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 주상절리길(하늘 길)
여행일 : ‘21. 12. 5(일)
소재지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여행코스 : 드르니매표소→전망쉼터→드르니 스카이전망대→잔도→한탄강 스카이전망대→샘소전망쉼터→잔도→순담 스카이전망대→순담매표소(소요시간 : 3.6km/ 2시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전국에는 수많은 걷기 길이 있다. 한탄강 또한 강의 특징을 살려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릴 길을 만들었다. 바로 ‘한탄강 주상절리길’이다. 한탄강의 특징은 강의 양쪽이 화산암의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 화강암, 즉 주상절리가 한탄강의 대표적인 비경이기 때문에 한탄강을 따라 조성된 걷는 이 길의 이름이 되었다. 아무튼 덕분에 여행 마니아들은 철원·연천·포천 지역을 평화롭게 흐르는 한탄강을 따라 걸으며 해맑은 강안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들머리는 ‘드르니 매표소’(철원군 갈말읍 군탄리 산 174-3)
구리·포천고속도로 신북 IC에서 내려와 국도 43호선을 타고 철원·김화방면으로 올라가다 드르니교차로(철원군 갈말읍 군탄리)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드르니 매표소’에 이르게 된다. ‘드르니’는 ‘들르다’라는 뜻을 가진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한다. 후삼국 시대 왕건에 쫓기던 궁예가 이곳에 들렀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왠지 정겹다 싶었는데 그게 이유였던가 보다.
▼ 마땅한 지도를 찾을 수 없어 입구에 세워놓은 지도를 옮겨봤다. 길이가 3.6km에 이르는 ‘하늘 길’의 입구는 둘(순담 및 드르니). 탐방객이 마음 내키는 곳에서 시작하면 된다. 주말 및 공휴일에 한하지만 40분 간격으로 셔틀버스(무료)가 운행되고 있으니 되돌아 올 걱정도 없다.
▼ 코로나19 팬데믹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사회적 거리두기’다. 11월부터 ‘위드 코로나(with Corona)’로 바뀌었다지만 방역수칙까지 어디 가겠는가. 입·출구를 달리하는 것은 기본. 마스크에 ‘열 체크’. ‘안심 콜’은 필수, 손 소독은 선택이다. 다만 줄을 선 사람들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있다는 게 흠이랄까?
▼ 입장권(1만원을 내면 5천원을 지역화폐로 되돌려준다)을 보이고 안으로 들어서자 ‘드루니 전망대’가 길손을 맞는다. 전망대에 서면 한탄강만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난다. 평지보다 푹 꺼진 협곡, 그것도 양 옆이 수직의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이로 쪽빛 강물이 흐르고 있음은 물론이다.
▼ 탐방로는 푹 꺼지면서 시작된다. ‘하늘길’은 이곳 ‘드루니매표소’에서 ‘순담매표소’까지 한탄강의 바위협곡을 따라 나있다. 길이는 3.6㎞. 50~60m 높이의 바위절벽에 잔도(棧道)와 출렁다리를 설치해가며 길을 만들었다. 한탄강의 자랑거리인 주상절리를 볼 수 있도록 곳곳에 전망대를 만들어놓았음은 물론이다.
▼ 미끄러우니 뛰지 말라는 경고판은 엄포용이 결코 아니다. 특히 오늘처럼 서리라도 내린 날에는 금과옥조가 된다. 빙판보다도 더 미끄럽기 때문이다. 실제로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들도 여럿, 개중에는 손목을 다친 사람도 있었다.
▼ ‘하늘 길’에는 쉼터를 겸한 전망대를 꽤 여럿 만들어 놓았다. 첫 번째 만남은 ‘맷돌랑 전망쉼터’다. 요 아래에 넓적한 맷돌바위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하지만 어느 바위를 이르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강안에 펼쳐진 예쁜 모래톱이 눈길을 끈다는 것뿐.
▼ 바위절벽에 기댄 탐방로는 쉼 없이 오르내린다. 지형에 알맞게 놓다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릎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힘든 여정이 될 수도 있겠다.
▼ 낡아빠진 데크 로드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이기도 한다. 옛 탐방로로 여겨지는데, 발길이 끊긴지 한참이나 되었나 보다.
▼ 트레킹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이다. 수직절벽 아래로 흐르는 하얀 계류가 일품이다. 한탄강은 50만 년 전 화산활동이 만든 희귀한 지형을 지녔다. 그동안은 지형이 험해, 먼발치에서만 한탄강의 경치를 지켜봐야 했는데, 협곡을 따라 보행로가 놓이면서 주상절리의 신비스런 속살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됐다.
▼ 눈을 들자 높이가 35m에 이른다는 협곡이 펼쳐진다. 카메라의 줌을 끌어당기자 이번에는 협곡을 병풍처럼 둘러싼 주상절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 조금만 더 가면 ‘민출랑’이라는 또 다른 전망쉼터가 나온다. ‘민출랑’은 깎아지른 절벽의 전라도 사투리라고 한다. 말 그대로 깎아지른 단애가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주상절리(절벽)의 조망과 함께 현무암을 비집고 흘러가는 우렁찬 강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 이쯤에서 여담 하나. ‘한탄강’은 흔히 6·25전쟁 중 다리가 끊겨 후퇴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탄하며 죽었다’고 해서 붙여졌을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정답은 ‘큰 여울의 강’이란 뜻이다. ‘크다·넓다·높다’는 뜻의 ‘한(漢)’과 ‘여울·강·개’의 뜻인 ‘탄(灘)’이 어울린 순수한 우리말이며, 이를 한문으로 음차(音借)한 것이다.
▼ 세 번째 만남은 ‘너른바위 전망쉼터‘로 강변까지 거의 다 내려간 지점에 설치되어 있다. 이렇듯 눈에 띌만한 지형 앞에는 어김없이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잔도를 조금 더 넓힌 다음 벤치를 놓아두었는가 하면, 강의 한가운데까지 툭 튀어나가는 허공 다리를 놓기도 했다. 경승의 구석구석을 두루두루 살펴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 전망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바위가 ’너른바위‘인 모양인데, 그보다는 그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바위들이 더 눈길을 끈다.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게 마치 우리가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기라도 하려는 것 같지 않은가.
▼ 전망대에는 요런 돌출부를 만들어놓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주상절리의 신비로운 풍광을 담아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주상절리를 배경삼아 인생샷이라도 건져보려는지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제법 길었다.
▼ 등산에 가까운 오름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곳 ’하늘 길‘의 가장 큰 특징은 ’잔도(棧道)‘. 바위절벽에 선반을 걸치듯 내놓은 길이다. 그런데도 이곳은 바위절벽을 넘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암벽의 강도가 잔도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었던 것일까?
▼ ’하늘길‘은 13개의 교량이 곳곳을 잇는다. 협곡의 갈라진 틈들을 이 다리로 연결해가며 길을 내놓은 것이다. 가장 먼저 선을 보이는 건 현수교의 형식을 취한 ’주상절리교‘. 양 옆에 기둥을 세우는 여느 현수교와는 달리 가운데 돌출부분에 기둥을 세우고 양 옆의 절벽에 쇠밧줄을 맨 다음 그에 의지해 출렁다리를 놓았다. 한가운데, 그러니까 가운데 돌출부분에는 스카이전망대가 들어앉았다. 그게 아름다웠던지 하늘길을 꾸미고 있는 다리들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 ’하늘 길‘은 3개의 ’스카이 전망대‘도 품고 있다. 그 가운데 첫 만남은 ’드르니 스카이전망대‘로 ’주상절리교‘의 교각에 매달려 있는 모양새이다. 스릴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일 것이다. 그래선지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꽤나 붐비고 있었다.
▼ 전망대에 서면 양 옆으로 뻗어나간 ‘주상절리교’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다리 위를 오가는 탐방객들의 표정이 마치 소풍 나온 어린이들처럼 들떠있다. 미지 세계의 경이로움이 저들을 동심으로 되돌려 놓았나보다.
▼ 시선을 깔자 한탄강이 성큼 다가온다. 그런데 쪽빛 심연을 떠돌고 있는 저 괴물체는 정체가 뭘까? 모래톱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갈수기에나 모습을 드러내는 암초처럼 보이기도 한다.
▼ 이때 가로로 깨진 바위가 켜켜이 쌓여 있는 게 보인다. 저걸 ‘수평절리’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땅속에 숨어 있던 화강암이 자신을 덮고 있던 미지의 암석이 제거되면서 밖으로 튀어나온다. 이때 화강암의 연약한 부분이 깨지면서 생긴 것이 수평절리다.
▼ 다리를 건너다 뒤돌아본 ‘드르니 스카이전망대’. 전망대의 바닥이 허공으로 약간 튀어나갔다고 해서 ’스카이‘란 멋진 단어를 집어넣은 모양이지만 다른 스카이전망대들 만큼의 스릴은 느껴지지 않는다.
▼ 전망대 아래에 터를 잡은 ‘쌍자라 바위’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자라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내 눈에는 ‘짱뚱어’의 머리에 더 가까워 보였다. 또 다른 어떤 이는 하마를 닮았다고 했다.
▼ 한탄강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 물줄기가 시원한 여름, 단풍이 어우러진 가을, 얼음왕국으로 변하는 겨울까지,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지닌다고 했다. 하지만 어정쩡한 시기이어선지 단풍도 아니고 그렇다고 설화도 아닌 풍경만 보여준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까지는 없다. 갖가지 문양으로 치장된 주상절리가 그 모든 것을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 결코 앞만 보고 걷는 우는 범하지 말자. 같은 사물일지라도 앞뒤가 서로 다른 풍경으로 다가올 테니까 말이다.
▼ 이틀 후면 눈이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 이를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이게 또 인생샷을 건지려는 이들의 멋진 배경이 되어주기도 한다.
▼ 또 다른 출렁다리인 ‘쌍자라교’를 지나면 이번에는 출렁거리지 않는 고정식 다리가 나온다. ‘돌단풍교’라는데 곁에 전망쉼터까지 끼고 있었다. 아무튼 이 근처에서 한탄강의 자랑거리인 돌단풍을 만난 수 있다고 해서 이를 이름으로까지 삼았다니, 주상절리와 바위틈에 숨어있는 돌단풍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듯.
▼ 눈에 들어오는 한탄강은 다른 강과는 사뭇 다르다. 거의 대부분 구간에서 바닥이 푹 꺼진 주상절리의 직벽 아래로 흐른다. 사람이 사는 땅 저 아래에 강이 있는 것이다. 강안 풍경을 보기 위해 가끔은 ‘내려가야’하는 이유다.
▼ 길은 서서히 ‘하늘 길’이란 이름에 걸맞아진다. 바위벽으로부터 점차 거리를 두어간다는 얘기다. 하지만 잔도(棧道)에 미치려면 아직은 멀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긴장감이 읽히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 절벽의 위(산봉우리로 생각되겠지만 사실은 평지다)로는 비상통로를 놓았다. 입구를 막아놓은 걸로 보아 건설공사 때 사용하던 구급용 시설이지 싶다.
▼ 주변에 현무암과 화강암이 공존한다는 현화교(순담 2.1㎞/ 드르니 1.5㎞)와 현무암교(주상절리가 발달된 현무암을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단다)라는 두 개의 고정식 다리를 지나자 ‘동주 황벽쉼터(순담 1.9㎞/ 드르니 1.7㎞)’가 나온다. 황토빛깔의 주상절리가 바라보이는 곳으로, 원래는 아래쪽이 검은색, 위쪽은 황토색과 암갈색을 띄고 있지만 햇볕을 받으면 전체가 황토 빛으로 물든단다. ‘동주’는 철원의 옛 이름이다.
▼ 동주황벽쉼터를 지나면서 ‘하늘 길’의 자랑거리인 잔도가 시작된다. 잔도(棧道)란 수직의 바위 벼랑에 선반을 매달아 놓듯 만든 길이다. 중국에서나 볼 수 있던 풍경인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하나 둘 선을 보이고 있다.
▼ 수직의 바위절벽이다 보니 자그만 물줄기만 있어도 저런 멋진 폭포가 된다. 추위가 더 기승을 부리면 얼음폭포(氷瀑)라는 또 다른 볼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 강에는 꽤 많은 철새들이 노닐고 있었다. 맞다. 이곳 철원은 철새 관광지이기도 하다. ‘한탄강 얼음 위 트래킹과 DMZ철새 두루미 여행’이란 상품을 파는 여행사도 있을 정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두루미(제202호), 재두루미(제203호), 독수리(제243호) 등이 해마다 겨울철이면 이곳 철원을 찾아온단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하늘 길’의 스릴이 절정을 이루는 ‘한탄강 스카이전망대(순담 1.6㎞/ 드르니 2.0㎞)’에 도착했다. 제비집처럼 매달린 잔도로도 모자라 아예 허공을 향해 툭 튀어나가도록 설계됐다. 반원형의 다리를 교각 대신 와이어로 매달아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 허공을 걷는 스릴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아예 강화유리 위에서 포즈를 잡기까지 한다. 사진으로나마 자신의 강심장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걷는 것조차 힘든 듯 난간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이도 있었다.
▼ 삼풍백화점·성수대교·와우아파트 등은 기억 속의 아픈 단어들이다. 하지만 남의 나라 얘기가 된지도 이미 오래다. 다리 위를 무심히 걷고 있는 저 탐방객들이 그 증거라 하겠다. 와이어로 묶였을 따름인 허공다리의 안전도가 의심도 되련만, 탐방객들의 얼굴에서는 그런 표정이 조금도 읽혀지지 않는다.
▼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터널처럼 생긴 출렁다리가 길손을 맞는다. ‘2번홀교’. 생긴 것만큼이나 이름도 특이하다.
▼ ‘2번 홀교’는 안전에 특화되었다고 한다. 요 위에 있는 한탄강 CC의 2번 홀에서 날아오는 골프공을 피하기 위한 설계란다. 그래선지 이름부터가 골프장 용어인 ‘홀’이다.
▼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쪽빛소 전망쉼터(순담 1.2㎞/ 드르니 2.4㎞)’ 근처에서 바라본 풍경이니, 저게 ‘쪽빛소’일지도 모르겠다. 한탄강 물길이 잠시 멈추었다 가는 곳으로, 소(沼)의 물이 깊고 쪽빛을 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 ‘바위그늘교(순담 1.1㎞/ 드르니 2.5㎞)’는 아예 축 처져있는 모양새이다. 출렁임도 당연히 더 커졌다. 다리의 길이가 짧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참고로 이 부근에서는 화강암의 안쪽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박리현상이 눈에 띈단다.
▼ 강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검은색 현무암의 수직절벽은 주상절리의 연속이다. 아름다운 주상절리가 쉼 없이 이어지는데, 그 절리의 모양새도 다채롭다.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놓은 걸작(傑作)이란다.
▼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한 폭의 풍경화로 그려진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이다.
▼ 한탄강의 협곡은 사람이 사는 땅 저 아래에 강이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래 사진과 같은 풍경이 심심찮게 펼쳐진다. 마을이 바위절벽의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것이다. 문득 스페인 여행 때 세외지경으로 받아들였던 론다(Ronda)의 풍경을 떠올렸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누에보 다리’로 유명한 곳인데 4~5층 높이의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는 것만 다를 뿐, 론다 역시 바위절벽 위에 걸터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샘소 전망쉼터(순담 0.9㎞/ 드르니 2.7㎞)’는 꼭 기억해 두어야 할 중요한 포인트이다. 하늘길 유일의 화장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다른 쉼터들 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컸다.
▼ 쉼터 앞의 ‘샘소’는 기묘한 암석들로 둘러싸인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는 신비한 곳이란다.
▼ 이제 중국에나 가야 보던 잔도(棧道)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수직 절벽에 파이프를 박아 선반 매달 듯 내놓은 길이다. 중국에 기원을 둔 잔도는 전쟁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촉(蜀)의 제갈량이 위(魏)를 치기 위해 사천성의 험준한 산악 지형에 길을 냈다. 그 길을 걸어본 시인 이백은 촉도난(蜀道難)이란 시에서 ‘촉 가는 길의 험난함, 하늘 오르기보다 힘들다’고 했다. 그런 잔도가 한국에도 놓인 것이다. 다만 목숨을 건 병사가 아닌 산천경개를 구경나온 장삼이사가 희희낙락 걷는다.
▼ 고정식 다리인 ‘수평절리교’에 이르면 아까 얘기하던 수평절리가 보다 광범위하게 펼쳐진다. 가로로 깨진 화강암이 마치 시루떡처럼 쌓여있는 모양새이다. 이렇듯 하늘길에 놓인 다리들은 주변 지질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 이를테면 '돌개구멍교' 옆에는 원통 모양의 구멍이 난 바위가 있었고, 이곳 '수평절리교' 건너편에는 저렇게 가로로 깨진 바위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 다음은 출렁다리인 ‘화강암교’이다. 화강암은 땅 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서서히 식어서 생긴 암석으로 대체로 색이 밝고 검은 반점을 띤다. 한탄강의 기반암으로 볼 수 있는데, 다리 부근에서 다양한 형태의 화강암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
▼ 영락없는 돼지의 머리다. 무학대사는 부처와 돼지의 눈을 빌어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 했다. 그렇다면 나도 돼지가 되는 것일까?
▼ 다른 각도에서 본 ‘화강암교’이다. 저렇듯 절벽과 절벽 사이를 출렁다리로 연결시키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다. 출렁이는 게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방이 뚫려있어 눈길이 닿는 곳마다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 눈을 들자 순담계곡을 향해 놓인 잔도가 눈에 들어온다. 중국의 장가계나 태행산을 떠올리게 만드는 풍경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 길은 극한의 공포 그 자체였다. 까마득한 절벽에 걸쳐진 길은 구멍이 숭숭 뚫렸는가 하면, 심지어는 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유리가 깔려있기도 했었다. 덕분에 난 되돌아가겠다며 투정을 부렸었고, 이를 본 집사람은 서슴없이 ‘겁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 물소리가 거세지는가 싶더니 ‘한여울교(순담 0.7㎞/ 드르니 2.9㎞)’가 나타난다. ‘여울’이란 하천 바닥이 급경사를 이루어 물의 흐름이 빨라지는 곳을 이른다. 물살이 거치니 산소를 많이 발생시킬 것은 당연. 그래서 사람들은 여울을 강의 허파라고도 한다. 그 여울에 크다는 뜻의 ‘한’자를 붙였다.
▼ 출렁다리인 ‘돌개구멍교(순담 0.6㎞/ 드르니 3.0㎞)’이다. 돌개구멍은 하천의 암반 바닥에 생긴 원통 모양의 깊은 구멍을 말한다. 자갈이 물과 함께 회전하며 바위를 갈아내면서 만들어지는데, 이 근처에 그런 돌개구멍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구리소 전망쉼터’가 얼굴을 내민다. 한탄강의 여울이 이 근처에서 가마솥 끓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아니나 다를까 한탄강의 물 흐름이 이 근처에서 빨라지고 있었다. 맞다. 이곳 순담계곡은 철원 래프팅의 메카로 알려진 곳이다. 물이 불어나는 여름철에는 저 계곡에 젊은이들의 함성으로 가득하단다.
▼ ‘선돌교(순담 0.5㎞/ 드르니 3.1㎞)’는 구리소 쉼터의 바로 곁에 있었다. 다리 근처에 있는 ‘선돌’에서 이름을 차용했다는데, 한탄강의 거센 물살에 깎여나간 화강암이 선돌을 빼다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지만 선돌을 카메라에 담는 건 실패했다. 사전 준비가 부실해 그런 바위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 잔도는 수직의 바위절벽에 제비집처럼 매달려 있는 흥미진진한 길이다. 하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하다. 대개의 디딤판이 밑이 훤히 보여, 고소공포증이 심한 이들엔 자책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조심조심 몇 걸음 내딛다보면 주변 경관에 취해 고소공포증 따위는 금방 사라져버릴 테니까 말이다.
▼ 화강암 절벽의 단층이 볼거리라는 ‘단층교(순담 0.4㎞/ 드르니 3.2㎞)’를 지나자 ‘순담 스카이전망대’가 얼굴을 내민다. 스카이라는 이름처럼 허공을 향해 툭 튀어나간 스릴 만점의 다리다. 탐방객들의 표정이 극명하게 갈리는 곳이기도 하다. 신나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난간을 붙잡은 채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도 보인다.
▼ 반원형의 길이 허공을 떠돈다. 때문에 느끼는 고도감은 상상 초월이다. 사방으로 터진 개방감에 공포가 배가된다. 투명 유리의 스릴까지 더해진다.
▼ 스카이전망대는 강을 향해 툭 튀어 나가도록 설계됐다. 때문에 교각을 세울 수가 없다. 똑 같이 교각이 없는 출렁다리와도 다르다. 양쪽 지지대를 케이블로 연결하는 출렁다리와는 달리 스카이전망대는 지지할 수 있는 곳이 한 곳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바위절벽의 상단에 철심을 박고 행어케이블을 연결해 상판을 지탱하고 있었다.
▼ 촉나라의 잔도는 절벽에 구멍을 내고 나무를 꽂아 만든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모양새만 취했을 뿐 철심을 튼튼하게 박았다. 안심하고 걸어도 된다는 얘기이다.
▼ 뒤돌아보면 이제껏 걸어온 길이 그 전모를 드러낸다. 하늘길은 주상절리의 벼랑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표정의 길이다. 수직의 단애에 선반처럼 매달아놓은 잔도는 기본. 아찔한 출렁다리를 건널 수도 있고, 심지어는 아찔한 허공을 거닐기도 한다.
▼ 순담계곡은 하천을 에워싼 협곡의 암벽이 기암괴석을 이루는 데다, 보기 좋은 모래밭까지 끼고 있어 한탄강 일대에서 경승이 빼어난 곳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지자체에서 이를 놓칠 리가 없다.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전망대를 만들었으니 곧 ‘순담 전망쉼터’이다. 각양각색 바위로 이루어진 순담계곡의 경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고 해서 아예 계곡의 이름을 통째로 넣어버렸다.
▼ 계곡의 물길에는 부교(미 개통)가 놓여있었다. 주상절리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이곳 순담계곡은 조선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김관주가 이름을 붙였다. 관직에서 은퇴한 후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20여 평의 연못을 파고 제천의 의림지에서 순(蓴)이란 약초를 옮겨다 심고는 순담이라 불렀다고 한다.
▼ 날머리는 ‘순담 매표소’(철원군 갈말읍 군탄리)
전망대에서 빠져나오면 곧이어 순담매표소에 이르게 된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만이다. 기껏해야 3.6km 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2시간이나 걸었다는 것은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하긴 수십 만 년 전의 신비 속을 걸었으니 오죽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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