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74코스(누리재 버스정류장 - 청산리나루터)
여 행 일 : ‘25. 8. 23(토)
소 재 지 : 충남 태안군 이원면 및 원북면 일원
여행코스 : 누리재 버스정류장→논골→노인봉→국사봉→모세골→당산3리→마봉산→새섬리조트→청산리나루터(거리/시간 : 16.2km, 실제는 14.79km를 3시간 5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남파랑길·서해랑길·평화의길)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 10 : 05. 들머리는 ‘누리재’(충남 태안군 이원면 내리)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에서 내려와 32번 국도로 ‘태안’까지 온다. ‘두야교차로’에서 38번 국도(이원방면)를 타고 20km쯤 올라오면 누리재에 이르게 된다. 서해랑길(태안 74코스) 안내도는 버스정류장 옆 삼거리에 세워져 있다. 참고로 이곳 ‘내리’는 ‘좌바다우바다, 아나바다’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왼쪽도 바다, 오른쪽도 바다, 아! 나의 고향 바다’라는 뜻이란다. 서해에서 가로림만까지 걸어서 10분이 채 안되어서라고 한다.

▼ 누리재에서 청산리나루터까지 가로림만의 서쪽 해안을 따라 내려오는 16.2km의 여정. 높지는 않으나 노인봉, 국사봉, 마봉산 등 산허리를 3번이나 오르내리는 탓에 어려운 코스로 꼽힌다. 대신 높은 곳에서 가로림만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 10 : 12. 실제 출발지는 재빼기버스정류장(첨부된 지도의 ‘당산4리 회관’). 집사람의 체력을 핑계 삼아 코스를 2km쯤 줄이기로 했다. 난이도만 해도 최상으로 꼽히는 74코스인데, 거기다 34도가 넘는 폭염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골(관3리)’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하려고 했는데 산악회 차량이 1km쯤 지나쳐버린 곳에 우릴 내려놓아버렸다.

▼ 어쩌겠는가. 별수 없이 ‘사관로(사창리와 관리를 잇는다)’를 따라 논골(북서쪽)로 되돌아간다. 이석암 작가님과 또 다른 도반 두 분이 함께 했다. 반면에 몽중루 작가님은 이 더위에 산길은 질색이라며 도로를 따라가셨다.

▼ 오른쪽, 가로림만에는 ‘고파도(古波島)’가 놓여있다. 태안에 더 가깝지만 서산시(팔봉면)에 소속된 섬이다. 여객선도 태안이 아닌 북쪽으로 15km나 떨어진 서산 ‘구도항’에서 들어간다. 서해안으로 진입하는 왜적을 상륙하기 전에 바다에서 막기 위해 세운 진성(鎭城)이 있던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 도로변 논두렁, 은빛 억새가 가을빛을 받아 화려한 춤을 춘다. 하지만 화사한 외모와는 달리 찬밥 신세의 대명사이다. 같은 벼과 식물이지만 귀하신 몸 벼와는 달리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스스로의 강인한 생명력만으로 살아가야 한다.

▼ 잠시 후 ‘오세골(당산4리)’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정류장 표지판에 옛 지명이 적혀있었다. 서해랑길을 걸어오면서 충남지역은 옛 지명을 잃어버린 줄 알았다. 자연부락의 이름을 세긴 빗돌을 마을 입구에 새워놓던 경상도나 전라도와는 달리 그 어디서도 옛 지명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곳 태안지역에서 그런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으니 이 아니 반가울 손가.

▼ 10 : 24. ‘논골(관3리)’ 버스정류장에서 100m쯤 못 미치는 곳에서 ‘서해랑길’을 만났다. 탐방로는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간다. 이정표는 없지만 가이드리본이 매달려있어 길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 임도로 들어선다. 웃자란 풀들이 길을 가로막으며 서 있다. 이렇듯 여름철에는 잠시만 놓아두어도 길이 사라져버린다.

▼ 탐방로는 이정표를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가이드리본을 촘촘히 매달아놓아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또렷해졌다. 차량도 지나다니는지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나있다.

▼ ‘노인봉(老人峰, 164.9m)’의 어깨쯤에 올라섰나보다. 노인봉 아래를 지나는 임도는 고도를 150m쯤까지 올리고, 이후로는 능선을 따라서 국사봉 방면의 남쪽으로 향한다.

▼ 이즈음 숲이 열리면서 ‘가로림만’이 얼굴을 내민다. 바닷가 땅끝의 정한을 ‘그리움’이라 한다면 이곳 ‘노인봉’ 임도의 느낌도 매 한가지다. 바다 건너 대산석유화학단지의 압도적 포효에 한껏 몸을 사렸다. 그리고는 숲길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문득문득 드러낸다.

▼ 숲길을 걷는다. 바람 한 점 없는 숲은 완전 찜통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얼굴로 흘러내린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상의는 물론 하의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

▼ 11 : 00. 볏가리마을 갈림길. 임도로 들어서고 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갈림길이다.

▼ 이정표(밤섬나루터 3.4km/ 볏가리마을 1.6km)가 ‘솔향기길(3코스)’과 만났음을 알려준다. 서해랑길은 왼쪽으로 90도를 꺾어 밤섬나루터 방향의 임도를 따라간다.

▼ 길은 이제 ‘국사봉’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나라와 국민의 평안을 위해 하늘에 제를 올리던 곳이다. 날씨 좋은 날 정상에 서면 멀리 인천 앞바다까지 보인다 했다.

▼ 11 : 03. 두 번째 갈림길. 당산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지만 이정표(밤섬나루터 3.2km/ 볏가리마을 홍보관 1.8km)에는 방향표지판이 매달려있지 않다.

▼ 솔향기길 이정표는 노선도까지 품고 있었다. 태안은 계절 상관없이 언제든 걷기 좋은 길이 많은 여행지이다. 태안의 푸른 바다와 솔숲이 어우러진 ‘솔향기길’도 그중 하나다. 총 5개의 코스(총 연장 51.4km)로 이루어졌는데, 이원면 만대항에서 시작해 태안 북부지역의 해안선과 소나무숲을 따라 백화산까지 이를 수 있다. 서해랑길 74코스는 그중 3코스(볏가리마을↔새섬리조트) 및 4코스(새섬리조트↔갈두천)의 일부와 함께 간다.

▼ 이곳은 ‘양개고개(125m)’라는 이름을 갖고 있나보다. 후망지맥을 답사하는 이들이 코팅지를 매달아놓았다. 후망지맥이란 금북정맥의 태안 퇴비산(165m)과 장재 사이에 위치한 104m봉에서 북쪽으로 분기, 구정봉·가제산·국사봉·노인봉·후망산 등을 일군 뒤 만대(이원면 내리) 끝자락에서 서해바다로 잠기는 도상거리 31.5km의 산줄기이다.

▼ 잠시 후 임도가 둘로 나뉘면서 ‘국사봉’을 에돌아간다. 서해랑길은 이중 왼쪽 임도를 따른다. 정자 뒤쪽에 국사봉 정상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나있다.

▼ 이즈음 가로림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세계 5대 갯벌이자 국내 최대·최초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가로림만은 태안군과 서산시 사이로 움푹 파고들어온 만(灣)이다. 연안 면적 1만 5985ha에 갯벌 면적만도 8000ha에 달한다.

▼ 11 : 09. 또 다른 정자. 이번에는 기와를 머리에 인 고풍스런 팔각정이다.

▼ 가로림만은 서해안에서 유일하게 호리병 모양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선에서 내려다보는 탓인지 호리병 대신 들쭉날쭉한 리아스식 해안의 풍경만 눈에 가득하다.

▼ 길은 국사봉의 어깨 어림을 따라간다. 국사봉은 ‘가제산(185.2m)’에서 동북향으로 떨어져 나와 당하마을 뒤에서 우뚝 솟은 해발 205.6m의 산봉우리이다. 삼백 년 전부터 봉우리 서쪽 기슭에 국사당(國師堂)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러니 원하면 아무 때나 개인적으로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서낭당이 있던 골짜기와는 구별된다. 산신이 사는 신성한 공간으로 마을을 하나로 묶어 주고, 공공의 안녕을 위해 공동체가 함께 모여 염원하는 곳이다.

▼ 11 : 25. 해맞이 터. 국사봉의 제사(祭祀)는 이제 ‘해맞이 행사’로 바뀌었다. 어느 순간에 ‘해 맞으러 갑시다’하면서 국사봉에 다시 모였고, 행사가 끝나면 회관에서 뜨끈한 국밥을 나눠 먹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쉬운 얘기로만 남았다는데, ‘해맞이 터’가 당시의 추억을 소환해 준다.

▼ ‘해맞이 터’의 얼굴은 느티나무이다. 거대하지는 않지만 나그네들에게 넉넉한 품을 내어준다. 잠시 쉬어가라는 듯 그늘에 벤치까지 놓아두었다.

▼ 이름(해맞이)에 걸맞는 뷰 맛집답게 시야가 툭 터진다, 밤섬을 낀 가로림만은 물론이고 서산의 명물인 팔봉산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여름 숲은 강성한 초록이 독무대다. 해맞이 터를 지나면서 길은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간다.

▼ 11 : 34. 완만한 내리막길의 끝에서 아까 ‘노인봉’으로 오르면서 헤어졌던 ‘관사로’를 다시 만났다. 함께 걸어온 ‘솔향기길’과 다시 헤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솔향기길은 이곳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밤섬나루로 간다.

▼ 이곳에서 11.9km쯤 떨어진 곳에 이종일 선생 생가지가 있단다. 옥파(玉坡) 이종일(李鍾一, 1858-1925)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사상가다. 태안 출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서리를 지냈으며, 서재필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의 주역이자 애국계몽운동의 중심인물로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활동 중 건강이 악화되어 1925년 중국에서 서거했다.

▼ 서해랑길은 밤섬나루터로 나가지 않고 도로(태안방면)를 따라 내려간다. 그리고는 마봉산 입구까지 약 2.5Km를 도로 갓길을 걸어야 한다.

▼ 11 : 37. ‘모세골’ 버스정류장. 예전에 모시밭이 많아 붙여진 지명이란다. 하지만 화학섬유의 발달로 모시의 수요가 없어지면서 모시밭은 사라졌고, 지금은 지명만이 남아 옛 영화를 전해준다.

▼ 이즈음 ‘가로림만’이 얼굴을 내민다. 내려다보는 것이 아닌 옆에서 바라보는 갯벌과의 첫 만남이다. 참! 저 근처의 갯골은 ‘큰골’로 불린다고 했다. 저곳에서 잡히는 갯벌 낙지는 가로림만 제일의 명품이란다.

▼ 11 : 43. 조금 더 걷자 ‘쪽머리(당산3리)’ 버스정류장이다. ‘똑떽이(발동기로 움직이는 작은 배인 똑딱선의 방언)’가 오가던 추억의 ‘밤섬나루’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이곳에서 나뉜다. 일제강점기부터 서산(구도)-인천을 오가던 똑떽이는 1950-60년대 들어 이원면에 기항지(새섬·밤섬·부도)가 세 곳이나 있었을 정도로 활기를 띠기도 했다. 하지만 육로교통의 발달로 1978년에 운항을 중단했다.

▼ 안쪽으로 들어가면 ‘밤섬나루’가 나온다. 밤섬은 인천과 구도를 오가던 여객선의 선착장으로 명성을 날렸었다. 명절에는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많지는 않았지만 평일에도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하지만 이제 ‘과거를 묻지마세요’가 됐다. 유행가 가사처럼 이름만 남아있는 나루터로 변했다.

▼ 계속해서 ‘사관로’를 따라간다. 마봉산 자락에 이를 때까지 도로의 갓길을 따라 걷는다. 아니 말이 갓길이지 별도의 길은 나있지 않다. 오가는 차량을 살피는 등 안전은 여행자의 몫이라는 얘기다.

▼ 왼쪽, 가로림만에는 ‘밤섬(栗島)’이 놓여있었다. ‘돛단여’와 ‘상여바위’를 양쪽에 거느리는 모습이 마치 알밤같이 생겼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큰골을 오가는 어선들의 등대 역할을 해주는 돛단여는 남쪽에, 간조 때는 어부들의 쉼터가 되어주지만 만조 때는 새들의 쉼터로 변한다는 상여바위는 북쪽에 있다. 하지만 위치를 잘못 잡은 탓인지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 평야지대에서는 보기 드문 ‘둠벙’도 만날 수 있었다. 제방을 쌓아 간척지는 만들었으나 농업용수를 대주는 저수지는 확보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 11 : 49. 이번에는 ‘소코뚜레바위’ 버스정류장이다. 한때 솔향기길 3코스의 자랑거리로 꼽히던 ‘소코뚜레바위’로 들어가는 길이 이곳에서 나뉜다.

▼ 당시 사람들은 갯벌을 향해 길게 뻗어나간 구멍바위와 그 구멍 속에 쏙 들어오는 무인도가 보고 싶어 찾아갔었다고 했다. 아니 영험하다는 소문을 듣고 부자가 되고 싶거나 자식을 갖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단다.

▼ 사진은 인터넷에서 얻어왔다. 글도 경향신문 기사를 옮겨본다. 파도와 비바람이 오랜 시간 두드려 뚫어놓은 구멍은 마치 공룡의 옆얼굴 같다. 좌우로 한 발씩만 이동하면 구멍에 작은 밤섬이 들어왔다 나가고, 지나는 유람선도 들어왔다 나갔다. 햇살을 받아 호박고구마처럼 노랗게 빛나는 바위 표면은 우둘투둘했다. 누가 암벽등반이라도 시도하면 발이 닿는 부분마다 부서져 내릴 것만 같다. 바위 위로 옹기종기 뿌리를 내려 버티고 있는 소나무들은 분재처럼 멋들어진 각선미를 자랑했다. 구멍을 통과하니 밤섬과 나루터가 보였다. 갯벌을 따라 걸어도 닿을 법했다. 다시 구멍 쪽을 돌아보니 각도에 따라 한반도 지도를 닮은 듯도 하고, 날카로운 콧날의 사람 옆얼굴도 보였다.

▼ 지금은 옛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씨 아치(sea arch, 독립문처럼 암석 기저부가 뚫린 다리모양의 파식지형)’의 형상은 옛 사진에서나 찾아볼 수 있고, ‘시스텍(sea stack, 암석이 파도의 침식을 차별적으로 받아 만들어진 굴뚝 형태의 지형)’만 남았단다. 해식지형의 변화과정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 갓길 걷기가 계속된다. ‘버퉁개(당산3리)’에 이르기 전 작은 고개를 넘기도 한다. 가제산(185m) 자락의 고개로 보면 되겠다.

▼ 12 : 00 – 12 : 12. 당산3리 복지회관. 마을표지석은 산과 바다 그리고 벚꽃이 어우러진 마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다. 빼어난 경관을 지녔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것이다. ‘감태마을’이란 또 다른 수식어도 눈에 띈다. 마을 어귀를 돌다보면 감태를 널어놓은 가마니가 길게 누워 있는데, 그 풀내음이 은근히 바다를 닮았다나?

▼ 마을 정자는 걷기 여행자들에 좋은 쉼터가 되어준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다 간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공공 표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무척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덕분에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푹 쉬다 갈 수 있었다.

▼ 마을표지석의 수식어처럼 당산3리는 산과 바다를 끼고 있다. 벚꽃은 도로(관사로) 양옆에 도열해 있는 수십 년 묵은 가로수들을 이르는 모양이다.

▼ ‘관사로’가 시작되는 사창리로 가는 길. 띄엄띄엄이지만 도로 양옆에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

▼ 가로림만에 꼬맹이 섬 하나가 떠있다. ‘새섬’일지도 모르겠다.

▼ 전원주택단지(벚꽃 마을의 아침)의 홍보용 간판이 시선을 붙든다. 꽃이 지고 또 피고 해가지고 아침을 맞듯이 영원히 지지 않고 머무는 곳이란다. 무릉도원이니 어서 분양을 받아가라는 모양이다.

▼ 12 : 16. ‘버퉁개(당산3리)’ 버스정류장. 길은 이제 오르막으로 변해 ‘마봉산(69.2m)’과 ‘바구니산(156.8m)’ 사이 고갯길을 오른다. 굵어지는가 싶던 벚나무 가로수들이 언제부턴가 터널을 만들어내고 있다. 참고로 버퉁개란 ‘벗터’가 있는 개(浦)라는 데서 유래된 지명(벗터개)이라고 한다. 갈톳(염수를 받는 통)이 있다고 해서 ‘벗통개’로 불리기도 했단다. 그게 와음이 되면서 ‘버퉁개’가 되었다나?

▼ 12 : 21. 당산버스정류장. 바구니산에서 마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있는 고갯마루로, ‘사관로’에서 1차선인 ‘태포길’이 갈려나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 왼쪽으로 크게 방향을 튼 서해랑길은 이제 ‘태포길’을 따라간다. 이정표(종점 6.4km/ 시점 10.6km)가 세워져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하나 더. 태포길은 이곳에서 시작해 사창3리 태포까지 이어진다.

▼ ‘태포길’은 마봉산 자락을 헤집으며 간다. 이 구간도 길 양쪽으로 벚나무들이 도열해 있었다. 당산3리가 자랑하는 벚꽃길의 일부라고나 할까? 참! 마봉산(馬峯山)은 산봉우리가 말이 서있는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 12 : 25. ‘마봉재’버스정류장. 1차선 도로지만 군내버스가 다니는지 버스정류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 12 : 28. 아까 국사봉 하산지점에서 헤어졌던 ‘솔향기길’과 다시 만났다. 밤섬나루를 거친 다음 해안선을 따라 이곳으로 왔나 보다. 이정표가 새섬리조트까지 1.4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 12 : 33. 마봉산 자락을 내려오면 ‘안부섬(당산3리)’에 이른다. 길은 안부섬과 부섬 정류장을 차례로 지난다. 참! ‘부섬(釜島 또는 浮城)’은 불뭇골 남쪽의 염벗(소금을 구워내는 큰 가마솥)이 있던 곳인데, 만조 때 섬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했다. ‘안부섬’은 부섬의 안쪽에 있다는 뜻이란다.

▼ 길옆 고추밭의 빨간 고추들이 풍년을 예고하는 것 같다.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는 처서(處暑)가 오늘이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보니 처서에는 벼만 익어가는 게 아닌가 보다.

▼ 부섬 앞 간척지 농로(태포길)를 따라 ‘새섬리조트’로 간다. 새섬리조트는 지금은 육지로 변해버린 ‘긴새섬’에 들어서 있다. ‘긴새섬’은 원래 ‘장구도(長龜島)’였다고 한다. 섬의 모양이 자라보다 조금 큰 거북, 그것도 긴 거북이와 같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란다.

▼ 12 : 49. 새섬리조트는 펜션형의 리조트이다. 아름답고 수려한 태안해안국립공원의 자연테마와 최고의 시설을 갖춘 것으로 입소문을 탔다. 2010년 여름, 전 객실이 바다 전망대라는 소문에 이끌려 가족들과 함께 며칠 머물기도 했었는데, 널디너른 야외수영장과 바비큐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 새섬리조트는 솔향기길의 주요 기점 중 하나다. 3코스가 끝나고 4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래선지 다섯 개 코스 전부가 들어간 안내도를 세워놓았다.

▼ 이정표(종점까지 4.5km)가 가리키는 방향, 즉 ‘사창방조제’의 둑길을 따라간다. 이 방조제를 기점으로 서해랑길은 ‘사창리’로 넘어간다. 조선시대에 환곡을 저축하는 창고(社倉)가 있었다는 마을이다.

▼ 뒤돌아본 새섬리조트. 리조트가 들어서 있는 곳이 ‘긴새섬’이고, 그 오른편에 있는 꼬맹이 섬은 ‘새섬(또는 늙은자라섬)’이다. 리조트 끄트머리쯤에는 ‘사창나루’도 있었다고 한다.

▼ 시선을 옮기면 가로림만이 드넓게 펼쳐진다. 오른편은 서산시 팔봉면, 호리해안 앞의 섬은 ‘할미섬’일 것이다.

▼ 오른쪽은 방조제가 만들어낸 간척지. 기록적인 극한호우(시간당 100mm가 넘는)가 언제였냐는 듯 벼들이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풍년 예감이다.

▼ 12 : 59. ‘안익개’ 버스정류장. 사창3리에 속한 자연부락이 ‘안익개’인 모양이다. 참고로 안익개는 태포 동쪽, 이화산의 북쪽에 있는 자연부락이다. 산 아래에 개(浦)가 있다고 해서 ‘아랫개’로 불리다가 ‘안익개’로 와음(訛音) 되었단다.

▼ 길은 ‘사창저수지’의 수로를 따라 한참이나 올라간다. 그리고는 저수지 바로 아래서 360도로 방향을 틀어 바닷가로 되돌아온다.

▼ 서해랑길은 이제 해안도로를 따라간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딱 좋은 길이다. 왼쪽은 굴과 가무락이 넘쳐난다는 가로림만, 자전거로 달리지는 않지만 텅 빈 바닷가 갯벌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 어민들의 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 이 멋꼬? 눈금이 있는 걸 보면, 바닷물의 높이를 재는 것 같기도 한데.

▼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강아지의 머리를 쏙 빼다 닮은 바위 하나가 자기도 좀 보아달란다.

▼ 물 빠진 가로림만 너머에는 ‘새섬리조트’가 있다. 그 오른쪽으로 소코뚜레해안과 밤섬이 펼쳐지고, 뒤쪽에는 바구니산과 가제산이 버티고 있다.

▼ 가로림만에도 여객선이 떠다닌다. 서산시 ‘구도항(팔봉면 호리)’에서 가로림만의 중심에 있는 ‘고파도’를 오가는 여객선이다.

▼ 해안도로는 꽤 길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1km나 걸어야 한다. 아무튼 가로림만의 산뜻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 기분 좋은 구간이다. 온 몸으로 새로운 기운이 스며드니 이 아니 좋을 손가.

▼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로림만을 살펴본다. 가로림만은 국내 첫 해양생물보호구역(2016년)으로 지정되는 등 생태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녔다고 했다. 동아시아-대양주 경로 철새의 주요 기착지이자 점박이물범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 여건을 살려 현재 ‘국가해양정원’ 지정을 준비 중이란다. 자연과 인간, 바다와 생명이 어우러진 가로림만의 해양환경과 생태계를 국가자원으로 조성·관리한다는 것이다.

▼ 이원면이나 원북면 주민들은 해산물을 채취하는 가로림만을 ‘돈바다’라 부른다고 한다. 굴이나 바지락 등 양식업이 그만큼 성행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어패류의 청정 갯벌 서식지가 곧 가로림만 아니겠는가.

▼ ‘감태’도 빼놓을 수 없다. 주민들의 살림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해서 바다에서 나는 황금 취급을 받는다나? 광해군 원년(1609년) 명나라 신종이 선조의 국상을 조문하고, 시호를 전하기 위해 조선에 사신을 보냈다. 이때 명나라 사신들에게 제공한 음식의 식재료로 ‘감태’가 사용되었단다. 1795년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연에도 감태를 활용한 요리가 상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하나 더. 사창3리의 ‘태포(苔浦)’는 예로부터 감태가 많이 나는 포구라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 13 : 21. 해안도로가 끝나갈 즈음 쉼터용 정자와 함께 ‘사창어촌계 안내소’가 들어서 있었다. 간이화장실도 만들어 놓았다.

▼ 이 일대는 차박 노지캠핑의 명소라고 했다. 그래선지 도로변에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고, 텐트도 여러 동 쳐져있다.

▼ ‘가로림만 해양보호구역’이란 문구도 눈에 띈다. 맞다. 가로림만은 국내 최초로 해양생물보호구역(2016년)으로 지정된바 있다. 생태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녔다는 증거일 것이다.

▼ 가로림만은 국내에서 점박이물범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살괭이·붉은발말똥게·흰발농게·거머리말 등 보호대상 해양생물을 비롯해 149종의 대형저서동물이 서식하는 등 최상위의 건강한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그밖에도 법적보호 바닷새 5종이 서식하고 있고 1,202개체가 출현하는 등 말 그대로 '생태계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 가로림만의 입구 쪽 풍경. 호리병처럼 생겼다는 만의 형상이 가늠된다. 만입부인 태안군 이원면(내리) ‘만대부리’와 서산시 대산읍의 ‘항금산’이 아득하다.

▼ 서해랑길은 쉼터정자 옆에서 산속으로 들어간다. 해안도로가 청산리나루터까지 이어지지를 않고 모퉁이에서 끝나버리는 탓이다.

▼ 초입에 솔향기길 이정표(청산리나루터 2.5km)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 오르막 산길은 꽤 가파르게 시작된다. 이적산(181m)에서 가마봉(55.1m)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넘어야하기 때문이다. 하나 더. 이원면의 산하를 숨 가쁘게 달려온 서해랑길은 이 능선을 기점으로 삼아 원북면으로 넘어간다.

▼ 고개를 넘으면 작은 해안. 농가 한 채가 외롭다. 길은 임도로 변해 청산1리로 빠져나간다.

▼ 13 : 32. ‘NAMAN 143’을 스치듯 지나간다. 글램핑 시설을 갖춘 캠핑장인 모양인데,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하고 있어 주위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만’의 한적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프라이빗함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 13 : 35. 캠핑장 뒤 능선에서 길이 나뉘고 있었다. 직진하면 나루터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가고, 서해랑길은 이적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임도를 따라간다. 참! 10년쯤 전에도 이 능선을 걸어봤었다. 후망지맥에서 벗어나 있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답사하겠다며 청산리나루터에서 출발 가마봉과 이적산, 이교산, 이화산, 구정봉을 거쳐 청산2리 마을회관으로 내려왔었다. 하지만 이화산을 제외한 봉우리들은 길이 나있지 않아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 오해하기 딱 좋은 이정표. 새섬리조트에서 출발한 솔향기길(4코스)은 호안도로와 임도를 걸어 갈두천까지 간다. 중간에 ‘청산리나루터’를 지나감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이정표는 청산나루터가 아닌 마을(청산1리 ‘아랫말’인 듯)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 14 : 07. 조망이 꽉 막힌 길이 지겨워질 즈음 ‘삼거리’를 만났다. 솔향기길 이정표(청산리나루터 1.1km/ 새섬리조트 2.8km)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준다. 참고로 왼쪽으로 가면 ‘가마봉’에 이르게 된다.

▼ 삼거리를 지나면서 내리막길 임도가 살짝 가팔라졌다.

▼ 14 : 15. 잠시 후 ‘풍경리조트’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가로림만의 오지 바닷가에 위치한 것을 감안한다면 무척 큰 규모의 펜션이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은지 주차장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차량들로 붐볐다.

▼ 서해랑길(태안 75코스) 안내도는 펜션 입구에서 주차장 쪽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었다. 오늘은 14.79km를 3시간 50분에 걸었다. 임도이긴 하지만 3개나 되는 산의 어깨어림을 오르내렸던 점을 감안한다면 나름 빠른 속도로 걸은 셈이다.

▼ 14 : 18 . ‘청산리나루터’는 서해랑길 안내도에서도 200m쯤 더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

▼ 현대식 부교가 예쁜 나루터. 청산리나루터도 사람들로 붐비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128km 거리에 있는 인천까지 정기여객선이 다니던 시절이다. 두툼한 전대를 허리에 차고 귀항하던 상인들이 객줏집 주모의 구성진 흥타령에 가슴을 설렁이며 전대를 슬슬 풀었었다나? 하지만 여객선의 뱃길이 끊기면서 구성진 목소리로 뭇 남자들의 심금을 울리던 주모는 간데없고 한가로이 낚싯배 몇 척만 나루터를 지키고 있었다.

▼ 바다 건너는 서산시(팔봉면) 호리 해안이다. ‘구도항’이라는 제법 큰 포구가 있으며, 고파도로 들어가는 여객선이 저곳에서 출발한다.

▼ 조류관찰대인 듯. 가로림만에도 철새가 찾아온다는 얘기일 것이고 말이다. 하긴 국내 최초·최대의 해양생물보호구역(2016년)이자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는 개펄(2005년), 환경가치평가 전국 1위(2007년)를 차지했을 정도이니 어련하겠는가. 하나 더. 가로림만은 멸종위기 철새의 중간 기착지이면서 천연기념물 점박이물범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 12km 내외를 목표로 걷는 집사람에게 오늘은 최악의 트레킹이었을 것이다. 12km에 맞출만한 출발지점을 찾지 못해 13.5km로 늘릴 수밖에 없었고, 하필이면 산악회 버스의 판단 잘못까지 겹치면서 15km 가까이나 걸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34도가 넘는 무더위에 산길을 오르내렸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기네스북에 80년간의 최장수 부부로 기록된 영국의 ‘애로 스미스’ 부부는 행복한 금실의 비결로 서로에게 늘 ‘미안해’라고 말하는 대화 습관을 꼽았다. ‘미안해’라는 말속에는 상대를 향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함께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런 진리에 자연스럽게 편승해 본다. ‘여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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