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산 (武夷山, 548m)-수태산 (秀太山, 571m)-향로봉(香爐峰, 579m)
산행일 : ‘12. 3. 17(토)
소재지 : 경남 고성군 하일면과 하이면의 경계
산행코스 : 운흥사→천진암→낙서암→향로봉→학동재→수태재→수태산→문수암주차장→무이산→문수암→문수암주차장→약사전(산행시간 : 4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고성에서 다도해(多島海)의 아름다운 풍광(風光)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곳 중의 하나이다. 야트막한 산은 오르기도 쉬울뿐더러(무이산을 먼저 오를 경우) 운흥사와 문수암이라는 천년고찰(千年古刹)을 두 개나 품고 있다. 거기에다 신라 화랑들이 수련장(修練場)으로도 사용했을 정도로 정기(精氣)가 넘치는 산이다. 자녀들과 함께 하는 가족 산행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 산행들머리는 문수암 주차장
남해고속도로 사천 I.C를 빠져나와 3번국도(國道/ 삼천포방향)와 33번국도(國道/ 고성방향)를 번갈아 달리다가 상리면 고인돌공원(公園)에서 1016번 지방도(地方道/ 삼천포 방향)로 바꾼 후, 이어서 1001번 지방도(하이면 방향)로 옮겨 들어가면 하이면 봉현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접어들면 오른편에 하이저수지(貯水池)라는 크고 청초한 호반(湖畔)을 가진 호수가 보인다. 겨울철은 물빛들이 눈을 부릅뜨는 계절이다. 이곳 하이저수지 또한 호면(湖面)의 물 빛깔이 시퍼렇다. 저수지를 끝날 즈음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접어든 후, 얼마간 더 들어가면 운흥사 입구 주차장(駐車場)에 도달(到達)하게 된다. 주차장 한쪽 귀퉁이에 향로봉 천진암 낙서암과 운흥사를 가리키는 이정표 서있다. 천진암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왼편 다리(불영교)를 건너도록 되어있고, 오른편으로 가면 운흥사이다.
▼ 차(車)에서 내리는 순간 청량(淸凉)한 바람 한 줄기가 뺨을 스치며 지나간다. 약간 서늘하지만 맵지는 않다. 아마 이런 것을 보고 봄바람이라고 부르나 보다. 망설임 없이 윈드 스토퍼(wind-stopper)를 벗어 배낭에 갈무리한다. 아침에 떠나온 서울은 가는 겨울이 앙탈을 부리면서 옷깃을 파고들었는데, 이곳은 오히려 두꺼운 외투가 거추장스러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훈훈한 남풍(南風)이 뺨을 가지르고 있다.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이다. 운흥사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아무리 시간에 쫒기는 산행일지라고 결코 천년고찰이라는 운흥사를 들러보지 않을 수는 없다. 오늘 오르게 될 향로봉은 빼어난 암릉미을 자랑하는 산으로 소문나있지만, 그렇다고 운흥사를 빼 놓고 향로봉을 거론하는 것은 무의미(無意味)하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비교적 높다란 계단을 오르면 너른 터가 나오고, 여기에 전각이 들어앉아 있다. 현재 운흥사의 전각(殿閣)은 그다지 많지 않다. 금당(金堂)인 대웅전(大雄殿)이 오른쪽에 치우친 듯이 자리하고, 그 옆에 명부전이 있다. 그리고 대웅전 왼쪽에 보광전(普光殿) 편액이 달린 인법당이 보인다. 세 전각 뒤 높은 곳에는 칠성각(七星閣)이 자리하고 있어, 마치 칠성각이 대웅전과 보광전을 양쪽으로 거느린 듯한 특이한 가람(伽藍)배치를 하고 있다.
* 운흥사(雲興寺),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1350년(고려 충정왕 2)에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다. 임진왜란 때 유정(惟政)이 6천 명의 승병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왜군과 싸운 진충보국(盡忠報國)의 현장이다. 문화재로는 ‘운흥사 영산회괘불탱 및 궤’(보물 제1317호)와 운흥사소장경판(보물 제184호), 그리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대웅전(제82호)와 영산전(제147호)이 있다.
▼ 대웅전과 명부전, 그리고 보광전 사이에 널찍한 공간이 있고, 그 공간 속에 독특한 장독대 하나가 보인다. 투박하면서 토속적(土俗的)인 것이 마치 옛 고향집 뒷마당에서 보았던 장독대와 흡사하다. 원형으로 된 장독대의 담은 납작한 돌과 황토로 층층이 쌓아 올린 후, 그 위에 기와지붕을 예쁘게 둘러 쳤다. 저 장독대는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을 자연(自然)과의 절제(節制)와 조화(調和)를 이루면서 지내왔을까? 화려함이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지는 투박함으로 인해 오랜 세월을 버티어냈을 것이다. 장독대 옆에 있는 옥샘에서는 약수(藥水)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냉큼 한 모금 마셔본다. 달고 찬 것이 한마디로 감로수(甘露水)이다. 숲과 나무 그리고 흙이라는 천연(天然) 여과(濾過)시설을 거쳐 솟아오르는 샘물은, 아무리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약수터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인체(人體)에 뛰어난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을 타고 널리 알려져, 인근 사천은 물론 진주에서까지 식수(食水)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 운흥사의 왼편 계곡을 따라 난 포장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올라가면 운흥사의 부속암자(附屬庵子)인 천진암(天眞庵)을 만나게 된다. 천진암으로 올라가는 숲길에는 생명(生命)이 숨 쉰다. 숲길 사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에 반짝이는 햇살이 깃들고 숲의 교향악이 울린다. 찾는 이들에게 경외감(敬畏感)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 계곡 건너편에 보이는 천진암(天眞庵)은 1692년(숙종 18) 응화선사(應化禪師)가 창건한 암자이다. 그러나 역사에 비해 그 규모는 왜소하기 짝이 없다. 전각(殿閣)이 한 채뿐인 한적한 암자(庵子)인데, 아마 법당(法堂)과 요사(寮舍 : 승려들의 부엌과 식당, 그리고 잠자고 쉬는 공간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함께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인기척에 문을 열고 내다보는 보살님께 가벼운 목례(目禮)를 보낸 후, 낙서암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 천진암에서 낙서암(樂西庵)까지는 꽤나 암팡지게 경사(傾斜)진 등산로이다. 대부분 바위로 된 계단길인데, 가끔 바위가 없는 곳에는 시멘트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찾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있다. 흐르는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 20분 조금 못되게 오르면 낙서암 앞의 쉼터에 이르게 된다. 쉼터의 수도파이프에서 약수(藥水)가 흘러나오고 있다. 약서암에서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약수(藥水)로 보시(布施)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아 샘물을 마신다. 청량(淸凉)하면서도 맛있다. 낙서도인(樂西道人)이 수도(修道)하였다고 해서 낙서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 암자의 물은 기(氣)가 강(强)하기 때문에 이 물로 술을 빚어도 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 낙서암을 지나자마자 산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곧바로 향로봉으로 오르는 코스이고,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전망대(展望臺)를 경유해서 정상으로 오르게 된다. 두 길은 정상 못 미쳐 상두바위 언저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지만, 비 오는 날이 아니라면 오른편의 전망대 경유코스를 선택(選擇)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코스는 암릉으로 이루어져서 주변 경관(景觀)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 오른편의 통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우선 거대한 벼랑이 앞을 가로막는다. 바위들은 시루떡을 포개놓은 것처럼 층층이 쌓여 있는 퇴적암(堆積巖)이다. 산길은 거대한 암벽(巖壁)들을 우회(迂廻)하며 길을 이어간다. 너덜지대를 지나 두 벼랑사이의 협곡)峽谷)을 통과하고 나면 벼랑위로 올라서게 된다. 바위 벼랑 위는 뛰어난 전망대(展望臺)로 소문나있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짙게 끼인 해무(海霧) 때문에 조망이 트이지 않고 있다. 벼랑 끝에 앉아있는 명품(名品) 소나무를 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 전망대(신선대?)
▼ 전망바위에서 상두바위까지는 20분 남짓. 가는 길 곳곳이 모두 뛰어난 전망대(展望臺)이다. 향로봉을 향해 걷다보면 오른편 벼랑에 로프가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향로봉 최고의 전망대로 손꼽히는 상두바위 위로 오르는 코스(course)이다. 상두바위는 책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서 납작하게 보이기도 하고, 절벽(絶壁)같이 보이기도 한다. 상두바위 위로 오르면 통영의 미륵산과 벽방산, 그리고 사량도와 우도를 안은 남해 바다가 잘 조망(眺望)된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같이 짙은 해무(海霧)로 인해 조망이 트이지 않는 날에는, 구태여 바위 위로 오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냥 통과해 버린다.
▼ 상두암을 지나서 얼마간 더 진행하면 자그만 바위 계곡을 건너는 빨강색의 작은 철다리(鐵橋)를 만나게 된다. 이곳 하이면 애향회에서 자비를 들여 만들었다는 애향교(愛鄕橋)로서 제법 예쁘장하게 생겼다. 다리를 건너서 계속되는 암릉을 따라 걷다보면 또 하나의 전망대 위로 올라서게 된다. 발아래에 애향교가 내려다보이고, 다리 건너에는 상두암이 우뚝 서있다.
▼ 애향교
▼ 전망대에서 10분 남짓 더 걸으면 고성의 와룡산이라는 향로봉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향로봉 정상은 비교적 넓은 편이다. 한쪽 귀퉁이의 바위 위에 정상표지석('와룡산 향로봉' 대신 '향로봉'이라고만 적혀 있다)이 서있고 그 옆에 이정표(운흥사 1.8Km/ 수태산 정상 4.2Km, 상리동산 2.2Km)가 보인다. 사방이 대부분 갈대와 나무숲으로 가려진 탓에,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별로이다. 거기다가 짙은 안개로 인해 희미해져버린 사방의 풍경(風景)들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구별해 낼 수가 없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이 조금 더 지났다.
* 향로봉의 원래 이름은 ‘와룡산 향로봉’이라고 한다. 그러나 막상 향로봉에 올라보면 와룡산이라는 표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하긴 고성군청(郡廳)의 홈페이지에서도 ‘와룡산’이라는 이름을 빼버리고 그냥 향로봉이라고만 표기하고 있다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겨우 운흥사의 간판에서 그 흔적(痕迹)을 찾아볼 수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보통 사찰을 부를 때는 사찰의 이름 앞에 절이 소재하고 있는 산의 이름을 붙인다. 운흥사(雲興寺) 앞에 와룡산(臥龍山)이라는 산 이름이 붙어 있다는 것은, 뒷산인 향로봉이 원래는 와룡산이라고 불리었다는 것을 증명(證明)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 고을인 사천 땅에 100대 명산(名山)에 꼽힐 정도로 지명도가 높은 와룡산이 버젓이 버티고 있다. 그 덕분에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향로봉은, 잘난 이웃 덕분에 피해를 본 안타까운 우리네 현실이다.
▼ 향로봉에서 이정표가 지시(指示)하는 수태산 방향으로 100m정도 걷다가, 쉼터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 후 얼마간 내려오면, 숲길이 끝나면서 오른편 암벽(巖壁)위로 시야(視野)가 활짝 열린다. 어느새 안개가 옅어졌는지 조망이 트이고 있다. 수태산과 무이산, 그리고 가슴이 후련해지는 남해 바다 풍경(風景)이 펼쳐진다. 자란만과 무수한 섬 무리가, 해무(海霧)가 옅게 깔린 바다위에 흩뿌려져 있다. 손을 뻗으면 쉽게 잡힐 것 같다. 무이산과 수태산은 손쉽게 찾아가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산이다. 바다 쪽으로 시야(視野)가 터진 곳이 많기 때문에, 자기가 싫증을 내지 않는 이상 바다는 계속해서 걷는 이와 함께 하게 된다.
▼ ‘바위들이 다 마당바위이네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향로봉에서 만난 바위들은 대부분 널따란 암반(巖盤)으로 되어있다. 적은 것도 수십 명은 넉넉히 둘러앉을 만큼 널따랗다. 그래서 집사람의 입에서 금방 마당바위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을 것이다. 마당바위에 올라서면 오른편의 조망이 시원스럽다.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 높고 낮은 산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해무(海霧)에 휩싸인 섬들이 몽환적(夢幻的)인 분위기를 연출(演出)해내고 있다. 만일 날씨라도 맑다면 쪽빛 남해바다와 그 사이를 오가는 배들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절경(絶景)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전망바위에서 내려서서 학동재까지 가는 산길(향로봉에서 학동재까지는 2.2Km)은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능선은 계속해서 고도(高度)를 낮추어가고 있다. 가끔은 오름길도 나오지만 경사(傾斜)도 가파르지 않을뿐더러 거리까지 짧기 때문에 걷기에 부담스럽지가 않다. 걷기 좋은 산길에서 여유롭게 거닐다보면 바윗길 암반(巖盤)에 새겨진 특이한 문양(文樣)이 눈에 띈다. 공룡발자국이라고 한다. 공룡발자국 화석이 많기로 유명한 고성은 ‘공룡엑스포’라는 국제행사(國際行事)까지 열고 있을 정도이다. 그 공룡발자국이 집단(集團)으로 발견되는 곳이 상족암인데, 이곳 향로봉에서도 구경할 수 있으니 행운(幸運)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공룡발자국 못미처의 이정표 : 향로봉 1.8Km/ 수태산 정상 2.4Km, 상리동산 0.4Km)
▼ 공룡발자국
▼ 공룡화석지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학동재 삼거리이다(이정표 : 향로봉 2.2Km/ 동산마을 1.7Km/ 수태산 정상2.0Km, 척번정 4.8Km). 학동재는 하일면소재지(所在地)와 상리면소재지를 잇는 1016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고개이다. 고갯마루에서 문수암주차장으로 가는 임도(林道)가 왼편으로 나있기 때문에 삼거리로 불리는 것이다. 삼거리에서 문수암방향의 임도로 접어들자마자 수태산 정상으로 가는 산길이 열린다. 학동재에서 수태산 밑 수태재까지의 1.4Km구간은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만일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봉우리를 오르면서 헛힘을 쓰기 싫은 사람이라면, 이정표의 방향표시를 무시하고 그냥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수태재에 이르게 된다.
▼ 학동재를 출발해서 봉우리 두어 개를 넘으면 수태재에 도달하게 된다(이정표 : 향로봉 정상 3.6Km/ 수태산 정상 0.6Km, 문수암주차장(임도)). 고갯마루를 지나는 임도(林道)에는 잔자갈이 깔려있고, 임도 우측에는 헬기장이 조성(造成)되어 있다. 도로에 내려선 지점에서 문수암주차장 방향으로 100m 조금 못되게 걷다가 오른편 능선으로 접어들면 수태산 정상으로 오르게 된다. 들머리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수태산으로 오르는 산길은 암팡진 경사(傾斜)의 오르막길이다. 아마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경사가 가파른 구간일 것이다.
▼ 수태재
▼ 수태재에서 가파른 바윗길을 치고 오르면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암반(巖盤)위로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 다시 한 번 시원스레 조망(眺望)이 트인다. 지나온 향로봉 능선이 눈앞에 다가와 있지만, 안타깝게도 짙은 안개 때문에 흐릿하게 보일 따름이다. 이어서 보이는 커다란 바위무더기를 지나면 드디어 수태산 정상이다. 별로 넓지 않은 공터로 된 수태산 정상에는 정상표지석 대신에, 오래된 삼각점과 이름표를 머리에 얹고 있는 이정표(里程標)만이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다. 조망까지 좋지 않기 때문에 오래 머물 곳은 못된다.(이정표 : 향로봉 4.2Km/ 문수암 주차장 0.7Km, 척번정 2.9Km).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30분이 조금 더 지났다.
▼ 수태산 정상
▼ 정상에서 무이산으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城)터 같은 돌무더기를 만나게 되는데 주변에는 짙은 녹음을 자랑하는 측백나무가 무리지어 있다. 돌무더기 부근에서 만나게 되는 척번정 갈림길(이졍표 : 문수암 주차장 0.6Km/ 수태산 정상 45m/ 척번정 2.8Km)과, 보현사 갈림길(이정표 : 수태산 정상 0.5Km/ 문수암 1.0Km/ 보현사 2.0Km)에서 문수암 방향으로 진행하다보면 얼마 안 있어 문수암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내려가는 길가에 무선전화(KT) 중계시설과 문짝이 다 떨어진 폐(廢) 콘크리트 초소(哨所)가 있으니 방향을 잡을 때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 문수암 주차장 갈림길(이정표 : 문수암 0.5Km/ 무이산 정상 0.5Km/ 수태산 정상 0.7Km, 향로봉 정상 4.9Km)에서 시멘트포장도로를 버리고 왼편으로 접어들면 짙은 편백 숲이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편백 숲에 들어서면 이마에 부딪히는 청명(淸明)한 바람과, 가슴 깊이 스며드는 맑은 공기에 진한 ‘편백 향’이 잔뜩 실려 있다. 숲의 터널엔 봄을 향해 치닫는 찬연한 햇살이 앞 다투어 스며들면서 숲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사람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로 인해 요즘 부쩍 각광을 받고 있는 편백나무, 오늘 산행은 또 하나의 웰빙(well-being)산행이 되었다. 편백나무는 항균성 물질인 피톤치드를 다량 배출해서 심폐기능을 강화시키고,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아토피 치료 등에 좋은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 편백 숲을 지나 그다지 가파르지 않는 능선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무이산 정상이다. 무이산의 꼭대기는 조그맣다. 조금 아래에는 송신탑(送信塔)까지 있어서 산만(散漫)하가까지 하다.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이정표 머리끝에 매달린 ‘무이산 정상’이라고 쓰인 이름표에서 이곳이 무이산 정상임을 눈치 챈다. 문수암 너머 바다가 마치 커다란 호수(湖水)와 같은데, 해무(海霧)에 잠긴 바다에는 짙은 갈색의 섬들이 희미하게 떠다니고 있다.
* 무이산은 청량산(淸凉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청량산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머물고 있다는 중국(中國)의 산 이름을 빌려 온 것으로 이곳에 문수신앙(信仰)이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수려한 산세(山勢)를 자랑하여 예로부터 해동(海東)의 명승지로 알려진 곳으로, 신라 화랑들이 이곳에서 심신을 수련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 무이산에 정상에서 200m쯤 내려오면 암벽 사이사이에 수많은 전각(殿閣)들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문수암이다. 기암절벽(奇巖絶壁)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암자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한려수도(閑麗水道)에 떠 있는 섬들이 마치 징검다리와 같이 이어져 있다.
* 문수암(文殊庵), 688년(신라 신문왕 8)에 창건한 사찰(寺刹)로서 의상대사와 관련된 전설(傳說)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남해 보광산(금산)으로 가던 의상이 거지를 따라 가보라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계시(啓示)에 따라 무이산 꼭대기에 올랐더니 동행(同行)한 거지가 또 다른 거지와 함께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바위벽 사이로 사라졌다고 한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자연스레 흘러내린 문수보살상(文殊菩薩像)이 암벽에 나타나기에, 여기에다 암자(庵子)를 짓고 문수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문수암은 1959년 태풍 사라호로 건물이 붕괴(崩壞)된 뒤에 현대식(現代式)으로 새로 지은 것이다. 아무튼 청량산이라고도 불리는 이곳 무이산은 불교(佛敎)와 인연(因緣)이 많은 산인 모양이다. 청량산(淸凉山)은 중국의 불가(佛家)에서 아미산(蛾眉山), 보타산(普陀山)과 함께 3대 명산(名山)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문수암은 남해 금산(錦山) 보리암(菩提庵), 청도 운문사(雲門寺) 사리암(舍利庵)과 함께 영남의 3대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 문수암의 주(主) 전각(殿閣)은 문수단(文殊壇)이다. 문수단 뒤로 기암절벽(奇巖絶壁)이 암자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데, 의상대사가 보았다는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이 석벽에 천연적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보살상(菩薩像)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음은 아직 내 수양이 부족했던지, 아니면 내 눈에 쌓인 세속(世俗)의 찌꺼기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천불전 맞은편 절벽(絶壁)위에는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정(宗正)을 역임하신 청담스님의 사리탑(舍利塔)이 세워져 있다. 서울의 도선사에 스님의 부도(浮屠)가 있고, 추모제(追慕祭)도 도선사에서 지내고 있지만, 1973년에 이 암자(庵子)에서 수도했던 인연이 있다고 해서, 여기에 또 하나의 사리탑을 세워놓은 모양이다. 참고로 문수암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배지(流配地)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었다.
▼ 문수암에서 다도해(多島海)방향을 바라보면 유연하게 솟아오른 봉우리 위에 금빛으로 빛나는 불상(佛像) 하나가 보인다. 최근에 지어졌다는 약사전(藥師殿)이다. 약사전에는 동양(東洋) 최대의 금불상(金佛像)이 특이하게도 바다가 아닌 산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바깥에서는 약사전 지붕위로 머리 부분만 보인다. 문수암은 많은 대중(大衆)이 기도하거나 정진(精進)할 만큼 넓고 크지 않은 도량(道場)이다. 약사전의 건립은 문수암의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넓고 크게 지은 것 같다. 맞은편의 계단으로 오르면 불상과 눈을 맞출 수 있는 전망대(展望臺)이다. 불상 뒤에는 또다시 다도해의 풍광(風光)이 펼쳐지는데, 안개 속에 잠겨있는 조그만 섬들이 멋진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저렇듯 아름다운 풍광(風光)이기에, 혹시라도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의 불심(佛心)이 흐트러지는 일이라도 생길까봐 바다가 아닌 산 쪽으로 고개를 돌려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약사전>
▼ 약사전에서 바라본 문수암
▼ 산행날머리는 문수암주차장
문수암에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사실상의 산행은 끝이 난다. 약사전 답사(踏査)는 오늘 산행의 팁(tip)이다. 1천리 길을 멀다하지 않고 찾아온 우리들에 대한 산행대장의 배려(配慮) 덕분에 약사전을 둘러볼 수 있는 것이다. 약사전의 전망대에 서면 왼편의 산자락에 제법 큰 사찰(寺刹) 하나가 보인다. 25년 전에 세워졌다는 보현사(普賢寺)이다. 제법 큰 규모의 사찰이지만 시간도 없을뿐더러, 역사 또한 일천(日淺)하기에 답사를 포기하고 귀경(歸京)길에 오른다.
<보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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