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架山, 901.6m)
산행일 : ‘13. 1. 26(토)
소재지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과 동명면의 경계
산행코스 : 소야고개→오계산→모래재 삼거리→서문→가산바위→중문→용바위→정상→치키봉→탐방지원센타→가산산성 주차장(산행시간 : 4시간50분)
함께한 산악회 : 기분좋은 산행
특징 : 동쪽 사면(斜面)이 사람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비탈진데다가, 바위절벽까지 몇 곳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전형적인 흙산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또한 정상 어림은 평평한 고원(高原)을 형성하고 있다. 때문에 조선 때에는 이곳에다 산성(山城)을 쌓았는데, 이웃에 위한 금오산성, 천생산성과 함께 주변 지역 방어(防禦)에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산이 그다지 높지 않고, 길 또한 부드러워 가족 산행지로 추천할만하며, 유적답사(遺跡踏査)를 겸한 하이킹 코스로도 적당하다.
▼ 산행들머리는 소야고개 (다부고개, 해발 230m)
중앙고속도로 다부 I.C에서 나와 79번 지방도를 이용해서 5번 국도(國道 : 칠곡방향으로 우회전)로 올라탄다. 이어서 칠곡방면으로 5분이 조금 못되게 달리면 소야고개에 이르게 된다. 산행은 왕복 4차선 도로인 5번 국도의 반대편에서 시작되므로, 질주하는 차량들을 피해서 도로를 무단횡단 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참고로 길 건너편에 ‘해주최씨세장천(海州崔氏世葬阡)’이라고 적힌 비석(碑石)이 보이니 참조하면 어렵지 않게 들머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산행은 5번국도와 25번국도가 겹쳐서 지나가는 **소야고개에서 시작된다. 도로를 벗어나 50m쯤 산을 바라보고 걸으면 ‘영호당’이라는 당호(堂號)를 내건 ‘해주 최씨’들 제각(祭閣)이 나온다. 제각을 오른편에 끼고 돈 후, 이번에는 문중 묘역(墓域)을 왼편에 끼고 오르면 능선 위로 올라서게 된다. 능선은 왼편에 동명면과 오른편에 가산면을 끼고 이어진다. 능선에 올라서면 먼저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 숲이 길손을 맞는다.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 소야고개는 옛날 왕건과 견훤이 혈투를 벌이던 요충지(要衝地)였고,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6.25 등을 거치며 매 고비마다 치열한 전투를 겪은 곳이다. 또한 이 고개는 조선시대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던 옛길 영남대로 길목이다. 많은 역과 관원 행상들이 묵어가는 주막촌이 형성되었고, 돈 많은 거상(巨商)들이 몰려들면서 부자가 많은 곳이라 하여 다부원(多富院)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산경표(蘇耶峙)와 대동여지도에도 지명이 표기된 곳이다.
▼ 짧게 떨어졌다가 길게 오르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가는 능선은, 별다른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못한 채로 지루하게 이어진다. 조망(眺望) 또한 형편없다. 중간에 한번 중앙고속도로가 오른편에 나타난 것을 제외하고는,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이 온통 시야(視野)를 가로막아 버린다. 지루한 오르내림을 45분 정도 계속하다보면 오계산(午鷄山)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오계산 정상은 정상인 줄도 모르고 지나쳐 버리기 쉬울 정도로 정상답지가 않다. 봉우리라기보다는 그저 능선 상에 약간 솟아오른 한 지점이라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정상에는 소나무 줄기에 매달린 ‘오계산 466.3m(새마포산악회)’라고 쓰인 코팅지가 정상표지석을 대신하고 있다. 코팅지만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이곳이 봉우리임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 오계산을 지나면 능선은 잠깐 고도(高度)를 낮추었다가 다시 긴 오르막길을 만들어 낸다. 이 구간이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오르막길이 계속해서 길게 이어질 뿐만 아니라, 그 오르막이 가파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거의 40분 동안을 치고 오르게 만들다가, 다시 완만(緩慢)하게 변하더니 ‘임도(林道) 삼거리(이정표 : 모래재 1.7km/ 가산바위 1.6km)’에 올려놓는다. 팔공지맥 상의 모래재를 지나는 임도가 그 끝을 맺는 지점이다. 오계산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50분 정도가 걸렸다.
▼ 임도 삼거리를 지나면 산길은 주능선인 ‘**황학지맥 분기봉’을 오른편으로 우회(迂廻)해서 이어진다. 소야고개를 출발해서 이곳 ‘임도 삼거리’까지의 구간은 황악지맥의 일부구간이다. 삼거리를 지나면서 산길에 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별로 의미가 없는 이정표(모래재 2.2km/ 가산바위 1.1km)를 지나면서 길바닥의 눈은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쌓여있다.
**) 황학지맥(黃鶴枝脈), 팔공지맥인 가산의 북서쪽 1.5km지점인 851봉에서 서쪽으로 분기(分岐)하여, 칠곡군 가산면과 동명면 경계를 따라 오계산과 황학산을 지나 남진(南進)하다가 금호강이 낙동강에 합수(合水)하는 달성군 다사면 죽곡리 강정마을에서 맥을 다하는 41.1km의 산줄기다.
▼ 온통 눈으로 뒤덮인 사면(斜面)길을 치고 오르면 길은 왼편으로 크게 휘면서 성문(城門)을 통과하게 된다. 바로 **가산산성(架山山城)의 서문(西門)인데, 성문으로 보이지 않고 암문(暗門)처럼 느껴지는 것은, 성루(城樓)도 없을뿐더러 그 규모까지 왜소(矮小)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 북문 방향으로 진행하면 황학지맥이 분기하는 851.1봉에 닿게 된다. 가산 정상으로 가려면 이정표가 동문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서문 이정표 : 가산바위 0.6Km/ 북문 0.7Km/ 모래재 2.7Km)
**) 가산산성(架山山城 : 사적 제216호), 조선 후기의 석축(石築)산성으로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가산이라는 천혜의 요새 위에 쌓은 국내 유일의 삼중성(三重城 : 내성, 외성, 중성)이다. 인조 18년(1640년) 경상북도 관찰사 이명웅이 내성을 쌓고, 내성이 완성된 지 60년 후인 숙종 26년(1700년) 당시 관찰사 이세재가 외성을 쌓고, 내성과 외성 사이 중성은 영조 17년(1741년) 관찰사 정익하가 쌓아서 완성하였는데, 그 길이는 약 11.041㎞에 이른다. 산의 정상에 내성, 중턱에 중성, 하단에 외성을 쌓은 3중의 포곡식 석성(石城)으로써, 이웃한 금오산성(金烏山城), 천생산성(天生山城)과 함께 의각(椅角)의 형세를 이루어 군사상 매우 중요한 산성으로 인식되었다.
▼ 서문에서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 숲을 통과하면 이내 가산산성(山城)의 성벽이 마중 나온다. 무너진 성벽(城壁)을 밟으며 걷다보면 ‘장군정 200m, 학명리 3.8km’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진행방향 저만큼에 거대한 바위무더기가 보인다. 바로 가산바위이다.
▼ **가산바위는 사방이 바위 절벽(絶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철계단을 이용해야만 위로 올라설 수가 있다. 바위 위로 오르면 그 넓이에 놀라 입부터 벌어진다. 80평 정도의 넓이라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넓은 것 같다. 이렇게 넓은 반석(盤石)이 산꼭대기에 있다니! 한마디로 자연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걸작(傑作)이다. 바위 위는 전망(展望)이 너무 좋다. 칠곡에서 가산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잘 보이고, 그 뒤에는 백운산과 황학산, 유학산 등이 버티고 있다. 또한 동편에는 주산인 팔공산이 거대한 몸집을 보여 준다.
**) 가산바위는 전설(傳說)의 바위이다. 일명 가암(架巖)이라고도 하는데 네면(四面)이 깎아지른 듯이 우뚝 솟아 있는 바위이다. 바위의 위는 80평이 넘는 넓은 평지(平地)로 이루어져 있다. 사방이 트여 있기 때문에 바위 위에 서면 대구광역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참고로 가산바위에는 도참사상(圖讖思想)에 얽힌 전설 한도막이 전해져 내려온다.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도선(道詵)이 지기(地氣)를 다스리려고 바위 위 구멍 안에 쇠로 만든 소와 말의 형상을 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구멍은 조선시대 관찰사였던 이명웅(李命雄)이 성을 쌓으면서 없애버렸다고 한다.
▼ 가산바위를 내려와 이번에는 중문(中門)으로 향한다. 가산바위에서 남포루 갈림길(이정표 : 중문 0.1Km/ 남포루 1.0Km/ 가산바위 0.5Km)을 지나면 중문은 금방이다. 성벽위로 난 길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코스인 듯 바닥이 윤이 날 정도로 반질거린다. 윤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 미끄럽다는 얘기이다. ‘만사는 불여튼튼’이라는 속담(俗談)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착실하고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난 눈길에서 미끄러졌고, 팔꿈치에 제법 심한 부상을 당했다. 준비해간 아이젠(Eisen)을 착용하지 않은 방심이 자칫 사고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 중문(이정표 : 동문 0.9Km/ 남포루 1.1Km, 여릿재 2.6Km/ 가산바위 0.5Km)에서는 동문(東門) 방향으로 걷다가, 처음 만나는 삼거리(이정표 : 용바위 0.4Km, 유선대 0.5Km/ 동문 0.8Km/ 가산바위 1.1Km)에서 유선대, 용바위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용바위와 유선대에서의 뛰어난 조망(眺望)을 포기할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용바위로 가는 산길의 옆에 가산의 정상이 있기 때문이다.
▼ 용바위와 유선대 방향으로 진행하면 봉우리 위에서 삼거리(이정표 : 용바위 0.1Km, 유선대 0.2Km/ 동문 0.7Km/ 가산바위 1.7Km)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용바위와 유선대로 가는 길은 왼편으로 내려서게 된다. 100m쯤 내려가면 오른편으로 길이 나뉘면서 오른편 나무사이로 바위하나가 내다보인다. 바로 용바위이다. 철계단을 이용해서 용바위 위로 올라서면 잘 만들어진 전망대(展望臺)가 나타난다. 전면에 산군(山群)들이 첩첩이 쌓였는데, 쌓인 산들의 마지막 보루(堡壘)처럼 가장 멀리, 가장 높게 비로봉이 거대한 장벽인 양 버티고 있다.
▼ 용바위 갈림길에서 50m정도 더 내려가면 유선대가 나온다. 용바위 전망대보다 한층 더 팔공산 주능선이 잘 보이는 곳이다. 전면에는 팔공산 주능선이 하늘을 가르고 있고, 유선대 아래로 보이는 암릉도 보기가 좋다.
▼ 아까 지나왔던 봉우리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발길을 돌리면, 몇 걸음 안 걸어서 가산 정상이다. 두세 평을 넘기지 않을 정도로 좁다란 가산 정상은 정상표지목과 삼각점이 지키고 있다. 정상은 볼품없이 초라한데, 거기다가 사방이 잡목(雜木)으로 에워싸여 조망(眺望)까지도 시원치 않은 편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 하산은 정상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돌로 만들어진 이정표가 가리키는 한티재 방향으로 향한다. 한티재로 향하는 능선은, 능선 위로 성벽이 구축(構築)되어있는데, 구태여 성벽을 쌓지 않아도 사람이 오르지 못할 정도로 왼편(동쪽) 사면(斜面)은 날카로운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인 것이다.
▼ 정상에서 치키봉으로 가려면 중간에 만나게 되는 이정표가 한티재를 가리키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치키봉이 한티재로 가는 구간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키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성벽(城壁) 위로 잘 나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아까 지나왔던 서문에서 이곳을 거쳐 한티재까지의 구간은 **팔공지맥(八公枝脈)의 일부 구간이다.
**) 팔공지맥(八公枝脈), 낙동정맥에서 분기(分岐)한 보현지맥(普賢枝脈)의 노귀재 남서쪽 0.86km에 위치한 750.6봉(석심산)에서 다시 분기(分岐)해 방가산, 팔공산, 가산, 응봉산, 청화산을 지나 위천과 낙동강의 합수(合水)지점인 상주시 중동면 새띠마을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120.7km에 달하는 산줄기이다. 황학지맥과 더불어 대구시민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금호강의 북쪽 울타리를 이루고 있다.
▼ 성벽(城壁) 위로 난 산길을 따라 40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갑자기 길가에 바위들의 숫자가 늘어난다. 그런데 그 바위들의 생김새가 하나같이 범상치가 않다. 기괴(奇怪)하게 생긴 바위 무리들을 지나서 조금만 더 진행하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할아버지 할머니바위’이다.
▼ ‘할아버지 할머니바위’를 치키봉 쪽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할아버지 얼굴 모습이다. 할아버지바위 바로 옆에는 할머니바위가 서 있는데, 할아버지바위보다 크기도 작을뿐더러, 할머니의 형상도 유추해내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이 그냥 짝을 맞추려다보니 할머니를 슬그머니 끼워 넣은 것이 아닐까 싶다.
▼ ‘할아버지 할머니바위’에서 50m쯤 더 내려오면 오른편 나무들 사이로 널찍한 바위 하나가 빼꼼히 내다보인다. 혹시나 하고 들어서보니 아니나 다를까 전면(前面)이 시원스럽게 트인 빼어난 전망대(展望臺)이다. 30m 정도의 절벽(絶壁)을 이룬 너럭바위에서는 서쪽으로 남릉이 마주보이고, 남쪽으로는 해원정사가 있는 진남문 방향 계곡이 잘 조망(眺望)된다.
▼ 너럭바위에서 3~4분을 더 걸으면 억새가 무성한 헬기장이 나오고, 이어지는 흙길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10분 후에는 치키봉에 올라서게 된다. 치키봉(이정표 : 진남문 2.7Km/ 한티재 3.2Km/ 동문 1.9Km)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맞은편 능선을 따르면 한티재로 가게 되므로, 진남문으로 하산하려면 이곳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능선길을 따라 내려서야만 한다.
▼ 치키봉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는 하산길도 역시 성벽(城壁)을 따라 이어진다. 치키봉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10분 정도 내려서면, 능선 안부(이정표 : 휴게정자 0.9Km/ 치키봉 0.3Km)에서 산길은 오른편 계곡을 향해 급하게 휘면서 능선을 벗어난다. 이곳에서부터 길은 고와진다. 경사(傾斜)도 완만(緩慢)할뿐더러 길의 폭도 일행끼리 얘기를 주고받으며 걸어도 충분할 정도로 제법 널따랗다.
▼ 잘 닦인 계곡(물기 없는) 길을 따라 10분 조금 넘게 내려오면 초가지붕 정자(亭子)와 샘터가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정자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오르막길은 동문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 삼거리에서 진남문까지의 1.5Km 정도 되는 길은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로 연결된다. 구불구불 똬리를 틀며 서서히 고도(高度)를 낮추는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저만큼에 ‘탐방 안내센터’가 보이고, 그 옆에는 해원정사라는 사찰이 근처에 있음을 알려주는 커다란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 해원정사(解圓精舍), 1965년 곽용득이 창건한 용성사가 이후 1981년에 해원정사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칠곡군에는 1983년 12월에 창건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칠곡군지 참조> 가산산성의 외성(外城) 안에 있는 조계종 사찰(寺刹)로 현재 법당(法堂) 2동, 요사(寮舍) 1동, 산신각(山神閣) 1동 등 총 4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꿈속에 보살님이 나타나 비석이 있는 곳에 절을 세우라고 하여 이곳에 절을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 산행날머리는 가산산성(山城)의 진남문(鎭南門)앞 주차장
해원정사를 둘러보고 다시 도로로 되돌아 나올 필요는 없다. 사찰(寺刹) 옆으로 흐르는 개울을 따라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개울 가 길을 따라 진남문을 통과하면 곧이어 주차장이 나오고, 오늘 산행은 이곳에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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