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둘레길 8코스(거북바우길)

 

여행일 : ‘21. 9. 25(토)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일원

여행코스 : 용소막성당→한국사 입구→구학산 전망대→거북바우→구학산주차장→방학동 정류장→구학리 희망캠핑장(거리 및 시간 : 11.4km/ 실제는 11.53km를 3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치악산을 크게 한 바퀴 도는 총 길이 140㎞의 둘레길로 치악산국립공원을 넘나든다. 치악산이 거느린 작은 산도 오르고, 원주혁신도시와 작은 산골 마을도 지난다. 11개의 코스로 나누어져 있는데 관할지자체도 세 곳이나 된다. 하여 원주시가 길 조성을 주도했고, 횡성군과 영월군이 거들었다. 치악산은 험하기로 소문난 산이다. 정상을 오르다 보면 ‘치’가 떨리고 ‘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낱말풀이까지 생겨났을 정도이다. 하지만 치악산둘레길은 다채로운 풍광을 감상하며 걷기 좋은 순한 길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은 104.5㎞에 이르는 원주 권역의 ‘거북바우길(8코스)’을 걷는다. 신령스러운데다 잘 생기기까지 한 ‘거북바우’를 중간에 만날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그보다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구학산 숲길을 걷는다는 매력이 더 뛰어난 구간이다.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곧 힐링으로 승화되는 코스라고 보면 되겠다.

 

▼ 들머리는 ‘용소막 성당’ 앞 주차장(원주시 신림면 용암리 719-2)

중앙고속도로 신림 IC에서 내려와 제천방향 88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신림삼거리에서 좌회전 해 5번 국도를 따르면 금방 용암삼거리다. 이곳에서 우회전 해 작은 다리를 건너면 용소막성당의 첨탑이 바로 보인다. 성당 앞에 마련된 널따란 주차장이 오늘 트레킹의 들머리이다.

▼ 치악산둘레길의 종합안내판은 주차장 한켠에 세워져 있다. 종합안내도를 가운데에 두고 왼편에 8코스(거북바우길), 오른편에는 7코스(싸리치옛길)을 배치했다. 이곳이 7코스와 8코스의 경계지점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코스지도 보관함 옆에 세워놓은 7코스의 스탬프보관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9.8km나 되는 코스의 중간에 저것 하나 세워놓을 공간이 없었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 8코스인 ‘거북바우길’은 신림면의 용소막성당에서 출발해 역시 신림면인 석기동에서 끝을 맺는다. 거리는 11.4km. 중간에 구학산을 넘기도 하나 중턱쯤에서 횡단을 해버리는데다, 조금이라도 경사가 심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왔다갔다 ‘갈 지(之)’자를 쓰기 때문에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저 눈에 들어오는 뛰어난 풍광들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8코스 안내판에서도 ‘구학산 둘레 숲길’을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 먼저 ‘용소막 성당(강원도 유형문화재 106호)’부터 둘러보기로 한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장소겠지만, 풍수원성당과 원주성당(현 원동주교좌성당)에 이어 강원도에 세 번째로 설립된 역사가 깊은 성당이다. 역사만큼이나 생김새도 고상하다. 고딕양식의 벽돌 건물로 서울 명동대성당을 쏙 빼다 닮았다. 두메산골인 이곳에 신앙이 전파된 것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 때문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첩첩산중이던 용소막 인근에 흩어져 살았다. 이후 1893년부터 용소막으로 신자들이 이사를 왔고, 1898년 풍수원본당 전교회장으로 활발히 전교활동을 하던 최도철(바르나바)까지 이주해 오면서 교우촌이 형성됐다. 그는 1898년 대여섯 명의 교우들과 신부 방이 포함된 초가 열 칸의 아담한 경당을 지었고, 원주본당 관할의 ‘용소막 공소’ 초대 회장을 맡았다. 1904년 용소막은 본당으로 승격됐고, 교세가 커지자 3대 주임이던 시잘레 신부는 성당 신축에 나서 1915년 가을 현재의 성당을 완공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성당 또한 많은 수난을 겪었지만 다행히도 원형을 거의 보존할 수 있었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6년에는 강원도 유형문화재(제106호)로 지정됐다.

▼ 본당 왼쪽에는 선종완(라우렌시오) 신부의 유물관(오른쪽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건물은 ‘피정의 집’이다)이 있었다. 그가 사용하던 낡은 책상을 비롯한 유품 380여점과 각종 서적류 300여권을 전시하는 곳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았기에 그의 약력이나 살펴보기로 한다. 이곳(성당 앞에 그의 생가 터가 있다)에서 나고 자란 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히브리어와 희랍어로 된 구약성경의 원문을 번역한 성경학자다. 그는 또 1960년에 ‘성모영보수도원’을 설립했는데 당시 수녀원 지원 시 필수 조건이었던 ‘학력’에 대한 제한을 없앴다고 한다. 그의 이념은 노동에 근거한 철저한 자립과 봉사였단다.

▼ 낡은 종탑이 예스러움을 전하는 사제관은 보수공사가 한창이어서 올라가 볼 수 없었다. 언덕 아래에 조성된 성체조배실(聖體朝拜室)도 문이 닫혀있어 그냥 통과다. 그저 성모상 앞에서 오늘 트레킹을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빈 것이 전부라고나 할까? 거기다 덧붙인 내 가족과 이웃의 건강과 행복은 덤이고 말이다.

▼ 성당의 앞마당에는 수령 160년이 훌쩍 넘은 느티나무 다섯 그루(보호수)가 성당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어 고즈넉한 운치를 더한다. 숲속에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는 글귀가 새겨진 빗돌도 세워져 있었다. 1989년 서울에서 열렸던 제44차 세계성체대회의 주제(당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너희는 이를 행하라’,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라는 부제도 갖고 있었다)인데 이를 되새기자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뿐만 아니라 성당 설립 일백주년을 맞아 신도들의 신앙고백을 적어 넣은 빗돌도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성당을 모두 둘러봤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나설 차례이다. 백운방면의 지방도(597번)를 걷다가 200m쯤 떨어진 곳(이정표 : 석동종점 11.2㎞)에서 도로를 벗어나 농로로 들어선다.

▼ 구학천(이정표 : 석동종점 11.0㎞/ 용소막성당 0.4㎞)에 이른 탐방로는 이제 개울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다가 용암교(이정표 : 석동종점 10.7㎞)를 건너 이번에는 개울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이어진다.

▼ 이때 용암리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데, 너른 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한 가득이다. 보릿고개로 허리를 졸라매는 게 익숙할 자연환경에서 풍요로움이라니 이 얼마나 난데없는 풍경인가. 하지만 그렇게 놀랄 일 만은 아니다. 관정을 뚫고 지하수를 모터로 끌어 올려 물의 양을 측정하는 시험이 전국 최초로 이 일대(신림 마지들)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964년의 일인데 천수답을 수리안전답으로 바꾸는 사업의 효시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식량증산도 다른 곳보다 먼저 이루어지지 않았겠는가.

▼ 길을 나선지 13분. 용암리의 자연부락 가운데 하나인 ‘당뒤(‘당후’라고도 하는데 서낭당 뒤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마을에 이르니 마을 어귀에 작은 숲(이정표 : 석동종점 10.5㎞/ 용소막성당 0.9㎞)이 조성되어 있다. 범위가 크지는 않지만 비술나무와 느티나무, 시무나무 등 200년 가까이나 묵은 노거수들이 집단으로 자라고 있어 마을 숲으로 손색이 없는 풍광을 보여준다. 그래선지 마을 주민들은 이 숲을 신성시 여긴다고 한다. 숲속에 서낭당을 짓고 매년 음력 9월9일마다 제사를 지내오고 있단다.

▼ 보호수인 시무나무 그늘 아래에는 당집 말고도 정자가 들어앉았다. 이 공간이 마을 주민들의 커뮤니티(community)로 이용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쯤에서 튀어나오는 의문 하나. 이 마을의 커뮤니티는 혈연공동체일까 아니면 지연공동체일까? 아니 이 둘은 대개 중첩되고 있으니 그게 무는 대수겠는가. 그저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점해왔다는 점만 알아두면 될 것을.

▼ 오늘의 꽃은 한국사로 가는 개울가에서 만난 ‘망초’를 꼽아봤다. 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이라는데 오늘따라 유난히도 많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하긴 망초가 밭에 자라면 농사를 망치고, 농사를 망치면 나라가 기운다고 해서 ‘망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까지 있을 정도이니 오죽하겠는가.

▼ 제방을 따라 조금 더 걷다보면 ‘탑골’마을 입구(이정표 : 석동종점 9.9㎞/ 용소막성당 1.5㎞)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길손을 맞는다. 나무 아래에 서낭당이 지어져 있는 걸 보면 탑골마을을 지켜주는 당목(堂木)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 ‘눈물을 흘리는 신비한 부처님 계시는 도량, 구인암’이라는 문구가 특이해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구인암의 돌부처(약사여래 좌불상)가 나라의 길흉이 있을 때 마다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과 기각이 확정될 때, 대구 지하철 참사와 태풍·폭설 때도 며칠 전부터 어김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1km라는 거리도 부담스러웠지만, 설사 가본다고 해도 눈물이 멈춰진 부처야 다 그게 그거 아니겠는가.

▼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한국사’라는 사찰이 반긴다. 탐방로는 이 절의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산길로 올라선다. 들머리에 이정표(석동종점 9.8㎞/ 용소막성당 1.6㎞)가 세워져 있으니 길이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 길가에 있는 사찰이니 어찌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용무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에도 불구하고 살짝 엿보기로 했다. 하지만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떠한 정보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저 대웅전과 그 뒤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작은 전각, 그리고 요사채만 눈에 담았을 뿐이다.

▼ 길가 철망에 뱀·벌·멧돼지·독충을 조심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 총 망라되었으니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

▼ 산속으로 들어서자마자 임도(이정표 : 석동종점 9.6㎞/ 용소막성당 1.8㎞)와 맞닥뜨린다. 탐방로는 임도를 가로질러 산자락을 파고든다.

▼ ‘8코스(거북바우길)’의 게이트는 임도의 바로 위에 있었다. 치악산둘레길의 특징대로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오르게 될 ‘구학산(九鶴山)’은 원주시 신림면과 충북 제천시 백운면에 걸쳐 있는 높이 983m의 산이다. ‘구학’이란 지명은 옛날 이 산에 살던 학 아홉 마리가 사방으로 날아갔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학들이 날아간 아홉 곳(신림지역의 황학동·상학동·선학동과 봉양지역의 구학리·학산리, 그리고 충북 영동의 황학동, 백운면의 방학리·운학리와 송학면의 송학산)도 역시 ‘학’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

▼ 구학산으로 오르는 길은 오뉴월 뙤약볕이라도 내리쬘 경우 고생 깨나 해야만 하는 구간이다. 산 사면을 간벌한 탓에 그늘 한번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좋은 점도 있다. 오르는 내내 시야가 열리면서 용암리의 들녘과 첩첩이 쌓여있는 강원도의 산들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

▼ 산자락은 엄청나게 가파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흡사 뱀이라도 되는 양 좌우로 몸을 비틀면서 위로 오르기 때문이다. 그것도 좌우의 간격을 길게 해서 경사를 최대한으로 누그러뜨렸다.

▼ 게이트를 통과한지 20분 만에 ‘구학산전망대(이정표 : 석동종점 8.8㎞/ 용소막성당 2.6㎞)’에 올라섰다. 구학산(九鶴山, 983m)의 5부 능선, 그러니까 해발이 483m쯤 되는 곳에 만들어놓은 전망대이다. 이곳은 또 이곳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한 이들을 위해 쉼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참! 8코스(거북바우길)의 두 인증지점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깜빡 빼먹을 뻔했다.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으니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

▼ 명색이 전망대이니 일단 조망부터 살펴보자. 발아래로는 조금 전 끙끙거리며 올라왔던 탐방로가 ‘갈 지(之)’자를 쓰고 있다. 오르는 도중 ‘전망대’로 오인하고 둘러봤던 쉼터도 보인다. 아니 오인할 일도 아니다. 저곳에서도 시야가 툭 트이기 때문이다.

▼ 오른편으로 시선을 옮기자 이번에는 용암리(신림면)의 들녘이 펼쳐진다. 치학산과 구학산, 감악산 등 높은 산들이 감싸고 있는 산간마을이지만, 구학천이 서쪽에서 흘러와 동쪽의 주포천으로 유입되면서 하천 주변으로 제법 널따란 충적평야를 만들어내고 있다. 들녘 뒤로는 감악산의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다.

▼ 전망대를 지나면서 탐방로는 울창한 숲속으로 파고든다. 이삼십 년쯤 묵은 소나무 숲을 헤집으며 난 산길은 걷는 자체만으로 행복해진다. 코끝을 스쳐가는 짙은 솔향기가 심신을 맑게 해주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저 솔향기 속에는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도 듬뿍 들어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길은 웰빙, 아니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행복한 길이다.

▼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아 오른 낙엽송(일본잎갈나무) 군락지를 지나기도 한다. 언젠가도 얘기했다시피 낙엽송은 초봄의 연두색 신록과 가을의 황금빛 단풍이 특히 아름답다고 알려진다. 아직은 제철이 아니지만 한 달쯤 뒤에 찾아온다면 더욱 풍성한 색감으로 물든 숲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참! 낙엽송은 침엽수(소나무류) 가운데 겨울에 낙엽이 지는 유일한 수종이기도 하다.

▼ 잠시 후 눈에 익은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5코스(서마니강변길)에서 만났던 그 구절강장(九折羊腸)의 산길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이런 길을 그냥 놓아두는 것은 낭비라 여겨진다. 길가의 나무를 관목(灌木)으로 바꾸는 등 조금만 더 치장을 한다면 세상에 내놓을만한 풍경으로 바뀔게 분명하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에도 장가계의 통천대도(通天大道: 하늘로 통하는 길) 같은 명소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 낮과 밤이 같다는 추분이 그제였으니 이젠 완연한 가을이다. 오늘 새벽 집밖으로 나서면서 바람막이 옷을 하나 더 걸쳤던 게 그 증거라 하겠다. 그 증거는 산속에도 있었다. 부지런을 떠는 것들에 한해서지만 간간히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 최근 비가 많이 내렸었는지 골짜기마다 물소리가 거세다. 이렇게 높고 깊은 산골짜기에서 듣는 물소리는 언제 들어도 청량하다.

▼ 전망대에서 출발한지 15분 만에 임도(이정표 : 7.8㎞/ 용소막성당 3.6㎞)에 내려섰다. 어디서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몰라도 길이 너른데다 정비까지 잘되어 있다. 임도의 기능을 아직까지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왼편으로 방향을 틀자 평지와 다름없는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원시의 숲을 연상시키는 울창한 숲속을 지난다.

▼ 잠시 후 또 다른 삼거리를 만났다. 이정표(석동종점 7.6㎞/ 용소막성당 3.8㎞)는 이곳이 ‘자작골 삼거리’라고 알려준다. 자작나무 군락지가 주면에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 오른편에 위치한 박달정으로 오르다보면 울창한 자작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흡사 분칠이라도 한 듯 하얗게 치장을 한 나무들이 무리를 이뤄 하늘로 치솟고 있단다.

▼ 이곳에는 ‘구학산둘레숲길’의 이정표도 세워져 있었다. 맞다. 이후부터 탐방로는 ‘원주 굽이길’의 26개 코스 가운데 하나(순환코스)인 ‘구학산둘레숲길’을 역방향으로 빌려 쓴다. ‘원주굽이길’은 원주시청을 기점으로 신림면 황둔리까지 연결된 17개의 편도 코스와 9개의 순환코스 등 26개로 조성돼 있다. 시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26개 코스 360㎞를 개설한 데 이어 올해 4개 코스 40㎞를 추가해 총 30개 코스 400㎞의 굽이길 전 구간을 개통했다.

▼ 임도는 자동차가 다닌 흔적이 역력하다. 아래 사진처럼 사유지가 많고, 그곳에 뭔가를 재배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잠시 후 돌을 쌓아올린 축대가 눈에 띈다. 아니 들녘을 연상시킬 정도로 널따란 분지 곳곳에는 이런 축대가 겹겹이 둘러쳐져 있었다. 자그만 개울까지 있는 걸 보면, 옛날 이곳에 화전민 마을이라도 들어서 있었을지 모르겠다.

▼ 다시 나타난 솔숲. 코끝을 스쳐가는 바람결에는 짙은 솔향기가 배어있다.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고 듬뿍 들어있을 것이다. 그러니 코로나19-펜데믹에 매몰되어 너무 ‘방콕’만 하지 말고 이런 ‘에코 힐링 산소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그동안 잊어왔던 상쾌한 공기도 실컷 마시면서 말이다. 다만 어울려 걷지는 말고, 혼자서 유유자적 할 것을 권한다.

▼ 둘레숲길로 들어선지 20분 조금 못되어 ‘보릿고개 개발두렁’에 올라섰다. 우리네 어릴 적에는 매년 ‘보릿고개’라는 힘든 기간이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보리를 거두기 전까지 먹을 것이 부족하여 다들 힘들어하던 시기다. 당시 먹거리를 얻기 위해 산을 계단식으로 개간하여 농작물을 재배했는데, 이 근처가 그 현장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 구학산둘레숲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곳곳에 안전대피로를 만들어두었다는 점이다. 걷다가 자신의 체력이 달린다고 생각될 때에는 이 안전대피로를 이용해 코스를 단축하면 된다.

▼ ‘보릿고개 개발두렁’을 지나자 또 다시 오르막 구간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갈지자를 크게 쓰는 덕분에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도 올라설 수 있다.

▼ 지자체인 원주시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둘레길, 그것도 둘(치악산둘레길과 구학산둘레숲길)이 함께 지나가는 길목인데 어찌 점심상 차릴만한 곳 하나 없겠는가. 누군가가 땀 흘린 덕분에 우린 저런 멋진 쉼터를 만날 수 있다.

▼ 길가는 초록의 물결로 출렁거린다. 하지만 연초록이 아닌 진초록이다. 그만큼 가을이 깊어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도 귀가를 맴도는 새소리는 청량하기 짝이 없다. 이런 숲길을 걷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상쾌함이 가슴 속 깊이 파고든다.

▼ 유비무환(有備無患)의 풍경도 엿볼 수 있었다. 물기 한 점 없는 작은 개울에 징검다리를 놓아둔 것이다. 장마철 폭우를 대비한 안전장치이다.

▼ 구학산 숲길에서는 야생화를 거의 볼 수가 없었다. 대신 이끼로 뒤덮인 연녹색 바위와 고비 같은 양치식물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만큼 습기가 많은 산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 치악산둘레길의 구학산 구간은 원주굽이길과 같이 운용된다. 그래선지 이정표와 안내판 등 시설물들이 중첩되어 있어 보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 ‘보릿고개 개발두렁’을 출발한지 20분 만에 ‘구학정’에 올라섰다. 구학산둘레길의 이정표(철쭉동산 0.4㎞/ 보릿고개밭두렁 1.0㎞)는 이곳을 ‘층층나무골’로 적고 있었다. 조금 전에 지나왔던 ‘자작나무골’과 마찬가지로 이 근처에 층층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 나무는 최근 공원의 조경수로 각광을 받는 추세라고 한다. 계단을 연상시킬 정도로 층을 이루는 나무의 기하학적인 모양새에 만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 ‘구학산둘레숲길 종합안내판’이 세워져 있기에 살펴봤다. 먼저 각 지점을 숫자로 표시한 게 눈길을 끈다. 그 순서에 따라 진행하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을 게다. 또 다른 특징은 탐방객의 체력에 맞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구간마다의 거리와 함께 출발지점인 구학산주차장에서부터 걸어온 거리를 적어놓았으니 자신에 체력을 감안해 산책코스를 조정하면 된다.

▼ 두 번째 스탬프보관함은 ‘거북바우’에 이르기 바로 직전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쉼터용으로 놓아둔 벤치에서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막걸리 한 잔을 불쑥 내민다. 선두를 맡고 있는 윤대장이 술꾼인 나를 위해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 어찌 윤대장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쉼터의 바로 곁에서 만나게 되는 ‘거북 바우(바위의 방언)’는 8코스의 주인공이다. 오죽했으면 ‘거북바우길’이란 이름까지 얻어냈겠는가. 바위는 거북이가 구학산을 향해 머리를 들고 기어오르는 듯한 모양새라고 한다. 예로부터 구학산에는 아홉 마리의 학과 함께 거북이(龜)가 살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는데, 그게 저 바위로 나타났는지도 모르겠다.

▼ 아래 사진은 반대방향에서 촬영한 ‘거북바우’다. 더 확실한 모양새가 나온다는 윤대장의 귀띔에 따른 것인데, 내 눈에는 그게 그거로 보일 따름이다. 그나저나 저 바위는 길조를 상징하는 학(鶴)에 장수를 의미하는 거북이(龜)가 더해진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걸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잠깐이나마 멈춰 서서 그 상서로운 기운을 받아가 보자.

▼ 탐방로는 길을 새로 내느라 고생한 흔적들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허리를 바짝 곧추세운 산비탈을 헤집으며 길을 내다보니 절벽의 위를 걷는 모양새가 되었다. 지자체는 그게 위태로워 보였던 모양이다. 산비탈 쪽에 밧줄난간을 설치해 안전을 도모했다.

▼ 걷기 딱 좋은 산길은 이후로도 계속된다. 그리고 철쭉동산(이정표 : 석동종점 5.2㎞/ 용소막성당 6.2㎞)과 산오리나무골(이정표 : 석동종점 4.7㎞/ 용소막성당 6.7㎞), 삼형제나무(이정표 : 석동종점 4.0㎞/ 용소막성당 7.4㎞) 등 주요 포인트를 지나자 아치형 게이트(이정표 : 석동종점 3.1㎞/ 용소막성당 8.3㎞)가 이제 산행이 끝났다며 길손을 맞는다. 반대편 게이트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40분만이다.

▼ 게이트를 벗어나 마을을 만나는가 싶으면, 이어서 잠시 후에는 구학산주차장에 내려선다. 이곳은 ‘구학산둘레숲길’의 출발지이자 도착지이다. 그래선지 주차시설 말고도 정자를 지어 내방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탐방을 마치고 내려오는 이들을 위해 ‘먼지 털이기’까지 설치하는 배려가 돋보인다. 안내도도 ‘치악산둘레길’이 아니라 ‘구학산둘레숲길’을, 그것도 비슷한 내용으로 두 개나 세워놓았다. 그저 외로운 이정표(8-3 : 석동종점 2.6㎞/ 용소막성당 8.8㎞) 하나만이 이곳이 치악산둘레길의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구학산주차장)임을 알려준다.

▼ 주차장을 벗어난 탐방로는 이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른다. 느티나무가 숲의 터널을 만들어주는 걸으면 걸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구간이다.

▼ 그래선지 주변의 건물들까지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도 너와로 지붕을 인 구학산방(펜션)이 특히 눈길을 끌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아래 사진은 ‘칠부능선’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었는데, 구학산방에 포함된 시설이 아닐까 싶다.

▼ 이후부터 탐방로는 전형적인 시골길(방학동길)을 걷게 된다. 개울가를 따라 내려가는데 중간에 두어 채의 전원주택(펜션일지도 모르겠다)을 만날 뿐, 길은 오롯이 산자락과 개울 사이를 헤집으며 나있다. 참! 중간에 갈림길을 두어 번 만났으나 이정표가 잘 되어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 구학마을경로당(이정표 : 석동종점 0.9㎞/ 용소막성당 10.5㎞)과 구학교회를 스치듯 지나면 ‘방학동버스정류장’이다. 주차장에서 25분쯤 떨어진 지점인데, 탐방로는 이곳에서 597번 지방도와 만난다. 그건 그렇고 이곳에는 비각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염신식(廉信植)의 처 ‘정선 전씨(旌善 全氏)’의 열행(烈行)을 기리기 위해 면민(面民)이 건립한 비각으로 안에는 열녀비(烈女碑)가 모셔져 있다. 함경도 출신의 부부로, 이곳 신림면 구미동으로 이주하여 단란하게 살다가 남편이 병들어 죽자, 절개가 굳은 아내가 남편이 죽은 방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은 채 식음을 전폐하다가 9일 만에 남편을 따라 죽었단다.

▼ 8코스의 날머리는 ‘석동 버스정류장(22번 버스 종점, 방학동정류장에서 0.7km 떨어진 지점)’이다. 방학동버스정류장에서 ‘백운’ 방면의 597번 지방도를 따라 잠시 걷다가 첫 번째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된다. 하지만 윤대장의 발걸음은 반대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석동 종점에 대형버스를 주차시킬 만한 공간이 없어 부득이 날머리를 변경했단다.

▼ 트레킹 날머리는 ‘구학리 희망캠핑장’(원주시 신림면 구학리 273)
신림방면으로 200m쯤 내려왔을까 도로변에 ‘희망캠핑장’이 들어서있다. 1996년 폐교된 구학분교(신림초등학교)의 시설을 보수해 문을 연 캠핑장이다. 구학리 마을청년회에서 운영한다는데, 마음씨 좋게도 캠핑장 시설의 이용을 허용해주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3시간을 걸었다. 물론 간식을 먹느라 쉬었던 시간은 뺐다. 핸드폰의 앱에 찍힌 거리는 11.53km. 코스의 대부분이 산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무척 빨리 걸은 셈이다. 그만큼 걷기가 편했다는 얘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