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불가리아 - 루마니아
여행일 : ‘19. 5. 29(수) - 6.5(수)
세부 일정 : 소피아→릴라→소피아(1)→플로브디프→벨리코 투르노보(1)→이바노보→부카레스트(1)→시나이아→브란→브라쇼브(1)→루피아→시비우→시기쇼아라(1)→투르다→클루지나포카
여행 다섯째 날 : 시비우(Sibiu)
특징 : 루마니아 중부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고대 다키아가 로마에 점령된 후 식민도시로 건설됐다. 그 후 12세기 독일인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 14세기에는 독일계 주민들의 행정·상업 중심지로 번창했는데 독일인들이 만든 일곱(시비우, 브라쇼브, 비스트리차, 클루지나포카, 메디아슈, 세베슈, 시기쇼아라) 도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으나 1차 대전 이후 루마니아 왕국의 영토로 넘어왔다. 하지만 독일의 문화적 흔적은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있단다. 1928년에는 루마니아 최초의 동물원이 이곳에 세워지기도 했으며,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전쟁 피해를 입었지만 학교와 성당 등 중세 독일식의 유적이 남아 있다. 2007년 유럽연합은 ‘유럽의 문화수도’로 이 도시를 지정했으며, 중세도시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 버스는 우릴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두터운 성벽의 밖에다 내려놓는다. 저 성벽의 안에 들어있는 구시가(Old city)는 대형버스의 진입이 통제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끼가 두텁게 내려앉은 성벽을 보니 마치 중세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하다. 누군가는 이곳 시비우를 루마니아 문화의 중심지라 했다. 역사를 품은 저런 풍경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 성벽의 안쪽과 바깥쪽은 산책로로 잘 가꾸어 놓았다. ‘포브스(Forbes)’는 시비우를 ‘유럽에서 가장 살고 싶은 이상적인 도시 8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저런 풍경이 있었기에 가능했지 않나 싶다. 그나저나 숙소를 시비우로 정했을 경우 아침 산책코스로 안성맞춤이겠다.
▼ 구시가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오는 건물들이 하나같이 유럽 스타일 일색이다. 이곳 시바우가 본디 독일계 이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도시이기 때문이란다.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지배하고자 했던 헝가리 국왕은 특이하게도 헝가리인이 아니라 독일인을 강제로 이주시켜 도시를 건설토록 했다. 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이 시비우와 시기쇼아라였는데, 근면했던 독일인들은 훗날 길드를 조직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고 번성하기에 이른다. 루마니아 곳곳에서 중세 유럽의 진향(眞香)이 배어나게 된 이유란다.
▼ 중세의 풍경을 고이 간직한 도시인데 분수(噴水)가 빠질 리 없다. 널따란 광장(廣場)과 광장을 둘러싼 아름다운 건축물들, 그리고 거리 곳곳에 들어서있는 저런 분수들이 중세도시의 특징이 아니겠는가.
▼ 중세 건물들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걷다보니 어느덧 엄청나게 너른 광장(廣場)에 이른다. 이름 또한 ‘큰 광장(Piața Mare. Grand Square Sibiu. Large Square)’인데 18세기의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으로 건설된 로만 가톨릭 성당과, 루마니아 최고의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브루켄탈 궁전이 있어서 더욱 빛나는 곳이다. 참고로 이곳 ‘대광장’은 루마니아 민주화혁명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1989년 민주화혁명이 발생했을 때 대광장 주변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 유럽의 문화의 특징은 ‘광장’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의 도시에 있어서 광장은 필수 요인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광장문화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고라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대 시민들은 이 아고라에서 토의하고 연설하는 등 민주주의 시초를 행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아고라는 시민생활의 중심지가 되었고, 주변에 공공생활에 필요한 시설물들이 속속 들어섰다. 회의장과 사원, 점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즉, 정치, 종교, 경제의 중심이자 구심의 역할을 하는 곳이 광장인 것이다. 이러한 광장은 중세에 넘어오면 종류가 다양해진다. 대성당이나 교회 앞에 있는 교회광장, 왕족이나 귀족 대저택 앞의 시민광장(시뇨리아), 시장이 열리는 시장광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곳 시비우의 대표적인 건물은 ‘시청사’이다. 그러니 대광장은 ‘시민광장’인 셈이다.
▼ 광장은 예쁘장한 유럽풍의 건물들로 포위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단연 ‘시청사’이다. 루마니아 국기가 걸려있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 저 건물에 관광안내소가 들어있다는 점을 참고해 두자.
▼ 시청사의 오른편 건물은 가톨릭성당(Biserica Romano Catolică)이다. 내부 장식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닌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그저 ‘수박 겉핥기’에 그치고 있는 내 여행 스타일을 탓해 볼 따름이다.
▼ 아래 건물은 ‘브루켄탈 국립박물관(Brukenthal National Museum)으로. 루마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자 유럽 전체에서도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닌 박물관이라고 한다. 브루켄탈 박물관은 행정과 관리는 통합되지만 미술관과 민족관, 민속관 등 위치가 각각인 여섯 개의 박물관으로 이루어지며, 브루켄탈 저택의 박물관은 브루켄탈 국립박물관의 본관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 브루켄탈 박물관이라고 하면 이곳을 가리킨단다. 박물관으로 개조된 브루켄탈 저택은 루마니아의 바로크 양식 건물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8세기 말 트란실바니아 통치자였던 사무엘 폰 브루켄탈(Samuel von Brukenthal) 남작의 저택으로 1777년에 건설을 시작해 1787년에 완공되었다. 1817년 개관했다는 미술관은 주어진 자유시간이 부족해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이의 글을 빌려 내부 전시물을 정리해본다. 미술관에는 루벤스와 보티첼리, 반다이크를 비롯한 유럽 화가들의 회화작품 1,090점이 전시되어 있다. 네덜란드 학파, 플랑드르 학파, 이탈리아 학파는 물론 독일, 오스트리아까지 유럽 전역에 걸쳐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망라하며, 루마니아 거장들의 작품 1,500점도 별도로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15세기부터18세기까지 미술품, 골동품, 동전, 희귀 서적 등 저택의 주인이었던 브루켄탈의 개인 소장품이 별도로 전시된다.
▼ 광장을 둘러보다 문득 시비우의 눈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독일식 건축양식 창문과 눈이 마주쳤다. 지금은 묘한 웃음을 짓는 것으로 보이지만, 독재자 차우셰스쿠 시절에는 국민을 감시하던 독재자의 눈초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감시자의 눈’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 시비우를 일러 건축물 하나에도 역사와 더불어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는 흥미로운 곳이라고 말한다.
▼ ‘감시자의 눈’은 주택 지붕의 채광창이자 통풍용 창이다. 찢어진 듯한 눈초리 형상이 마치 그 옛날 독재자가 지배하던 시절 국민들을 억누르던 ‘감시의 눈’과 같다고 해서 그런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여졌고 한다.
▼ 광장에는 ‘루마니아 교육의 아버지’로 불린다는 ‘게오르기 라자르(Gheorghe Lazăr.1779~1823)’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1818년 부카레스트에 루마니아 최초의 언어학교(Romanian language school)를 설립한 사람이란다.
▼ 정체불명의 시설도 보였다. 옆면에 수도꼭지가 매달려 있는 걸로 보아 음수대(飮水臺, drinking fountain)가 아닐까 싶다.
▼ 대광장의 뒷골목으로 들어가자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에반겔리카 교회(Biserica Evanghelica)‘가 나온다. 12세기에 세운 로마 가톨릭교회가 있던 자리에 1520년 개신교인 루터파가 새로 지은 교회당이다. 중앙에 다섯 개의 첨탑이 우뚝 솟은 교회는 시비우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내부가 화려하게 장식된 가톨릭교회들과는 달리 단순하고 장식이 많지 않은 것이 특징이란다.
▼ 교회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주어진 시간에 탐방을 마치려다보니 발길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북쪽 벽면에 그려졌다는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를 표현한 9m 높이의 거대한 프레스코화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버렸다. 특히 루마니아에서 가장 크다는 파이프오르간을 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독일 장인이 1671년에 만든 것을 1914년에 개조했다는데, 6,000개의 파이프가 장착되어 있다니 얼마나 웅장하겠는가. 하지만 예비지식 없이 여행을 떠나온 내 탓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 ’에반겔리카 교회의 앞은 ‘후에트 광장(Huet Square)’이다. 이곳도 역시 고딕 양식의 오래된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은 ‘큰 광장’과 마찬가지다. 그 규모가 꼬맹이라는 점만 다르다고 보면 되겠다.
▼ 광장 서쪽에는 14세기에 창설된 중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 18세기 트란실바니아 통치자였던 브루켄탈의 이름을 따서 사무엘 폰 브루켄탈 학교라고 불린다. 시비우에서 유일하게 모든 수업이 독일어로 진행되는 학교로, 시비우에 중세도시를 건설했던 독일인들의 전통이 남아 있다고 한다. 현 건물은 1786년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 조금 더 걸으면 루마니아 최초의 철골 다리인 ‘거짓말의 다리(The Liar's Bridge/ Podul Minciunilor)’가 나온다. 이 다리에서 물건을 팔던 상인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과장된 거짓말을 섞어 판매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라거나, 한창 사랑에 불타오르는 젊은 연인들이 금세 변해버릴 사랑의 약속을 했던 데서 다리 이름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다리는 예쁜 꽃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정교한 쇠장식으로 치장된 난간의 아름다움으로도 부족했던 모양이다. 참고로 1859년에 건설될 당시의 다리 이름은 단순히 ‘철교’였다고 한다. 나중에 이 다리 위에서 거짓말을 하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거짓말쟁이의 다리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단다. 꼭 속설이 아니더라도 이 다리에서는 진실만을 말해야 할 것 같다. 근처 건물들의 지붕에서 감시자의 눈들이 시퍼렇게 지켜보고 있으니 말이다.
▼ 다리 아래로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나있다. 위쪽 마을과 아래쪽 마을을 이어주는 ‘오크네이(Ocnei)’ 거리란다.
▼ 다리를 건너면 ‘소광장(Piața Mică, The Small Square)’이다. 후에트광장과는 조금 전에 지나온 좁은 골목으로 연결되며 대광장과는 시계탑 아래로 난 문을 통해 연결된다. 소광장도 잘 보존된 아름다운 중세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대광장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소광장 주위의 많은 건물들이 현재 박물관으로 쓰인다는 점은 다르다 하겠다. 과거 약국이었던 건물에 들어선 약학박물관을 비롯해 색슨족 박물관, 세계 민족박물관, 트란실바니아 문명박물관 등이 모두 소광장 주변 건물을 활용하고 있다.
▼ 광장에는 지붕을 올린 좌판들이 일렬로 서있는 풍경도 볼 수 있다. 혹자는 구시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세 광장들은 조금씩은 다른 특징들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곳 소광장은 주로 상인과 직인들의 거처나 상점이 많았던 일종의 비즈니스가 지역이라 했다. 그렇다면 규격화된 저 노점상들은 옛 특징을 현대에 재현해 놓은 셈이다.
▼ 광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물은 트란실바니아 문명박물관으로 쓰이는 ‘아트하우스(Sibiu Arts House)’이다. 15세기에 지어졌으며 1층에 8개의 아치가 일렬로 늘어선 주랑이 있고, 다갈색 지붕이 특징적인 깔끔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가게로 사용되던 1층에는 과거 정육점들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훗날 모직물을 파는 상인들이 사용하다가 18세기에는 곡식저장고로 쓰였고, 1765년에는 잠시 극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월드뱅크의 지원을 받아 완벽한 복원작업을 거친 후 2004년부터 트란실바니아 문명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박물관에는 의복, 직물, 도자기, 성물 등 4만 점이 넘는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 중 1만여 점은 역사적으로 가치도 높고 희귀한 자료들이란다.
▼ 소광장을 둘러싼 건물들도 역시 ‘감시자의 눈’들 일색이다. 아니 게슴츠레하게 뜬 것이 영락없이 웃는 모습이다. 그래선지 저 독특한 독일식 건축양식은 마주할 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머물게 한다.
▼ 소광장과 대광장이 접하는 곳에는 도시의 상징인 ‘시의회 탑(Sibiu Council Tower)’이 서있다. ‘시계탑’으로도 불리는데 특별히 꾸미지 않은 모습에 깔끔한 흰색으로 칠해졌으며 13세기에 건설되었다. 시의회 탑이라는 이름은 바로 옆 건물이 시비우 최초의 시청으로 쓰였기 때문에 붙었다. 애초에는 방어용 성벽의 관문 역할을 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때로는 감옥으로, 때로는 시민들의 옥수수 창고로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부분적인 붕괴와 재건 과정을 거쳤으며, 1829년 마지막 층을 증축하고 지붕을 올리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단다.
▼ 도시의 전경을 살피기 위해 탑의 안으로 들어가 봤다. 나선형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오른다. 비좁은데다 경사까지 져서 내려오는 사람이라도 만날라치면 부대껴야 하는 불편을 감수 해야만 한다. 이런 계단은 전시장을 만나면서부터는 삐꺽거리는 나무계단으로 변한다.
▼ 올라가다 만나게 되는 작은 공간들은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올드 시티(Old city) 미니어처가 만들어져 있는가 하면 갤러리(gallery)로 꾸며진 공간도 2개 층이나 있었다.
▼ 그중에서도 단두대가 놓인 공간이 가장 눈길은 끌었던 것 같다. 아래 사진과 같은 기념사진을 원하는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 거창한 기계시설도 만날 수 있었다. 아까 광장에서 바라보던 시계의 태엽이다. 참!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기계가 돌아가는 광경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 맨 위층은 전망대로 꾸며 놓았다. 이 시계탑으로 연결되는 대광장과 소광장은 물론이고 아름다운 시비우 시가지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데 고딕 냄새가 물씬 나는 교회와 붉은색 지붕들이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이다.
▼ 각 방향에는 전경 사진을 내걸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과 비교할 수 있게끔 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던지 중요 건축물에는 이름까지 적어 넣어 이해를 돕고 있다. 그만큼 역사적인 건축물들을 많이 품고 있다는 자신감일 것이다.
▼ 광장에서 빠져나오는 도중에도 중세의 옛 건물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아래 건물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정체는 알 수 없었다. 루마니아의 국기까지 걸려있는 걸로 보아 예사 건물은 아닌 게 분명했다.
▼ 구시가를 빠져나오는 길에 ‘콘서트홀(Thalia Concert Hall)’이 눈에 띈다. 시비우의 독특한 지붕양식과 현대적인 외모를 함께 지니고 있다. 구시가지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예쁘장한 풍경이다.
▼ 이어서 ‘Carpenters Tower’가 눈에 들어온다. 성벽과 함께 시비우를 보호하던 중요한 방어시설이었다. 조금만 시간을 할애한다면 ‘Harquebusiers Tower’, ‘Potters Tower’과 같은 다른 망루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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