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도 지리망산(398m)

 

산행일 : ‘13. 1. 1(화)

소재지 : 경상남도 통영시 사량면

산행코스 : 내지마을→돈지 갈림길→지리산→불모산(달바위)→가마봉→연지봉→옥녀봉→진촌마을(산행시간 : 4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광동산악회

 

특징 : 사량도는 윗섬인 상박도(上樸島)와 아랫섬 하박도 2개 섬으로 나뉘어 있는데, 지리산은 그중 윗섬에 동서로 뻗어 있는 산줄기다. 조그마한 섬 사량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이유다. 산림청이 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에까지 당당히 이름을 올린 지리망산(智異望山) 때문이다. 따라서 ‘사량도에 간다.’고 하면 그건 곧 ‘지리망산에 오른다.’라는 뜻으로 귀결(歸結)된다. 지리망산은 ‘거기에 서면 지리(智異)산이 보인다.’라는 뜻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그것은 외지(外地)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름일 뿐, 원래는 ‘지리(池里)’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섬 남쪽의 돈지(敦池)마을에서 북쪽의 내지(內池)마을 사이에 솟구쳐 올랐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요즘에는 다시 지리산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고쳐 부른다는 그 이름이 지리(池里)가 아니라 지리(智異)인 게 문제다. 차라리 더 엉뚱한 이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제일 높은 봉우리인 달바위봉(400m)을 산의 이름으로 삼으면 어떨까? 또 다른 이름인 ‘불모산’으로 말이다.

* 사량도 가는 방법 : 경남 통영은 물론이거니와 사천과 고성에서도 사량도까지 가는 배가 있다. 통영은 가오치항(055-642-6016), 사천은 삼천포항(055-832-5033), 고성은 용암포(055-673-0529)에서 여객선이 출항한다. 그중 가오치항에서 뜨는 배편이 가장 많아 일출 후부터 일몰 무렵까지 2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그리고 삼천포항에서는 ‘세종1호’가 하루 4번, 주말과 휴일에는 6번 운항한다. 어디서 출발하나 40분 정도 걸린다.

 

 

6시경에 삼천포항을 출발한 유람선은 느긋하게 사량도로 향한다. 사량도 옆에 있는 수우도 근처의 해상에서 해돋이(日出)를 보기 위해서이다. 해가 뜨는 예상시간이 7시35분이니 남은 시간은 1시간35분, 사량도까지 제대로 가면 4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으니 구태여 서두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를 안내해 주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선장님은 얼굴만큼이나 말솜씨 또한 뛰어나다. ‘삼천포 대교’와 ‘삼천포 화력’, ‘사량도’ 등 주변 명소(名所)와 관련된 얘기들을 감칠맛 나게 늘어놓는다. 그녀가 들려주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배는 어느새 수우도 근처에 도착해 있다. 선실에서 20분 정도를 기다리는데 얼굴표정들이 밝지를 못하다. 서울을 출발하기 전에, ‘남해안에서는 해 뜨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7시40분이 되자 동녘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더니 붉은 해가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티 하나 없이 온전한 모습이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歎聲)이 새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간간히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나무라는 지청구와 함께... 바쁘게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와중에도 가슴에 품은 작은 소망(所望)하나 간절히 빌어본다. ‘올 한해도 우리가족 모두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집사람을 향한 내 사랑 결코 변하는 일이 없게 해 주소서!’ 문득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른다. 아무래도 생각지도 못한 온전한 해돋이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맞다. 틀림없이 올 한해는 도모하는 일마다 모두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내지마을(浦口)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행 기점을 돈지포구(浦口) 또는 내지포구로 잡는다. 어디서 시작하든지 산행시간은 비슷하나 오늘은 내지포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지리망산은 찾은 것은 오늘까지 네 차례이다. 앞의 세 차례가 모두 돈지포구를 들머리로 삼았었기 때문에, 내지마을에서 출발하기를 내심으로 빌었는데 참 고마운 일이다. 내지마을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포장도로를 따라 600m쯤 진행하면 금복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왼편에 보이는 산길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이 시작되면서 잠시 완만(緩慢)하게 이어지던 소나무 숲 능선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파르게 변한다. 거기다가 조금 후에 올라서게 되는 능선에서부터는 산길은 아예 바윗길로 변해버린다. 능선의 바윗길은 험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눈이 쌓여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까딱하다 미끄러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낭패(狼狽)를 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능선을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바다 건너 삼천포화력에서 내뿜는 연기까지 시야(視野)에 들어온다. 한려수도의 푸른 바다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사랑도의 지리산 산행에서는 하나도 조심이요 둘도 조심이다. 산을 형성하고 있는 바위 면(面)이 물고기 주둥이마냥 삐죽삐죽 촘촘하게 솟아 있어, 자칫 방심하다가 넘어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큰 부상을 당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문득 고개라도 들라치면 환상적(幻想的)인 광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쪽빛 바다가 펼쳐지고 있고, 성냥갑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포구의 풍경은 정겹기 짝이 없다.

 

 

 

숲을 벗어난 바위능선이 점점 더 높고 크게 드러나면서 조망(眺望) 또한 점점 더 넓고 좋아진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정도가 지나면 돈지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정표 : 지리산 0.64Km/ 돈지 1.66Km/ 금복재 1.10Km, 내지 1.70Km)에 이르게 된다. 두 길이 만나는 능선에 당도하면서부터 ‘눈의 호사(豪奢)’가 시작된다. 푸른 바다와 거기 떠있는 섬, 그리고 딛고 선 능선 아래 아늑한 포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삼거리에서부터 능선은 완만(緩慢)한 경사(傾斜)가 계속된다. 간혹 날카롭게 선 성벽(城壁)을 닮은 절벽(絶壁)이 앞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김없이 우회로(迂廻路)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위험 구간을 우회(迂廻)하는 코스가 보이지만 날등으로 올라선다. 아무래도 더 빼어난 절경(絶景)을 내려다보려면 이른바 ‘위험 구간’이라는 곳에 들어서야 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위험 구간에 올라서 능선의 칼바위를 붙잡고 발끝으로 온몸의 균형을 유지하다 보면 가슴이 저릿저릿하고, 심장이 두방망이질하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무서운 와중에도 한편으로는 짜릿한 쾌감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어쩌면 이런 느낌 때문에 굳이 날등으로 올라서는 지도 모르겠다.

 

 

 

 

삼거리에서 흙산(肉山)처럼 부드러운 산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으면 지리망산 정상이다. 그러나 막상 올라와본 정상은 의외로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올라올 때 밟았던 흙길의 이미지를 일거에 바꾸어버린 것이다. 석판(石板)을 닮은 검은 정상표지석 하나가 외롭게 지키고 있는 정상에 서면 바다건너 공룡발자국이 있는 상족암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날씨까지 받쳐준다면 지리산까지 조망(眺望)된다지만, 오늘은 그저 방향만 어림잡을 수 있을 뿐이다.

 

 

 

 

주릉에 올라서면 북쪽의 눈앞으론 쪽빛 바다 너머 사천 와룡산이 가깝다. 그 너머에는 지리산 천왕봉이 있다지만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가끔 돌아보면 수우도 너머로 남해도, 창선도가 여전히 뒤따르고 있다. 지리산은 양쪽 사면(斜面)이 급경사 벼랑으로 되어 있어 길은 오로지 외길이다. 하지만, 짤막하게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곤 하는 우회로(迂廻路)는 무수히 많다. 간혹은 벼랑으로 앞이 막히기도 하는데, 그런 때에는 지체(遲滯) 없이 발길을 되돌려 편한 길을 찾으면 된다.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위험 구간’이란 팻말이 나붙었다. 아찔한 절벽(絶壁)의 위험 구간이라면 거기서 보는 풍경(風景)이 좋다는 것은 당연하다. 바윗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몰라도, 위험 구간의 들머리까지는 부지런히 들고 나는 게 풍경을 놓치지 않고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둥글게 해안선을 이룬 돈지항이 작은 연못처럼 아름답다. 돈지항 남쪽 옆 왕관 모양의 작은 섬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대나무 화살을 얻었다는 대섬(竹島)이다.

 

 

날카로운 암봉을 화관(花冠)처럼 쓰고 있는 지리산은 지세(地勢)부터가 뛰어나다. 그동안 섬 산행에서 보아오던 산은 물론이고, 육지의 내로라하는 산과 견준대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더 뛰어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리망산은 산이 지니고 있는 자체의 아름다움도 나무랄 데 없지만, 산에서 바라보는 조망(眺望)이 더 한층 뛰어나기 때문에 지리망산으로 승화(昇華)된다. 산의 이름에 들어간 ‘망(望)’자가 제 값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지리산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그러나 옅은 연무(煙霧)에 가린 지리산은 그 고운 자태(姿態)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지리산 정상에서 내려서서 말갈기 같은 능선을 따라 걷다가 나무계단을 밟고 길게 내려서면 간이주점이 있는 안부 사거리(이정표 : 가마봉 1.68Km, 옥녀봉 2.54Km/ 내지 1.30Km/ 성자암 0.30Km, 옥동 1.70Km/ 지리산 1.16Km)에 이르게 된다.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탈출하면 된다. 안부를 지나 진행방향에 불모산(달바위)이 보이면 본격적으로 암릉길이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오른편에 조망(眺望)이 확 트이는 바위가 나타난다. 바위 위에 오르면 건너편 하도의 칠현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발아래에는 상도와 하도 사이를 흐르는 동강(桐江)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동강은 그 이름에서 강을 연상시키고 있듯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

 

 

 

 

 

전망바위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날카롭게 선 바위봉이 진행방향을 가로막고 있다. 바로 달바위봉이라고도 불리는 불모산이다. 나무가 없어서 고려 때부터 ‘불모(不毛)’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불모산(달바위봉) 정상은 올라갈 수가 없었다. 봉우리로 올라가는 초입(初入)에 붙어있는 위험표지판 쯤이야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눈에 쌓여있는 바윗길을 무작정 치고 오르는 것은 다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이유는 집사람이 치켜뜨는 눈초리 때문이었다. 그 동안 바윗길에서 쌓아온 나의 이력(履歷)은 인정하겠지만, 눈 덮인 바위능선을 기어오르는 것은 자살행위로 인정할 수밖에 없단다. 별 수 없이 주봉(主峰)은 우회(迂廻)하고, 다음 봉우리부터 다시 능선으로 올라선다.

 

 

 

 

불모산을 내려오는 길에 펼쳐지는 풍경(風景), 산과 바다와 하늘은 물론 그 틈에 깃들어 있는 갯마을도 더불어 아름답다.

 

 

뾰족하고, 혹은 뭉텅하고, 더러는 높고, 더러는 낮지만 나름의 자태(姿態)는 가히 장관(壯觀)이다. 사량도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하늘과 바다, 그리고 바위봉우리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산의 아랫도리에서 바라보면 올망졸망한 바위봉우리들이 어깨를 겯고 하늘금을 그려내고, 봉우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또 다른 광경, 즉 바위봉우리들이 쪽빛 바다와 함께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늘이 바다 같고 바다가 하늘같다. 그 여백에다 내가 꿈꿔 온 작은 소망(所望) 하나 채워 넣는다. ‘집사람을 향한 내 사랑 영원히 변치 않게 해 주소서!’

 

 

 

달바위봉에서 가마봉까지는 제법 멀다. 달바위봉 능선의 바윗길에서 로프에 매달리기도 하고 안부를 향해 길게 늘어선 나무계단을 밟으며 조망을 즐기다보면 어느덧 능선 안부 삼거리(이정표 : 가마봉 0.76Km, 옥녀봉 1.72Km/ 대항마을 0.67Km/ 지리산 2.28Km) 에 이르게 된다. 안부에는 남국(南國)에서나 볼 수 있는 난장이야자수(?) 몇 그루가 철을 잊고 푸름을 자랑하고 있다. 안부에서 다시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산행을 이어간다.

 

 

 

 

아찔할 정도로 현란하게 펼쳐지는 풍광(風光)을 즐기면서 능선을 내려서다보면 맞은편 가마봉으로 오르는 암벽(巖壁)에 두 가닥으로 길게 늘어진 로프가 보인다. 로프의 중간쯤에 두 사람이 매달려 있는데 보기만 해도 아찔할 정도이다. 그러나 막상 이르러보니 생각보다는 많이 수월했다. 경사(傾斜)도 보기보다 완만(緩慢)했을 뿐더러, 잘게 균열이 간 암벽(巖壁)은 신발이 착 달라붙어서 어렵지 않게 봉우리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가마봉 정상은 바위봉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넓은 암반(巖盤)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의 한 가운데에는 정상표지석이 놓여있고, 그 뒤를 오가는 사람들이 쌓아 놓은 돌무더기가 지키고 있다. 정상에서는 사방으로 시원스럽게 시야(視野)가 트인다. 진행방향에는 출렁다리 공사가 한창인 연지봉이 우뚝 솟아있고, 그 오른편에는 동강(桐江), 그리고 아랫섬의 칠현산이 잘 조망(眺望)된다. 그 아래에는 윗섬과 아랫섬 사이의 동강(桐江) 해협이 한 줄기 강처럼 바라보인다.

 

 

 

 

가마봉에서 연지봉으로 가기 위해 내려서는 철계단은 한마디로 말해 공포(恐怖) 그 자체이다. 튼튼한 철(鐵) 구조물로 만들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경사(傾斜)가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내려다보면 아찔하게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아니나 다를까 뒤따라오던 젊은 여자 등산객은 중간에 멈춰 서서, 한 발자국도 더 내려서지를 못하고 애꿎은 고함만 지르고 있다. 담력(膽力)이 조금이라도 약한 사람들에겐 공포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구간인 것이다.

 

 

 

가마봉에서 아찔한 철계단을 내려서면 안부에서 대항 갈림길(이정표 : 옥녀봉/ 대항마을/ 가마봉)을 만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대항포구(浦口)가 나오고 연지봉으로 가려면 맞은편 능선으로 다시 올라서야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서 대항으로 하산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에 만나게 되는 암봉이 오늘 산행의 클라이맥스(climax)이다. 봉우리의 이름은 연지봉, 일명 향봉이라고도 불리는데, 고만고만한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가운데 봉우리가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스릴(thrill)이 넘친다는 탄금대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연지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출렁다리 설치공사’ 중이라며 폐쇄(閉鎖)시켜 놓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에서 하산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거지로 올라가본 전위봉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출렁다리를 놓기 위한 시설물과 자재(資材)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가운데 봉우리인 탄금대로 오르내릴 수 있는 로프를 끊어놓았다. 별수 없이 되돌아 내려올 수밖에 없다.

 

 

 

조심! 또 조심! 아무리 지리망산이 황홀하다고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바위산의 빼어난 절경(絶景)에 반해, 위험 또한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6~7년 전에 왔을 때 보다는 안전시설(安全施設)이 대폭 보강(補强)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도 몇몇 구간은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특히 수직으로 떨어지는 철계단은, 혹시 미끄러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큰 사고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까 길을 막아 놓았던 전위봉 입구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오른편으로 우회로(迂廻路)가 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연지봉의 아래로 우회시키는 길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비스듬히 누어있는 암벽(巖壁)에 쇠파이프를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에, 쇠파이프에 몸을 의지해야만 진행이 가능할 정도이다. 만일 미끄러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큰 부상이 우려되는 구간이다.

 

 

 

일명 탄금대(彈琴臺)라고도 부르는 연지봉을 우회(迂廻)해서 반대방향으로 가면, 탄금대로 오르는 약 15m정도 되는 높이의 암벽(巖壁)에 줄사다리가 매달려 있다. 겨우 여기까지 온 사람들도 더 이상은 탄금대로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사람이 매달리면 사다리가 출렁거리기 때문에 사람들에 따라선 철계단보다 더한 공포를 주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집사람의 눈치를 모르는 채하며 올라본 연지봉도 아까 전위봉과 마찬가지로 난장판이다. 올라서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와 버린다.

 

 

 

연지봉에서는 진행방향의 봉우리를 왼쪽으로 우회(迂廻)한다. 이 길 역시 직벽(直壁)의 낭떠러지지만 난간이 설치돼 있어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다. 이후 등로는 크게 어렵지 않다. 로프가 설치된 곳도 있지만 경사도(傾斜度)가 낮아 걸어서 내려갈 수 있을 정도이다. 연지봉의 맞은편 암릉에 올라서면 탄금대의 왼편 벼랑이 아찔하게 펼쳐진다.

 

 

 

아버지와 딸의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전설이 있는 옥녀봉은 돌무더기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혹시라도 다른 시설물을 설치하면 옥녀의 분노를 산다고 해서, 주민들은 이정표나 정상표지석을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옥녀봉의 진행 방향 정면은 옥녀가 떨어져 죽었다는 급전직하(急轉直下)의 천길 벼랑이다. 옥녀봉에서의 하산은 돌무더기로 되돌아 나와 오른편의 우회로(迂廻路)를 따른다. 바위 벼랑의 옆면을 따라 내려서는 지점에 나무계단과 철계단이 연속으로 나오나 이 역시 경사(傾斜)가 완만해서 그리 어렵지 않게 내려설 수 있다.

* 옥녀봉이라는 이름은 사량도의 산세(山勢)가 여인이 거문고를 타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당이라서 그리 불렀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욕정(欲情)에 눈이 먼 아버지를 피해온 옥녀가 벼랑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안타까운 전설(傳說)도 전해진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옥녀봉의 봉우리 형상이 여인의 젖가슴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향봉이 탄금바위로도 불리고, 아랫마을 지명이 금평(琴坪)이니 인륜(人倫)을 거스르는 전설보다는 옥녀탄금형이라는 풍수설(風水說)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로 통일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사량도(蛇梁島)는 윗섬(上島)과 아랫섬(下島), 두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사량(蛇梁)은 두섬 사이 해협이 마치 뱀처럼 구불구불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주민들은 또 두 섬 사이의 바다에서 ‘강(江)’의 모습을 보았던 모양이다. 해협의 이름을 동강(桐江)이라고 붙인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다면 강에 붙여진 ‘거문고 동(桐)’자는 아마도 두 섬 사이 호수 같은 바다의 모습이 마치 거문고 형상을 빼다 닮았기 때문이리라. 상도와 하도는 2015년이면 연도교(連島橋)로 연결된다고 한다.

 

 

 

 

산행날머리는 대항포구(浦口)

철계단을 내려서면 안부 삼거리(이정표 : 사량면사무소/ 대항마을/ 지리산)이다. 곧바로 맞은편 능선을 타면 면사무소(面事務所)가 있는 금평항으로 가게 되고, 우리를 태우고 갈 유람선(遊覽船)이 기다리고 있는 대항은 왼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대항으로 내려가는 산길은 흙길로서 그리 가파르지도 않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내려설 수 있다. 갈림길에서 15분 정도이면 섬 일주도로에 내려설 수 있고, 이어서 일주도로(一周道路)를 따라 10분 정도 더 걸으면 내항 선착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