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산(鳳鳴山 : 408m, 군립공원)

 

산행일 : ‘12. 5. 12(토)

소재지 :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곤양면과 하동군 북천면, 진교면의 경계

산행코스 : 다솔사→봉명산→보안암 석굴→깨사리고개→이명산(理明山, 570m)→마애불 삼거리→마애석불→계명산(382m)→직전(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송암산악회

 

특징 : 방장산(方丈山) 또는 주산(主山)이라고도 불리며, 풍수리지학(風水地理學)상으로 봉(鳳)이 우는 형국이라 하여 봉명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산이 낮은데다가 숲이 울창하기 때문에 오르는데 별로 부담이 없고, 거기다가 주변에 역사적 유적(遺蹟)들이 많기 때문에 등산객들 외에도 고고학(考古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이다.

 

 

산행들머리는 다솔사 입구 주차장

남해고속도로 곤양 I.C를 빠져나와 58번 지방도를 따라 곤명면소재지(面所在地) 방향으로 달리다가, 곤명면 추천리에서 왼편의 용산마을 방향으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솔사 앞의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주차장에 이르자 웬일인지 다솔사로 들어가는 바리케이드(barricade)를 치워주고 있다. 경내(境內)주차장까지 그냥 올라가도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버스를 타고 숲길을 따라 얼마간 오르다보면 커다란 바위하나가 보이는데, 아마 '어금혈봉표(御禁穴封表)일 것이다. 조선 고종 임금 때 만든 비석(碑石)으로서 이 지역에다 분묘(墳墓)를 쓰지 말라는 일종의 어명(御命)이다. 이곳이 명당인 것을 안 벼슬아치들이 이곳에 묘를 쓰려하자, 스님이 탄원서(歎願書)를 올려 임금의 허락을 받은 모양이다. 우리나라에는 봉표나 금표가 23개가 있는데, 이곳의 봉표는 한 개인을 위해서 행위(行爲)를 금지(禁止)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自然)을 보존(保存)하기 위한 금지라서 더 유명하다고 한다.

 

 

관광버스와 승용차들로 붐비는 경내주차장은 의외로 널따랗다. 그래서 관광버스까지 안으로 유도했나보다. 너른 주차장을 지나 절 입구에 이르면 먼저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계단이 참배객들을 맞는다. 계단과 대양루(大陽樓)의 기와, 봉명산이 적절한 조화(調和)를 이루며 고즈넉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대양루는 우담바라가 폈던 곳으로 유명하다. 다솔사는 창건 이후 여러 번의 전란(戰亂)을 겪었지만, 이 대양루만은 유일하게 화재를 면했다고 한다.

* 다솔사(多率寺), 신라 지증왕 12년(511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경남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찰(寺刹)이다. 처음에는 영악사(靈嶽寺)라 불렀으나, 선덕여왕 때 다솔사로 이름을 바꿨다. 문무왕 때에는 의상대사가 영봉사(靈鳳寺)로 이름을 바꿨으나, 신라 말 도선국사가 다시 다솔사라는 이름으로 돌려놓은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日帝) 강점기(强占期)에 한용운이 수도하던 곳이며, 소설가 김동리가 한동안 머물며 ‘등신불’이라는 소설을 쓴 곳으로도 유명하다. 문화재(文化財)로는 국보(國寶)급은 보유하고 있지 않고, 경상남도유형문화재인 대양루(大陽樓, 83호), 극락전(148호), 응진전(149호)과 보안암(普安庵) 석굴(39호), 석조불상(29호)이 있다. 다솔(多率)이라는 절의 이름에는 '많은 불심을 거느린다.', '좋은 인재를 많이 거느린다.'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대양루(大陽樓)를 지나 마당으로 올라서면 커다란 전각 하나가 눈을 꽉 채운다. 대웅전 역할을 하고 있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1978년 2월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 때 후불탱화 속에서 108과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때 발견된 사리를 모시기 위해 사리탑(舍利塔)을 지으면서, 대웅전(大雄殿) 대신에 적멸보궁이라는 현판을 달았다고 한다. 보편적으로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을 따로 안치하지 않는다. 진신사리가 곧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다솔사의 적멸보궁은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이(特異)하다. 그것도 누워있는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누워있는 부처님의 위에 유리로 창을 만들어, 건물 밖에 있는 사리탑(舍利塔)이 보이게 만들었다. 사리탑을 보면서 기도를 드리라는 배려(配慮)일 것이다. 건물 밖의 사리탑의 뒤에는 활모양의 차밭이 고즈넉이 앉아있다. 차밭이 언제부터 조성되었는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나는 차는 반야차(般若茶)로 유명하다고 한다.

* 적멸보궁(寂滅寶宮),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中國)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셨다고 인정된 양산의 통도사(通度寺)와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오대산 중대(中臺) 상원사(上院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그리고 태백산 정암사(淨巖寺)를 합쳐서 5대 적멸보궁(五大 寂滅寶宮)이라고 부른다. 이 외에 부처님의 치아(齒牙)사리를 모신 금강산 건봉사나 모악산 금산사 같은 곳에도 적멸보궁 있으며, 근래(近來)에는 꽤 많은 곳에서 적멸보궁을 찾아볼 수 있다. 스리랑카 등으로부터 많은 사리가 들여온 결과라고 하는데, 진위(眞僞) 여부는 절을 찾는 신자들의 마음가짐에 달려있을 것이다.

 

 

 

 

다솔사를 오른편에 끼고 돌면 ‘봉명산군립공원’이라는 팻말을 하늘에 걸어 놓았다. 군립공원 아치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 들머리에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뿜어낸다는 편백(扁柏)나무 군락(群落)이 잠시 이어진다. 문득 이곳을 찾기 전에 인터넷에서 발견했던 글귀 하나가 떠오른다. ‘다솔사는 다섯 개 멋진 밭을 갖고 있다. 솔밭, 차밭, 대밭, 그리고 항상 일렁이는 바람밭, 마지막으로 다솔사를 찾은 그대 가슴에 안겨주는 생애 대한 그리움의 밭이다.’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이 있을까? 가던 길 잠깐 멈추고 지은이가 보내는 메시지를 가슴으로 받아들여 본다.

 

 

 

봉명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햇살을 잘 막아준다. 오늘의 산행은 행운(幸運)이 함께하는 모양이다. 울창한 침엽수림(針葉樹林)이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넘치도록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심호흡부터 해보고 본다. 지나는 바람에 실려 온 소나무 향기가 머리를 맑게 정화(淨化)시켜 준다. 봉명산에는 소나무 일색(一色)인 산이다. 그래서 다솔사(多率寺)라는 절 이름도 소나무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려니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다솔(多率)에는 ‘많은 불심을 거느린다.’ ‘많은 인재를 거느린다.’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우리가 흔하게 보아왔던 시골 뒷산을 올라가는 기분이다. 쉼터삼거리(이정표 : 정상 0.4Km/ 보안암 1.5Km)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어도 산길은 계속해서 부드럽기만 하다. 가끔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짙은 소나무 향을 음미하며 20분 정도(쉼터 삼거리에서) 걷다보면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에는 특이하게도 높다란 망루(望樓 : 봉명정)가 세워져 있다. 소나무 숲이 조망(眺望)을 방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인 모양이다. 소나무 숲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망루에 올라서면, 키가 큰 소나무들은 손에 닿을 듯 가까이서 손을 내밀고 있고, 키가 작은 소나무들은 발아래에서 융단처럼 펼쳐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소나무 가지사이로 남해(南海)바다가 조용히 누워있다. 비록 조망(眺望)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멋진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잠시 머물며 소나무 가지를 휘감으며 달려 온, 솔향 가득한 바람결에 내 몸을 던져 넣는다. 어느새 온 몸이 기(氣)로 충만해 있다. 봉명산 정상표지석은 망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올라왔던 길의 반대편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선다. 길은 처음부터 심한 경사(傾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파른 지점에는 어김없이 안전로프나 통나무 계단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서 헬기장을 지나면, 오래지 않아 운동기구를 갖춘 쉼터삼거리(이정표 : 보안암 0.6Km/ 약수터 0.Km/ 정상 05Km)를 만나게 된다. 다솔사에서 봉명산 정상을 거치지 않고 곧장 보안암으로 갈 수 있도록 닦아 놓은 길이다. 쉼터에서 조금 더 걸으면 이번엔 사거리(이정표 : 정상 0.6Km/ 보안암 0.5Km/ 서봉암 1.8Km/ 약수터 0.2Km)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보안암으로 가려면 왼편 길로 진행하면 된다.

 

 

 

 

 

사거리에서 숲길을 따라 얼마간 걸으면 돌을 쌓아올린 높다란 축대(築臺)위에 세워진 암자(庵子) 하나가 보인다. 1947년에 세워졌다는 보안암(普安庵)이다. 축대 아래를 돌아 돌계단을 오르면 너덜의 돌을 쌓아 만든 사각형의 돌무더기가 눈에 들어온다. 고려시대에 수행용(修行用)으로 만들었다는 석굴(石窟)이다. 그 좌우(左右)에는 지장전과 요사 역할을 하는 관음전이 자리를 잡고 있다.

* 보안암 석굴(普安庵 石窟), 고려 말에 스님들의 수행을 위한 시설로 만들었다고 하나.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석굴은 뒷산의 경사면을 L자 모양으로 파내고 다진 터에, 널빤지 모양의 돌을 쌓아올렸다. 자연석을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분묘형의 석굴로서. 앞면 9m에 옆면 7m 정도 되는 직사각형의 모습이다. 정면에는 돌기둥을 세워 문을 만들었고, 윗면은 완만하게 경사를 이룬 둥근 모형이다. 석굴 안에는 도깨비의 얼굴이 생동감있게 조각된 ‘향 받침대’가 있고, 그 뒤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인자함보다는 엄격하게 보이는 부처 좌우는 15나한들이 지키고 있다. 원래는 16나한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사라져 버렸단다.

 

 

 

 

 

보안암에서 이명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까 들어왔던 길로 되돌아 나가야만 한다. 그러나 무작정 되돌아나가기 보다는 오른편의 대나무 숲길로 잠시 들어서 보자. 마치 책(冊)을 쌓아 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루떡바위라는 이름을 떠올리면서 바라보면 시루떡의 옆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 기괴(奇怪)한 생김새의 바위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위는 아니기 때문에 행운(幸運)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왕에 그 옆에 있는 다른 바위의 위도 올라가 보자. 남해(南海)의 넘실대는 바다와, 그 위를 떠다니는 다도해(多島海)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안암으로 들어왔던 길로 되돌아나가다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삼거리(이정표가 없다)에서는 왼편 오솔길로 올라서야 이명산으로 가게 된다. 이어서 곧이어 만나게 되는 능선 안부에서는 선택(選擇)이 필요하다. 능선을 통해 봉우리를 넘어 깨사리고개로 가는 방법과 곧바로 능선을 가로지른 후 둘레길을 따라 깨사리고개로 가는 방법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둘레길을 권하고 싶다. 봉우리를 넘는 산길이 잘 나있지 않을뿐더러, 별다른 볼거리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능선을 가로지르며 내려서면 ‘물고뱅이둘레길(3.0Km)’이라고 쓰인 이정표가 보인다. 물고뱅이는 곤양면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으로서, ‘물을 가두어 두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물고뱅이마을이 이 부근이라서 둘레길의 이름도 마을 이름을 따른 모양이다. 둘레길은 깔끔히 정비가 되어 있을 뿐더러, 길가에는 정성들여 돌탑(cairn)들을 쌓아 놓는 등 신경을 많이 쓴 흔적(痕迹)이 역역하다.

 

 

 

 

문득 MTB(mountain bike) 동호인(同好人)들이 좋아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둘레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임도(林道)가 나타나고, 임도를 따라 얼마간 걷다보면 이내 깨사리고개(이정표 : 이명산 1.5Km)이다. 봉명산과 이명산을 갈라놓은 깨사리고개는 북천에서 곤양으로 넘어가는 2차선 포장도로이다. '깨사리'라는 말은 경상도 사투리로 '고사리'를 말한다는데, 그래서인지 이명산으로 오르는 길가에는 고사리가 많이 분포(分布)되어 있었다.

 

 

 

 

이명산으로 오르는 완만(緩慢)한 경사(傾斜)의 산길은 점점 가팔라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로프의 힘을 빌어서야 산을 오를 수 있게 만들고 있다.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이명산(理明山) 정상(이정표 : 무고재 1.5Km/ 향토재 6.0Km/ 시루봉 1.9Km)에 오르면, 먼저 ‘이명산 상사봉(想思峯) 해발 570m’라고 새겨진 정상석이 눈에 들어온다. 남쪽 모퉁이에는 팔각정(이명정)이 세워져 있다. 아마 남해(南海)바다의 조망(眺望)이 뛰어나니 실컷 구경하라는 모양이다. 하동의 금오산 뒤로 다도해가 펼쳐지고, 그리고 다른 방향에 희미하게 보이는 산들은 아마 백운산과 지리산, 황매산, 와룡산일 것이다.

* 전설(傳說)에 의하면 옛날에 동경산(東京山)이라고 불리던 이 산의 정상에 있던 커다란 연못에는 심술궂은 이무기가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화가 날 때마다 독(毒)을 내뿜는 이무기로 인해, 장님이 되는 인근주민들이 늘어 갔었던 모양이다. 버티다 못한 주민들이 종내에는 불에 달군 돌로 연못을 매워버리고 이무기를 쫒아버렸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이맹산(理盲山)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어젠가부터 이명산(理明山)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명산 정상에서 팔각정의 반대편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오면 삼거리(이정표 : 마애불 0.1Km/ 황토재 5.5Km/ 이명산 0.5Km)에 닿게 된다. 지리산과 연결되는 황토재로 가는 길과 나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오른편 마애불방향으로 내려서면 잠시 뒤에 시루떡을 닮은 바위 세 개가 보인다. 그중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바위의 암벽(巖壁)에 양각(陽刻)기법으로 부처님을 새겨 놓았다. 바로 경남유형문화재 제136호로 지정된 이명산 마애석조여래좌상(理明山磨崖石造如來坐像)이다. 이 마애불이 영험(靈驗)이 있어서인지 무속인(巫俗人)인 듯한 사람들 몇 명이서 치성(致誠)을 드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바위 또한 그 형상(形象)이 자못 기묘(奇妙)하다. 한쪽 면은 거대한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고, 옆면은 시루떡을 쏙 빼다 박았다. 세 번째로 만나게 되는 바위는 시루떡을 닮기는 했으나, 닮은 정도나 생김새는 다른 두 개에 비해 많이 뒤떨어진다. 마애불(磨崖佛)이 새겨진 바위에다가 이 2개의 바위를 더해서 ‘삼형제바위’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마애불 이정표 : 쉼터 0.7Km/ 이명산 정상 0.5Km/ 수련원 0.7Km)

 

 

 

 

마애불에서 능선을 따라 얼마간 걸으면 이병주문학관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작은 고개에 닿게 된다. 이정표에는 직전안골(왼쪽)과 마애불 가는 방향만 표시되어 있지만 계명산(382m)으로 가려면 곧바로 직진하면 된다. 사거리에서 조금 더 걸으면 또 하나의 사거리가 보이나 이곳에서도 곧바로 직진하면 된다.

 

 

 

산행날머리는 작전리

고개에서 북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20분 정도를 곧장 오르면 계명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계명산 구간은 길도 뚜렷하지 않을뿐더러, 수명(壽命)이 오래되지 않은 볼품없는 소나무들만 보일뿐, 가슴에 담아둘만한 볼거리는 하나도 없다. 매년 가을 이곳에서 열리는 ‘코스모스 축제(祝祭)’를 위해서 등산로를 정비하고 있는지 주변 나무들을 솎아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망(眺望)은 트이지 않는다. 거기다가 계명산 정상에는 정상임을 알려주는 어떠한 표시(標示)도 일절 눈에 띄지 않는다. 계명산 정상에서 밋밋한 내리막길을 따라 20분 정도 내려오면, 농가(農家)의 마당을 지나게 되고, 이어서 밤나무단지 사이로 난 농로(農路)를 따라 걷다보면 이내 1005번 지방도(地方道 : 북천면과 곤양면을 잇는다)와 만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