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섬티아고 순례길’ 트레킹
여행일 : ‘20. 7. 11(토)
소재지 :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진섬·딴섬
트레킹 코스 : 대기점도 선착장→대기점도(베드로의 집, 안드레아의 집, 야고보의 집, 요한의 집, 필립의 집)→소기점도(바르톨로메오의 집, 토마스의 집)→소악도(마태오의 집, 작은 야고보의 집)→진섬(유다 다테오의 집, 시몬의 집)→딴섬(가롯 유다의 집)→소악도선착장(소요시간 : 3시간 30분)
함께한 사람들 : 가보기 산악회
특징 : 순례길 하면 떠오르는 곳이 ‘산티아고’이다. 순례란 두 다리로 하는 명상이며 사색이자 치유의 시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순례길이 있다. ’천사의 섬‘. 신안의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까지 다섯 개의 섬에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교회를 짓고 길을 이어 ’섬티아고 순례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 작은 교회들을 찾는 길은 해안을 돌아야 하고 노두길을 건너는가 하면 낮은 언덕을 넘고 마을을 지나고 숲길을 걸어야 한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김없이 서 있는 멋진 열두 개의 꼬맹이 교회가 기다린다. 그 길이 국내 최초의 섬 순례길이자 한국의 산티아고, 이름 하여 ‘섬 산티아고’이다.
▼ 찾아오는 방법
대기점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송공항 여객선터미널’까지 와야만 한다. 섬으로 들어가는 여객선이 이곳 송공항(신안군 압해읍 송공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서해안고속도로 ‘죽림 JC(무안군 삼향읍 맥포리)’에서 2번 국도로 갈아타고 압해도로 들어온 다음, 송공교차로(신안군 압해읍 송공리 3-3)에서 빠져나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송공항에 이르게 된다. 참고로 전남은 섬 부자다. 우리나라 3,300여 개 섬 중 2,165개가 전남에 있다. 그중에서도 신안군에 1004개가 모여 있단다. 신안군을 ‘천사 섬’이라 부르는 이유다.
▼ 선착장에 서면 끝도 없이 뻗어나간 다리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압해도(押海島)와 암태도(巖泰島)를 잇는 ‘천사대교’로 2019년 4월 4일에 개통했다. 총연장이 10.8㎞나 될 뿐만 아니라 사장교와 현수교를 동시에 배치한 국내 최초의 다리라고 한다. ‘천사대교’라는 이름은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의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지어졌다. 암태도 쪽의 사장교는 주경간의 길이를 1004m로 건설하여 1004개의 신안군 섬들을 모티브로 했고, 135m의 주탑 정면에는 마름모꼴 형태(가로보)를 새겨 넣어 '신안 다이아몬드 제도'를 형상화했단다.
▼ 우리가 타고 갈 해진해운(☎ 061-279-4222) 소속의 ‘천사 아일랜드호’이다. ‘천사섬’인 신안군에서는 배까지도 ‘천사’인 모양이다. 송공항과 병풍도를 하루 4번(6:50, 9:30, 12:50, 15:30) 왕복하는 이 차도선(車渡船)은 중간에 당사도와 소악도, 매화도, 소기점도, 대기점도에 들른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대기점도와 소기점도를 거른다는 점은 꼭 기억해 두자. 또 하나, 배 시간이 계절과 물때, 기상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참! 배에 오르기 전 신분증 검사를 하면서 발열체크까지 함께 하고 있었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섬 주민들의 건강을 지켜주려는 노력의 일환이지 싶다.
▼ ‘송공항’을 출발한지 1시간 만에 ‘대기점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다섯 개의 섬에 12사도의 교회가 들어서 있으나 선착장은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그리고 소악도 등 세 곳에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도 이곳 대기점도에서 내린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병풍도에서 뱃머리를 돌린 배가 돌아갈 때는 이곳에 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 신안군에서도 대기점도선착장에서 ‘섬티아고 순례길’을 출발하도록 했다.
▼ 섬에 들어선 예배당의 주인은 예수의 열두 제자인 베드로, 안드레아(안드레), 야고보, 요한, 필립(빌립), 바르톨로메오(바돌로매), 토마스(도마), 마태오(마태), 작은 야고보, 유다 타대오, 시몬, 가롯 유다이다. 순례길은 1번 베드로의 집부터 12번 가롯 유다의 집까지 순서대로 연결시킨다. 생김새가 제각각인 이 예배당들은 내부도 독특한 분위기의 작은 기도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12사도의 이름과 병행해 건강ㆍ생각ㆍ그리움ㆍ평화ㆍ생명ㆍ감사ㆍ인연ㆍ기쁨ㆍ소원ㆍ칭찬ㆍ사랑ㆍ지혜의 집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어 종교와 상관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 대기점도 선착장에서 내리면 산토리니(Santorini)의 건축물처럼 흰색과 파란색이 돋보이는 ‘베드로의 집’이 먼저 반긴다. 코발트블루 사파이어 지붕과 눈부시게 흰 회벽. 이색적인 풍경이 단숨에 섬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과 시선을 빼앗아버린다. 건물 옆에는 자그만 종도 매달아 놓았다. 여행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종을 울리며 순례의 첫 발걸음을 내디딘다.
▼ 김윤환 작가가 설계했다는 ‘건강의 집’ 안은 수채화가 얌전하다. 전면에 십자가를 걸고 그 아래 제단에는 촛대를 놓았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창문을 배치해 하시라도 바다를 내다볼 수 있도록 했다. 빙 둘러 의자를 놓아 기도를 드리고 싶은 순례자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선착장에 자리한 탓인지 화장실을 갖춘 유일한 예배당이기도 하다. 예배당이 대합실로도 이용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12사도의 길’ 순례는 대기점도 선착장에서 시작된다. 순례길 시작을 알리는 작은 종을 치고 방파제 겸 선착장 길을 따라 걸었다. 방파제가 시작되는 지점에 분홍색 자전거를 빌려주는 대여소가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춘다. 12㎞의 거리를 부담스러워하는 집사람 친구에게 자전거를 권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녀는 교회 두어 곳만 건너뛰고 완주하겠다며 손사래를 친다. 우리 부부야 물론 두 발로 걷는 게 원칙이다. 참고로 마을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대여소는 이곳 말고도 소악도 선착장에 하나 더 있다. 빌린 곳과 다른 대여소에 반납해도 된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1일 5000원인 이용료는 1만 원으로 늘어난단다. 대여 문의 : 010-6612-5239
▼ 두 번째 예배당인 ‘안드레아의 집’을 향해 길을 나선다. 특별할 게 없는 밋밋한 풍경이 펼쳐진다. 맞다. 대기점도는 수려한 경관을 지닌 섬이 아니다. 병풍도와 소기점도를 잇는 노두 외에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 평범한 섬이다. 그러나 전라남도가 섬의 노두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 2018년 '가고 싶은 섬' 사업 대상지로 기점도와 소악도가 선정되면서 사업의 일환으로 작은 예배당들이 지어졌다. 예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딴 12개의 예배당이다. 집짓기에는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했다.
▼ 길을 잃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길이 나뉘는 곳마다 이정표를 세웠음은 물론이고, 잊을만하면 ‘순례자의 길’이라 적힌 방향표시판이 나타난다. 이렇게 연결되는 예배당들은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 등 5개 섬 12㎞에 배치됐다. 이 예배당들은 바닷물이 빠지면서 드러나는 노두를 건너야 만날 수 있다.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리니 '기적'이요, 12개의 예배당을 차례로 만나니 '순례'다. 그래서 기적의 순례길이 된다.
▼ 오른편 해안도로를 따라 돌아가면 대기점도의 북촌마을이다. 병풍도를 건너는 노두길 입구에 소나무와 정자가 함께 어우러진 파란색 지붕의 예배당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안드레아 성인’의 ‘생각하는 집’이다. 이원석 작가가 설계한 이 독특한 예배당은 양파 모양의 민트색 지붕이 눈길을 끈다. 첨탑에 고양이 두 마리가 올라가 있는가 하면 예배당을 지키는 것도 고양이다. 양파는 섬에서 많이 재배하는 농작물이다. 고양이는 주민들보다도 더 많이 섬에서 살고 있다. 섬 풍경을 돋보이게 해주는 건축물이라 하겠다.
▼ 내부는 소박하게 꾸며졌다. 원탁의 제단과 촛대를 넣은 벽감, 그리고 거칠게 쪼아낸 벽면 속에 갇힌 십자가가 전부이다. 참! 얼핏 뜯어낸 것처럼 보이는 창문 너머로 병풍도를 잇는 노두길이 훤히 보인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 세 번째 예배당인 ‘야고보의 집’으로 가는 길은 바닷가를 따라 나있다. 하지만 순례길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이곳처럼 해안을 도는가 하면 노두길을 건너고 낮은 언덕을 넘고 마을을 지나고 숲길을 걸어야 한다. 그렇게 7~8분쯤 걸었을까 길이 둘로 나뉜다. 왼편은 네 번째 예배당인 요한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
▼ 이정표를 보고 길을 찾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이곳의 이정표(3. 야고보의 집 가는 길→ 400m/ 4. 요한의 집 가는 길← 400m)처럼 양 방향이 모두 표시된 지점은 해당 교회를 둘러본 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대신 한쪽 방향만 표시된 이정표는 그 교회에서 다음 순서의 교회로 별도의 길이 나있다는 의사 표시이다. 참! 각각의 예배당에도 다음 예배당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담은 이정표를 세워놓고 있었다. 모시는 성인과 설치작가의 이름도 적었다. 하지만 작가의 제작 의도에 대한 상세 설명을 곁들이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 7~8분쯤 걸었을까 숲속에 들어앉은 노란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세 번째 예배당인 ‘야고보의 집’이다. 이렇듯 12개의 예배당은 5개의 섬의 언덕과 바닷가, 갯벌 위, 호수 등에 골고루 분산되어 있다. 독특한 개성을 갖췄지만 공통점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 작품 제작 기간 동안 섬 주민들과 생활하며 주민들의 이야기와 애환을 고스란히 담으려고 노력했단다.
▼ 김강 작가가 디자인했다는 ‘야고보의 집(그리움의 집)’은 빨간 지붕과 하얀 벽으로도 모자라 처마 끝에다 기둥까지 세워놓은 것이 흡사 소박한 태국 건축물을 보는 것 같다. 통나무 디자인의 문을 열고 내다본 내부도 특이했다. ‘봉덕사의 종’ 비천상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작은 예배당들은 특정 종교의 틀을 벗어났다. 개신교인들한테는 예배당, 천주교인들에게는 공소, 불자들에겐 암자일 수 있다. 여행자에게는 물론 아름다우면서도 편안한 쉼터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왼편 ‘요한의 집’으로 향한다. 여느 시골과 다름없는 논두렁과 밭두렁을 구경하며 10분쯤 걷다가 갈림길(이정표 : 4. 요한의 집← 1.1㎞/ 5. 필립의 집→ 200m)을 만나면 왼편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 길은 ‘요한의 집’을 거쳐 대기점도 선착장으로 연결된다.
▼ 가는 도중 만나게 되는 옛 ‘증도초등학교 대기점분교’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래도 ‘순례자의 섬 공방제작소’를 설치·운영해보려는 신안군의 눈에는 활용가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저 폐교를 대수선해 여행자들이 공예품을 만들어보는 체험 공방과 현대인들의 지친 삶에 안식을 주는 ‘영혼의 쉼터’를 조성할 계획이란다.
▼ 북풍을 피할 수 있는 아늑한 남촌마을을 지나자 네 번째 예배당인 '요한의 집(생명평화의 집)'이 나온다. 첨성대를 쏙 빼다 닮은 모양새에다 지붕과 창의 색깔유리가 아름다운 예배당이다. 치마처럼 펼쳐진 계단과 염소 조각상도 눈길을 끈다. 이 예배당은 염소를 키우는 오지남 할아버지가 내준 밭에다 지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박영균 작가는 할아버지의 사연을 설계에 담아 보답을 했다. 창을 바다 대신에 밭쪽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 창문 너머로 먼저 떠난 할머니 봉분이 보인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소기점도(이정표의 ‘필립의 집’ 방향)로 향한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지붕이 요정의 고깔처럼 예쁜 '필립의 집(행복의 집)'에 이른다. 대기점도와 소기점도를 잇는 노두가 있는 곳이다. 덕분에 바다와 접한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이 예배당은 툴루즈에 거주하는 작가가 프랑스 남부의 건축양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인근 바닷가에서 주워 온 갯돌로 벽돌 사이를 메웠는가 하면, 물고기 비늘 모양의 목재를 지붕에 붙이고, 주민이 사용하던 절구통까지 건축재로 사용하는 등 지역의 정서를 담으려 한 노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 작가인 ‘장 미셀 후비오’는 프랑스 국적이다. 프랑스풍의 건축기법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이유일 것이다. 그중 하나는 예배당 안에서 만날 수 있다. 제단 뒤의 ‘십자가 창’이 유럽의 성당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져 있다.
▼ ‘필립의 집’에서 대기점도와는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소기점도로 연결되는 노두길로 들어선다. 오래전 사람들은 섬과 섬 사이 갯벌에 돌을 던져 길을 만들었다. 돌을 던져 만든 징검다리 노두길은 섬을 이었고 이제는 섬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잇는다. 노두길은 하루에 두 번씩 사라졌다 생겼다 한다. 물이 차면 수평선 아래로 숨었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나타나는 신비함 때문에 ‘기적의 순례길’이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 노두길 양편으로 갯벌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남해바다는 바닷물이 빠지면 바다만큼 넓은 갯벌이 나타난다. 신안, 특히 이곳 증도 연안은 갯벌로 유명하다.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내 최초 갯벌 도립공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국가 갯벌습지보호지역,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으며, 지난 2004년 해양수산부 평가에서도 압해도, 여자만과 함께 국내 8대 갯벌 중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 노두길을 건너 소기점도에 접어들면 호수 한가운데에 ‘바르톨로메오의 집(감사의 집)’이 꽃처럼 떠 있다. ‘장 미셀 후비오’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인데 다리를 없애고 배를 타고 건너가서 기도할 수 있게 설계했다고 한다. 하지만 배는 보이지 않았다. 공사가 아직 덜 끝나서란다. 유일하게 접근할 수 없는 예배당으로 남은 이유이다. 위치뿐만 아니라 그 생김새도 특이하다. 호루라기 모양으로 생긴 예배당이 얼핏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는 위치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색유리라고 한다. 직접 다가가 볼 수는 없었지만 저수지에 비친 고운 반영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예배당이었다.
▼ 조금 더 들어가자 갈림길이 나온다. 왼편은 ‘소기점도 선착장’으로 가는 길. 순례길은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섬을 횡단한다. 이어서 반대편 해안에 이르자 알록달록한 컨테이너박스 두 개가 숲속에서 얼굴을 내민다. ‘12사도 예배당’을 짓는데 참여한 ‘장 미셀 후비오’와 푸고, 부루노, 얄룩 등 외국 작가들이 숙식하며 거주하던 공간이라고 한다. 작가들이 떠난 이 공간은 리뉴얼을 거쳐 순례길 전시관으로 선보일 예정이란다.
▼ 순례길은 다시 바닷가를 따른다. 이때 진행방향 저만큼에 소악도로 연결되는 노두길이 나타난다. 그 중간에 하얀색 예배당이 보이지만 무턱대고 가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노두길 입구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조금 못미처에서 일곱 번째 예배당인 ‘토마스의 집’으로 가는 길(이정표 : 토마스의 집→ 200m)이 나뉘기 때문이다.
▼ 갈림길에서 빠져나와 산자락을 타고 돌자 잔디밭 언덕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토마스의 집’이 얼굴을 내민다.
▼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삼은 ‘토마스의 집(인연의 집)은 단정한 사각형의 예배당이다. 흰색 외벽과 진한 파란 나무문이 돋보이는데 신비한 빛깔의 푸른 안료는 모로코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무색 단순미의 극치로 평가받는 이 예배당은 예수의 ‘오병이어’기적을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김강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다.
▼ 안으로 들어가 본다. 바닥에 별과 달 모양의 색유리를 박고, 내부에 손바닥 크기의 성경책을 두어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바다도 압권이다.
▼ 노두길로 넘어가는 언덕길에서의 조망은 가히 환상적이다. 소기점도와 소악도 사이의 바다가 드넓게 펼쳐지는데 그 끄트머리에서 돛단배처럼 떠 있는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큰새미섬과 작은새미섬, 큰외섬, 비계도 등일 것이다. 거기다 증도면의 섬들에서는 보기 힘든 소기점도의 바위절벽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 점심은 마을기업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061-246-1245)에서 했다. 소악도로 넘어가는 노두길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식당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8000원짜리 백반. 된장국에 생선과 나물, 장아찌, 해산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들 맛의 고장다운 솜씨라는 평가였다. 참! 술안주용으로 ‘물김 전(8천원)’과 병어회(3만원)도 내놓고 있었다. 이밖에도 대기점도에 대기점민박(010-9226-2093)·노두길민박(010-3726-9929), 소악도민박(010-3499-6292, 소악도), 12사도민박(010-6261-2207, 소기점도) 등이 있으니 취향에 맞게 이용하면 되겠다.
▼ ‘소기점도’와 ‘소악도’도 노두길로 연결된다. 이 노두길은 섬과 섬을 이어주기도 하지만 물이 들어오면 언제 길이 있었냐는 듯 다시 둘로 나뉜다. 기점·소악도의 유일한 자랑거리가 된 이유이다. 아마 이 섬을 이어주고 떨어지게 하는 노두길이 아니었으면 이만큼 매력 있는 섬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 소악도와 소기점도를 잇는 노두길에서 만난 여덟 번째 예배당 ‘마태오의 집(기쁨의 집)’은 멀리에서도 존재감을 뽐냈다. 갯벌 위에 세운 이 예배당은 양파 모양의 금빛 지붕이 특징인 러시아 정교회를 닮았다. 노두길의 중간에 위치한 탓에 물이 차면 작은 섬이 되고 예배당은 바다위에 둥실 떠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된다고 한다.
▼ 김윤환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라는 예배당의 안은 의외로 소박했다. 천정에 매달린 샹들리에(chandelier)와 벽면의 촛대, 금빛의 원통 제단이 전부이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외관과는 딴판이라 하겠다.
▼ 대신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설계의 포인트를 바다 조망에 두었나 보다.
▼ 소악도에서는 꽤 너른 들녘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선지 벼가 심어진 논도 많이 보였다. ‘기점·소악도’의 주민들은 마늘과 양파를 기른다. 참깨와 고구마를 땅에서 내고, 김과 감태를 주는 바다와 낙지를 얻고 새우를 기르는 갯벌에 엎드려 산다. 살아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이다. 그러던 섬이 이제 위로와 안식을 찾는 사람들이 찾는 ‘가고 싶은 섬’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고요한 섬의 길을 걸으려고 뭍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 대하양식장도 가끔 보였다. 천일염, 섬초, 김 등과 함께 신안군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이다. 인기척이 없는 양식장은 한가로워 보였다. 로맨틱한 섬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풍경이라 하겠다. 하지만 섬에서의 삶은 육지보다 훨씬 더 치열하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고 했던가? 섬에서 기른 저 대하는 길러서 판매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 순례길에는 관광용 예배당만 있는 건 아니다. 주민들 삶의 한 단면이랄 수 있는 ‘소악교회’도 만날 수 있었다. 부대시설로 운영하고 있는 ‘자랑께’라는 ‘Pilgrims house(순례자의 집)’이 눈길을 끄는데 ‘문준경 전도사’의 얼을 잇고 있다고나 할까? 실제로 ‘12사도 순례길’이 생긴 배경에는 한국 개신교 최초의 여성순교자라는 문준경(1891~1950) 전도사가 있다. 신안이 고향인 그녀는 여성으로는 드물게 경성성서학원에서 공부한 후 증도로 돌아와 이 섬 저 섬을 돌아다니며 11개의 교회를 개척했으나, 한국전쟁 중 좌익 세력에 의해 피살당했다. 그래선지 지금도 섬 주민의 9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증도면 사무소 인근에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이 있다.
▼ 아홉 번째 예배당을 찾으려면 소악도의 끄트머리까지 가야 한다. 진섬으로 넘어가는 노두길 초입에서 둑길을 따라 100m쯤 들어가면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집’에서나 나올 법한 작고 소박한 예배당을 만나게 된다.
▼ ‘장 미셀’이 설계한 ‘작은 야고보의 집(소원의 집)’은 프로방스풍의 오두막이 생각나는 예배당이다. 어부들이 거친 바다로 나가기 전 기도하는 유럽의 ‘어부들의 기도소’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해당 성인이 어부였음을 드러낸 푸른 물고기 형상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물결모양의 청동지붕과 섬에서 나는 나무형태 그대로 만든 문, 대청마루 형태의 바닥, 배 밑바닥 모양의 천정도 특이하다.
▼ 소악도와 ‘진섬’도 역시 노두길로 연결된다. 기점·소악도 인근 해역은 갯벌의 고장이다. 끝없이 펼쳐진 갯벌은 안개를 이불처럼 덮고 일렁이는 바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에 두 번은 어김없이 배를 드러낸다. 이때 우리는 수많은 생명체를 만난다. ‘칠게’와 ‘짱뚱어’가 달리기 시합을 하는가 하면, 보일동말동한 작은 구멍에서는 ‘보말고동’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이런 호기를 놓칠 주부들이 어디 있겠는가. 언제 다리가 아팠냐는 듯이 갯벌로 들어서버린다.
▼ 진섬 노두길을 건너면 열 번째 예배당인 ‘유다 타대오의 집(칭찬의 집)’이 길가에서 반긴다. 톱니바퀴 같은 지붕에 하얀 건물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몽환적인 작은 예배당이다. 손민아 작가가 설계를 맡은 파스텔 톤의 이 예배당은 어구가 어지럽던 쓰레기장에 지었다고 한다. 주변은 털머위와 해국 등 자생식물을 심어 작은 공원으로 조성했다.
▼ 내부는 소박하게 꾸며졌다. 십자가 하나 달랑 걸어놓았는가 하면, 그 아래에 놓아둔 원목 제단은 아예 다리도 없다. 대신 바닷가로 창문을 내 눈이 호사를 누리도록 했다. 예배당의 크기는 10㎡(3평) 남짓. 혼자서 조용히 묵상하기 좋을 정도의 공간이다.
▼ ’작은 타대오의 집‘ 앞에서 길은 둘로 나뉜다. 왼편은 ’소악도 선착장‘으로 가는 길, 다음 행선지인 열한 번째 예배당은 물론 오른편으로 가야 한다. 바닷가를 잠시 따르다가 해안 언덕으로 방향을 틀면 진섬의 남쪽 언덕, 솔숲 그늘 아래에 자리 잡은 열한 번째 예배당 ’시몬의 집‘이 나온다. 모든 공간이 바다로 열려 있어 일몰 사진의 포인트로 알려진 곳이다.
▼ ‘사랑의 집’으로도 불리는 이 예배당은 문이 없고 앞뒤가 시원하게 열려있는 공간이다. 빈 공간을 바람과 파도소리와 넉넉한 바다 풍경이 채운다. 치유의 공간이기를 바라는 강영민 작가의 의도가 반영돼 있단다.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상단부에는 강영민 작가의 유명한 캐릭터 ‘조는 하트(Sleeping heart)’가 한없이 평화롭게 졸린 눈으로 순례자들을 맞는다.
▼ 12사도의 마지막 예배당으로 가는 길은 산죽 숲 사이로 나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썰물 때에는 모래사장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갯벌 세상인 기점·소악도에서는 흔치 않은 풍경이기 때문이다. 되돌아올 때는 물론 산죽 숲길을 이용하면 된다.
▼ 김 양식장의 장대 너머로 천사대교가 그 거대한 몸집을 드러내고 있다.
▼ 열두 번째 예배당인 ‘가롯 유다의 집(지혜의 집)’은 진섬에서 모래해변으로 연결되는 ‘딴섬(바다물이 만조일 때는 갈 수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에 있다. 이번에는 노두길도 없다. 그러니 물이 조금만 들어와도 길은 바다가 된다. 물때를 맞추지 못한 순례자들이 건너다만 보고 발길을 돌리는 이유이다. 예배당은 붉은 벽돌에 뾰족지붕을 한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모래 해변 너머로 보이는 그 풍경이 언뜻 사진으로 많이 본 프랑스의 ‘몽생미셀 수도원’과 흡사하다. 그래선지 밀물 때문에 들어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단다.
▼ 손민아 작가가 디자인했다는 예배당의 안은 외부와는 달리 너무나 소박했다. 자그만 십자가 놓인 제단은 투박한 나무의자, 재단 뒤의 벽도 십자가 하나와 두 개의 촛대가 걸려있는 게 전부다.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서운함 정도는 예배당 옆 붉은 벽돌을 나선형으로 돌려 쌓은 종탑을 발견하면서 금방 사라져 버린다. ‘이곳에서 열두 번 종을 울리며 지치고 힘들고 뒤틀린 심사를 하나씩 허공에 날려버리고,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힘과 지혜를 얻으라’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 트레킹 날머리는 ‘소악도 선착장
순례길 탐방은 ‘가롯 유다의 집’에서 종료된다. 하지만 섬을 떠나기 위해서는 소악도선착장까지 가야만 한다. 아까 진섬으로 들어올 때 만났던 ‘유다 다테오의 집’까지 되돌아나간 다음 해안길을 따라 선착장으로 가면 된다. 3시간 30분짜리 ‘섬티아고 순례길’이 끝을 맺는 것이다. 그리고 오후 2시25분 출발 여객선을 타면서 기점·소악도와 아쉬운 이별을 고한다. 여행의 참맛이라는 고요해진 섬을 음미해보지 못한 아쉬움이다. 갯벌 위로 떨어지는 붉은 해, 밤새 섬을 휘감은 회색빛 해무, 푸른 밤 노두길을 비추는 하얀 보름달, 그리고 산책 나설 때 동행해주는 민박집 강아지 복실이...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가.
♧ 에필로그(epilogue), ‘순례자의 섬’, 혹은 ‘순례자의 길’은 전남도에서 추진 중인 ‘가보고 싶은 섬 사업’의 하나다. 대기점도, 소기점도와 소악도 등 이름도 생소한 작은 섬에 작은 예배당 열두 개를 세워 여행 수요를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노두길로 연결된 순례자의 길은 총 12㎞다. 약 1㎞마다 하나씩 총 12개의 작은 예배당을 세웠는데, 이는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한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이 길은 기독교를 전체 주제로 삼았다. 섬 주민의 90% 가까이가 기독교인이란 점에서 보듯, 기독교는 구상 단계부터 큰 몫을 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모두 11명의 공공조각과 설치미술 작가들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김윤환 총감독 등 6명이, 해외에서는 ‘장 미셸 후비오’ 등 프랑스와 포르투갈, 독일 출신의 작가 5명이 참여했다. 예배당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건축미술’ 형태의 작품들이다. 건축가가 아닌 조각가, 설치미술가들이 집을 짓는, 일종의 실험적 형태로 진행됐다. 예배당은 섬 주민들에게 땅을 기증받아 노둣길 주변이나 야트막한 언덕, 호수, 마을 입구 등에 세워졌다. 대기점도에 5개, 소기점도에 2개, 소악도에 4개다. 그리고 맨 마지막 예배당인 ‘가롯 유다의 집’은 ‘딴섬’이라 불리는 소악도 끝자락의 작은 무인도에 들어섰다. 예배당의 크기는 두 평을 넘지 않는다. 한두 명이 들어가 기도하거나 묵상하기 딱 좋은 크기다. 하지만 예배당이라고는 해도 기독교인만 찾을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여행자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예배당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참선을 할 수도 있고, 기도를 하거나, 메카를 향해 절을 하거나, 혹은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다. 방문자에 따라서 암자가 될 수도, 공소나 기도소, 쉼터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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