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산(峨媚山, 515m)-배미산(船尾山, 414m)-가산(421m)

 

산행일 : ‘18. 12. 25()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과 풍산면, 금과면의 경계

산행코스 : 송정마을88고속도로굴다리아미산배미산못토재가산탄금마을(산행시간 : 8.94, 3시간 50)

 

함께한 산악회 : 온라인 산악회

 

특징 : 조선의 대학자이며 풍수지리에 능통한 서거정은 순창을 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湖南之勝地)’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다른 시인묵객들도 산은 높으나 그윽하다(山高勢幽)’고 예찬했단다. 이곳 순창의 산수(山水)가 그만큼 아름답다는 증거일 것이다. 맞다. 이곳 순창 땅에는 강천산과 회문산, 무량산, 용궐산, 책여산 등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산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과 추월산도 한쪽 다리를 순창 땅에 걸쳐놓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 아름다운 산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미산이 아닐까 싶다. 아미산은 호남정맥이 강천산과 광덕산을 지나 덕진봉 직전의 332봉에서 동쪽으로 가지 친 지맥(支脈)에 솟아오른 산이다. 이 산은 골산(骨山)에다 육산(肉山)을 합쳐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방축리(금과면)에서 시작되는 산행에서의 첫 느낌은 정형적인 육산이다. 하지만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그 느낌은 확 바뀌어 버린다. 어느 유명산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훤칠한 골산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눈요깃거리가 넘쳐난다. 일망무제로 터지는 조망은 기본이고, 빼어난 자태의 기암괴석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거기다 가산으로 넘어가는 암릉에 놓인 아슬아슬한 철계단은 아미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 싶다. 그러나 이어서 오르게 되는 가산은 내려올 때에 하산지점을 잘 선택해야 할 것 같다. 자칫 좋았던 산행컨디션을 망쳐버릴 수도 있겠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번쯤은 꼭 올라봐야 할 산으로 치고 싶다. 귀경길에 신말주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연상하며 지었다는 귀래정(歸來亭)’이나 고추장민속마을까지 들러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말이다.


 

산행들머리는 송정마을 버스정류장 옆 88고속도로 굴다리(순창군 금과면 방축리 산 3-9)

88고속도로 순창 I.C를 빠져나와 ’IC교차로(순창읍 교성리)에서 좌회전 ‘729번 지방도를 이용해 ‘24번 국도로 올라선다. 광주방면으로 달리다가 송정마을 버스승강장에서 좌회전하면 ‘88고속도로가 나온다. 고속도로 아래로 난 굴다리가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고속도로의 오른편으로 난 임도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고속도로변에 세워놓은 순창이 참 좋다는 광고판과 1전방에 강천산휴게소가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이곳이 순창 땅임을 실감나게 해준다.



오른편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아미산 자락을 기웃거리며 10분 정도를 걷자 김해 김씨 문중의 세장산(世葬山)임을 알리는 빗돌(碑石)이 길손을 맞는다. 임도는 이곳에서 산속으로 파고든다. 잠시 후 탐방로는 이번에는 임도를 벗어나 왼편의 오솔길로 접어든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갈리는 지점에 이정표(아미산 정상 1.42/ 송정마을 0.40)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길은 고운 편이다. 보드라운 흙길이 계속되는데다 경사까지도 완만한 편이다. 거기다 가파른 곳에는 통나무계단을 깔았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밧줄을 매달아 놓은 곳도 보인다. 갈림길이라도 나타났다싶으면 어김없이 이정표를 세워놓았음은 물론이다.



5분쯤 더 걷자 능선에 올라서게 되면서 산길은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반대방향인 왼편으로는 길이 나있지 않다. 호남정맥인 덕진봉 근처 332m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인데도 길이 나있지 않은 것을 보면 88고속도로를 내면서 능선을 끊어놓은 모양이다. 산길은 아직도 완만한 편이다. 서두를 것 없이 서서히 오르는데 마침맞게 조망까지 터진다. 같은 순창 땅에서 솟아오른 강천산과 회문산은 물론이고 그 너머에 있는 내장산과 추월산까지도 한눈에 쏙 들어온다.



능선에 올라선지 20분쯤 지나자 나지막한 안부에 내려선다. 위급상황을 대비한 국가지점번호 표지판(다마 6377-0677) 말고도 벤치 두어 개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 오늘 길에 순창고추장마을로 빠져나가는 삼거리를 지나게 된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이정표(아미산정상1.24/ 순창고추장마을1.05/ 송정마을입구0.87)가 세워져 있는데다 개의치 않아도 되었기에 그냥 방심했었나 보다. 참고로 다른 이의 글을 보면 이곳을 내동삼거리라고 적고 있었다. 국가지점번호판이 매달린 이정표에 정상과 송정마을 외에도 내동마을의 방향표시가 되어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갔을 때는 내동마을의 방향표시는 사라지고 없었다.



쉼터를 지나면서 산길은 상당히 가팔라진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버거울 정도까지는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고 차오르는 호흡까지도 무시할 수는 없었나 보다. 헐떡거리며 잠시 오르자 거대한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전형적인 육산이었는데 갑자기 암벽이 나타나니 생경스럽기까지 하다. 그것도 저렇게 무시무시할 정도로 거대하니 말이다.



산길은 암벽을 피해 왼편으로 우회를 시킨다. 암벽을 끼고 길이 나있지만 조금 가파를 따름이지 험하지는 않다. 흙길이라서 위험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올라선 암벽의 위는 환상적인 조망을 선사한다. 금과면의 마을들이 내려다보이는가 하면 88고속도로와 24번 국도에는 차량들이 신나게 달린다. 높고 낮은 수많은 산들도 자신도 보아달라며 곳곳에서 고개를 내민다.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서암산과 추월산, 광덕산, 덕진봉, 무등산, 병풍산, 불태산 등이란다.



조망을 즐기다가 길을 나서면 내동삼거리(이정표 : 정상0.14/ 내동리0.7/ 고례리1.28)를 만난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정상에 올라서게 되는데 이 구간은 커다란 바위들을 심심찮게 만난다는 게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바위를 피해가면서 산길을 내놓았지만 암릉으로 느낄만한 곳도 나타난다. 그렇게 오르기를 잠시, 진행방향에 하늘이 보이는가 싶더니 산길은 오른편으로 직각에 가깝게 방향을 튼다. 이정표(정상0.02, 배미산 1.02/ 내동리0.92, 고례리1.4)까지 세워놓았으니 방향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55분 만에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삼각점 외에도 산불감시초소와 무인감시카메라가 세워져 있다. 아미산의 본래 이름은 배산이었다고 전해진다. 순창에서 바라볼 때 배의 형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배맨산으로 불리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인데 천지개벽이 일어났을 때 배를 매어두었던 곳이라면서 그렇게 불렀단다. 아미산에서 금과 방향으로 뻗어나간 다섯 개의 봉우리가 다섯 재상을 태어나게 만드는 풍수를 지녔는데 일본인들이 이를 우려해 오상재에다 쇠말뚝을 몰래 박은 다음 배를 매었던 곳이라고 우기면서 그리 불렀다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아미산(蛾眉山)이라 부르고 있다. 금과 방향에서 바라볼 때 미인의 눈썹 또는 초승달을 쏙 빼다 닮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중국 산동성의 백산현에 있는 아미산(蛾眉山)과 같은 이름을 붙였다는데, 내 생각으로는 조금 지나치다 싶다. 중국의 아미산은 오대산, 구화산, 보타산과 함께 중국불교의 ‘4대 명산을 이룬다. 중국의 아미산에 비견하려면 최소한 유명사찰 하나쯤은 품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참고로 한국지명총람에는 산이 높고 험하다는 의미로 정상을 아미산(峨嵋山), 서남쪽 금과로 뻗어 나온 산줄기에 있는 다섯 봉우리 중 414봉은 중아미산, 끝 봉은 소아미산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탓에 정상에서의 조망은 단연 압권이다. 금과면과 순창읍의 들녘들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일행 가운데 한 분은 순창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순창에 있는 산들을 거의 다 올라봤는데 순창시가지를 눈에 담을 수 있는 산은 이곳이 유일하다면서 말이다. 아무튼 강천산과 금성산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고 그 뒤에서는 추월산이 고개를 내민다. 북쪽의 회문산과 장군봉도 보이는가 하면, 동쪽으로는 남원의 고리봉과 문덕봉이 한눈에 잡힌다. 서쪽 방향도 빠지지 않는다. 광주의 명산인 무등산이 나도 있다며 손짓을 보내고 있다.





조망을 즐기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올라왔던 반대방향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따르다보면 여러 곳에서 아미산의 정상이 눈에 담을 수 있다. 서슬 시퍼런 바위절벽에 올라탄 정상은 산불감시초소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솔가리가 수북하게 쌓인 폭신폭신한 산길을 잠시 걷자 고인돌바위가 나타난다. 두 개의 밑돌이 위태위태하게 덩치 큰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인데 그 생김새가 고인돌을 쏙 빼다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청동기 유적으로 오해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이다. 그건 그렇고 이곳 아미산을 배맨산이라고 부르는 일부 사람들은 아득한 옛날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시루봉 정상에 있는 절구통바위에다 배를 매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고인돌바위가 그들이 주장하는 절구통바위일 수도 있겠다.



잠시 후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철계단을 만난다. 엄청나게 거대한 암벽구간에 철계단을 설치했는데 하도 높다보니 다섯 개로 나누어서 놓았다. 하지만 경사까지 줄일 수는 없었나보다. 앞서가는 집사람이 바르게 서서 내려가지를 못하고 난간을 붙잡고 옆으로 서서 한발 한발 내려서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이 구간은 조망까지도 빼어나다. 잠시 후에 오르게 될 배미산은 물론이고 남원의 문덕봉과 고리봉, 그리고 광주의 무등산이 그 거대한 자태를 드러낸다. 누군가의 환호성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동남쪽 방향에 있던 지리산이 희미하게나마 그 웅장한 몸집을 보여준다.





안부까지 내려섰다가 반대편 능선으로 향한다. 이곳도 역시 바윗길의 연속이다. 길은 바위를 넘는가 하면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좌우를 오가며 우회를 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은 고운편이다. 폭신폭신한 것이 마치 양탄자 위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소나무 숲에서 떨어진 솔가리들이 오랜 세월동안 쌓여온 탓일 것이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널찍한 공터에 벤치 두 개가 놓인 쉼터가 나온다. 아미산 정상에서 10분 남짓 되는 지점인데, 방금 전에 내려온 암릉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 쉼터용으로는 이만한 곳이 없겠다.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서슬 시퍼런 바위절벽 위에 걸터앉은 데크전망대를 만난다. 배미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은 물론이고 이어서 오르게 될 가산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명품 전망대이다. 무등산 등 남서쪽에 있는 산들도 빠짐없이 시야에 잡힌다.




전망대를 지나자마자 거대한 바위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바위의 아래에는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앞서 다녀간 이들은 이 바위를 일러 신선바위라 했다. 하지만 그 내력은 전하는 이들은 없었다. 요즘 유행인 스토리텔링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길을 오가던 후세 사람들이 바위의 생김새를 보고 지은 이름이었을 수도 있겠다. 신선(神仙) 정도나 되어야 바위의 위로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높고 험하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나저나 몇 걸음 걷지 않아 또 다른 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번 것도 크고 험해서 인간이 오를 수는 없겠다. 다만 그 규모가 신선바위에 미치지 못하니 이번 것은 선녀바위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또 다시 길을 나선다. 솔가리가 수북이 쌓여있는 길은 여전히 곱다. 거기다 바닥이 흙길이다 보니 내딛는 발걸음을 조심할 필요까지도 없어졌다. 이러한 길은 배미산 정상까지 계속된다. ! 오는 도중에 상죽마을(죽곡리) 갈림길을 만난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지명을 놓쳐버린 이정표를 보면서 혀까지 찼었는데도 말이다. 삼거리에 세워진 이정표(모토고개1.74/ 죽곡리 상죽마을1.5/ 아미산정상0.57)에 잠시 후에 오르게 될 배미산이 표기되어 있지 않았기에 하는 말이다.



그렇데 30분 정도를 걷자 배미산(414m) 정상이다. 물론 아미산 정상에서부터 걸린 시간이다. 정상은 남양 홍씨의 묘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밋밋한 형태의 구릉(丘陵)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주인인 묘비가 정상석의 입주를 허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쉬웠던지 오늘 선두대장을 맡고 있는 그린나래가 손수 제작한 정상표지판을 매달아 놓았다.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배미산은 원래 이름이 없던 봉우리였는데 누군가가 임의로 이름을 지었던 것이 입소문을 거치면서 굳어진 지명이란다. 이따가 오르게 될 가산에서 보면 이곳이 배의 선미(船尾) 부분에 해당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단다.



배미산에서의 조망도 괜찮은 편이다. 뒤편 나무숲 틈새로는 아미산의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암릉이 나타나고, 반대방향에는 가산과 무등산 등 아까 절벽전망대에서 바라보던 수많은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배미산에서의 하산은 왼편 방향이다. 이번에도 역시 철계단이 길게 놓여있다. 철계단 아래에서 만나는 상죽마을 갈림길’(이정표 : 못도고개1.22/ 죽곡리 상죽마을1.2/ 배미산 정상0.1, 아미산정상 1.13)를 지나고 나서도 산길은 계속해서 가파르다. 거기가 활엽수 낙엽까지 수북하게 쌓여있어 미끄럽기까지 하다. 통나무계단이 놓여있기는 하나 조심성이 요구되는 구간이라 하겠다.



가파른 구간이 끝났다싶으면 오른편에 철망을 끼고 걷는다. 염소목장에서 쳐놓은 것이라는데 염소는 보이지 않는다. 구멍이 뚫려있는 곳도 여럿 보인다. 더 이상 목장이 아니라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철망이 끝나갈 즈음이면 임도(이정표 : 못도고개 0.51/ 아미산 정상 1.84)로 내려선다.



임도를 따라 조금 더 걷자 못도고개이다. 아미산에서 50분 남짓 걸렸다. 못도고개는 민가 두어 채가 들어선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산을 내려오면서 보았던 도로(729번 지방도)는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래도 고개 아래로 터널을 뚫었나 보다. 못도고개는 아미산과 가산의 경계선이다. 고도(高度)가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얘기이다. 산행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배미산으로 향한다. 고갯마루의 대나무 숲을 오른편에 끼고 50m쯤 진행하자 오른편에 들머리가 나타난다.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다. 임도처럼 길이 넓을 뿐만 아니라 앞서 다녀간 산악회에서 매달아놓은 리본 두어 개가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곳 못도고개는 옛날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는 순창으로 통하는 큰 고개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풍산과 순창을 잇는 729번 지방도가 이 고개를 지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 하겠다.



산길은 울창한 대나무 숲 사이로 나있다. 이어서 대나무 숲이 끝나갈 즈음에는 왼편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그리고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첫 번째 난관은 길 찾기라 하겠다. 길이 하도 희미해서 초심자들이라면 큰 애로를 겪을 수밖에 없겠다. 특히 너덜지대에서의 길 찾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핸드폰에 앱을 깔아놓고 그에 따르는 우리 부부까지도 애를 먹었으니 말이다.




너덜지대를 통과하자 이번엔 거대한 슬랩이 앞을 가로막는다. 산길은 슬랩을 오른편에 끼고 우회를 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길이 편해진 것은 아니다. 이곳도 역시 거대한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좌우로 피해가며 오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솔가리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주변 풍광이 눈에 담을만하다는 점이다. 특히 기억에 남을 만큼 멋지게 생긴 바위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는 것은 장점이라 하겠다.




밧줄에 의지해야만 오를 수 있는 구간도 만난다. 굵은 밧줄 두 개를 매달아 놓았다.



바위지대를 통과해서 암릉의 위로 오르면 암반으로 이루어진 널찍한 전망대가 기다린다. 아까 지나왔던 아미산과 배미산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명품 전망대이다. 옥녀봉과 순창시가지도 눈에 들어옴은 물론이다. 힘들게 올라온데 대한 보상치고는 쏠쏠하다 하겠다.




이제부터 산길은 평지나 마찬가지다. 바위구간이 잠깐 끼어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흙길이다. 거기다 솔가리들까지 수북이 쌓여있어 마치 양탄자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건 그렇고 코끝을 스쳐가는 향긋한 솔향에 머리가 맑아진다. 이어서 두 개의 산을 오르느라 쌓였던 피로가 확 사라져 버린다. 피로회복의 기능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피톤치드(phytoncide)의 효능 덕분일 것이다. 그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가운데 하나가 소나무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10분 남짓을 걷자 드디어 가산의 정상이다. 못도고개에서 50, 아미산에서는 1시간 40분이 걸렸다. 가산의 정상도 역시 밋밋한 형태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간 그린나래선두대장이 매달아놓고 간 정상표지판이 정상표지석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도 배미산과 마찬가지이다. 이곳은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멈추지 않고 그냥 통과해버리는 이유이다. 참고로 국립지리원의 발행지도에는 가산이 나와 있지 않다. 아까 지나온 배미산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인근 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등산객들이 지어냈던지 말이다.



이젠 하산만 남았다. 산길은 올라왔던 반대방향으로 이어지는데 내려서는 게 만만찮은 편이다. 버겁다 싶을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길의 흔적이 또렷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그렇게 20분쯤 내려서자 좌우로 길이 하나씩 나뉜다.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오른편은 풍산면의 죽곡리(하죽마을), 그리고 왼편은 순창읍 신남리로 연결될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쯤에서 하산을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다. 가시에 할퀴거나 찔리는 것은 물론이고 심심찮게 따귀까지 얻어맞을 것을 각오하겠다면 계속해서 능선을 타면 될 일이다. 앞으로 진행해야할 능선은 사람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길이 거칠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게 싫은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하산할 것을 권한다. 마침 선등했던 산악회들도 오른편에다 리본을 매달아 놓았다.



온라인산악회는 작은 봉우리 몇 개가 이어지는 능선을 타는 걸 고집했다. 그 덕분에 우리 부부는 옛날 군인들이나 했을 법한 고난의 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흔적조차 사라져버린 길을 걸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핸드폰에 설치해놓은 앱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잡목과 가시넝쿨들이 가야할 방향을 가로막고 있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저 선두대장이 깔거나 매달아놓은 표식을 따라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능선을 좌우로 오가면서 그가 새로 내놓은 길을 따른다. 그렇다고 해서 가시에 찔리거나 할퀴는 것을 면할 수는 없다.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욕지거리에 자신이 놀라버리는 상황이 반복된다. 성질까지 버리기 딱 좋은 코스라 하겠다.



선두대장도 더 이상의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25분쯤 지난 지점에서 오른편 산자락으로 내려서는 것을 보면 말이다. 5분쯤 내려왔을까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를 만난다. 이후부터는 농로를 따르면 된다.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왼편으로 진행했음은 물론이다. 탈출한 능선을 곁에 끼고 걷겠다는 심산이 아닐까 싶다.



산행날머리는 탄금정 오리요릿집(순창읍 신남리 673-4)

그렇게 20분 조금 못되게 걷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27번 국도가 보인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 다음 국도 아래로 난 옛길(舊道)을 따라 조금 더 걷자 탄금마을의 표지석과 이정표가 얼굴을 내밀면서 탄금정 앞 공터에 이른다. 산행이 종료된 것이다. 오늘 산행은 3시간 50분이 걸렸다. 핸드폰의 앱에 8.94를 걸었다고 떠있으니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조망을 즐기느라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지만 후반부의 거친 탐방로가 걷는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음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