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1코스
여행일 : ‘19. 5. 18(토)
소재지 : 경북 영덕군 영덕읍과 축산면 일원
산행코스 : 영덕해맞이공원(2.1km)→오보해변(6.8km)→경정리대게탑(2.7km)→죽도산전망대(1.2km)→축산항(소요시간 : 12.8㎞ 중 12㎞를 3시간30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이번 구간도 역시 ’영덕 블루로드‘를 따른다. 해파랑길 21코스가 블루로드의 B코스와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코스는 블루로드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바닷길을 끼고 있다. 그래서 타이틀(title)마저도 ’환상의 바닷길‘이자 ’바다와 하늘이 함께 걷는 길‘이란다. 파도소리 따르며 소나무 숲도 지나고 갈대숲도 지나다 보면 노물항과 경정마을 등 바닷가에 들어앉은 작은 어촌마을들을 만난다. 돌미역과 대게 등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특산물들이 생산되는 곳이다. 또한 ’바다부채길‘에 조금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해안길을 걸으며 기기묘묘한 생김새의 갯바위들을 구경할 수 있으며 언덕 하나를 몽땅 뒤덮어버린 ’오매향나무‘의 늠름한 풍채를 직접 느껴볼 수도 있다. 날머리인 축산항에서 싱싱한 활어회를 싼 가격에 맛볼 수 있다는 점도 커다란 자랑거리라 하겠다.
▼ 들머리는 영덕해맞이공원(영덕군 강구면 오포리 83-9)
당진·영덕고속도로(청주-영덕) 영덕 IC에서 내려와 7번 국도를 타고 포항방면으로 내려오면 강구항이 나온다. 여기서 20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축산·영해방면으로 올라가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들머리인 영덕해맞이공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우린 200m쯤 못미처에 위치한 ’창포말등대‘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등대 아래에 있다는 멋진 갯바위들을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참고로 창포말등대는 대게의 고장 영덕답게 대게의 집게다리가 등대를 떡하니 붙잡고 있는 모양새다. 하긴 오늘 걷게 될 ’블루로드‘의 B코스가 ‘푸른 대게의 길’이란 이름을 따로 두었을 정도이니 이를 말이겠는가.
▼ 탐방로는 ’창포말 등대‘의 바로 아래에 만들어져 있는 대게 조형물의 뒤에서 열린다. 튼튼한 집게발이 영덕의 상징인 양 파르스름한 빛깔을 띤 채 하늘을 떠받치는 모양새이다. 그렇다고 이곳이 블루로드(B코스)의 들머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정규의 코스는 큰길가로 난 걷기 전용 데크 길을 따라 잠시 걷다가 해맞이공원 정자가 있는 곳에서 해안절벽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참고로 ‘대게’는 다리가 대나무처럼 곧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덕의 축산 앞바다 쪽 고운 모래바닥 심해에서 3·4월 잡힌 것을 최고로 친다고 한다.
▼ 나무계단을 따라 잠시 내려가자 바닷가에 데크전망대(이정표 : 오보해수욕장← 2㎞/ 약속바위↑/ 블루로드 B코스 시점, 해맞이공원↓)가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에는 ‘약속바위’에 대한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이곳 해맞이공원이 영덕에서 가장 유명한 일출 명소 중 하나라고 소개하면서 전망대 근처에 있는 바위의 표면에 볼록하게 새겨진 문양(文樣)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손등이 보이게 새끼손가락을 편 왼손 주먹의 형상이어서 약속바위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바위가 힘을 받아 갈라지면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문양이라는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영겁의 세월 동안 이곳을 지켜온 약속바위와 손가락을 걸고 찍은 사진은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는 부언과 함께 말이다.
▼ 전망대는 온통 흰 암석들로 포위되어 있다. 2억 년 전(중생대)에 땅 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굳어져 만들어진 화강섬록암(花崗閃綠岩, granodiorite : 화강암과 섬록암의 중간 정도 화학성분을 가진 암석)이라고 한다. 화강암처럼 흰 빛깔을 띤 이 암석은 처음에는 쪼개진 틈이 없이 매끈했으나 깊은 곳의 큰 압력을 받아서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게 된다. 이때 동서방향의 큰 수직 틈에 의해 평평한 바위 면이 생겼고, 다양한 각도의 여러 틈들이 잇달아 생기면서 여러 가지 문양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약속바위도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문양이라고 보면 되겠다. 특히 약속바위의 손등 오른쪽에는 점과 같은 검정 무늬가 있는데, 이는 화강섬록암이 만들어질 당시에 다른 성분의 검은 용암이 주입되어 만들어진 것이란다.
▼ 오보해수욕장 방향으로 트레킹을 이어간다. 해안에는 동해 바닷물에 의해 지속적으로 깎여 생긴 다양한 침식지형이 발달해 있다. 바닷가의 낭떠러지인 해식애, 바닷물에 의해 평평하게 깎인 땅인 파식대지, 그리고 서로 부딪혀서 둥글게 된 돌들이 모인 몽돌해변 등. 이런 경관들은 이곳의 암석이 땅 위에 드러난 이후부터 오랜 시간 동안 파도에 의해 만들어져왔으며, 이러한 과정은 현재에도 계속 진행 중이란다.
▼ 탐방로는 이런 침식지형들을 헤집으며 나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을 넘는 것은 물론이고 이게 불가능할 경우엔 바위를 에돌아간다. 그마저도 불가능한 곳에는 안전을 위해 데크로 계단을 놓았다. 탐방객을 위한 배려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걷는 게 불편할 정도로 공사자재들이 널려있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다 우리를 위한 공사가 아니겠는가.
▼ 가끔은 소나무 숲속으로 난 오솔길을 걷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안가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오른편 옆구리는 여전히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바닷가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런 풍경을 두고 환상의 바닷길이라고 했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다. 이런 풍광들을 여유롭게 둘러보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전망 좋은 곳에다 벤치는 물론이고 예쁘장한 팔각정까지 들여앉혔다. 참! ‘기(氣) 받기 좋은 곳’이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뒤의 높은 산이 북쪽 청룡과 남쪽 백호로 형성되어 있어, 산에서부터 해안 바위까지 기가 뻗어 해안 바위부분에 모두 모여 있다는 것이다. 기를 받는 방법까지 설명하고 있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 뒤, 몸에 힘 빼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면서 편안하게 5~10분 정도 호흡을 하면 기를 받아갈 수 있단다.
▼ 25분 정도의 해안절경 구경이 끝나자 ‘대탄항(이정표 : 대탄리 0.4㎞/ 해맞이공원 1.1㎞)’이다. 하지만 항구가 작은 탓인지 어선 대신에 보트 두어 척이 매어져 있을 따름이다. 합숙소처럼 보이는 건물이 포구의 위쪽에 자리 잡은 것 외에는 눈에 띠는 시설도 없다. ‘해양안전 체험장’이라며 이곳에서 지켜야할 안전수칙을 적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국립청소년해양센터에서 운영하는 시설일지도 모르겠다.
▼ 탐방로는 잠시 후 대탄리(大灘里)로 연결된다. 바닷가 큰 여울 옆에 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인데 ‘해여울’ 또는 ‘해월’로도 불린다니 참조한다. 이 마을은 16세기 무렵 정영용(鄭英用)이란 사람이 개척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의 마을 이름은 향월(香月)이었단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에 ‘강씨’가 마을에 들어오면서 ‘대탄’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단다. 마을의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 하겠다. 하지만 마을 앞에 자그마한 해수욕장이 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눈에 담을 만한 풍경이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마을이었다.
▼ 대탄마을에서 탐방로는 20번 지방도로 올라선다. 이어서 차단봉으로 구분해놓은 인도를 따라 7분쯤 걷자 오보리(이정표 : 노물리방파제 0.8㎞/ 대탄해수욕장 0.5㎞)가 나온다. 새천년기념 마을 숲이 트레이드마크인 오보마을(烏保里)은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가 까마귀(烏)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올치미’라고 불렀단다. 이 말이 세월이 흐르면서 오보(烏保)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 마을 앞 해수욕장의 백사장이 조금 더 넓어졌다는 것 말고는 오보마을 역시 조금 전에 지나왔던 대탄리와 하등에 다를 것이 없다. 항구도 역시 텅 비어있기는 매한가지이다. 아니 다른 점도 있기는 하다. 저 멀리 풍력발전단지에서 풍차들이 맴을 돌고 있는 게 보이니 말이다.
▼ 해안도로를 따라 고개로 올라서자 탐방로가 다시 바닷가로 내려선다. 가파른 경사 때문에 만들어놓은 데크계단 입구에 이정표(노물리방파제 0.6㎞/ 대탄해수욕장 0,7㎞)가 세워져 있으니 길이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 데크로드가 끝나면 예쁘고 빨간 등대가 길손을 맞는다. 제법 큰 규모의 포구를 갖고 있는 노물리(老勿里)이다. 이곳은 돌미역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채취한 돌미역은 비타민과 알긴산이 풍부해 동맥경화와 고혈압을 예방해 준다고 알려져 있다. 칼슘과 정신을 안정시키는 칼륨, 암세포 발생을 억제하는 셀레늄도 풍부해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꼽힌다. 영덕은 다른 해안과 달리 강물 등 민물 유입이 없어 바닷물의 염도가 일정해 좋은 미역이 생산된다고 한다. 특히 사진리에서 나오는 미역을 최고로 친다고 하나, 이곳에서 채취되는 미역도 그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줄기가 짧고 조리 후에도 탄력을 유지하며 윤기가 나는 게 특징이란다.
▼ 노물리를 지나면서 탐방로는 또 다시 바닷가를 따른다. 해안절벽으로 들어서자 절경이 펼쳐진다. 속이 다 비치는 푸른 바다를 곁에 두고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진 절벽 위로 보드라운 흙길이 나 있다. 바닷가 쪽으로 밧줄을 이어 놓은 모습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풍광이다. 또한 길가는 초록색 풀들로 덮여있기도 하다. 간간이 들꽃들도 보인다. 그러니 좌우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초록과 푸름의 연속이다. 눈이 편하다.
▼ 바닷가에는 절벽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눈에 들어오는 갯바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오묘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그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로 기기묘묘하게 생겼다. 그런 풍광을 조금이라도 더 즐겨보라는 듯이 탐방로는 절벽의 위로 아슬아슬하게 나있다. 위험한 곳에는 나무계단을 만들어 안전까지 도모했으니 우리에겐 눈이 호사(豪奢)를 누릴 일만 남았다.
▼ 바윗돌과 흙길, 나무 난간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솔향과 바다 내음에 심신이 편안해질 무렵 해변에 세워진 해녀 조형물과 만났다. 미역으로 유명한 석리와 노물리의 특징을 살려, 물질을 끝내고 해안으로 올라오는 해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 다시 길은 이어지고 바닷가는 여전히 기암괴석들로 가득 차 있다. 절벽 위로 난 길이 위험할 수도 있으나 데크를 설치해 안전을 도모했다. 중간에 송림의 오솔길을 만나도 지루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아니 눈이 호사를 누리느라 그런 생각이 들어올 틈도 없다. 누군가는 정동진에서 심곡항까지 이어지는 부채길이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도 그 정도의 아름다움은 갖고 있다. 아니 사람의 손길이 덜 미친 탓에 천연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한 수 위라고 해야겠다.
▼ 길가 밧줄난간이 숫제 무당집 처마로 변해있다. 블루로드를 찾은 산악회나 동호인들이 명품코스를 다녀간 흔적을 집중적으로 달아 놓은 것이다. 저렇게 많은 단체들이 다녀갔다 함은 그만큼 이 구간(블루로드 B코스)이 아름답다는 증거일 것이다. 참고로 65㎞ 길이의 명품 둘레길인 ‘블루로드’는 모두 4개 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B코스’인 ‘푸른 대게의 길’이 백미(白眉)로 꼽힌다.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의 갯바위 등 다양하고 수려한 경관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옥색 바닷길로 분류되는 전체적인 풍광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가까운 바다는 비취색, 먼 바다는 진한 쪽빛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최근 소비자 선정 관광테마 부문에서 최고 브랜드 대상을 받았고, 2012년에는 ‘한국인이 꼭 가 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 뽑혔다. 2010년과 2009년엔 ‘명품 녹색길 33선’,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7선’에 이름을 올렸다. 명실공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바닷길’이라 하겠다.
▼ 바닷길로 들어선지 30분쯤 되었을까 탐방로는 다시 20번 지방도(이정표 : 석동마을 입구 1.1㎞/ 노물리 방파제 1.5㎞)로 올라선다. 하지만 50m쯤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바닷가로 내려간다. 그것도 조금 전에 방향을 틀었던 개울의 건너편이다. 이럴 것이라면 왜 도로로 올라오게 했을까가 궁금해진다.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까 방향을 틀었던 지점에 개울물이 불어나 징검다리가 잠길 경우에 해안도로를 경유해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하릴없이 길을 우회한 셈이다. 냇물이 적어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하등에 문제가 없었으니 말이다.
▼ 이후로도 탐방로는 바닷가를 따른다. 하지만 주변 풍경은 아까와는 많이 다르다. 대부분이 소나무 숲길을 따른다. 오른편은 여전히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 일색이다. 다만 그 규모와 숫자가 아까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을 따름이다. 이 구간의 특징은 경사가 심한 오르내림이 반복된다는 점이라 하겠다.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드나 그렇다고 버거울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 그렇게 15분 정도를 진행하자 석리(石里)가 나온다. 경정3리를 1㎞ 남겨놓은 지점이다. 석리마을은 야트막한 산기슭에 층층이 지어진 집이 특히 예쁘다. 집들이 서로 머리를 맞댄 채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양이 마치 갯바위에 붙은 따개비 같다 하여 ‘따개비 마을’로도 불린단다.
▼ 절벽에 걸쳐놓은 철제계단을 오르면서 트레킹을 이어간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블루로드 가운데서도 가장 백미(白眉)로 꼽히는 구간이다. 또한 해파랑길 중에서도 이만한 절경은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란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들머리에다 블루로드의 스탬프를 찍는 곳을 만들어 두었다. 전에도 얘기했듯이 블루로드 지도에 각 구간에 있는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블루로드 완주메달을 받을 수 있단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나에게는 이미 그림의 떡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 계단을 올라 모퉁이를 돌자 입이 딱 벌어진다. 바위 벼랑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치듯이 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바다 쪽으로 밧줄을 이어 안전을 도모했지만 파도가 치면 그 여파에 옷이 젖을 정도로 바다가 가깝다. 해안절벽의 바위를 걷는 맛이 제법 스릴 있다. 발밑에서 파도가 부서지며 갯내를 한껏 내뱉는다.
▼ 비가 그치고 시야가 넓어지자 보이지 않던 낯선 풍경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해안초소다. 동해안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던 그 해안초소가 곳곳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해파랑 쉼터’로 다시 태어났다. 비어있는 초소의 주변에 데크를 깔았는가 하면 ‘군인’이란 제목의 조형물도 설치했다. 벤치도 놓아두었음은 물론이다. 이 구간은 아직도 군인들이 초소근무를 서고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군인들의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친근감 있게 방문객들을 맞이하려는 의도에서 조성한 시설이라고 한다.
▼ 절벽을 따라 이어진 길들이 아슬아슬하다. 그 덕분에 주변 풍광은 화려하다. 이런 수려한 바다와 길을 여기 아니면 또 어디서 걸어보겠는가. 길이 험해도 걷고 또 걷는 이유이다. 가슴속 저 밑바닥에 엉겨 붙어 있는 묵은 때마저도 말끔히 씻어내 버리는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말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가 걷고 있는 바다를 에두르며 이어지는 길들은 군인들이 다듬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경계를 서기 위해 개척했고, 또 그들이 매일같이 다니던 길이다. 사실 오랜 세월 동안 바다는 경계용 철책 너머에 있었다. 다가가 안을 수 없는 경계의 저쪽이 바다였던 것이다. 그 길이 지금은 ‘블루로드’라는 둘레길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길을 지금 우리가 걷고 있다. 평화를 향한 세상의 변화에 경의를 표해본다.
▼ 바닷가 갯바위는 강태공들의 세상이다.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는 우리들과는 달리 그들은 던지고 채고, 다시 미끼를 끼운다. 그 옛날 주나라의 강태공이 때를 기다리듯이 그들은 월척의 꿈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 빼어난 경관에 취해 20분 정도를 걷다보면 ‘경정3리’에 이르게 된다. 몽돌해안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다 보면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올랐다. ‘선바위(立石)’일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하며 다가가보니 옆모습은 넓적하다. 안내판 하나 보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 아쉬움은 오른편 해안에서 해소된다. 표고버섯 모양을 한 돌들이 납죽납죽 엎드려져 있는 풍경이 참으로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자연 발생적 아름다움에 오묘한 멋까지 갖추었다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이곳 경정3리의 본래 이름은 ‘오매마을(烏梅里)’이다. 마을 주변에 있는 ‘오두산’과 ‘매화산’에서 한 글자씩을 따온 것이란다. 풍수적으로 볼 때 까마귀가 열매를 물고 마을로 들어오는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 경정3리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경상북도의 보호수(11-4호)로 지정되어 있는 ‘오매향나무’가 꼽힌다. 500년이 넘었다는 수령만으로도 놀라운데, 동신바위라 불리는 언덕 전체를 문어발처럼 감싸고 있는 향나무가 단 한 그루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상상을 초월해버린 셈이다. 마을의 전래에는 처음 권씨들이 마을을 개척할 때 대나무와 향나무, 소나무를 심었는데 6.25 전쟁 때 폭격으로 다른 나무는 모두 죽고 지금의 향나무만 살아남았다고 전해진다. 동신바위 아래에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동신당이 자리하고 있다.
▼ 경정3리인 오매마을에서 경정1리까지는 백사장으로 연결된다. 메꽃(바다에 피는 나팔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아름다운 해안길이다. 마치 콘크리트를 타설해 놓은 것처럼 생긴 바위들이 늘어서있는가 하면, 나이 먹음직한 해송(海松) 한 그루를 머리에 이고 있는 바위도 보인다. 척박한 바위 틈새임에도 불구하고 푸르름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있다. 독야청청(獨也靑靑)하니 고고함을 오히려 더 짙어졌다.
▼ 마을로 들어서기 직전에는 모래사장도 통과해야만 한다. 경정해수욕장인데 번잡하지 않고 일상의 자연스러움과 활기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모래가 곱고 파도가 잔잔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반면에 백사장 면적이 작아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아무튼 길을 걷다 만나는 해수욕장은 또 다른 덤이다. 거친 갯바위들을 넘나들며 바닷가를 걷다가 만나는 뽀얀 백사장은 갯벌의 개흙처럼 보드랍고, 또 푹신한 스펀지처럼 퍽퍽하다.
▼ 오매마을을 출발한지 15분 만에 ‘경정1리(이정표 : 대게 원조마을 1.5㎞/ 경정해수욕장 0.13㎞)’에 이른다. 2리를 건너뛰었으니 순서가 맞지 않는 셈이지만 까짓 문제될 거야 없다. 참고로 ‘경정’이란 마을 이름은 긴 모래불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뱃불’이라고도 불린다니 참조한다. 대게는 이곳 경정리의 앞바다에서 잡힌 것을 최고로 친단다. 해안에서 10~12마일쯤 떨어진 수심 200~800m의 지점에 일명 ‘왕돌암’이라 불리는 대륙 경사면이 있는데 이곳에서 잡힌 대게는 다른 대게와 달리 색깔이 황금빛이고 맛과 육질이 뛰어나 대게 중의 대게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 경정1리부터는 20번 지방도를 따른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의 바닷가를 오른편 옆구리에 끼고 걷는 길이다. 검정색 일색이던 바위들이 붉은 색깔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경북동해안 지질공원’이라는 지명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그 지질공원이 갖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 아니나 다를까 ‘경북동해안 지질공원’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경정1리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지점인데 ‘지질 명소인 경정리 백악기퇴적암’이라는 부제까지 달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질(地質) 명소는 경정마을과 차유마을 사이의 해안 지형을 아우른다. 1억 년쯤 된 이암(泥巖, mudstone)과 사암(砂岩, sandstone)이 이곳 해안가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차유마을 쪽에서는 붉은 이암이, 경정마을 쪽에서는 붉은 이암과 흰 이암이 분포되어 있단다. 여러 암석이 어우러진 모습이 이색적이라 하겠다. 또한 암석을 통해 과거의 다양한 흔적을 유추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 탐방로는 공원(이정표 : 대게원조마을 기념비 0.22㎞/ 경정1리 버스정류장 0.83㎞)에서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대게 원조마을인 경정2리에 도착한다. 마을 입구에 이곳이 대게의 원조임을 알리는 비석을 세워놓았으니 한번쯤 살펴볼 일이다. ‘차유마을’로도 불리는 이곳은 고려 29대 충목왕 때 영해부사 일행이 수레를 타고 고개를 넘어왔다고 해서 수레 ‘차’(車), 넘을 ‘유’(踰)를 썼다고 한다. 마을의 형국이 우마차(牛馬車)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그나저나 ‘대게 원조마을’이 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고려 태조(왕건)가 안동 부근에서 후백제군을 물리칠 때 예주(지금의 영해면)의 호족들이 참전해 준 것을 감사히 여기고 경주로 내려갈 때 이곳을 순시했다고 한다. 그때 수라상에 이 마을에서 나는 대게를 올렸는데 이런 스토리를 발굴해서 마을의 브랜드로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하나 더,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경정마을의 앞바다는 대게의 가장 좋은 서식지로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타 지역보다 맛과 질이 단연 우수하단다. 또한 이곳은 타 지역에서 잡은 대게를 들이지 않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원조마을을 지키려는 마을주민들의 의지와 철학이 돋보인다고 하겠다. 직접 잡아들인 대게는 겨울부터 봄까지 횟집에서 팔고, 전국 각지로 배송도 한단다.
▼ 경정2리에서 축산항까지의 4km 구간은 해안경계를 서는 군인들이 오가는 길이라고 해서 일명 ‘초병의 길’로도 불린다. 그러고 보면 21코스의 대부분은 민간인들이 다니지 못한, 군인들만 알던 꽁꽁 숨겨 두었던 길로 이어지는 셈이다. 아직도 완전하진 않지만 그 진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그나저나 죽도산 입구 해변까지는 이제까지 걸었던 해안절벽 길과는 달리 울창한 소나무 숲을 걷게 된다. 중간에 숲길과 모랫길로 나뉘기도 하나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길은 다시 합쳐지기 때문이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죽도(竹島)’가 나타난다.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지금이야 ‘섬(島)’이라는 글자를 무색하게 만들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육지로부터 동떨어진 섬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후 모래언덕이 점점 쌓이면서 자연적으로 육지와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섬이 귀한 동해에서 받았을 귀한 대접을 자연이 빼앗아 가버린 셈이다. 그래선지 지명 또한 죽도(竹島)에서 ‘죽도산(竹島山)’으로 바뀌어 있었다.
▼ 이 부근도 역시 기암괴석들이 널려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공룡(恐龍)을 닮은 바위가 아닐까 싶다. 죽도산을 배경으로 서있는데 중생대의 하늘을 지배하던 ‘프테로사우스(Pterosaurs, 翼龍)’를 쏙 빼다 닮았다.
▼ 모래사장이 끝나자 ‘뜻 모아 하나로! 힘 모아 세계로!’라는 캐치플레이즈(catch phrase)를 달고 있는 현수교(懸垂橋)가 길손을 맞는다. 죽도산 앞의 시내(축산천)를 가로지르는 ‘블루로드 다리’로 총연장 139m에 주탑(主塔)의 높이는 25m라고 한다. 그런데 다른 현수교들과는 달리 주탑이 하나뿐이다. 보행자 전용이라서 상판의 무게가 가벼운 탓일 게다. 죽도산을 가기 위해서는 ‘블루로드 다리’를 건너야만 한다. 다리는 흔들흔들 제멋대로다. 하지만 그다지 높지 않은 탓에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장난기 발동한 어느 일행이 다리의 난간을 붙잡고 흔드는데도 누구 하나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 ‘블루로드 다리’를 건너자 화장실을 갖춘 작은 주차장이 마련되어있다. 이곳이 죽도산 정상으로 오르는 들머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리어카를 개조한 수산물 판매대들 뒤의 들머리에다 ‘죽도산길 안내판’과 ‘죽도산야생초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모래가 굳어진 돌과 자갈이 굳어진 돌이 어우러진 섬의 지질을 설명하면서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섬의 역사와 함께 해국(海菊)과 산국(山菊), 참나리, 섬쑥부쟁이 등 섬에서 자생하고 있는 야생초들의 군락지들을 표시했다. 이젠 죽도산의 정상으로 올라야 할 차례이다. 이름에 걸맞게 시누대가 숲을 이루고 있는 죽도산은 높이가 고작 80m 밖에 되지 않지만 정상으로 오르는 일은 꽤나 고달프다. 가파른 비탈에 깔아놓은 나무계단이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오르자 등대(燈臺)가 나온다.
▼ 정상에는 높이 26.9m(7층)의 ‘죽도산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원래 이곳에는 1935년에 문을 연 축산등대(丑山燈臺)가 있었다. 일제 말 미국의 폭격 표적이 된다고 해서 철거되기도 했으나 광복 후 다시 세워 운영해오다가 2011년 옛 등대를 헐고 그 자리에다 지금의 죽도산전망대를 대신 세웠다고 한다. 등대(燈臺)도 맨 위층에서 새롭게 태어났음은 물론이다. 엘리베이터(elevator)를 타고 5층으로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망원경은 물론이고 벽면에는 이집트의 ‘파로스등대’와 독일의 ‘브레머헤븐 등대’ 등 많이 들어본 듯한 등대들과 육계도(원래 육지였으나 자연적으로 육지와 연결된 곳)인 죽도의 생성과정과 주변 해안의 어종들을 실은 패널(panel)들을 빼꼭하게 진열해 놓았다.
▼ 전망대에서 축산항 일대를 조망하는 기분은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 그 자체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조용히 바다로 흘러드는 축산천이다. 그 오른편에는 이곳 죽도를 육지로 만들어버린 모래톱이 길게 펼쳐지는데, 사빈(沙濱)이 만들어진지 오래되었던지 지금은 주택들이 빼꼭히 들어차있다.
▼ 모래톱의 오른편에는 1924년에 조성된 축산항(丑山港)이 들어서 있다. 축산항은 영덕의 대표적인 어항이자 ‘대게’의 위판이 열리는 전국의 다섯 개 항구 가운데 한곳이다. 또한 인근의 여러 항으로부터 유입된 배들이 싣고 온 고기의 입찰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영덕대게를 비롯한 동해의 무공해 해산물을 좀 더 맛있게 먹으려면 축산항으로 가라‘는 구전(口傳)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일 것이다. 우리 부부도 그런 호사를 누려볼 수 있었다. 정자 근처에 위치한 ’축산대게 활어타운‘에서 싱싱한 회를 싼 가격에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축산(丑山)’이라는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 등장하는데, ‘축산포는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지킨다’는 기록이 있다. ‘여지도서’에는 ‘축산도(丑山島)는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소와 같아 축산’이라 한다고 되어 있다. 오래 전 축산리는 섬이었나 보다.
▼ 축산리의 반대방향으로는 한없이 펼쳐진 동해 바다가 푸른빛으로 넘실댄다. 산중턱에는 군부대의 옛 건물이 보이는가 하면, 영덕을 한가운데에 놓고 사방으로 국내외 도시들을 표기해놓은 광장도 눈에 들어온다. 바닷가에는 여러 개의 전망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모래돌과 자갈돌로 이루어졌다는 이곳 죽도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망대가 아닐까 싶다.
▼ 산행날머리는 죽도산 주차장(영덕군 축산면 축산리 산106-1)
조망을 즐겼다면 이젠 내려갈 차례이다. 죽도(竹島)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울창한 시누대숲 사이로 내놓은 나무계단을 따라 잠시 내려서자 잘 지어진 팔각정이 나온다. 팔각정 주변은 화장실을 갖춘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산악회의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쯤에서 트레킹을 종료시키라는 모양이다.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은 조금 더 가야하는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까짓 다음에 조금 더 걸으면 되니 말이다. 아무튼 오늘 트레킹은 총 3시간 30분이 걸렸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이 표시하고 있는 거리가 12㎞이니 느긋하게 걸은 셈이다. 아니 준비해간 간식을 먹느라 멈췄던 시간과 죽도산전망대에서 지체한 시간을 감안할 경우 천천히 걸었다고 볼 수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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