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둘레길 5코스(서마니강변길)
여행일 : ‘21. 8. 28(토)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과 영월군 무릉도원면 일원
여행코스 : 황둔 찐빵마을→초치→중골 전망쉼터→서마니등산로 정상→송계교→서마니표지석→황둔 찐빵마을(거리 및 시간 : 10.4km/ 실제는 12.92km를 3시간 5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치악산을 크게 한 바퀴 도는 총 길이 140㎞의 둘레길로 치악산국립공원을 넘나든다. 치악산이 거느린 작은 산도 오르고, 원주혁신도시와 작은 산골 마을도 지난다. 11개의 코스로 나누어져 있는데 관할지자체도 세 곳이나 된다. 하여 원주시가 길 조성을 주도했고, 횡성군과 영월군이 거들었다. 치악산은 험하기로 소문난 산이다. 정상을 오르다 보면 ‘치’가 떨리고 ‘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낱말풀이까지 생겨났을 정도이다. 하지만 치악산둘레길은 다채로운 풍광을 감상하며 걷기 좋은 순한 길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은 104.5㎞에 이르는 원주 권역의 ‘서마니 강변길’을 걷는다. 경관이 빼어난 서마니 강변을 따라 걷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그보다는 매봉산과 희봉산을 잇는 능선의 일부분을 걷는 게 주를 이룬다. 이때 자작나무, 소나무, 낙엽송 등이 어우러진 명품 숲길을 따라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 들머리는 황둔초등학교 앞 주차장(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350)
중앙고속도로 신림 IC에서 내려와 88번 지방도를 타고 영월방면으로 달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신림터널이 나오고, 계속해서 주천면 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찐빵으로 유명한 ‘황둔마을’에 이르게 된다. 마을로 들어가기 직전 왼편에 황둔초등학교가 보이는데, 학교 앞에 조성해놓은 커다란 주차장이 오늘 트레킹의 들머리이다.
▼ 5코스인 ‘서마니 강변길’은 찐빵으로 유명한 ‘황둔마을’이 들머리와 날머리를 겸한다. 원래의 들머리는 ‘초치 고갯마루’. 초치를 출발해 황둔마을에 이르는 10.4km짜리 구간이지만, 초치 고갯마루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곳 황둔마을에서 40분 정도를 올라가야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고도를 260여m나 높여야만 한다.
▼ 학교 앞은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었다. 각종 놀이기구를 배치했는가 하면,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특히 목책까지 둘러놓은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한 줄기에서 여러 개의 가지가 갈려나오는 만지송(萬枝松)을 쏙 빼닮았는데, 명품송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겠다. 전국의 유명 명품송들에 조금도 뒤질 게 없어 보이니 말이다.
▼ 들머리는 주차장의 오른쪽 귀퉁이에서 열린다. 황둔초등학교 울타리를 따라가다 자그만 인도교를 건너면 황둔중학교 앞. 이후부터는 마을안길인 ‘중골길’을 따르면 된다.
▼ 마을을 벗어나자 강원도의 풍경이 여과 없이 펼쳐진다. 강원도의 특산물 하면 감자와 옥수수를 꼽는 게 보통이다. 예로부터 죽으로 끓여먹고 떡으로 빚어먹고 부침개로 해먹었을 정도로 자주 상에 올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하나를 더하라면 비탈에서도 잘 자라는 고추가 아닐까 싶다. 그 가운데 옥수수와 고추가 길 양쪽에서 자라고 있으니 이만하면 전형적인 강원도 풍경이 아니겠는가.
▼ 길은 개울을 따라 나있다. 웃자란 잡초에 가려 드러나진 않지만 물소리가 제법 사납다. 연일 계속되는 장마에 물이 불어났다는 증거일 것이다.
▼ 길을 나선지 15분쯤 지났을까 산비탈에 들어선 한옥 몇 채가 눈에 들어왔다. ‘한림한옥’이라는 펜션인데 저런 한옥들 말고도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너와집에서도 하룻밤 머물 수 있단다.
▼ 길은 점차 경사도를 높여간다. 길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개울도 이에 뒤질세라 낙차를 부풀린다. 그리고는 곳곳에서 크고 작은 폭포를 만들어낸다. 단조로울 수밖에 없는 골짜기가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 한림한옥에서 10분쯤 더 걸으면 탐방로가 임도를 벗어나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그렇다고 오솔길은 아니다. 비포장이라서 조금 거칠어지기는 했지만 널찍한 것이 임도나 다름없다.
▼ 길은 고운 편이다. 산속으로 들어섰는데도 여전히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둔초등학교에서 초치까지의 거리가 2.6km나 되다보니 260m 정도의 고도는 느긋이 끌어올려도 되는 모양이다.
▼ 오르는 도중 컨테이너와 움막집 등 사람이 살았음직한 흔적도 만날 수 있었다. 산을 내려오고 있는 동네 주민들도 몇 눈에 띄었다. 손에 들린 버섯자루가 제법 묵직한 걸 보면 얻을 게 제법 많은 산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40분. 5코스(서마니 강변길)가 시작되는 ‘초치(初峙·620m)’에 올라섰다. 옛날 송계·황둔마을 주민들이 안흥장을 보러 다닐 때 넘어 다니던 고갯마루이다. 참! 반대편 4코스(노구소길)의 ‘두산임도’에는 중치와 말치라는 2개의 고개가 더 있다고 했다. 이곳 초치를 포함해서 넘어가는 순서에 따라 붙여진 지명이라고 보면 되겠다.
▼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한 고갯마루에는 어지럽다 싶을 정도로 많은 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이정표(황둔 하나로마트 10.4㎞/ 태종대 26.5㎞). 순방향(5코스, 푸른색)과 역방향(4코스, 붉은색)의 색깔을 각기 다르게 입힌 게 눈길을 끈다. 둘레길 지도도 눈에 띈다. 종합안내도를 가운데에 두고 양옆에 4·5코스의 지도를 배치했으니 꼼꼼히 살펴보는 지혜를 발휘해보자.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 ‘5코스(서마니강변길)’는 원주굽이길(총 30개 코스 400㎞)의 16코스인 ‘황둔쌀찐빵길’과 겹친다. 다만 황둔찐빵길의 출발지가 ‘초치’가 아닌 황둔리의 ‘소야버스정류장’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서마니강변길에다 황둔마을에서 초치까지의 어프로치구간을 합친 것이 ‘황둔찐빵길’이라고 보면 되겠다.
▼ 아치형 대문으로 들어서면서 5코스가 시작된다. 그동안 만나왔던 문들은 어김없이 산길이 시작되거나 끝나는 지점에 세워져 있었다. 그러니 5코스는 시작부터 산길인 셈이다.
▼ 잠시 후 탐방로는 자작나무와 나란히 걷는다. 자작나무 숲속을 헤집으며 길을 내놓은 것이다. 조림한지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환한 자작나무를 바라보며 걷다보면 마음마저 밝아지는 기분이다.
▼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른 낙엽송(일본잎갈나무)도 나도 있다며 고개를 내민다. 땅속에 진흙과 잔모래가 많이 섞여 있을수록 자람이 좋다고 했으니 저 나무들은 자리를 잘 잡은 셈이다. 하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 낙엽송 군락지를 지나자 또 다시 얼굴을 내미는 자작나무 숲. 이 구간에는 야자매트를 깔아놓았다. 그런데 계단 모양의 생김새가 눈길을 끈다. 궁여지책(窮餘之策).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가파른 경사가 만들어놓은 지혜가 아닐까 싶다.
▼ 초치를 출발한지 15분 만에 ‘중골전망대’에 올라섰다. 5코스의 산길 구간에서 유일하게 시야가 열리는 곳이다. 쉼터를 겸한 전망대를 만들어놓은 이유일 것이다. 참고로 이 구간은 매봉산(1,095m)에서 회봉산(回峰山·764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별도의 이름이 붙었지만 모두 치악산이라는 명산의 테두리이다. 5코스가 ‘치악산둘레길’에 포함된 이유일 것이다. 이런 명산에 나있는 둘레길이라면 더러는 속으로 깊이 들어와 걸어야 제 맛일 것이다. 거기에 땀 한 방울과 거친 숨소리 한 번 더해지면 금상첨화일 게고 말이다. 걷는 길에 노고가 더해져야만 볼 수 있는 그런 풍광을 이 구간에서는 걷는 내내 감상할 수 있다.
▼ 전망대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은 그야말로 첩첩산중 한가운데에 갇혀 있는 기분이다. 발아래로는 아까 올라왔던 중골계곡, 그 뒤로 감악산을 비롯한 강원도의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주천강에 에워싸여 반도 모양을 만들어낸다는 ‘서마니’까지 내려다보이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그런 풍광은 산행이 끝날 때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이곳은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낯익은 표지기가 눈에 띄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둘레길 도반인 허총무. 총무가 직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 산꾼이다. 또 다른 이는 그녀와 항상 붙어 다니는 여성분인데 표지기까지 매달고 다니는 걸 보면 보통 산꾼은 아니라는 얘기일 것이다.
▼ 다시 길을 나선다. 이후로 나타나는 탐방로는 대부분 왔다갔다 ‘갈 지(之)’자를 쓰면서 능선을 오르내린다. 그런데 그 폭이 하도 크다보니 경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맞다. 둘레길은 봉우리를 향해 가열차게 오르지 않는다는 게 등산로와 다른 점이다. 그러니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을 감상하거나 길벗과 담소 나누며 느긋하게 걸으면 되겠다. 그 벗이 오늘은 외씨버선길 도반이었던 ‘갑장(甲長)’이 되어주었다. 거의 모든 스냅 사진에 등장하는 분인데 챙겨온 소주 한잔 권하겠다며 초반부터 속도를 나에게 맞추고 있었다.
▼ 탐방로는 능선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길을 넓게 내다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 능선은 오른편(동쪽)은 원주시(신림면 송계리). 그리고 왼편(서쪽)은 영월군(무릉도원면 두산리)을 끼고 이어진다. 이 능선을 두고 원주산꾼들은 시계(市界), 영월군 산꾼들은 군계(郡界) 종주코스로 이용하고 있단다.
▼ 중골전망대를 출발한지 25분 만에 첫 번째 갈림길을 만났다. 이정표(골안골정상 0.8㎞/ 황둔하나로마트 8,2㎞/ 초치 2.2㎞)의 방향표시는 왼편.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오른편은 계야마을(송계리)로 연결되는 임도이다. 곧이어 나타나는 다른 삼거리(이정표 : 물안골정상 0.7㎞/ 초치 2.3㎞)에서는 오른편 방향이다.
▼ 산허리를 돌아가자 나타나는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골안골정상 0.4㎞/ 초치2.6㎞). 앞장서서 걷던 도반이 갑자기 걸음을 멈춰버린다. 산악회에서 깔아놓은 방향표시지가 이상하다면서 말이다. 며칠 전 이대장이 다른 산악회를 따라왔다가 우리를 위해 깔아놓은 모양인데 이게 독이 되어 버린 셈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나 할까?
▼ 조금 더 걷자 외딴집이 나타났다. 해발 600m의 고지대, 그것도 사람의 발길이 뚝 끊긴 이런 오지에 사람이 살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집 앞까지 뚫린 임도 덕분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탐방로는 외딴집 앞(이정표 : 골안골정상 0.2㎞, 황둔하나로마트 7.6㎞/ 초치 2.8㎞)에서 180도에 가깝게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 중골전망대를 출발한지 45분 만에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들어앉은 ‘골안골 정상’에 올라섰다. 트레킹을 시작한지는 2시간이 지났다. 핸드폰의 앱에 찍힌 고도는 717m. 5코스 전 구간을 통틀어 가장 높은 지점이라선지 이곳에도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덕분에 함께 걷던 갑장, 그리고 뒤따라온 후미대장과 함께 준비해간 술로 여독을 달랠 수 있었다. 특히 후미대장이 내놓은 연태고량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이런 맛에 트레킹을 나서는 모양이다.
▼ 펑퍼짐한 게 산봉우리는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5코스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라는 것까지 부정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서마니등산로 정상’이라고 적힌 팻말을 걸어놓은 이유일 것이다.
▼ 이곳에도 스탬프보관함이 세워져 있었다. 이정표(송계교 2.5㎞, 황둔 하나로마트 7.4㎞/ 초치 3.0㎞)는 걸어온 거리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거리가 두 배나 더 길다고 적고 있는데도 말이다. 치악산둘레길이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라 하겠다. 여느 다른 둘레길들과는 달리 쉽게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스탬프 보관함을 설치해 놓은 것이다.
▼ 쉴 만큼 쉬었으니 또 다시 길을 나설 차례. 송계교 방향으로 잠깐 내려서니 발아래로 ‘구절양장(九折羊腸)’의 산길이 펼쳐진다. 양의 창자처럼 이리저리 꼬부라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풍경이 아닌가. 맞다. 8년 전 은퇴기념으로 떠난 장가계에서 만났던 통천대도(通天大道: 하늘로 통하는 길)가 꼭 저랬었다. 하늘과 연결된다는 ‘천문동’으로 올라가는 아흔아홉 구비의 차도인데, 길의 양쪽이 천애절벽이라는 것만 빼면 눈앞에 펼쳐지는 저 생김새와 비슷했었다.
▼ 깊은 산속이니 산짐승의 놀이터 하나쯤 없겠는가. 옹달샘이 아니라 탐방로를 만들면서 우연히 생긴 웅덩이이나 산짐승 친구들이 목을 축이기에는 충분하다 하겠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 잠시 후 또 다른 구절양장의 도로가 나타난다. 아까 것만은 못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경이의 눈초리로 바라보기에는 충분하다. 아니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놓아두기에는 아까운 풍경이다. 길가의 나무를 관목(灌木)으로 바꾸는 등 조금만 더 치장을 한다면 세상에 내놓을만한 풍경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 ‘갈 지(之)’자 행보를 끝낸 산길은 이제 한없이 부드러워 진다. 경사가 느껴지지 않는 널따란 임도가 이어지는데, 가끔가다 개울을 만나기도 하지만 물이 적어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다. 이런 길은 일행들과 도란도란 얘기라도 나누며 걸으면 최상이 아닐까 싶다. 그게 아니라면 원시에 가까운 숲이 만들어내는 정취에 흠뻑 취해보면 될 일이고 말이다.
▼ 하산을 시작한지 40분 만에 ‘대교펜션’에 도착했다. 서마니 강변 말고도 희봉산의 들머리가 되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꽤 입소문을 탄 펜션이다. 널따란 뒷마당에서 족구에 열중인 젊은이들이 그 증거이겠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만나게 되는 411번 지방도와의 접점에는 치악산둘레길의 이정표(황둔 하나로마트 4.9㎞/ 초치 5.5㎞) 말고도 ‘숲속트레킹길’ 팻말 등 잡다한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 이곳은 원주굽이길(16코스인 황둔쌀찐빵길)의 완주 인증지점이기도 하다. 치악산둘레길과는 달리 원주굽이길은 도로변에다 스탬프보관함을 설치해놓은 것이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살짝 맛만 보고 완주했다며 우겨대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마니 관광안내판도 보인다. 4.1km 길이의 산책로가 들어간 지도에다 눈여겨 볼만한 풍경과 함께 숙박업소들을 그려 넣었다.
▼ 다리 건너는 ‘무릉도원면(영월군)’이다. 이름처럼 산천경개가 빼어나다고 알려진 지역인데, 특히 도안지(桃安地)라는 곳은 한번쯤 꼭 찾아볼만 하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로 시작되는 ‘회고가(懷古歌)’의 저자인 원천석(元天錫, 1330~?)의 피신처이기 때문이다. 태종대에 머물던 그는 자신을 찾는 왕을 피해 학산천마을의 도안지로 몸을 숨겼다고 전해진다.
▼ 송계교(kakaomap은 ‘두학교’로 표기하고 있다) 앞에서 도로를 횡단한 탐방로는 이제 411번 지방도를 따른다. 통행량이 제법 많은 도로이나 목제 탐방로를 별도로 만들어 놓았으니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꽃망울을 활짝 연 코스모스나 구경하면서 걸으면 될 일이다. ‘아름답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kosmos’에서 유래된 꽃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눈이 호사를 누릴 테니 말이다.
▼ 그래서 오늘의 꽃은 ‘코스모스’로 꼽아봤다. 요즘처럼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이기 때문이다. 소슬바람에 하늘하늘 움직이는 모습이 예쁜 꽃. 그게 소녀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꽃말도 ‘소녀의 순정’이란다. 한 송이 꺾어 사랑하는 이의 머리에 꽂아주기 딱 좋은 꽃이라 하겠다.
▼ 왼편에서 ‘서마니강’이 함께 보조를 맞춘다. 5코스는 ‘서마니 강변길’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서마니 강변은 전체 구간의 1/4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도 이름을 삼았다는 것은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너른 너비의 빠른 물살이 단애를 끼고 통쾌하게 흐르는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그런 심정을 눈치라도 챘나보다. 강가에 전망대를 만들고 정자까지 지어놓았다. 전천후 전망대인 셈이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서마니강은 주천강(酒泉江)의 일부분이다. 이왕에 나왔으니 주천의 내력도 살펴보자. 옛날 주천면 지역에 술이 솟는 바위샘이 있었는데, 양반이 잔을 들이대면 청주(淸酒)가, 천민이 잔을 들이대면 탁주(濁酒)가 솟았다. 어느 날 한 천민이 양반 복장을 하고 잔을 들이대며 청주를 기대했지만, 바위샘이 이를 알아채고 탁주를 쏟아 냈다. 천민이 화가 나서 샘을 부숴 버리자 이후부터는 술 대신 맑은 물만 흘러나와 강이 되었다 한다.
▼ 전망대 앞은 야외 수영장으로 개방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수영장이 또 있을까 싶다. 강물에 깎이고 세월이 쌓여 형성된 기암괴석과 흰 모래톱 사이로 미끄러지듯 흐르는 강물만 해도 충분하련만 그 뒤를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기 때문이다. 호사스런 물놀이란 바로 저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 잠시 후 ‘섬안교’에 이른다. 다리를 건너면 영월군의 ‘무릉도원면’인데, 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신선이 놀았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요선정(邀仙亭)과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인 법흥사(法興寺)를 만날 수 있다.
▼ 다리 근처에도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물놀이장의 출입구 역할까지 겸하는 모양이다. 코로나-19 팬데믹(COVID-19 pandemic)이 만들어낸 새로운 풍속도. 즉 출입자 명부와 손 소독제가 놓여있는 걸 보면 말이다.
▼ 아니나 다를까 강물에 부표를 띄워 깊은 곳으로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근처 도로변에는 ‘다슬기’를 판다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또한 이 부근에서는 다슬기잡이 체험도 가능하단다. 서마니강의 물이 그만큼 맑다는 증거일 것이다. 다슬기라는 게 본디 중·상류지역의 깨끗하고 유속이 빠른 곳에 서식하지 않겠는가.
▼ 도로변에는 꽤 많은 숙박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것도 도시 근교의 별장들처럼 하나같이 잘 지어놓았다.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야 만날 수 있었던 오지마을이 지금은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증거일 것이다.
▼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서마니 표지석’이 환영한다며 길손을 맞는다. kakaomap에 ‘서마니강 수변공원(이정표 : 황둔 하나로마트 3.7㎞/ 송계교 1.2㎞, 초치 6.7㎞))’으로 표기된 지점이다. 하지만 정자와 간이화장실 외에는 이렇다 할 시설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웃자란 잡초들이 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표지석 뒤에서 서마니강은 황둔천의 물길을 보탠다. 그리고는 회돌이를 치면서 돌아나간다. 이게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을 그려내는데, 그 모양새가 흡사 산을 섬처럼 안고 있는 형상이란다. ‘섬 안이 강’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이다. 소리 나는 대로 부르다 보니 ‘서마니강’이나 ‘서만이강’으로 변하기도 했다. 아무튼 저런 특이한 모양새로 인해 인근에 펜션이나 캠핑장이 많이 들어섰고, 여름철이면 피서를 나온 야영객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 잠시 후 의외의 곳에서 아치문을 만났다. 다른 코스들은 산길 구간의 들머리와 날머리에서만 만났었는데, 5코스는 강가에다 세워놓았다.
▼ ‘두물머리’부터는 서마니강과 헤어져 황둔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니 황둔천과 411번 지방도의 사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그러다가 ‘계야강’ 버스정류장을 지나자마자 도로와 헤어져 강둑(이정표 : 황둔 하나로마트 3.1㎞/ 초치 7.3㎞)으로 올라선다. 송계교에서 30분쯤 걸리는 지점이다.
▼ 유치교(이정표 : 황둔 하나로마트 2.8㎞/ 초치 7.6㎞)과 정자쉼터(이정표 : 황둔 하나로마트 2.4㎞/ 초치 8.0㎞)를 차례로 지난다. 송계리의 자연부락 중 하나인 ‘계야(桂野)’마을인데, 원주의 또 다른 명산인 감악산(紺岳山, 945m)을 바라보며 걷는 재미가 나름대로 쏠쏠한 구간이다. 강원도에서는 보기 힘든 송계리의 널따란 들녘도 잠깐의 눈요깃감으로는 충분하다.
▼ 특이하게 생긴 물막이가 있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가뭄이나 홍수에 관계없이 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도록 물고기 전용의 계단식 수로를 만들었다. 물고기들의 삶의 현장인 저 물길은 서만이강물과 합쳐 풍성해지면서 주천강이 되고, 평창강과 합쳐져 서강을 이룬다. 서강이 다시 동강과 합쳐져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가 한강이 시작된다.
▼ 둑방길로 들어선지 35분. 솟대로 둘러싸인 물놀이장을 만났다. 첨부된 지도에 정자쉼터(이정표 : 황둔 하나로마트 0.6㎞/ 초치 9.8㎞)로 표기된 지점인데, 정자와 풋살장까지 갖춘 게 영락없는 유원지다.
▼ 물놀이장을 지난 탐방로는 또 다시 411번 지방도로 올라선다. 송계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삼송(三松)’마을이다.
▼ 잠시 후 만나게 되는 황둔·삼송마을 농촌체험관은 황토로 치장된 일종의 펜션이 아닐까 싶다. ‘팜스테이’라는 간판도 내걸고 있는 걸 보면 황토방에서 머물면서 이 마을에서 제공되는 각종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해보는 공간이 분명하다. 찐빵마을이니 찐빵 만들기 체험은 필수. 그밖에도 식물원 관람과 농작물 수확, 맨손으로 숭어잡기 등의 다양한 체험이 제공된단다.
▼ 날머리는 황둔초등학교(원점회귀)
황둔삼거리에 들어서자 찐빵집 간판을 내건 점포들이 꽤 여럿 보인다. 찐빵하면 사람들은 ‘안흥’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지만 요즘은 이곳 황둔마을도 찐빵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특히 이곳은 문을 연 찐빵집마다 고유한 맛과 향기를 뽐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제각기 다른 반죽재료와 찐빵 속 앙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쌀·흑미·잡곡·검은깨·단호박·고구마·옥수수·쑥·백년초 등 사용되는 재료에 따라 찐빵의 색깔이 달라지므로 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단다. 그러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선물용 한 상자를 챙겨들고 날머리인 황둔초등학교로 향한다. 그나저나 오늘 트레킹은 3시간 50분이 걸렸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은 12.92km를 찍고 있다. 대부분의 구간이 산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은 셈이다.
▼ 귀경길, 산악회 배려로 원주 시내에 있는 ‘박경리 문학공원’에 들를 수 있었다. 박경리 선생이 18년간 살았던 공간을 공원으로 꾸몄는데, 한국문단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칭송받고 있는 소설 ‘토지’가 이곳에서 완성됐단다. 공원은 옛집과 정원을 원형대로 보존함으로써 박경리 선생의 생활 자취를 엿볼 수 있게 했으며, 주변은 소설 토지의 배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3개의 테마공원(홍이동산·평사리마당·용두레벌)으로 꾸몄다.
▼ 박경리 선생의 생활모습을 재현해 놓았다는 생가를 둘러보는 것은 시간이 없어 생략. 손자를 위해 손수 만든 연못과 그녀가 직접 가꾸었다는 텃밭도 함께 통과다. 대신 그녀의 작품들을 적어 넣은 팻말 몇 개를 읽어보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 ‘소설 토지학교’라는 교육과정도 있나보다. 서간문 형식을 빌려 쓴 수료생의 작품을 프린팅한 깃발들이 여럿 바람결에 나부끼고 있었다.
'국내여행(트레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현들의 삶과 지혜가 배어 있는 십승지 과수원길, 소백산자락길(2자락) (0) | 2021.12.20 |
---|---|
구학산의 아름다운 둘레숲길을 따라 걷는, 치악산둘레길 8코스(거북바우길) (0) | 2021.10.04 |
슬로시티에서 모처럼의 여유를 부리다. 예산의 ‘느린 꼬부랑길’ (0) | 2021.08.17 |
왕의 마음되어 역사의 길을 걷다. 치악산둘레길 3코스(수레너미길) (0) | 2021.08.02 |
청정 골짜기를 거슬러 689고지를 넘다. 치악산둘레길 2코스(구룡길) (0) | 2021.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