늠내길 2코스(갯골길)

 

여행일 : ‘21. 3. 13(토)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장현동, 장곡동, 월곶동, 방산동, 포동 일원

산행코스 : 시흥시청역→시흥시청→장현교차로→군자갑문→갯골생태공원→섬산캠핑장→미생의 다리→포동펌프장→갯골습지센터→흥부배수갑문→군자갑문→쌀연구회→시흥시청역(소요시간 : 4시간 30분)

 

함께한 사람들 : 집사람과 함께

 

특징 : 시흥시(始興市)는 서울에 인접하면서도 해안을 끼고 있다는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시의 대부분이 200m 내외의 구릉지와 침식저지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암봉·마산·소래산·성주산 등이 동·남·북쪽의 시 경계를 따라 솟아있으며, 서쪽은 서해바다(경기만)에 접한다. 이런 특징들을 연결시켜 놓은 트레일(trail)이 바로 ‘늠내길’이다. 산길과 들길은 물론이고 바닷길까지 시가 품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들을 연결시켜 놓은 것이다. ‘늠내’라는 이름은 ‘뻗어 나가는 땅’, ‘넓은 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시흥의 옛 지명에서 따왔다. 고구려 장수왕 시절 백제의 영토였던 이곳을 차지한 고구려가 붙여놓은 ‘잉벌노(仍伐奴)’의 당시 표현인 늠내에서 유래됐다. 시흥시청에서 출발해서 높지 않은 숲과 산봉우리로 이어지면서 다시 시청으로 돌아올 수 있는 숲길(1코스길)과 시흥시청에서 출발해 갯골생태공원을 가운데 두고 갯벌을 한 바퀴 돌아 원점회귀 하는 갯골길(2코스), 옛날 시흥사람들이 걸어 다녔다는 산자락과 고갯길들을 이은 옛길(3코스), 옥구공원에서 오이도와 옥구천 일대를 둘러볼 수 있는 바람길(4코스) 등 모두 4개의 코스로 조성됐다.

 

▼ 트레킹 들머리는 지하철(서해선) 시흥시청역(시흥시 장현동)

요즘은 내가 갈만한 산을 답사하겠다는 산악회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긴 그동안 오르내린 산들이 이미 2,000개를 넘겼으니 답사를 못한 산들이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그렇다고 우리 부부 단독으로 오지 산을 찾기에는 아직도 능력부족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노릇. ‘꿩 대신 닭’이라고 둘레길이라도 걸어보자고 나선 이유이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곳이 ‘늠내길’이다. 관광공사가 선정하는 ‘11월에 걷기 좋은 여행길 5곳’ 가운데 하나로 꼽혔을 정도이니 눈에 담을만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마침 지하철역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갖추었다.

▼ 2코스인 ‘갯골길’은 시흥시청에서 출발해서 군자갑문과 갯골생태공원을 지나, 갯골길을 따라 걷다가 ‘미생의 다리’를 건넌 다음 시흥시청으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이다. 돌아올 때는 포동 빗물펌프장과 갯골습지센터 등을 거치도록 길이 나있지만, 갯골생태공원에서 군자갑문까지는 같은 길을 또 다시 걷기도 한다. 총 거리는 16km. 경기도 유일의 내만(內灣)인 갯골과 지금은 사라졌지만 국내 최대 규모의 염전 터와 습지생태를 둘러볼 수 있는 코스로, 갯골생태공원에서는 염전체험도 가능하며, 전망대에 올라 넓은 들을 조망할 수도 있다.

▼ 3번 출구로 나와 ‘시청공원로’를 따라 시가지로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장현천 건너로 보이는 ‘시흥시청’. 즉 ‘갯골길’의 들머리는 이 도로 말고도 장현천의 천변을 이용해 갈 수도 있으니 참조한다.

▼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곧이어 ‘시흥시청’의 후문에 이른다. 참! 사거리의 한쪽 귀퉁이에 정자까지 갖춘 작은 공원이 꾸며져 있었다. 장현동의 유래를 적은 빗돌도 눈에 띄었다. 1912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이곳 ‘새재(鳥峴)’ 마을과 이웃마을인 장상(長上)을 합친 다음 두 마을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 ‘장현(長峴)’이란 지명이 생겼다는 것이다.

▼ 시청부터는 ‘시청로’를 따른다. 이 길을 따라 장현교차로까지 가게 되는데, 이 구간 아니 갯골길을 통틀어서 유일한 편의점(하모니마트)이 NH농협은행의 다름 블록(block)에 있으니 식수나 간식 등을 미리 준비하는 게 좋겠다.

▼ 급하게 떠나오느라 핸드폰에 앱(카카오앱에 ‘늠내길갯골길’로 치면 되는 줄은 나중에야 알았다)을 깔지 못했다. 그러니 길을 찾지 못할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 하지만 막상 찾아와보니 그럴 필요는 없었다. 빨갛고 파란 늠내길 리본이 길을 인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을 정도로 가로수나 전봇대 등에 촘촘히도 매달아놓았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8분 만에 ‘장현교차로’를 만났다. 동서로(목감에서 월곶까지 시흥시의 동·서 축을 잇는 중요한 도로이다)와 ‘시청로’가 만나는 삼거리이다. 참! 오는 도중에 ‘신혼 희망타운’ 건설현장이 눈에 띄었다. 지하철역에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이니 장차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이들의 보금자리치고는 참 좋은 위치라 하겠다. 시흥시도 ‘아동친화도시’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이들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왼쪽 방향으로 50m쯤 걷다가 오른편으로 난 샛길로 내려선다. 들머리의 벚나무에 이정표가 매달려 있으니 길이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 10m쯤 내려섰을까 샛길은 농로(農路)와 연결된다. 언덕 위의 ‘동서로’와 나란히 나있는 농사용 길인데, 이곳에서는 왼쪽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농로를 따라 걷다보니 물기를 머금은 땅에 새파란 기운이 감도는 것이 눈에 띈다. 이를 본 집사람이 미나리꽝이란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곳에서 생산되는 미나리가 제법 유명하단다. 논농사 보다 특수작물 재배가 소득이 몇 배나 높다보니 많은 농가가 미나리로 작목을 바꿨다는 것이다. 아무튼 미나리 하면 전주나 청도쯤으로 알고 있었기에 새로운 지식의 축적이라 하겠다.

▼ 살림꾼인 집사람의 촉이 오늘도 발동했다. 덜렁이인 내 눈에도 띄는 냉이가 그녀의 안테나를 어찌 벗어날 수 있겠는가. 저렇게 하나둘 주워 담은 냉이는 된장찌개로 변해 내일 아침쯤이면 우리 집 밥상 위에 올라올 것이다.

▼ 농로로 내려선지 17분(냉이 캐기에 바쁜 집사람 때문에 조금 더디게 걸었다). 동서로 아래로 뚫린 첫 번째 굴다리를 만난 지점에서 탐방로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는 널따란 평야지대의 한가운데로 향한다. 이때 진행방향 왼편에서 동산 하나가 불쑥 고개를 내민다. 육지 속의 섬처럼 다가오는 의외의 풍경이 참 신선하다.

▼ 제3경인고속도로 아래로 난 굴다리(창곡천교)를 통과하니 이정표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방향이 고작 둘(갯골생태공원/ 시청)뿐이니 썩 필요해보이지 않는 시설물이다. 거리 표시라도 해 두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 갈대가 무성한 수로를 따라 8분(동서로에서는 17분)쯤 걷자 첫 번째 포인트인 ‘군자 갑문(군자양수장)’이 나타난다. 방조제로 인해 해수와 내수가 차단된 지역에서 내수를 바다 쪽으로 흘려보내기 위한 일종의 배수(排水) 시설이다. 그건 그렇고 이곳은 이따가 되돌아나가는 길에 길 찾기에 필요한 지점이니 기억해 두자.

▼ 늠내길 이정표는 또 하나의 굴다리를 지나가라고 지시한다. 이번에는 ‘마유로(시흥시 장곡동과 하중동을 잇는다)’의 아래로 내놓은 터널이다. 이곳에서는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몇 만났다. 그러고 보니 날씨가 화창한 것이 달리기에 딱 좋은 날이다.

▼ 굴다리를 빠져나가니 널찍한 물길이 갈 길을 막는다. 저런 풍경, 즉 바닷물이 육지로 파고들어 형성된 자그마한 개울이 ‘갯골길’이라는 2코스의 이름을 만들어냈지 않나 싶다. 갯가의 고랑을 뜻하는 말이 '갯골'이니 말이다. 

▼ 저 너른 수로를 건너 뛸 수야 없는 노릇. 순리를 따르려는 듯 탐방로는 왼편으로 방향을 틀더니 물길을 따른다. 이때 진행방향 저만큼에 나타는 거대한 시설은 ‘흥부배수갑문’이다. 이따 되돌아 나올 때 우연찮게 만나게 되는 시설이다.

▼ 흥부배수관문부터는 오솔길을 따라 걸을 수도 있다. 수로와 자전거길 사이의 좁디좁은 공간에 숲을 만들고 오솔길을 냈다. 식재된 식물을 설명해놓은 안내판들을 읽으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 군자갑문을 지난 지 20분 만에 도착한 ‘갯벌생태공원’. 이층짜리 정자가 수문장이라도 되는 양 입구를 지키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던지 아치형의 다리가 또 다시 검문을 하잔다.

▼ 다리를 건너자 널따란 잔디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잔디밭 곳곳에 텐트가 쳐져있는 걸로 보아 가족단위의 나들이 장소로 자리 잡았나 보다. 참고로 이 일대는 1930년대 중반 일제가 조성한 소래염전이 있던 곳이다. 갯벌 사이로 난 수로를 통해 소래포구로 부터 바닷물을 끌어들여 소금을 생산하면서 천일염 생산지로 이름을 떨쳤지만 채산성이 악화되며 1996년에 폐쇄됐다. 약 145만평의 부지의 염전에서 소금생산이 중단되자 일대는 예전 자연습지에서 자라던 동식물이 다시 되살아나면서 생태환경이 복원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넓은 습지와 갯벌이 독특한 생태환경을 연출한데다 인근 지역이 도시화되면서 명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생태환경 1등급 지역으로 국가 해양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공원의 면적은 약 45만평이며 갯골을 따라 탐방코스가 마련되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하여 정리했다)

▼ 공원입구에는 ‘안내지도’가 세워져 있었다. 각종 체험장과 전망대, 습지센터 등의 주요시설 및 편의시설들을 표시해 놓았는가 하면, 30분에서 1시간, 2시간, 3시간까지 4개의 탐방코스를 선으로 표시했다. 하지만 나처럼 ‘늠내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시설물이기도 하다.

▼ 잔디밭 사이로도 길이 나있었지만 우린 늠내길 리본이 매어져 있는 벚꽃터널을 따랐다. 이때 데크로드에 전망대까지 갖춘 갈대숲체험장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새봄맞이를 위해 갈대를 베어낸 탓에 빈 터만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 조금 더 걸으면 해수체험장이 기다린다. 그런데 외관만 보아서는 여느 야외수영장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아무래도 풀에 민물 대신 바닷물을 넣는다고 해서 ‘해수’라는 접두사를 붙였나 보다.

▼ 벚꽃터널이 끝나는 곳에는 갯골생태공원의 랜드마크인 ‘흔들 전망대’가 들어앉았다. tvN의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주인공의 사랑지수가 100% 충전되던 ‘바람 불어 좋은 곳’이다. 극중에서 박보검이 송혜교를 데려가던 곳. 즉 ‘바람 불어 좋은 곳’은 바로 저 ‘흔들 전망대’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저 전망대는 10.741㎜나 움직인다고 한다. 6층 높이가 다소 부담은 되지만 허용치인 42㎜에는 한참이나 못 미치니 안전은 기본. 그저 짜릿한 흥분만 즐기면 된다. 박보검이 ‘바람 불어 좋은 곳’이란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 나선형 구조의 전망대는 갯골에 부는 바람이 휘돌아 오르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 원형의 나무계단을 따라 빙글빙글 돌다보니 어느새 꼭대기에 올라섰다. 높이가 22m나 되는, 그것도 나무로 만든 전망대라 그런지 걸음을 뗄 적마다 이름처럼 흔들거리는 기분이 들었는데 무섭기보단 오히려 흥미진진했다. 그렇게 올라선 꼭대기는 갯골생태공원 일대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최고의 조망처이다. 시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양에 차지 않았나보다. 사방에 망원경을 배치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을 한참이나 더 당겨놓았다.

▼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갯골생태공원의 시설지구이다. 염전, 갈대. 해수 등 각종 체험장들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염전을 제외하고는 길이 대부분 갯골을 닮은 듯 굽이졌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한없이 여유로워 보이는 건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연을 거슬리지 않으려는 노력이 곳곳에 배어있는 이곳 갯골생태공원에서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 반대 방향에는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순천만 갈대밭 못지않은 풍광을 지닌 곳이지만 갈대를 베어낸 곳도 많이 보인다. 새로운 갈대가 잘 자라나게 하려는 조치라고 한다. 불에 태우기도 한다는데 눈에 띄지는 않았다. 아무튼 생태계는 돌고 도는 법. 새 생명이 꿈틀거리는 계절에 갈대는 새롭게 자라나 저 들판을 가득 채울 것이다.

▼ 전망대에서 내려서자 널따란 염전이 눈앞에 펼쳐진다. 토판(土板, 1955년 이전의 흙으로 바닥을 깐 염전)과 옹패판(1955-1980년 초의 깨진 옹기조각으로 바닥을 깐 염전), 타일판(1980년 초-현재) 등을 시대별로 복원시켰는가 하면, 교육관 옆의 벽면에는 소금이 생산되는 전 과정을 타일화로 그려놓았다.

▼ 염전 앞에는 ‘소금놀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박스형의 바닥에 소금을 채워놓았는데 아쉽게도 금줄이 쳐져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어린이 놀이터에까지 미친 모양이다.

▼ 수차(水車) 같은 소금 생산을 위한 옛 기구들도 눈에 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 그래선지 ‘엄마 없는 하늘아래’란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했다는 안내판도 세워 놓았다.

▼ 시흥갯골역과 가릉가릉거리며 달렸다는 ‘가시렁차’도 복원되어 있다. 시흥은 소금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한다. 시흥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염전'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나라 전체 소금 생산량의 30%가 생산되었을 정도로 이곳 시흥 일대가 온통 염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경제성을 잃은 염전들이 하나둘씩 사라졌고, 이제는 시흥 역사의 일부로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그런 흔적 가운데 하나가 갯골생태공원이고, 그 핵심은 소금을 실어 나르던 ‘가시렁차’이다.

▼ 세월의 흔적은 소금창고로도 남아있었다. 옛날 이곳에는 40여 동의 소금창고가 갯골을 중심으로 들어서 있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2동만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쓸쓸하게 남아있을 따름이다. 그나저나 창고는 엄청나게 튼튼한 모양새이다. 지금이야 값싼 소금을 훔치려는 사람이 없겠지만, 옛날에는 고가의 전매품을 보관하는 보물창고였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 생태공원을 모두 구경했으면 이제 갈대숲 탐방로를 걸어볼 차례이다. 방산대교로 연결되는 제방길인데 ‘솔트베이 골프클럽’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걷게 된다.

▼ 오른편은 물론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갈대밭이다. ‘시흥갯벌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 너른 갈대밭에는 갯골을 내려다볼 수 있는 생태관찰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야자매트를 깔았는가 하면 물기가 있는 곳에는 데크다리를 놓아 무장애 탐방로로 가꾸었다. 하지만 걸어보지는 않았다. 방게와 농게가 서식한다지만 아직은 갯골 깊숙이 숨어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 그렇게 잠시 걷자 아름다운 다리 하나가 갈대밭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다. 다리의 이름은 ‘바라지’. 바라지란 '돌보다, 돕는다, 기원하다'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시흥에서는 방죽·논·간척지를 ‘바라지’라 불러오기도 했단다. 그렇다면 간척지에 놓인 다리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그게 아니라면 갯골생태공원의 운영에 많은 도움을 주는 다리일 게고 말이다.

▼ 염전을 나선지 25분. 작은 갯골을 가르는 다리가 나오는가 싶더니. 탐방로는 이 다리 앞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섬산캠핑장으로 연결되는 오솔길인데 지도는 이 구간을 ‘아카시길’로 표시하고 있었다. 길의 양편에서 가로수 역할을 하고 있는 아카시아나무에서 따온 이름이 아닐까 싶다.

▼ 아카시길을 따라 들어가는데 ‘나이스 샷!’이라는 골프장에서나 쓸 법한 환호성이 들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려보니 골프장 하나가 아름다운 갈대밭을 독차지하고 있다. 폐염전 부지에 건설된 ‘솔트베이 골프클럽’으로 서해안의 바람, 환상적인 일몰, 염전 갈대 등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알려진 퍼블릭 골프장이다.

▼ 4분쯤 더 걷자 농경지 가운데 외로이 솟아 있는 작은 동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너른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을 쏙 빼다 닮았다. ‘섬산’이란 지명이 붙여진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갈대밭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현재 ‘캠핑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 섬산에서 되돌아 나와 방산대교 방향으로 향한다. 탐방로는 이제 제방(堤防) 위로 난 길을 따른다. 갯벌과 평야지대(염전이 있던 곳이 아닐까 싶다)를 나누는 경계선이라도 되는 양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뻗어나가는 모양새이다. 참! 이 구간의 초입에는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공원 이용객의 안전을 위해서라는데 무엇에 대한 안전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설마 바닷물이 넘친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 제방길을 따라 걷다보면 드넓은 갈대밭과 그 속에 파묻혀있는 ‘미생의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갯골생태공원의 끝단에 자리한 자전거 모양의 아름다운 다리로 시흥시가 지향하는 '미래를 키우는 생명의 도시'를 줄여서 만든 이름이고 한다. 늠내길의 반환점이기도 한데 일출 및 일몰 때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알려지면서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 섬산에서 빠져나온 지 40분. 방산대교에 다가갈 즈음에 갯벌이 있는 오른편으로 샛길 하나가 나뉜다. 탐방로는 이 갈림길을 따른다. 낚시와 취사, 동식물 채취 등을 금한다는 ‘시흥갯벌 습지보호지역’ 안내판에 늠내길의 리본이 묶여있으니 길이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 잠시 후 갯벌이 속살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늠내길의 명소 가운데 하나인 ‘미생의 다리’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펄이 두툼하게 쌓인 갯골의 물길 위에 커다란 자전거의 뼈대처럼 서 있는 오묘한 형상의 이 다리는 잘 만들어진 앤티크 철제소품처럼 예쁘다. 그런 독특한 디자인(이걸 찍은 사진이 지난 2015년 올해의 토목구조물 사진공모전에서 ‘포토제닉상’을 수상하기도 했단다)으로 인해 멀리서도 눈에 띄는 시흥갯벌의 명물이 되었다. 아무튼 눈에 들어오는 다리는 그 구성미 자체만으로도 절경을 이룬다. 그렇다고 주변 경관을 빼놓을 수는 없다. 갈대밭이 우거진 넓은 평원과 구불구불한 갯골, 그리고 갈대밭을 헤집으며 난 늠내길 산책로 또한 그 절경의 한 축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 다리에 올라서면 방산대교 너머로 전형적인 도심 풍경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한적한 바닷가의 작은 어천마을 소래포구와 월곶포구는 이제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른 마천루들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 다리에서 내려와 또 다시 제방길을 따른다. 갯골길의 북쪽 노선으로 아까 걸어오던 제방의 반대편 제방이라고 보면 되겠다. 두 제방 사이에는 ‘갯골’이 흐른다. 갯골이란 바닷물이 육지로 파고들어 형성된 자그마한 개울을 말한다. 대개는 강물이 하구까지 흘러가다 바다에 합류하는데 반해 갯골은 거꾸로 바닷물이 육지까지 밀려들어온다는 게 특징이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현상인데, 이곳 시흥에 그런 갯골이 잘 발달되어 있단다.

▼ 갈대습지를 품은 북쪽 지역은 남쪽보다 훨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하도 넓다 보니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가지가지다.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마라톤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말을 타고 갈대밭을 누비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 말이 들녘을 누빈다면, 하늘에는 ‘모터 행글라이더’가 창공을 휘젓고 있었다. 가벼운 엔진을 달고, 프로펠러로 추진하는 업그레이드 된 ‘행글라이더’이다.

▼ 갈대숲으로 덮인 갯골 너머로는 그보다도 더 너른 평야가 펼쳐진다. 그 평야도 역시 갈대밭이다. 세상이 온통 갈대로 뒤덮였다고나 할까? 그런 풍경에 도취되어 걷다보면 어느덧 ‘포동빗물펌프장’이다. 하천 범람으로 인한 침수피해 예방을 위한 시설인데 미생의 다리에서 30분쯤 걸리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 펌프장 근처에는 탐조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갯골 방향에 둘러친 판자벽에 작은 구멍 몇 개를 뚫은 다음 그중 서너 곳에다 망원경을 설치했다. 새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과 함께 자주 눈에 띄는 새들의 사진을 게시해놓았음은 물론이다. ‘국가해양습지보호지역’다운 시설이라 하겠다. 맞다.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이자, 지형이 희귀한 시흥갯벌은 그 보전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전국에서 12번째로 국가해양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 시흥의 갯골은 아주 특별하다. 밀물 때면 바닷물이 갯골을 따라 육지 안으로 밀려오는 '내만형 갯골'의 특징대로 시흥의 갯골은 생태계의 보물창고가 되었다. 미세한 플랑크톤에서부터 갑갑류와 어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들이 관찰되는가 하면 멸종위기 2등급인 맹꽁이와 금개구리까지 산다는 것이다. 백로와 저어새, 기러기, 오리, 갈매기, 도요새 등 다양한 종류의 물새들이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일 것이다.

▼ 이후의 갯길은 갯벌 생태계를 관찰하기 가장 좋은 구간으로 알려진다. 과거에 염전이었던 왼쪽으로는 염생식물이 뿌리내리고, 오른쪽으로는 누런 갈대밭이 펼쳐진다. 갯물과 육지 경계에서 자라는 갈대는 갯골길의 얼굴마담이다. 버려진 염전과 습지 곳곳에 자라면서 거대한 갈대 왕국을 이루었다. 특히 이 근처에서 만나는 갈대군락은 그 끝이 어디만큼일지 짐작되지 않을 만큼 총총했다. 그런 장점을 살리려했는지 관찰데크를 만들어놓았는가 하면 안내판까지 세워 시흥갯골 갈대밭의 특징과 역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 포동펌프장을 스치듯 지나친지 30분 남짓. 능수버들 아래 터를 잡은 ‘갯골습지센터’를 만났다. 아까 염전에서 보았던 소금창고를 연상시키는 외관이 눈길을 끄는데, 내부는 시흥갯벌의 생태환경을 주제로 전시 및 교육 공간으로 꾸며졌다. '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는지', '갯골의 형성 과정'을 알기 쉽게 정리하면서, 크게 염생식물(塩生植物, 염분이 풍부한 땅에 사는 식물의 총칭)과 저서생물(底棲生物, 바다 밑에 사는 생물들의 총칭), 조류(鳥類) 등으로 나누어 갯골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현미경으로 나문재나 해당화, 퉁퉁마디 등의 씨앗과 약쑥과 갈대, 칠면초 같은 식물의 마디들을 살펴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시흥 갯골의 생태계를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해 놓은 공간이라고 보면 되겠다.

▼ 센터 앞 습지에는 멸종위기 야생동물(2급)인 금개구리와 맹꽁이의 대체서식지도 조성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맹꽁이는 남양주시에서 이주해 온 것이란다. 다산신도시 건설로 인해 보금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 탐방로는 갯골습지센터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는 부흥교를 건너 생태공원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직진을 해버렸다. 들머리에 매달려있는 늠내길의 리본만 보고 정규 탐방로라고 오판을 해버린 것이다. 잠시 후 리본이 끊겨버린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다리 하나쯤 더 나올 것 같아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 그런 우리의 판단은 옳았다. 15분이 조금 못되는 지점에서 ‘흥부배수갑문’을 만날 수 있었고, 갑문을 건너 정규 탐방로로 들어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잠시 후 ‘군자갑문’을 다시 만났다. 이곳은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까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걸어왔던 곳이 아닌 다른 방향의 길을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갑문에서 합류되는 두 개의 하천 가운데 조금 더 큰 하천의 오른편 둑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면 되겠다.

▼ 트레킹날머리는 시흥시청역(원점회귀)

탐방로는 동서로 아래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 모서리에는 ‘시흥시 쌀연구회 가공센터’가 들어서 있었다. 시흥의 간척지에서 생산된 쌀. 즉 ‘햇토미’라는 브랜드의 쌀을 도정하고 모아두는 곳이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동서로에 올라서게 되고, 이후는 아까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면 된다. 오늘 트레킹은 4시간 30분이 걸렸다. 듬내길 지도가 내세우는 거리가 16㎞이니 꽤나 더디게 걸은 셈이다. 이는 볼거리가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