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길 7코스

 

여행일 : ‘20. 12. 23(수)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일원

산행코스 : GS25 화도묵현점→스타힐 리조트 입구→능선→천마산관리소 연결등산로→깔딱고개→바위능선→GS칼텍스 송라주유소(소요시간 : 2시간 40분)

 

함께한 사람들 : 집사람과 함께

 

특징 : 남양주시는 총면적의 70%가 산림이다. 그러나 산만 높은 게 아니다. 물길도 있다. 북한강이 남양주를 따라 흘러와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만나 마침내 한강이 된다. 이처럼 남양주는 서울 도심에서 지척이지만 산과 강이 어울려 특별한 걷기를 즐길 수 있다. 그런 특징들을 연결시켜 놓은 트레일(trail)이 바로 ‘다산길’이다.

 

▼ 트레킹 들머리는 GS25 화도묵현점(남양주시 화도읍 묵현리 435-4)

코로나19의 신규 확진자가 100명을 넘기자마자 나 스스로가 여행을 중단했었다. 그게 벌써 6주. 그 시간을 이용해 그동안 게으름을 피워오던 여행기까지 마무리 짓고 나니 이젠 소일거리까지 떨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먼 거리의 여행지로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거주지 근처의 둘레길(다산길 7코스)을 걸어보기로 했다. 마석역 앞에서 65번 시내버스를 타고가다 ‘스키장입구 사거리’ 정류장에서 내려면 된다.

▼ 다산길은 모두 13개 코스(169.3㎞)로 이루어져 있다. ‘다산’이란 이름은 조선말의 위대한 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호에서 따왔다. 정약용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곳이 바로 두물머리(남양주시 조안면)이기 때문이다. 그의 실학정신이 깃든 길을 걸으며 역사의 향기를 음미해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남양주시의 초심은 사라져버린 지 이미 오래. 지난번에 찾아봤던 6구간에 이어 이곳 7구간도 관리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었다. 이정표 등의 편의시설도 모조리 제거시켜버렸음은 물론이다. 둘레길 마니아들 대부분이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감안해 볼 때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 7코스인 ‘마치고개길’은 남양주시청에서 시작해 백봉산과 마치고개를 거친 다음 ‘가곡리 은행나무’에서 종료되는 20.3㎞짜리 코스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절반만 걸어보기로 했다. 20.3㎞라는 거리가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남양주시청에서 마차고개까지의 등산로는 꽤나 여러 번 걸어봤기 때문이다. 아무튼 7코스는 구간 전체가 산길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때문에 다른 구간들에 비해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 편의점을 왼쪽에 두고 난 길(먹갓로). 그러니까 천마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길의 이름인 ‘먹갓로’는 이곳이 ‘먹갓 마을’임을 의미한다. 검은 갓을 만들던 고을이라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란다. 말총갓을 살 형편이 못되는 가난한 선비들이 직접 종이로 갓을 만들고 먹을 갈아 검게 물들여 쓰고 다녔다는 것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0분쯤이면 ‘천마산 스키장’ 입구에 이른다. 1982년 개장된 국내최초의 ‘4계절 전천후 스키장(비시즌에는 인조 잔디 슬로프 운영)’이라는 명성에 더해 서울 도심에서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까지 갖추고 있다. 현재는 ‘스타힐 리조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 탐방로는 스키장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향한다. 담벼락에 붙여놓은 ‘산삼마을’이나 ‘사슴농장’의 방향 표시를 보고 진행하면 되겠다. ‘(주)오선 의료기’의 담벼락을 끼고 모퉁이를 돌면 전형적인 시골길이 길손을 맞는다.

▼ 잠시 후에 만나게 되는 갈림길에서는 ‘오선연수원’으로 연결되는 포장길을 버리고 왼편의 비포장 임도를 따른다. ‘산삼마을’의 이정표도 아직 왼편을 향하고 있다.

▼ 작은 개울을 오른편 옆구리에 꿰찬 임도를 따르다보면 ‘고인돌’을 빼다 닮은 멋진 바위를 만나기도 한다.

▼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솟아오른 삼나무 아래에는 체육시설이 자리 잡았다. 기구에 매달려 몸을 풀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저 아래 ‘먹갓 마을’ 주민들인 모양이다.

▼ 바가지까지 놓아둔 약수터도 만날 수 있었다. ‘먹는물 수질검사성적서’는 보이지 않으나 ‘약수터 이용시 주의사항’이 붙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먹을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약수터를 지났다싶으면 또 다시 길이 나뉜다. 오른편은 봉선암으로 가는 길. 산삼마을 이정표도 이곳에서 이별을 고한다. 탐방로는 물론 왼편 임도를 따른다.

▼ 오른편으로 보이는 저 건물이 ‘봉선암’일지도 모르겠다. 여염집을 닮았지만 마당에 돌탑과 석불을 거느리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 ‘봉선암’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탐방로는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5분 만이다.

▼ 도심에 가까운 산인데도 불구하고 숲은 제법 깊다. 여름철 산행지로 괜찮겠다는 얘기이다.

▼ 오래 묵은 나무 아래에는 서툴게 쌓아올린 돌탑이 들어앉았다. 서낭당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 기도를 드렸던 흔적까지 보이니 여간 범상스럽지가 않다. 하긴 오가는 길손의 수많은 염원들이 알알이 배어있는 돌멩이일지니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으랴.

▼ 봉선암을 지난 지 30분 만에 주능선에 올라섰다. 사거리라서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은데다 천마산으로 오르는 왼쪽 등산로가 훨씬 더 뚜렷하기 때문이다. ‘다산길’은 이곳에서 고개를 넘는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 다산길은 이제 천마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능선들을 횡으로 째며 이어진다. 천마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일절 눈에 띄지 않는다. 덕분에 한적한 산행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 오르내리는 산길이 가파른데다 어설프게 내린 눈까지 더해져 꽤나 미끄럽지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보드라운 흙길에 낙엽까지 수북하게 쌓였으니 까짓 넘어져봐야 엉덩이 한 번 털어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 그렇게 10분 남짓 진행하면 벤치 두어 개와 평상을 놓아둔 쉼터가 나온다. 울창한 숲속에 들어앉은 게 여름철에는 최상의 휴식처로 부족함이 없겠다.

▼ 쉼터 옆에서 천마산관리소에서 올라오는 주등산로를 만났다. 다산길은 이곳에서 주등산로와 합류해 정상으로 향한다. 주등산로인데도 불구하고 산길은 가파르다. 아니 많이 가파르다. 곧장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 지(之)’를 그리면서 겨우겨우 고도를 높여간다.

▼ 고통스런 오름짓이 한동안 계속된다. 그러다가 만나게 되는 ‘약수터’는 목마른 나그네에게는 한줄기 빛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마시기에는 왠지 께름칙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바가지까지 놓아두었지만 물이 고인 형태의 샘인데다 ‘수질검사 성적서’ 도 붙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약수터 위에는 벤치도 놓아두었다. 또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길을 대비해 체력을 비축해두라는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 가파른 오르막길이 또 다시 시작된다. 오늘 트레킹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라 하겠다. 하긴 오죽했으면 ‘깔딱고개’라는 지명까지 붙여놓았을까.

▼ 그렇게 15분쯤 올라섰을까 이번에는 아예 나무계단이다.

▼ 계단이 긴 탓인지 이용하는 사람은 썩 많아 보이지 않는다. 등산객들은 대부분 ‘갈 지(之)’를 그리고 있는 옛길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 계단의 끄트머리. 힘들게 올라선 능선에는 간이 쉼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119의 국가지점표시목은 이곳을 ‘깔딱고개’라 적고 있다. 숨을 깔딱깔딱 거려야만 오를 수 있는 힘든 구간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 이정표(천마산 정상← 1.45㎞/ 관리사무소↓ 1.43㎞)는 두 방향만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른편으로도 길이 또렷하다. ‘너구내 고개’로 연결되는 길이다.

▼ 정상으로 가지 않고 반대방향의 능선을 타기로 했다. 4년 전에 ‘다산길’을 답사했다는 어느 마니아의 후기에 오른쪽으로 내려가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이정표도 세워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다산길 7코스’의 운영이 중단된 지금은 이마저도 치워버렸다. 오로지 선답자의 후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 능선은 계속해서 오름짓이다. 거기다 바위까지 심심찮게 나타난다. 복사해 온 후기는 가파른 내리막에 흙길이라는데도 말이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우리 부부는 계속해서 진행해보기로 했다.

▼ 얼마쯤 걸었을까 능선이 바윗길로 변했다. 기암괴석들이 곳곳에 널린 멋진 구간이다.

▼ 산길은 끝내 암릉으로 변해버린다. 그것도 이력이 붙은 산꾼들이나 다닐 법한 험상궂은 바윗길이다. 위험구간마다 밧줄을 매어놓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지자체의 시설물이 아니라서 믿음은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 더 이상의 진행이 불가능한 곳에 이르자 산길은 바위절벽 아래로 우회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안전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파르기 이를 데 없는 산비탈을 헤집다보니 길이 제대로 나있을 리가 없다. 길이 좁은데다 떡갈나무 잎까지 수북하게 쌓여 미끄럽기까지 하다.

▼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할 경우엔 최소한 중상이니 그저 조심할 수밖에 없다.

▼ 산길은 능선의 위와 산비탈을 번갈아가면서 이어진다.

▼ 이곳에도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돌탑이 세워져 있다.

▼ 고개를 돌리자 빈 가지 사이로 천마산(天摩山, 812m) 정상이 내다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이성계가 천마산 언저리를 지나다가 산이 매우 높은지라 지나가는 촌부에게 산 이름을 물었다고 한다. 모른다고 하자 ‘가는 곳마다 청산은 많지만 이 산은 매우 높아 푸른 하늘에 홀(忽)을 꽂은 것 같아, 손이 석자만 길었으면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고 혼잣말을 하더란다. 하여 산의 이름이 천마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에는 ‘天馬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참조한다.

▼ 또 다시 나타난 거대한 암릉, 산길은 더 이상 능선을 고집하지 못한다. 이번 것은 전문산악인도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 바위가 험해 넘을 수 없으니 낸들 어쩌겠는가. 절벽 아래서 길을 찾아낼 따름이다.

▼ 조심. 또 조심이다. 발아래 절벽만 조심해서 될 일은 아니다. 자꾸만 배낭을 건드리는 위쪽 바위도 경계 대상이다. 바위에 배낭이 걸려 자칫 중심이라도 잃을 경우에는 큰 사고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 489.1m봉으로 여겨지는 봉우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내리막길로 변한다. 드디어 하산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 내려가다 보면 조망이 트이는 곳도 만나게 된다.

▼ 비록 빈 나뭇가지 사이이지만 가곡리 일대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 잠시 후 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거기다 떡갈나무 잎까지 수북하게 쌓여 미끄럽기 짝이 없다.

▼ 그래선지 누군가가 밧줄을 매달아 놓았다. 가느다래서 믿음은 가지 않지만 이의 도움 없이는 내려서기 힘든 구간이다.

▼ 춤을 추다시피 하며 내려서는 집사람의 뒷모습이 차라리 애처롭다. 나 역시 이 구간에서 두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야 통과할 수 있었다.

▼ 계속해서 내리막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이렇게 오르막길도 나타난다.

▼ 얼마쯤 내려섰을까 바닥에 샌드백이 나뒹굴고 있다. 어느 젊은이의 무도 연습장이라도 되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동네에 가까워졌나보다.

▼ 하지만 가파른 내리막길은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계속됐다. 그렇다고 지루해 할 틈은 없었다. 하도 미끄럽다보니 주변을 둘러볼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 깔딱고개를 출발한지 1시간10분. 드디어 사람의 손길이 더해진 풍경이 나타난다. 능선을 다듬어 묘역으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그 너머로 아파트단지까지 고개를 내민다. 선답자의 후기에는 보광사로 연결되는 임도가 나타난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어섰던 모양이다. 덕분에 우린 ‘보광사(寶光寺)’를 둘러보지 못했다. 고려 광종 때 혜거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라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이 절은 고종(조선시대)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李裕元)이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폐사되다시피 한 것을 1984년부터 복원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로 이유원은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운동의 초석을 놓은 이회영 형제의 둘째 이석영의 양아버지이기도 하다. 이석영은 만석꾼이었던 이유원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처분해 신흥무관학교의 자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 묘역 아래 잣나무 숲은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다. 거기다 안성맞춤으로 반석까지 보이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코끝을 스쳐가는 짙은 솔향을 안주삼아 준비해간 막걸리를 마시기로 했다. 그리고는 내친김에 집까지 걸어버렸다. 얼큰하게 술이 올랐는데 까짓 3킬로쯤 더 걷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 잣나무 숲을 벗어나자마자 도로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게 눈에 익은 풍경이 아닌가. 다산길 7코스의 종점인 ‘가곡리’는 초행길인데도 말이다. 길을 잘못 들었음이 완벽하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덕분에 ‘다산길 7코스’ 답사는 1/4도 채 걷지 못한 셈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오늘 트레킹은 2시간 40분이 걸렸다. 오랜만에 길을 나섰고 구간 전체가 산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힘든 여정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 그렇게 내려선 곳은 ‘GS칼텍스 송라주유소(화도읍 묵현리 159-3)’ 옆. 마석역으로 나가는 시내버스(30번, 330번)는 100m쯤 더 걸으면 만나게 되는 ‘너구내 고개’에서 타면 된다. 그나저나 날머리가 바뀐 탓에 가곡리(가오실 마을)의 명물인 ‘공손수(公孫樹)’. 즉 수령이 무려 550년이나 되는 은행나무를 구경하지 못했다. 조선 성종의 손자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경기도 제1호 보호수라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참고로 공손수(公孫樹)란 아버지가 심은 나무(은행나무)가 30년가량 지난 뒤 손자가 태어날 무렵이나 돼야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