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둘레길 1코스(꽃밭머리길)
여행일 : ‘21. 7. 10(토)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과 소초면 일원
여행코스 : 국형사주차장→성문사→관음사→원천석 묘역→황골삼거리→하초교→제일참숯 주차장(거리 및 시간 : 11.2km/ 실제는 10.45km를 2시간 5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치악산을 크게 한 바퀴 도는 총 길이 140㎞의 둘레길로 치악산국립공원을 넘나든다. 치악산이 거느린 작은 산도 오르고, 원주혁신도시와 작은 산골 마을도 지난다. 11개의 코스로 나누어져 있는데 관할지자체도 세 곳이나 된다. 하여 원주시가 길 조성을 주도했고, 횡성군과 영월군이 거들었다. 치악산은 험하기로 소문난 산이다. 정상을 오르다 보면 ‘치’가 떨리고 ‘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낱말풀이까지 생겨났을 정도이다. 하지만 둘레길은 다르다. 다채로운 풍광을 감상하며 걷기 좋은 순한 길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은 104.5㎞에 이르는 원주 권역의 첫 번째 구간인 ‘꽃밭머리길’을 걷는다. 이 구간은 울창한 소나무 숲속을 헤집으며 길이 나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 숲속에는 국형사와 관음사, 보문사 같은 사찰들이 여럿 들어앉았다. 고려 말의 충신인 운곡 원천석의 얼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 들머리는 국형사 주차장(원주시 행구동 98)
영동고속도로 원주 IC에서 내려와 국도 5호선 원주·제천 방면으로 내려오다 행구교차로(원주시 행구동)에서 빠져나와 ‘행구로’로 옮긴다. 곧이어 만나는 ‘이마트24’ 앞 삼거리에서 오른편 ‘고문골길’을 타고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국형사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시간이 없어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국형사(國亨寺)는 신라 경순왕 때 무착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원래의 이름은 고문암(古文庵). 조선 태조 때 국형사로 세를 확장했다. 창건연대가 신라시대라고 하지만 이를 증명하는 당시의 유물이나 유적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는 것도 알아두자.
▼ 한반도 중부의 내륙산간에 위치한 치악산은 16번째로 지정(1984년)된 국립공원이다. 면적은 175.668㎢, 주봉인 비로봉(1,288m)을 중심으로 동쪽은 횡성군과 영월군, 서쪽은 원주시와 접하고 있다. 이 치악산의 둘레를 한 바퀴 돌며 역사·문화·생태자원을 직접 느껴볼 수 있도록 내놓은 길이 ‘치악산둘레길’이다. 2019년 4월 1단계(1~3코스)로 33.2㎞의 개통한데 이어, 2021년 5월 2단계(4~11코스)로 106.0㎞를 추가 개통함으로써 전체 11개 코스, 총연장 139.2㎞가 완성됐다.
▼ 1코스인 ‘꽃밭머리길’은 국형사를 출발 성문사와 관음사, 꽃밭머리, 원천석 묘역, 황골마을을 거쳐 제일참숯에 이르는 11.2km 거리의 둘레길이다. 이 구간의 특징은 마을길과 산길은 번갈아가며 걷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덕분에 보기만 해도 머물고 싶어지는 전원주택들과 솔향기 풀풀 넘치는 소나무 숲을 번갈아가며 만나게 된다. 두어 개의 사찰과 절개의 상징인 원천석의 묘역은 덤으로 쳐도 되겠다.
▼ 들머리는 주차장의 한쪽 귀퉁이에서 열린다. 아치형 대문 앞에 이정표(제일참숯 11.2㎞)와 함께 ‘치악산둘레길 종합안내도’ 및 ‘꽃밭머리길 안내도’를 세워놓았으니 길을 나서기 전에 한번쯤 살펴보는 지혜를 발휘해보자.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 대문 너머의 바닥은 나무 데크를 깔아 장애인들도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널찍한 쉼터도 만들어두었다. 쉬엄쉬엄 걸으며 산천경개를 감상해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 하지만 데크 로드는 오래가지 않는다. 갈림길이 나오자마자 오솔길로 변해버린다. 이런 갈림길을 유난히도 자주 만나는 게 ‘치악산둘레길’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길 찾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빠짐없이 이정표를 세워놓았으니 ‘제일 참솣’ 방향으로만 진행하면 된다.
▼ 무장애 길은 맛보기였던 모양이다. 오래지 않아 개울이 나타나는가 하면 침목계단이 가지런히 놓여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탐방로는 한마디로 곱다. 비탈진 곳은 계단을 놓고 질척거리는 곳에는 야자매트를 깔아 남녀노소가 큰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했다.
▼ 개울을 지나면서 탐방로는 순수한 오솔길로 변한다. 산자락의 아랫도리를 따라 내놓은 구불구불한 산길이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힘들이지 않고도 걸을 수 있는 수월한 구간이지만 이마저도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는 작은 쉼터도 여럿 만들었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벤치를 놓아 최대한 자연에 동화되도록 했다.
▼ 언제부턴가 길가에 수령이 수십 년은 족히 넘었음직한 노송들이 수두룩해졌다. 치악산둘레길의 또 다른 특징이 아닐까 싶다. 오늘 1코스와 2코스를 함께 답사했는데, 트레킹을 마칠 때까지 이와 비슷한 풍경들이 계속해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 성문사에 가까워질 무렵 시야가 툭 터지는 곳을 만났다. 이 일대는 치악산 국립공원을 등지고 앉아 광활한 원주 벌을 내려다보는 형세이다. 원주공고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가 하면, 그 뒤로는 원주 혁신도시의 고층아파트들이 마치 성냥갑을 세워놓은 것처럼 각을 지어 늘어서 있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0분. 소나무 숲길이 끝나는 곳에서 ‘성문사(星門寺)’를 만났다. 대한불교 천태종 소속의 사찰로 첫 법회를 연 1971년만 해도 이 사찰은 원주시 학성2동에 있었다고 한다. 태장2동과 단계동 회관을 거쳐 2002년에 이곳으로 신축 이전했단다. 하지만 사찰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1970년에 낙성했다고 적고 있었다. 이 골짜기가 예로부터 ‘설당밭골(說堂田골)’로 불려오고 있었는데, 이는 ‘설법을 하는 집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늦게나마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것이다.(카페 ‘울산 금강불교대학’에서 게시한 ‘천태종 사찰방, 원주 성문사’편에서 발췌했다.)
▼ 전각은 의외로 단출했다. 단청이 고운 ‘대불보전’과 현대식 건물 한 동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크기만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동자승이 애교를 부리고 있는 ‘성무유치원’은 3층. 7칸이 이층으로 올라간 대불보전은 양 옆에 누각까지 거느리고 있다. 50년의 짧은 역사를 감안하면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실상묘법연화경(實相妙法蓮華經)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천태종은 종조로 천태지자대사(중국인)를 그리고 개창조로 대각국사 의천, 중창조로 상월원각대종사를 모시며,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 수행·정진함을 신행의 바탕으로 삼는다.
▼ 절간의 역사와 종파의 내력을 적은 안내판 옆으로 난 시멘트계단을 오르면 탐방로는 또 다시 산속으로 파고든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사가 조금 심하다. 이를 못 버틴 탐방로가 좌우로 몸을 비틀면서 고도를 높이기도 한다.
▼ 능선에 올라서자 길이 둘(이정표 : 관음사→ 1.8㎞, 제일참숯 9.5㎞/ 성문사↓ 0.5㎞, 국형사 1.7㎞)로 나뉜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오른편으로 몇 걸음 더 걷자 또 다른 삼거리. 표지목(1-9-1)은 이곳에서 기존의 둘레길 대신에 새로 내놓은 왼편 길을 따르란다.
▼ 안내판과 현수막까지 걸어놓았다. 고둔치솔가를 거쳐 세명선원으로 내려오는 기존 둘레길을 안전사고 예방을 이유로 막아놓았다는 것이다.
▼ 남은 거리가 부담스러운 우리로서는 편해져서 더 좋았다. 위로 오르지 않고 내려가는 길이 계속되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거기다 길가 풍경도 심심찮게 변해준다.
▼ 오늘의 꽃은 ‘산수국’으로 삼아봤다. 너무 흔한 개망초 말고는 가장 많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변하기 쉬운 마음’이라는 꽃말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뭐가 대수겠는가. 꽃이라는 게 본디 아름다우면 그만인 것을.
▼ 탐방로는 아래 사진과 같은 개울을 건너기도 한다. 다리가 보이지 않으니 장마철 물이라도 불 때는 통행에 제한을 받을 수도 있겠다.
▼ 잠시 후 탐방로는 마을길(이정표 : 관음사 1.3㎞, 제일참숯 9.0㎞/ 성문사 1.0㎞, 국형사 2.2㎞)로 내려선다. ‘하늘금(다른 사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을 시작으로 ‘웰 2000’, 코발트, 토우커피 등 카페와 음식점들이 여럿 들어서 있어 여유라도 있으면 노닥거리기 딱 좋은 거리이다.
▼ ‘BREEZE’란 간판이 걸린 예쁜 건물이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아니 건물보다도 외벽에 적어놓은 글귀가 더 마음에 들었다고 봐야겠다. <우리는 아침이 올 때마다 사랑할 하루를 선물 받는다> 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 얘기인가.
▼ 한국불교 조계종 소속이라는 ‘세명선원’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슴에 담아둘만한 특별한 얘깃거리를 만나지 못해 그냥 스치듯 지나기로 했다.
▼ ‘길카페촌’을 지나 ‘꽃밭머리교(橋)’ 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자 길이 둘(이정표 : 관음사↖ 0.2㎞, 제일참숯 7.9㎞/ 곧은재 탐방로↗/ 관음사 2.1㎞, 국형사 3.3㎞)로 나뉜다. 오른편은 곧은재 탐방지원센터를 거쳐 곧은재로 연결되는 치악산의 정규 탐방로이다.
▼ 잠시 후 만나게 되는 관음사(觀音寺)는 토담도 일주문도 두고 있지 않아 세상을 향해 문을 닫지 않는 사찰이다. 1971년 창건되었다니 역사도 일천하다. 규모까지도 작다. 하지만 매우 특이한 볼거리로 인해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절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108염주’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 염주의 유명세 때문인지 아니면 크기 때문이지는 몰라도 염주를 모시는 전각을 따로 지었다. 염주는 재일교포 3세인 임관지(林寬至, 한국명 임종구)씨가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수령 2000년짜리 ‘부빙가(Bubinga)’ 원목을 깎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흩어져 있던 108개의 염주 하나하나가 실로 꿰어지고 묶여져 온전한 하나로 이어지듯, 갈라지고 흩어진 민족이 평화의 염원으로 다시 하나가 되는 그 날을 기약하면서 만들었단다.
▼ 한 벌의 무게가 무려 7.4톤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염주다. 가장 큰 구슬인 모주는 지름 74㎝에 240㎏이나 되고, 모주 좌우로 지름 45㎝, 45㎏짜리 구슬 108개가 동아줄로 연결돼 있다. 2000년 5월에 똑같은 염주 3벌이 만들어졌는데 하나는 일본의 ‘화기산 통국사’에 있고, 각 1벌씩 남북한에 봉안할 예정이었으나 현재 두 벌 모두 이곳 관음사에 소장돼 있다. 북한의 봉안 예정지는 ‘묘향산 보현사’이다.
▼ 관음사는 둘레길 완주의 인증지점이기도 하다. 명부전의 뒤에 이정표(꽃밭머리삼거리 1.0㎞, 제일참숯 7.7㎞/ 국형사 3.5㎞)와 함께 스탬프 보관함이 설치되어 있으니 미리 구입한 ‘스탬프 북’에 날인하면 된다.
▼ 토담이나 일주문이 없어선지 탐방로는 절간을 횡단해 버린다. 이때 삼성각으로 오르기 직전 약수터를 만날 수 있다. 물의 양도 풍부한데다 물맛까지 좋으니 실컷 마시고 물병도 가득 채워가자. 무더운 여름철, 특히 오늘처럼 습기까지 가득한 날에는 한모금의 물이 감로수가 되고 또한 생명을 살리는 약수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 산신각 뒤편에는 남성의 성기를 닮은 것 같기도 한 자연석이 서 있었다. 표면에 뭐라고 적힌 것 같기도 한데 마모가 심해 글자는 판독할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한 안내도 없다. 그저 양옆에서 돌탑이 호위하고 있을 정도로 고귀한 내력을 지녔나보다 여기면서 스치듯 지나가는 이유이다.
▼ 관음사를 지나자 활엽수로 뒤덮인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이어서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탐방로는 작은 고갯마루(이정표 : 꽃밭머리삼거리 0.7㎞, 제일참숯 7.4㎞/ 관음사 0.3㎞, 국형사 3.8㎞)를 넘는다.
▼ 잠시 후 탐방로는 ‘꽃밭머리길(이정표 : 제일참숯← 7.1㎞/ 연암사→ 0.4㎞/ 국형사↓ 4.1㎞)’로 내려선다. 관음사를 출발한지 8분 만이다. 이어서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낙엽송 아래를 조금 더 걷자 이내 마을로 들어선다.
▼ ‘꽃밭머리’는 길카페 ‘엘레아(ELEA, 하단에 Italy가 적혀있는 걸 보면 이태리 음식도 판다는 얘기일 것이다)’와 치마바위, 꽃밭머리전망대 등 입소문을 탄 카페들이 여럿 들어서 있는 곳이다. 하지만 탐방로는 카페가 몰려있는 지역을 피하기라도 하려는지 첫 삼거리(꽃밭머리삼거리가 아닐까 싶다)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래봤자 치올라 같은 또 다른 카페들 앞을 지나가게 되지만 말이다.
▼ 능소화가 곱게 핀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자 이번에는 숲속에 숨어있던 예쁜 황토집(이정표 : 제일참숯 6.3㎞/ 국형사 4.9㎞)이 길손을 반긴다. ‘황토가든 펜션’이라는데, 앞 건물은 황토만으로는 모자랐는지 너와지붕으로 마무리까지 했다. kakaomap은 ‘전가네 황토집’으로 적고 있었다. 온천표시가 그려진 걸로 보아 찜질방까지 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숲속에 들어앉은 펜션이어선지 작은 계곡까지 품위 있게 꾸몄다. 작은 폭포 앞에 테이블을 놓아둔 것이다.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고 난 뒤에 저곳에 앉아 생맥주라도 한 잔 마신다면 천국이 따로 없겠다.
▼ 펜션의 앞마당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바위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 오고가는 길손들이 보시한 돌멩이들을 잔뜩 얹은 채로이다. 나 역시 작은 돌멩이 하나 얹어본다. 오늘의 여정도 무사히 끝마칠 수 있게 해주소서.
▼ 조금 더 들어가자 사람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난다. 맞다. 이제부터 원주시에서 야심차게 조성한 ‘운곡 솔바람 숲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명품 길은 명품 길인 모양이다. 저렇게 반려견의 출입까지도 막았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치악산둘레길’을 걷는 여행자들에게는 좋지 않은 점도 있었다. 이정표에서 국형사나 제일참숯 같은 눈에 익은 지명들이 사라지기도 하니 말이다. 참고로 이곳(덕성골삼거리일)에서는 돌개삼거리와 솔바람삼거리를 거쳐 운곡고개로 진행하면 된다.
▼ 하지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개삼거리에서 제대로 된 이정표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운곡삼거리에는 이정표와 함께 안내도까지 세워 길 찾기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고마운 일이지만 이런 시설물은 솔바람숲길과 처음 만나게 되는 지점인 ‘덕성골삼거리’에 설치하는 것이 더 옳았지 않나 싶다.
▼ 안내도(사진은 주차장의 것을 사용했다)는 주요지점에 번호를 붙였다. 이 번호는 2.7km쯤 된다는 산책로 곳곳에 세워놓은 이정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운곡고개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솔바람 숲길’이 시작된다. 숲이 온통 소나무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솔향기 가득한 이 길은 맨발로도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이다.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이 촉진되어 피로와 스트레스, 우울증, 두통, 불면증 해소 등에 효능이 높다니 한번쯤 시도해 볼 일이다. 걷다가 발바닥이라도 불편해질라치면 곳곳에 마련해놓은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 가면 될 일이고 말이다.
▼ 숲 속은 솔바람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불어오는 바람에 땀이 금방 식는다. 여우비는 그쳤지만, 빗물에 젖은 솔잎들이 흔들리면서 습기 머금은 소리를 전달한다. ‘송운(松韻)’ ‘송성(松聲)’.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솔바람 소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하지만 그런 호사는 오래가지 않았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운곡고개’에서 ‘치악산둘레길’이 원주얼교육관으로 내려가 버리기 때문이다.
▼ 황토펜션을 출발한지 12분 만에 ‘원주얼교육관’ 주차장에 내려섰다. 이 일대는 고려 말의 혼란한 정치를 개탄하며 치악산에 들어가 은거했던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 1330~미상)의 묘역(강원도기념물 제75호)이 있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밝아 목은 이색(李穡) 등과 함께 성리학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태종 이방원의 어릴 적 스승으로, 조선 개국 후 벼슬이 내려졌으나 끝내 거절하고 태조가 찾아왔을 때에도 만나지 않으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 원천석 묘역(강원도 기념물 제75호)에는 무학대사가 터를 잡아주었다는 그의 무덤과 시비, 그리고 재사(齋舍)인 모운재(慕耘齋)와 창의사(彰義祠)라는 사당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그냥 통과하기로 한다. 탐방로는 원천석선생 회모시비(懷慕詩碑)의 옆(이정표 : 제일참숯 5.3㎞/ 국형사 5.9㎞)으로 열린다. 참! 이곳에 둘레길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1코스(꽃밭머리길)의 두 번째 보관처이니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 숲속을 걷다가 ‘치악산 둘레길’을 한눈에 보여주는 풍경이 있기에 카메라에 담아왔다.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세우는 것으로는 부족했던지 나무에까지 매달아놓았다. 길이 아닌 곳에는 이를 알리는 팻말을 세웠다. 여기에 갈림길에는 어김없이 이정표가 세워졌고, 길을 걷다보면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길잡이띠’가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다. 길 잃을 염려 없이 오롯이 걷는 데만 집중하면 된다는 얘기이다.
▼ 울울창창한 숲속을 헤집고나온 탐방로는 이제 황골마을로 내려선다. 산골짜기에 들어앉은 마을인데도 불구하고 펜션형의 커다란 집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그만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나저나 마을길과 만나는 지점에는 아치형 대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1코스가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이곳에다 만들어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 몇 걸음 더 걷자 ‘황골삼거리(이정표 : 제일참숯 3.3㎞/ 원주얼광장 2.1㎞, 국형사 7.9㎞)’다.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는데, 식혜를 판다는 입간판이 눈길을 끈다. 맞다. 이곳 황골마을은 엿과 조청으로 유명한 곳이다. 일반적으로 엿은 식혜를 먼저 만들고, 이를 고아서 조청과 엿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식혜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식혜 만드는 과정이 생략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식혜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래서 편의점 할머니께서 맛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 마을 경로당의 앞을 통과한 탐방로는 계속해서 마을길을 따른다. 하지만 번화가로는 들어가지 않고 마을의 외곽을 고집한다. 이렇듯 치악산둘레길은 기존의 걷기 좋은 길들을 연결하면서 교통량이 많은 도로와 포장길을 가급적 피하고, 걷기 편한 흙길, 숲길, 물길, 마을안길 등을 최대한 많이 걸을 수 있도록 했다.
▼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길은 또 다시 산자락을 파고든다. 아니 작은 고갯마루를 넘는다고 보는 게 옳을 수도 있겠다.
▼ 고갯마루는 산딸기가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집사람의 표현에 의하면 숫제 ‘산딸기 밭’이다. 산딸기는 복분자(覆盆子)라 불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또 이걸 장복하고 소변을 보면 오강이 뒤집힌다고도 했다. 그래서일까? 집사람이 딴 산딸기가 그녀의 입보다는 내 입으로 더 많이 들어온다. 아무렴 어떻겠는가. 새콤달콤한데다 정력까지 증진시켜준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 고갯마루를 넘자 또 다른 마을(행정구역은 흥양리지만 단위부락 이름은 알 수 없었다)이 나타난다. 이번에는 가뭄에 콩 나듯이 띄엄띄엄 민가가 들어앉은 전형적인 산촌이다. 이후부터 탐방로는 농로와 마을길을 번갈아가며 걷는다.
▼ 잘 가꾸어진 민가가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옛 돌담을 그대로 살렸을 뿐만 아니라 조그만 여백이라도 보일라치면 어김없이 꽃으로 장식했다.
▼ 이 마을은 또 전형적인 강원도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방이 온통 옥수수 밭인 것이다. 나머지 여백은 감자밭이 차지하고 있었다.
▼ 황골삼거리를 출발한지 30분 만에 하초교(이정표 : 제일참숯 1.3㎞/ 하초구 버스정류장 0.4㎞/ 국형사 9.9㎞). 이어서 13분 후에는 또 다른 다리(작은 개울이선지 이름도 없었다)를 만난다. 이정표(제일참숯 0.3㎞/ 하초구 버스정류장 0.3㎞/ 국형사 10.9㎞)는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라고 한다.
▼ 실개천을 따라 잠시 올라가자 길이 또 나뉜다. 천하장군과 여장군이 길목을 지키는데, 이정표(제일참숯 0.2㎞/ 국형사 11.0㎞)는 갈려나가는 길에 개의치 말고 왼편으로 진행하란다.
▼ 왼쪽으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사당 하나가 길손을 반긴다. ‘숭조예원(崇祖禮園)’. 남양홍씨 예사공파에서 세운 모양인데 내력은 파악할 수 없었다.
▼ 날머리는 제일참숯 주차장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50분. 드디어 날머리인 제일참숯 주차장에 도착했다. 숯을 구워내는 가마가 있던 곳인데 2000년 무렵부터 숯가마 찜질방을 열었다고 한다.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날에야 남의 집 얘기겠지만, 추위로 뭉친 근육을 푸는 데는 찜질방에서 땀 빼기만한 게 없다. 그 찜질방으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뜨겁다 못해 따가운 숯가마로 간다. 황토 가마에서 숯을 만들고 그 가마에 남은 열기로 찜질을 하는 곳이다. 사람들은 가마에 들어가 ‘하나, 둘, 셋’을 세고 나오기를 반복하는데, 섭씨 200도에 가까운 온도에선 혈이 뭉쳐있던 몸 곳곳에 열꽃이 핀다고 해서 ‘꽃탕’이라고도 한다. 열기가 더 식으면 중탕, 약탕이 된다. 1000도를 오르내리는 숯가마에서 구워낸 삼겹살도 별미로 알려진다.
▼ 1코스와 2코스의 경계임을 알려주는 시설물은 주차장의 한켠에 설치되어 있었다. 치악산둘레길의 종합안내도를 가운데에 두고 가야할 방향에 구룡길안내판, 그리고 반대편에는 꽃밭머리길의 안내판을 배치했다. 이정표(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 7.0㎞/ 국형사 11.2㎞)와 코스지도를 넣어두는 보관함도 보인다. 그건 그렇고 1코스를 걷는 데는 2시간 50분이 걸렸다. 핸드폰의 앱에 찍힌 거리는 10.45km. 공식 거리인 11.2km보다 조금 짧게 나왔다. 성문사 뒷산에서 새로 내놓은 탐방로를 따랐던 게 원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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