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라오스(Laos)

 

여행일 : ‘17. 2. 28() - 3.4()

일 정 :

3.1() : 비엔티엔 사원관광(왓 씨사켓, 왓 팟 깨우), 불상공원(왓 씨엥쿠안). 탕원유원지 선상식. 소금마을 방문, 방비엥(썬셋 모터보트, 유러피안 거리)

3.2() : 방비엥(블루라군, 짚라인, 탐남동굴 튜빙, 쏭강 카약킹)

3.3() : 젓갈마을 방문, 비엔티엔(빠뚜싸이 독립기념탑, 왓 탓 루앙)

 

여행 셋째 날 오전 : 라오스의 개선문, 빠뚜싸이(Patuxai)

 

특징 라오스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프랑스에서 독립한 기념과 제 2차 세계대전과 프랑스 독립전쟁으로 사망한 라오스인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로열 라오 정부(1949~1975, 라오스 왕국시대) 시절인 1957년에 프랑스의 개선문을 벤치마킹하여 만들었다. 197512월 빠텟라오 정권이 들어선 후 라오스 왕국시대의 명칭인 아누싸와리(Anousawary, 기념물)’ 대신 빠뚜싸이(Patuxai)’로 명칭을 바꾸었다. 빠뚜(Patu, )와 싸이(xai, 승리)라는 이름대로 라오스의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어로는 ‘Victory Gate’라고 불린다. 1950년대 인도차이나에 대한 미국의 대외 원조법에 따라 미국 정부가 당시 로열 라오 정부의 공항 건설을 위해 시멘트를 지원하였지만 공항대신 이 빠뚜싸이를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서있는 활주로라고 비아냥 거렸다고 하며, 독립 기념 건축물을 미국의 원조로 지은 것도 그렇지만 지배자였던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 따 만든 것은 아이러니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7층의 높이로 지어진 빠뚜싸이는 한마디로 거대한 건축물이다. 가이드의 말로는 비엔티안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란다.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상징성 때문에 이보다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은 정부에서 허가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그 규제가 풀렸다는 얘기가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빠뚜싸이의 앞에는 널따란 광장(廣場)을 조성해 놓았다. 광장의 주위는 공원으로 가꾸었는데 대체로 꽃밭 위주로 만들었다. 시야를 가릴 만큼 커다란 나무는 일부러 피했다는 느낌이 든다. 빠뚜싸이를 조망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만든 것 같다는 얘기이다.

 

 

 

 

빠뚜싸이의 앞에는 커다란 음악 분수(噴水)가 만들어져 있다. 분수의 앞에는 중국의 국기가 그려진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중국 정부가 만들어 줬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중국에서 메콩강 상류에 여러 개의 댐을 건설하면서 강물이 말라져가자 이에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들이 반발을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 분수를 건설해 주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겨우 이 정도를 갖고 중국에 대한 반감이 가셔버렸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 가이드의 얼굴표정에는 진한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누군가 행복은 만족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라오스가 본디 '행복의 나라'라 불릴 정도로 국민 행복지수가 높다고 하니, 그들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이 또한 이해가 되지 않겠는가.

 

 

 

 

 

 

문의 외형은 4층 구조로 지어졌으며, 내부의 문양은 라오스 전통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1층은 천정과 벽면에 부조(浮彫)로 새겨진 신상(神像)들이 볼만하고, 2층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자리 잡았다. 옥상형태로 된 3층과 전망대로 조성된 4층에서는 비엔티안 시내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빠뚜싸이는 라오스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그래서 비엔티안으로 가는 모든 도로의 거리표지판은 빠뚜싸이를 기준으로 측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 만큼 라오스인들에게 빠뚜싸이는 건축물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빠뚜싸이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그들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기념해 세웠다는 기념물이 기껏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했다면서 비웃는다. 하지만 승리를 내세우며 세운 세계 곳곳의 문들은 그 외형이 대부분 비슷비슷한 편이다. 프랑스의 개선문보다 훨씬 전 로마시대에 세워진 티투스 개선문(Arch of Titus, 현존하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개선문)’이 이를 증명한다 할 것이다. 그러니 닮았다고 해서 너무 나무랄 일도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렇지 않다고 정 우긴다면 외형은 닮았다고 치자. 하지만 빠뚜싸이를 장식하고 있는 문양(紋樣)들을 살펴보면 프랑스의 개선문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빠뚜싸이는 라오스의 전통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 천장과 벽면에 그들의 삶에 녹아 있는 불교와 힌두교의 ()’인 비슈누, 브라마, 인드라 등과 라마야나(Rāmāyana,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조각해 넣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라오스를 상징하는 건물로 인정해주기도 한다.

 

 

 

 

 

빠뚜싸이의 문() 네 곳에는 하반신은 새()이고 상반신은 여자인 조형물이 달려있다. ‘킨나리(Kinnari)’라고 하는데,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마물의 일종으로 남성형은 킨나라(Kimnara)이다. 킨나리는 아름다운 천녀(天女)의 모습으로 가끔씩 지상으로 내려와 목욕을 하며 노는데, 만일 그녀가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날개를 손에 넣으면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뭇꾼설화(說話)가 이곳에도 있다고 보면 되겠다.

 

 

 

모두들 아래 사진의 천장 문양(紋樣)을 배경으로 넣고 인증사진을 찍겠다고 난리다. 하지만 난 포기하기로 한다. 찍어봤자 별로 쓸 일도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문양에 얽힌 사연을 하나라도 더 알아보는 게 내 취향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주변을 다 둘러봤다면 이젠 빠뚜싸이의 위로 올라볼 차례이다. 오르는 방법은 단 하나, 내부에 있는 계단을 통해서만 위로 오를 수 있다. 승강기(elevator)는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지은 지 오래되어선지 계단이 무척 어둡다. 자칫 잘못하다간 발을 헛딛을 수도 있겠다. 조심해서 오를 수밖에 없다. 특히 내려올 때에는 이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3개 층에서 기념품과 특산품을 파는 가게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손님들을 위해 전등을 켜놓았지만 어둡기는 매한가지이다. 장사가 안 되어선지 매대(賣臺)에 보자기를 씌워놓은 점포도 보인다. 그러니 냉방시설이 되어 있을 리가 없다. 이런 걸 보고 빈곤의 악순환이라고 하지 않나 싶다. 서있기 조차 힘들 정도로 무더운데 어느 누가 한가하게 물건을 고르고 있겠는가.

 

 

 

 

3층은 옥상 형태로 야외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상부를 장식하고 있는 다섯 개의 탑() 중 네 개의 첨탑(尖塔)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3층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비엔티엔 시내가 한눈에 다 보인다. 빠뚜싸이를 중심으로 광장 공원이 형성되어 있고 시내의 주도로가 세 갈레로 뻗어 있다. 광장의 큰 길 주변에는 정부의 각 행정부처가 한 건물씩 크게 자리 잡고 있다.

 

 

 

 

 

 

4층으로 오르려면 비좁은 회전식 계단을 빙빙 돌면서 올라가야 한다.

 

 

4층에 올라가면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으며 비엔티안 시내의 풍광을 동서남북 방향으로 모두 볼 수 있다. 아까 3층에서 보았던 풍광이 다시 한 번 펼쳐지는데 그 범위가 아까보다는 사뭇 넓어졌다. 그만큼 고도(高度)가 높아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비엔티안 시내가 탁 트여 어느 방향이든 한 눈에 쏙 들어온다. 빠뚜싸이의 동쪽으로 보이는 빨간 건물은 '비엔티안 시청이고, 서쪽으로는 라오스의 유일당인 '라오인민혁명당'의 건물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회의사당이다. 남쪽으로 시원하게 쭉 뻗은 도로는 '란쌍로(Lan Xang Rd)'인데 이 도로는 대통령 궁까지 뻗어 있다. 대통령 궁 왼쪽으로 왓 허파깨우(Wat Ho Phakeo)와 맞은편 왓 시사켓(Wat Sisaket), 북쪽으로는 파 탓 루왕(Pha That Luang)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빠뚜싸이의 상부는 중앙의 탑()과 함께 네 개의 첨탑 등 총 다섯 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탑들은 불교의 5가지 교리인 우정과 용납, 정직, 위엄 그리고 번영을 상징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