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의봉(德義峰/만월령, 491m)-도덕봉(道德峰, 543.5m)
산행일 : ‘15. 4. 30(목)
소재지 : 충북 옥천군 청산면과 청성면의 경계
산행코스 : 청산파출소→느티나무(백운리)→오른쪽능선→도덕봉→만월고개→401m봉→헛고개→분기봉→덕의봉→약수터→팔각정→청산장터(산행시간 : 3시간25분)
함께한 산악회 : 강송산악회
특징 : 풋풋한 인심을 자랑하는 청산면을 좌청룡우백호처럼 감싸고 있는 산이 바로 도덕봉과 덕의봉이다. 두 산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 육산의 고질적인 특징대로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만일 도덕봉 정상과 덕의봉 하산 길에서 간혹 터지는 조망(眺望)까지도 없었더라면 그야말로 지루하기 딱 좋은 산세(山勢)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장 사람들은 이 산들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산길이 반듯하게 나있는 게 그 증거일 것이다. 산길이 넓은데다가 경사(傾斜)까지 거의 없는 탓에 체력이 웬만한 사람이라면 큰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는 게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거기다 산이 온통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코끝에 솔향을 매달고 걸으면서 피톤치드까지 온몸으로 흡수할 수 있으니 힐링(healing)산행까지 가능하다. 멀리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 산행들머리는 청산파출소(옥천군 청산면 지전리)
당전-영덕고속도로 보은 I.C에서 내려와 19번 국도를 타고 영동방면으로 달리면 청산면 소재지인 지전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 지전리에 있는 청산파출소 앞이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청산파출소 앞은 널따란 공터로 5일에 한 번씩 전통 장이 서는 곳이다. 보통 때는 빈터로 그냥 남아있을 것은 당연한 일,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이곳에 주차를 한 이유이다. 우리가 산행을 끝내고 되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청산파출소 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50m정도 가면 사거리, 이번에는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면사무소가 있는 방향이다. 다음부터는 갈림길에 관계없이 곧장 직진한다. ‘조진사 고가(趙進士 古家)' 안내판이 있는 사거리를 지나면 다음은 ’청산고등학교‘ 진입로다, 이때 오른편에 ’도덕봉등산로 안내도‘가 세워져 있지만 속지 말고 그냥 지나친다.
▼ 길을 가다보면 담벼락마다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림들은 간혹 요즘의 세태를 그린 것들도 보이지만 대부분은 민화(民畵)들을 그려 놓았다. 그리고 그 솜씨가 자못 빼어나다. 전문화가가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동안 전국 곳곳에서 벽화(壁畵)로 치장된 담벼락들을 보아왔다. 그리고 수많은 곳에서 그저 장난삼아 그린 것 같은 그림들을 만났었다. 그래서 벽화란 다 그런 것이려니 했다. 그런 그릇된 고정관념(固定觀念)을 확 바꾸어버린 그림들을 이곳에서 보게 된 것이다.
▼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청산고등학교‘ 진입로를 지나 다음에 만나게 되는 5거리(청산면 백운리)에서 오른편으로 열린다. 파출소에서 10분 남짓 되는 지점이다. 오거리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이곳 오거리에는 ’도덕봉등산로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잠깐 멈춰 서서 가야할 길을 미리 파악해 둔다면 산행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오거리에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도덕봉 등산로 중 1코스로서 거리는 2,196m란다. 오거리에서 능선까지는 10분 정도의 거리, 임도는 능선의 바로 아래에 있는 농가에까지 연결되어있다. 거리가 멀지도 않지만 가는 길에 잘 지어진 전원주택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특히 주택의 축대에 소담스럽게 피어나 봄꽃들이 볼만하다.
▼ 능선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덕의봉,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 마지막 농가에서 오른편 산자락으로 들어붙는다. 그리고 3분 후에는 능선 위로 올라서게 된다. 능선에 오르면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청산면의 들녘이 제법 넓다. 그 뒤를 바치고 있는 산들은 팔음산과 백화산일 것이다.
▼ 능선위로 올라서면 잠시 후에 오른편으로 난 길 하나가 보인다. 이 또한 느티나무가 있던 백운리에서 올라오는 길인 모양인데, 아까 우리가 지나왔던 길의 중간 어디에서 나뉘었는지 모르겠다. 이후부터 길은 탄탄대로이다. 서너 사람이 나란히 옆으로 서서 걸어도 될 만큼 너른데다가 경사(傾斜)까지도 거의 없는 것이다. 길이 편하다보니 자연스레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곱게 핀 들꽃들에 눈을 맞춘다. 마침 주변은 온통 붓꽃 군락지, 보라색 꽃 잔치를 열고 있다.
▼ 능선은 온통 소나무들 세상, 중간에 참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잠깐일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소나무라고 보면 된다. 덕분에 산행은 시작부터 상큼하게 시작된다. 코끝에서 맴도는 솔향 덕분일 것이다. 세계적 석학 하버트 벤슨(Herbert benson) 박사는 ‘마음으로 몸을 다스려라’는 책에서 스트레스와 심신의 고통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명상과 휴식을 통해 질병의 80%를 치유할 수 있다고 했다. 마침 지금 걷고 있는 산길은 넓을 뿐만 아니라 경사(傾斜)까지도 거의 없다. 명상을 즐기면서 걷기에 딱 좋다는 얘기이다. 거기다 신선한 공기와 솔향까지 더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오늘 산행은 당연히 웰빙(well-being)산행, 아니 힐링(healing)산행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소나무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저 솔향이 피톤치드로 가득 차 있음은 당연하다. 아까부터 심신이 한없이 맑아진 이유일 것이다. 피톤치드의 효능 중에는 몸으로 스며드는 각종 병균의 살균기능 외에도 심폐기능을 강화시키는 효능도 있기 때문이다. 명상에 의한 힐링(healing)에다 피톤치드의 효능까지 더 했으니 이보다 더한 힐링이 어디 있겠는가.
▼ 능선은 편하기 그지없다. 등산로의 대부분은 평탄하고 오름길이라고 해봐야 완만하기 짝이 없다. 그런 산길을 50분 조금 못되게 오르면 슬랩(slab)으로 이루어진 바위벼랑이 앞을 가로막는다. 왼편으로 우회로가 나있으나 구태여 돌아갈 필요는 없다. 벼랑의 경사도 급하지 않을뿐더러 굵은 로프까지 매어 놓았기 때문이다.
▼ 바위벼랑을 지나면 산길은 갑자기 가팔라진다. 그러나 다행이도 길지는 않다. 10분이 채 안되어 정상어림에 만들어진 헬기장에 올라서게 되기 때문이다. 정상은 헬기장의 바로 위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10분 정도가 지났다. 물론 천천히 걸은 결과이다.
▼ 봉긋하게 솟아오른 구릉(丘陵) 모양으로 된 정상은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된 느낌이다. 손님이어야 할 무인산불감시탑이 주인인 정상표지석보다 더 위용을 자랑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꼭 있어야할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비록 삼각점(관기 24)이 세워져 있으나 이곳의 지리좌표(위도와 경도, 그리고 표고)를 알려줄 뿐 도덕봉을 둘러싼 지점이나 방향 등을 알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 정상은 사방으로 막힘이 없는 시원한 풍광을 펼쳐 보인다. 남쪽에는 백화산이 그리고 동북방향에는 속리산이 또렷하다. 또한 서쪽에는 청산의 또 다른 명산인 덕의봉이 코앞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물론 남쪽으로도 활짝 열린다. 청산면 일대와 그 곳을 적시고 흐르는 보청천이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덕의봉으로 가는 능선은 정상 아래의 헬기장에서 서쪽으로 열린다. 비록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으나 길이 또렷하기 때문에 헷갈릴 염려는 없을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그러나 가파르다는 느낌이 들 틈이 없다. 주변이 온통 고사리 밭이라서 새로 나온 고사리 순을 채취하느라 정신들이 없기 때문이다. 아까 도덕봉으로 올라올 때부터 보이던 고사리들이 도덕봉을 지나면서 아예 군락지로 변해버린 것이다. 부지런하게 손을 놀린 집사람 덕분에 우리부부는 일 년 내내 제사상(祭祀床)에 올리고도 남을 만한 양을 뜯을 수 있었다. 아니 우리 부부만이 아니다. 함께 산행을 한 ‘마음을 다스리는 산행’의 저자 이석암선생과 산행을 안내해주신 강송산악회 대장님께서 보태주신 양도 제법 되었으니 말이다.
▼ 정상에서 20분쯤 내려서면 만월고개이다. 고사리를 꺾느라 지체된 시간이 감안되지 않았으니 참조해야 할 일이다. 만월고개는 만월리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갯마루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청산면소재지가 생활권이어서 도덕봉과 덕의봉 사이 언덕에 길을 내어 청산면 소재지를 오갔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새벽과 밤을 마다않고 넘나들었고 장날이면 장보러가는 어른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마을사람들의 애환(哀歡)이 서렸던 고갯길은 지금은 옛이야기로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대신하고 있다. 만일 체력이 다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하산하면 된다. 참 잊은 것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정표(덕의산/ 백운리)를 만났다는 얘기이다. 비록 방향만 표시된 단순한 이정표이지만 말이다.
▼ 만월고개에서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상당히 가파른 길이다. 그러나 오르막길은 12~3분이면 정상에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그 거리가 짧다. 402m봉은 별다른 특징이나 볼거리가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봉우리의 하나이다. 물론 정상표지석도 없다. 다만 이름표 없는 이정표(덕의봉/ 백운리) 하나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다.
▼ 402m봉에서 다시 6분쯤 내려서면 헛고개이다. 내리막길은 아까 도덕봉에서 내려올 때와는 달리 경사(傾斜)가 완만해서 내려서기가 수월한 편이다. 헛고개에 이르면 좌우로 길이 나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비록 지도(地圖)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아까 만월고개와 같은 장소로 연결되지 않을까 싶다.
▼ 헛고개에서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능선으로 연결되는 산길은 비록 가파르지는 않지만 제법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15분쯤 후에는 분기봉(461.4m봉)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은 금마산을 거쳐 여치고개로 연결되며 덕의봉으로 가려면 계속해서 능선을 따라야 한다. 분기봉은 비록 삼거리이나 이정표에는 덕의봉과 백운리 두 곳만 표기되어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 분기봉에서 덕의봉까지는 대략 700m정도,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능선으로 연결되며 대략 18분 정도가 걸린다. 그렇다고 오르막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덕의봉 바로 아래에서 마지막 몸부림인양 잠깐의 오름짓을 하고 나면 드디어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도덕봉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1시간15분 정도가 걸렸다.
▼ 덕의봉 정상은 평범하기 짝이 없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트랭글(tranggle)이란 애플리케이션에서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과 ‘서래야 박건석’선생의 정상표시 코팅지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조망(眺望) 또한 허락하지 않는다. 주변이 울창한 참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정 조망을 원한다면 정상의 조금 아래에 있는 무덤에서 약간이나마 허락되니 하산 길에 즐기면 될 일이다. 보청천이 흐르는 청산면의 너른 들녘 너머로 영동의 백화산이 조망된다.
▼ 정상으로 올라왔던 반대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진행방향에 묘(墓)가 한 기(基)가 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전망이 탁 트이는 것이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명당자리로 보인다. 하긴 그렇지 않다면 누가 이렇게 높은 곳에다 묘를 썼겠는가.
▼ 이어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또 다른 전망대(展望臺)에 이른다. 너른 터를 활용이라도 하려는지 벤치를 갖춘 쉼터로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청산면의 조망(眺望)은 가히 장관이라 하겠다. 발아래에 시가지가 널따랗게 펼쳐짐은 물론이고, 백화산을 비롯한 높고 낮은 충청도의 산들이 그 뒤를 받치고 있다. 시원스런 조망으로 봤을 때 이곳이 혹시 ‘망운암’의 옛 절터가 아닐까 싶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다같이 ‘덕의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그 망일암(望日庵) 말이다. 청산팔경(靑山八景) 중에서도 가장 빼어났다는 망일효종(望日曉鍾)은 덕의봉 중턱에 있던 망일암(望日唵)의 새벽 종소리를 노래한 것이다. 망일암에서 백년을 하루같이 새벽에 종을 울리는데, 그 종소리는 모든 중생에게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부처님의 뜻을 널리 전한다는 것이다.
▼ 전망대를 지나면 산길은 갑자기 가팔라진다. 지도(地圖)에 ‘급경사구간’으로 표시된 지점이다. 지도의 진위(眞僞)를 검증(檢證)이라도 하려는 듯 산길은 가파르기 짝이 없다. 그리고 가파름을 배겨내지 못한 산길은 끝내 밧줄을 매어놓고야 말았다. 주변에 날선 바위벼랑들이 연이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 정도의 급경사(急傾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 가파른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앞서가던 집사람이 멈춰 서서 탄성을 지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사랑나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뿌리가 다른 소나무 두 그루가 나뭇가지로 엉켜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자라고 있는 형상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우리는 보통 ‘연리지(連理枝)’라고 부른다.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기에 그냥 지나치려는데 집사람의 표정이 뭔가 심상치가 않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 원인을 알게 된 나 또한 감탄을 금치 못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랑나무’라는 이름표에 공감을 하게 된다. 나뭇가지로 연결된 모양새가 영락없이 성교(性交)를 하고 있는 형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혹시 제단(祭壇)이라도 보일까 해서이다. 대개 이런 곳에는 득남(得男)을 원하는 이들이 만든 제단이 있음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제단은 눈에 띄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늦둥이’이라도 하나 얻으려 했더니 하늘이 말린다는 농담으로 끝을 맺으며 발길을 돌린다.
▼ 사랑나무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약수터이다. 정상에서 대략 2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약수터는 정규 등산로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비켜난 산모롱이에 위치하고 있다. 물맛이라도 보려면 산자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몇 걸음 더 걸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이 약수터는 덕의봉의 자랑거리로 알려져 있다. 물을 뜨려고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란다. 그만큼 물맛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찾아보면 실망부터 하게 된다. 옹달샘 안의 물은 그 양이 많지도 않고 물빛 또한 맑아 보이지 않는다. 특히 옆에 걸려있는 ‘시험성적서’에는 ‘마시는 물로 부적합’하다고 적어놓고 있다. 가지런히 매달린 플라스틱 바가지가 할 일을 잃어버린 셈이다. 당연히 물맛 보는 것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 약수터를 빠져나오자마자 또 다시 전망이 확 트인다. 벤치 몇 개를 갖춘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벤치에 앉으면 청산면 소재지가 발아래에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옆에 있는 소나무 가지에 훌라후프(hula hoop) 몇 개가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약수를 뜨러 오는 사람들이 몸을 풀고 내려가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외에도 국기게양대와 태양열집열판이 설치되어 있으나 용도는 모르겠다.
▼ 쉼터를 지나면서 산길은 한없이 고와진다. 보드랍기 짝이 없는 황톳길 위에는 솔가리(소나무 落葉)들 까지 수북하게 쌓여 폭신폭신한 것이 마치 양탄자 위를 걷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물론 조망 좋은 곳에 만들어진 쉼터도 만난다. 청산면 시가지뿐만 아니라 그 뒤를 받치고 있는 백화산까지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산길은 능선을 따라 연결된다. 가끔 왼편으로 갈림길이 나뉘기도 하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능선으로 난 길이 더 고울 뿐만 아니라 면소재지로 가는 최단 코스이기 때문이다.
▼ 산책로(散策路) 같은 편안한 길을 따라 걷다보면 반듯하게 지어진 팔각정을 만나게 된다. 약수터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이다. 주변에 체육시설과 벤치까지 갖춘 제대로 된 쉼터이다. 정자 앞 전망 좋은 위치에다 전망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데크에 서면 다시 한 번 청산면소재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백화산을 비롯한 높고 낮은 산들이 그 뒤를 받치고 있음은 물론이다.
▼ 산행들머리는 청산파출소 앞 장터(원점회귀)
정자에서 침목(枕木)계단을 밟으며 가파르게 잠깐 내려서면 산길은 다시 완만하게 변하고, 잠시 후에는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이어서 시멘트포장 임도를 따라 잠시 걸으면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마을 안길을 걸으며 잠시나마 꿈결 같은 고향의 맛에 빠지다보면 어느덧 청산파출소 앞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6.9km)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3시간35분이 걸렸다. 중간에서 간식을 먹느라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3시간25분이 걸린 셈이다. 물론 고사리를 채취하면서 서서히 걸은 결과이다.
♧ 에필로그(epilogue), 산행을 끝내고 소머리국밥집에 자리를 잡는다. 산악회에서 찰밥과 약간의 술을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안주거리가 더 절실했기 때문이다. 마침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부근에 ‘국밥집’이 있어서 무턱대고 들어선 게 이집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잘 되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땀을 씻을 수 있느냐는 내 질문에 주인아주머니는 안방에 딸린 샤워장까지 내주는 친절을 베푼다. 주인장의 친절뿐만이 아니다. 음식 맛 또한 뛰어났다. 국물은 ‘쫀득쫀득’하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진했고, 국물 속에 든 고기 또한 감칠맛이 있었다. 이게 다 주인장이 밤을 세워가며 직접 끓여낸 결과란다. 그러나 사실 이 지역의 향토음식은 ‘생선국수’이다. 생선국수란 생선국물에 밀국수 사리를 넣은 국수를 말한다. 생선을 뼈째 푹 우려냈기 때문에 구수한 맛이 일품이고 단백질, 칼슘, 지방 비타민이 풍부하여 성장기 어린이, 노약자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이곳 청산면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식도락가들이 이따금 찾는 별미 중의 별미이다. 충남 금산에 가면 어죽이라는 향토음식이 있다. 쏘가리·메기·빠가사리(동자개) 등 온갖 민물고기를 푹 곤 다음 쌀·수제비·국수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음식이 어죽이다. 그 어죽에서 걸쭉한 쌀·수제비를 뺀 대신 칼칼한 국물에다 국수를 말아먹는 것이 ‘생선국수’라고 보면 된다. 이왕에 옥천까지 왔으니 생선국수를 먹어보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는 탓에 그냥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섰는데 의외로 내 식성에 딱 맞았으니 이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힐링(Healing)이라는 오늘 산행의 명제(命題)에 웰빙(well-being)이라는 또 다른 의미 하나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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