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라오스(Laos)

 

여행일 : ‘17. 2. 28() - 3.4()

일 정 :

3.1() : 비엔티엔 사원관광(왓 씨사켓, 왓 팟 깨우, 왓 씨앙 쿠앙). 탕원유원지 선상식. 소금마을 방문, 방비엥(썬셋 모터보트, 유러피안 거리)

3.2() : 방비엥(블루라군, 짚라인, 탐남동굴 튜빙, 쏭강 카약킹)

3.3() : 젓갈마을 방문, 비엔티엔(빠뚜싸이 독립기념탑, 왓 탓 루앙)

 

개관 :

라오스(Laos) : 공식명칭은 라오인민민주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다. 한반도의 1.1(236,800.0) 크기로 중국, 베트남,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등 5개국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내륙 국가이다. 반면 인구는 2016년 기준으로 7,019,073명뿐이 되지 않는다. 국토의 약 80%가 산악 지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이 지역에는 오늘날 카족으로 알려진 여러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8세기 이후에 중국 남부에서 살던 타이족에 속하는 라오족이 라오스로 옮겨와 카족들을 차츰 몰아냈고, 1213세기에는 무옹스와(지금의 루앙프라방)공국을 세웠다. 14세기 파눔이 크메르 앙코르 왕의 도움으로 최초의 라오족 국가인 란상을 세웠고, 미얀마의 통치기간(15741637)을 빼고는 란상 왕국이 1713년까지 라오스를 다스렸다. 뒤에 란상은 3개 왕국(비엔티안·참파사크·루앙프라방)으로 나누어졌고, 18세기 시암(태국의 옛 이름)의 제후국으로 떨어졌다. 20세기 초부터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떨어졌다가 1946년에야 루앙프라방 왕의 통치 아래 프랑스연방의 자치국이 되었다. 1950년대 초, 좌파인 파테트라오는 라오스의 통치권을 놓고 우파 및 중도파와 투쟁했고, 한 때 중립연립정부가 생겨났지만 1975년에 파테트라오가 정권을 잡게 되었고, 이때 지하에 숨어 있던 라오스 공산당이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이 세워졌다. 이후 1980년대에는 베트남이 이끄는 인도차이나 동맹(라오스·베트남·캄보디아)의 일원이 되었으나, 1990년대 초반부터 베트남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1989년에 최초로 총선을 치렀고, 1991년에는 새 헌법이 공포되었다. 참고로 라오스는 우리나라와 1974년에 수교(修交)했다. 하지만 라오스가 공산화됨으로써 채 1년이 안되어 단교했다가 1992년에 다시 재수교 했다. 우리와 라오스가 본격적으로 교류하던 시기는 노무현 대통령 때라고 한다. 비자 없이 15일간 머무를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때이다.

 

 

비엔티안(라오어: ວຽງຈັນ 위양짠, 영어: Vientiane) : 비엔티안은 세계에서 가장 소박하고 목가적인 수도(首都)가 아닐까 싶다. 9세기에 주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해 1560년 북쪽 루앙프라방에 수도를 두었던 라오 왕국('란상'이라고도 함)‘이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온 뒤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다가 외세 침략과 내분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사이 1799년 시암에게 함락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1828년엔 아누봉(Anouvong) 왕이 시암에 저항했다가 실패한 뒤 완전히 파괴된다. 1899년 프랑스 보호령의 수도가 되면서 부활하지만 1928년까지만 해도 인구는 90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아무튼 현재의 비엔티안은 정부 관청, 외국 대사관, 학교, 라디오 방송국 등의 주요 건물들이 들어서 있지만 구식 목조건물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근대적인 공업으로 양조업·목재가공업을 비롯해서 벽돌, 타일, 직물, 담배, 성냥, 합성세제, 플라스틱 가방, 고무 샌들, , 강철제조업 등을 하고 있다. 라오스에서 가장 비옥한 저지대에 속하는 주변지역에 사는 라오족 농부들은 쌀·옥수수를 재배하며 가축을 기르고 있다. 참고로 비엔티안(Vientiane)은 현지어로는 위양짠이다. ‘백단향의 도시라는 뜻이지만, 프랑스인이 발음을 쉽게 하려고 자기들 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여행 첫 날 : 비엔티안(Vientiane) 투어(라오스의 재래시장들)

 

라오스 여행은 왓따이 국제공항(라오어 : ສະໜາມບິນສາກົນວັດໄຕ, 영어 : Wattay International Airport)’에 내리면서 시작된다.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으로부터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국제공항인데 우리 국적기로는 대한항공과 진에어, 그리고 티웨이항공이 운항하고 있다. 공항 건물은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 최근에 새로 지었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하지만 편의시설은 아직도 구색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마다 트랩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다른 국제공항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이 공항은 국제선 외에도 국내선 비행기가 같이 운행되고 있으며, 공항 한편에 라오스 인민군 공군의 기지도 함께 있다. 청사 앞에 있는 택시 승차장에서 일반택시나 툭툭(tuk-tuk)이 등을 타면 금방 비엔티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첫날 머물렀던 두앙찬 프라자호텔(Douangchan Plaza Hotel)‘ :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중심가에 위치한 호텔로 관광객들이 필수코스로 여기는 빠뚜싸이 등 주요 관광지들과 인접해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또한 이 호텔은 3성급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객실에는 성능이 괜찮은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 소파와 냉장고, 그리고 한국방송이 나오는 위성 TV도 갖추어져 있다. 욕실에는 간단한 세면도구(치솔과 치약 제외)가 비치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아니다. 클렌징용품을 준비하는 김에 샴푸 등도 챙겨가는 게 좋겠다. 아무래도 우리 것이 좋을 테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아침식사는 뷔페식이 제공된다. 빵과 찹쌀밥, 쌀국수, 죽 등의 본식과 주스와 과일이 후식으로 준비되어 있는데, 음식이 깔끔할 뿐만 아니라 가짓수도 적당한 편이다. 거기다 외국 관광객들을 배려해서인지 동남아 특유의 향도 배제되어 있었다.

 

 

커튼을 제키면 비엔티엔 시가지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시내 중심가 임에도 불구하고 고층건물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나라 읍()의 풍경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한적하게 느껴진다는 얘기이다.

 

 

유럽풍으로 지어진 반듯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나무덧문을 대어 놓은 창문이 눈에 익다. 지중해 연안을 여행하면서 흔하게 보았던 풍경이기 때문이다. 따가운 햇볕을 피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이곳에까지 옮겨 놓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 라오스는 프랑스의 식민지 중 하나였다. 하지만 라오스는 우리나라 60년대~70년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원래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를 식민지로 삼았던 것은 중국을 넘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이 강이 사나와 지고 산맥으로 막혀 있다. 그런 이유로 프랑스는 라오스를 버려두다시피 했다. , 정복은 했으나 이용가치가 없으니 방치했다는 얘기이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재래시장을 둘러보기로 한다. 현지인의 삶을 가까이서 느껴보기에는 시장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마침맞게도 호텔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아침시장이 열린단다. 그러니 어찌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장은 걸어서 10분이면 된다. 가까운 거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른 아침부터 후덥지근해져 있는 라오스의 날씨를 감안한다면 결코 짧다고만은 할 수 없는 거리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버스 등의 대중교통이 일절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하철이나 열차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곳 라오스에는 그런 유형의 교통수단은 애초부터 없단다.

 

 

길가에 늘어선 식당들은 벌써부터 문을 열고 있다. 노점(露店)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꽤나 많은 음식들을 진열해 놓고 있다. 하지만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고 손님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나같이 주문한 음식들을 싸가지고 갈 따름이다. 혹시 점심 도시락 대용으로 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국기(國旗)가 매달려 있는 걸로 보아 관공서(官公署)이지 싶다. 이렇게 반듯하게 지어진 건물들은 대부분이 공공건물이다. 아니면 호텔이나 쇼핑센터 등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건물들로 보면 되겠다. 아무튼 저 건물도 LPRP(라오 인민혁명당)의 요원들이 근무하고 있을 것이다. 공산국가인 라오스에서는 LPRP가 후보자들을 선택해 공직을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라오스는 유일한 합법 정당인 라오스 인민혁명당이 통치하는 공화국이다. LPRP(라오 인민혁명당)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베트남의 영향 아래 경제개혁을 단행하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도로변에 새로 짓는 건물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오랜 잠을 깬 라오스에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얼마쯤 걸었을까 사원(寺院)이 나온다. 규모는 자그맣지만 금빛으로 채색되어 화려하기 그지없다. 라오스의 사원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 아닐까 싶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사원들은 모두가 화려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라오스의 종교는 불교이다. 다수 종족인 라오족의 약 95%가 불교를 신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오족을 제외한 60여개 소수 종족은 정령 신앙을 신봉한다고 한다.

 

 

사원에는 수많은 탑()들이 들어서 있다. 이 또한 라오스 사원들의 특징이지 싶다. 모든 사원들이 하나같이 수많은 탑들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탑들은 우리나라의 절에 세워져 있는 부도(浮圖)와는 다르다고 봐야 한단다. 우리나라의 부도들이 수도승의 유골을 보관하고 있는데 반해, 이곳은 일반인의 유골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유력인사들의 유골이라는데, 상당한 재력가(財力家)가 아닐 경우 유골을 안치할 수도 없다는 얘기도 되겠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을 알아차리고 발길을 돌린다. 호텔에서 왼편으로 진행했어야 하는데 반대방향으로 나왔던 것이다. 도로에는 중앙선이 그려져 있지 않다. 신호등도 이곳 비엔티안에서나 볼 수 있단다. ‘교통질서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말라는 가이드의 경고가 생각난다.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진행하는 여타의 나라와는 달리 이곳의 자동차나 오토바이들은 행인을 의식하지 않고 일단 들이밀고 본다는 것이다. 하긴 이런 도로 여건에서 어찌 제대로 된 교통질서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아침이라서 그런지 도로는 한적하다. 한 국가의 수도라고 하기 에는 너무 한가한 풍경이다. 고층빌딩 또한 별로 없다.

 

 

 

도로 위를 달리는 것들의 대부분은 자전거와 오토바이들이다. 가끔은 툭툭이도 보인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것들인데 일종의 영업용 택시인 셈이다. 그렇다고 승용차가 아주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들 눈에 익숙한 현대자동차의 로고(logo)를 달고 있는 승용차들도 자주 눈에 띈다. 하지만 교통체증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 적당한 양의 승용차들이 돌아다닌다고 보면 되겠다. 우리나라보다 더 비싸다는 승용차의 가격이 그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국민소득 수준이 낮은 탓에 승용차를 사치품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그 결과로 옛날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특별소비세(特別消費稅)‘를 붙였을 테고 말이다. 참고로 라오스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차가 가장 많다고 한다. 스타렉스가 가장 인기이고 우리나라 중고차가 많이 들어왔는데 한글이 써진 채로 운행하는 것은 이 차는 한국 차다라는 것을 자랑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그래야 가격을 인정을 받기에 심지어 장례식장 차까지 그대로 운행한다는 것이다. 하긴 한글이라는 자체가 중요하지 의미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영문 글씨가 적힌 티셔츠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문해석도 하지 않고 마구 입고 다니었던 시절이 회자된다. 그들을 흉볼 입장이 못 된다는 얘기이다.

 

 

10분여를 걸어서 시장에 도착했다. 비엔티안 시내에서 달랏사오시장이 가장 크고 번화하다고 했는데 이곳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시장풍경은 낯설지가 않다.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는가 하면, 하나라도 더 팔려는 상인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한 것이 우리네 시골장터와 하나도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시장이라선지 야채류가 대부분이다. 배추와 무는 물론이고 양배추와 고추, 마늘 등 하나 같이 우리네 시장에서 보아온 것들이다. 다만 향신료(香辛料)가 가끔 눈에 띈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 아닐까 싶다.

 

 

명색이 아침시장인데 과일이 없을 리가 없다. 바나나와 망고는 물론이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열대과일들이 진열되어 있다.

 

 

 

 

 

생선가게도 눈에 띈다. 하지만 바닷고기 일색인 우리네 재래시장과는 달리 좌판(坐板)에 올라와 있는 생선들은 대부분 민물에서 사는 것들이다.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개구리와 도마뱀이 아닐까 싶다. 약간 징그럽기는 하지만 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의 재료라니 어쩌겠는가.

 

 

 

 

 

이곳도 역시 은 존재하나 보다. 리어카 위에서 야채를 팔고 있는 아낙네들이 눈에 띄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녀들이 쓰고 있는 차양이 넓은 모자가 눈길을 끈다. 그늘막이 없는 노천(露天)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그녀들에게는 필수 장비랄 수도 있겠다.

 

 

오는 길에 초등학교를 만났다. ’환영한다.‘는 글귀가 보이기에 잠깐 들어가 보았지만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없다. ! 학교에 온 학생들이 곧장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운동장에 모여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할 수도 있겠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어른들도 함께 서있는데, 그렇다고 조회 등의 행사를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날에 머물렀던 방비엥에서 야시장(夜市場)을 둘러보기로 한다. 물론 비엔티안 시내투어가 계획되어 있는 마지막 날 저녁에도 기회는 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다보니 그 결과를 어찌 보장할 수 있겠는가. 패키지여행이라는 게 원래 여행자의 마음에 따라 진행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이드의 손바닥 안에 들어있다는 얘기이다. 그런 내 판단은 옳았다. 가이드가 안내하는 일정으로는 야시장에 들러볼 짬이 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야시장으로 향한다. 물론 가이드를 동반하지 않는 채로이다. 아직까지 공산국가로 남아있는 라오스의 치안이 생각보다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여덟 명이나 되는 일행의 힘을 믿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수도 있겠다.

 

 

야시장 역시 우리나라 재래시장의 오래전 분위기이다. 그러니 다양한 물품들을 만나볼 수가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수공(手工)으로 직접 만든 실크와 의류 등에 눈길이 많이 간다. 그 밖에도 기념품과 잡화류 등의 품목들도 수두룩하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상설(常設)로 서는 시장은 아닌가 보다. 무슨 행사라도 하려는 양 무대까지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선지 몇 가지 종류의 게임장이 보이는가 하면, 꼬지 등을 파는 간이식당도 들어서 있다. 순박한 라오스 사람들과 흥정이라도 해보면서, 라오스의 현지인들의 먹거리로 배를 채워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