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호(神井湖) 둘레길

 

여행일 : ‘21. 6. 26(토)

소재지 : 충남 아산시 영인면

여행코스 : 공원관리소→옥련암→수변산책로→연꽃단지→느티나무쉼터→안산→남산터널↔남산(왕복)→조각공원(소요시간 : 8.48km/ 2시간 45분)

 

함께한 사람들 : 기분좋은 산행

 

특징 : 신정호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담수면적 92ha의 인공호수다. 해방 이후 관광지로 사랑받던 저수지는 관광트렌드의 변화로 한때 침체를 겪기도 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지금처럼 아름다운 호수로 다시 태어났다. 현재의 호수는 한마디로 잘 가꿔놓은 정원처럼 예쁘고 아기자기하다. 아름다운 호수는 기본. ‘장미터널’이나 ‘능소화터널’처럼 꽃을 주제로 한 터널들이 연이어 나타나는가 하면, 꽃망울을 활짝 연 연꽃단지도 드넓게 펼쳐진다. 물놀이장과 염소와 토끼 등을 사육하는 ‘작은 동물원’을 만들어놓아 어린이들에게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거기다 접근성까지 뛰어나서 사시사철 탐방객들로 넘친단다.

 

▼ 들머리는 신정호수 공원관리소(아산시 영인면 신화리 산 3-7)

평택·파주고속도로(평택-화성) 오성 IC에서 내려와 국도 38번과 39번을 연이어 타고 아산까지 내려온다. 시내로 들어가기 전 국교교차로(아산시 염치읍 곡교리)에서 국도 45호선, 행목교차로(신창면 행목리)에서는 623번 지방도로 갈아탄다. 마지막으로 킹스베리카페(아산시 초사동)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신정호관광지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이게 번거롭다고 생각할 경우 내비게이션에 ‘신정호생활체육공원 주차장’을 찍고 오면 된다.

▼ 호반을 따라 내놓은 4.8km의 둘레길은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호수가 넓은데다 호반을 따라 도로가 나있기 때문에 마음 내키는 지점을 골라 트레킹을 시작하면 된다. 산책로 곳곳에 주차공간이 조성되어 있어 차를 대기도 좋다. 하나 더. 신정호둘레길이 너무 짧다고 생각될 때는 저수지를 감싸고 있는 능선을 걸어볼 수도 있다. 호반에서 시작해 안산(183m)과 남산(145m)를 오른 뒤 다시 호반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두 봉우리를 잇는 능선을 따라 둘레길(청댕이길 및 남산길)이 산뜻하게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편 능선에도 ‘치학산’이 있다고 했으나 올라가보지는 못했다.

▼ 호수로 다가가자 ‘신정호수 수상레저&커피’가 눈에 들어온다. 수상스키를 탈 수 있는 곳인데, 수상스키 마니아들을 위한 카페도 겸하고 있단다. 넓은 호수를 가르며 수상스키를 즐기는 청춘들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 즐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스키 지나간 자리가 파도 되어 일렁이고, 그 물결을 따라 햇빛이 눈부시도록 반짝이는 풍경이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 오른편, 그러니까 제방(堤防)이 있는 방향으로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공원에서 권장하는 코스의 역방향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안산과 남산을 올라가보려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어버렸다. 산길의 날머리가 이곳 조각공원으로 연결된다니 어쩌겠는가. 참! 이곳은 걸음기부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빅워크 APP’를 내려 받고 걸으면 10m당 1원씩이 적립된단다. 걸음이 모이면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독서문화 활성화를 통해 충남지역 청소년들에게 기부한다니 기왕에 걷는 김에 한번쯤 참여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수상각’으로 여겨지는 건물은 텅 비어있었다. 이름 그대로 물 위에다 지어놓은 저 집은 한때 신정호 관광의 중심축이었다고 한다. 60~80년대만 해도 이곳 신정호는 서울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던 신혼 여행지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이 분위기 잡고 목을 축이던 유흥음식점이 바로 저 수상각이고 말이다. 흔적조차 사라져버린 ‘수정궁’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랄까? 아무튼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는 길재의 시는 바로 저런 풍경들 두고 읊었을지도 모르겠다.

▼ 꽃망울을 활짝 연 연꽃방죽 너머는 ‘충남 조종면허시험장’이다. 예당호나 탑청호 등 충남지역의 커다란 저수지들을 제키고 면허시험장이 들어서있다는 것은 그만큼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여기서 팁 하나. 해상에서 모터보트, 제트스키, 요트 등 동력수상레저기구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해양경찰청에서 실시하는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증을 취득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아두자.

▼ 잠시 후 ‘다솜다리’에 올라선다. 신정호의 옛 유원지에서 ‘보물섬(전에는 이곳에 라이브카페가 있었다고 한다)’으로 건너가는 다리이다. 2011년엔가 다리가 준공될 때 아산시에서 우리말 이름을 공모했고, 이때 제안된 여러 이름들 가운데 ‘다솜’이 선택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다솜’이란 애틋한 사랑이란 뜻을 갖고 있단다. 이 다리를 건너는 연인들에게 그 사랑을 꼭 이루고 지켜나가라는 격려차원에서 지어놓은 이름일까?

▼ 다리를 건넌 탐방로는 이제 저수지의 제방을 따른다. 시멘트로 포장을 해놓은 탓에 조금은 삭막해질 수도 있으나, 길가를 코스모스 꽃밭으로 가꾸어 그런 느낌을 없애버렸다.

▼ 둑에는 가을의 전령이라는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하지만 입추(立秋)는 아직도 한 달도 더 남았다. 세상이 하수선하다보니 꽃들마저도 이젠 계절감각을 잃어가나 보다.

▼ 제방 위를 걷다보면 예스런 풍경 하나가 눈에 띈다. 1920년대 후반 신정호를 축조하면서 함께 만들어진 취수탑이라고 한다. 놀라운 건 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저 시설물이 일본인들이 만들 당시의 모습 그대로라는 것. 일본인들은 싫어도 그들의 기술력에는 탄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 취수탑 너머로는 신정호가 기다랗게 펼쳐진다. 원래의 명칭은 ‘마산저수지’. 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수몰된 ‘마산’이란 마을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후 ‘신정관’이란 온천과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경남철도주식회사가 저수지에 수상각을 지었는데, 신정호라는 이름은 저수지가 신정관의 부속시설로 이용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제방의 끄트머리에 있는 ‘연춘’이라는 장어구이 전문집을 왼편 옆구리에 끼고 모퉁이를 돌아서자 ‘옥련암’의 표지석이 얼굴을 내민다. 저곳은 ‘치학산’으로 올라가는 들머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답사는 그만두기로 했다. 정상을 철망울타리로 둘러쳐 진입을 못하도록 해놓았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 듯해서이다. 신도리코 선대 회장의 묘가 있어 산 전체에 철망이 쳐져 있더라는 것이다.

▼ 둘레길은 탄성도가 가장 높다는 ‘우레탄’을 깔았다. 그러니 오래 걷는다고 해서 무릎에 부담갈 일도 없다. 우리처럼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걷기에 딱 좋은 환경이라 하겠다. 참! 수변산책로의 일부 구간은 나무데크를 깔기도 했단다. 하지만 나머지 반을 등산로를 이용한 탓에 직접 걸어보지는 못했다.

▼ 둘레길의 총 길이는 4.8km. 성인을 기준으로 할 때 빠른 걸음으로 1시간이면 족하다. 만일 천천히 걷겠다면 거기다 30분 정도만 더하면 되겠다. 1km 간격으로 안내판을 세워져있어 자신이 얼마큼 왔는지, 또 앞으로 얼마를 더 걸어야하는지 길잡이가 되어준다.

▼ 이곳은 ‘신정호 국민관광단지’. 이름에 걸맞게 둘레길은 잘 꾸며져 있었다. 호숫가를 따라 숲을 조성하고 그 사이로 오솔길을 냈다. 정자와 벤치, 심지어는 화장실까지도 곳곳에 배치했다. 쉬엄쉬엄 걸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가슴에 담아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 유실수 단지도 들어서 있었다.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로 보이는데 나무마다 어린이 주먹만 한 크기의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기분 좋은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팻말 하나가 과목 밑에 세워져 있는 게 아닌가. ‘당신의 양심을 믿습니다.’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몰래 따가는 몰지각한 탐방객들이 꽤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정기적으로 소독을 하고 있다’는 경고판까지 세워놓았다.

▼ 제법 큰 복숭아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오뉴월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과는 달리 쨍쨍 내리쪼이는 햇빛을 속속 빨아들이며 탐스러운 결실을 준비하고 있다. 맞다. 얼마 안 있으면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 시작된다.

▼ 신정호 가꾸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다리를 새로 놓은 등 곳곳에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 썩 마음에 들지 않는 풍경도 만났다. 탐방로에 로터리클럽이나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같은 단체들의 표지석을 여럿 세워놓은 것이다. 국민관광단지를 조성하는데 도움이라도 받았다면 차라리 그 내역을 적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 둘레길 주변에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카페나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개중에는 미식가들에게 호평을 받는 곳도 여럿 있단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호수가 다시 한 번 전모를 드러낸다. 이번에는 꼬맹이 섬까지 품은 채로다. 이렇듯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이 신정호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둘레길을 따라 걷다보면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45분. 출발지점의 반대편에서 연꽃단지를 만났다. 저수지 상류의 2만 평(66,115㎡)이나 되는 너른 부지에 총 11,082본(백연 1000, 수련 700, 홍연 7732, 황연 1650)의 연꽃을 심었는가 하면 전통정자와 원두막, 통나무벤치, 등의자 등 탐방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곳곳에 배치했다. 특히 LED등으로 꾸민 조명은 신정호관광의 백미로 알려진다. 조명 덕분에 한밤중에도 물가에서 은은한 미소를 비추는 연꽃의 자태를 엿볼 수 있단다.

▼ 연꽃이 넘실거리는 방죽의 가운데는 데크로드가 지나간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연꽃을 감상해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 신정호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연꽃’이다. 연꽃으로 유명한 다른 관광지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연꽃이 많이 심어져 있다. 홍련, 백련, 황련, 수련 등 다양한 연꽃들이 꽃망울을 열며 찾아온 이들을 화사하게 반긴다. 덕분에 사진촬영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자리매김 됐단다.

▼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 일곱 걸음을 걸을 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할 정도로 연꽃을 신성시한다. 불교라는 게 본디 자기 스스로 깨우쳐 부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연꽃의 피는 과정이 이와 같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진흙 속에서 꽃이 피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므로 불교에서는 교리를 설명하는 귀중한 꽃으로 여긴다.

▼ 연꽃단지에서 꽤 많은 시간이 지체됐다. 저렇듯 푸르른 연잎과 저리도 화사하게 피어난 연꽃들을 놓아두고 어찌 쉬이 발걸음이 떼이겠는가. 그런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챘는지 연꽃의 무리는 끝까지 나를 따라왔다.

▼ 주말이라선지 탐방객들이 무척 많았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부터 휠체어에 어머니를 모시고 나온 효녀, 나 홀로 걷기에 열중인 사람들. 사랑 뿅뿅 날리며 뛰고 있는 부부 등 다양한 형태의 삶들이 길 위에 묻어난다.

▼ 곱게 핀 연꽃에 눈 맞추며 걷던 집사람이 화들짝 놀라는 게 아닌가. 궁금해서 다가간 나는 더 놀라 도망까지 쳐버린다. ‘뱀 조심’. 이곳에도 뱀이 있는 모양이다.

▼ 신정호자연생태공원의 중심축인 ‘생태학습관(코로나로 문이 닫혔다)’이다. 생태공원은 저 학습관말고도 퀼리티 높은 숲속놀이터와 야생초화원, 습지연못, 생태수로, 식생천이원 등을 포함한다.

▼ 넝쿨장미나 등나무, 능소화 등으로 뒤덮인 터널도 여럿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하나하나가 만만찮은 풍광을 만들어낸다. 가로수 대용으로 심어놓은 메타세쿼이아를 배경삼아 한 폭의 풍경화로 승화되는 것이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다.

▼ ‘신정호’의 사계를 담은 사진틀이 있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도 만났다. ‘마산정(馬山亭)’. 호수의 옛 이름인 ‘마산저수지’에서 따온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정자에 올라 신정호의 자연경관을 편안하게 감상하며 심신을 치유해보라는 안내판의 문구가 무색하게도 입구를 막아놓았다. 못된 코로나라는 놈이 잠깐 여유까지도 막아버렸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10분.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나타난다. 나무 그늘 아래에 쉼터를 만들어 놓았는데,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안산·남산으로 올라가는 탐방로가 이곳에서 나뉘기 때문이다.

▼ 쉼터를 빠져나와 ‘신정호 자전거길’과 이차선도로인 ‘신정로’를 연거푸 가로지르면 또 다른 둘레길인 ‘청댕이길’이 시작된다. 산자락으로 파고드는 초입에 이정표(남산정상 1.6㎞/ 느티나무쉼터 0.1㎞)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 산길인 ‘청댕이길’을 선택한 덕분에 우린 물속에 아랫도리를 담그고 있다는 버드나무 숲을 구경하지 못했다. 청송의 주산지에 못지않은 풍경화가 그려진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예쁜 포토죤을 갖춘 수변산책로와 미로원, 수생식물전시장 등도 만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 참! 도로를 건너기 전 ‘아산 둘레길’의 안내도를 한번쯤 살펴보라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아산시가지 지도에다 남산길과 온천천길, 신정호둘레길 등 여러 둘레길들을 그려 넣었는데 잠시 후에 걷게 될 ‘청댕이길’도 이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산’을 ‘남산’으로 잘못 표기해놓은 아쉬움도 있다. ‘남산’은 남산터널에서 조금 더 가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산속으로 들어서면서 ‘청댕이길’이 시작된다. 느티나무쉼터 앞에서 시작하는 이 둘레길은 매봉산을 지나고 청댕이고개를 넘은 다음 이순신종합운동장으로 이어지는데 숲길을 걷다보면 아산의 대표 관광지인 신정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청댕이길’이란 이름은 시부모님에 대한 며느리의 효(孝) 전설이 깃든 ‘청댕이고개’에서 따왔다.

▼ 산속으로 들어선지 15분이면 첫 번째 삼거리(이정표 : 남산터널← 1.9㎞/ 623지방도로→ 0.9㎞/ 느티나무쉼터↓ 0.55㎞)를 만난다.

▼ 이번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반긴다. 탐방로는 일단 곱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 거의 없다. 거기다 솔가리까지 수북하게 쌓여 폭신폭신한 것이 여간 걷기에 좋은 게 아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산책코스라 하겠다.

▼ 그렇게 10분쯤 더 걷자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남산터널← 1.4㎞/ 갓바위→ 0.56㎞/ 느티나무쉼터↓ 1.02㎞)가 나온다. 2기의 돌탑으로도 모자라 태극기까지 휘날리는 곳인데, 돌탑에 적힌 문구가 눈길을 끈다. <날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 은혜, 보답을 못해드린 선생님 은혜, 밥 먹고 살게 해준 직장의 은혜, 내조에 늙어버린 내 아내의 은혜>. 이 얼마나 구구절절 옳은 얘기인가. 참! 이곳에서 오른편은 갓바위(갓쓴 바위)로 연결된다. 조강지처를 버려 벌을 받아 돌로 변하였다는 전설이 서린 바위이다.

▼ 이후로도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그러다가 10분쯤 지난 곳에서 4각의 정자를 만났다. 벤치까지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는데, 이곳이 안산의 정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이 안산의 정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시설물은 일절 눈에 띄지 않았다. 조망 또한 꽉 막혀있다.

▼ 정상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선답자의 표지기(리본) 조차 일절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가 남산공원 이용수칙 안내판에다 ‘안산(183m)’라고 끄적거려 놓았을 따름이다. 그러다보니 공공시설물에다 낙서를 한 몰지각한 행위까지 나무랄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이곳이 안산의 정상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렸을 게 뻔하니 말이다.

▼ 이제 남산으로 갈 차례이다.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따라 8분쯤 걷자 길이 둘로 나뉜다. 이정표(남산터널↖ 0.9㎞/ 이순신종합운동장(청댕이둘레길)↗ 3.1㎞)는 이곳에서 기존의 ‘청댕이길’과 헤어짐을 알려준다. 이후부터 탐방로는 ‘남산길’을 따른다.

▼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지던 탐방로가 갑자기 뚝 떨어진다. 무릇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히 비긴다. 오르내림의 길을 모두 지나고 나서 뒤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평해지는 것이다. 오래지 않아 오르막길이 나타날 것이란 얘기이다. 그건 그렇고 이 부근에 ‘남산길’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인 ‘쉼터전망대’가 있다고 했다. 안산시가지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멋진 전망대라는데 아쉽게도 우린 그냥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이를 알리는 이정표 하나 세워놓지 않았으니 초행자인 우리 부부야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 잠시 후 내려선 안부는 정자와 벤치로도 모자라 먼지 털이기까지 갖춘 명품 쉼터로 조성되어 있었다. 이정표(남산↑ 650m/ 신정호관광지← 0.17㎞/ 안산↓ 1.1㎞)의 꼭대기에 매달린 이정표가 이곳이 남산터널의 위임을 알려준다. 참! 신정호관광지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두자.

▼ 능선은 다시 가파른 오름짓을 시작한다. 아까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할 테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모아미래도아파트단지가 보이는 등 눈요깃거리가 있어 꼭 힘들지만은 않은 구간이다.

▼ 잠시 후 정자가 지어져 있는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남산↑ 0.2㎞/ 방축동←/ 남산터널↓ 0.4㎞)를 만났다. 이따 되돌아올 때 행여 이곳으로 해서 신정호관광지로 내려가 볼까를 고민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 남산터널 위를 통과한지 15분 만에 남산(145m)의 정상에 올랐다. 서너 평이나 됨직한 정상은 상운각(祥雲閣)이란 정자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다. 1943년 세종대왕이 온궁(溫宮)에 내려왔을 때 호종한 문신 이숙치(李叔畤)가 지은 ‘교전상운합(郊殿祥雲合) 영천난류청(靈泉暖溜淸)’이란 싯귀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정자이다.

▼ 정자에 올라 잠시 조망을 즐겨본다. 발아래로 아산시의 서쪽 외곽이 펼쳐지는데, 그 중앙에는 아산환경과학공원의 그린타워전망대가 놓여있다. 그린타워는 쓰레기 소각장 굴뚝을 활용한 전망대다. 150m 높이의 굴뚝에 1층은 전망대(망원경 6대), 2층은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으며, 주변에는 생태곤충원과 장영실과학관, 배미수영장, 풋살경기장 등 아산환경과학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 남산도 정상석은 세워져 있지 않았다. 그저 ‘남산 정상(145m)’란 이름표를 매단 이정표(팔각정 0.8㎞/ 남산터널 0.6㎞)가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 남산터널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향한다. 이어서 잘 다듬어진 산책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자 조각공원이 길손을 맞는다. 공간이 무척 넓어서 별빛축제 등 아산의 대규모 주요행사가 주로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널따란 잔디밭에는 음악분수와 야외음악당, 인공암장, 항일민족운동자료전시관, 캠핑장 등 꽤 많은 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중 잔디밭 곳곳에 세워놓은 조각품들을 공원의 이름으로 삼은 모양이다.

▼ 조각공원의 얼굴은 음악분수가 아닐까 싶다. 직경 43m의 분수대에다 파워앰프와 스피커 등을 설치해 음악소리에 맞춰 분수가 뿜어지도록 했단다. 하지만 음악소리는 들리지 않고 대신 시원한 물소리만 실컷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160여개의 조명이 만들어낸다는 빛의 잔치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 건강을 위한 ‘지압보도’도 설치되어 있었다. 발은 신체의 축소판이자 제2의 심장이라고 했다. 신발을 벗어들고 한번쯤 걸어볼 일이다.

▼ ‘조각공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꽤 많은 조각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술에 문외한인 내게는 모두가 다 그게 그거다. 처삼촌 벌초하듯이 대충 곁눈질로 살펴보며 지나치는 이유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신정호둘레길 탐방이 끝났다. 한 바퀴 도는데 걸린 시간은 2시간 45분. 핸드폰의 앱은 8.48km을 찍고 있다. 눈에 담을만한 볼거리들이 제법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제법 빨리 걸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