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복산(文福山, 1.013m)

 

산행일 : ‘12. 12. 8(토)

소재지 : 경북 청도군 운문면, 경주시 산내면과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의 경계

산행코스 : 운문령894.8봉 964봉(학대산)→전망바위→문복산 정상→전망바위→가슬갑사터→삼계리 개살피계곡 하류(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경북 청도군과 경주시 산내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서, 이웃한 가지산과 운문산에 비해 산꾼들의 발길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영남알프스 주봉(主峰)의 하나로서, 1천 미터가 넘는 당당한 산세(山勢)를 자랑한다. 표고 640m의 운문령에서 출발할 경우 크게 힘들지 않게 문복산에 오를 수 있고, 개살피계곡으로 내려서면 물소리가 시원스러운 물놀이까지 함께 즐길 수 있다.

 

 

산행들머리는 운문령

경부고속도로 서울산 I.C에서 내려와 35번 국도(國道/ 경주방향)로 달리다가 언양교차로(交叉路/ 언양읍 동부리)에서 24번 국도로 옮겨 밀양방향으로 진행하다보면 덕현교차로(울주군 상북면 덕현리)에 닿게 된다. 교차로에서 내려와 이번에는 69번 지방도를 따라 운문방향으로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이 시작되는 운문령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운문령 고갯마루 북쪽방향에 보이는 포장마차의 오른편으로 올라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운문령(해발 640m)은 청도군 운문면과 울주군 상북면의 경계를 가르는 고갯마루로서 산꾼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근처에 위치한 산들로 가는 길목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의 해발(海拔)이 높아서 고도(高度) 차이에서 오는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북쪽 능선을 타면 오늘 오르려고 하는 문복산이 나오고, 남쪽 능선으로 올라서면 귀바위, 상운산을 거쳐 가지산으로 가거나 쌍두봉으로 가는 길이 된다. 물론 고헌산이 놓여 있는 낙동정맥의 마룻금을 갈 경우에도 이곳에서 북쪽능선을 들머리로 삼는 것이 보통이다.

 

 

 

운문령을 출발해서 채 5분이 되지 않아 능선 위에 올라서게 된다. 굵은 소나무가 간간히 섞여있을 뿐 신갈나무가 대부분인 능선은 한마디로 순하다. 능선은 고저(高低)의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완만(緩慢)하고, 거기다 흙길, 비록 길 위에 눈이 쌓여있긴 하지만 그 양(量)이 많지 않기 때문에 걷기에는 조금도 부담이 없다. 나뭇잎이 다 져버린 빈 가지 사이로 언듯언듯 조망(眺望)이 열리는데, 상운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 우측으로 쌍두봉이 머리를 내밀고 있고, 그 우측 멀리 운문산 앞에는 지룡산이 다소곳이 앉아있다.

 

 

 

 

편안한 오솔길을 10분 정도 걸으면 등산로 왼편에 예쁘장하게 생긴 소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낙동정맥 마룻금을 이어가는 산꾼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명품소나무(名品松)이다. 산행에 지친 산꾼들이 잠깐 쉬었다 가라는 듯 통나무로 의자까지 만들어 놓았다.

 

 

 

명품소나무를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능선이 푹 꺼지면서 건너편에 895봉이 마주 보인다. 그리고 그 왼편에 보이는 학대산(964봉)과 문복산의 밋밋한 능선은 말의 등허리를 닮았다. 전형적인 흙산(肉山)으로 고저(高低)가 거의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안부로 잠깐 떨어졌던 능선은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경사(傾斜)가 벅찰 정도로 가파르지는 않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상을 향해 오르던 산길이 이번에는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옆으로 휘면서 서서히 오름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낙동정맥 갈림길인 895의 정상을 피해서 우회(迂廻)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 우회로는 겨울철에는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사면(斜面)이 많이 가팔라서 산길의 폭(幅) 또한 좁을 수밖에 때문이다.

 

 

 

산행을 시작해서 40분 정도가 지나면 895봉 옆의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만 더 걸으면 낙동정맥 갈림길(표지석이 세워져 있다)이 나오고, 문복산은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가지산에서 상운산, 운문령을 거쳐 895봉까지 온 낙동정맥의 마룻금은 이곳에서 오른편 능선을 따라 고헌산(1032.8m), 백운산(892m)으로 이어진다.

 

 

 

895봉에서부터 또 다시 산길은 완만(緩慢)해진다. 비록 능선을 오르내리는 일이 몇 번 반복되지만, 그 오르내림의 골이 깊지 않기 때문에, 산행을 하는 데는 조금도 부담이 없는 편안한 산행이 이어진다. 895봉에서 25분 남짓 걸으면 바위로 이루어진 조그만 봉우리 위로 올라서게 되는데, 학대산이라고도 불리는 964봉이다.

 

 

 

 

학대산에서 조금만 더 진행하면 멋진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영남알프스의 능선답게 사방이 산군(山郡)들로 둘러싸여 있다. 오른편에는 백운산에서 이어진 고헌산 줄기, 그리고 그 왼편에 늘어선 산군들 아래에는 대현리 마을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가지산과 쌍두봉 등이 눈에 들어오는데, 진행방향 저멀리에서는 문복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학대산에서부터는 암릉구간이 꽤 길게 이어진다. 흙으로 이루어진 능선의 한 가운데에 심어진 듯 늘어선 바위들은 얼핏 닭벼슬을 연상시키게 한다. 바위들이 조금 더 크고, 기형적(畸形的)으로 생겼더라면 공룡능선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겠지만, 그렇지를 못하니 닭벼슬로 격하(格下)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능선의 바위들은 위험을 느낄 정도로 거대하지도 않지만 일일이 우회(迂廻)를 시키고 있다. 아마 암릉 위로 길을 내기가 어려웠던지, 아니면 바위 위로 올라봐야 아무런 볼거리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제법 긴 바위능선이 끝나면 산길은 다시 반반한 흙길로 돌아온다. 능선을 걸으며 작은 오르내림을 몇 번 겪고 나면, 오른편으로 조망(眺望)이 시원스럽게 트이는 전망(展望)바위가 나타난다. 바위에 올라서면 발아래에 멋진 바위봉우리가 하나 내려다보인다. 문복산의 명물(名物) 중 하나인 드린바위이다. 학대산에서 여기까지 50분 정도 소요되는 능선을 진행하다 보면 내려가는 길을 여러 번 만나게 되지만 개의치 말고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된다. 다만 삼계리로 뻗어나간 능선의 분기점인 964봉에서 헷갈릴 염려가 있으나, 오른쪽의 능선을 타고 간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드린바위는 문복산 동쪽 중턱에 있는 폭 100미터, 높이 130미터의 독립된 바위봉우리이다. 인근의 클라이머(climber)들로부터 암벽훈련장으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데, 75년에 이미 루트(route)가 개척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동안 방치되던 것을 고헌산악회가 다시 손을 대 98년 5월에 요즘 등반 추세에 맞는 루트로 재탄생 시켰다고 한다. 참고로 드린바위는 중급이상의 실력을 필요로 하는데, 난이도 5.9∼5.11d급 5개 루트가 있으며 오버행(overhang)과 훼이스(face), 크랙(crack)과 레이백(lay back) 등 골고루 혼합되어있다. 특히 해외 거벽등반(Bugaboo Spore,East Ridge)을 대비한 훈련장소로 많이 이용된다고 한다.

 

 

 

전망바위에서 조금(3분 정도) 더 오르면 돌무더기 갈림길이다. 산꾼들이 오가는 길에 하나씩 올려놓은 모양인지, 생김새나 규모가 허접하기 짝이 없다. 돌무더기 옆에는 역시 허접한 이정표((↑문복산, ←삼계리, ↓운문령)가 세워져 있다. 왼편 삼계리 방향으로 조금만 더 나아가면 너럭바위 전망대(展望臺)가 있지만, 눈앞에 보이는 상고대에 홀려 그냥 지나치고 만다. 너럭바위 전망대에서는 백운산, 고헌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능선과, 가지산과 운문산 그리고 억산 등이 잘 조망(眺望)된다고 한다.

 

 

 

 

돌무더기 갈림길과 맞물려있는 헬기장을 지나 정상까지는 소요시간이 5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거리이다. 헬기장에서는 좌우(左右)로 시야(視野)가 열리지만 지금까지 오면서 즐겼던 조망보다 나을 것은 없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능선은 온통 하얀 세상으로 뒤바뀌어 있다. 나뭇가지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있는 것이다. 상고대(rime)이다. ‘겨울 산’이라고 해도 흔하게 볼 수 없다는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졌으니, 오늘 산행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할 것이다.

* 상고대(rime)란 물방울들이 영하(零下)의 온도에서 나무 등의 물체와 만날 때 만들어지는 서리를 말한다. 밤새 내린 서리가 나뭇가지 등에 하얗게 얼어붙어 마치 눈꽃처럼 피어있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는 나무서리, 한자어로 수상(樹霜)이라고도 한다.

 

 

 

열 평 남짓한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문복산 정상은 크고 작은 정상표지석 2개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오른편(남동쪽)에 보이는 곳은 경주시 산내면, 이름만 들어도 귀에 익숙한 저곳에는 ‘산내 불고기단지’가 있다. 전에 근무하던 공기업(公企業)의 공사현장이 경주시에 있었기 때문에, 경주에 내려올 때마다 식사 겸해서 들렀던 곳이다. 입이 짧은 나는 남들이 그렇게도 좋아한다는 회가 별로였기 때문에 이를 아는 현장의 간부들이 이곳으로 안내를 한 탓이다. 그 뒤에는 고헌산을 기준으로 우측으로 낙동정맥 갈림길인 894봉이, 좌측으로 소호령, 백운산, 단석산 등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상은 이곳으로 오던 능선과는 달리 무지막지하게 추웠다. 카메라의 배터리(battery)가 추위에 버티지 못하고 방전(放電)이 되어버릴 정도이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정상까지는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눈길을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걷다보니 진행속도가 자연스레 늦어진 것이다.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길은 서담골봉을 거쳐 옹강산으로 가는 능선이고, 개살피계곡을 거쳐 하산을 하려면 왼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내려가는 길의 초입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고, 조금 더 진행하면 장의자(長椅子)를 쏙 빼닮은 멋진 소나무가 보이니 참고하면 된다. 멋진 소나무까지는 완만(緩慢)한 내리막길이 이어지지만 수북하게 쌓인 눈으로 인해,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스패츠(spats)와 아이젠(Eisen)을 착용하고 만다. 엉덩방아를 찧기 시작하는 집사람을 그냥 놓아둘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잡목(雜木)으로 인해 진행하기가 번거로웠던 산길은 멋진 소나무를 지나면서 조금은 나아진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빼어난 전망바위 위에다 올려놓는다. 전망바위에서는 가지산에서 운문산을 거쳐 억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주능선을 거의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다.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한지 20분 정도 지났다.

 

 

 

전망바위를 지나면 계곡으로 떨어지는 급경사(急傾斜) 내리막길이 기다린다. 거기다가 바닥이 돌로 이루어져 있어 내려서기가 여간 사납지 않다. 이런 까다로운 길은 가슬갑사유적지(遺蹟地)까지 계속된다. 전망바위에서 10분 정도 내려서면 개살피계곡의 상류에 이르게 된다. 개살피란 말은 가슬갑사 옆의 계곡이라는 경상도의 방언(方言)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설이 다수설(多數說)이다. 산길과 조우(遭遇)를 시작하는 계곡은 상류인지라 흘러내리는 물의 양은 비록 적다. 그러나 물줄기가 만들어 내고 있는 빙벽(氷壁)과 고드름은 자못 심상치 않다. 계곡을 만나면서 산길은 계곡을 왼편에 끼고 걷는 길이 된다.

 

 

 

 

전망바위에서 20분 남짓 내려서면 왼편에 갈림길이 하나 보인다. 아까 정상으로 오를 때 만났던 돌무더기 갈림길에서 왼편 삼계리로 내려섰을 경우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모양이다. 이어서 1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산죽(山竹) 숲이 푸름을 자랑하고 있고, 그 아래에 빗돌(碑石) 하나가 세워져 있다. 신라시대에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전했다는 가슬갑사(嘉瑟岬寺)의 유적지(遺跡地)이다. 가슬갑사터는 한 마디로 황량하다. 작은 비석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이곳이 삼국통일의 초석(礎石)이 된 화랑들의 기본 이념이 발원한 곳임에 비추어볼 때, 역사적 유적지를 방치하고 있는 행정당국의 무관심을 나무라고 싶다. 참고로 세속오계(世俗五戒)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헌(文獻)에서 발견되지만 특히 가슬갑사에서 원광법사가 추항과 귀산이라고 하는 두 명에게 계율(戒律)을 일러 주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정확하게 전해진다.

* 가슬갑사(嘉瑟岬寺), '삼국사기'에는 가실사(加悉寺) 또는 가서사(加西寺)로도 나온다. 6세기 중반인 560년(신라 진흥왕 21년) 한 신승이 대작갑사(지금의 운문사)를 세우고 주변에 대비갑사 천문갑사 소보갑사 가슬갑사 등 4개의 갑사를 더 세웠는데 이를 신라 5갑사(또는 5대 갑사)라 불렀다고 전해온다. 그중 가슬갑사는 서기 600년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당대 최고의 승려 원광(圓光)법사가 머무르며 수도했을 만큼 당시로써는 상당한 기풍을 지닌 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삼국의 혼란기에 무너져 고려 초 보양(寶壤)이 중창을 하였는데, 937년 태조가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賜額)을 내렸다. 그 뒤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언제 폐사되었는지도 알 수 없으며, 현재는 절터만 남아있다.

 

 

 

 

가슬갑사 유적지 조금 못 미쳐서부터 고와지던 산길은 유적지(遺跡地)를 지나면서는 아예 두어 명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도 충분할 만큼 널따랗게 변한다. 산길의 왼편 아래에는 산길과 나란히 보조를 맞추며 흐르고 있는 개살피계곡이 내려다보인다. 길을 걷다보면 간혹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는 오솔길이 보이지만, 산악회에서 깔아놓은 안내지(案內紙)는 본래의 산길을 끝까지 고집하고 있다. 뛰어난 풍광(風光)을 자랑하는 폭포(瀑布)와 소(沼), 그리고 담(潭)일지라도, 겨울산행에서는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하는가 보다. 나 혼자만이라도 계곡의 풍경(風景)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카메라의 배터리는 방전(放電)된 지 이미 오래이다.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다.

 

 

 

산행날머리는 삼계리 앞의 69번 지방도로

가슬갑사터에서 삼계리를 향해 내려올수록 산길과 나란히 달리던 계류(溪流)는 멀어진다. 가슬갑사터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흙길을 30분 가까이 걸으면 산행이 종료되는 삼계리이다. 삼계리는 팬션과 민박집, 그리고 음식점 등 유원지 비슷한 풍경(風景)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계살피계곡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마을 경노당(敬老堂)을 지나 지방도로 내려가다 보면 오른편에 세속오계 정신을 기린 상징물(象徵物)이 보인다. 화랑도 2명이 세속오계가 새겨진 돌을 떠받치는 듯한 모습이다. 상징물을 지나 도로에 서면 남동쪽에 기묘(奇妙)하게 생긴 암봉 하나가 보인다. 바로 산꾼들이 쌍두봉이라고 부르는 바위봉우리로서 아래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봉우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단부가 두 개로 나뉘어 있다.

* 먼 옛날 이 산 깊은 계곡에 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깊은 소(沼)가 있었는데, 거대한 구렁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구렁이들이 승천을 하는데, 두 번째로 승천(昇天)하던 구렁이가 인근에 살던 사냥꾼형제가 놀라 외치는 소리로 인해 하늘에 닿지 못하고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꼬리로 암봉의 정상부를 내리쳤던 모양이다. 이로 인해 암봉이 두 개로 나뉘었는데, 후세(後世) 사람들이 두 봉우리를 일컬어 형제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