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도(狼島)

 

여행일 : ‘20. 10. 31(일)

소재지 :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

트레킹 코스 : 선착장→쉼터전망대→역기미분기점→낭도산→역기미 삼거리→장사금해수욕장→남포등대→신선대→주상절리→낭도해수욕장→선착장(소요시간 :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여수시의 ‘여자만 해넘이전망대’에서 고흥군(영남면)의 ‘우천리’까지는 기껏해야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둘은 ‘여자만’에 가로막혀 마치 딴 나라처럼 멀기만 했다. 그러다가 올 2월 조발도와 둔병도, 낭도, 적금도를 다섯 개의 다리로 연결시키면서 이제 가까운 이웃이 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섬이 여우를 닮았다는 낭도(狼島)인데, 이 섬도 다리의 개통과 함께 큰 변신을 했다. 섬에서 가장 높은 ‘상산’으로 오르는 네 개의 등산로(여산마을·규포마을·규포선착장·역기미삼거리)를 정비했는가 하면, 섬의 남쪽과 동쪽 해안에는 ‘낭만낭도 섬 둘레길’ 3개 코스가 조성됐다. 최근 이 섬이 관광객으로 붐비는 이유이다. 그건 그렇고 이 섬의 자랑거리는 동남해안을 따라 발달된 해식애(海蝕崖)다. 특히 부안의 채석강을 연상시키는 천선대와 주상절리가 발달된 신선대는 흔히 만날 수 없는 비경이라 하겠다. 트래킹을 하는 내내 조망되는 다도해의 풍경 또한 낭도만의 자랑거리이다.

 

▼ 트레킹 들머리는 여산마을(여수시 화정면 낭도리 1010)

백야도(여수시 화정면)의 백야항에서 느려터지게 달리는 차도선을 타야만 이를 수 있었던 개도가 이제 자동차로도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올 2월 말 여수와 고흥을 잇는 연륙·연도교 4개가 한꺼번에 개통된 덕이다. 국내에 코로나19가 한참 확산되고 있을 때여서 개통식도 하지 못했지만 15년 동안 6684억 원이나 쏟아 부으면서 만들어낸 다리들이다. 남해고속도로(영암-순천) 도롱 IC에서 빠져나와 17번 국도를 타고 여수방면으로 내려오다 덕양교차로(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서 22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내려오면 여자만의 끄트머리인 공정마을(여수시 화양면 장수리)이 나온다. 이곳에서 새로 놓인 조화대교와 둔병대교, 낭도대교를 연이어 건너면 목적지인 낭도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낭도항으로 들어가는 굴다리의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선착장 근처에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만 마을 도로가 협소한 탓에 대형버스의 진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 오늘 트레킹은 낭도항 물량장 근처에서 출발한다. 능선(등산로 1코스)을 따라 낭산 정상에 올라선 다음, 등산로 4코스를 이용해 ‘역기미삼거리’로 내려온다. 이후는 ‘낭만낭도 섬 둘레2길’과 ‘낭만낭도 섬 둘레1길’을 연이어 답사한 후 출발지인 굴다리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기 코스다. 트레킹 도중 바닷가를 오르내리며 낭도의 명소들을 빠짐없이 둘러봄은 물론이다.

▼ 길은 마을 앞 해안가를 따라 나있다. 오가는 승용차가 서로 비켜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데,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수령이 300년도 넘은 느티나무가 나오고, 이어서 노인정과 농협지소, 게스트하우스, 치안센터를 차례로 지난다.

▼ 바닷속 풍경이 그려진 핑크빛 벽화가 섬마을에 들어왔음을 실감나게 한다. 대문에는 문패 대신에 주인장의 캐리커처를 그려 넣었다. 거기다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글귀까지. 오가는 차량들을 피해가야만 하는 비좁은 골목길이지만, 스쳐 지나가는 벽화가 가득한 불편에 한줄기 위로가 되어준다.

▼ 길가 담벼락은 ‘낭만의 섬, 낭도’를 알리는 문장과 예쁜 벽화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남장여자-여장남자들의 축제인 ‘낭도 카니발’을 알리는 벽화가 눈길을 끈다. 낭도 전 주민이 참여하는 가장무도회이자 청춘남녀가 사랑을 구애하는 연애장소로 활용되던 낭만의 무대였지만 지금은 중단된 상태란다.

▼ 마을길을 빠져나오자 주차장을 겸하고 있는 낭도항의 물량장이 나온다. 국가어항이라선지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이다. 하지만 물양장은 주차된 차량들을 제외하고는 정적이 감도는 풍경이다. 다리가 새로 놓이면서 여객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나마 ‘낭산정’과 마을카페, 그리고 그 앞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가 조금은 부산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느낌. 하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문이 닫혀 더욱 썰렁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을 따름이다.

▼ 물량장 입구에 낭도산 등산안내도와 함께 ‘화정면 낭도리 여산 마을’이라는 여산마을 유래비 겸 표지석이 있었다. 낭도란 섬 전체가 여우를 닮았다고 하여 ‘이리 낭(狼)’ 자를 써 ‘낭도’라 하였다가 이후 낭도의 모든 산이 수려하다 하여 ‘고을 여(麗)’ 자와 ‘뫼 산(山)’ 자를 써서 ‘여산’이라 하였다는 내용이다. 또한 여산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성명 미상의 강릉 유씨가 처음 들어와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적고 있다. 주민 수(175가구 307명)까지 적는 친절을 베풀고 있으나 개발 바람이 한창인 지금은 이보다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 근처에는 ‘낭도’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다. ‘싸목싸목 걷는 섬, 낭만낭도’라는 이름표 아래에다 4개 코스로 이루어진 ‘상산 등산로’와 3개 코스로 나누어진 ‘섬 둘레길’을 지도와 함께 설명해 놓았는가 하면, 그 오른편에는 ‘상산 봉수대’와 ‘공룡발자국 화석’ 등 낭도가 자랑하는 명품 경관을 사진을 첨부해가며 자랑하고 있었다.

▼ 물량장에 만들어놓은 널따란 주차장을 지나자 왼편으로 길이 하나 나뉜다. 출발지인 굴다리에서 10분쯤 되는 지점이다. 상산의 들머리인데 이정표(상산 등산로 입구←)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부드러운 오르막길이 마을 뒤 언덕배기까지 이어진다. 삼거리인 이곳에선 여산마을(게스트 하우스)로 연결되는 직진길 대신 오른쪽 ‘상산 등산로’ 방향, 10분 뒤 갈림길에서는 왼쪽 길로 간다.

▼ 이후부터 탐방로는 능선을 따른다. 길은 밭 사이로 나있다. 바람막이 하나 없이 그대로 속살을 비추고 있는 밭은 자갈이 반. 말 그대로 척박한 땅이다. 언덕배기마다 골을 만들고 밭을 일궜다. 바다를 향한 밭은 억척스러움마저 느껴진다.

▼ 시야를 가릴 게 없어선지 눈을 들자 낭도 앞바다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기다란 방파제가 둘로 나누고 있는 모양새. 그 끝에는 빨간 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빨강 등대 오른편에는 육지와 떨어진 또 다른 방파제. 일자형의 이 방파제에는 항로 곁의 하얀 등대 외에도 끝자락에 노란 등대 하나가 더 있다. 노란 등대 옆에는 섬도 하나 있다. 바로 ‘대납도’이다.

▼ 시선을 오른편으로 약간 비틀자 ‘낭도 선착장’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끄트머리의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곳에 지어진 정자는 대합실 겸 쉼터이다. 그 왼편은 매립지로 접안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사방이 탁 트인 정자, 낭산정(狼山亭)이 들어선 이곳은 원래 바다에 서식하는 게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기섬’이라고 불리던 곳인데, 매립공사를 거쳐 현재는 여객선 접안 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 언덕에서 바라보는 여산마을 풍경은 섬답게 다소곳하고 아기자기 하다. 형형색색의 지붕을 이고 있는가하면 돌담으로 이어지는 마을길도 조붓해서 정겹다. 참고로 여산마을은 규포마을 및 사도마을과 함께 ‘낭도리’를 구성하고 있는 세 개의 자연부락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마을이기도 해서 화정면 출장소와 치안센터, 농협, 보건진료소 등의 행정기관이 들어서있기도 하다. 낭도중과 여산초교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폐교되었단다.

▼ 삼거리를 지나서 25분이면 콘크리트길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산길과 연결된다. 해송 숲이 하늘을 가리는 아름다운 능선길이다. 길의 상태 또한 곱다. 부드러운 흙길만 해도 고마운데 조금만 가파르다 싶으면 어김없이 침목 계단을 놓았다. 그뿐만 아니다. 흙길에는 야자나무 매트를 깔아 흙길의 고질적 고민인 질퍽거림도 없앴다.

▼ 산자락으로 들어선지 12분, 새로 지어진 듯한 ‘데크전망대’가 길손을 맞는다. ‘쉼판터 전망대’라는데, 섬을 둘러보다 보면 이런 전망대를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들의 조망 대상은 대부분 사도(沙島)와 그 주변 섬들이다. 하지만 이곳은 주변의 나무가 추도(鰍島)를 위시한 나머지 섬들을 가려버렸다.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 전망대에 오르자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중심은 사도(沙島)이다. 공룡 발자국과 현대판 모세의 기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다 갈라짐 현상 등 볼거리가 사방에 널려있는 명품 섬이다. 그렇게 좋은 경관을 지자체에서 놓아두었을 리가 없다. 여수시가 관광 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도와 낭도 간 연도교 가설공사를 계획했음은 물론이다. 문화재청의 불허로 보류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수상버스(유람선)를 건조해 사도 인근 섬을 선상 투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지만 말이다.

▼ 조금 더 걷자 밑둥치 둘레가 3m는 됨직한 해송이 가지를 뻗고 위용을 뽐낸다. 이곳에서도 다도해의 풍광을 맛볼 수 있다. 아니 조금 전에 만났던 전망대보다 오히려 한 수 위이다. 그래선지 소나무 아래에다 벤치 두어 개를 놓아두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조망을 느긋이 즐겨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 거침없이 사방으로 뻗어나간 나뭇가지 아래 잔잔한 바다에는 작은 섬들이 차분하다. 너무 고요해서일까 그게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 말이다. 풍경은 역시 자연이 그려낸 것이 최고인가 보다. 그림으로까지 승화되지는 않았지만 고즈넉한 저 섬마을 안 골목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돌담길도 있다. 한번쯤은 눈여겨 봐두어야 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다.

▼ 다시 길을 나서면 5분쯤 되는 지점(이정표 : 정상↑/ 규포마을←/ 낭도선착장↓)에서 ‘규포마을’로 연결되는 등산로(2코스)와 만난다. 이어서 가파름을 더해가는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자 이번에는 ‘역기미 분기점’. 우리 일행이 하산 코스로 이용하려는 등산로(4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므로 상산을 둘러본 뒤에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참! 이곳에도 이정표(상산 정상↑/ 역기미 삼거리→/ 낭도선착장 ↓)가 세워져 있었다. 아니 길이 나뉘는 지점이나 주요시설이 있는 지점에는 어김없이 이정표를 세워놓아 길 찾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다만 거리표시를 해놓지 않은 점은 아쉬웠지만 말이다.

▼ 역기미분기점부터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아니 엄청나게 가파르다. 침목 계단만으로는 부족해 밧줄난간까지 만들어 놓았다면 대충 이해가 갈지도 모르겠다. 5분쯤 되는 이 구간이 버거울 경우 밧줄에 의지해서 올라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 그렇게 힘들게 올라선 상산(280.2m)의 정상은 돌무더기가 작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었다. ‘봉수대’의 흔적일 것이다. 하지만 낭도봉수에 해안 관련문헌이나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고흥봉수’와 ‘돌산 방답진 봉수’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따름이다. 참고로 조선의 봉수는 셋으로 구분된다. 전국 모든 봉수의 집결지여서 중앙봉수라고도 불린 서울 목멱산의 경봉수(京烽燧)와 해륙과 변경의 최전선에 위치한 연변봉수(沿邊烽燧), 그리고 경봉수와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내지봉수(內地烽燧)였다. 그 중에서 연변봉수는 바다정찰과 신호전달, 해안경비뿐만 아니라 적의 침략 시 자체적으로 응전, 방어하는 임무까지 맡고 있었다. 그러니 이곳 낭도봉수도 연변봉수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썩 뛰어나지는 않다. 나뭇가지로 둘러싸여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아차릴 정도의 시야만 열어준다. 그저 조발도(早發島)와 둔병도(屯兵島), 적금도(積金島) 등 ‘백리 섬 섬길’을 이루는 여러 섬들과 이 섬들을 잇는 ‘조화대교’와 ‘둔병대교’가 실체에 가깝게 눈에 들어올 따름이다. ‘조화대교’는 170m 높이의 주탑(主塔)이 설치된 ‘사장교(斜張橋)’다. 상판을 지탱하는 수많은 케이블이 색다른 원근감을 선사하는데, 고흥으로 가는 첫 관문임을 알리듯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같은 사장교인 ‘둔병대교’는 주탑의 곡선미가 강조되어 한층 여성스럽다. 주탑에서 조발도 쪽으로 뻗은 케이블이 상판의 양쪽 끄트머리가 아닌 도로 중앙선과 연결된 점도 독특하다.

▼ 역기미분기점으로 되돌아와 하산을 시작한다. 1~2분쯤 걷다가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 왼편 오솔길로 들어선다. 그런데 이게 만만찮은 형세이다. 사뭇 가파른데다 바닥이 마사토로 이루어져 미끄럽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안전에 대한 조치는 일절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내려오는 도중에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등산로 정비에 힘을 쏟은 여수시청으로서는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 하겠다. 밧줄 하나만 매어놓아도 안전에 대한 걱정이 끝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 하산 길, 정상에서 못다 한 조망에 대한 갈증이 조금이나마 풀린다. 다도해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돛단배라도 되는 양 두둥실 떠있는 섬들은 하계도(下鷄島)와 상화도(上花島), 하화도(下花島), 등일 것이다.

▼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서 30분쯤 내려서면 ‘역기미삼거리(이정표 : 장사금 해수욕장→/ 규포선착장←/ 상산등산로↓). ‘낭만낭도 섬 둘레길’의 2길과 3길이 나뉘는 지점으로 우리가 가려고 하는 신선대와 천선대는 이곳에서 오른편(장사금 해수욕장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섬 둘레2길’이자 따뜻한 남녘의 섬답게 상록수가 울창한 아름다운 숲길이다. 싸목싸목 걷기에 딱 좋은 길이기도 하다.

▼ 둘레길로 들어서자마자 증도(시루섬)와 장사도(진뎃섬), 추도 등 사도 주변의 섬들이 조망되는 ‘데크 전망대’를 만나게 되고,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바닷가로 길이 열리면서 방금 전 훑어보던 풍경이 다시 한 번 눈앞에 펼쳐진다. 아니 바닷가에 터를 잡은 민가들까지 눈에 들어올 정도로 주변 섬들이 가까워졌다. 가장 왼쪽의 섬은 화정면의 유인도서(有人島嶼) 중 가장 작은 추도(鰍島)이다. 고기 중에서 작은 미꾸라지와 비교하여 추도라 부른 데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추도는 ‘공룡발자국화석 산지’로 그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사도 일원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 화석’의 약 50%가 이곳에 몰려있을 정도이다.

▼ 둘레길 대신에 이번에는 바닷가를 따라봤다. 저렇게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해 있으니 숨겨진 비경이라도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저 정도의 지형을 만들 정도의 해식작용이라면 절벽(sea cliff)에 동굴(sea cave) 몇 개쯤은 뚫어놓을 것이고, 이게 세월이 흐르면서 ‘씨 아치(sea arch, 독립문처럼 암석 기저부가 뚫린 다리모양의 파식지형)’를 거쳐 ‘시스텍(sea stack, 암석이 파도의 침식을 차별적으로 받아 만들어진 굴뚝 형태의 지형)’으로 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마침 간조(干潮) 때라서 길도 나있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안전에 각별히 신경 써야만 한다. 해식애가 발달된 곳이라서 크랙에 의지해서 오르내려야만 하는 바위절벽이 심심찮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거기다 물기가 듬뿍 배인 갯바위는 미끄럽기 짝이 없었다.

▼ 바닷가에는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수없이 널려있었다. 타포니(tafoni) 현상이라는데, 타포니란 염풍화작용으로 암석에 동굴처럼 구멍이 뻥뻥 뚫린 지형을 말한다. 멀리서 보면 벌집이나 해골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혹자는 골다공증 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 갯바위들을 오르내리며 20분 정도 이동하자 ‘낭도상수원’이 얼굴을 내민다. 작은 모래사장 뒤편 언덕에 다소곳이 들어앉았다.

▼ 상수원 앞 해안에는 꼬맹이 고깃배 한 척이 매어져 있는 작은 선착장이 들어서 있었다.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마디로 끝내준다. 바다 가운데 지친 파도가 쉬었다 가는 작은 섬, 그 옆을 지나는 고기잡이 배 등 모든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 선착장에서 바닷길이 끊긴 탓에 다시 ‘둘레길’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남해의 섬답게 늦가을인데도 불구하고 동백나무와 사스레피나무, 해송 등의 상록수들이 푸름을 자랑하고 있다. 이 길을 걷다보면 우거진 나무 사이사이에서 남해바다가 코발트 빛 피부를 드러낸다. 분위기에 취해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하고, 해안 단애에 부딪치는 파도소리에 귀를 씻어본다. 모처럼 갖는 여유라선지 그 순간순간이 매우 서정적이고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 잠시 후 정자에서 또 다시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리고 갯바위를 오르내리며 조금 더 걷자 ‘장사금 해수욕장(長沙金 海水浴場)’이 얼굴을 내민다. ‘역기미3거리’에서 ‘섬 둘레2길’을 시작한지 50분 만이다. ‘장사금’이란 지명은 금빛 나는 모래가 비단처럼 곱게 펼쳐져 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만큼 아름답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거기다 돌담을 쌓아 정취를 더한 해수욕장 진입로도 눈에 담을 만했다.

▼ 낭도에는 두 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접근성과 이용 측면에서는 마을과 가까운 ‘낭도해수욕장’이 편리하겠지만, 해변 풍광과 고즈넉함을 고려한다면 단연 ‘장사금해수욕장’이다.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한 사도와 추도를 위시한 섬 무리들을 한꺼번에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장사금해수욕장에서 빠져나오면 ‘산타바 오거리’. 사방에 밭을 개간해 놓은 낮은 고개에 남포등대, 장사금해수욕장, 여산마을로 가는 길이 다섯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데, ‘낭만낭도 섬 둘레길’의 1길과 2길이 나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1길을 걷게 된다는 얘기이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1길(또는 주차장)’로 들어서서 50m쯤 걷다가 삼거리를 만나면 오른편 ‘남포등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어서 70~80m쯤 더 가면 나오는 삼거리(이정표 : 산타바 해변↑/ 섬 둘레1길→/ 산타바5거리↓)에서도 역시 오른편 방향이다.

▼ 자그만 구릉을 넘는 이 구간은 사도(沙島)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담게 해준다. 본섬인 사도를 중심으로 중도(간데섬)와 증도(시루섬)·추도·장사도(진대섬)·나끝·연목 등 6개 섬이 ’ㄷ‘자 모양을 이루는데, ‘중도’와 다리로 그리고 ‘증도’는 육계사주(陸繫砂洲)로 연결된다. 저 7개 섬들은 또 하나로 연결되기도 한단다. 정월 대보름과 2월 보름 등 물 갈라짐 현상이 심할 때면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면서 장관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 언덕배기를 넘자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남포등대↑/ 천선대→/ 산타바5거리↓). 남포등대로 향하는 직진방향의 숲길로 들어서자 몇 개의 벙커가 눈에 띈다. 해안으로 접근하는 간첩들을 잡기 위해 경계근무를 서던 초소일 것이다. 요즘은 귓전으로 흘려버릴 사연이겠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우리 역사의 뒤안길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 이어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자, 갯바위에 걸터앉은 하얀 등대가 반갑다며 손짓한다. 낭도의 또 다른 볼거리인 ‘남포등대’이다. 이 등대는 사도와 낭도 근처에서 조업하는 선박들의 안전을 위해 1971년에 세웠다고 한다. ‘송곳여’와 ‘중천여’라는 암초가 바닷속 어디쯤에 숨어 있는 줄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난파 사고가 당연히 사라졌을 것이고 말이다.

▼ 둘레길로 되돌아갈까 하는데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가 눈에 띈다. 그런데 이 화살표의 꼬리에 ‘천선대’라는 이름표가 달려있는 게 아닌가. 거기다 이런 화살표는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지금은 바닷물이 빠져나간 상태.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길이 열려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바윗길에 도전해 본다.

▼ 파도가 일렁이는 절벽 위에 서자 켜켜이 쌓인 세월과 자연의 신비감이 더해진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걸 즐길만한 여유가 없다. 오르내려야 할 바위벼랑은 서슬이 시퍼렇고, 그 아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니 어찌 한눈을 팔 수 있겠는가. 그저 바위에 박혀있는 동글동글한 돌맹이들에서 공룡의 알을 떠올려 봤을 따름이다. 마침 이 부근이 ‘공룡발자국 화석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 크랙에 매달려 오르기를 5분 여, 기묘한 지층과 주상절리가 어우러진 갯바위 지대를 만난다. 가히 선녀들이 놀만한 곳이라 하여 ‘천선대’라 불리는데, 낭도의 바닷가 지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아름다운 해안이다. 아니 깎아서 세운 것 같은 해안의 낭떠러지 단애(斷崖)다. 약 20m 높이의 해안절벽은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깎이고 부서져, 책 수십만 권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 같은 독특한 지형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수북하게 쌓아 놓은 시루떡 같다고도 한다니 보는 이의 생각에 따라서 그 형상도 달리 나타나는가 보다. 그나저나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풍경이다.

▼ 천선대의 바닥은 끝없는 바위멍석을 깔아놓은 듯하다. 바위가 거북 등껍질처럼 갈라진 데다 높낮이 차가 있어 발 디딜 곳을 확인하고 천천히 걸어야 한다. 참! 이 부근에 있다는 공룡의 발자국은 찾지 못했다. 바닥에 나있는 수많은 흔적들 가운데 어떤 것이 공룡의 발자국인지를 구분할만한 혜안이 나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곳 낭도와 인근의 다른 섬들에는 천연기념물 제434호인 공룡발자국 화석지가 있다. 사도(3곳)의 755점을 비롯하여 추도(2곳) 1,759점, 낭도 962점, 목도 50점, 적금도 20점 등 총 3,546점이 분포되어 있단다. 종류도 다양해 앞발을 들고 뒷발만으로 걷는 조각류, 육식 공룡인 수각류, 목이 긴 초식 공룡인 용각류 등의 발자국이 발견되었고, 이 중 조각류 발자국이 전체의 81%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 해식애(海蝕崖)로 이루어진 천선대는 바다의 수석전시장이다. 바닷물 침식에 의해 층을 이룬 절벽 아래로 편마암층이 닳고 닳아 벼루처럼 반들반들하고 산자락 아래의 층암절벽은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 그래선지 이곳을 부안의 채석강(彩石江)보다 한수 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 된단다. 원래의 채석강은 강물에 배를 띄우고 놀던 중국 시인 이태백이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의 강물이다.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얘기일 것이다. 문득 천선대의 너른 암반 위에다 술자리를 펼쳐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태백처럼 술 한 잔 기울여보고 싶다. 이곳 천선대도 채석강의 풍광에 비해 하나도 뒤질 게 없으니 말이다.

▼ 퇴적층 절리(節理)에 너럭바위만 있는 게 아니다. 얼마쯤 걸었을까 시루떡 모양의 바위들이 한꺼번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대신 먼 바다에서 밀려온 거센 파도가 몽돌이라는 색다른 구경거리를 만들어놓았다. 그게 비록 꾸밈이 없는 소탈한 모양새이지만 말이다. 치장하지 않은 게 매력인 이곳에서 절대 놓쳐서 안 될 게 있다면 그건 파도와 몽돌이 빚어내는 이중주다. 그 소리를 듣다보면 귀가 깨끗하게 씻기고 가슴 속까지 후련해진다. 한 마디로 기가 막히다.

▼ 자갈밭을 지나자 바윗길은 더욱 거칠어진다. 10m도 넘어 보이는 절벽이 산자락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거기다 절벽 아래 바다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시퍼렇다. 더 이상의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이다. 하는 수없이 둘레길로 되돌아가니 ‘천선대 가는 길’이라 적힌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그렇다면 천선대는 간조 때만 탐방객과의 만남을 허락하는 모양이다.

▼ 다시 올라선 둘레길. 지겟길을 연상시키는 옛길을 따라 잠시 걷자 컨테이너박스를 활용한 간이카페 ‘신선대 낭만캠핑’이 길손을 맞는다. 내걸고 있는 메뉴는 ‘후박나무 해물전’, 미소 고운 주인 아낙네에 구수한 기름 냄새까지 더해져 나그네의 침샘을 자극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금주령에 발이, 아니 목줄기가 묶인지도 벌써 3주. 중독에 가까운 술꾼인 나에게 술이 없는 안주는 극약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이왕에 막걸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곳 낭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낭도 젓샘막거리’ 얘기도 한번 해보자. 젖샘에서 난 물로 빚는다는 이 막걸리는 100년의 전통을 자랑한단다. 이웃하고 있는 섬 사도에 젖샘과 젖샘바위가 있는데, 옛날에 아이를 낳은 산모가 정성을 다해 빌면 젖이 많이 났다고 한다.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이 샘물로 씻으면 젖이 샘처럼 솟았다고도 전해진다. 그런 약수로 술을 빚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숫제 보약인 셈이다. 여기서 팁 하나! 이 막걸리를 제대로 마셔보고 싶다면 여산마을 뒷골목에 있는 양조장으로 가면 된다. ‘도가식당’이란 간판으로 식당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항시 손님들로 붐비기 때문에 번호표를 받고 대기를 해야만 하는 번거로움 쯤은 감수해야만 한다.(첨부된 사진은 다른 분의 것을 빌려왔다)

▼ 조금 더 걷다가 ‘신선대’ 이정표를 보고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리고 나무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펑퍼짐한 암반과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해안선을 만난다. 층층이 쌓인 퇴적암이 누워있거나 서있는 등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다르게 부서졌던 천선대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만큼은 그랜드캐니언이 부럽지 않다. 그 풍경이 하도 고왔기에 사람들은 이곳을 신선이 살만한 곳이라 했다. ‘신선대(神仙臺)’라 불리는 이유이다.

▼ 낭도의 주상절리(柱狀節理)는 이곳 신선대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명품 주상절리들에 익숙해진 내 눈에는 실망 그 자체였다. 무등산의 입석대나 서석대처럼 거대하지도, 그렇다고 제주도(중문)의 대포해안이나 포항의 달전리처럼 예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 주상절리 근처에 있다는 ‘쌍용굴’과 ‘신선샘’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했다. 그 또한 보잘 것이 없을 것으로 지레짐작해버렸기 때문이다. 칠십에 가깝게 살아오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자신했건만 아직도 내 수양은 멀었는가 보다.

▼ 그렇다고 실망할 것 까지는 없다. 오죽했으면 신선이 내려와 살만하다고까지 극찬했겠는가. 해식애가 만들어낸 비경들 말고도 이곳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바다에는 ‘나무섬(木島)’이 돛단배처럼 떠다니고 그 뒤로는 나로우주발사대까지 시야에 잡힌다.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아까 길이 끊겨 둘레길로 올라가야만 했던 천선대와 남포등대까지 이어진 해안단애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 바윗길은 신선대에서 완전히 끝을 맺는다. 그리곤 해안가 산비탈에 내놓은 ‘둘레1길’을 따른다. 낭도의 둘레길은 대개 이렇다. 남해의 바닷가가 다 그러하듯 섬 남쪽은 먼 바다에서 거세게 불어 닥치는 파도가 만들어낸 해식애의 절벽과 단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위로 ‘비렁길’이 이어지는데, 그마저도 못한 곳에는 산비탈에 기대어 길을 냈다. 그런 특징을 살려 바다를 향한 전망대를 만들어두기도 했다.

▼ 전망대에 서자 휘늘어진 나뭇가지 아래로 자그만 섬 하나가 나타난다. 시골 양반이라도 되는 양 머리 꼭대기에 나무 몇 그루를 이고 있다고 해서 ‘나무섬(木島)’으로 불리는 무인도이다. 그 옆의 작은 바위섬은 ‘넙덕여’, 고래를 닮았다고 해서 ‘고래여’라고도 한단다. 여기서 ‘여’는 바위나 암초를 뜻한다.

▼ 5분 남짓 더 걸었을까 붉은 등대가 지키고 있는 낭도방파제가 나온다. 무척 긴 방파제로 여산 앞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한 것은 저 방파제 덕분일 것이다. 탐방로는 이 방파제의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해안길을 따라 낭도해수욕장으로 향한다.

▼ 그렇게 잠시 걷자 ‘낭도해수욕장’이 손짓한다. 물이 맑고 경사가 완만한데다 방파제 안에 들어있어 먼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거센 파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물빛이 예쁜 해수욕장은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그래선지 늦가을인데도 불구하고 해변에서 노닐고 있는 가족들이 여럿 보였다. 모래사장 뒤편에는 최근 문을 열었다는 ‘거기휴게소’가 들어앉았다. 마당 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벗 삼아 낭도의 명물인 ‘젓샘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기에 딱 좋은 곳이다.

▼ 해수욕장 옆, 폐교된 ‘낭도중학교’의 널찍한 운동장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멋지다. 학생 한 명에 교직원 네 명이 근무하는 섬 학교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학교다. 이제는 문이 닫힌 공간. 다들 정지된 시간 속의 고요한 풍경이겠거니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모래사장을 운동장 삼았던 이 학교는 현재 변신 중이기 때문이다. 학교가 문을 닫은 이래 최근까지 수련장으로 이용되어 왔으나, 편의시설을 갖춘 캠핑장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리모델링하는 중이란다. 그건 그렇고, 낭도 트레킹은 이곳에서 끝났다고 보면 된다. 이제는 아까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나가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오늘 트레킹은 총 4시간 30분이 걸렸다. 준비해간 간식을 먹느라 쉬었던 시간을 감안해도 4시간 가까이나 걸렸으니 거리에 비해 많이 걸린 셈이다. 바닷가 바위벼랑을 걷는 게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