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산(古城山 546.7m)-고산(高山, 526.7m)
산행일 : ‘14. 12. 14(일)
소재지 : 전북 고창군 대산·성송면과 전남 영광군 대마면, 장성군 삼계면의 경계
산행코스 : 깃재→고성산→가래재→촛대봉→고산→암치(산행시간 : 3시간40분)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고산이나 고성산은 덕유산이나 무등산 등 전라도에 소재한 다른 산들에 미치지 못하는 높이지만, 평야지대에서 우뚝 솟아오른 모습은 자못 웅대(雄大)하다. 때문에 인근 주민들은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추앙해오고 있다. 두 산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흙산)이지만 정상어림은 천혜의 바위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외적(外敵)을 방어하는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그 중의 하나가 백제 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산성(高山城)이다. 그리고 고성산 또한 고성(古城)이라는 산의 이름으로 보아 산의 아랫자락에 있었다는 산성의 규모가 제법 컸지 않았나 싶다.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산의 정상어림이 바위군(群)으로 이루어져 있는 덕분에 뛰어난 눈요깃감을 제공하며, 조망(眺望) 또한 사방팔방으로 시원스럽다. 거기다 근처에 선사시대의 고인돌들이 몰려있는 유적지(遺跡地 : 대산면 상금마을)까지 끼고 있으니 한번쯤은 찾아봐야 할 산들이다.
▼ 산행들머리는 깃재(영광군 대마면 성산리)
서해안고속도로 영광 I.C에서 내려와 23번 국도를 이용하여 고창방면으로 달리면 홍교교차로(交叉路 : 영광군 대마면 홍교리)가 나온다. 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우회전, 734번 지방도를 타고 장성방면으로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영광군(대마면 성산리)과 장성군(삼계면 부성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인 깃재에 이르게 된다.
▼ 고갯마루의 삼거리에서 장성방향으로 50m쯤 내려오는 지점에서 왼편에 보이는 임도(林道)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734번 지방도 외에 또 하나의 도로는 ‘장성군 추모공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이니 참조할 일이다. 오늘 걷게 되는 구간은 **)영산기맥(榮山岐脈의 일부구간이다. 찾아볼만한 명산들이 많기로 소문난 영산기맥을 따라 걷게 되는 것이다.
(**)영산기맥(榮山岐脈)은 호남정맥(湖南正脈)이 백암산의 상왕봉에서 북으로 순창새재에 이르렀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려는 분기점(分岐點), 즉 백암산과 내장산의 중간(새재 부근)에서 가지를 쳐나와 영산강(榮山江)의 북쪽 벽을 이루며 입암산. 방장산. 고산, 고성산, 태청산. 불갑산. 승달산 등을 거쳐 목포 유달산에 이르는 도상거리 157.4Km의 산줄기이다. 비록 높이가 800m를 넘는 산이나 봉우리들은 없으나 일대에서 알려진 명산들이고, 산마다 특징이 있어 찾아볼 만한 산들이 많다는 게 영산기맥의 매력이다.
▼ 구불구불 뱀이 똬리를 틀듯이 왔다 갔다를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가는 임도는 지루할 정도로 오래 계속된다. 그러나 지루할 틈은 없다. 눈으로 뒤덮인 길가의 나무들이 훌륭한 눈요깃감으로 시시각각(時時刻刻) 다가오기 때문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가까이 되면 산길은 임도를 벗어나 왼편 산자락으로 접어든다. 산으로 들어선 후에도 산길은 당분간 임도와 거의 같은 수준의 밋밋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산길의 풍경도 임도와 별반 다른 게 없다. 눈을 수북이 뒤집어쓰고 있는 나무들을 구경하면서 걷는 산행이 계속된다는 얘기이다.
▼ 10분쯤 걸었을까 능선에 바위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니 않아 거대한 바위무리로 변해버린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치고 오르기 어려운 곳은 어김없이 우회로(迂廻路)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다만 가파른 경사(傾斜)가 부담스러워 난간(欄干)형식으로 매어 놓은 로프에 의지해서 올라야하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 길가의 바위들이 여러 가지의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동물 모양으로 생긴 것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마치 탑(塔)을 쌓아올린 형상이다. 이러한 바위들이 정상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나타나면서 등산객들에게 훌륭한 눈요깃거리로 제공된다.
▼ 능선으로 올라선지 25분쯤 되면 처음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서서히 농도(濃度)를 높여가던 능선의 바위들이 드디어 완전한 암릉을 만들어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첫 작품에 전망대(展望臺)가 만들어져 있으니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하지 말고 잠깐 쉬었다 가면 어떨까. 마침 벤치(bench) 까지 놓여 있으니 말이다. 장성 삼계면과 영광 대마면의 논밭과 저수지들, 그리고 주변의 높고 낮은 산들이 마치 파노라마(panorama)처럼 펼쳐진다.
▼ 일단 전망대를 지나고 나서는 서면 서는 곳 마다, 그리고 멈추면 멈추는 곳 마다 뛰어난 전망대로 변한다. 그러나 바라보이는 풍경은 아까의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고도(高度)가 높아질수록 그 범위만 넓어질 따름이다. 그렇게 16분쯤 오르면 드디어 고성산 정상인 깃대봉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10분이 조금 못 걸렸다.
▼ 별로 넓지 않은 고성산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대구의 산꾼 ‘김문암’씨가 제작해서 걸어놓은 정상표지판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이정표도 눈에 띄지 않는다. 철제(鐵製) ‘등산로 안내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으나 하도 낡아서 글씨는 물론이고 그림조차 나타나지 않으니 있으나 마나일 뿐이다. 참고로 고성산의 4부 능선 어림의 남쪽 사면(斜面)에는 빙 둘러 산성(古城)이 축조(築造)되어 있다. 비록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지만 고성산의 고성(古城)이라는 이름은 이 산성으로 인해 얻게 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 정상에서는 오른쪽 그러니까 남쪽 방향으로만 시야(視野)가 열린다. 아까 올라올 때 보았던 풍경들, 그러니까 장성 삼계면과 영광 대마면의 논밭과 저수지들, 그리고 주변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다만 아까보다는 고도(高度)가 높기 때문에 더 넓게 펼쳐지는 게 다를 뿐이다. 그 펼쳐지는 산봉우리들 중, 오른편에 보이는 산들은 어쩌면 고성산과 함께 영산기맥을 이끌고 있는 태청산과 장암산이 아닐까 싶다.
▼ 고산으로 가는 길은 정상에서 북쪽으로 열린다. 능선은 억새가 가득한 널따란 평원으로 이어진다. 이 구간에서 낯선 경고판(警告板)을 만나게 된다. 육군보병학교장의 명의로 된 경고판에는 이곳이 ‘고폭탄 사격장 피탄지역’이니 출입을 금(禁)한단다. 억새밭을 지나면 생애(상여)바위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커다란 바위를 만나게 된다. 바위 위에서의 조망(眺望)이 뛰어나다고 하나 구태여 올라갈 필요는 없을 듯 싶다. 조금 후에 만나게 되는 능선의 끝자락도 훌륭한 조망처이기 때문이다.
▼ 생애바위에서 조금만 더 가면 분지(盆地)의 끄트머리, 곧 고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이곳에 서면 아까 고성산의 정상에서 놓쳤던 고창군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바둑판 모양으로 반듯반듯한 들녘이 정겹기만 하고, 주위를 감싸고 있는 산군(山群)들은 평야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우람하기까지 하다.
▼ 고성산에서의 하산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심심찮게 바윗길이 나타나고, 또 어떤 곳은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높기도 하다. 그런데 그 바윗길에 안전장치라곤 일절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조심조심 내려서는 수밖에 없다. 특히 오늘 같이 눈이라도 수북이 쌓인 날에는 아이젠(eisen)을 신었다고 할지라도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설설 기어 내려오는 게 상책(上策)이다. 체면이고 뭐고 안전보다 더 우선인 것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 바윗길이 아니라고 해서 길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인적이 없어 묵은 산길이다 보니 산길이 거의 버려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 때문에 잡목(雜木)들이 갈 길을 방해하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는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막고 있어서 아래로 기어서 나가거나 아니면 넘어서 통과해야하는 모험까지도 감수해야만 한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고 적힌 빗돌이 심심찮게 보이는데, 고성산 정상에서부터 가래재 근처까지 길이 거의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 험난한 내리막길이 끝나면 이번에는 행복한 산행이 기다린다. 햇볕 한 점 통과하기 힘들 정도로 울창한 편백나무 숲속으로 산길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숲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비록 몇 년 전에 다녀온 인근의 축령산에 비하면 수령(樹齡)이 어리지만 숲의 범위나 울창함만은 결코 뒤지지 않을 것도 같다. 편백나무는 건강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이런 길에서는 구태여 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모처럼 ‘느림보의 미학’을 추구하며 느긋하게 걸어보자. 그리고 숨은 크고 깊게 쉬어보자. 오늘 산행이 힐링(healing)산행이 될 게 분명하다.
▼ 고성산 정상을 출발한지 1시간10분쯤 되면 능선의 안부에 이르게 된다. 물론 오른편은 편백나무 숲이다. 이곳 양쪽으로 길의 흔적이 또렷하게 나타난다. 어쩌면 가래재가 아닐까 싶다. 고산과 고성산 사이에 있는 가래재는 옛날 바닷가인 법성포와 내륙(內陸)인 장성을 잇는 보부상(褓負商)들의 물물교환(物物交換) 통로 역할을 하던 중요한 고개이자, 서민들의 애환(哀歡)이 깃든 곳이다. 옛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넘나들었을 고갯마루엔 옛길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 인적이 끊겨버린 지 오래이다. 하긴 시원스럽게 뚫린 신작로(新作路)를 놔두고 굳이 옛길을 고집할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전설(傳說)에 의하면 옛날 두 형제가 북쪽의 고산성은 아우가 쌓고, 남쪽의 고성산성(古城山城)은 형이 쌓기로 하면서, 약속한 날짜까지 성을 쌓지 못하거나 가래재에 늦게 도착한 사람이 목숨을 내 놓기로 했단다. 그 후 아우가 약속한 날짜에 공사를 끝내지 못하자 형이 아우를 가래(삽)로 쳐 죽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우가 명천수(明天水)가 솟아나는 용추굴 주변을 이용하여 약속보다 갑절이나 더 길게 산성을 쌓느라 늦은 것을 알고 후회한 나머지 자신도 동생을 따라 자살했다고 한다. 그때 자살에 사용했던 것 또한 가래였기에 후세(後世) 사람들이 이 고개를 ‘가래재’라 불렀다는 것이다.
▼ 가래재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왼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게 된다. **)‘상금리 고인돌군(上金里 支石墓)’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그리고 갈림길에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아까 고성산에서 내려올 때에 비하면 애기들 장난에 불과할 정도이지만 흙산에서의 이정도 경사(傾斜)는 사실 만만한 게 아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길가에 로프로 난간(欄干)을 만들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상금리 고인돌군은 상금마을 입구에서 가리재를 오르는 구릉(丘陵)의 중턱까지 집중적인 분포를 보인다. 약 2.7km 구간에 걸쳐 고인돌과 고인돌 덮개돌로 추정되는 석재돌 약 250기가 확인되고 있다. 주로 남방식으로 낮은 언덕에 세워 한쪽에만 굄돌을 놓아 덮개돌의 수평이 맞춰지도록 했다. 그러나 덮개돌이 밀려나가고 파괴된 고인돌이 많아 그 수(數)나 형태(形態)를 파악하기 어려워 보존상태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 촛대봉으로 오르는 길에 오른편의 나뭇가지 사이로 고산의 정상이 내다보인다. 밋밋한 생김새의 봉우리 위를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까지 선명하게 나타난다.
▼ 갈림길에서 10분 남짓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촛대봉이다. 촛대봉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으로 갈 경우 따구리봉(3봉)과 깃대봉(2봉), 각시봉(1봉)으로 연결되고, 고산(1봉) 정상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촛대봉은 비록 흔적도 찾아보기 힘드나 **)고산성(高山城)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지점이다. 이곳 지자체에서 이런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는지 삼거리에 이정표(고산 오봉 0.4Km/ 차동임도/ 가랫재 0.9Km)와 산성에 대한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옛날 촛대봉에서 숯을 굽기 위해 불을 피우면 구황산 넘어 장성 수연산에서 연기가 나왔다는 옛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나 믿거나 말거나이다.
(**) 고산성(高山城)은 축성 양식이 포곡형(包谷形 : 계곡과 산정을 함께 둘러 쌓는 형식)으로 내탁법(內託法)이라는 석축공법을 사용해 외면은 석축이고 내면은 흙과 잡석으로 다져서 축성(築城)됐다. 외면은 자연석을 수직 또는 물림 쌓기로 아랫돌에 비해 윗돌을 5-6cm씩 안쪽으로 물려 쌓은 방식을 활용했으며 문헌에 따르면 내유3천(內有三泉)이라는 기록이 있어 성내에는 용지와 서봉사, 수고암 등이 있었으며 성의 둘레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산성의 총 길이가 8천1백 척, 높이 20척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현재는 기껏 600m 정도가 길가에 흩어져 있는 돌무더기 수준으로 남아 있을 따름이다. 그러다보니 오늘 같이 눈이라도 쌓여있을 경우에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 촛대봉에서 왼편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꼭대기가 바위로 이루어진 따구리봉(3봉)이 건너다보인다. 세 겹으로 이루어진 저 바위가 바로 따구리봉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했던 치마바위일 것이다. 참고로 따구리봉은 나무꾼들이 지게에 나무를 지고 다닐 때 사용하던 끈(나뭇짐을 매던)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5분 정도를 더 따구리봉으로 향하다 이내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사실 바위봉이라는 게 멀리서 바라볼 때가 멋있지 막상 봉우리 위에 올라서면 조망(眺望) 외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것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망이라는 것도 조금 후에 오르게 될 고산의 정상이 훨씬 더 나을 것이 분명할 테니까 말이다.
▼ 다시 촛대봉으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고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고산으로 가는 능선길은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5분쯤 후에 임도를 만나게 된다. 이 임도는 잠시 후에 만나게 될 ‘해맞이 기원제단(祈願祭壇)’이 있는 공터까지 연결된다. 매년 1월1일이면 고창군민의 새해소망을 담은 해맞이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는데, 아마 행사에 참여하는 차량들이 올라올 수 있도록 임도를 개설해 놓은 모양이다.
▼ 기원제단의 바로 위, 그러니까 고산의 정상 바로 아래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은 하산지점인 암치로 내려가는 길, 왼편에 있는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내려와야 한다.
▼ 갈림길에서 몇 발작 걷지 않으면 고산 정상이다. 정상은 고창 방향으로 약간 휘면서 늘어진 모습이고, 그 중간쯤에 있는 바위 앞에 정상표지석이 놓여있다. 정상석의 뒤편 바위에도 고산(高山)이라 새겨진 걸 보면 현재의 정상석이 세워지기 전엔 이 바위가 정상석을 대신했던 모양이니, 어찌 보면 정상석이 두 개나 되는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 고창군청에서 세운 정상석이 다른 곳에서 보아온 것들과는 사뭇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산 이름 아래에다 등산지도를 새겨 놓은 것이다. 멋진 아이디어 (idea)가 아닐 수 없다. 촛대봉에서 고산 정상까지는 13분, 산행을 시작한지는 3시간 남짓 걸렸다.
▼ 정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여 일망무제(一望無題)로 조망(眺望)이 터진다. 우선 서쪽에다 시선을 맞추면 끝없이 너른 고창들녘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 들녘이 그려내는 바둑판 모양의 무늬가 의외로 신선하다. 그리고 북쪽엔 옥녀봉이 삼각형으로 솟아올랐고, 그 옆에는 구황봉과 문수산이 얼굴을 내민다. 고성산. 월랑산. 태청산이 남쪽에 자리 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 뒤에 아스라이 보이는 산들은 추월산과 무등산이 아닐까 싶다.
▼ 정상에서 암치로 내려가는 길은 평범하기 짝이 없다. 정상에서 내려서서 얼마 후에 만나게 되는 바위를 오른편으로 돌면 조금 후에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 거리는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짧다. 이어지는 산길은 다시 평범하면서도 밋밋한 경사(傾斜)의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 산행날머리는 암치(바위고개)
정상에서 내려선지 20분 조금 못되면 산길은 능선을 벗어나 왼편으로 향한다. 이어서 약간 가파른 산길을 잠깐 내려서면 또 다시 평지 같은 길이 나타난다. 평원(平原) 느낌이 들 정도로 반반하면서서도 너른 능선을 따라 걸으며 왼편에 나타나는 고창들녘을 구경하다보면 전북(고창군 성송면)과 전남(장성군 삼계면)의 경계인 893번 지방도상의 암치(바위고개)에 내려서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고산의 정상에서 30분 남짓, 산행을 시작한지는 4시간10분이 지났다. 중간에 라면을 안주삼아 술을 마신 시간을 감안할 경우 3시간40분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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