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 19코스
여행일 : ‘19. 4. 20(토)
소재지 : 경북 포항시 북구와 영덕군 남정면·강구면 일원
산행코스 : 화진해수욕장(4.2㎞)→장사해변(5.1㎞)→구계항(3.8㎞)→삼사해상공원(2.7㎞)→강구항(소요시간 : 15.8㎞ 4시간20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해파랑길의 영덕구간은 영덕판 올레길이라는 ’블루로드‘와 대부분 겹친다. 화진해수욕장에서 출발해 강구항에서 막을 내리는 ’해파랑길 19코스‘ 역시 예외가 아니다. 화진해수욕장에서 지경교까지 20분 남짓의 거리를 제외하고는 ‘블루로드 D코스(쪽빛 파도의 길, 14㎞)’와 온전히 겹치기 때문이다. ‘대게누리공원’에서 시작되는 블루로드의 특징은 백사장과 기암괴석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삼사리의 해상산책로와 해상공원 등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경관을 함께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기다 장사리에서는 6.25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사상륙작전의 역사적 교훈도 되새겨 볼 수 있다. 또한 이 구간은 영덕의 어촌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작은 어촌마을들을 지나게 된다. 그리고 트레킹이 마무리되어갈 즈음 들르게 되는 어촌민속전시관에서 그 결실을 맺게 된다.
▼ 들머리는 화진해수욕장(포항시 북구 송라면 화진리)
당진영덕고속도로(청주-영덕) 영덕 IC에서 내려와 7번 국도를 타고 포항방면으로 내려오면 해파랑길 19코스의 날머리인 강구항을 거쳐 잠시 후에는 들머리인 화진해수욕장에 이르게 된다. 백사장길이 400m에 폭이 100m인 화진해수욕장은 평균수심이 1.5m밖에 되지 않는다. 총 1만 평에 이르는 백사장은 하루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단다. 참고로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해수욕장을 벗어나기 직전에 해수욕장안내도와 함께 만날 수 있다.
▼ ’7번 국도‘로 올라서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자전거도로를 겸한 탐방로가 국도와 구분되어 있지만 씽씽 내달리는 차들의 속도감에 기부터 질려버린다. 사실 트레킹을 하면서 가장 피하고 싶은 곳이 찻길이다. 교통량이 부쩍 늘어나는 국도라면 더욱 질색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19코스는 다들 피하고 싫어하는 그런 상황을 부지기수로 만나게 된다. 마을과 마을이 대부분 국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심 또 조심이 필요한 구간이라는 얘기이다.
▼ 도로에 올라선지 얼마 되지 않아 탐방로는 바닷가로 향한다. 그리곤 왼쪽에 해송 숲을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푸른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걷는다.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기기묘묘하게 생긴 갯바위들은 덤이라 하겠다. 그건 그렇고 오늘 걷는 19코스는 영덕판 둘레길인 ‘블루 로드’의 D코스와 겹친다. 하늘을 봐도, 그 하늘을 닮은 바다를 봐도 온통 쪽빛 푸르름이 가득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이번 여행에서 촬영한 내 사진들은 ‘파란 길’이라는 그 이름에 동화되어 버렸다. 사진들마다 하나같이 온통 쪽빛으로 도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카메라 조작을 잘못해서 생긴 불상사인데 불행 중 다행으로 이름에 걸맞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수 덕분에 그 푸르름이 짙고 더 짙어져 무서움마저 들 정도까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맞다. 이 정도는 되어야 ‘파란 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바위이다. 누군가는 ‘물고기’처럼 생겼다고 했는데 내 눈에는 무서운 ‘동물’처럼 보인다. 무학대사가 이르기를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 했으니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생김새 또한 달리 보이는 게 정상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저 바위가 파도를 가르며 헤엄쳐 들어갈 자세를 취하고 있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8분 만에 ‘지경마을’에 도착한다. 대여섯 척의 어선이 매어져 있는 작은 포구를 끼고 있는 이 마을은 청하현과 영해현의 경계(地境)에 놓인 땅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리인 이곳 지경마을에다 2리에 있는 어사터와 염전(鹽田)이란 자연부락이 합쳐지면서 법정마을인 지경마을(地境里)이 완성되었다.
▼ 포구에서 지경마을의 주택가까지는 해안길을 따른다. 바닷가에 방파제를 쌓고 그 안쪽에 기대어 도로를 만들었다.
▼ 지경 마을의 끄트머리에서 지경천(地境川)을 만나면 탐방로는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서 1톤 이상 차량의 통행을 금지시킨다는 지경교 옛 다리를 건너면 이젠 영덕(남정면) 땅이다. 동네 이름도 부경리(阜境里)가 된다. 사람들은 지경천을 회리천(晦里川)이라고도 부르며 또 어떤 이들은 이 부근을 골곡포(骨谷浦)라고 주장하면서 신라시대 향가 헌화가가 탄생한 곳이라고 설명한다. 수로부인이 경주를 출발해 지금의 포항을 거쳐 강릉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 이르러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있었는데 되레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에 빠진 한 백성이 벼랑 위 철쭉을 바쳤다는 것이다.
▼ ‘지경다리’를 건너자 국도 왼편에 ‘대게누리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 세워놓은 엄청나게 큰 대게조형물이 이제 ‘대게’의 본고장인 영덕에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맞다. 영덕은 대게의 고장이다. 오죽했으면 대게라는 보통명사 앞에 영덕이라는 지명이 붙어 ‘영덕대게’라는 고유명사가 되었겠는가. 그래서 영덕에서는 대게 모양의 구조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공원에 세워진 저 조형물도 그중의 하나라 하겠다.
▼ 영덕의 관문인 부경마을(阜境里)은 고부동(高阜洞)의 부(阜)자와 지경동(地境洞)의 경(境)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리와 2리로 나눠지는데 포구가 있는 1리는 19세기 후반에 박씨라는 사람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원진(元津)이라 부르다가 나중에 고부동이라 고쳐졌단다. 아까 지경다리를 건너자마자 만났던 2리는 임진왜란 때(1592) 개척된 마을이라니 참조한다. 지경리에서 이곳 ‘부경1리’까지는 19분이 걸렸다.
▼ 부경리의 특징은 탐방로가 해안가가 아닌 마을안길을 따르는 점이라 하겠다. 그렇게 부경마을을 빠져나오면 탐방로는 다시 7번 국도로 올라선다. 맞닿는 곳에 ‘부경1리’의 마을표지석과 이정표(장사해수욕장 1.17㎞/ 대게누리공원 1.1㎞)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한다. 아무튼 씽씽 달리는 차량들로 넘치는 국도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국도 옆에 자전거용 도로를 하나 더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참! 영덕 관내로 들어서면서 탐방로의 꾸밈새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이정표의 숫자도 훨씬 더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길 양옆으로 흰색의 실선과 푸른색 실선이 나란히 붙어서 길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흰색이 파도이고 푸른색은 바다를 나타낸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나 더 있다. 길바닥에 심어놓은 방향표시가 그려진 동판이 심심찮게 보였다.
▼ 국도로 올라서서 1㎞쯤 걸었을까 탐방로는 다시 바닷가로 내려선다. 부경리에서 13분이 걸린 지점이다. 바닷가로 내려서니 타원형을 이룬 채 길게 뻗어있는 모래사장이 길손을 맞는다. 장사해수욕장이라는데 작은 규모(길이 900m에 폭이 80m)이지만 교통이 편리한데다 백사장 뒤로 소나무 숲까지 우거져 있어 인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단다. 특히 모래의 알이 굵고 몸에 붙지 않아 맨발로 걷거나 찜질을 할 경우 심장과 순환기계통의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 장사해수욕장의 바닷가에는 회색빛 배 한 척이 정박되어 있다. 쪽빛 바다에 무겁게 가라앉은 저 배는 장사상륙작전 때 태풍으로 침몰했다는 문산호의 실물 크기 모형이란다. 장사상륙작전은 실제 상륙지점인 인천의 반대편에 있는 동해안에 기습적으로 상륙함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상륙 지역을 오판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한다. 적들의 주의를 동해안 지역으로 집중시키고, 낙동강 전선에서 방어 중이던 국군의 전진로를 개척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작전은 미군 군사전문가들조차도 성공 확률을 5,000분의1로 점치며 만류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된 이 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케 만들었음은 물론이고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태풍에 좌초한 문산호는 1997년에야 바닷속에서 발견됐다. 그리고 모형으로 다시 태어나 후세들 앞에 ‘전승기념관’으로 섰다.
▼ 문산호의 앞에는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벽면에는 작전에 참전했던 용사의 명단이 화인(火印)처럼 박혀있고, 다른 한 쪽 면에는 그때의 정황을 요약한 내용이 아픈 역사를 돌아보게 만든다. 영덕군에서는 장사해변을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으로 꾸미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는 장사상륙작전의 재평가를 통해 그분들의 충혼이 후세에 널리 기려지게 하려는 목적이란다. 그래선지 원래의 위령탑이 자리 잡았던 장소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위령탑의 오른편에 위령탑의 원래 자리임을 알리는 검은색 빗돌(碑石)을 세워놓았다. 장사상륙작전에 대한 내용을 적은 비석도 물론 함께이다. 당시 학도병을 주축으로 한 병력 772명은 상륙함인 문산호를 타고 태풍으로 인한 풍랑을 무릅쓰고 상륙함으로써 7번 국도를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희생도 컸단다. 출처에 따라 숫자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기념탑의 명판에는 130여 명이 전사하고 3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기록돼 있다.
▼ 이곳 장사해수욕장은 MBC-TV에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해변 촬영지로 알려진다. 가난한 어촌 가정을 중심으로 한 형제들 간의 각기 다른 사랑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 최불암과 김혜자, 박상원, 최진실, 차인표, 송승헌 등 당시(1997)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배우들이 총 출연해서 화재를 불러 모았던 작품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야외무대의 바닥에 드라마의 장면들을 그려 넣었다. 야외무대 앞에는 ‘영덕 블루로드’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도보여행자를 위한’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영덕블루로드는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688km의 동해안 트레킹코스인 해파랑길 중 영덕군 남정면 대게공원을 출발하여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약 64.6km의 해안길이다. '쪽빛 파도의 길'과 ‘빛과 바람의 길’, ‘푸른 대게의 길’, ‘목은 사색의 길’ 등 모두 4개의 코스로 이루어져있는데 영덕만의 특색 있는 아름다움과 이야기 덕에 꾸준하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단다.
▼ 해수욕장을 빠져나온 탐방로는 또 다시 국도변(이정표 : 원척항 2.4㎞/ 대게누리공원 2㎞)으로 올라선다. 도로 오른편으로 긴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부흥리해수욕장(이정표 : 원척항 1.8㎞/ 장사해수욕장 0.31㎞)’이다. 하지만 폭이 좁은 것이 썩 뛰어난 해수욕장은 아닌 것 같다. 참! 해수욕장의 이름은 비록 부흥(富興)이지만 이곳의 행정구역은 사실 장사리임을 기억해 두자.
▼ 부흥교를 지난 탐방로는 동해연수원(경운대학교, 대구과학대학)을 좌측에 두고 해안 오솔길로 들어선다. 이어서 바닷가에 지어진 ‘사신당(社神堂)’을 만난다. ‘사신(社神)’이란 토지의 신을 말한다. 바닷가 마을에서 모시는 신이 대부분 해신(海神)인 점을 감안할 때 의외라 하겠다. 그런 내 의구심을 뒷받침이라도 하려는 듯 금빛 거북이 세 마리를 신당 앞에다 모셔놓았다.
▼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거대한 벽화가 길손을 맞는다. 마을의 축대에다 커다란 갯바위 위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사람을 그려 넣었다. 이 부근의 갯바위들이 일류의 낚시터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부흥리(富興里)는 1리인 ‘날미(飛勿)’와 2리인 ‘가추(佳雛)’, 그리고 3리인 ‘자부랑(者富郞)’으로 이루어졌다. 부흥이라는 지명은 자부랑(慈富 : 者夫郞)의 부(富)자와 신흥(新興)의 흥(興)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라는데 신흥이 어디를 이르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 바닷가에는 바닷고기 조형물을 곁들인 전망대도 만들어 놓았다. 휴게시설을 갖춘 깔끔한 거리에 벽화와 전망대, 조형물 등 한마디로 정성아 담뿍 들어간 마을 풍경이다. 2년쯤 전인가 이곳 부흥리가 ‘토탈경관 디자인공모사업’에 선정되었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던가 보다. 이 사업은 지붕도색 및 벽화조성을 위주로 한 경관개선사업, 깨끗하고 보행이 편안한 거리 조성사업, 이색적인 문화공간 및 휴게공간 조성사업, 해안마을 특성에 맞는 조형물 설치사업, 도시미관을 고려한 옥외광고물디자인사업 등으로 이루어졌다니 참조한다.
▼ 포토죤(photo zone)도 만들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주변 경관이 장난이 아니다. 바닷가에 널려있는 기기묘묘한 갯바위들이 쪽빛 바다와 어우러지며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 부흥마을을 지난 탐방로는 바닷가로 내려선다. 이어서 모래사장과 갯바위를 번갈아 걷다가 다시 국도(이정표 : 경보화석박물관 0.2㎞/ 경운대연수원 0,25㎞)로 올라선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원척리(구계항 2.5㎞/ 장사리 3.1㎞)에 이른다. 국도에 올라선지 5분 만이다.
▼ 마을로 들어서자 ‘동신당(洞神堂)’ 건물이 눈에 띈다. 동신(洞神)은 마을을 수호해주는 신을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모시는 민간신앙의 한 형태이다. 동신을 모시는 마을들의 대부분은 매년 정초에 마을 전체의 풍요와 건강을 비는 제사를 공동으로 드리는데, 이런 성격의 동신제는 삼한시대의 제천의식을 거쳐 단군신화에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동신 신앙에는 한민족이 살아온 생활사적 발자취가 그대로 살아있다고 볼 수 있다. 그냥 흘러들어서는 안 되는 우리네들의 문화유산이라는 얘기이다.
▼ 잠시 후 이번에는 ‘원척항’이 길손을 맞는다. 이곳까지 오면서 만났던 포구들보다는 규모가 상당히 크다. 포구 옆의 주택들도 역시 층수를 높였다. 그래봤자 마을 포구임에는 변함없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이곳 원척마을(元尺里)은 조선 인조 년간에 원(元)씨 성을 가진 사람이 터를 잡고 마을을 개척하면서 동해바다와 산언덕을 자(尺)로 재듯 조화롭게 관리했다는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 원척마을 지나면 탐방로는 다시 국도(구계항 2.2㎞/ 장사리 3.5㎞)로 올라선다. 참! 그러고 보니 동네를 지나는 도중 ‘경보화석박물관’를 지나쳐버렸음을 알리는 이정표(구계항 2.4㎞/ 경보화석박물관 건너편 1.0㎞)가 눈에 띄었었다. 경보화석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화석박물관이다. 석기시대 때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보존가치가 높은 화석과 규화목들을 빼곡하게 전시해 놓았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탐방로가 박물관의 건너편으로 나있던 게 그 원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국도를 따라 잠시 걸으니 ‘방학중이야기’를 적어놓은 안내판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백수로 산 해학가이자 못하는 것이 없는 기발한 재주꾼, 유머가 넘치는 익살스런 인물로 알려진 ‘방학중’이 영덕 출신의 실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근세의 해학과 풍자의 달인으로 구비 역사에 남아있는 그이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에게 속임수나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고 사람들은 그를 ‘천하잡보’라고 부른단다. 아무튼 기발한 재주꾼에 유머가 넘치는 그는 떠 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 인물이다.
▼ 안내판 근처에서 길이 둘로 나뉜다. ‘자전거길’을 겸한 원래의 탐방로를 놓아두고 오른편 바닷가 쪽으로 길이 하나 나뉘는 것이다. 길가에 ‘블루로드’의 진입로임을 알리는 표식이 되어있어 일단 내려서고 본다. 하지만 해파랑길 표식은 계속해서 국도를 따르고 있으니 참조한다. 바닷가로 내려서니 위에서 봤던 ‘방학중’에 대한 안내판이 하나 더 세워져 있다. 이곳이 ‘지푸심골’에 위치한 박학중의 묘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묘도 눈에 띄지는 않았다. 아무튼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과 언덕길, 갯바위 등을 반복해서 오르내리는 탐방로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보상은 제법 쏠쏠한 편이었다. 기암괴석들이 쪽빛 바다와 잘 어울리고 있는 백사장과 솔향 가득한 소나무 숲길이 느끼는 것만으로도 쌓였던 피로를 풀어주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 바닷가로 내려선지 15분 만에 탐방로는 또 다시 국도(이정표 : 구계항 1.2㎞/ 원척항 1.3㎞)로 올라선다. 하지만 길은 이곳에서 또 다시 둘로 나뉜다. 이번에는 해파랑길의 표식도 아래로 향하고 있다. 아니 또 다른 해파랑길 표식은 계속해서 ‘자전거길’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서 가라는 모양이다. 바닷가로 내려서니 아까보다도 더 나은 풍광들이 펼쳐진다. 낚시질하기 딱 좋은 갯바위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소나무 숲도 더욱 짙어졌다.
▼ 눈요기를 즐기며 걷다보니 길이 끊겨있다. 난간까지 두른 쇠사다리가 중간이 뚝 부러져 있는 것이다. 그래선지 탐방로는 이곳에서 다시 국도로 올라붙는다. 이어서 진행방향에 위치한 구계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구계(龜溪)’라는 지명은 마을 앞 바위의 모양이 마치 새우가 물에 떠있는 형상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하부(鰕浮)라 하였는데 이것이 변하여 구배, 구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을 뒷산이 거북이 형국이고 깊은 계곡이 있어 구계라 했다고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 잠시 후 탐방로는 ‘구계리’(이정표 : 남호해수욕장 1.67㎞/ 원척항 1.9㎞)’로 들어선다. 빨갛고 하얀 등대가 세 개나 서 있는 한 폭의 그림 같은 포구를 끼고 있는 마을이다. 옛날 이곳은 조그마한 어촌에 불과했는데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이후로는 많은 배들이 드나든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마을에는 횟집과 펜션, 카페들이 제법 들어서있다. 원척마을에서 구계마을까지는 5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 이 마을의 또 다른 특징은 길가 방파제를 쉼터로 꾸며놓았다는 점이다. 데크로 계단을 만들어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앞은 갯바위에다 테트라포드를 연결해 천연의 풀장을 만들어 놓았다. 물놀이철로는 아직 일러선지 사람들 대신 갈매기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 구계리를 빠져나오면 또 다시 국도(이정표 : 남호해수욕장 0.5㎞/ 구계항 0.5㎞)이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남호해수욕장에 이른다. 1km쯤 되는 결이 고운 백사장이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어 분위기가 아늑한 해수욕장이다. 그러나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결 곱다는 백사장이 아니라 해변에 늘어선 예쁜 펜션과 찻집 등이었다. 그만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 남호항을 지나면 곧이어 남호마을(南湖里)이 나온다. ‘남호’라는 지명은 1914년에 있었던 행정구역 개편 때 생겨났으며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역전(驛前)으로 불리었단다. 냄불, 남역불, 내무뿔로도 불리었는데, 이는 남역 앞에 있는 벌(모래사장)가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나저나 남호마을은 남정천(南亭川)이 둘로 갈라놓는다. 자연이 갈라놓은 마을을 인간이 다시 이었다. 보행자 전용의 예쁘장한 다리를 새로 놓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 다리를 ‘꽃다리’라 불렀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지명검색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 다리 건너의 카페 앞은 파라솔 천지이다. 하지만 나그네의 눈길을 끄는 건 금과옥조(金科玉條)들을 적어놓은 팻말들이다. 삶은 파도와 같다는 ‘파도위에서 춤추기’, ‘청산은 나보고 말없이 살라’한다는 나옹선사의 법어 등이 적혀있는데 그중에서도 ‘바다와 청산이 한곳’이라는 춘원 이광수의 시가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바닷길 트레킹에 심취해 있는 우리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 탐방로는 마을을 지나서도 바닷가를 떠나지 못한다. 아니 쪽빛 바다와 갯바위들이 어울리며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어내는 풍경에 반해 탐방로를 일부러 돌려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블루로드(Blue Road)는 우리말로 쪽빛 길이고 해파랑은 해와 푸른바다를 벗 삼아 걷는다는 뜻이니, 이렇게 고운 바닷가를 놓아두고 어찌 국도로 올라서겠는가.
▼ 그렇다고 바닷길이 삼사마을(三思里)까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잠시 국도(이정표 : 삼사해상산책로 0.31㎞/ 남호해수욕장 0.64㎞)로 올라섰다가 마을로 내려서기 때문이다. 참고로 ‘삼사’라는 지명은 신라(新羅) 때 시랑(侍郞) 벼슬을 한 세 사람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세 사람의 시랑들이 이 마을에 숨어 살았다 하여 삼시랑골 또는 삼시랑이라 했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후세 사람들이 이 세 사람을 생각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삼사(三思)라는 지명만 놓고 보면 맨 마지막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 조금 더 걷자 2011년에 준공했다는 233m 길이의 ‘해상산책로’가 바다의 심장부로 향하듯 길게 뻗어 있다. 부채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입구로 들어가 손잡이 부분을 지나면 좌우로 한 바퀴 돌아올 수 있도록 했다. 산책로는 교각이 높고 길어 동해안 바다의 풍경을 가까이에서 눈에 담고 느끼기에 딱 좋다 하겠다. 중간에는 강화유리로 바닥을 깔아 철썩이는 파도를 구경할 수 있도록 배려도 했다. 유리에 이물질이 잔뜩 끼어 아래가 내려다보이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 산책로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산책로에 오르면 수평선까지 펼쳐진 동해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바위에 부딪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풍경너머로 삼사리를 낀 주변해안이 한눈에 쏙 들어옴은 물론이다. 마을 뒤에 위치한 언덕은 이곳 삼사리의 또 다른 명소인 삼사해상공원이다.
▼ 이곳 삼사리도 역시 방파제를 계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저녁 나들이 나온 주민들이 담소를 즐기기에 딱 좋겠다. 이 구간은 방파제의 위를 걸어봤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가로등의 기둥을 피해가는 게 조금 불편했지만 파도소리를 벗삼아 걷기에 제격이었다. 그렇게 10분쯤 걸었을까 선착장 근처에 이정표(삼사해상공원 정문← 0.2㎞/ 삼사해상공원 산책로↓ 0.7㎞) 하나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가 지시하는 대로 탐방로는 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 잠시 후 탐방로는 삼사해상공원(三思海上公園)의 정문에 이른다. ‘어서 오십시오’ 반원의 형태로 만들어진 거대한 조형물이 마치 수문장이라도 되는 양 길손을 반긴다. 이젠 꽃단장이 된 산책로를 따라 공원으로 오르는 일만 남았다. 가는 중간에 ‘이북도민 망향탑’과 ‘무공수훈자 전공비’도 기웃거리면서 말이다.
▼ 곧이어 탐방로는 언덕 위에 만들어진 널따란 광장에 올라선다. 주변의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손짓을 하지만 그냥 공원의 안으로 들어서고 본다. 광장 중앙에는 일출의 장관을 표현한 ‘바다의 빛’이라는 주제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전체높이 6m40cm에 넓이가 12m인 이 대형 조형물은 하늘과 땅,그리고 바다 등 세상만물의 모든 기운을 모아 가운데 원을 행해 나아가 드넓은 우주로 펼쳐가는 형상을 담았단다. 또한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과 파도의 상징성도 갖고 있다니 한번쯤은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 광장 한켠에는 돌에 꽃무늬가 있다는 거대한 화문석(花文石)을 모셔두었다. 그런데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크기가 천하제일인지 아니면 그 문양이 천하제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매화, 공작 등이 새겨져 있으며 무게가 20톤이라는 내용만 알아낼 수 있었다. 화문석의 근처에는 하산 김한홍선생의 ‘해유가비’도 세워져 있다. 영덕 태생인 김한홍 선생은 1894년 향중의 시회(詩會)에 장원으로 뽑힐 만큼 일찍부터 한시에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선지 빗돌에는 어지러웠던 당시의 우리나라 상황을 적은 싯귀가 적혀있었다.
▼ 가장 높은 곳에는 경북대종을 모신 전각이 올라앉았다. 매년 초 타종식 행사가 열린다는 경북대종은 신라의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種, 국보 제29호인 에밀레종)을 본(本)으로 삼아 대금을 부는 ‘천인상(天人像)’과 사과를 든 ‘비천상(飛天像)’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 야외공연장도 보인다. 주위 경관이 좋아 가족단위의 나들이 코스로 각광 받는다고 했는데 그에 맞추어 각종 문화공연이 자주 열린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대종 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어촌민속전시관’에 들러보기 위해서다. 아니 해파랑길도 이 길을 따르니 일부러 찾아갔다고는 볼 수 없겠다. 이 어촌민속전시관은 어촌지역에서 사라져가는 전통 민속과 문화를 발굴·보전하여 전통 어업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관광객 및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새로운 볼거리 제공과 산 교육학습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지하부터 지상 3층까지 크게 3개의 층으로 나눠져 있으며 어촌, 대게, 낚시와 바다세계 등릐 전시뿐만 아니라 가상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 영덕 어민들의 어로활동과 별신굿에 대한 이야기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특히 대게 잡이의 모습을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길게 재현해 놓은 것이 눈길을 끌었다. 어류화석 전시실도 꼭 들러볼 것을 권해본다. 참! 맨 위층에 강구항이 잘 조망되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배경이 된 어촌마을로 드넓은 청청해역을 낀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 전시관의 뒷길로 내려오면 해안길이 나온다. 탐방로는 이제부터 해안도로를 따른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진행하자 오포마을(烏浦里)이다. 마을 뒷산이 ‘까마귀의 머리(烏頭)’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란다. 마을로 들어가는 도중에 모래해안이 나오지만 공사자대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이 상태가 별로다. 하지만 이 마을에 있는 하얀 등대는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 주인공 민규(송승헌)가 애견 도꾸와 나란히 앉아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곳이다. 그건 그렇고 해안이 끝나기 전 탐방로는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골목길로 인도된다. 오십천(五十川)이 마을길을 끊어놓은 때문인데 삼거리(오포리 해안쪽)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던 탐방로는 ‘오포교를 건너 ‘7번 국도’에 또 다시 올라선다. 참! 중간에 테라스(terrace) 모양으로 만든 탐방로를 걸으면서 강구항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 이층의 테라스로 오르면 강구항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오십천 건너의 상가에 엄청나게 큰 대게 조형물이 걸려 있다. 아까 영덕 땅에 들어서면서도 얘기 했듯이 영덕은 대게의 고장이다. 오죽했으면 영덕이라는 지명과 대게가 합쳐져 ‘영덕대게’라는 교유명사까지 나왔겠는가. 그러니 이곳 강구라고 해서 예외일리는 없다. 많은 건물들이 대게조형물을 매달고 있음이 그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우린 대게를 맛볼 수가 없었다. 산악회의 시간표가 느긋하게 대게를 맛볼 만큼의 시간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선책은 이 지역의 또 다른 특산물이라는 ‘가자미’이다. 하지만 우린 이마저도 맛볼 수 없었다. 횟집에서 부른 가격이 상상외로 비쌌기 때문이다. ‘대게’뿐만이 아니라 ‘가자미’마저도 귀하신 몸이 되었나 보다.
▼ 트레킹의 날머리는 강구파출소(영덕군 강구읍 오포리 75-1)
국도를 따라 잠시 걷자 강구파출소를 오른쪽 옆구리에 낀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강구다리’를 건너 ‘강구항’으로 연결된다. 해파랑길과 ‘동해안 자전거길’은 이 다리를 건너 20코스로 이어진다. 그래선지 이곳 사거리에 ‘해파랑길안내도’와 ‘스템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다. 아무튼 오늘은 총 4시간 20분이 걸렸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에 나타난 거리가 17.56㎞이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냈던 점을 감안하면 속도는 조금 더 빨라지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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