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산(無量山, 586.4m) - 용궐산(龍闕山=옛 龍骨山, 645m)
산행일 : ‘15. 2. 7(토)
소재지 : 전북 순창군 동계면
산행코스 : 구미저수지→각시봉→무량산 정상→어치계곡→용골산→장구목재→장구목가든(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무량산과 용골산은 접근성이 떨어진 탓에 찾는 이들이 드물던 오지(奧地)의 산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순창군에서 관광객(觀光客) 유치를 위해 대대적으로 등산로와 관광도로 등을 정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주요 원인은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장구목 근처의 풍경(風景)이 아닐까 한다. 두 산의 아래를 휘감아 돌며 흐르는 섬진강 상류인 장구목은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천혜(天惠)의 수석공원(壽石公園)으로 소문났기 때문이다.
▼ 산행들머리는 구미리(순창군 동계면) 구미저수지
순천-완주 고속도로 오수 I.C에서 내려와 13번 국도(國道/ 옥과·담양방향)를 타고 달리면 임실군 삼계면을 거쳐 순창군 동계면소재지(所在地)인 현포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 현포리에 있는 연산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21번 국도의 인계·정읍방면으로 10분(4Km) 남짓 들어가면 구미리이다. 또한 전주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강진면(임실군)소재지인 갈담리까지 온 후, 이곳에서 717번 지방도를 타고 들어오는 방법도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참고로 청마산악회의 버스는 후자를 택했다. 산행은 구미리 조금 못미처에 있는 구미저수지에서 시작된다.
▼ 구미저수지 근처에서 오른편 산자락으로 올라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500m쯤 더 들어가면 **)구미리이다. 들머리에 ‘등산로안내도’와 이정표(무량산 2.54Km/ 용동마을 0.5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자락에 작달막한 과일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것을 보면 과수원으로 가꾸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6~7분쯤 지나면 능선 위에 올라서게 되면서 임도(林道)를 만난다. 임도는 한마디로 곱다. 보드라운 흙길인데다가 경사(傾斜)까지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 구미(龜尾)마을, 조선의 태조가 등극할 무렵 남원 양(楊)씨가 마을 터를 닦은 곳으로 이후 600여 년간 양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 마을 앞에 있는 거북모양의 바위(일명 거북바위라 불림)의 꼬리가 마을로 향해 있다고 해서 ‘구미(龜尾)’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한편으로는 금거북이 진흙 속으로 빠져드는 금구몰미(金龜沒尾)의 형상을 줄인 것이라는 설(說)도 있다. 밤나무가 농가의 주 소득원(所得原)이며, 마을에는 고려 홍패(1981년 7월 13일 보물로 지정)2점이 보존되고 있다. 또한 이 마을은 농촌진흥청장이 선정하는 ‘건강 장수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구미마을은 세 개의 단위부락으로 이루어졌는데, 중앙에 위치한 마을을 중동이라고 부르며, 동쪽은 용동, 그리고 서쪽에 있는 마을을 주서동이라고 부른다.
▼ 임도를 따라 다시 6~7분쯤 걸으면 갈림길(이정표 : 무량산정상 2.0Km/ 용동마을 0.5Km/ 구미저수지 0.54Km)을 만나게 된다. 왼편에 보이는 길은 구미리 용동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삼거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 난 한참동안을 용동마을 방향에다 시선을 고정시킨다. 하고 싶은 뭔가를 못한 서운함 때문이다. 하느님을 열심히 믿는 집사람에게 용동마을에 있는 새사도교회(New Apostolic Church)라는 우리에게 낯선 교파(敎派)에서 세운 교회를 구경시켜 주려고 했는데 들머리가 변경된 덕분에 그 계획이 어긋나 버린 서운함이다. 새사도교회는 본부를 프랑크푸르트의 암마인에 두고 있는 교인의 수(數)라고 해봐야 전 세계에 걸쳐 고작 100만 명이 채 안 되는 조그만 교파로서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까지 죽은 사도들을 대신하여 교회를 이끌어갈 만한 새로운 사도(Apostle)들이 임명되어야 한다고 믿던 '가톨릭 사도교회(Catholic Apostolic Church)‘의 회원들이 만들었다. 새사도교회라는 현재의 명칭은 1906년에 채택했으며, 교리(敎理)는 가톨릭과 비슷하나 예배의식과 성향은 가톨릭보다 개신교(改新敎)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한다.
▼ 갈림길을 지나서도 산길은 보드라운 흙길이 계속된다. 다른 점이라면 경사가 조금 가팔라졌다는 점이다. 갈림길에서 얼마간 오르면 슬랩(slab)구간이 나온다.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는 바위구간이지만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겨울철에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서 미리 대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찾는이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난간에 서면 용동마을이 잘 내려다보인다. 마을 앞에는 수많은 산군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저 어디쯤에 책여산도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 슬랩지역을 지나면 조금 후에 앙증스런 나무다리(木橋)가 놓인 작은 개울을 건너게 된다. 산길이 능선을 따라 난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개울을 건너 약간의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또 다시 기분 좋은 소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폭신폭신하게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기 한량없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솔가리(소나무 落葉)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운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 산길이 가팔라지더니 갑자기 바윗길로 변해버린 것이다.
▼ 일단 바윗길이 시작되면 주변은 눈요깃거리들로 넘쳐난다. 기기묘묘(奇奇妙妙)하게 생긴 바위들은 물론이요. 조망까지도 시원스럽게 터지는 것이다. 그 범위는 아까 슬랩에서 바라볼 때보다 훨씬 더 넓어졌다. 용봉마을에서 구미리 전체로 시야(視野)를 넓히더니, 끝내는 섬진강 줄기까지 한눈에 들어오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 갈림길을 지난 지 30분 남짓 지나면 부처손이 예쁘게 자라고 있는 커다란 바위 하나을 만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이 바위를 각시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제멋대로 자라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꽉 들어찬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을 작은각시봉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은데 이 역시 맞는지는 모르겠다. 이정표나 안내판이 없을뿐더러 생김새 또한 특이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 부근에서 또 다시 시원스런 조망이 열린다. 조금 전 암릉을 지나올 때 보았던 풍경과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아까보다 고도(高度)가 높아진 탓인지 산들의 형상이 한층 더 또렷해졌다. 정확히는 짚어낼 수 없지만 책여산과 풍악산, 그리고 노적봉들일 것이다.
▼ 작은각시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에서 큰각시봉은 금방이다. 봉우리를 내려와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바위를 왼편으로 우회하여 오르면 이번에는 철계단이 나타난다. 철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암반(巖盤)이다. 너럭바위의 한가운데에는 거북이를 닮은 바위 하나가 놓여있다. 우주선을 닮았다고도 하는 이들도 있는 것을 보면 모든 사물은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모양이다. 암반에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한쪽 귀퉁이에 자리 잡은 분재(盆栽)처럼 예쁜 소나무이다. 그런데 나무의 등걸이 반질반질하게 윤이 날 정도로 닳아져 있다. 너도나도 나무에 걸터앉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그리 했을 것이 뻔하다.
▼ 너럭바위에서 또 다른 철계단 하나를 더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해발(海拔) 506m의 큰각시봉(이정표 : 무량산 정상 0.93Km/ 용동마을 1.57Km/ 구미저수지 1.7Km)이다. 큰각시봉을 지키고 있는 또 다른 명품소나무의 가지에 ‘풍장봉(큰각시봉)’이라고 쓰인 낯익은 코팅(coating)지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서래야 박건석선생의 작품이다. 그가 아니었으면 이곳이 큰각시봉인지도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는데 고마운 일이다. 큰각시봉에서의 조망은 아까보다 한결 더 뛰어나다. 이번에는 동쪽 방향이 열리면서 산행을 시작했던 구미저수지는 물론이고, 동계면 소재지까지 내다보인다. 아 깜빡 잊을 뻔했다. 무량산 정상에서 볼 수 없는 용골산 정상을 이곳에선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산행들머리에서 큰각시봉까지는 50분 정도가 걸렸다.
▼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말이 있다. 가면 갈수록 경치(景致)가 더해진다는 뜻인데 오늘 산행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만큼 멋진 볼거리들로 넘쳐난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그런 볼거리는 큰각시봉을 지나며서 이별을 고한다. 바윗길로 이어지던 산길이 큰각시봉을 지나면서 갑자기 흙길로 변한 탓이다. 각시봉에서 5~6분 정도를 상당히 가파르게 내려서면 안부에 이르는데 양 옆으로 난 오솔길이 제법 또렷하게 나타난다. 안부에 세워진 이정표(무량산정상 0.76Km/ 구미저수지 1.78Km/ 용동마을 1.74Km)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동심 또는 추동마을과 구미를 잇는 고개이다.
▼ 안부를 지나 작은 오름짓을 하다보면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트인다. 산길의 날이 시퍼런 바위벼랑 위로 나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벼랑 쪽에다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저 조망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동심마을과 세 개의 저수지, 그리고 동계면소재지가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에는 풍악산과 책여산, 고리봉 등 수많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 안부사거리에서 20분쯤 더 가면 드디어 무량산 정상이다. 큰각시봉에서 25분 남짓, 산행들머리에서는 1시간20분이 조금 못 걸렸다. 무량산 정상은 의외로 보잘 것이 없는 평범함 그 자체이다. 대여섯 평 남짓안 분지에는 무인산불감시탑이 세워져 있을 뿐, 도무지 정상이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마 ‘정상 576m’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이정표(어치임도 1.0Km/ 용동마을 2.5Km, 구미저수지 2.54Km)만 아니었으면 이곳이 정상인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 정상에서 10m쯤 위에 세워진 또 다른 이정표(어치마을 2.4Km, 용굴산 4.3Km/ 전망대 1.2Km, 구미저수지 3.0Km)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 이정표에 낯익은 정상표지판이 매달려 있다. 대구의 산꾼 김문암선생 작품이다. 덕분에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무량산(無量山)은 '한량이 없는 산'이라는 의미인데 인근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傳說)과 관련되어 있다. 아주 오랜 옛날에 산 아래 마을에 활을 잘 쏘는 소년이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엔가 그 소년이 산돼지를 잡았는데, 산돼지의 창자에서 무량(無量)이란 글자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량(無量)이란 글자에 자극을 받은 소년은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끝내는 문과(文科)에 급제했을 뿐 아니라 대대손손에 걸쳐 과거에 급제(及第)하게 되었다고 한다. 산 아래에 무량사라는 절이 있어, 그곳에 공부하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어 산에 대한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산의 생김새가 금거북을 닮았다고 해서 구악(龜岳)으로 불리기도 했었다니 참고할 일이다.
▼ 무량산에서 산길은 제법 가파르게 떨어진다. 거기다 눈까지 수북하게 쌓여있는데도 안전시설이라곤 눈에 띄지 않는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도대체 눈길을 무서워할 줄 모르는 집사람의 분위기에 홀려 아이젠도 착용하지 않은 채로 내려서고 본다. 그러나 그 댓가는 혹독했다. 엉덩방아를 두 번이나 찧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15분 조금 못되게 내려오면 오른편으로 산길 하나가 갈려나간다. 이정표에 어치고개로 연결된다고 표기되어 있는 ‘섬진3지맥’갈림길이다. 산경표의 원리대로 물을 건너지 않고 무량산에서 용골산을 이으려면,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북쪽의 원치 방향으로 가다가 시루봉 못미처에서 용궐(골)산으로 가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맥’ 답사를 하고 있지 않은 우린 당연히 계속해서 능선을 탄다. 갈림길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이정표(어치임도 0.76Km/ 무량산정상 0.7Km)가 지시하고 있는 어치임도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 능선을 따르던 산길이 갑자기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능선의 끝자락이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탓이다. 길가에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을 정도로 가파르게 떨어진 산길은 중간에 석문(石門)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가파른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그러다가 17분 정도 후에는 ‘어치임도’(이정표 : 어치임도 0.1Km/ 섬진강 1.2Km, 용골산 2.7Km/ 무량산정상 1.0Km)에 내려서게 된다. 무량산 정상에서 임도까지는 30분 남짓 걸렸다.
▼ 시멘트포장 임도는 어치계곡을 건너자마자 두 갈래로 나뉜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놓고 고민을 해야만 하는 지점이다.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용궐(골)산 정상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왼편으로 갈 경우 섬진강변까지 내려갔다 다시 산을 올라야만 하기 때문에 곧장 용궐(골)산으로 가게 되는 오른쪽 길보다는 시간이 더 걸릴뿐더러 힘도 더 많이 든다. 대신 달구벼슬능선이 슬랩(slab)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짜릿한 스릴(thrill)과 끝내주는 조망(眺望)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산행시간이 빠듯한 우리는 곧장 용궐(골)산으로 오르는 코스를 선택한다. 임도를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길손을 맞는다. 이곳에서 산길은 왼편 산자락으로 들어서면서 임도와 헤어진다. 남근바위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잘생긴 선돌(立石)이 소나무 곁을 지키고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긴 들머리에 세워진 ‘용궐(골)산의 개명’에 대한 안내판만 보아도 쉽게 눈치 챌 수 있으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 산자락으로 들어선 산길은 곧장 위로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산의 사면(斜面)을 옆으로 째면서 이어진다. 산비탈의 경사(傾斜)가 너무 가파르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산길은 급할 것이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그러다가 15분 후에는 느진목에 올라서게 된다. 삼거리인 느진목에서 왼편에 보이는 길은 섬진강변에서 달구벼슬능선을 타고 올라오는 길이다. 아까 어치계곡에서 헤어졌던 두 길은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 느진목에서 잠시 가팔랐던 산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밋밋해진다. 그래서 조금 전에 지나왔던 고개의 이름을 ‘느진목’이라고 지었나 보다. ‘느진목’이란 낱말이 ‘완만하게 늘어진 고개’라는 뜻이라고 하니 말이다. 능선을 타다보면 초록색의 커버로 뒤덮여 있는 뭉텅이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이 보인다. ‘소나무 재선충(材線蟲) 방제막인 모양이다. 요즘 재래종 소나무들의 개체수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는데 재선충병(材線蟲病)까지 설치는 광경을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 느진목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바윗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전망 좋은 바위 위에 올라서게 된다. 양옆이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어 좌우 양쪽이 모두 조망되는 뛰어난 조망처이다. 오른편에는 두루뭉술한 무령산과 뾰족하게 솟아오른 큰각시봉이 또렷하고 왼편에는 섬진강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내려갈 장구목 근처의 강변에 보이는 성냥갑 같은 집들은 내룡마을, 강과 산의 사이에 만들어진 좁디좁은 들녘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아니 강촌마을이라고 해야 맞나? 내룡마을 앞을 사람들은 장구목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장구목 근처의 물길은 섬진강 중에서도 가장 향토적이며 자연미 넘치는 풍경을 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섬진강은 이 부근에서 ‘적성강’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서 강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 전망바위를 지나면 능선은 또 다시 흙길로 변한다. 그러다가 10분쯤 후에는 묘역(墓域)이 자리 잡은 ‘된목’에 올라서게 된다. 물론 느진목에서부터 걸린 시간이다. 된목에 이르면 오른편으로 난 산길이 하나 눈에 띈다. 이 길도 역시 어치임도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다만 아까 산자락으로 들어섰던 선돌 근처에서 5분 정도 더 임도를 따를 경우 왼편으로 열리는 또 다른 들머리이다.
▼ 된목을 지나면서 산길은 상당히 가팔라진다. 그리고 꽤 길게 이어진다. ‘오르기 힘든 고개’라는 뜻을 지닌 ‘된목’이란 고개이름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그러다가 20분 가까이 되면 바윗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위험을 느낄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릿지(ridge)로 올라도 충분할 경사인데, 안전로프까지 매달아 놓았으니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조망까지 탁 트이니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될 일이다.
▼ 조망을 즐기면서 바윗길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용궐(골)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무량산에서 1시간40분, 산행을 시작한지는 3시간이 조금 못 걸렸다. 널찍한 마당바위(신선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 외에도 전망데크가 하나 더 눈에 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조망이 좋은 곳에다 왜 별도의 전망대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용골산(龍骨山)은 용이 승천하려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용궐산(龍闕山)으로 고쳐 불러야 맞다. 국토해양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이 2009년에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산의 이름을 개명(改名)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기존의 '용골산(龍骨山)'이라는 지명이 혐오스럽고 빈약한 메시지를 전달해 지역 주민의 진취적 기상을 꺾고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고 하여, 용(龍)이 거처하는 산(山)이라는 의미의 '용궐산(龍闕山)'으로 지명을 변경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참고로 용궐(골)산 정상에 있는 신선바위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아주 오랜 옛날에 용궐(골)산에서 수도하던 스님이 가끔 무량산에 기거하는 스님을 불러 바둑을 두었는데, 그 연락을 호랑이의 입에 편지를 물려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6.25전쟁 때 국군(國軍)이 적군을 토벌하기 위한 막사를 설치하면서 그 자리에 쇠말뚝을 박아버린 탓이라고 한다.
▼ 암봉으로 이루어진 용궐(골)산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한마디로 뛰어나다. 우선 천 길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서쪽의 바위벼랑 위에 선다. 마치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요강바위 등 수많은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을 품고 있는 섬진강이 장구목마을과 함께 아슬아슬하게 내려다보인다. 그 물줄기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아까 지나왔던 무량산이 반갑다고 손짓하는데, 그 뒤에서 책여산이 나도 있다는 듯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리고 북쪽에는 가곡리의 협곡(峽谷)너머로 백련산과 원통산이 또렷하고, 그 왼편에 보이는 회문산(장군봉)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氣勢)이다. 물론 동쪽에도 산들 천지이다. 눈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남원의 천황봉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지리산의 제2봉인 반야봉일 것이다.
▼ 정상 근처에는 돌을 둥그렇게 쌓아놓은 구축물이 보인다. 높이가 1m 정도인 석축(石築)은 순창군에서 용골산을 정비하면서 일부러 쌓아놓은 모양인데, 안내문이 보이지 않아 궁금증만 불러일으키게 만들고 있다. 다른 산에 가보면 저렇게 생긴 터에는 어김없이 ‘봉수대(烽燧臺)’ 터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그러나 이곳 용골산은 봉수대가 있었다는 근거를 찾을 수가 없으니 그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석축은 차라리 없는 것만도 못한 꼴이 되어버렸다.
▼ 하산은 정상의 맞은편 봉우리(이정표 : 내룡고개 1.5Km, 기산 2.0Km/ 어치계곡 2.1Km, 무량산 3.8Km) 뒤로 열린다. 정상에서 내려선 산길은 잠시 완만(緩慢)하게 이어지다가 바위봉우리 위로 오른다. 그리고 다음에는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생각보다 가파르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으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안전로프나 계단 등 안전시설들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저 탁 트이는 조망(眺望)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맞은편에 나타나는 원통산과 지초봉은 물론이고 내려오는 길에 뒤돌아 본 용궐(골)산 자체도 제법 뛰어난 볼거리로 나타난다.
▼ 일단 암봉에서 내려서면 이후부터 능선은 흙길로 변한다. 그러다가 10분쯤 후에는 또 다시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삼형제바위’라는 이름으로 거대한 바위 세 개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하산 길을 서둘다보면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산길은 바위를 피해 왼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키고 있다. 이 부근에서 또 다시 조망이 터진다. 건너편으로 조망(眺望)이 트이며 발아래에 섬진강 줄기가 사행천(蛇行川)을 만들며 흐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강변과 함께 꿈틀대고 있는 717번 지방도(강진에서 동계로 연결)가 유난히도 하얗게 빛나고 있다. 물론 강(江) 건너편에 우뚝 솟아있는 산은 백련산일 것이다.
▼ 삼형제바위를 지나면 산길은 완전한 흙길이다. 그러나 내려서는 게 만만치는 않다. 생각보다 경사(傾斜)가 심하기 때문이다. 이게 부담스러웠던지 순창군에서는 곳곳에 통나무계단을 만들고, 그도 부족하다싶으면 안전로프까지 촘촘히 매어 놓았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오래 계속된다. 용궐(골)산 정상에서 장구목재까지 55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거기다 삼형제바위 이후로는 조망 등 볼거리까지 없기 때문에 지루해지기 쉽다는 표현을 썼다.
▼ 산행날머리는 내룡마을(동계면 어치리)
오거리인 장구목재(이정표 : 내룡마을 0.8Km, 요강바위 1.1Km/ 귀룡정 1.5Km/ 기산 0.5Km/ 석전마을 1.6Km/ 용궐산 1.5Km)에서는 장구목이 있는 내룡마을로 향한다. 이곳까지 와서 섬진강의 명물인 장구목을 둘러보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룡마을까지는 시멘트포장 임도로 연결된다. 왼편으로 또렷이 나타나는 용궐(골)산을 감상하며 느긋이 걷다보면 12분 후에는 내룡마을에 이르게 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4시간이 걸렸다. 물론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은 결과이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구미리까지 40분 정도를 더 걸어야만 했다. 하지만 산악회 황회장의 배려로 이곳까지 버스가 들어온 덕분에 무의미한 시간을 줄일 수가 있었다. 친절을 베풀어 주신 황회장께 감사를 드려본다.
▼ 강줄기를 가로지르는 현수교(懸垂橋)에 오르면 발아래 거대한 암반(巖盤)이 꿈틀댄다. 수위(水位)를 낮춘 강물 위로 공룡이 밟고 지나간 것처럼 움푹움푹 패인 바위가 지천이다. 이곳이 바로 순창 제일의 명당 터로 불리는 ‘장구목’이다. 장구목은 용궐(골)산과 무량산의 두 봉우리가 마주 서 있는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이라는 데서 얻은 이름. ‘적장의 목을 쳐 떨어진 자리’라는 설(說)도 있다. 원래는 ‘장군목’으로 불렸으나 언제부턴가 ‘장구목’으로 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섬진강 물줄기는 수만 년 동안 다듬어 놓은 바위들을 장구목 근처에다 흩뿌려 놓았다. 풍화로 깎이고 패인 모양이 기묘하다. 마치 용틀임하는 것처럼 살아 움직인다. 한마디로 천혜(天惠)의 수석공원(壽石公園)이라 할 수 있다. 장군목 근처의 물길은 섬진강 중에서도 가장 향토적이며 자연미 넘치는 풍경을 연출한다. 누군가 섬진강(蟾津江)을 보고 ‘누이 같고 어머니 같은 강이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섬진강이 친근하면서도 포근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말이 가장 합당한 곳이 섬진강의 중류인 이곳 장군목 어림일 것이다. 강물은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그리고 강물 따라 이어지는 낭만적(浪漫的)인 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의 한 장면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당연히 연출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고, 그래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배경이 되었다. 20년 만에 들러본 장군목은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해 있다. 여행 메니아(mania)들에게나 입소문을 탔을 정도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강촌마을이 언제부턴가 관광지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는 것이다. 순창군에서 ‘섬진강문화생태탐방로’를 조성하면서 이곳 장군목을 유원지(遊園地)로 개발한 모양이다.
▼ 장군목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기묘(奇妙)하게 움푹 파인 바위들이다. 요강처럼 생긴 요강바위를 비롯해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바위들이 강줄기를 따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다. 장군목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요강바위는 요강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높이 2m에 폭 3m 쯤 되는데, 어른이 들어가도 넉넉할 정도로 깊은 웅덩이가 패여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네들이 장군목을 찾아 요강바위 위에 앉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아기를 낳지 못하는 전국의 수많은 여인네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한 때 이 바위는 도난을 당했지만 1년6개월 만에 제 자리를 찾았고, 계속해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지켜주고 있단다.
♧ 에필로그(epilogue), 이곳 장군목은 물론이려니와 이곳에서 한참 더 내려가야 하는 구미마을까지는 수심(水深)이 비교적 얕아 여름철에는 가족단위 물놀이코스로 제격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이곳에서 10여리쯤 떨어진 곳이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산을 몇 개 넘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어릴 때부터 이곳을 심심찮게 찾았었다. 방학 때만 되면 이모님 내외가 살고 계시던 구미리(오늘 산행의 들머리)에 놀러 왔었고, 그때마다 이 부근에서 멱도 감고 다슬기를 잡으며 며칠씩 놀다가곤 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주로 유학을 떠났던 나는 신동(神童, 자칭자찬일지도 모르겠다)으로 소문이 자자했었는데, 그런 나를 이모님 내외는 무척 귀여워해 주셨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난 공부에 지칠 때마다 시골 풍경을 그리워했고, 특히 멱을 감을 수 있는 강물과 다슬기라는 멋진 먹거리가 있는 이곳이 특히 좋았다. 움푹움푹 파인 바위 틈새에 손을 넣을 때마다 한웅큼씩 잡혀 올라오던 다슬기의 촉감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동심(童心)어린 강물에 발을 담가본다. 그리고 강물이 들려주는 메시지(message)에 귀 기울여 본다. 사랑, 환호, 탄식 등등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만들어내는 모든 소리들을 다 품고 있다는 강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나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놓아버렸나 보다. 집사람의 짜증스러운 채근을 듣고야 자리를 털고 일어섰으니 말이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내가 늦장을 부린다는 것이다. 하기야 추억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어찌 같겠는가. 집사람의 손에 이끌려 산악회에서 준비한 점심상에 둘러앉으니 ‘Mr. 홍주’ 김사장께서 준비해 오신 ‘진도 홍주’를 권하신다. 비록 그 양은 많지 않았지만 알코올(alcohol) 도수가 강했었나 보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잠만 퍼질러 잔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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