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불가리아 - 루마니아
여행일 : ‘19. 5. 29(수) - 6.5(수)
세부 일정 : 소피아→릴라→소피아(1)→플로브디프→벨리코 투르노보(1)→이바노보→부카레스트(1)→시나이아→브란→브라쇼브(1)→루피아→시비우→시기쇼아라(1)→투르다→클루지나포카
여행 넷째 날 : 브라쇼브(Brasov)
특징 : 루마니아 중부 카르파티아산맥의 북쪽 기슭에 위치하는 도시로 ’브라쇼브 주‘의 주도(州都)이기도 하다. 몰다비아·왈라키아·트란실바니아 지방을 잇는 교통·상업의 중심지이며, 동쪽의 오스만제국과 서쪽의 유럽을 잇는 교역로에 위치하여 중세시대부터 트란실바니아 작센인의 식민지로 발전했다. 헝가리는 트란실바니아의 식민지화를 위해 12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이곳에 독일인들을 집단 이주시킨다. 이들은 이후 ’트란실바니아 작센인(이하 작센인)‘이라 불린다. 13세기 초에는 몽골과 터키의 침입을 대비해 튜턴기사단에게 브라쇼브를 맡겨 국경수비를 강화시킨다. 13세기 중반 기사단이 물러갔지만 작센인들은 남는다. 이 시기 브라쇼브는 독일어로 크론슈타트(Kronstadt) 혹은 라틴어로 코로나(Corona)라 불렸다. 헝가리왕에게 특권을 부여받은 작센인들은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한편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갔다. 반면에 루마니아인들은 시민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슈케이(Schei)라 불리는 외곽지역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20세기까지만 해도 브라쇼브에는 루마니아인보다 작센인이 더 많았단다. 그러다가 1918년 트란실바니아지역이 루마니아에 합병되면서 브라쇼브도 루마니아의 도시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루마니아가 소련의 영향아래 공산화가 되면서 독일계 주민들은 서독으로 이주한다.
▼ 버스는 우릴 구시가지(Old town)의 입구에 있는 버스정류장에다 내려놓는다. 다른 옛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대형버스의 진입을 막고 있는 모양이다. 참고로 브라쇼브는 중세와 현대가 함께 호흡하고 있는 특이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도시의 반쪽은 현대식 건물로, 다른 반쪽은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중 구(舊) 시가지를 오늘 방문하게 되는데, 예전 중세 시대의 집들이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단다.
▼ ’T’자형 도로의 뒤로 보이는 건물은 ’조지 바리티투 도서관(Biblioteca judeteana george barititu)‘이란다. 그 옆으로 보이는 건물도 공공건물로 보이나 용도는 알 수 없었다.
▼ 중세풍의 옛 건물들을 오른편에 끼고 걷는다. 왼편은 브라쇼브에서 가장 크다는 중앙공원(parcul central)이다. 예쁜 꽃들과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멋진 경관을 만들어낸다니 시간이 있다면 한번쯤 둘러볼 일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길가에 놓아둔 벤치에라도 앉아 공원이 주는 분위기에라도 빠져볼 일이고 말이다. 아무튼 도로가 널찍한데다 공원까지 끼고 있는 것이 시민혁명 때는 큰 역할을 했을 수도 있었겠다. 이곳 브라쇼브는 차우셰스쿠 통치에 반대한 시민들의 봉기가 처음으로 발생한 곳이기도 하니 말이다. 1987년 당시 임금삭감과 긴 노동시간, 식량배급 등에 불만을 품은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기본 식량 확보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었다.
▼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이곳 역시 옛 건물들이 즐비하다. 아니 눈에 들어오는 건물들 모두가 하나같이 중세풍이다. 참! 이곳 브라쇼브에서는 세월이 만들어놓은 독특한 문화를 엿보는 게 중요하단다. 도시가 루마니아는 물론이고 헝가리와 독일의 문화까지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헝가리의 식민지였던 이곳 브라소보를 독일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세웠기 때문이란다. 때문에 지금도 독일계 루마니아인들이 이곳에 많이 거주하는 등 독일의 영향이 아주 강하단다. 도시 이름 자체를 ‘Kronstadt’라는 독일어로 표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곁가지로 나뉘는 골목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저런 풍경을 보고 마치 독일에라도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그것도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란다. 독일인들이 이곳에 이주하면서 만들어진 도시라서가 아닐까 싶다.
▼ 걷는 도중에 ’성 페트루시 파벨 교회(St. Petrusi Pavel)‘라는 정교회를 만났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앞서가는 가이드의 뒤를 쫒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 역사를 품고 있는 작은 거리를 따라 걸으면 아름다운 색으로 칠해졌거나 멋지게 다듬어진 바로크 건축물들을 만날 수 있다.
▼ 오래된 중세 건물들을 눈에 담으며 걷다보면 삼각형 모양으로 훤하게 뚫린 광장이 나온다. 브라쇼브 구시가의 핵심인 ‘스파툴루이 광장(Casa Sfatului)’이다. 의회광장이라 부르는 광장의 중앙에선 원형 분수가 물줄기를 힘차게 뿜고 있고, 분수대 주변 대리석 의자에는 사람들이 앉아 여유롭게 휴식을 즐긴다. 이 광장에서는 1968년에 시작된 '황금사슴벌레(Cerbul de Aur, Golden Stag) 뮤직 페스티발'이 매년 늦은 여름(2018년의 경우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에 열린다고 한다.
▼ 광장은 오래된 중세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광장과 주변 건물들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풍경이 동유럽 제일이라고 극찬하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이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 광장 북쪽에는 붉은 지붕과 노란 시계탑이 예쁘게 조화를 이룬 옛 시청 건물이 서 있다. 현재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건축 당시 용도는 48m 높이의 감시탑이었다고 한다. 15세기 증축 과정에서 58m로 더 높아졌다. 감시탑 꼭대기에서 병사들이 적의 침입 등 위급 시 나팔을 불어 시민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래선지 나이 지긋한 시민들은 아직도 이곳을 ‘트럼펫의 탑’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매일 오후 6시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는 이벤트가 열린다고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구경하지는 못했다. 병사와 나팔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나팔을 부는 등 쏠쏠한 눈요깃거리를 제공한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흰색 돔 위에 십자가가 있는 건물은 루마니아 정교회인 ‘스판타아도미래 교회’라고 한다. 13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정교하고 고풍스러운 외관 덕분에 교회라기보다 궁전 혹은 호텔 같은 인상을 준다. 참고로 루마니아인들은 정교회 신자이건 아니건 간에 정교회 교회력을 지킨다고 한다. 또한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평생에 2번, 그러니까 태어날 때와 죽을 때는 꼭 정교회를 찾는단다.
▼ 스파툴루이 광장과 이 도시의 메인 도로인 공화국 거리(Rebublicii Strada)가 만나는 곳에 서면 ‘검은 교회(Black Church, 또는 흑색교회)’가 수줍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제단이 있는 뒤쪽 면이라고 보면 되겠다. 브라쇼브가 속해 있는 트란실바니아 지방에서 가장 큰 독일식 고딕 건축물로, 1385년에 짓기 시작해 15세기 완공할 때까지 100년 가까이 걸렸다. ‘검은 교회’란 이름은 1689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군대의 공격을 받아 건물 외부와 내부가 불에 타 검게 그을린 데서 유래했단다. 폭 38m에 길이가 89m인 이 교회는 독일 여행 때 보았던 뮌헨성당 만큼이나 웅장해 보였다.
▼ 외관은 복원을 통해 해마다 조금씩 그을음을 벗겨내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검은 벽돌과 흰 벽돌이 섞인 모자이크 같다는 느낌이 든다. ‘검은 교회’라는 이름이 무색해졌다는 얘기이다.
▼ 외벽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은 조각상들로 장식돼 있다.
▼ 벽면에 부조(浮彫)된 조형물들을 구경하며 돌다보면 교회의 전면부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이 교회는 독일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지금도 독일계 루마니아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루터파 교회의 본산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독일식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이유일 것이다. 100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 완공된 교회는 또 다른 인고(忍苦)를 세월을 100년이나 겪어야만 했다. '검은 교회‘라는 이름을 얻게 만든 화재 이후 재건에 걸린 시간이다. 65.5.m 높이의 종탑도 이 때 만들어졌는데, 종탑 안에는 루마니아에서 가장 무거운 6,300kg짜리 종이 매달려 있다고 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나 규모면에서 브라쇼브 최고의 건축물이자 상징으로 꼽힌다.
▼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들어가지 않았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1839년에 만들었다는 파이프오르간을 구경 못하는 우(愚)를 범해버렸다. 베를린 부흐홀츠(Buchholz)사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단 하나의 제품이라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미리 알아보지 못하고 여행을 떠나온 내 잘못이 아니겠는가. 참고로 총 4000개의 파이프 관으로 만든 이 오르간은 유럽 남동쪽 지역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 음의 공명과 우아하고 정교한 음향 덕에 이전 시대는 물론, 지금도 큰 규모의 클래식 콘서트에 쓰일 정도로 귀한 악기이자 보물이란다.
▼ 교회를 한 바퀴 돌다보면 '요하네스 혼테루스(Johannes Honterus, 1498~1549)'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비엔나(Vienna)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이 지역에서 종교개혁을 주도하고 이곳에서 일생을 마친 '트란실바니아의 사도'였다. 인도주의자이며 신학자로 선교활동과 교육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특히 1535년에는 트란실바니아 최초의 인쇄소도 세웠단다. 동상아래에는 그의 업적이 새겨져있다.
▼ 동상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요하네스 혼테루스 기념관’이 있다.
▼ 이 근처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다고 했는데, 혹시 학교 건물일지도 모르겠다.
▼ 다시 돌아온 광장, 아까보다 관광객들의 숫자가 많이 늘었다. 유럽의 광장은 주민들의 삶의 중심이자 터전이 되어 온 곳이다. 이곳도 만찬가지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드넓은 공터가 있을 건 뻔한 일, 1945년부터 1990년까지는 이곳에서 장이 서기도 했단다.
▼ 스파툴루이광장에서 공화국광장으로 가는 ’리피블리카‘거리에는 야외 카페가 즐비하다. 이 거리가 보행자 전용도로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 광장의 남동쪽에 위치한 해발 900m의 ’템파 산(Tampa Mountain)‘은 구시가와 신시가를 나누는 역할을 한다. 도보나 케이블카를 이용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데 그 푸른 언덕에다 할리우드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글씨체로 브라쇼브(Brasov)라고 적어 넣었다. 브라쇼브가 원래 이곳 탐파산 위에 지어진 요새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니 이를 선전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의 뒤로 하얗게 보이는 건축물은 ‘백색탑(Turnul Alb)’이다. 브라쇼브 성벽을 따라 있는 요새 가운데 하나로 1494년에 그 옆에 있는 흑색 탑과 함께 축조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저 건축물은 광장에서 볼 때는 사각으로 나타나지만 뒤는 둥글게 지어졌다. 원통을 절반으로 뚝 잘라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 백색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는 흑색 탑(Turnul Negru)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용도는 봉화탑이었는데 1559년에 번개에 맞아서 검은 그을음이 남으면서 흑색탑이라 부르기 시작했단다.
▼ 스파툴루이 광장에서 ‘탐파 산’ 방향으로 1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브라쇼브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스케이 성문(Poarta Schei)’이 여행객을 반긴다. 옅은 노란색의 예쁜 모양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 문은 생김새와는 다르게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3~17세기 색슨족의 지배를 받던 시기 루마니아 원주민은 이 문과 성벽으로 격리된 스케이 지구에서만 거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으로 들어올 때는 오직 이 문으로만,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 통행료를 내고 성안을 오갈 수 있었고, 성안에서는 주택을 비롯한 어떤 재산도 소유할 수 없었단다. 1827년에 다시 지어진 현재의 문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문 옆으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작은 문이 따로 나 있다.
▼ 슈케이 문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아주 좁은 골목을 만날 수 있다. ‘스포리 거리(Strada sforii)’라고 적힌 화살 모양의 까만 이정표가 붙어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정표를 따르다보면 비좁기 짝이 없는 ‘골목’이 나타난다. 폭 135cm에 길이가 80m인 이 골목은 성인 2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데, 가다 보면 점점 더 좁아져 결국에는 혼자 걸어갈 수밖에 없는 정도가 된다. 골목을 걷다보면 ‘연인의 골목’이라는 별명을 만들어내게 만든 이유가 눈에 띄기도 한다. 연인을 어깨에 태우고 사진을 찍는 광경 말이다. 17세기 고문서에도 언급된 이 골목은 원래 소방도로의 기능을 했었다고 한다.
▼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뒷골목을 들어가 봤다. 누군가는 이 도시를 일러 독일풍의 중세도시라고 했다. 13세기 독일인들이 이곳에 이주하면서 도시가 생겼고 이후 루마니아인들과 헝가리인들이 함께 공존하면서 발전해왔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발칸의 다른 도시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 ‘시계요새(Cetatuia de pe straja)’로 여겨지는 성곽은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먼 거리로만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글에 꼭 등장하기에 가보고는 싶었지만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 누군가 브라쇼브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다섯 군데라고 했다. ‘스파툴루이 광장(Piața Sfatului)’과 ‘역사박물관(Muzeul de Istoriei)’, 검은 교회, 탐파 산, 그리고 성 니콜라스 교회(Saint nicolas church) 등이다. 이중 앞의 세 곳은 무리를 짓고 있어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는 반면, 탐파산과 성 니콜라이교회는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미처 가보지 못한 성 니콜라스교회는 다른 사람의 사진을 잠시 빌려다 썼다. 참고로 ‘성 니콜라스 교회’는 1392년 나무로 지어지고 1495년에 석조 구조물로 대체됐으며 18세기에 확장을 거쳐 지금은 비잔틴, 바로크 및 고딕 양식이 혼재된 건축학적 걸작이 됐다. 다른 중세 교회들처럼 커다란 나무문이 있고 방호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안에 높은 첨탑을 자랑하는 교회가 마치 왕국의 성 같은 위용을 보여준다.
▼ 하룻밤을 머물렀던 ‘엠비언트 브라쇼브 호텔(Hotel Ambient Brasov rumnien)’
구시가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호텔로 4성급이라는 격에 부끄럽지 않은 편의시설을 보유하고 있었다. 객실의 크기나 청결도도 이만하면 최상급. 욕실에 일회용 세면도구와 드라이기가 비치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아침 제공되는 식사는 중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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