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괴곡성벽길’(청풍호 자드락길 6코스)
산행일 : ‘22. 1. 2(일)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일원
산행코스 : 옥순봉출렁다리 주차장→괴곡능선→사진찍기 좋은 명소→청풍호 전망대→다불암→두무산(시무산)→다불암→지곡리 마을회관(거리 및 시간 : 9.9㎞, 실제는 8.11km를 3시간20분에)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제천의 ‘청풍호 자드락길’은 상표권 등록까지 된 명품 둘레길이다. 자드락길이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이름처럼 둘레길도 청풍호 주변의 산기슭 58Km를 7개 코스로 나누어 길을 냈다. 자드락길의 가장 큰 특징은 빼어난 조망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청풍호의 아름다운 풍경과 금수산 등의 수려한 산세를 걷는 내내 눈에 담을 수 있다. 오늘은 그 가운데 7코스인 ‘괴곡성벽길’을 걷는다. 이 코스는 ‘두무산’의 꼭대기를 올라야하니 산행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등산’ 하면 따라붙기 마련인 ‘인내’란 단어는 필요 없다. 자드락이란 이름대로 야트막한 산기슭을 따라 설렁설렁 걷기만 하면 된다. 그저 눈의 호사만 실컷 누리면 된다.
▼ 들머리는 ‘옥순봉 출렁다리’의 제2주차장(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78-2)
중앙고속도로(춘천-금호) 단양 I.C에서 내려와 36번 국도를 이용 충주방면으로 달리다가 원대삼거리(제천시 수산면 원대리)에서 오른편 옥순봉로를 따라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옥순봉출렁다리가 나온다. 출렁다리 입구의 주차장이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 ‘청풍호 자드락길’의 7코스인 ‘괴곡 성벽길’은 옥순대교에서 시작해 두무산 정상을 거친 다음 지곡리에 이르는 9.9km짜리 둘레길이다. 이 코스는 드넓게 펼쳐지는 청풍호(淸風湖)와 옥순봉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걷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괴곡성벽 길’이란 이름을 얻었다. 청풍호의 호반을 따라 이어지는 산줄기가 삼국시대 때 자연의 성곽 역할 했다는데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 주차장 옆의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자드락길 나들이가 시작된다. 길을 나서기 전 ‘옥순봉 출렁다리’를 먼저 둘러보는 게 우선이지만, 새벽에 내린 눈 때문에 출렁다리의 출입을 막아버렸으니 어쩌겠는가. 그나저나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 초입의 안내판 정도는 살펴보고 길을 나서자. 붉은색의 자드락길 외에도 측백나무 숲길(푸른색)을 내놓았다니 시간나면 들러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 계단을 올라서니 비닐움막이 쳐져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시설인 듯 ‘마스크가 코로나-19의 백신’, ‘마스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리본을 매달아놓았다. 맞다. 요즘은 호흡이 거칠 수밖에 없는 산행 중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흠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 오른편으로 청풍호가 긴 강처럼 펼쳐지는 산자락을 오른다. 그 길에 겨울이 무르익었음을 알리는 눈이 살어름처럼 깔렸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임에도 조심조심 걸아야만 하는 이유이다.
▼ 아무리 고와도 산길은 산길인가 보다. 이 길의 자랑거리인 청풍호의 풍경보다도 먼저 ‘국가지점표지판’이 얼굴을 내미는 걸 보면 말이다. 다만 ‘둘레길’의 특성을 살린 듯 식물도감을 보탰다. 지치(紫根)가 이곳 청풍호 주변에서 자생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5분. 첫 번째 포인트인 ‘쉼터(이정표 : 사진찍기 좋은명소 1.4㎞/ 옥순대교 1.6㎞)’에 이른다. 하지만 판자를 깐 공간만 만들어져 있을 뿐 의자 등 앉아서 쉴만한 편의시설을 눈에 띄지 않는다.
▼ 대신 청풍호와 옥순대교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다만 잡목이 아랫도리를 잘라먹어버린 게 흠이랄까? 괴곡성벽일은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청풍호의 풍광을 시선에 달고 다닌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덕분에 청풍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실컷 구경하게 된다. 그것도 평면이 아닌 3D로 입체화 된 그림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 ‘에이! 둘레길이 아니라 완전히 산길이네’ 누군가의 입에서 한숨 섞인 넋두리가 흘러나온다. 동네 마실길을 걷듯이 걸으면 된다는 이대장의 안내와는 달리 계단을 설치했을 정도로 능선이 가파른 것이다. 거기다 잡목이 숲을 이룬 탓에 호수 쪽의 시야까지 막혔다. 이래저래 자드락길은 시작부터 타박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45분. 첫 번째 삼거리(이정표 : 다불암← 1.4㎞/ 사진찍기 좋은명소→ 0.2㎞/ 옥순대교↓ 2.4㎞)를 만났다. 우리가 가야할 ‘다불암’은 왼편, 그렇다고 오른편을 생략할 수는 없다. 청풍호 조망의 일번지로 소문난 ‘청풍호 전망대’가 그쪽에 있는 데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 이정표 하단에 매달린 ‘내리사랑길’ 안내판이 심상치 않아 카메라에 담아봤다. ‘사랑의 어부바’. 서로 등에 없고 걸어보라는 메시지다. 번갈아 업어주다 보면 더욱 가까워진 서로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가 곁에 없는 이내몸은 어쩔까나. 무릎이 고장 난 탓에 지난 목요일부터 산행을 거르고 있으니 말이다.
▼ 삼거리에서도 청풍호가 조망된다. 이를 본 일행 중 한명이 ‘와! 충주호다’를 외친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도 말이다. 이곳은 제천. ‘청풍호’라 하지 않고 ‘충주호’라 했다가는 곧바로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몰지의 대부분이 제천시 땅이고, 그중 핵심지가 청풍면이니 댐은 충주댐일망정 호수는 청풍호가 마땅하다는 게 제천 사람들 주장이다. 하지만 내 설명을 들은 그는 고개를 내두른다. ‘댐’이나 ‘호’이나 도진개진이 아니냐면서.
▼ 백종원씨를 안내원으로 삼았나? 유머러스한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이 길로 올라가셔야 수월하데유~ 믿어봐유^^’. 이 얼마나 애교스러운 어감인가. 이밖에도 ‘내려가는 길이여유~ 미끄럼 주의해유^^’, ‘전망대 가는 길이여유~’ 등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 ‘괴곡성벽 길’은 진짜 성벽을 따라 나있지는 않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패권을 다투던 삼국시대. 세 나라는 청풍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싸웠다고 한다. 당시 이곳 괴곡능선은 그 자체가 천혜의 요새이자, 자연이 만들어준 성벽이었단다. 언제부턴가 그게 능선의 이름으로 굳어졌고, 오늘에 와서는 자드락길을 대표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 찾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돌탑하나 없을까? 그것도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절묘하게 쌓아올렸다. 흡사 돌멩이들이 아크로바트라도 하는 듯, 나뭇등걸의 위 좁은 공간에서 몸을 세우고 포개가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 몇 걸음 더 걷자 정자와 함께 ‘전망 데크’가 세워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사진 찍기 좋은 명소’란다. 청풍호와 금수산, 옥순대교를 한 장의 사진에다 담을 수 있다는 곳인데, 벤치를 여럿 놓아 쉼터의 기능까지 겸하도록 했다. 조형물로 삼은 솟대는 이곳 괴곡능선의 역사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솟대라는 게 본디 ‘삼국지 마한전(馬韓傳)’에 나오는 소도(蘇塗)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 이름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병풍처럼 펼쳐지는 금수산 자락과 푸른 청풍호가 멋진 배경이 되어주는데, 망덕봉, 금수산, 가은산, 구담봉, 옥순봉 등 하나하나 꼽아가며 난간의 조망도와 대조해보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특히 옥순대교 부근은 그중에서도 백미다. 비취빛 청풍호를 수반(水盤) 삼아 명품 산수경석으로 승화되고 있다.
▼ 옥순대교를 바라보며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떠올렸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충주댐 수몰 전 저곳에 있었다는 ‘괴곡나루’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천시에서 이런 점을 간과했을 리가 없다. 저 어림에 있었다는 한벽루(보물 528호)와 찻배, 나룻배의 사진이 들어간 안내판을 세워 옛날을 회상할 수 있도록 했다. 통행량이 많았던 탓에 차도선과 나룻배가 오가며 차량과 승객을 실어 날랐단다.
▼ 50m쯤 더 나가면 ‘청풍호 전망대’가 우뚝 솟아오른다. 막다른 길이 청풍호에 맞닿아갈 무렵, 언덕배기 끝자락에 4~5층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들어앉혔다. 맨 꼭대기에 있는 조망대는 나선형의 무장애 계단을 이용해 오를 수 있도록 했다.
▼ 전망대의 주제는 ‘사랑을 외치다’이다. 함께 길을 걷다보면 마음의 빗장이 풀리면서 속마음을 고백하고 싶어질 것이란다. 이때 상대방의 이름을 덧붙여 크게 외쳐보라는 것이다. ‘000씨 사랑합니다’, ‘000님 존경합니다’.
▼ 전망대에 서면 시야는 주변의 숲을 훌쩍 벗어나버린다. 그리고는 청풍호의 전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이곳에도 조망도가 설치되어 있으니 꼼꼼히 살펴가면서 하나하나 가슴에 담아가자. 가장 왼편은 호수를 가운데 두고 비봉산과 작성산이 좌우로 펼쳐진다.
▼ 오른편은 청풍호와 옥순대교를 중심에 담은 멋진 풍경화로 그려진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윗덩어리 말목산과 가은산, 구담봉, 옥순봉으로 덧칠된 그림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조물주이기에 저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 그 사이에는 금수산이 들어앉았다. 망덕봉과 곰바위, 기와집바위, 새바위, 둥지봉 등 서슬 시퍼런 바위봉우리들을 품었는데, 아쉽게도 정상은 구름이 삼켜버렸다.
▼ 절경은 호수 쪽만 있는 건 아니다. 수학여행 나온 학생들처럼 호들갑을 떨며 전망대를 빙글빙글 돌다가 반대편에 서면 이번에는 두무산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줄기가 아닌 ‘길줄기’가 시선을 붙든다. 산줄기 사이사이로 난 구절양장의 길이 흡사 그림이라도 되는 양 예쁘게 다가온다.
▼ 오랜만에 만난 멋진 전망대라고 해서 무작정 노닐 수는 없다. 아까의 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길을 나선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또 다른 삼거리를 만났다. 이곳에서 50m쯤 비켜난 지점에 ‘백봉 산마루주막’이 있다. 하지만 난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곧장 능선을 타버리는 우를 범해버렸다. 부침개나 두부두루치기 등을 안주삼아 마시는 막걸리가 일품인 주막이라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능선을 따라 난 길은 임도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또렷했다. 자락길에서 이정표까지 세워놓아 어렵지 않게 두무산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 이곳도 역시 탐방객들의 부주의로 인해 피해를 보는 농민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추억은 가슴 속에! 쓰레기는 배낭 속에!’라는 구호를 입으로만 외칠게 아니라 우리 같은 트레커들이 앞장서서 실천해보면 어떨까?
▼ 요즘 뜨고 있는 작물인 호두나무 농장도 만날 수 있었다. 호두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두뇌 건강과 피부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최근 호두나무를 심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란다. 초기 투자비용이 적은데다 호두나무의 경제수명이 70~80년이나 된다니 이보다 더 좋은 작목이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 수요까지 대폭 늘어나고 있다지 않는가.
▼ 트레킹을 시작한 90분. 임도사거리(이정표 : 두무산전망대↑/ 다불리·지곡리→/ 괴곡리←/ 청풍호전망대↓)에 내려선다. 산꼭대기에 있는 두무산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이곳에서 곧장 수산면소재지(다불리·지곡리)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 잠시 후 ‘다불암(多佛庵)’의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 보니 여염집보다도 더 허술한 대웅전이 나온다. 참배를 드리려는 일행의 뒤를 따라 들어가 본 법당도 탱화를 배경삼아 자그만 부처님을 모시고 있을 따름이다.
▼ 초라하기 짝이 없는 절간이지만 ‘목탑’만은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요즘이야 찾아보기 힘들지만 목제가 흔한 우리나라에서는 경주의 황룡사 구층탑이나 법주사의 팔상전처럼 불탑의 주축이 목탑이 아니었겠는가.
▼ 다불암은 절 자체보다 절간을 감싸고 있는 산세가 더 일품이다. 기기묘묘한 모양새의 바위들로 둘러싸인 풍경만큼은 전국의 어느 사찰에도 뒤지지 않는다.
▼ 자드락길로 되돌아와 몇 걸음 더 오르니 ‘측백나무숲길’이 나뉜다. 하지만 그보다 하단의 글귀가 더 눈길을 끈다. ‘경청이 최고의 칭찬’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걷고 있는 이 여성분은 최고의 파트너가 되겠다. 은퇴한 이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호시절의 무용담을 싫다는 내색도 없이 모두 들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 고개를 들자 거대한 암릉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두무산을 명품산의 반열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참! 두무산의 옛 이름은 다불산(多佛山)이라고 했다. 저 바위들 하나하나가 ‘부처(佛)’처럼 보였다는 얘기일 것이다.
▼ 그 가운데서도 백미는 단연 ‘독수리바위’다. 하늘을 향해 머리를 치켜든 독수리를 닮았는데 목을 한껏 젖히고 올려다보아야 머리 부분까지 다 보일 정도로 우람하다. 정성껏 빌면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속설도 전해지니 한번쯤 빌어볼 일이다.
▼ 오른편으로 돌자 ‘촛대바위’가 우뚝 솟아오른다. 하얀 촛농이 흘러내린 듯한 독특한 모양새의 명품바위다. 다불암의 스님들은 저 바위를 ‘칠성바위’로 고쳐 부른단다. 그들의 눈에는 저 바위가 북두칠성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 요건 ‘형제봉’이 아닐까 싶다. 커다란 두개의 바위가 좁은 틈새를 두고 나란히 서있는데, 이름이 조금 어색하다. 크기로 보아 ‘봉(峰)’보다는 ‘암(岩)’자가 더 어울릴 것 같다.
▼ 바위지대를 지나면 이번에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두무산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인데 얼마나 가파른지 통나무계단으로도 모자라 몸까지 비틀면서 고도를 높여간다. 많은 탐방객들이 두무산전망대의 탐방을 생략하는 이유일 것이다.
▼ 올라가는 도중 ‘호랑이굴’도 만날 수 있었다. 50년 전 어느 한의사가 다불리의 찍개바위 앞에서 호랑이를 만났다고 전해지는데, 그렇다면 저 굴은 그 호랑이가 살던 곳일지도 모르겠다.
▼ 호랑이는 이미 옛이야기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존재. 호랑이 떠난 골에 늑대가 왕이라고 했는데, 이곳은 늑대도 아니고 염소들 차지가 되었나보다. 바닥이 온통 염소 똥으로 덮여있었다.
▼ 조금 더 오르면 일출의 명소라는 ‘두무산 전망대’. 자드락길에서는 ‘절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생겨났을 정도로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아름다운 경관에 빠져 한정 없이 늘어지려는 마음을 다잡지 않고서는 주어진 시간 안에 트레킹을 마칠 수 없다면서 말이다. 이정표에 적힌 ‘사진찍기 좋은 명소’가 그 증거다. 하지만 눈에 들오는 풍경은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긴 청풍호 전망대에서의 기분 좋은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데 다른 풍경이 어찌 들어올 수 있겠는가.
▼ 안내판은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화백에 얽힌 일화를 적고 있었다. 풍수로 당대를 호령하던 연서 정상용이 장우성의 할아버지 묘지를 잡아주면서 10년 뒤에 훌륭한 화가가 태어난다고 예언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붉은색 실선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장우성의 할아버지 묘가 있다는 반룡농주형(盤龍弄珠形)의 화필봉이 저곳이라는 얘기일까?
▼ 조금 더 걸으면 이번에는 헬기장이 나온다. 이정표는 이곳을 일몰(日沒)의 명소로 적고 있었다. 남서쪽에 있는 월악산으로 넘어가는 해가 일품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선지 이곳에는 영봉에 대한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 헬기장에서의 조망도 빼어나다. 수산면소재지 뒤로 월악산의 산줄기가 기다랗게 펼쳐진다. 뾰쪽하게 솟아오른 게 주봉인 영봉(靈峰). 달이 뜨면 저 봉우리에 걸린다고 해서 ‘월악’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 광경을 이곳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일까?
▼ 산에서 내려오는데 앞서가던 이대장이 신호를 보내온다. 이는 뭔가 볼거리가 있다는 신호.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바위에 부처가 새겨져 있었다. 이 미륵불은 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형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또한 아기를 갖지 못한 어느 불자가 지극정성으로 기도한 끝에 소원을 이루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단다. 하지만 안내판은 문화적 의의에 대한 내용은 적지 않고 있었다.
▼ 조금 더 내려오니 와불(臥佛)이 조성되어 있었다. 옆으로 누워서 한 쪽 팔로 머리 옆을 괴는 자세인데, 부처님이 열반하는 모습을 본뜬 것이란다. 이런 형태의 불상은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풍경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 앗! 난장에 웬 편액(扁額)? 그것도 본전 불상을 모시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이란다. 다불암에서 대웅전 건립을 발원했다더니 저 와불을 주불로 삼으려는지도 모르겠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10분, 임도로 내려서니 대승불교 조계종(大乘佛敎 曹溪宗) 소속이라는 다불암의 종무소가 길손을 맞는다. 자락길은 저 종무소 왼편으로 올라서서 능선을 탄다. 들머리에 이정표(지곡리 나루터 3.2㎞/ 사진찍기 좋은명소 1.4㎞)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절간 앞에는 두무산의 등산안내도를 세워놓았다. 그 옆에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다불리(多佛里)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도 보인다.

▼ 이후부터는 북쪽 방향의 능선을 탄다. 이 구간은 경사가 거의 없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고도를 낮추어간다. 괴곡성벽길은 이렇듯 자드락에서 시작해 자드락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 사이는 제법 날카로운 묏등도 있다. 다만 숨이 가빠지는 된비알은 두무산으로 오를 때 잠깐이며, 나머지 구간은 순한 경사로 이어진다.

▼ 조망 좋은 곳은 쉼터로 만들었다. 벤치에 앉으면 청풍호의 리아스식 호안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내려오는 도중 이런 풍광은 한두 곳에서 멈추지 않았다. 심심찮게 시야가 트이면서 청풍호의 풍광이 거침없이 눈으로 파고든다.

▼ 얼마쯤 내려왔을까 잘생긴 노송 두 그루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지곡리 상부(이정표 : 흙길↑ 1.2㎞/ 포장길→ 1.4㎞/ 사진찍기 좋은명소↓ 3.2㎞)’에서 길이 둘로 나뉜다. 포장길로 가도 지곡리에 이르게 되지만 우린 흙길을 따르기로 했다. 모처럼 찾은 자락길인데 일부러 포장길을 걸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 능선은 곳곳에서 청풍호가 조망된다. 리아스식 호안의 청풍호는 흡사 가오리가 넙죽 엎드린 모양새이다. 그런데 그게 만만찮게 아름답다. 금수산의 준수한 산봉들이 겹치면서 멋진 호안선을 그려내는 덕분이다.

▼ 유연하게 흐르던 능선이 뚝 끊기는가 싶더니 가파르게 아래로 향한다. 안내판도 ‘내려가는 길이여유~ 미끄럼 주의해유^^’라며 너스레를 떨고 있다. 6자락의 날머리가 다와 간다는 얘기일 것이다.

▼ 날머리는 ‘지곡리 마을회관’(제천시 수산면 지곡리)
다불암을 출발한지 1시간 10분. 청풍호반에 들어앉은 지곡리의 마을회관에 이르면서 괴곡성벽길의 트레킹은 막을 내린다. 오늘은 3시간 20분을 걸었다. 핸드폰의 앱이 8.11km를 찍고 있으니 자드락길인 점을 감안하면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다고 보면 되겠다.

▼ 마을 앞에는 지곡리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청풍호 자드락길’을 위주로 한 제천관광지도도 보인다. 총 58km의 이 둘레길은 작은동산길 19.7km(청풍 만남의광장-능강교), 정방사길 1.6km(능강교-정방사), 얼음골 생태길 5.4km(능강교-얼음골), 녹색마을길 7.3km(능강 야생화단지-상천 민속마을), 옥순봉길 5.2km(상천민속마을-옥순대교), 괴곡 성벽길 9.9km(옥순대교-지곡리), 약초길 8.9km(지곡리-말목장) 등 7개 구간으로 나뉜다. 오늘은 이 가운데 괴곡성벽길을 걸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 마을 앞 호숫가에는 꼬맹이 배 몇 척이 정박되어 있었다.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지곡리의 대부분이 청풍호로 인해 수몰되었지만, 고향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 호수에서 소일거리, 아니 주업을 찾고 있나보다.

▼ 자드락길 트레킹을 마친 뒤 ‘옥순봉 출렁다리’를 다시 찾았다. 우리가 트레킹을 하는 동안 눈에 녹아 출렁다리를 개방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 ‘옥순봉 출렁다리’는 출렁다리를 중심으로 종합안내소와 카약체험장, 데크산책로, 옥순봉생태탐방로로 구성되어 있다.

▼ 출렁다리는 저 지난 달 22일에 개통됐다. 현재는 무료로 개방하고 있지만 내년 3월부터는 3천원의 입장료를 받을 예정이란다. 하지만 2천원은 지역화폐로 돌려준다니 실제 요금은 천원인 셈이다. 참! 매표소 옆에는 지역 특산물을 파는 편의점이 들어서 있었다. 되돌려주겠다는 지역화폐의 사용처로 제격이라 하겠다.

▼ 출렁다리로 가기 전 먼저 전망대부터 둘러봤다. 청풍호(淸風湖)의 수려한 풍광을 눈에 담기 위해서이다.

▼ 전망대 앞 호수에는 카누·카약 체험장이 들어서 있었다. 옥순봉과 출렁다리를 또 다른 각도에서 제대로 보고 싶다면 일단은 배를 빌리고 보자. 그런 다음 노를 저어 청풍호로 나가면 된다.

▼ 메인광장 출입구에서 코로나19 발열체크와 소독을 마친 다음 본격적인 탐방에 나선다. 출입구에서 출렁다리까지는 산뜻한 데크산책로로 연결된다.

▼ 산책로를 따라 한 구비 돌자 청풍호를 배경으로 떠 있는 출렁다리 전망대가 나온다. 청풍호의 수면에 닿을 듯 아래로 축 쳐진 출렁다리의 전모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출렁다리를 배경으로 넣을 수 있는 멋진 포토죤이기도 하다.

▼ 전망대에 서면 출렁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괴곡리(수산면) 마을과 옥순봉 바로 아래 산자락을 연결하는 길이 222m의 걷기 전용의 다리로, 통과하는 동안 이름에 걸맞게 좌우로 심하게 출렁거린다.

▼ 산책로의 왼편 전망 좋은 언덕에는 ‘안단테 펜션’이 걸터앉았다. 청풍호가 삼면을 둘러싼 반도지형이라서 아무데서나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나그네들에겐 이집에서 파는 어묵과 부침개가 더 매력적이다. 그걸 안주삼아 더덕출렁주나 옥수수출렁주로 목까지 축일 수 있다니 이 아니 좋을 손가.

▼ 출렁다리의 와이어를 매어놓은 축대는 광고판으로 장식했다. ‘출렁이는 제천, 일렁이는 관광’이란 이름으로 인근의 관광 명소들을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다.

▼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광고도 빼먹지 않는다. ‘실패 없는 먹방 여행’이란 제목으로 제천의 요리들을 소개하고 있다. 큐알코드를 찍을 경우 맛집을 바로 찾아갈 수 있는 아이디어도 더했다.

▼ 출렁다리의 초입. 왼편에서 옥순대교가 눈길을 잡아맨다. 충주댐이 건립되기 전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조용한 나루터(괴곡나루)가 있던 자리에 놓인 다리다. 나루터가 없어지면서 생긴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놓았는데, 그게 주변의 기암절벽과 어우러지면서 절경을 이뤄 지금은 제천 관광의 명소로 자리매김 됐다.

▼ 출렁다리의 매력은 역시 출렁거림이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기존의 출렁다리들에 비해 폭(1.5m)이 조금 좁았지만, 대신 흔들림은 더 커진 것 같다. 그래선지 중간지점으로 가면 걷기조차 힘들어진다.

▼ 다리 중간에는 강화유리를 깔아 짜릿함을 더했다. 공포감을 조금이라도 더 높여보려는 시도일 것이다. 하지만 난간을 붙잡고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질러댄다거나 엉금엉금 되돌아 나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출렁다리를 걷는 게 이골들이 났다는 증거가 아닐까?

▼ 물이 약간 빠져나간 호반(湖畔)은 하얀 테를 둘렀다. 그게 수직의 바위절벽이선지 비취빛 호수와 어우러지며 한 폭의 산수화로 그려진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다. 다만 여러 겹으로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가 비 온 뒤 죽순 같다는 ‘옥순봉’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은 흠이라 하겠다.

▼ 반대편도 역시 청풍호이다. 1985년 충주댐으로 내륙의 바다가 된 청풍호는 호수를 중심으로 금수산·옥순봉·구담봉 등 아름다운 바위봉우리들로 꾸며졌다. 그 명산대호(名山大湖)의 풍광은 한국의 스위스로도 불린다.

▼ 다리를 건너면 옥순봉 기슭으로 408m 길이의 생태탐방로가 나있다. ‘단양팔경’에 포함될 정도로 수려한 용모를 뽐내는 옥순봉(玉筍峰)으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발걸음을 돌리기로 한다. 출출해진 뱃속을 달래는 게 더 이상은 어려워졌으니 이제 그만 식당가를 찾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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