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난지도(大蘭芝島)

 

여행일 : ‘19. 12. 14()

소재지 : 충남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

산행코스 : 선착장방조제은개해변국수봉일월봉망치봉전망대난지섬해수욕장난지정바드레산선녀바위선착장(소요시간 : 4시간 10)

 

함께한 산악회 : 좋은사람들

 

특징 : 석문반도와 대산반도 사이의 당진만 입구에 들어앉은 당진에서 가장 큰 섬이자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섬이기도 하다. 이 섬의 주민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한단다. 바다라는 품에 안겨있는 섬치고는 의외라 하겠다. 그만큼 경사가 완만한 지형을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경작에는 물도 필수이다. 그러니 섬이 품고 있는 산들도 흙산일 게 분명하다. 탐방로의 대부분이 산길임에도 불구하고 눈요깃거리가 전무하다시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난지섬해수욕장선녀바위를 제외하면 바닷가도 역시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 갖고도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할 것 같다. 넓은 백사장과 맑은 물을 품고 있는 난지섬해수욕장은 전국의 어느 유명 해수욕장에도 뒤질 게 없으며, 특히 선녀바위의 자태는 내가 보아온 그 어느 바위보다도 그 자태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찾아오는 방법 : 대난지도로 들어가려면 일단 당진군에 있는 도비도까지 와야만 한다. 섬으로 들어가는 배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서해대교를 지나 송악 IC로 나간다. ‘왜목리이정표를 보고 38번 국도를 달리면 633번 지방도로를 만나고 여기서 석문 방조제 방향으로 우회전해서 삼봉사거리까지 간다. 우회전해서 왜목리를 지나 대호방조제를 지나면 대난지도로 들어가는 배가 있는 도비도에 도착한다. 도비도는 원래 섬이었으나 대호방조제를 축조하면서 육지로 변한 곳이다.




대난지도까지는 차도선(車渡船)이 운행된다. 배는 2개 회사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반드시 나오는 배 시간을 확인해 두어야 한다. 타고 들어갔던 회사의 배를 다시 타고나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유람선(관광호 : 정원 96)을 이용했다. 하루 3차례(오전 750, 오후 1, 오후 5) 운항하는 차도선의 시간을 맞추기가 만만찮다는 운영진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1인당 5천원의 요금을 추가로 지불했다.



배를 탄지 10분 남짓 지났을 뿐인데 벌써 배에서 내리란다. 느려터진 차도선을 이용할 경우 30분이나 걸리지만 우리가 빌린 유람선은 그보다 훨씬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거기다 차도선의 중간 경유지인 소난지도까지 빼먹었으니 얼마나 빨리 도착했겠는가. 참고로 난지도는 큰섬(난지도)말고도 작은 섬(난지도)이 하나 더 있다.



포구는 우리가 내린 방파제의 오른편에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선착장이 부교(浮橋)로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선착장과 물양장을 잇는 다리는 물높이에 따라 움직이도록 놓여있다. 조수간만(潮水干滿)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는 증거일 것이다.



대난지도 표지석은 선착장 입구에 들어선 조그마한 마을의 전신주 옆에 세워져 있다. 2000년에 모 단체에서 기증한 것이란다. 그런데 주변이 조금 어수선하다. 쓰레기와 공사자재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인생 샷을 찍을만한 장소가 못 된다는 얘기이다. ‘블랙야크 100대 섬&에서 이곳 대난지도의 인증 장소를 망치봉으로 정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참고로 난지(蘭芝)’라는 이곳 지명은 섬에 난초와 지초가 많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풍도와 난지도 사이의 물살이 몹시 거세서 배가 다니기 어렵기 때문에 난지(難知)’라 했다가 한자만 난지도(蘭芝)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나에겐 후자가 더 타당성이 있게 들린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승선 대기소를 두 곳이나 만들어 놓았다. 그중 대난지도 나루터가 눈길을 끈다.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다는 섬의 특징만으로도 모자라 사랑한다는 건 서로의 마음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는 거라더라..’는 글귀로 관광객들의 감성까지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윤학 시인의 저서인 '샘 괴롭히기 프로젝트'에 나오는 글귀인데 당시에 받았던 감명이 10년 가까이나 지났는데도 새록새록 솟아오른다. 그만큼 가슴에 와 닿았던 책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 그 오른편에는 관광안내도도 세워놓았으니 한번쯤 꼭 살펴보고 길을 나서자.



민박집들이 늘어선 마을 앞 도로를 따라 트레킹을 시작한다. 왼쪽은 아예 뻘이다. 그 뻘밭 너머에서 이곳 대난지도의 명물인 선녀바위가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름다움이 곧 행복의 원천일지니 오늘 트레킹도 행복할 것이 분명하다. !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 짚고 가자. ‘난지도라는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은 이제는 생태공원이 된 서울의 쓰레기 매립지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오늘 찾은 난지도는 서해의 섬이다. 서해의 가장 맑은 바다로 꼽히는 가로림만에 떠있다. 그런 천혜의 요건에다 불과 4.3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도비도가 육지로 변하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도 부척 늘었다고 한다.



5분쯤 걸었을까 방조제가 나타난다. 그 오른편 산자락에 이정표(망치봉3.5/ 난지섬 해수욕장2.6/ 선착장0.4)와 함께 진행해야 할 방향을 화살표로 표시해놓은 난지섬 둘레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이런 안내도는 트레킹을 하는 도중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때는 망설일 필요 없이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 안내도에는 국내 10대 명품 섬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맞다 이곳 대난지도는 2010년 행정안전부에서 추천하는 열 곳의 명품 섬 가운데 하나로 뽑힌바 있다. 그걸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한편 2019년에는 해양수산부의 썸타고 싶은 섬에도 선정된바 있다. 연인과 함께라면 더 좋다는 얘기일지니 우리 부부는 오늘 제대로 찾아온 셈이다. 아무튼 화살표가 지시하는 산자락으로 들어선다. 난지섬 트레킹이 등산으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산길은 많이 가파르다. 그렇다고 버거울 정도는 아니니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까지는 없다. 그래도 힘들다면 중간 중간에 놓아둔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마침 서산반도 쪽으로 조망까지 트이니 눈요기까지 하는 호화 휴식도 가능하다.



급하게 오름짓을 해대던 산길이 언제부턴가 그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그리고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간다. 그렇게 10분쯤 남짓 진행했을까 삼거리(이정표 : 망치봉2.9/ 등산로/ 선착장0.9)가 나온다. 이정표는 왼편으로 내려가라고 지시하지만 등산로라고 적힌 방향이 궁금해서 10m쯤 들어가 보니 맨 꼭대기에 벤치가 놓여 있었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 등 이곳의 지명을 알 수 있는 시설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주민들이 도독개미산이라 부르는 산이 이 부근에 있다고 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탐방로는 이제 은개해안을 향해 내려간다. 가파른 내리막길이지만 극한의 노약자만 아니라면 무리 없이 내려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내려서면 해변에 이른다. 해변으로 들어서기 전에 예쁘게 지어진 전원주택을 만나게 되지만, 진행해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망치봉2.2/ 선착장1.65)둘레길 안내도는 해변과 만나는 지점에 세워져 있다. 둘레길은 이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가없이 펼쳐지는 모래사장을 어깨에 기대고 걷는 이 길은 해송 숲을 헤집고 나있어 걷기에 딱 좋다. 소나무 아래에는 몇 개의 쉼터도 조성해 놓았다. 거기에서 취사도 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민박집에서 운영하는 시설인 모양이다.



길을 걷다보면 방사림(防沙林)으로 조성해 놓은 소나무 사이로 은개해변이 내다보인다. 좌우가 곶으로 둘러쳐져 있어 시야가 넓지는 않지만 눈에 들어오는 풍경만큼은 광활하다. 북쪽으로 몇 개의 섬이 바라보이는데 왼쪽부터 풍도를 비롯해 육도와 중육도, 미육도 등일 것이다.



서쪽 방향으로 난 해안을 따르다가 바닷가로 내려서 보았다. 그런데 위에서 보면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온전한 모래밭이 아닌 것이다. 아니 잘게 부서진 조개껍질들이 더 많아 보인다. 백사장 너머로 펼쳐지는 갯벌에서 서식하는 조개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10분쯤 더 걸었을까 탐방로는 해안을 떠나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그러나 앞서가는 일행 몇은 계속해서 해안을 따르고 있다. 이정표(망치봉 1.6/ 선착장 2.1)는 산자락으로 들어설 것을 지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이 옳았다. 해안을 따르다 보면 국수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오는데, 이 경우 같은 길을 왕복해야 하는 거북스런 산행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임도처럼 널찍한, 거기다 경사까지 완만한 탐방로를 따라 14분쯤 오르자 안부삼거리(이정표 : 망치봉0.85/ 국수봉0.5/ 선착장3.0)가 나온다. 망치봉은 왼편이지만 국수봉이 궁금할 경우에는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단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전제조건을 달고서이다. 우리 부부는 거추장스러운 배낭을 벤치에 맡겨두고 국수봉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는 오르내림을 두어 번 반복하면서 8분 만에 국사봉(121.7m)에 올랐다. 국수봉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봉우리였다. 정상표지석을 세워놓지 않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정표(수련원 2.07/ 등산로)에서도 이곳의 지명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그저 수북이 쌓인 돌무더기가 옛날 이곳이 봉수대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만들고, 누군가가 세워놓은 뾰쪽한 돌맹이가 이곳이 국사봉임을 짐작해 해줄 따름이다. 그 돌맹이에 국사봉이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조망도 물론 트이지 않았다. ! 해안가를 따랐던 사람들과는 이곳에서 마주쳤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는 내 불평에 반대편도 가파르기만 할뿐 구경거리는 없더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 온다. 그래도 같은 길을 왕복해야 하는 코스보다는 더 나았을 게 분명하다.



안부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망치봉으로 향한다.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능선인데 특별히 눈에 담을 만한 구경거리는 내놓지 못한다. ! 짚고 넘어가야할 게 하나 있다. ‘난지섬 둘레길은 능선의 곳곳에서 내려가는 길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선착장을 기점으로 삼는 주 탐방로 외에도 해안으로 연결되는 길(‘등산로로 표기하고 있었다), 삼봉초등학교 난지분교에서 올라오는 길도 있었다. 섬사람들이 오가던 길을 그대로 활용하다보니 샛길이 많이 생겼을 것이다.



그렇게 5분쯤 진행하자 일월봉이 나온다. 일월봉의 정상도 역시 정상석은 세워져 있지 않았다.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다. 앞서간 이들이 매달아 놓은 표지기가 이곳이 일월봉의 정상임을 알려줄 따름이다. 대구의 뫼들산악회는 친절하게도 높이(105m)까지 적어놓았다. ! 국사봉 정상과 다른 점도 있다. 우리 집사람처럼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가기 좋게끔 근처 굵은 나뭇가지에 그네를 매어 놓았다.



다시 능선을 따라 망치봉으로 향한다. 골만 조금 깊어졌을 뿐 이 구간 역시 눈요깃거리는 없다. 그러다가 벤치 두 개가 놓인 봉우리를 만났다. 망치봉으로 오는 도중에 수살리봉을 만난다고 했는데 이곳에는 리본까지 매달려 있지 않아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3분쯤 더 걷자 드디어 망치봉(118.6m)’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정표(난지정 1.5/ 난지분교 0.9/ 국수봉 1.3)에 매달린 정상표지판을 처음으로 만났다. 표지판에 &이 표기되어 있는 걸로 보아 블랙야크에서 인증용으로 설치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아무러면 어쩌겠는가. 우리 부부같이 블랙야크의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이젠 난지섬해수욕장으로 내려갈 차례이다. 가파르게 떨어지는 길을 5분 조금 못되게 내려서니 전망 좋은 곳에 정자가 지어져 있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에는 식탁과 평상에다 벤치까지 놓아 쉼터의 역할까지 겸하도록 했다. 모처럼 전망 좋은 곳을 만났으니 여유를 갖고 즐겨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벤치에 앉자 남북으로 곧게 뻗은 난지섬해수욕장의 시원한 풍경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섬 속의 해수욕장으로 맑은 바닷물과 금빛 백사장을 갖춘 명품 피서지다. 해수욕장 오른편 멀리의 육지에는 대산공단의 공장들이 줄지어 서 있다. 대산공단은 1998년 가로림만 일대를 매립해 국내 굴지의 석유화학 회사들이 들어선 곳이다.



이정표(난지정 1.3/ 망치봉 0.2)는 난지정으로 가라하지만 우린 이정표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한다. 난지섬해수욕장의 또 다른 명물인 전망대를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난지섬해수욕장은 물론이고 간조 때면 육지로 변하는 작은 섬 등 볼거리가 무척 많다는데 어찌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해외여행을 코앞에 두고도 떠나온 여행을 축복이라도 해주려는 듯 날씨가 참 맑다. 맑고 쾌청한 날씨는 섬을 찾는 이의 기분마저 들뜨게 한다.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푸른 바다에 점점이 박힌 섬들과 물살을 헤치고 조업에 나서는 배들. 바다는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아 나도 모르게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게 된다. ! 좋다! 행복하다! 맞잡고 있는 집사람의 손이 한층 더 따스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그녀의 마음 또한 나와 같은 모양이다.



가는 도중에는 군인들의 유격훈련장에서나 볼법한 시설들도 눈에 띈다. 이곳에 들어선 청소년수련원에서 만들어놓은 극기훈련장이란다.



10분쯤 걷자 유료캠핑장이 나오고, 이어서 선박모양으로 지어진 전망대가 반긴다. 전망대는 산뜻한 외모만큼이나 내부구조도 잘 되어 있었다. 나선형으로 설계된 계단은 무척 고왔고, 전망데크와 건물 내부를 유리문으로 차단해 악천후를 대비하는 지혜까지 동원했다.



전망데크로 나가자 최고의 조망이 펼쳐진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바다에는 '소여'라는 암초가 하나 심어져 있고 그 뒤로 작은 섬이 있다. 물이 들어오면 나무만 보일 것 같은 그런 섬이다. 물이 빠져 있을 때도 저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데 만일 물이라도 차오른다면 그 얼마나 화려해질까?



전망대를 내려와 바닷가에 만들어놓은 또 다른 전망대를 찾았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조망은 별로이다. 일부러 내려가 볼 필요는 없겠다는 얘기이다.



조망을 즐긴 다음 난지섬 해수욕장으로 내려왔다. 그리곤 길고 긴 모래사장을 직접 걸어보기로 했다. 모래 위에는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점점이 찍혀 있었다. 그 위를 내가 걷자 새로운 발자국이 찍히면서 이전의 발자국은 자연스레 지워진다. 얼마나 많은 발자국이 이 위에 찍혔다 사라졌을까.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의 발자국뿐만 아니라 강아지와 새 발자국도 있었을 것이다. 그 위에 발자국 하나 더 얹혔다 사라진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만, 때로는 그것에 목숨을 걸고 싶음은 왜일까.



겨울바다는 그리움이다. 두 손으로 시린 귀를 감싸고 겨울바다를 서성대다 보면 세상 시름이 잠시 잊혀진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끼룩끼룩' 울어대는 갈매기 떼는 시인이 되게 하고, 쟁여둔 가슴속 상처를 꺼내게 한다. 가슴이 아림을 느낀다. 거친 숨을 뱉어내듯 끝없이 출렁이는 파도에 홀린 가슴에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솟구친다.



모래사장은 가도 가도 끝이 나오지 않는다. 하긴 길이가 700m나 된다니 이를 말이겠는가. 폭이 50m인 백사장에는 질 좋은 모래가 깔려 있으며, 수심이 얕고 수온이 섭씨 2023도 정도로 비교적 따뜻하단다. 거기다 물까지 맑다보니 사람들은 이곳을 서해의 동해라고까지 칭송한단다. 그보다 더 뛰어난 것도 있단다. 낙조라는데 우린 돌아오는 뱃시간에 맞추느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네를 타는 집사람이 망중한을 즐기는 사이 난 해당화(海棠花)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곳 난지섬해수욕장일대가 '대난지도해당화'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해당화가 흔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히 헛고생만 했다. 녹화사업이 한창이던 1970년대 이후 자취를 감췄다는 얘기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아니 최근에 시작된 해당화 복원사업이 아직 가시화 되지 못했다는 얘기도 되겠다.



해수욕장 근처에는 관리사무소와 샤워장, 화장실 등 필수 편의시설 외에도 카페와 슈퍼, 음식점 등이 여럿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편의시설들이 대부분 이곳에 몰려있어 나처럼 끼니를 굶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선착장까지는 능선을 하나 더 타야 하는데 배불리 먹고 난 다음에 산을 넘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해수욕장의 끄트머리에 이르면서 다소 헷갈리는 상황과 맞닥뜨렸다. 진행방향의 능선에 올라앉은 난지정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른편은 선착장, 왼편은 식당을 겸한 해변연가펜션으로 연결되니 산자락으로 파고드는 계단 하나쯤은 응당 놓여있을 거라고 짐작했는데도 말이다. 이때는 삼거리에 세워놓은 둘레길 안내도를 살펴볼 일이다. 난지정으로 가는 길을 화살표까지 그려가면서 알기 쉽게 표시해 놓았다.



안내도가 알려주는 대로 왼편으로 진행한다. 복날이 지났다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짖어대는 개새끼를 피해 펜션을 지나자 곧이어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난지정)가 일러주는 오른편 방향으로 100m쯤 걷자 또 다른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전망대500m/ 대난지도 선착장3.5/ 망치봉1.2)둘레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지만 헷갈리기 딱 좋은 지점이다. 안내도의 방향표시는 선착장으로 가라며 왼쪽으로 향하고 있고, 이정표도 난지정이 아니라 전망대로 표기해 놓았다. 그렇다면 난지정은 어디서 찾으란 말인가.



안내도를 살펴보고 난 뒤에야 오른편으로 향한다. 차량이 다녀도 좋을 정도로 널찍하게 닦아놓은 임도를 따라 10분 남짓 걷자 기다란 돌기둥 위에 걸터앉은 팔각정이 나타난다. 조금 전 이정표에 전망대로 표기되어 있던 난지정(蘭芝亭)’이다. 하지만 비경도와 분도로 여겨지는 무인도 두엇이 소나무 숲의 빈틈을 통해 내다보일 뿐 조망은 꽉 막혀있었다. 이정표에 적혀있던 전망대라는 지명표시가 잘못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산행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다지 가파르지 않는 봉우리 하나를 넘자 안부삼거리(이정표 : 대난지도 선착장2.7/ 삼봉초등학교 난지분교400m/ 망치산2.1)가 나온다. 난지정에서 20분쯤 되는 지점인데 첨부된 둘레길 안내도는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도록 지시하고 있으니 참조한다.



우리 부부는 직진하기로 했다. 덕분에 우린 섬의 중심 마을인 양짓말을 둘러보지는 못했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이지만 이정표에 표기된 난지분교는 물론이고 교회까지 있다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코에서 흙냄새가 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엄청나게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그래서 둘레길을 난지분교 방향으로 돌려놓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15분 조금 못되게 오르자 드디어 바드레산(117.6m)’ 정상이다. 도톰하게 솟아오른 모양의 정상에는 삼각점(난지 22)이 설치되어 있었다.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이정표도 세워놓지 않았다. 그저 대구의 뫼들산악회에서 매달아 놓은 리본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대신 조망은 괜찮은 편이다. 난지정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가운데에 두고 오른편에서는 난지섬 해수욕장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왼편에는 비경도와 소조도, 분도가 널따랗게 바다 위에 펼쳐진다.




조금 더 걷자 동그랗게 쌓아올린 돌무더기가 보인다. 얼핏 봉수대(烽燧臺)의 흔적처럼 보이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내 짐작이 옳다면 이곳은 연변봉수(沿邊烽燧)가 분명하다. 셋으로 구분되는 조선의 봉수 가운데 해륙(海陸)의 변경 최전선에 위치한 것이 연변봉수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둘은 서울 목멱산의 경봉수(京烽燧)와 경봉수와 연변봉수를 이어주는 내지봉수(內地烽燧)이다.



이젠 산을 내려갈 차례이다. ‘항아리만한 바위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조심스레 10분쯤 내려섰을까 작은 임도가 나타나고 5분쯤 더 걸으면 안부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는 임도를 따라 왼편으로 내려왔다. 맞은편 능선으로도 오솔길이 나있긴 했지만 소난지도를 잇는 연도교(連島橋) 공사 때문에 길이 끊겨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부에서 보이기 시작한 돌 조형물들이 마치 가로수 노릇이라도 하려는 듯이 임도를 따라 줄줄이 늘어서 있다. 누가 언제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하나같이 석등(石燈)이나 사리탑(舍利塔)을 닮은 것을 보면 불교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잠시 후 소난지도를 잇는 연도교(連島橋) 공사현장을 지난다. 아까 능선으로 진행했을 경우 저 현장에서 길이 끊기게 된다. ! 그러고 보니 아침에 도비도항에서 내려 유람선을 기다리던 도중 소난지도에 대한 안내판을 만났었다. 등록문화제(692)로 지정되어있다는 의병총에 대한 내용이었다.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이 소중한 역사는 70년대 지역 교사와 학생들에 의해 고증되어 기릴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공사현장을 벗어나자 임도가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내가 가려는 바닷가가 오른편에 보이는데도 말이다. 길을 찾아본답시고 웃자란 잡초와 갓 심은 과목들 사이를 헤쳐 나갔더니 아까 그 임도로 다시 내려선다. 헛고생만 한 셈이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해안에 다다랐다. 안부삼거리에서 내려선지 10분 만이다. 이후부턴 오른쪽 어깨를 해안절벽에 기댄 해안선을 따른다. 바닥이 너덜이라 걷는 게 조금 불편하지만 차량이 만들어놓은 바퀴자국을 따르면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다.



그렇게 5분 남짓 걸었을까 특이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이곳 대난지도의 얼굴마담이라 할 수 있는 선녀바위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형상인 이 바위는 애틋한 전설을 갖고 있다. 오랜 옛날 고기 잡으러 나간 낭군이 돌아오지 않자 아낙이 섬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바위가 됐다는 것이다. ! 밀물 때는 그냥 평범한 바위인데 물이 빠지면 저렇게 가느다란 모가지를 드러낸다고 해서 굴뚝모가지바위선바위라고 부르는 주민들도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그나저나 대만의 야류지질공원(野柳地質公園)에서 보았던 여왕머리 바위(女王頭)’를 쏙 빼다 닮았다. 고대 이집트의 네페르티티(Nefertiti, BC1370-1330) 여왕을 닮았다는 그 바위 말이다. 지각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해수의 침식 작용으로 점차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어 왔다는데, 이 바위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이라도 함께 찍어보려고 언제 줄어들지도 모르는 줄을 부지하세월로 서야했던 그녀에 비해 이곳 난지도의 선녀바위 곁에는 우리 부부 밖에 없었다. 스토리텔링의 과정이 완성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밖에도 선녀바위 근처에는 숨겨진 비경들이 여럿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주변 해안이 온통 해식애(海蝕崖)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해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누군가 이 근처에 용난굴이 있다고 했는데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두어 개의 돌기둥도 보였다. 그렇다면 이곳은 해식지형의 변화과정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 해식절벽(sea cliff)에서 해식동굴(sea cave)을 거쳐 씨 아치(sea arch, 독립문처럼 암석 기저부가 뚫린 다리모양의 파식지형)’로 변하고, ‘씨 아치가 세월이 흐르면 시스텍(sea stack, 암석이 파도의 침식을 차별적으로 받아 만들어진 굴뚝 형태의 지형)’이 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바위절벽들 사이에는 결이 고운 작은 모래사장도 숨겨져 있었다.



물 빠진 갯벌에는 굴양식장이 널따랗게 펼쳐지고 있었다. 지금은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지도 앞바다에는 저런 시설들이 널려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근에 대호방조제가 막히면서 어장이 황폐화되었고 대산에 공단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의 주 소득원이었던 양식 산업은 급격히 약화되었단다. 산업화라는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가슴 아픈 일면이라 하겠다. 아픈 상처이지만 그 양식장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까지 묻힐 수는 없었다. 양식장 뒤를 하얀 수중기가 꽃무늬를 그려내는 서산(대산)산업단지가 받쳐주면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잘 그린 그림이다.



날머리는 대난지도선착장(원점회귀)

뭍으로 돌아와 작은 방조제를 건넌다. 제방이 생긴 것은 일제강점기 때라고 한다. 대난지도 주민들의 생활은 제방이 들어서면서 변한다. 농사지을 간척지가 생기면서 주민들은 쌀을 생산해 식량으로 삼았고, 굴과 바지락 채취가 짭짤한 부소득원이 되어주었다. 제방의 왼편은 태양광 전지판이 가득한 발전소다. 옛날에는 저곳에 염전(鹽田)이 있었단다. 그러다가 대하 양식장으로 사용했었고 지금은 저렇게 발전소로 변해 마을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생산하고 있단다. 방조제를 건너자마자 아까 산으로 올랐던 들머리가 나오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선착장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끝을 맺는다. 오늘 트레킹은 총 4시간 4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하면 4시간 10분을 걸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