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불가리아 - 루마니아

 

여행일 : ‘19. 5. 29() - 6.5()

세부 일정 : 소피아릴라소피아(1)플로브디프벨리코 투르노보(1)이바노보부카레스트(1)시나이아브란브라소브(1)루피아시비우시기쇼아라(1)투르다클루지나포카

 

여행 둘째 날 : 플로브디프(Plovdiv)

 

특징 : 불가리아 제2의 도시로 트라케 평원에서 시작하여 120m까지 솟아오른 6개의 구릉 사이사이를 흐르는 마리차 강을 끼고 있다. 이 도시는 풀푸데바, 필리포폴리스, 트리몬티움, 필리베의 시간을 거쳐서 왔다. 고대 트라키아 시대에는 세 개의 언덕을 뜻하는 풀푸데바, 기원전 342년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에 의해 점령된 뒤에는 필리포폴리스, 기원 후 46년 로마 제국의 트라키아 속주가 되면서는 세 개의 구릉을 뜻하는 트리몬티움, 1364년 오스만 터키의 식민지가 된 후에는 필리베,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현재 이름인 플로브디프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시간 속에서 바뀐 도시의 이름만큼, 플로브디프는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져 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갖고 있다. 그 흔적은 구도심(올드타운)에 그대로 모여 있어, 여행자들은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 시간 속에서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구도심((Old town))으로 들어가기 위해 차에서 내리니 길바닥에 타일이 깔려있다. 차량이 일절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보행자 전용도로라는 ’ulitsa rayko daskalov‘가 이곳일지도 모르겠다.

 

 

 


 

 

 

길가에 늘어선 건물들은 하나같이 중세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다. 옛 건물들을 잘 보존해오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맨 먼저 도착한 곳은 알랙산드로 거리의 끝에 있는 스테판 스탐볼로프 광장(Stefan Stambolov Square)’이다. 프로브디프(Plovdiv)의 중앙광장으로 여행자들의 출발지이면서 되돌아오는 종착지이기도 하다. 광장에는 분수와 소공원 등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또한 주변에는 패션샵과 기념품가게, 야외 커피숍, 음식점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길거리 예술가들의 공연과 미술 전시회도 다채롭게 열린다고 한다.

 

 

 

 

광장의 한쪽 귀퉁이에는 시청사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구시와 자매결연(姉妹結緣)을 맺었다기에 주변을 살펴봤지만 우리나라와 관련된 기념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긴 요즘 자매결연은 뉴스에 끼지도 못할 정도로 흔한 행사가 아니겠는가.

 

 

구시가지의 중심 상업지구인 알렉산드로 거리(Knyaz Alexander I)’를 따라 들어가면서 투어가 시작된다. ‘플로브디프(Plovdiv)’라는 지명은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기원전 342년 마케도이아의 왕이었던 필리포스가 이곳에 있던 트라키아(Thracia)인들이 세운 유몰피아스(Eumolpias)’를 정복한 후 도시의 이름을 필리포폴리스로 바꾼 데서 유래되었단다. ‘알렉산드로라는 거리의 이름 또한 그와 같은 이유이지 않나 싶다.

 

 

 

 

중세풍의 거리는 한마디로 깔끔하다. 건물들도 새 단장을 한 것처럼 말끔하다. 하긴 누군가는 이곳 플로브디프가 수도인 소피아보다도 더 현대적인 도시라고 했다. 그는 또 카페나 바, 클럽들도 수준이 높으며 엔틱샵과 기념품가게들도 많고 물가도 저렴한 편이라고 했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플로브디프는 2014년에 시작된 시민단체 ‘Plovdiv 2019’의 주도로 2019유렵 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로 선정된바 있다. ’카메니카 계단의 케스케이드(Water cascade down the stairs of the Kamenica)‘에 세워놓은 저 선정기념 조형물이 그 증거라 하겠다. 참고로 유럽 문화수도EU 회원국의 도시를 매년 선정하여, 1년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각종 문화 행사를 전개하는 사업이다. 1983년 그리스의 문화부 장관이던 멜리나 메르쿠리가 유럽 문화도시(European City of Culture)‘ 사업을 제안했고 1985년 그리스의 아테네가 최초의 유럽 문화 도시로 지정되었다. 1999년 사업 명칭이 유럽 문화수도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른다.

 

 

계단의 초입에는 밀료의 크레이지 동상(Statue of Milyo the crazy)’이 세워져 있었다. 플로브디프가 배출한 유명 인물 가운데 하나인 밀료는 어두웠던 시대 속에서도 어린이들에게 웃음을 주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 이곳에 기념비가 세워졌단다. 동상은 전체가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돌고 있었다. 귀에다 대고 소문을 속삭이면 그 소원을 이루어주고 무릎을 쓰다듬으면 연인과의 관계가 원만해지다는 속설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잘 정돈된 길을 따라 잠시 걷자 고대 유적이 나타난다. ’로마시대 경기장(Ancient stadium theater of Philippopolic)‘의 일부라는데 지표면보다 한참이나 아래에 있다. 이 경기장은 비잔틴시대에 더 이상 경기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자 통째로 위를 덮어버렸는데 그 일부를 발굴해 놓은 것이란다. 알렉산드로거리에 있는 엑셀시오르 쇼핑몰지하에서도 이런 관람석을 구경할 수 있다는데 일부러 가보지는 않았다. 건물을 지으면서 발견된 것이라는데 이곳과 별반 달라 보일 것 같지 않아서이다.

 

 

 

 

 

 

로마 하드리아누스황제 시대인 2세기에 지어진 이 경기장은 델피(Delphi)에 있는 경기장을 본떠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길이 240m에 폭이 50m,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인데, 현재 북쪽 14열의 좌석만 복원되어 있다. 나머지는 플로브디프 구시가지 아래에 묻혀있단다. 참고로 AD 214년과 218년에 이곳을 방문한 카라칼라(Caracalla) 황제와 엘라가발루스(Elagabalus) 황제를 위해 경기를 거행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단다.

 

 

 

 

벽면에는 당시의 상황도를 그려놓았다. 그림만 봐도 엄청난 규모이다. 하긴 아까 출발지로 삼았던 시청사까지도 경기장의 일부였다니 오죽하겠는가.

 

 

한쪽 귀퉁이에는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쌓아놓았다. 어느 곳에 붙어있던 조각들인지는 몰라도, 보는 것만으로도 옛스런 느낌이 물씬 풍겨온다.

 

 

오스만 문화를 상징하는 드쥬야마 모스크(Dzhumaya mosque)‘가 스타디움(ancient stadium) 유적의 바로 옆에 서 있다. 1371년 오스만터키가 불가리아를 정복한 후 술탄 무라드 2(1421-1451)‘가 건립했는데, 발칸과 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 가운데 하나란다. ! 어떤 이는 이 모스크를 사연 많은 건물로 묘사하기도 했다. 다양한 국가의 침공을 받으며 '고대 그리스 사원'에서 '카톨릭 교회'로 다시 '모스크'로 용도가 바뀌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은 1층이 카페로 활용되고 있다고 했는데 이 또한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스타디움 유적 근처는 포토죤으로 유명하다. 중세풍의 건물들을 배경으로 삼을 경우 멋진 풍경화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 부근을 림스키 스타디온광장(rimsky stadion square)‘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드라주아 모스크 주변은 작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공원에는 작은 무대도 만들어져 있었으며,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악사들과 이야기도 나누어볼 수 있었다. 한쪽에서는 벼룩시장도 열리고 있었는데 진열된 골동품과 그림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이젠 중세시대의 불가리아를 만나볼 차례이다. 상점이 많은 거리를 지나는데 혹시 이곳이 카파나 거리(kapana street)‘일지도 모르겠다. kapana는 불가리아어로 덫이라는 뜻이다. 과거 이곳으로 실크로드가 지나갔고 신기한 물건을 많이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구경을 하느라 덫에 걸린 것처럼 이 거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동 중에 특이한 건물이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건물의 외벽이 온통 벽화로 채워져 있는데, 그림이라기보다는 그라피티(graffiti)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요즘은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를 굳혔다지만 환갑을 넘겨버린 난 그라피티는 낙서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별것도 아닌데 특이하게 보였던 이유일 것이다.

 

 

 

잠시 후 네벳테베 언덕 초입에 자리한 성모승천 성당(The Assumption of the Holy Virgin orthodox church)‘을 지난다. 9-10세기에 처음 지어졌으나 1371년 오스만의 침입으로 파괴되면서 성당과 함께 있던 수도원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불가리아 르네상스시기인 1844-1845년 다시 세워졌는데, 불가리아의 종교적·국가적 독립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1859년 이 성당에서 최초로 불가리아어 미사가 집전되었고, 미사 후 주교는 당시 오스만의 지배하에 있던 콘스탄티노플 총주교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단다. 오스만으로부터 불가리라가 해방된 후인 1881년에는 체코 건축가 비드조프(Novi Bidzhov)가 설계한 종탑이 교회 옆에 지어졌다.

 

 

 

 

가는 길에는 1868년에 세워졌다는 불가리아 최초의 고등학교도 만나볼 수 있다. 건물이 노란색으로 칠해졌다고 해서 ’The yellow school’이라 부르기도 한다. 학교의 맞은편에는 ‘St. Dimitar church’가 있다.

 

 

언덕 중턱에는 로마시대의 대표적 유적지인 고대 원형극장(Ancient theater of Philippopolic)’이 있다. 트리아누스가 재위하던 98-117년에 지어졌다니 대략 1900년이 된 셈이다. 7천명을 수용하는 28열의 좌석에는 지역도시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으며, 로도피산이 조망되는 잠바즈 테페(Jambaz Tepe) 남쪽 경사면에 있어서 시내를 조망하는 즐거움까지 준다. 이 유적은 지하에 묻혀 있다가 산사태가 나면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단다. 현재도 오페라, 콘서트 등의 다양한 공연들이 정기적으로 열린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매년 6월 말에는 '베르디 페스티발'이 여기서 개최된단다.

 

 

 

 

이젠 올드타운을 꼼꼼히 둘러볼 차례이다. 올드타운은 보존이 잘 되어있어 거닐다 보면 마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역사유적들로 가득한 구시가지 전체가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박물관으로 꾸면져 있기 때문이다. 화가들이 사랑하는 도시답게 색이 바랜 벽화와 곳곳에 놓인 동상들도 골목의 옛스러움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첫 번째로 만난 건물은 ‘Lamartine’s House‘, 프랑스의 시인이자 여행가인 라마르틴(Alphonse de Lamartine, 1790-1869)이 머물렀던 집으로 그는 이곳에서 받은 좋은 기억들을 자신의 여행기에 고스란히 담아냈단다. 외교관 출신이기도 했던 그는 불가리아가 터키로부터 민족부흥운동을 할 때 글을 통해 많은 정신적 지지를 해준 사람이란다.

 

 

 

 

 

그건 그렇고 이 건물은 1800년대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으로도 꼽힌다.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주택의 구조(1층 보다 2층이 넓은 구조)는 오스만 투르크가 이곳을 지배할 때 맨 아래층의 면적을 기준으로 하여 세금을 매긴데서 시작되었단다. 조세 회피를 목적으로 1층을 좁게 지었다는 것이다. 기발한 절세(節稅) 방법이라 하겠다. 지금은 Old Town 지역에 새로 집을 지으려면 1층이 좁은 불가리아 양식으로만 지어야 한다니 이제는 아예 공개적으로 탈세를 하라는 모양이다.

 

 

언덕에서 바라본 플로브디프 시가지, 아쉽게도 플로브디프를 상징하는 6개의 언덕(불가리아어로는 Tepe)은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사전준비가 부족했던 탓에 언덕에 비중을 두지 않았고, 그 덕분에 카메라에 담을 생각조차 않았었기 때문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준비 없이 나선 여행이었으니 어쩌겠는가. 아무튼 나머지 하나인 ‘7번째 언덕(Markovo tepe)’은 토목자재로 독일에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지금 ‘Markovo tepe mall’이 들어서 있단다.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식도락이다. 점심을 먹을 겸해서 찾아든 식당은 주인장보다 벽화가 먼저 반긴다. 불가리아의 전통혼례로 보이는 그림을 가운데에 두고 로마시대의 복장을 한 무리와 터키의 민속춤을 추고 있는 그림도 보인다. 이곳 플로브디프의 역사가 함축된 벽화라 하겠다. 점심 메뉴는 사츠(Sach)ch)‘ 커다란 철판에 닭고기 또는 돼지고기와 야채를 함께 넣고 굽거나 끓인 불가리아 전통 음식으로 우리나라 닭갈비와 흡사한데 까탈스런 내 입맛에도 딱 맞았다.

 

 

점심을 마치자 또 다시 투어가 계속된다. 여행자들에게 구시가지는 길 위에서 역사적 흔적을 만나는 곳이다. 좁고 비탈지고 굽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여행자들은 집집이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쓴 문패들을 만난다. 길 위의 모든 집이 언제 지어진 누구누구 집 박물관이라는 분홍색 문패를 달고 있다. '의사 소티르 아토니아디의 집, 히포크라테스의 옛 의약박물관, 1872년 건축', '디미터 조지아디의 집, 1846~1848 건축, 국가기념문화재', '니콜라 네드코비치의 집, 1863년 건축, 국가기념 문화재' 등 대체로 18세기에 건축되어 국가기념문화재로 지정된 집들이다.

 

 

 

 

첫 번째 만남은 히포크라테스의 옛 의약박물관(Hippocrates old pharmacy)’이다. 1872년에 지어진 의사 소티르 아토니아디(Sotir Antoniadi)’의 집을 박물관으로 꾸며놓은 모양이다. 건물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가 하면 마당에 잡동사니들이 널려있는 걸 보면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이곳에서는 건물의 외관뿐 아니라 그들의 생활까지도 고스란히 보여준단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박물관인 셈이다. 또한 옮기는 발걸음 하나까지도 조심스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만난 하우스 뮤지엄은 불가리아의 대표적 화가인 '즐라튜 보야드지에브의 갤러리(Exposition Zlatyu Boyadzhiev)’이다. 플로브디프의 풍경과 민중들의 삶을 표현한 대표적인 화가인데 건물 정면에 그의 초상화가 붙어있었다. 건물은 1858-1860에 지어진 ‘Dr, Stoyan Chomakov’의 집이라고 한다.

 

 

 

 

다음은 이콘박물관(Icon Exposition)이다. 이콘(icon, 聖畵)이란 동방정교회에서 벽화나 모자이크, 목판 등에 신성한 인물이나 사건 등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다른 정교회 국가들에서도 많이 볼 수 있으나 불가리아만큼 이콘화를 압축해서 많이 볼 수 있는 곳도 드물다고 한다.

 

 

이콘을 위주로 한 기념품을 팔고 있는 노점상도 여럿 보였다.

 

 

올드타운은 화려하거나 웅장하기보단 조금은 소박하다는 느낌이었다.

 

 

히사르 카피야(요새 문) 근처에는 동방정교회인 콘스탄틴과 엘레나 교회(Church of St Constantine and Helena)’가 있다. 기독교 공인 직후인 4세기에 세워진 플로브디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콘스탄티누스대제와 그의 어머니 엘레나에 헌정되었다고 한다. 여느 교회와는 다르게 이 교회는 성벽 안에 망루를 세워놓은 형태이다. 오스만제국 시대에 높은 담을 쌓아서 기독교회임을 숨긴 것이 그 원인이란다.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고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교회는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예술가 자하리 자그라프이반 파슈코우라의 이콘(icon)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동방정교의 교회는 가톨릭에 비해 화려한 성화(icon)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히사르 카피아를 통해 올드 타운을 빠져나간다. BC 4세기에 만들어진 요새의 입구라니 역사적 의미가 깊은 문이라 하겠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2세가 만들었지만 지배자들이 바뀌는 과정에서 파괴와 복구를 반복해가면서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단다. 지금은 관광객들의 포토죤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저 돌길에 서려있는 수천 년의 세월을 담아가는 것이다.

 

 

히사르 카피야를 빠져나오자 동방정교회인 ‘Saint Nedelya Orthodox church’가 나온다. 바쁘게 걸어가는 가이드를 뒤쫓느라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길을 가다보면 아래 사진과 같은 현장이 보이기도 한다. 고대유적의 발굴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얘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