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어산(萬魚山, 670.4m) - 구천산(九天山, 620m)

 

산행일 : ‘13. 4. 28(일)

소재지 :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과 단장면의 경계

산행코스 : 장군당 입구→장군당 갈림길→만어사→만어산→점골고개→감물고개→구천산→영천암 입구(산행시간 : 4시간20분)

함께한 산악회 : 기분 좋은 산행

 

특징 : 전국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흙산으로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다만 용왕의 아들에 얽힌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만어사(萬魚寺)와 만어석(萬魚石)으로 인해 등산객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미륵바위는 아들 낳기를 원하는 수많은 여성들을 끌어들인다고 한다. 그러나 산행만 놓고 볼 때에는 만어산보다 종주코스에 함께 포함시키는 구천산이 훨씬 낫다. 구천산의 정상어림은 바위구간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조망(眺望)도 뛰어날뿐더러 비록 잠깐이지만 스릴까지 선물하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장군당입구(우곡리)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삼랑진 I.C에서 내려와 1022번 지방도를 따라 양산방향으로 잠시 달리다가 삼랑진역(삼랑진읍 송지리) 조금 못미처에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군도(郡道 : 만어로)를 따라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우곡리에 이르게 된다. 우곡리 입구의 만어사 안내석 세워진 곳에서 만어사 방향으로 난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게 되는 ‘장군당’과 ‘선명사’ 안내판이 세워진 갈림길이 산행들머리이다.

 

 

 

 

장군당 또는 선명사 안내판(案內板)이 가리키는 오른쪽 방향으로 들어서면 잘 지어진 전원주택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에는 만어산이 버티고 있다. 산꼭대기에 ‘이동통신 기지국’의 안테나시설이 세워진 것을 보면 아마 이 부근에서 가장 높은 산인 모양이다. 전원주택단지 앞에는 각종 아름다운 꽃들이 활짝 피어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목단(牧丹), 여성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의미하는 ‘5월의 꽃’이 목단인데, 5월이 되기도 전에 꽃망울을 활짝 열고 화사함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길가에 방치된 목장승, 남성의 성기(性器) 모양으로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장승은 나무가 썩어서 허리가 동강난 채로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다. 이왕에 내보인 작품이니 관리까지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전원주택단지를 지나서도 임도(林道)는 계속해서 널따랗게 이어진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왼편으로 나뉘는 갈림길을 2번 만나게 된다. 목장승을 지나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장군당’이라 적힌 이정표를 따른다. 그리고 재차 만나게 되는 갈림길에서는 왼편의 ‘장군당’을 버리고 곧장 올라가면 된다. 장군당 갈림길을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왼편에 잘 가꾸어진 납골묘역이 나온다. 이곳에서 임도는 폭을 줄이면서 오른편으로 휘면서 산길과 이별을 고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20분 정도가 지났다.

 

 

 

 

납골묘역의 뒤편에서 산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사람이 자주 다니지 않는 탓인지 산길은 뚜렷하지가 않다. 산길에 우거진 잡목(雜木)이 발걸음을 더디게 만드는데, 거기다 경사(傾斜)까지 가파르기 때문에 오르기가 여간 힘들지가 않다. 자연스럽게 숨결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산허리길을 왼편으로 돌기도 하면서 20분쯤 오르면 주능선을 만나게 되면서 산길이 뚜렷해진다.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을 숨이 턱에 차게 오르다보면, 가끔은 경사(傾斜)가 누그러지면서 가족묘원이 나오기도 한다.

 

 

 

납골묘역에서 40분 가까이 걸으면 이동통신기지국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기지국 방향으로 50m쯤 올라가면 왼편에 오솔길이 나타난다. 만어사로 넘어가는 산길이다. 물론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왼편으로 내려가도 만어사가 나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곧바로 산을 넘어가는 산길을 택한다. 거리를 단축하는 지름길일뿐더러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한 고개를 하나만 넘으면 되기 때문이다.

 

 

 

기지국으로 가는 임도(林道)에서 산길로 들어서서 10분쯤이면 만어사에 이르게 된다. 그다지 또렷하지 않은 산길을 따라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앞이 시원하게 트이면서 만어석이라고 불리는 너덜겅이 광활(廣闊)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만어사가 오롯이 앉아있다. 만어사 앞의 널따란 계곡을 만어석이라고 불리는 바위들이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너덜겅을 걷는데 쭈그리고 앉아 바위를 두드리고 있는 여성이 보인다. 이유를 물으니 바위에서 종소리가 난다며 또 다시 바위를 두드려 준다. 아니나 다를까 날카로운 쇳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만어석(萬魚石)이라 불리는 이 너덜겅은 옛날 용왕의 아들을 따라왔던 동해의 고기들이 죽어서 변했다는 돌들로 두들기면 종소리가 난다고 해서 종석(鐘石)이라고도 불린다. 만어사 하면 떠오르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길이 300여m, 너비 100여m의 절 앞 계곡에 가득 찬, 어산불영(魚山佛影)이라 불리는 수만 개의 너덜겅이다. 이 너덜겅이 2011년 천연기념물 528호로 지정된 것을 보면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국내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는 비슬산 암괴류(천연기념물 제435호)와 밀양 얼음골 암괴류(천연기념물 334호)가 있다. 한때(조선 세종)는 만어산 경석(磬石)을 채굴해 악기로 만들려 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너덜겅을 통과하면 만어사(萬魚寺)이다. 전설(傳說)에 의하면 만어사는 AD46년에 수로왕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수로왕 때 가락국의 옥지(玉池)에서 살고 있던 독룡(毒龍)과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羅刹女)가 서로 사귀면서 뇌우(雷雨)와 우박을 내려 4년 동안 오곡이 결실을 맺지 못하게 하였다. 수로왕은 주술(呪術)로써 이 일을 금하려 하였으나 불가능하였으므로, 예를 갖추고 인도 쪽을 향하여 부처에게 청하였다. 부처가 신통으로 6비구와 1만의 천인(天人)들을 데리고 와서 독룡과 나찰녀의 항복을 받고 설법수계(說法授戒)하여 모든 재앙을 물리쳤다. 이를 기리기 위해서 수로왕이 절을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無隻山)의 신승(神僧)을 찾아가서 새로 살 곳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터라고 일러준 신승의 말에 따라 왕자가 길을 떠나니 수많은 종류의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다고 한다. 용왕의 아들이 머물러 쉰 곳이 이 절이었다. 그 뒤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바위로 변하였고 수많은 고기들은 크고 작은 화석으로 굳어 버렸다고 한다. 현재 절의 미륵전(彌勒殿) 안에는 높이 5m 정도의 뾰족한 자연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된 미륵바위라고 하며, 미륵전 아래에는 무수한 돌무덤이 첩첩이 깔려 있는데, 고기들이 변한 것이라고 해서 만어석(萬魚石)이라고 부른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466호로 지정된 ‘3층 석탑’이 있다.

 

 

 

 

만어사 경내에 들자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웬일일까? 그 이유는 경내(境內)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난 다음에 알 수 있었다. 주불전(主佛殿)인 대웅전은 1층짜리 조그만 전각인데, 미륵전은 2층으로 커다랗게 지어졌다. 그래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만어사의 내력을 알고 나면 왜 그렇게 건물이 지어졌는지를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미륵전에 모시고 있는 미륵바위가 이곳 만어사를 대표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미륵바위는 용왕의 아들이 죽으면서 변했다는 높이가 5m 정도 되는 바위이다. 미륵바위 앞에서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수많은 부녀자(婦女子)들이 찾는다고 한다. 미륵바위는 동전이 들어붙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에 KBS의 '스펀지'란 프로그램에 소개가 되었을 정도이다. 그때 방송에서 나온 문제가 '밀양시 만어사란 절에는 □가(이) 있다'라는 문제였고, 그 정답은 '동전이 붙는 바위'였다. 방송을 보고 하도 많은 사람들이 바위에다 동전을 붙이는 통에 요즘에는 절에서 붙이는 못하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 미륵전의 뒤로 돌아가 보면 커다란 바위가 건물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륵바위를 놓고 건물을 지은 탓에 건물 안에 들어가지 못한 부분이라고 한다.

 

 

 

 

만어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미륵전의 오른편 앞 모서리에서 열린다. 산길은 처음부터 가파르게 시작된다. 산길은 가파른 경사(傾斜)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는 지그재그로 방향을 틀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오르기가 버겁지만 길가에 서있는 크고 작은 바위들을 벗 삼아 쉬엄쉬엄 오른다.

 

 

 

 

만어사를 출발한지 20분이 조금 넘으면 이동통신기지국의 중계탑을 지난다. 기지국을 지나면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쌍바위라고 불리며 바위의 위는 전망대의 역할을 한다. 위로 올라가면 발아래에 낙동강의 흐름이 눈에 잡히고, 삼랑진 쪽에 늘어선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 위로 오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으나 구태여 오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어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眺望)과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쌍바위에서 정상까지는 50m 정도의 거리이다. 만어산 정상은 열 평 남짓한 분지(盆地), 한가운데에 밀양시에서 만든 예쁘장한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정상에 서면 낙동강과 삼랑진쪽 산들이 시야(視野)에 잡힌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조금 전에 올랐던 쌍바위 전망대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천태산과 재약산, 가지산, 운문산 등의 산군(山群)들에 대한 조망까지 감안한다면 아까보다 더 낫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산은 남동쪽에 있는 구천산 방향으로 내려선다. 구천산으로 향하는 능선의 왼편은 밀양시 단장면, 오른편은 삼랑진읍이다. 진행방향 저 멀리에 보이는 구천산의 왼편에 보이는 산은 금오산일 것이다. 물론 삼랑진 방향에는 무척산과 중리동산이 우뚝하다. 능선을 걷다보면 ‘영축지맥’이라고 쓰인 팻말이 나무에 걸려있는 것이 보인다. 팻말이 알려주듯이 지금 영축지맥(靈鷲枝脈)을 걷고 있는 것이다. 영축지맥은 낙동정맥이 천의봉에서 부산 몰운대로 치닫다가, 그 종점을 좀 못간 양산 영축산에서 가지를 치는 산맥을 말한다. 지맥(枝脈)은 금오산과 구천산 그리고 만어산과 청용산 등을 만든 후에 밀양강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삼랑진에서 그 숨을 다하는데 그 길이는 45.8km에 이른다.

 

 

 

만어산에서 내려서면 오래지 않아 한참 정비(整備)중인 임도(林道)를 만나게 된다. 산길은 먼지가 풀썩거리는 임도를 100m쯤 따르다가 다시 능선으로 난 오솔길로 들어선다. 능선을 가득 매운 소나무들이 보내오는 짙은 솔향에 젖어 걷다보면 이내 점골고개에 이르게 된다. 점골고개는 자동차가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널따란 고갯마루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누군가가 몰고 올라왔는지 고갯마루에는 승용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우곡마을에 이르게 된다. 만어산을 출발한지 30분 정도가 지났다.

 

 

 

산길의 주변은 온통 소나무 천지, 이곳뿐만 아니라 만어산과 구천산 일대는 온통 소나무군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오늘 산행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편백나무 다음으로 피톤치드(phytoncide)를 많이 배출하는 나무가 소나무이니 말이다.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산행 내내 마음껏 마실 수 있으니 오늘 산행은 분명히 웰빙(Well-being)산행에 휠링(healing)산행을 더한 것이 분명하다.

 

 

 

구천산으로 가려면 점골고개에서 맞은편에 보이는 610봉으로 올라서야 한다. 610봉 근처에서는 가끔 길이 헷갈리는 곳이 나타나기도 한다. 비록 희미하기는 하나 갈림길이 가끔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산악회의 리본을 보고 진행하면 된다. 특히 곳곳에 매어져 있는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의 리본을 참조한다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이다.

 

 

 

점골고개를 지나 구천산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편 나무숲 사이로 우곡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마을 한쪽에 원형으로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 멋스럽다. 그러나 산행 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망자(亡者)의 유골(遺骨)을 모시는 납골당(納骨堂)이라고 한다.

 

 

점골고개에서 소나무가 울창한 봉우리 몇 개를 넘으면 산길은 안부를 향해 급하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린다. 안부에는 사찰보다는 여염집 민가를 더 닮은 선우사라는 절이 있다. 오늘 무슨 행사가 있는지 절 주변에는 많은 차량들이 늘어서있고, 사찰 안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북적이고 있다. 선우사를 지나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100m쯤 더 걸으면 감물고개이다. 감물고개는 삼랑진 우곡마을에서 단장면 감물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이다. 점골고개에서 감물고개까지는 대략 30분 정도 걸린다.

 

 

 

감물고개에서 구천산으로 가려면 우선 도로변의 시멘트옹벽을 올라서야 한다. 어른의 가슴깨나 되는 높이여서 다소 부담스럽지만, 누군가가 중간의 구멍에다 나무공이를 박아 놓아 밟고 오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감물고개를 지나면서는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 순수한 흙길이던 아까와는 달리 길은 다소 거칠어진다. 가끔가다 바위길이 섞여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주변 소나무들에서 떨어진 솔가리(소나무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어 푹신푹신 하기는 매 일반이다.

 

 

 

감물고개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르면 산길은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다시 고도(高度)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경제림(經濟林) 조성을 위해 벌목을 한 개활지(開豁地) 두 곳을 지나게 된다. 개활지 두 곳은 두 개의 봉우리라고 보면 될 것이다. 소나무 등을 베어낸 개활지에는 편백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죽은 나무들이 즐비한 것이 생존율이 50%를 넘지 않는 것 같다.

 

 

 

주의가 필요한 지점, 구천산의 전위봉인 헬기장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금오산으로 가는 길이므로 구천산으로 가려면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방향 찾기가 어려울 경우에는 이곳에서도 부산일보나 국제신문의 리본을 참조하면 된다.

 

 

 

헬기장에서 정상까지는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그 길은 아쉬운 길이다. 왼쪽 사면(斜面)이 아쉽게도 산불의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능선에서 늠름하게 자라던 나무들이 검게 그을린 채로 흉물스럽게 널려있다. 불이 약하게 지나갔던 바위 사이 나무는 밑둥치에 검은 상흔만 지닌 채 그래도 살아남았다. 이렇게 큰 상처를 남기는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산에서의 화기(火器)사용은 자재(禁)해야 할 것이다.

 

 

 

구천산으로 오르는 길은 암릉이다. 암릉구간은 길거나 험하지는 않지만, 중간어림에는 로프를 붙잡아야 오를 수 있는 곳도 있다. 구천산의 정상은 커다랗고 뾰쪽하게 생긴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 위로 오르기가 만만치 않을뿐더러, 서있을 마땅한 공간도 없으니, 조망(眺望)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구태여 바위 위로 오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정상석도 세워져 있지 않다. 그저 바위 옆의 나뭇가지에 ‘영축지맥 구천산’이라는 팻말이 매달려 있을 뿐이다. 구천산은 9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고도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예전에 아홉 마리의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 얘기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하더라도 결론은 같다. 그만큼 산이 깊다는 얘기인 것이다.

 

 

 

 

두 사람이 서도 불안한 자세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뾰쪽 바위 위의 정상은, 일단 올라서기만 하면 뛰어난 조망(眺望)으로 보답해 준다. 경남 남부(南部)의 모든 산들이 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바로 앞에는 금오산과 천태산 그리고 무척산과 신어산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천황산과 운문산, 영축산 등 영남알프스의 산군(山群)들이 첩첩이 쌓이며 하늘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정상에서 하산지점을 영천암으로 잡고 조금만 나아가면 망(望)바위가 나온다. 누군가 공들여 쌓은 듯한 돌탑이 세워져 있는 망바위에 서면 또 한 번 시야(視野)가 툭 터진다. 남쪽에는 토곡산과 천태산, 금오산이, 그리고 동북쪽에는 가지산과 운문산 등 영남알프스의 준봉(峻峰)들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영천암으로 내려가는 길은 한마디로 험하다. 하산 길의 초입인 암릉길이 차라리 부담이 없을 정도이다. 암릉이야 바위가 앞을 막으면 우회(迂廻)하면 되겠지만, 경사(傾斜)가 가파른 흙길은 미끄러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가파른 경사를 이겨보려고 이리저리 갈지(之)자를 만들 수밖에 없는 비탈길은 20여분이 넘도록 길게 이어진다. 길가에 붙잡을 지지물(支持物)이 없기 때문에 내려서는 속도를 조절하기가 어려운 하산길은 안전에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산행날머리는 ‘영천암 입구’

정상에서 날머리인 영천암 입구까지는 1시간이 조금 못 걸린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은 내려오다 보면 가끔 길이 희미해지는 곳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신경을 써서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산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길게 이어지던 가파른 경사(傾斜)가 누그러질 즈음 길가에 시설물(施設物 : 영천암의 집수시설로 추정) 하나가 보이고,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林道) 위에 내려서게 된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올라가면 영천암이고 우곡마을로 가려면 왼편으로 내려가면 된다. 임도를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우곡리에서 단장면으로 넘어가는 도로와 만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