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은도(慈恩島) 해사랑길 트레킹

 

여행일 : ‘20. 6. 21()

소재지 :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면.

트레킹 코스 : 천사대교무한의 다리해넘이길분계해변응암산 왕복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목포시에서 서북쪽으로 약 30떨어져 있는 자은도는 부속 섬으로 두리도와 소두리도·상나배도·중나배도·하나배도 등을 두고 있으며, 동남쪽으로 약 2.3지점에는 암태도와 추포도가 마주하고 있다. 한편 자은도는 우리나라에서 열두 번째로 큰 섬으로, 섬에 대한 고정관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바다와의 거리가 멀어 해변산중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다. 거기다 토질까지 좋아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한다. 땅과 바다에서 나는 물산이 풍성하니 사람의 인심 또한 후할 수밖에 없다. 자애롭고() 은혜롭다()는 지명은 이에서 유래한단다. 그런 풍요의 땅에 내놓은 둘레길이 해사랑 길인데, 국토부의 해안누리길 5선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로 멋진 걷기 여행길이다. 오늘은 4개 코스로 나누어진 해사랑길1코스인 해넘이길)2코스인 간들속삭임길의 일부구간을 걷게 된다. 눈길이 가는 곳마다 푸른 바다가 드넓게 펼쳐지는 멋진 산책길이다.

 

찾아오는 방법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은도의 관문은 이웃섬인 암태도(巖泰島)오도선착장이었다. 두 섬을 이어주는 길이 675m의 다리(은암대교)를 건너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 압해도(押海島)와 암태도를 이어주는 길이 10.8의 천사대교가 놓이면서 이젠 차량을 이용해 자은도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서해안고속도로 죽림 JC(무안군 삼향읍 맥포리)’에서 2번 국도로 갈아타고 압해대교를 건너 압해도로 들어간다. 이어서 천사대교를 건너면 암태도이다. 암태도로 들어온 다음 기동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805번 지방도를 타고 은암대교를 건너면 자은도이다.

 

 

자은도 방문의 시작은 천사대교로부터 시작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도선착장(암태면 신석리)’이다. 천사대교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오도선착장인데, 어찌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이곳 오도선착장은 다리가 놓이기 전부터 자은도와 암태도의 관문이자 주민들의 사랑방이었다. 그러다가 다리 개통으로 뱃길이 끊기자 전망대로 그 임무를 바꿨고, 현재는 전망데크를 중심으로 페리 터미널과 매점 등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오도선착장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전망데크에서의 천사대교 조망이다. 끝도 없이 뻗어나간 다리가 한눈에 쏙 들어오기 때문이다. 눈요기를 마친 사람들은 너나없이‘1004’라고 적힌 조형물 앞에서 줄을 선다. 조형물과 천사대교를 배경으로 한 인생샷이라도 건져보고 싶은 모양이다.

 

 

전망데크에서 바라보는 천사대교의 위용은 참 대단하다. 압해도(押海島)와 암태도(巖泰島)를 잇는 연도교(連島橋)천사대교는 국내 최초로 사장교와 현수교를 동시에 배치한 교량으로 총연장은 10.8이며, 201944일 개통을 했다. 천사대교(千四大橋)라는 이름은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의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지어졌다. 암태도 쪽의 사장교는 주경간의 길이를 1004m로 건설하여 1004개의 신안군 섬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135m의 주탑 정면에는 마름모꼴 형태(가로보)를 새겨 넣어 '신안 다이아몬드 제도'를 형상화했다. 그나저나 저 다리가 놓임으로써 암태도를 비롯해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자라도 등 다섯 섬은 이젠 섬 아닌 섬이 됐다. 서로 연결된 기존의 연도교와 이번에 개통된 천사대교 덕에 뭍과 다름없는 공간으로 벽해상전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암태도는 서울과 광주에서 고속버스 정기노선까지 투입됐다고 한다.

 

 

오도선착장으로 들어오는 여객선은 이제 없다. 그 빈자리를 이젠 세일 요트가 차지했다. 44명이 탈 수 있는 55피트급 쌍동선으로 오도선착장에서 출발해 천사대교와 당사도를 오가며 다도해 바다정원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뱃삯은 성인 기준으로 2만원, 하루 6(10, 1130, 14, 1530, 5, 8) 운항하는데 승선시간은 1시간이란다. 참고로 요트를 타고 돌아보는 인근 섬들은 다이아몬드 제도라고도 불린다. 암태도와 자은도, 비금도, 도초도, 하의도, 신의도, 장산도, 안좌도, 팔금도 등 9개 섬들이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펼쳐져있기 때문이다.

 

 

선착장 뒤 언덕에는 이층짜리 팔각정을 배치했다. 하지만 일부러 올라가볼 필요는 없겠다.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아니 사진만 놓고 보면 선착장보다 오히려 한 수 아래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철탑 하나가 사진의 한가운데서 비켜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자은도로 들어가는 도중에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최근 암태도에서 가장 핫한 사진명소를 지난다는 것이다. 자은도와 천사대교로 향하는 갈림길인 기동삼거리의 한 벽화를 보고 하는 말들이다. 노부부의 인물벽화로 벽화 주인공은 집주인인 문병일(78)·손석심(78)씨라고 한다. 눈에 띄는 점은 지역민을 그린 것뿐만 아니라 담장 안쪽의 애기동백을 활용한 입체적인 구조다. 애기동백이 시골 어르신들의 단골 헤어스타일인 일명 뽀글이파마머리로 환골탈태했다. 최근 공개된 이 벽화는 신안군의 제안으로 3년 전 낙향한 지도 출신의 작가가 그렸다고 한다.

 

 

해넘이길트레킹은 송산교차로(신안군 자은면 송산리 310-2)에서 시작된다. 해넘이길은 이곳 송산교차로에서 시작해 한운선착장과 둔장해수욕장, 사월포 입구를 거쳐 두모정류장에 이르는 코스이다. 하지만 우린 곧바로 둔장해수욕장으로 가서 무한의 다리를 둘러본 다음, 해넘이길을 역방향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빠듯한 귀경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덕분에 우린 두모체육공원과 사월포 입구를 거쳐 두모정류장에 이르는 1/3 정도의 구간은 걸어보지 못했다. ‘바다 내음 나는 모래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둔장어촌체험·휴양마을로 들어가는 아치형 대문 옆에는 행복한 장수촌이라는 홍보문구가 적힌 커다란 마을표지석과 이정표(윈드비치 0.7) 외에도 해사랑길안내판을 세워놓았다. 해사랑길이란 자은도를 걸어서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내놓은 자은도판 올래길이다. 총거리 9.7(실제로는 12)해넘이길(1코스)’을 시작으로 2코스인 간들속삭임 길(11.5)’3코스 다은모래길(11.5)’, 4코스 그리움마루길(5.5)’이 뒤를 잇는다. 해사랑길의 첫 번째 코스인 해넘이길은 자은도의 한운리와 송산리 일대 12의 해안길로 거의 전 구간에서 천사의 섬신안의 섬과 바다를 조망할 수 있으며, 특히 해넘이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정도로 낙조가 아름다운 길이다. 해넘이길 코스에는 2,980m에 달하는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숲을 품고 있는 둔장해수욕장, 그리고 어촌체험마을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천 강화군의 호국 돈대길과 전북 부안의 변산 마실길’, 경남 고성의 공룡화석지해변길’, 부산 영도의 절영해안 산책로와 함께 해양수산부에서 정한 대한민국 해안누리길’ 5대 대표노선에 선정되어 있기도 하다.

 

 

탐방로는 들녘을 헤집으며 나있다. 길가 드넓은 밭에는 양파가 한가득이다. 이곳 자은도가 좋은 토질과 바닷바람이 키운 품질 좋은 마늘의 주산지라고 했는데 그 자리를 이젠 양파가 차지했나 보다. 참고로 자은도는 해수욕장도 많고 찰진 갯벌이 있어 휴양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막상 자은도에 들어와 보면 섬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섬의 사이사이에 끝없이 너른 들녘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간척사업 덕분이란다.

 

 

길손을 반기는 짙푸른 소나무 숲 그늘을 지나자 둔장 해수욕장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해변산책길을 홍보하는 안내판에는 이곳이 신안 갯벌도립공원임을 알리고 있다. 세계 5대 갯벌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은 해안이란다. 초입에서 만난 둔장어촌계 체험장에는 그 갯벌을 눈에 담을 수 있도록 바다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밖에도 정자와 잔디 등이 있어 야영하기에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다. 체험장 뒤로는 소나무 숲이 길게 펼쳐진다. 바닷가의 해송이야 흔하디흔한 수종이지만 동양최대 규모의 송림 숲이라며 무념무상의 길이라는 이름까지 붙여놓았다.

 

 

전망대에 서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할미섬이 가장 먼저 반긴다. 할미섬은 독살로 유명해진 섬이다. 동양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아직도 이곳 주민들은 독살을 이용해 고기를 잡곤 한다는데, 썰물 때면 할미섬 부근에 둘러쳐진 독살이 들어나기도 한단다. 그래서 이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섬까지 걸어가기도 했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무안군청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무한의 다리라는 길이 1004m의 해상목교를 놓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무한의 다리'라는 이름은 무한대()를 내포하는 88일 섬의 날을 기념하고 섬과 섬이 다리로 연결돼 있는 연속성과 끝없는 발전의 의미를 담고 있단다.

 

 

바닷가를 따라 설치해놓은 해넘이길 탐방데크를 따라 주차장 쪽으로 향한다. 할미섬까지 이어지는 천사대교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경관 좋은 산책길이다. 하지만 눈에 거슬리는 풍경도 눈에 띈다. 피서객 유치를 위해 지어놓은 원색의 방갈로들이 하나도 성한 게 없을 정도로 방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시설이라면 조금 더 신경을 써서 관리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는데 이들을 노리는 시설이라고 없겠는가. 깔끔한 화장실을 갖춘 너른 주차장에는 특산물판매장과 함께 식음료를 파는 상점들이 꽤 많이 들어서 있었다.

 

 

관광객들을 위한 포토죤도 만들어 놓았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소망의 노을이란 조형물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으로 피신한 명나라의 탈영병 두사춘(杜思忠, 일명 두사춘)’이 품었던 고향을 그리워하고 귀향하고픈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것이란다. 저 조형물의 동그라미 안에 노을빛으로 물든 해를 담으면 사진에 출품해도 될 만한 명품사진을 얻을 수 있단다.

 

 

 

다리 입구에는 이곳 신안군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1004’ 조형물과 함께 無限의 다리(Ponte Dell’ Infinito)’라고 적힌 큼지막한 표지석을 세웠다. 신안군의 ‘1() 1뮤지엄(museum)’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조각가 박인선과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지은 이름이라는데 섬과 섬을 다리로 연결한다는 연속성과 끝없는 발전을 희망하는 마음을 담았단다.

 

 

이젠 무한대교를 걸어볼 차례이다. 길이 1004m에 폭이 2m인 이 다리는 구리도고도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할미섬까지 갈 수 있도록 놓여있다. 다리에 들어서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기분이다. 터널처럼 곡선으로 디자인한 난간 때문이다. 구리도까지 곧게 뻗은 다리는 구리도 앞에서 왼쪽으로 휘어나간다.

 

 

다리를 걸으면서 즐기는 조망은 일품이다. 자은도의 바위해안이 좌우로 펼쳐지는가 하면 바다에는 이름 모를 작은 섬들이 여린 파도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작은 섬들은 한 개였다가, 두 개가 되고, 또 어느 날은 물이 차서 해변조차 사라져버린 신비로운 바다가 된다. 다리에서의 즐거움은 그뿐만이 아니다. 귀를 즐겁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소리는 덤이다.

 

 

구리도에 이른 다리는 90도에 가깝게 휘어서 최종 목적지인 할미도로 향한다. 그리곤 중간에 고도라는 바위섬에서 다시 한 번 휜다. 하지만 고도는 바닷가로 내려설 수 없다. 물이 빠졌을 때만 수면 위로 나오는 암초이기 때문이다. 고도로 향하는데 끝없는 바다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지금처럼 밀물 때만 느낄 수 있는 호사다. 무한의 다리는 이처럼 밀물 때는 찰랑거리는 바닷물에 아랫도리를 담가 마치 바다 위를 걷는 스릴을, 반면에 썰물 때는 갯벌의 풍요를 만끽할 수 있다. ! 다리가 거쳐 가는 구리도는 면적이 1,488(450)에 불과한 꼬맹이 섬이다. 본섬인 자은도와 모래톱으로 연결되는데 사방이 온통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선지 커다란 시스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슴에 담아둘만한 볼거리는 없다.

 

 

다리의 끝은 할미섬이다. 구리도와 고도는 들어갈 수 없으나 할미도는 마음껏 둘러볼 수 있다. 다리에서 내려와 오른편에 보이는 대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할미도의 자랑거리라는 독살을 보기 위해서이다. 독살은 서해안의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하는 전통적인 고기잡이 방식이다. 해안에 돌을 쌓아 밀물이 되면 고기가 같이 들어왔다가 썰물이 되면 물이 빠지면서 돌담에 남은 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참고로 독살은 남해도의 죽방렴(竹防廉)과 같은 원시어업의 한 종류로 석방렴(石防簾)’이라고도 부른다. 죽방렴이 센 물살을 이용한다면 독살은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한다. 갯벌에 2m 높이의 돌담을 쌓아 밀물에 들어온 고기를 썰물에 걷어내는 식이다.

 

 

 

바닷가에 내려섰으나 기대했던 독살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저 울퉁불퉁한 갯바위들이 사방에 널려있을 따름이다. 그 갯바위에는 앙증맞은 칠게가 바위틈새를 쉴 새 없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이곳 자은도의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의 하나이다. 섬의 반대편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갯벌에 사는 생명의 에너지가 자꾸 붙든다.

 

 

사방에 널려있는 갯바위들 위에는 각각의 염원(念願)을 품은 크고 작은 돌탑들이 수없이 올라앉았다. 개중에는 신기에 가깝게 쌓아올린 것들도 보인다. 바라는 바가 얼마나 간절했기에 저런 정교함이 발현했을까 싶다.

 

 

할미섬 주변에는 세월을 머금은 기암괴석이 숲을 이룬다. 그 가운데서도 촛대를 쏙 빼다 닮은 바위 하나가 유독 눈길을 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돌과 칼로 그은 듯 선이 새겨졌다. 바닷가 기암괴석들 모두가 다 그렇듯 이 바위도 긴 세월 동안 파도에 깎이고 비바람에 씻긴 끝에 만들어졌다. ‘시스택(sea stack, 암석이 파도의 침식을 차별적으로 받아 만들어진 굴뚝 형태의 지형)’이라고도 하는 이러한 바위는 한국의 동해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마치 촛대의 형상을 닮았다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촛대바위라고 부른다.

 

 

반대편에는 관광안내소가 들어서 있다. 갯바위로 연결되는 자갈밭에는 비치파라솔을 배치해 여행객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주변 풍경을 감상하다 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바다 건너 산자락은 풍력발전기들이 차지했다. 해변으로 들어서면서 윈드 비치(Wind beach)’라고 적힌 팻말을 보았는데, 그 바람이 저 거대한 발전기가 힘찬 날갯짓을 할 수 있을 만큼 거셌던 모양이다.

 

 

무한의 다리를 빠져나와 다시 해넘이길탐방로를 따른다. 주차장을 오른편에 끼고 둔장해변을 빠져나가면 ’T’자형 삼거리(이정표 : 송산 정류장7/ 둔장마을320m/ 둔장어촌체험장 500m)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왼편 송산정류장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이후부터 탐방로는 임도를 따른다.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날에는 고역을 치러야만 하는 코스이다. 한운마을에 이를 때까지 오뉴월 땡볕을 가려줄만한 나무그늘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파고라나 정자 같은 인공 그늘이라도 만들어두었으면 좋으련만 이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 숲길을 걷게 된다는 해넘이길 안내판을 무색하게 만드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초반에는 조금 전에 둘러본 무한의 다리가 조망된다. 위에서 바라보는 무한의 다리는 아까와는 달리 너른 바다를 양분하듯이 놓여있다. 그나저나 이 구간은 비록 임도를 따르지만 경사가 심하지 않아 평지나 다름없다. 덕분에 느긋하게 걸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주변 풍광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임도는 산허리를 꿰뚫으며 나있다. 산은 높거나 깊지 않고, 숲이 우거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폭 3m나 되는 임도가 나있다. 1980년대 후반 산불 감시와 산불 예방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그렇게 30분쯤 걷자 삼거리가 나온다. 전망 좋은 쉼터로 가는 길이 나뉘는 이곳에는 이정표(송산정류장5.2/ 쉼터0.57/ 둔장어촌체험마을2.5)‘와 국가지점표지판(나라 6868-6048) 외에도 신안섬 자전거길의 인증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고교항에서 시작해 이곳 해넘이길을 거쳐 분계해수욕장에 이르는 22.7의 자전거길인데, 핸드폰 앱을 이용해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뱀이 똬리를 틀 듯 구불대는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심심찮게 조망이 열린다. 그리곤 굴곡진 곳에 숨어있던 작은 모래사장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귀엽고 작은 바위섬들과 함께이다. 이곳 자은도에 50여 개에 이르는 해변과 9곳의 해수욕장이 있다더니 사실이었던가 보다.

 

 

임도 구간에서 유일하게 만난 정자이다. 바다 건너에 있는 신안의 수많은 섬들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등 조망도 썩 뛰어나다.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란 얘기이다. 아니 임도 유일의 그늘이니 쉬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자를 지나면서 눈의 호사가 시작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원스런 조망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백미는 소나무 몇 그루를 머리에 이고 있는 옥도가 아닐까 싶다. 오와 열이 반듯한 김 양식장의 장대와 조화를 이루며 멋진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망을 즐기면서 걷다보면 한운리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마을 표지석은 천사마을이라고 적고 있다. 이 마을의 새로운 명소인 캠핑&글램핑사무실은 아예 천사섬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참고로 한운(閑雲)이란 마을 이름은 구름 가운데 있는 반달과 같이 생긴 이 마을의 지형에서 유래했다. 여유로운 이름을 가진 이 마을도 일제강점기에는 한가롭지 못했다. 마을 뒷산에 일본군이 참호를 파고 주둔하면서 중국의 침략을 방어했고, 자은도의 곡물과 수산물을 착취해간 것이다. 일본인들은 곡물이나 수산물을 군산이나 목포로 가져갔고,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당시 일본인들이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주민들은 지금도 마을 뒷산에 있는 일본군의 참호 근처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운마을은 참 한가로운 마을이다. 모래사장 안쪽에는 소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갯벌에는 자갈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길지 않은 선착장이 있다. 선착장 주변에 배는 하나도 없고, 저 멀리 김을 재배하던 장대만 한가로이 서 있다.

 

 

 

한운마을에서 송산교차로 나가는 구간은 드넓은 들녘이 펼쳐진다. 자은면은 여덟 면이 바다이고, 마을 숫자보다 해수욕장이 많은 섬이지만 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5% 남짓이라고 한다. 해넘이길에 걸터앉은 한운마을과 둔장마을도 마찬가지다. 주민 대부분은 벼농사를 하거나 양파나 마늘 등의 밭농사를 짓고 있다. 참고로 출발지인 송산교차로로 원점 회귀한 오늘 트레킹은 총 2시간 40분이 걸렸다. 물론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이 포함됐다.

 

 

두 번째 방문지는 둔장해수욕장에서 서남쪽으로 10쯤 떨어져 있는 분계해수욕장이다. 분계해수욕장은 백사장 뒤편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소나무 숲길이 조성돼 있다. 조선시대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태풍을 막기 위한 방풍림으로 만들어진 이 숲은 2010'1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천년의 숲 부분에서 아름다운 어울림상을 받기도 했다.

 

 

 

바닷가로 나가자 해안을 따라 펼쳐진 노송 숲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그렇게 넓지는 않으나 깨끗한 모래사장과 해안을 따라 펼쳐진 이 송림은 여인송 숲이라는 어엿한 이름까지 갖고 있다.

 

 

이 숲의 자랑거리는 단연 여인송(女人松 : 목책을 둘러놓은 나무)’이다. 여인이 하늘을 향해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한 이 노송은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있다. 먼 옛날 분계 마을에 가난하지만 고기잡이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고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 큰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않았다. 후회한 부인은 날마다 이곳에 올라 우각도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며 남편의 무사 귀환을 애타게 빌며 가다렸다. 부인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분계의 제일 큰 소나무에 올라 남편이 배를 타고 오는 환상을 보곤 하였다. 어느 추운 겨울날 기다림에 지친 아내는 소나무에서 거꾸로 떨어져 동사하게 되었다. 그 후 돌아온 남편이 아내의 시신을 수습하여 그 소나무 아래에 묻어주자 나무는 거꾸로 선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닮은 여인송으로 변해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분계해변도 자은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그러니 화장실과 캠핑사이트 등 그들을 위한 시설은 필수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포토죤도 만들어 놓았다. 하트모양 그네와 신안 자은도 해사랑길네모 프레임은 훌륭한 사진 포인트이자 쉼터 역할을 해준다.

 

 

소나무 숲길을 벗어나자 탐방로는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1.2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응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정상까지 탐방로가 잘 닦여있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휴양림(이정표 : 응암산 정상1.0/ 휴양림0.6/ 해수욕장0.3)’과 해수욕장(이정표 : 정상510m/ 해수욕장/ 경로당)‘, 낚시터(이정표 : 정상0.3/ 낚시터0.1/ 해수욕장1.2) 등으로 연결되는 갈림길을 만나기도 하지만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길이 헷갈릴 일은 없다.

 

 

울창한 숲속을 오르지만 가끔은 조망이 열리기도 한다. 이때 해식애로 이루어진 바닷가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모래섬으로 알려진 자은도답지 않은 풍경이라 하겠다. 아무래도 응암산은 먼 바다를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나 보다.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은 무척 가파르다. 하지만 통나무 계단과 데크계단을 설치해 버겁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웃자란 잡초로 뒤덮인 구간도 있었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신성한 명산이라서 뱀이 전혀 없다니 말이다. 거기다 산봉의 바위가 날카로운 매의 모습으로 늘 사방을 지켜준다니 무얼 더 걱정하겠는가.

 

 

주차장을 출발한지 4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아름다운 풍경화가 사방으로 그려지는 멋진 봉우리이다. 하지만 정상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참고로 매바위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산은 자은면의 명산으로 소문났다. 각 지방의 풍수들이 명당자리를 찾으려고 수시로 찾아올 정도란다. 그래선지 소원을 빌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단다. 하지만 부정한 사람이 기원을 하면 갑자기 불이 나서 화상을 입고 병신이 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만만찮다. 발아래에는 작은 소나무 숲을 머리에 인 우각도와 상대섬이 내려다보이고 고개를 더 들면 철새 서식지로 유명한 칠발도 앞 바다가 가없이 펼쳐진다.

 

 

해수욕장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향한다. 잠시 후 내려선 바닷가는 온통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해식애로 이루어져 있다. 먼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거센 파도와 맞닿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절벽의 곳곳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파도가 만들어낸 해식동굴(sea cave)‘들이다. 이런 곳은 통상 코끼리바위라고 불리는 씨 아치(sea arch)와 촛대바위로 불리는 시스텍(sea stack)’이 함께 등장하는 게 보통이다. 해식절벽에서 해식동굴을 거쳐 씨 아치로 변하고, ‘씨 아치가 세월이 흐르면 시스텍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해식지형의 변화과정도 살펴볼 겸 조금 더 멀리 나가보고 싶었지만 물이 차있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바다로 눈을 돌리면 널디 너른 백사장이 펼쳐진다. 썰물 때라 그런지 더 넓어 보이는 백사장 끝에 쪽빛으로 빛나는 바다가 출렁인다. ‘분계해수욕장은 항아리처럼 움푹하게 파인 해안의 입구를 우각도와 함께 상대섬이 막아서고 있는 모양새이다. 저 섬들이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탓에 이곳 분계해수욕장의 물이 저렇게 잔잔하나 보다.

 

 

 

주차장으로 나갈 때는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걸어보기로 했다. 내륙의 해수욕장에서는 보기 힘든 가는 입자의 모래라서 마치 부드러운 솜이불 위를 걷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밟을 때 발이 깊숙이 빠지지도 않는다. 자원공학을 전공한 친구의 말로는 바람에 실려 온 규사(硅砂)가 쌓였기 때문이라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서해의 해변에서 모래 백사장의 완벽한 모습을 보는 건 운이라고 했다. 어떤 시간은 물이 차서 해변이 사라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새하얀 모래 백사장이 끝도 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운이 반쯤 있었던 모양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래사장의 폭이 그렇게 넓지도, 그렇다고 좁지도 않아 보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