 이 하천을 방천(防川)’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옛날 팔봉산에서 벌목한 나무를 실어 가로림만으로 나르던 뱃길이었다고도 했다. 이 부근 어디엔가는 당시 산막에서 일하던 벌목꾼들이 드나들며 목을 축이던 방천주막(防川酒幕)도 있었단다. 문득 길가에 퍼질러 앉아 막걸리 한잔 걸쭉하게 들이 키고 싶어진다. 배낭 속에서 꺼내기만 하면 되는데...

 하천은 가로림만으로 흘러들고 길은 자연스레 대황리 방조제를 따라간다. ! 방천의 활황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벌말(또는 뱅길)’이라는 5일장까지 만들었다고 했다. 조선시대 멀리서 찾아온 보부상들이 등짐·봇짐을 풀어헤쳤는데, 팔봉면뿐만 아니라 인근 면에서까지 찾아올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였단다. 1927년 면소재지도 아닌 양길리에 팔봉초등학교가 들어섰다면 대충 이해가 갈 것이다.

 왼쪽은 가로림만’. 탁 트인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간조 때라선지 검붉은 갯벌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반대편은 수로. 그 너머로는 대황리 간척농지가 드넓게 펼쳐진다.

 10 : 27. 방조제 끄트머리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뉘고 있었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왼쪽(바닷가)은 지름길이라고 보면 되겠다. 두 길은 이따가 가느실(대황2) 마을회관 부근에서 다시 만난다.

 모범적인 이정표. 종점(도성3리 마을회관, 11.1km)과 시점(팔봉초등학교, 1.1km)은 기본. 다음에 만나게 되는 주요 기점(중왕저수지, 5.2km)까지 담았다. 하단에 77코스 간략도를 만들고 현재 위치까지 적어놓았다.

 길은 이제 고학이들(대황리 들녘)‘로 들어간다. 간척농지를 살짝 비켜가며 길이 나있다.

 수로를 겸한 배수지(配水池) 너머로 팔봉산이 우뚝하다. 높이 362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서해안의 저지대에 위치하여 상대적으로는 우뚝 솟은 것처럼 보인다.

 10 : 30. 이동통신 중계기 아래(이정표 : 종점까지 10.8km)서 간척농지와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는 마을이 들어서있는 언덕으로 올라간다. 이처럼 77코스는 높고 낮은 언덕을 수시로 넘나든다.

 길가는 온통 양배추 밭 천지다. 서산이 자랑하는 특산품 중 하나로 미국은 물론이고 대만과 일본에도 수출할 정도란다. 맛이 뛰어난데다 아삭거리는 식감이 좋고 신선도가 오래 유지된다고 알려져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단다.

 10 : 36. 대황2 가느실 마을’. kakaomap 학림경로당이 있다고 표시된 지점이다. 하지만 건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채소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맞은편에 건물을 새로 지어 옮겨갔단다. 참고로 가느실의 은 골짜기()를 가리키는 옛말이다. 요즘에는 골짜기를 이라고 부르지만, 옛날에는 이라 불렀다.

 서산시 소식 알림판이 이곳에 마을회관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참고로 연화산을 뒷동산 삼은 대황리(大黃里)는 서해의 가로림만이 내륙 깊숙이 만입된 모양새이다. 산지와 바다가 만나는 낮은 구릉과 저지대에 마을과 경지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으뜸 마을인 황골(황곡)을 비롯 고학이(구학이·학림동), 벌말(벌뜸·평촌), 가장골, 당산, 작은말 등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언덕 몬댕이(꼭대기의 방언)’까지는 조금 더 올라가야 한다.

 몬댕이(이정표 : 종점까지 10.2km)에서 길이 나뉜다. 곧장 직진하면 바닷가. 아까 방조제 끝에서 헤어졌던 샛길과 만난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중왕저수지(4.3km 전방)를 향해 간다.

 길은 이제 당산을 향해 간다. 왼쪽은 맹긴장골’, 들녘까지 내려가지는 않고 당산으로 올라간다.

 맹긴장골 풍경. 잘 지어진 집들이 구릉지 곳곳에 들어앉았다. 농촌이라기보다는 영락없는 휴양촌 풍경이다.

 10 : 42. 첫 번째 민가(위 두 번째 사진에서) , 이정표(종점까지 10.0km)가 지시하는 대로 당산으로 올라간다. 이어서 자락 길을 따라 당산을 에돌아간다.

 길은 당산 모퉁이를 돌아 흑석리로 들어간다. 참고로 흑석리(黑石里)’는 마을 앞 들녘에 있던 볏섬 크기 정도의 커다란 검은 바위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하지만 농지정리 작업과정에서 없어져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단다.

 흑석리방조제와 간척농지. 흑석2리의 메인 길이 흑석벗터길인 것으로 보아 저 방조제 근처에 염전이 몰려있었던 모양이다. 자염(煮鹽)을 끓이기 위한 가마터를 벗터라고 부르니 말이다.

 ! 그래서는 아니 되옵니다. 농작물 피해가 예상되는데도 둘레길 순례자들에게 길을 내준 주민들에게 감사는 못할망정 주인 허락도 없이 과일을 따먹어서야 되겠는가.

 악동뮤지션 이찬혁의 첫 번째 소설 물 만난 물고기를 떠올리게 만든 풍경. 무릇 배는 물가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방조제에서 1.5km 이상이나 떨어진 이곳에서 쉬고 있는 저 배는 정체가 뭘까?

 10 : 50. 탐방로는 이제 흑석마을을 향해 간다. 이때 두루누비(코리아둘레길 앱)가 두 번째 기점으로 삼고 있는 흑석소류지를 스치듯 지나간다. 소류지(沼溜地)란 하천이 잘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서 경작지에 공급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평지를 파고 주위에 둑을 쌓아 물을 담아 놓은 규모가 작은 저수시설을 말한다.

 가로림만으로 흘러드는 물길이 늪을 이루는 흑석소류지는 물 대신 억새들만 무성했다.

 집들이 구릉지 곳곳에 펼쳐놓듯 들어섰다. 가로림만 주변 마을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특징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아니라 능선자락이나 들녘, 산골짜기에 듬성듬성 들어서 있는 것이다. 그래선지 마을회관(흑석2)도 들녘 한가운데 외따로 떨어져 있었다.

 탐방로는 마을을 횡단한다. 하지만 다른 지역처럼 골목길을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집들이 듬성듬성 들어서있어 그 사이사이를 스치듯 지나가는 모양새이다.

 흑석1리 쪽 풍경. 구릉지라선지 마을 주변이 대부분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팔봉산 감자가 특산물이라고 했다. 포슬포슬한 식감과 담백한 맛이 특징으로, 껍질이 얇고 부드러워 전국적인 인기를 얻고 있단다.

 11 : 03. ‘망뫼산 줄기인 모래기재로 오르는 길. 주민들의 노력으로 꽃길로 단장되어 있었다. 배롱나무와 무궁화가 꽃망울을 활짝 열고 반갑다며 길손을 맞는다. 그 옆에서는 일년생인 백일홍과 코스모스가 배시시 웃고 있다.

 길가의 염소 우리. 천고마비의 계절답게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모래기재이다. 추분(秋分)이 지났건만 햇빛은 아직도 따갑다. 모처럼 만난 숲길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 맞다. 앞서가던 몽중루 작가님이 밤을 줍느라 여념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석암 작가님은 제갈 길만 가고.

 11 : 12. 고개를 넘으면 아름다운 수양관이 반긴다. 조립식 본 건물은 보잘 것 없지만 흑갈색 가지를 휘휘 늘어뜨린 고사목과 동화에서나 볼 법한 예쁜 집들로 치장해 찾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교회 앞 모퉁이를 돌면 반월골이다. 흑석벗터길과 흑석중앙길로 이어오던 길도 이곳에서 흑석반월길로 바뀐다.

 11 : 22. 반월골로 내려온 길은 가장자리를 따라 간척지로 들어간다. 그러다 간척지를 코앞에 둔 지점(이정표 : 종점까지 7.0km)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함께 걸어온 반월골을 횡단하는 모양새이다.

 중왕저수지로 가는 길. 태양광발전소가 단지를 이루며 대규모로 들어서 있었다.

 반월골의 끄트머리에서 길이 연화뒤시리길로 바뀌고 있었다. 팔봉면 산하를 숨 가쁘게 달려온 서해랑길이 지곡면(연화리)’으로 바톤을 넘겨주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즈음 중왕리 들녘 너머에 위치한 왕산포구 안섬을 조망해 볼 수 있다. ! 왕산은 아픔의 땅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인 1914 임금의 산이란 의미인 왕산(王山)이란 이름을 빼앗고, 천황의 땅이라는 의미를 각인시키기 위해 을 넣어 왕산(旺山)’으로 바꾸어버렸단다.

 11 : 32. 그렇게 10분쯤 걸었을까 이정표(종점까지 6.4km)가 중왕리 간척농지를 횡단하란다. 그 중심에 있는 중왕저수지까지 0.5km가 남았다는 것도 알려준다.

 1978년에 쌓은 중왕방조제(中旺防潮堤)’는 가로림만의 대표적인 방조제라고 했다. 지곡면 중왕리와 팔봉면 흑석리를 잇는데, 길이 1,270m에 유역면적이 1,626헥타르(492만평)나 된단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저 너른 들녘이 그 증거이다.

 오른쪽, 연화리(蓮花里) 들녘에서는 추수가 시작됐다. 콤바인이 누런 들녘을 쉼 없이 누비고 다닌다.

 11 : 40. ‘중왕저수지(이정표 : 종점까지 5.9km)’를 건넌다. 자동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다리가 놓여 있으나 이름표는 붙어있지 않았다. 하나 더. 중왕저수지를 지나면서 이정표의 주요 기점(다음에 만나게 될)이 서산창작예술촌(1.5km)로 바뀌었다.

 중왕저수지. 중왕방조제의 축조를 통해 만들어진 저수지로 방조제 안에 조성된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해준다. ! 무단으로 낚시를 할 경우 고발하겠다는 서슬 시퍼런 경고판도 보인다. 내수면 어장(또는 양식장)으로 허가를 받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중왕저수지는 연화리 수로와 중왕리 수로를 양옆에 끼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즈음 두루누비에서 세 번째 기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검은굿지산이 조망된다.

 중왕리 수로 옆길을 따라 북쪽(가로림만)으로 간다. ! 앱이 길이 닷개길로 바뀌었음을 알려준다. 이 근처 어딘가에 닷개포구가 있나보다. 웅진백제시대 대중국 관문이었다는 포구 말이다.

 11 : 44. 중왕배수장(바로 위 사진의 검은 건물) 앞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서 검은굿지산을 오른쪽에 끼고 간다. 이정표(종점까지 5.7km)가 다음 기점인 창작예술촌까지 1.3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중왕리로 넘어온 길은 이제 반탑골을 향해 간다.

 11 56. 10분 남짓 더 걷다 갈림길(이정표 : 종점까지 5.4km)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왕산리 지역도 역시 집들이 띄엄띄엄 들어서있었다. 탐방로는 그 사이사이를 헤집으며 망미산(望美山, 127.5m) 자락으로 올라간다.

 그나마 반탑골은 마을다운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예닐곱 가구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고운 풍경에 반해 10분 남짓 푹 쉬다 간 곳이기도 하다.

 정겨울 수밖에 없는 조형물. 주민들이 만들어놓은 것 같은데 걷기 여행자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자연부락의 이름들을 적어 넣었다.

 12 : 16. 중왕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 그 초입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오른쪽은 큰말골인 듯. 참고로 중왕리에는 큰말·북말·왕산·중리·마둥·어름뜰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웃 태안군과는 달리 동네 이름을 추정할 수 있는 표식이 일절 없어 어디를 이르는지는 알 수 없었다.

 12 : 18. 느닷없이 길이 산속으로 들어간다. 초입의 이정표(종점까지 4.9km) 서산창작예술촌에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12 : 20. ‘서산창작예술촌이란다. 하지만 빈터에 웃자란 잡초와 칡넝쿨만 무성할 뿐이다. ‘서산창작예술촌은 폐교된 부성초등학교 중왕분교를 리모델링해 2011 안견창작스튜디오로 문을 열었다. 2015 서산창작예술촌으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해왔으나 건물이 낡아 2023 1월 폐쇄하면서 건물도 철거해 버렸단다.

 좁은 임도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간다. 이어서 망미산 능선을 넘는다.

 산등성이에서 만난 꽃무릇’. 잎과 꽃을 동시에 볼 수 없다는 점은 상사화와 같다. 하지만 서로를 그리워하는 상사화와는 달리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조금은 무거운 느낌의 꽃말을 갖고 있다.

 12 : 25. 고갯길 끝에서 왕산이로를 만났다. 이정표(종점까지 4.6km)가 왼쪽 0.8km 지점에 있는 중리어촌체험마을로 가라고 알려준다.

 잠시지만 2차선 도로인 왕산이로를 따라간다. 인도가 따로 없으니 안전은 걷기 여행자들의 몫이다.

 이즈음 어름들골이 내려다보인다. 검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가로림만에는 솔섬이 떠있다.

 12 : 29. ‘큰어름들 삼거리(이정표 : 종점까지 4.4km)’. 메인 도로인 왕산이로 솔모루고개를 넘어 왕산포구로 간다. 반면에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갈려나가는 어름들2을 따라 중리포구로 내려간다.

 가로림만 제일의 특산품은 감태가 맞는 모양이다. 맞다. 감태는 충남 서산과 전남 함평 등 서해안의 청정 갯벌에서 자란다. 100% 자연산이다. 게다가 추운 겨울(12~3)에만, 그것도 손으로 채취해야 한다. 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에는 한류 열풍으로 한국 전통식재료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감태도 글로벌 미식시장에서 새로운 고급 식재료로 떠오르는 중이란다.

 길은 이제 중리포구를 향해 간다.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12 : 40. 중리 어촌체험마을에 이른다. 가로림만의 청정하고 드넓은 갯벌을 품고 있는 중리마을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체험은 바지락 캐기’, 간조 시각에 맞춰서 체험객들에게 갯벌을 개방하는 방식이다. 감태 주생산지답게 감태 뜨기나 감태초콜릿 만들기 같은 체험도 해볼 수 있다. 마을을 돌아볼 수 있는 깡통열차나 전기차는 보너스라 하겠다.

 가시파래(우리가 알고 있는 감태는 비표준어이다) 주생산지답게 가공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이를 이용한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단다. 가시파래 요리를 파는 식당도 눈에 띈다. 하지만 바지락 캐기 체험과 관련된 시설 말고는 하나같이 문이 닫혀 있었다.

 ! 바닷가에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있으니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가로림만의 특산물 중 하나인 낙지를 형상화한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는가 하면, 파고라와 벤치를 설치해 쉼터도 겸하도록 했다.

 낙지는 어디서 낚지? 서산 중왕리에서 낙지!’ 맞다. 이곳 서산은 전남의 무안과 함께 전국 최대의 낙지 산지로 알려진다. ‘박속낙지탕’, ‘밀국낙지탕 등 낙지를 넣어 만든 음식들이 지역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꼽히는 이유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가로림만이 드넓게 펼쳐진다. 검붉은 뱃살을 통째로 드러내는 갯벌에 돼지를 닮았다는 저도(猪島)’가 놓여있고, 그 앞의 솔섬이 어미 쳐다보듯 돼지섬을 바라본다.

 왼쪽에는 중리포구가 놓여있다. 데크 길은 중리포구에서 끊기지만 바닷가를 따라 조금 더 가면 왕산포구도 만날 수 있다. 하나 더. 왕산포구 근처에는 대중국 관문이었던 닷개포가 있었다고 했다. 백제 웅진·사비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 중국을 오가는 사신과 무역을 하던 배들이 드나들던 포구였단다. 그런 교류가 있었기에 이곳 서산지역에서 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칠지도같은 희대의 문화재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 구간은 서산 아라메길과 겹치는 모양이다. ‘아라메길은 구불구불한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매력적이다. 그중에서도 이곳 중리어촌체험마을은 자녀를 동반한 가족단위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단다.

 12 : 51. 탐방로는 오른쪽 해안을 따라간다. 300m 남짓한 수상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깔끔하게 목재 덱을 깔아 걷기에도 편한데,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넓은 바다와 갯벌을 독차지하는 기분으로 바다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그런 여유로움이 상상력까지 불러온 모양이다. 갯벌에 놓인 커다란 바위에서 장수바위 전설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마을에서 아기장수가 태어났다. 주민들은 아기장수로 인해 마을이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해 죽이려 했다. 이른 눈치 챈 아기는 마을에서 가까운 섬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집요하게 추적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바위로 변하였다.

 12 : 57. 데크 길 다음은 해안길이다. 방조제 둑 위로 어름들1이 나있다.

 돼지섬과 솔섬이 아까보다 더 가까이 다가와 있다. 그 너머에는 고파도(팔봉면)’. 그리고 오른쪽에는 분점도(지곡면), ‘웅도(대산읍)’가 배경이 되어준다.

 오른쪽은 농경지가 대부분이다. 아니 대하양식장도 눈에 띈다.

 방조제로 인해 바다에서 멀찍이 물러난 도성리에는 별도의 포구가 없는 모양이다. 작은 고깃배 몇 척이 갯벌에 드러누워 있다.

 갯벌에서는 칠면초가 나름의 존재감을 뽐낸다. 염생 식물은 황량한 갯벌 위를 수놓는 미적 가치뿐만 아니라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다른 생물의 서식지나 먹이가 되어주는가 하면, 인간에게는 식재료 또는 약재로 가치를 놓인다.

 13 : 09. ‘도성3리 방조제 초입에서 벌담들로 내려선다. 이정표(도성3리 마을회관 1.4km/ 팔봉초등학교 10.8km)가 트레킹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서해랑길은 이제 망미산길을 따라간다. 왼쪽은 벌담들’, 이름처럼 망미산 자락을 오른편에 끼고 이어진다.

 사이프러스인줄만 알았다. 유럽여행 때 눈물 한 방울 떨어뜨려야 했을 정도로 감동했던 풍경. 즉 황금빛으로 물든 밀밭과 대비되는 짙은 녹색의 사이프러스가 뇌리에 짙게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사람이 블루애로우(Blue Arrow)’라고 알려준다. 푸른 화살?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찰떡궁합으로 잘도 붙여 놓았다. 그나저나 이름처럼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오르는 은청색의 자태는 영락없는 사이프러스였다.

 13 : 20. 이번에는 벌담들을 횡단해버린다.

 13 : 30. ‘도성3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도성리(道成里)는 구릉성 산지와 곡간지로 이루어졌다. 그 구릉성 산지에 철광산이 있었고, 1970년대 초까지 운영되었을 정도로 사철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덕분에 쇠팽이마을이란 이름을 얻었고, 마을의 단련공들은 채굴한 쇠를 다루는 일을 했단다.

 서해랑길 안내도(서산 78코스)는 마을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오늘은 12.51km 3시간 10분에 걸었다. 시간당 4km를 걸었으니 조금 더디게 걸은 셈이다. 서너 개의 고갯마루를 오르내리는 게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마을회관 마당에 칠지도제작야철지기념비(七支刀製作冶鐵址紀念碑)’가 세워져 있었다. 철이 많이 생산되던 이곳 도성리에서 그 유명한 칠지도(七支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칠지도는 일본 이소노카미 신궁에 전해지는 백제산 철검이다. 특이한 모양으로 뻗은 잔가지가 특징이고 길이는 74.8cm이다. 도신에 한반도 금관 문화의 금상감 기법으로 황금 문자 61자를 수놓은, 당대 최고의 금속공예 기술이 들어간 보검이다. 인간을 해치는 칼이 아닌 제사장이 사용하는 신물로, 한 나라의 화복을 다스리는 군주의 통치권을 뜻한다.

 맞은편 담벼락에는 칠지도의 제작 및 일본에 하사하게 된 배경을 만화로 그려 넣었다. 일본 학계 일각에선 일본서기를 주된 근거로 백제가 헌상했다고 주장하지만, 칠지도의 명문에 백제가 야마토 정권에 하사했다고 적혔기에 한국 학계에선 글귀 그대로 백제가 하사했다고 여긴다. <(전면) 태화 4  16일 병오 한낮에, 백번이나 제련한 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온갖 병해를 물리칠 수 있으리라. 공손한 후왕에게 주기 알맞다. ○○○○가 만들었다. (후면) 선세 이래 이런 칼은 없었다. 백제왕이 세세토록 특별히(각별히) 성음을 내었기에 왜왕을 위하여 훌륭하게 만들었다. 후세에 전하여 보이도록 하라>

 집사람은 내게 아내이자 친구이다. 힘들 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고, 내 말을 편견 없이 끝까지 들어주고, 외롭고 쓸쓸할 때 나의 허전함을 채워주고, 내가 잘못할 땐 뼈아픈 충고도 가리지 않고, 늘 따뜻한 눈길로 내 곁에 있어 주는 집사람이 늘 곁에 있으니 나는 분명 성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