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16코스

 

여행일 : ‘19. 3. 2()

소재지 : 울산시 포항시 남구와 북구 일원

산행코스 : 흥환보건소(2.35km)하선대(5.04)도구해변(4.03)공항삼거리(5.35, 차량 이동)형산강변(3.22)송도해변(거리 및 소요시간 : 14.64, 3시간 40)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구간이다. 전설(傳說)과 기암절벽이 널려있는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르는가 하면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심을 걸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1·2구간을 기본에 깔고 포항제철의 담벼락을 따르는 도심구간과 형산강 둑길을 더한 코스로 보면 되는데, 포항제철의 담벼락을 따르는 도심구간이 조금 지루하지만 조물주가 빚어놓은 조각품들이 널려있는 하선대 해안연오랑세오녀의 전설이 서린 도구 해변‘, 세계적인 철강기업의 위엄을 느껴볼 수 있는 형산강변등의 뛰어난 경관은 그런 단점을 상쇄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눈요깃거리가 넘치는 코스라는 얘기이다. 또한 도심구간을 걷는 게 딱히 싫다면 도심구간인 공항삼거리에서 형산강변까지 대중교통(버스)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으니 참조한다. 우리 부부 역시 산악회 버스를 이용해 도심구간(5.35)을 통과했다.

 

트레킹 들머리는 흥환 보건진료소‘(포항시 남구 동해면 흥환리)

새만금-포항고속도로 포항 IC에서 내려와 37번 국도를 타고 동해면(포항시 남구)소재지까지 온다. 이어서 929번 지방도를 따라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흥환리에 이르게 된다. 자그만 간이해수욕장이 개설되어 있는 바닷가 마을이다. 이곳은 주막(酒幕)’이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옛날 행인이 묵어가던 주막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지형이 연꽃이 피어 있는 형상과 닮았다하여 연화(蓮花)’라고도 불린다니 참조한다. 한때 초등학교(1928년 개교 당시에는 동해공립보통학교)까지 소재했을 정도로 번창했으나 요즘은 한적한 어촌마을로 변해있다. 초등학교(동해초등학교 흥환분교장) 역시 취학 아동이 줄어들면서 2013년에 폐교되었다.




국도를 따라 북쪽 방향으로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오늘도 역시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따른다. 대신 이번에는 1코스인 연오랑세오녀길(청림동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6.1)‘, 2코스인 선바우길(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흥환해수욕장, 6.5)‘을 역()으로 걷게 되는데, 이 구간은 맑고 투명한 바다를 옆에 두고 기암절벽과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고 해서 힐링 로드로 꼽힌다. 이들에다 지난번 15코스 때 걸었던 구룡소길(3코스 : 동해면 발산1구만리 어항, 6.5)‘호미길(4코스 : 호미곶면 구만리호미곶 상생의 손, 5.3)‘을 더하면 총 길이 25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이 완성된다.



잠시 후 너른 모래사장을 만난다. 그러나 여느 해수욕장들과는 달리 편의시설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흥환이라는 지명 뒤에 간이 해수욕장이라는 부언(附言)이 따라다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여름철이면 이곳도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물 풍선 터지는 소리처럼 시원하고, 고기 굽는 냄새는 송림 사이로 퍼져나간단다.



모래사장에 잔자갈이 섞이는가 싶더니 해변이 끝날 즈음에는 몽돌해변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는 이내 데크로드(deck road)‘가 시작된다. 오른편으로는 망망대해가, 그리고 왼편에 기암절벽을 끼고 걷게 되는 멋진 구간이다. 발아래에 깔려있는 바다에서는 상큼한 해초 냄새를 끊임없이 보내온다.



데크로드 아래 평평한 돌바닥으로 맑은 바닷물이 파도의 리듬에 맞춰 들락날락한다.



모퉁이를 돌아가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이곳은 한마디로 거대한 조각공원이다. 자연이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는 사실을 또 한 번 느끼게 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구간을 조물주가 빚어놓은 조각품들의 전시장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작품은 군상바위이다. 금강산이나 가야산 등의 만물상(萬物相)에는 훨씬 못 미치나 군상(群像)‘이라는 바위의 이름을 떠올리게 만드는 온갖 형상들을 함축하고 있으니 한번쯤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두 번째는 미인바위이다. 하얗게 생긴 바위벼랑의 일부분이 바다를 향해 쏘옥 튀어나왔다. 그게 영락없는 코의 모양새인 것이다. 위치가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눈 모양의 구멍까지 뚫려있다. ’미인(美人)‘이라는 이름에는 못 미칠지 몰라도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한 모양새라 하겠다.



다음에는 두 개의 비문바위가 연거푸 나온다. 검정색 바위에 글자를 새겨 넣은 것 같이 가로세로 문양이 선명하다. 그중 하나는 위에다 수많은 돌들을 올려놓고 있다. 생김새가 영험해 보여서인지는 몰라도 오가는 사람들이 작은 소망 하나씩을 쌓아놓고 갔음 이리라. 그밖에도 이스트 섬의 모아이를 닮은 것 같은 신랑각시바위물개바위등 기이한 바위들도 있었으나 사진 게재는 생략했다.



데크로드가 끝나면 마산마을(馬山里)이 나온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40분 만이다. 마을 뒤쪽에 있는 산의 형상이 말()이 머리를 육지로 향하고 꼬리를 바다 쪽에 둔 채로 뛰어가는 형상이라고 해서 말미 또는 마산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산에다 말을 놓아 먹였으므로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마을 뒷산에는 말을 먹이던 목장터도 있단다.



마을에는 작은 항구가 만들어져 있다. 낚싯배 몇 척이 매어져 있는 한적한 항구이다. 방파제의 끄트머리에 만들어놓은 등대도 역시 자그마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도 2013년에야 설치되었단다.



항구를 지났다싶으면 탐방로는 또 다시 바닷가를 따른다.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도록 바위절벽과 바다 사이에다 데크로드를 조성해 놓았다. 그 초입에 먹바우(검둥바위)’가 있다. ‘연오랑세오녀를 일본으로 싣고 갔다는 전설의 바위다. 바위 앞에 세워둔 안내판에는 두 사람이 일본으로 떠난 후 신라에는 해와 달이 없어졌지만 연오랑이 준 비단 덕분에 해와 달이 다시 생겼다는 설화(說話)가 적혀있다.



데크로 올라서자마자 하선대(下仙臺)의 안내판이 길손을 맞는다. 하선대는 입암리와 마산리 사이의 황옥포(黃玉浦)에 있는 작은 바위섬으로, 선녀를 사랑한 용왕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해용왕이 칠석날이면 용궁에서 나와 옥황상제의 윤허(允許)를 얻어 선녀를 초청하고 가무를 즐기던 곳이라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하잇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풍어제와 기우제를 이곳에서 지낸다고 한다. 참고로 동해안에는 용()과 관련된 이야기가 곳곳에 서려 있다. 동해의 힘차고 거센 환경이 용의 기상과 많이 닮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데크로드가 끝나는가 싶더니 잠시 쉬어가기 딱 좋은 작은 몽돌해변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너머로 하얀 바위절벽이 펼쳐진다. 오랜 세월 바닷물에 움푹움푹 파인 것이 흡사 해저동굴을 연상시키는 모양새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 바위절벽을 힌디기라 부른단다. 바위가 하얀 것은 화산활동이 많았던 지역이라 화산성분의 백토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란다.




흰 바위절벽 언저리로 시선을 돌리면 여러 곳에 크고 작은 구멍이 나타난다. 구멍마다 납작한 돌멩이가 소복이 쌓인 것으로 봐서 소원을 빌었던 흔적임을 알 수 있다. 데크에 걸려있는 명찰에도 소원바위라고 적혀있다. 돌멩이로 동전을 대신 할 수 있는 재미난 장소라 하겠다.




흰디기의 모퉁이를 돌아서자 이번에는 킹콩바위(고릴라)’가 길손을 맞는다. 이름이 붙게 된 모양새를 찾느라 한참을 서성이게 만든 바위이다.



그 곁에는 바다속 주상절리라고 적힌 안내판이 걸려있다.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란 지표로 분출한 용암이 식을 때 수축작용에 의해 수직의 돌기둥 모양으로 갈라진 절리(節理)를 말한다. 쉽게 말해 단면의 형태가 육각형 내지 다각형인 기둥 모양의 절리라 하겠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모양새를 찾아보는 게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꼼꼼히 살펴봤지만 돌기둥 모양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이 만들어낸 이름만의 주장절리인지도 모르겠다.



아래 사진은 여왕바위란다. 그러고 보니 왕관을 쓰고 있는 여왕의 옆모습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이 근처의 바위들은 하나같이 좀 묘하게 생겼다. 크고 작은 돌멩이와 모래가 뒤섞인 것이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육지의 바위들과는 많이 다른 것이다. ‘화산 열압력에 의해 백토(벤토나이트 성분)가 들어난 바위가 수 만년에 걸쳐 바닷물에 씻기고 바람에 깎여 나가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했기 때문이란다.



폭포바위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바위의 위 나무 한 그루 없는 언덕배기에는 누렇게 말라죽은 풀들이 덮여있다. 안내판은 저곳이 해국군락지라고 전해준다. 그렇다면 이곳의 탐방은 7월에서 11월이 적기라 하겠다. 활짝 핀 해국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데크로드가 끝나갈 즈음 뾰쪽하게 솟아오른 커다란 바위 하나를 만난다. ‘입암(入岩)’이란 마을 이름을 낳게 한 선바위이다. 6m 가량의 거대한 모래덩이가 바다를 향해 벌떡 일어선 모양새가 자못 신비롭기까지 하다. 선바우 옆에는 그 생김새가 남성의 성기를 닮았다는 남근바위(男根石)’도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보아오던 남근바위들 가운데 가장 못 생겨서 사진 게재는 하지 않았다.



조각공원을 꿰뚫는 데크로드가 끝나는 곳에 터를 잡은 자연부락은 입암2선바우(立岩)’이다. 행정단위인 입암리(立岩里)’는 이곳 선바우와 1리인 힌디기등 두 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로 선바우라는 마을 이름은 조금 전에 보았던 바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마을도 자그만 어선 두어 척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항구가 만들어져 있다. 마산리에서 이곳 선바우까지는 22분이 걸렸다.



그저 그렇고 그러던 마을 담벼락은 트릭아트(Trick Art)‘ 기법을 활용해 멋진 포토죤으로 탈바꿈되어 있다. ’트릭아트란 빛의 반사와 굴절, 음영과 원근 따위를 이용하여 그림을 입체적이고 실감 나게 표현하는 미술 기법. 또는 그런 작품을 말한다. 이곳에는 거북이를 그려 넣어 물속을 입체화 했다. 그밖에도 기억에서조차 아득해져버린 공중전화 박스를 설치해 옛 정취에 흠뻑 빠져들수록 했다.



13분쯤 더 걷자 이번에는 입암1힌디기마을에 이른다. 옛날 노씨가 처음 정착하면서 조금 더 흥하게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흥덕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힌덕‘, ’힌디기로 불리어졌다고 한다. ’힌디기마을 역시 한적한 어촌마을이다. 항구는 언제 출항할지 모를 고깃배 몇 척이 정박해 있을 따름이다.



마을을 벗어난 탐방로는 잠시나마 929번 지방도로 올라선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울창한 대나무 숲속으로 파고든다.



대나무 숲을 벗어나자 비탈진 언덕에 기대어 바다를 내려다보는 모양새의 시설지구가 나타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연오랑세오녀(延烏郞 細烏女)‘ 설화(說話)를 바탕으로 한 테마파크이다. ‘연오랑세오녀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해와 달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두 남녀가 일본으로 건너가자 신라의 해와 달도 함께 건너가 버렸는데, 세오녀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니 신라의 해와 달이 다시 정기를 찾았다는 이야기다. 그런 일월신화를 중심으로 동해 바다와 함께 신라권 문화탐방을 할 수 있도록 테마파크를 조성해놓은 것이다. ‘힌디기마을에서 이곳까지는 17, 트레킹을 시작한지는 1시간 30분이 지났다.



바닷가에는 이층짜리 한옥 정자가 지어져 있다. ‘일월대(日月臺)’라는데 고깃배가 떠다니는 먼 바다를 조망하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밤에 찾아올 경우 은은한 조명과 함께 포스코의 야경과 동해의 밤바다를 눈에 담을 수 있다니 꼭 기억해 두자



테마파크의 중심축은 세오녀의 비단을 보관했다는 귀비고(貴妃庫)’이다. 연면적 1890(지하1, 지상2)의 공간에 포항의 대표 역사자원인 연오랑세오녀의 가치와 의미를 비롯해 포항의 발전사와 연계한 전시실, 영상관, 라운지, 야외테라스 등을 갖춘 복합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귀비고의 뒤편에는 신라마을을 복원해 놓았다. 도기야댁과 세오댁, 연오댁 등의 신라 주택이 지어져 있고 연오댁 뒷문을 열면 신라 철기 문화의 우수성을 상징하는 작품들이 전시된 철의 뜰이 보인다. 그밖에도 귀비고의 주변에는 한국뜰과 일본뜰, 연오랑뜰과 신라뜰이 조성되어 있다.



귀비고 앞의 둔덕에는 쌍거북바위가 올라앉아 동해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타고 간 바위이자 세오녀가 짠 비단을 싣고 돌아온 바위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란다. 복과 수명을 준다는 얘기도 전해지니 그냥 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말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바람 하나쯤 빌어보자. 더불어 연오랑 세오녀의 일월신화(日月神話)에서 우리는 일본의 철기문화와 직조기술이 신라에서 전파되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론해 낼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자.



탐방로는 이제부터 호미곶 해안둘레길1코스인 연오랑세오녀길(6.1)’을 따른다. 이곳 테마파크에서 시작해 청룡회관과 도구해수욕장, 해병대 상륙훈련장을 거쳐 청림운동장으로 연결된다. 아무튼 테마파크를 빠져나오면 임곡리(林谷里)가 나온다.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 임곡포란 지명으로 나오는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해군기지인 영일진이 있었다고 한다. 제법 규모가 큰 항구가 들어서 있는 이곳은 임곡2리인 조사리(造沙里)’이다. 해풍으로 인해 군데군데 모래가 쌓여 모래산을 이루는 곳이라는 뜻에서 연유한 이름이란다. 이름 그대로 해안에 모래사장이 발달되어 있다고 했는데 눈에 띄지는 않았다.



아니 그런 모래사장은 임곡1인 숲실(林谷)에 이르러서야 만날 수 있었다. 주변에 숲이 넓게 우거져 있어 음지(陰地)로 고기가 많이 모여든다는 마을이다. 그건 그렇고 이 마을에서 우리는 연오랑세오녀설화를 다시 만나게 된다. 마을과 바다가 경계를 이루는 방파제에다 설화를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 해놓았기 때문이다. 157(아달라이사금 4)의 어느 날 연오랑(延烏郞)은 해조류를 채취하러 바다로 나갔다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의 왕이 되었다. 그의 부인인 세오녀(細烏女)가 그를 찾아 나섰다가 남편이 벗어놓은 바위 위의 신발을 발견하고서, 그 바위에 올라타고 마찬가지로 일본으로 건너가 마침내 부부가 서로 재회하고 세오녀는 귀비가 되었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었다. 사람들이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사신을 보내 귀국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연오랑은 자신이 돌아오는 대신에 세오녀가 짠 세초(생사로 짠 고운 비단)를 주면서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 지내면 된다고 했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대로 하자 해와 달이 과연 빛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간직하고 국보로 삼았는데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였다.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했다. 다른 한편으로 연오랑과 세오녀가 제철기술의 지도자라는 주장도 있다. 그들은 검을 오()’자가 들어간 둘의 이름에서 근거를 찾는다. 제철을 하면서 숯을 사용했으니 얼굴 검었을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제철 기술자가 신라를 떠났으니 해와 달이 빛을 잃을 정도로 충격적이어서 그런 설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세오녀의 ()’옷을 짜다의 뜻으로 이들이 제철 기술과 함께 일본에 전해준 문명이 직조 기술이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남긴다.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를 나선지 30분 만에 도구해수욕장에 이른다. 연오랑세오녀의 전설이 서린 해수욕장이다. 백사장 길이 800m에 폭이 50m. 넓이 12,000평의 규모로써 하루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단다. 포스코 인근에 위치한 지리적 장점으로 학교와 일반기업체의 하계수련장으로 각광받고 있단다.



해수욕장의 주차장에 이르자 경주마(競走馬) 몇 필이 쉬고 있다. 그 옆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 승마 동호회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행복감으로 넘쳐흐른다. 하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탐방로는 주차장의 끝에서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바닷가를 따라 난 뚝방길을 따른다. 왼편에는 경작용 비닐하우스들이 빽빽이 들어서있고, 오른편으로는 하얀 모래사장이 끝 간 데 없이 이어진다. 포스코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도구해수욕장에서 시작된 이 백사장은 포항의 자랑거리였다. 햇볕을 받으면 금빛으로 보인다고 해서 금모래라 부르기도 했단다. 또 그 길이가 십리나 되어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백사장으로 알려지면서 명사십리로 불리던 곳이었다. 특히 여름에 물놀이 하다가 지치면 송림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해수욕장이었단다.




모래사장은 해병대의 상륙훈련장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그래서 운이라도 좋을 경우에는 말로만 듣던 귀신 잡는 해병을 만날 수도 있단다. 그런 행운이 우리 부부에겐 없었던가 보다. 그저 뚝방의 왼편에 들어서있는 훈련장에서 질러대는 고함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참고로 이곳 포항은 해병대 1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해병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길고 긴 백사장이 끝나면 청림운동장이 나온다. 지명인 청림은 소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만났던 소나무들이 마을의 이름을 만들어냈다고 보면 되겠다. 그 소나무들의 대부분은 땅에 모래가 많이 섞여 있고 소금기 많은 바닷바람에도 생존력이 좋은 해송(海松)이었다. 방풍효과 또한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구해수욕장에서 이곳까지는 35, 트레킹을 시작한지는 2시간 35분이 지났다. ‘호미곶 해안둘레길’ 1.2코스 12.6를 걷는데 걸린 시간이라고 보면 되겠다.



청림운동장을 끝으로 탐방로는 바닷가와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도심(都心) 속으로 파고든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해군 항공역사관에 이른다. 지난 1978년에 해군항공이 포항으로 온 이래 오늘날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시설이니 한번쯤 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만한 짬도 내지 못하겠다면 야외에 전시해놓은 비행기들이라도 살펴볼 일이다.




이후부터는 포스코의 담벼락으로 오른편에 끼고 걷는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코스라 하겠다. 그래선지 이 구간을 생략해버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시내버스(101, 12분 간격 운행)를 타고 항공역사관앞에서 형산교까지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도 역시 산악회에서 제공한 버스로 이동을 했다. ‘포스코역사관에 잠시 들러 철은 우리에게 사업이 아니라 사명이었다.’는 박태준회장의 말을 되새겨 볼 수도 있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집결지에 도착해 횟집에라도 들어가 볼 욕심에서였다.



형산강을 가로지르는 옛 다리(舊橋)’를 건너면 탐방로는 강변에 쌓아올린 뚝방길을 따른다. 강물과 맞닿는 길도 열어놓았으니 각자의 취향에 따르면 될 일이다.




강 너머에는 포스코(POSCO)의 건물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1968년 설립된 포항종합제철()을 모태로 하는 포스코그룹의 중심 기업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철강기업이다. 1970년대 영일만에 포항제철소를, 1980~90년대에 광양제철소를 준공했으며, 1998년 조강생산 기준 전 세계 1위의 철강회사로 성장했다. 2000년 민영화 이후, 해외 거점에 생산 설비를 증설하고 독자 기술을 개발해오고 있다.



강이 끝나갈 즈음, 그러니까 뚝방길에 올라선지 35분 만에 2014년에 건설되었다는 포항운하(浦項運河)가 나타난다. 동빈대교와 형산강을 남북으로 잇는 물길이다. 길이가 1.3km에 불과하나 바닷길과 연결하면 8~10km나 된단다. 아무튼 옛 물길이 새로 열리면서 이곳은 시민들의 공원은 물론이고 새로운 관광명소로 탈바꿈 되었다. 그래선지 운하 물 관리센터의 옆에는 크루즈의 탑승장이 들어서 있었다. 운하의 물길을 따라 크루즈를 타고 가면서 낭만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베네치아에서 만났던 곤돌라(gondola) 같은 예쁘장한 선박이라도 떠다닌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런 풍경만으로도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겠기에 하는 말이다.




강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 이르면 포항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은 워터폴리가 길손을 맞는다. 유리구 높이 14m인 전구 모양으로 동해 일출을 모티브로 해오름을 형상화했다는데 내·외부 모두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 어디에서나 주변의 풍경을 환히 내다 볼 수 있다. 특히 야간에는 음악에 맞춰 포스코 조명이 바뀌는 다이나믹한 야경쇼를 즐길 수 있단다.



트레킹 날머리는 평화의 여신상광장

가로수 삼아 심어놓은 해송이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를 조금 더 걷자 100여 평 정도 넓이의 광장이 나타난다. ‘평화의 여신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광장이다. 지난 1968년 해수욕장 입구에 최초 건립된 여신상은 태풍 등의 영향으로 파손과 부분 보수를 반복하다가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현 위치에 옮겨졌다. 하지만 이후 거듭된 덧칠로 인해 조형물의 모습이 원형에 비해 기형적으로 비대해지는 등 옛 모습을 오히려 해친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었다. 새로 세워진 여신상의 높이는 5.4m(좌대 2m, 여신상 3.4m)라고 한다. 이밖에도 광장에는 추억의 우체통과 포스코를 배경으로 넣을 수 있는 포토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건 그렇고 오늘 트레킹은 4시간 정도가 걸렸다. 버스를 이용하느라 지체된 시간을 감안할 경우 3시간 40분 정도가 걸린 셈이다.



광장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포스코는 물론이고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영일대가 있는 북부해수욕장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근처에 있는 방파제는 몇몇의 강태공들이 시간을 낚으면서 한가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