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인도 북부
여행일 : ‘17. 9. 20(수) - 24(일)
여행지 : 델리, 자이푸르, 아그라
일 정 :
○ 9.21(목) : 아그라(타지마할, 아그라성, 시칸드라 악바르대왕의 묘)
○ 9.22(금) : 자이푸르(암베르성, 잔타르 만타르, 하와마할, 나하가르 요새)
○ 9.23(토) : 델리(꾸툽탑, 인도문, 바하이사원, 간디의 화장터 라지가트)
여행 둘째 날 : 자이푸르(Jaipur)의 암베르 성(Amber)
특징 : ① 자이푸르(Jaipur) : 인도 라자스탄(Rajasthan) 주의 주도(州都)로서 도로와 철도 등 교통망이 정비된 상공업 중심지이다. 12세기 라지푸트족(Rajput, Rajputana를 다스렸던 전사계급)이 세운 자이푸르 왕국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왕국의 수도는 본래 자이푸르에서 북쪽으로 약 8km 거리의 암베르(현 아메르)였는데 1727년 ‘마하라자 자이싱 2세(Jai Singh II, 1686~1743)’가 자이푸르를 새로운 수도로 건설하여 천도하였다. 지명은 '자이 왕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자이푸르 왕국은 1818년 영국령 인도제국에 포함되어 자이푸르 번왕국이 되었으며, 자이푸르는 인도 독립 이전 1947년까지 자이푸르 번왕국의 수도였다. 담홍색을 띤 건물이 많다고 해서 '핑크 시티'라고도 불리는데. 구시가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는 바둑판 모양의 넓은 거리로 구획되어 있다. 계획도시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주요 유적으로는 도시의 상징이자 왕족 일가의 거주지인 ‘찬다르 마할(Chandra Mahal)’, 1799년에 건축된 5층 규모의 궁전인 ‘하와 마할(Hawa Mahal)’, 현재는 호텔로 쓰이는 ‘타지 람바그 궁전(Taj Rambagh Palace)’, ‘나하르가르(Nahargarh) 요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8세기의 천문 관측소인 ‘자이푸르 잔다르만타르’, 그리고 11Km쯤 떨어진 곳에 암베르성(Amber Fort)이 있다.
② 암베르 성(Amber Port) : 자이푸르에서 약 11km 떨어진 자그마한 도시 아메르(Amer)에 있는 성으로 바위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에 지어졌는데 지형을 활용한 방어적 목적이 강하다. 11세기 초 ‘미나스(Susawat Minas) 왕조’의 수도로 처음 건설되었다. 이웃하고 있던 카츠와하(Kachhwaha) 왕국의 ‘라자 카킬(Raja Kakil)’이 12세기 초 암베르성을 정복하고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그 후 28명의 왕이 600년 동안 이곳에 거주했다. 암베르성을 현재의 모습으로 짓기 시작한 것은 1592년 ‘만 싱 1세(Man Singh I)’에 의해서다. 그리고 ‘자이 싱 1세(Jai Singh I: 1611~1667)’ 때인 1600년대 전반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1727년 ‘사와이 자이 싱 2세(Sawai Jai Singh II)’가 자이푸르에 새 수도를 건설하면서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인도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성으로 꼽히며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도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201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그러나 ‘암베르 성’만 따로 떼어서한 것은 아니고 라자스탄주에 산재한 6곳의 요새들을 ‘라자스탄 구릉요새(Hill forts of Rajasthan)’로 한데 묶었다. 8~18세기에 걸쳐 이 지역에서 번성하였던 라지푸트 번왕국(藩王國)을 증언하는 유적들이다. 참고로 ‘암베르’라는 이름은 ‘아요디아(Ayodhya, 우리에게는 ’아유타阿踰陀‘로 알려져 있다)’의 왕 ‘암바리샤(Ambarisha, 익시바쿠족 제28번째의 왕)’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암바리카네’로 불렀으나 후에 ‘암비네르’ 또는 ‘암베르’로 줄여 불렀다는 것이다. 현재는 '아메르(Amer)'를 공식 이름으로 쓰고 있다.
▼ ‘물의 궁전’에서 8인승 지프(Jeep)를 타면서 ‘암베르성(Amber fort)’ 투어는 시작된다. 성 아래에 있는 주차장까지 버스로 이동한 다음, 성문까지는 코끼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잔뜩 기대했었는데 시작부터가 실망이다. 코끼리는 오전에만 탈 수 있는데, 우린 오후에야 자이푸르에 도착한 탓에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이동 중에 암베르성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처음 본 느낌은 ‘아! 아름답다’이다. 성을 건설하고 성곽을 쌓는 것은 외적을 막기 위함이겠지만 자이푸르 지역의 붉은 사암과 대리석으로 건축된 암베르 성은 짙은 베이지색을 바탕으로 힌두와 이슬람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품위 있는 예술작품과 같다는 느낌이다.
▼ 지프(jeep)에서 내리면 암베르성의 성문은 바로 코앞이다. '암베르(Amber)‘라는 지역은 한 때 왕조의 수도였던 곳이다. 그 암베르 지역의 높은 구릉지에 있는 ’암베르 성(Amber fort)‘은 라자스탄 지역 최고의 부국이던 ’카츠와하(Kachwaha) 왕조‘가 지은 성이다. ’암베르성‘과 ’카츠와하 왕국‘이 인도 역사 속에 부각된 것은 ’라자 바르말(Raja Bharmal)‘ 때이다. 그는 1562년 자신의 딸인 ’조다 바이(Jodha bai)‘를 무굴제국 황제인 ’악바르(Akbar the Great)‘에게 시집보냈다. 1569년 그녀와 악바르 사이에서 왕자인 무함마드 살림(Muhammad Salim)이 태어났고, 1605년 살림이 무굴제국의 제4대 황제 자한기르(Jahangir)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라자스탄 왕국은 무굴제국의 외척으로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참고로 힌두와 이슬람 건축양식이 잘 조화되어 있는 이 성은 델리의 레드포트(Red Fort), 아그라의 아그라포트(Agra Fort)와 함께 인도의 3대 성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 ‘달의 문(Chand Pol, Moon gate)’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찬드(Chand)’는 달의 신 ‘찬드라’를 가리키는데, 옛날에는 서민들이 사용하던 문이라고 한다. 암베르성에는 공식적인 문이 두 개 있다. 나머지 하나는 태양신 ‘수리야’를 이름으로 삼은 ‘수라지 폴(Suraj Pol)’ 즉 ‘태양의 문’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널따란 광장이 나타난다. ‘잘렙 촉(Jaleb chowk)’인데, 옛날 전쟁에서 승리한 후 왕의 앞에서 퍼레이드를 벌이던 장소라고 한다.
▼ 광장은 온통 노란빛의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정면에는 ‘디완-이-암(Diwan-e-Am)’이 그 오른쪽에는 ‘실라데비 사원(Shila Devi)’이 위치하고 있다. ‘달의 문’ 맞은편에 보이는 문은 왕과 왕의 가족(Royal Family)들이 드나들었다는 ‘태양의 문(Suraj Pole, Sun Gate)’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태양신 ’수리야‘를 문의 이름에 붙였다고 전해진다.
▼ 첫 번째 정원에서 계단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간다. 계단의 위에는 아치형의 문이 나있다. 누군가는 궁으로 들어가는 이 출입문을 일러 ’사자의 문(Singh Pol)‘이라고 하던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문을 오르다 오른쪽으로 가면 ’실라데비 사원(Shila Devi)이 나온다고 하나 가이드는 그냥 지나쳐버린다. 우리 역시 그의 뒤꽁무니를 쫓기에 바쁠 뿐이다.
▼ 문의 주위 벽면은 아름다운 문양들이 빼꼭히 들어 차있다.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로 보이는데, 바탕 돌에 꽃 등의 문양을 판 뒤, 그 홈에 각각 다른 색의 돌이나 준보석을 박아 넣는 기법이다. 대부분의 문양들이 식물과 꽃인 것을 보면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모든 움직이는 동물이나 신상들은 우상으로 취급되어 다루는 것 자체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 안으로 들면 두 번째 광장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이곳을 ‘잘렙 촉’이라고 하는데 어떤 게 옳은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궁전의 앞마당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궁전은 외궁과 내궁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궁은 코끼리 문으로 일려진 ‘가네쉬 폴(Ganesh Pol)’의 바깥 쪽, 즉 공식 접견실(Diwan-i-Aam)이 있는 공간이다. 내궁은 가네쉬 폴의 안쪽, 즉 사적 접견실(Diwan-i-Khas)과 ‘쾌락의 정원(Aram Bagh)’이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내궁 안쪽으로 또 다른 성벽을 사이에 두고 정자 형태의 바다나리(Badanari) 광장과 여성들의 공간인 제나나(Zenana)가 있다.
▼ 왕의 공식 접견장인 ‘디와니암(Diwan-e-Am)’은 광장의 왼편에 자리 잡고 있다. 2층의 원기둥과 격자형 복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옛날 왕이 신하들의 간언을 듣던 장소라고 한다. 내·외부 모두 흰 대리석(大理石, marble)과 붉은 사암(砂岩, sandstone)으로 지어졌는데 화려하진 않지만 웅장한 느낌을 받는다.
▼ ‘디와니암(Diwan-e-Am)’의 안은 대리석 기둥이 다섯줄로 늘어서 있다. 그 안에서 왕이 대중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정치에 반영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리고 2층의 갤러리(gallery)에서는 공식 행사를 열기도 했었을 것이다.
▼ ‘디와 니 암’에서의 조망은 시원스럽다. 난간에라도 서면 암베르 시가지는 물론이고, 성 앞의 큰 호수인 ‘마오타 호수(Lake Maota)’ 속에 떠 있는 것같이 만들어진 3단으로 구성된 ‘사분정원(四分庭園, Chahar Bagh)’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케사르 카아리(Kesar Kyari)’ 정원이란다. 3단으로 구성된 정원에는 각 단마다 사분정원이 아름다운 수법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 옆에 보이는 건물은 ‘딜라람(Dilaram) 궁전’이라고 한다.
▼ 산릉(山稜)을 따라 길게 지어진 산성의 성벽이 참 멋지다. 누군가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인도에는 암베르성이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산을 따라 끝도 없이 늘어선 산성이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하다.
▼ 이젠 왕의 사적 공간으로 들어가 볼 차례이다. 광장 맞은편에 화려하고 웅장한 코끼리 문(Ganesh Pol)이 보인다. ‘가네쉬 폴’은 1640년에 건설된 2층짜리 이중(二重) 문(門)이다. 외문(外門)이 2층 높이고, 그 안에 1층을 통과하는 문이 있다. 이 문을 통과하면 왕족의 사적인 공간이 된다. 코끼리 문 위층에는 ‘수하그 만디르(Suhag Mandir)’가 있다. 3개의 방 창문이 보이는데 격자상의 창문(Jali)을 통해 왕족의 여인들이 공식적인 행사가 벌어지는 장면을 구경하던 곳이다. 2층과 3층 벽에 만들어진 벌집 문양의 창 또한 안쪽에서 바깥쪽을 내다볼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그렇지만 바깥에서는 안쪽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 문의 가운데에 라자스탄의 상징 동물인 코끼리 조각이 있다. ‘코끼리 문(Ganesh Pol)’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근원인데, 의외로 귀여운 형상을 하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코끼리를 신성한 존재로 여긴다고 하던데, 예외로 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문임에는 틀림없다. 문 주위 벽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각종 문양들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 코끼리 문을 통과하면 3번째 광장이 나온다. 광장 왼쪽으로는 ‘디완-이-카스(Diwan-i-Khas : Jai Mandir 승리의 방, Sheesh Mahal 거울의 방)’가 있고 그 위층은 자스 만디르(Jas Mandir)가 있다. ‘디완-이-카스(Diwan-i-Khas)의 맞은편에는 ‘수크 니와스(Sukh Niwas : Hall of Pleasure)’가 있다. 두 건물의 사이에는 이슬람 양식의 사분정원(四分庭園)인 ‘쾌락의 정원(Aram Bagh)’이 만들어져 있다. 정원은 기하학적 형태의 석조로 만든 보도가 형성되어 있으며 중앙의 연못 중심부분에는 옥좌(玉座)가 배치되어 있다. 라지푸트의 나라들이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기하학적 평면 형태의 정원들을 여러 곳에 만들었다고 하더니 이곳 또한 그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궁전건축과 정원을 연관시킨 구도가 눈길을 끈다.
▼ ‘환락의 궁전’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수크 니와스(Sukh Niwas)’는 왕의 생활공간으로 정원을 사이에 두고 ‘쉬시 마할(Sheesh Mahal)’과 마주보고 있다. 하지만 내부는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다른 사람의 글로 대신해 본다. <물을 이용해 여름에 내부를 시원하게 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물이 정원으로 흘러들어 식물들에게 생명수 역할을 한다. 이처럼 물을 인위적으로 궁전에 끌어들여 낙원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이슬람 건축의 기본 콘셉트이다.> 또 다른 글도 있다. <뒤쪽 벽의 가운데, 돌로 만든 촘촘한 작은 구멍이 있는 직사각형의 벽이 보인다. 그곳을 통해 물이 흘러내리도록 설계가 되어있다. 물은 대리석 바닥에 내놓은 홈을 통해 홀의 중간에 있는 작은 수조로 흘러든다. 그리고 다시 홈을 통해 정원으로 흘러나가도록 되어 있다. 덥고 건조한 인도에서 물을 이용해서 냉방은 물론이고 습도조절까지 한방에 해결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뛰어난 건축기술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처럼 물을 인위적으로 궁전에 끌어들여 낙원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이슬람 건축의 기본 콘셉트이다.
▼ ‘수크 니와스(Sukh Niwas)’의 회랑(回廊)을 따른다. 대리석의 벽면에는 아름다운 문양들을 빼꼭히 조각했고, 천정의 그림에는 아예 보석까지 심어 놓았다.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꾸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벽면의 유리 가림창 너머에는 아라베스크(arabesque)의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장식장과 왕비가 타고 다녔다는 가마가 전시되어 있다. ‘수크 니와스(Sukh Niwas)’의 내부를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보라는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 ‘쉬크 니 와스’에서 맞은편 ‘쉬시 마할’로 가기 위해서는 쉬크니와스의 회랑)回廊)을 지난 다음 좁은 통로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런데 통로의 왼편에 만들어진 창틀이 눈길을 끈다. 창살에 약간의 경사(傾斜)를 줌으로써 밖에서는 안쪽이 안 보이는 대신에 안쪽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게끔 설계된 것이다. 이곳이 왕가의 여인들이 생활하던 공간이라고 하더니 그녀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 ’디완 이 카스(Diwan-i-Khas)‘에는 왕의 개인 접견실인 ‘승리의 홀(Jal Mandir)’이 만들어져 있고, 그 안에 들어있는 방은 ‘거울의 방’으로 입소문을 탄 ‘쉬시 마할(Sheesh Mahal)’이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홀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격자창, 식물 문양이 새겨진 천정, 대리석 부조, 유리를 붙인 벽 등이 어우러져 마치 천국을 연상케 한다. 이곳에서 왕은 관리를 만나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등 내정과 외교 문제를 처리했다. 이 홀은 ‘쉬시 마할’이라고도 불리는데, 그것은 거울로 치장된 궁전이라는 뜻이다. 또한 이곳은 ’자이 싱‘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해서 ’자이 만디르(Jai Mandir)‘라 불리기도 한다.
▼ '승리의 홀' 안에는 암베르 궁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거울 궁전(세시마할)'이 있다. 왕과 왕비가 침실로 이용하던 곳인데,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막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밖에서 내다봐도 대부분 다 보이기 때문이다. 벽은 물론 천장까지 온통 거울 조각들이 촘촘히 박혀 모자이크처럼 장식되어있다. 한마디로 대단하다.
▼ 쉬시 마할’은 암베르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으로 궁전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궁전의 4면은 모두 보석과 채색유리 거울들로 장식 되어 있다. ’거울 궁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이다. 지금의 보석들은 비록 가짜지만 어둠속에서 촛불을 하나 켜면 여전히 거울을 통해 광선이 반사되어 빛 속의 황홀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 가이드가 돋을 기법으로 새겨진 정물화(靜物畵, still-life painting) 앞에 멈춰 선다. 그리고 숨은 그림 찾기를 시작한다. 세 송이의 꽃과 두 마리의 나비를 그려 넣은 단순한 구도의 그림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여러 가지가 형상들을 숨겨 놓았다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그림의 일부분을 가려가면서 찾아내가는 그의 손길이 가볍기 짝이 없어 보인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겨울궁전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역시 화려하기 짝이 없다.
▼ 쉬시마할에서 나와 코끼리 문이 있는 건물의 이층으로 오른다. 왕의 침실인 ‘자스 만디르(jas Mandir)’ 등이 있는 은밀한 공간이라고 보면 되겠다.
▼ 이층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면 왕의 침실인 ‘자스 만디르(jas Mandir)’가 나온다. 왕이 거주하는 공간답게 화려하기 짝이 없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창이 특히 아름답다. 한쪽의 벌집모양 대리석 창을 통해 '마호타'호수의 경치를 내려다보면 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 이 작고 정교한 홀에는 벌집처럼 생긴 대리석 창문이 나있고 꽃이 조각된 천정과 채색유리로 치장되어 있다. 벽면의 문양들은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기법을 이용했다. 고급 대리석에 꽃 등의 문양을 판 뒤, 그 홈에 각각 다른 색의 돌이나 준보석을 박아 넣는 기법이다. 우리나라 고려청자의 상감(象嵌) 기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때문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색이 바래지 않음은 물론이고, 지워짐이 없이 예전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격자창(格子窓) 가운데는 작은 문(門)이 하나 나있는 게 보인다. 그런데 저 격자창은 나무가 아니라 돌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무척이나 정교하면서도 아름답다. 한 장의 돌을 조각한 것이라는데, 만든 사람들의 솜씨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 대리석으로 만든 창살을 통해 마하라자(왕)의 후궁들은 밖의 동정을 살폈다고 한다. 왕궁의 여자들은 오직 창문을 통해서만 외부를 볼 수 있었단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구조였음은 물론이다. 혹시 저 창살은 왕실 여인들의 세상을 향한 몸부림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조금 전에 보았던 마하라자의 개인정원이 한눈에 잘 내려다보인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정원이다.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사분정원이라고 하는데, 아그라에서 보았던 정원들과는 조금 다른 외형을 갖고 있다. 수로를 이용해 정확히 사등분했던 아그라와는 달리 복잡한 기하학적 문양의 정원을 수놓고 있는 것이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정원의 오른편 건물은 ‘수크 니와스(Sukh Niwas)’이다. 그 아래 사진은 옥상에서 바라본 ‘승리의 홀(Jal Mandir)’이다.
▼ 옥상에서는 산 정상에 있는 ‘자아가르 포트(Jaijarh Fort)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자아가르(Jaijarh)는 ’승리의 성’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성 안에는 궁전과 박물관 곡물창고, 사원, 세상에서 제일 큰 대포 등이 있으며, 그곳에서 바라보는 자이푸르의 전망은 끝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36년에 건설되어 한때는 마하라자의 왕궁으로도 사용되었던 곳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단다. 또한 사진은 첨부시키지 않았지만 마오다(Maotha)와 무굴양식의 정원, 그리고 암베르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 주변 경치에 한참 동안 넋을 놓다가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여성들만의 공간이라는 ‘제나나(Zenana)’로 향한다. 아랍어로는 하렘(Harem, 왕비와 후궁, 궁녀들이 모여 사는 금남의 집)과 같은 개념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 후궁들의 처소인 ‘제나나(Zenana)’는 수십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방들은 미로(迷路)처럼 복잡한 복도로 연결시킨다. 왕이 자기의 처소에서 후궁들의 방으로 은밀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유사시에는 왕의 대피 통로 역할도 감안했다고 한다. 아래로 내려 갈수록 넓어져서 나중에는 말을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까지 된단다.
▼ 안마당에는 목욕탕도 만들어져 있다. 제법 깊은 탓에 모서리에 발을 딛고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 건물은 눈에 잘 띄지 않은 곳에까지 세심하게 장식과 그림을 채워 넣었다. 그런데 이곳의 그림들은 대부분 동물이나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심지어는 남녀가 성행위를 하고 있는 장면도 있다. 이는 이 궁전이 이슬람이 아니라 힌두교 왕족의 궁전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 분홍빛 건물들로 둘러싸인 광장의 가운데에는 정자(亭子) 형태의 바다나리(Badanari)가 지어져 있다. 낮 시간에 왕의 여인들은 이 정자에 모여 서로에 대한 감시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왕은 위에서 그녀들의 이러한 행동을 지켜볼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마음에 내킨 여자를 골라 하룻밤을 보냈을 것이다.
▼ 이곳은 암베르성의 궁전들 가운데 가장 먼저 지어진 공간으로 왕족과 비빈들이 살던 곳이다. ‘카츠와하(Kachhwaha)’ 왕조의 후예인 마하라자(왕)가 지금도 이곳 궁전 한쪽에 살고 있으며, 궁전을 개방하여 벌어들이는 관광수입 등으로 성의 유지·관리를 하고 있단다. 마하라자(왕)가 사는 곳은 건물 꼭대기에 깃발이 꽂혀 있다. 아래 두 번째 사진에 첨탑 전망대(키오스크)가 보인다. 때로는 감시탑 역할도 수행하던 시설이다.
▼ 안마당에 사각의 격자(格子)무늬 틀이 만들어져 있다. 그 안에는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안내판에 보니 ‘툴시(tulsi)’라고 적혀있다. ‘홀리 바질(Holy Basil)’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툴시는 신성한 의미의 접두어인 '크라슈나(Krishna)'가 붙을 정도로 힌두교에서는 숭배하다시피 하는 다년초 식물이다. 강한 ‘아니스(anise)씨앗’ 향을 내며, 즙에서는 후추와 비슷한 멘톨에 가까운 정향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힌두교도들은 바질을 힌두 신인 비쉬누의 지상 현신으로 여기며, 전통적으로 예배 때 비쉬누에게 봉헌한다. 나무뿌리와 흡사한 바질의 뿌리로는 염주알을 만들기도 한다. 어찌됐든 이러한 문화적 중요성 때문에, 인도에서 툴시는 요리보다는 약재나 영성적인 용도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 성을 빠져나오는 길에 ‘Gallery Artchill’이라고 적힌 푯말이 보인다.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로 현대미술 기법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지만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푯말 아래에 커다란 돌 항아리가 전시되어 있다. 쌀을 담았던 항아리란다. 항아리 앞에 보이는 커다란 가마솥은 관광객들을 위해 옮겨놓은 것이란다.
▼ 이 문을 빠져나가면 대광장이 나온다. 이어서 성을 빠져나와 아까 짚에서 내렸던 주차장으로 향한다. 혹시라도 코끼리를 볼 수 있나 해서 찾아보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성으로 들어오면서 타지 못했던 코끼리를 가까이서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는 모양이다. 보고 싶은 코끼리 대신에 귀찮은 장사꾼들에게 죽도록 시달리기만 했다. 조잡하기 짝이 없는 금속세공품들을 팔고 있었는데, 주차장에 이를 때가지 졸졸 따라다니며 여간 귀찮게 하는 게 아니었다. 이번 인도여행에서 가장 기분 나쁜 추억이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쇼핑에 대해서도 거론해보자. 이곳 자이푸르는 전통적인 기법으로 만드는 미술공예품이 유명하다. 특히 대리석이나 상아에 상감기법(象嵌技法)으로 무늬를 넣어 만드는 각종 공예품과 금속세공품(金屬細工品)들은 정교하면서도 화려하기 짝이 없다. 시내에 전문 매장이 몇 곳이 운영되고 있으니 하나쯤 구입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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