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산(萊東山, 887m)-고덕산(高德山. 619m)

 

 

산행코스 : 봉서마을→동릉→내동산→남릉→장성동마을→506봉→535봉→고덕산(1~8봉)→고덕마을(산행시간 : 6시간20분)

 

소재지 :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과 진안군 백운면의 경계

산행일 : ‘11. 6. 12(일)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색 : 30번 국도(國道)를 따라 전북 임실군 관촌면에서 진안군 백운면으로 넘어가다보면 여덟 개의 봉우리들이 마치 병풍(屛風)처럼 펼쳐지고 있는 산이 보인다. 바로 고덕산이다. 고덕산은 남근바위, 산부인과바위, 통천문 등 특이한 바위가 많다. 고흥의 팔영산처럼 여덟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봉우리들을 잇고 있는 능선은 스릴 넘치는 암릉으로, 산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산꾼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산행들머리는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 봉서마을 버스정류장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장수 I.C를 빠져나와 26번국도(진안/전주 방면)와 30번국도(임실/남원 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백운면 소재지 조금 못미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덕현리 봉서마을에 이르게 된다.

 

 

봉서마을 버스정류장(停留場)의 뒤편에 보이는 마을로 들어서면서 오늘 산행이 시작된다. 논에서 일하고 계시는 주민께서 우리 쪽을 바라보면서 뭐라고 외치고 있다. 설마 우리는 아니겠지 하며 동네로 들어서지만 이내 잘못 들어왔음을 알게 된다. 오늘 우리가 겪게 되는 여러 번의 알바 중 그 첫 번째이다. 다시 되돌아 나와 농로(農路)로 접어든다. 농로를 따라 5분여를 걸어 들어가면 하천(河川, 섬진강 상류인 정자천)의 커다란 巖盤(암반) 위에 운치 있게 앉아있는 멋스런 정자(亭子)가 보인다. 명마대(溟磨臺)이다.

 

 

명마대의 왼편으로 접어들어 얼마간 진행하면 물기 한 점 없는 자그마한 개울이 보인다. 희미한 길의 흔적을 따라 개울을 거슬러 올라간다. 얼마간 올라가면 이내 만나게 되는 임도(林道)를 따라 다시 왼편으로 진행, 그러나 임도는 슬며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오늘 산행에서 두 번째로 겪게 되는 알바이다. 참고로, 여기서는 다시 되돌아 내려오는 것보다, 차라리 능선을 치고 오르는 것을 권하고 싶다. 비록 정규 등산로는 아니지만, 산행거리도 짧아지고 산행시간까지도 많이 절약(약20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정규등산로는 멀리 돌아가는 수고뿐만 아니라, 등산로 주변의 경치나 조망 등 볼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시 되돌아 내려와 진행하다보면 이번에는 제법 큰 개울이 보인다. 길의 흔적을 찾아 건너편으로 들어선다(참고로 여기서는 계곡을 건너지 말고 그냥 왼편으로 치고 오르는 길이 정규등산로이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어느새 오른편 능선을 향해 급경사 오르막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길은 길이로되 결코 길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길‘... 길의 흔적은 있으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지가 오래된 탓이지, 넘어져 길을 막고 있는 나무 등걸들이 썩어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면 능선 안분에 닿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벌써 한 시간이 넘었다. 아마 알바에 꽤나 많은 시간을 빼앗겼나보다.

 

 

 

능선안부에서부터 길은 고와진다. 고저(高低)가 심하지 않은 흙길, 거기다 오랫동안 쌓여온 낙엽들이 두껍게 쌓여 걷는 이들의 발목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다. 등산로 주변의 참나무들이 내뿜는 맑은 공기를 맘껏 마시며 걷다보면 이정표 하나가 보인다(내동마을 1.36Km/ 내동산 1.6Km). 우리가 올라온 능선으로 방향표시가 없는 것을 보면, 우리가 치고 올라온 능선이 정규등산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첫 번째 이정표에서 얼마간 치고 오르면 두 번째 이정표(방화마을 1.66Km/ 내동산 1.68Km=엉터리 이정표는 아까의 이정표보다 내동산이 더 멀다고 적어놓고 있다)가 보인다. 구수보 마을로 내려가는 길과 나뉘는 삼거리이다. 산악회 이대장께서 활짝 웃고 계신다. 예쁘장한 얼굴에 티 없이 밝은 미소, 언제나 봐도 좋은 인상이다. 아까 계곡을 건너지 않고 왼편 능선으로 치고 올라왔단다. 우리가 올라온 길이 정규 등산로가 아니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가야할 능선, 저 멀리 보이는 곳이 내동산이다.

 

 

 

구수보 마을 갈림길에서 능선은 암릉의 속살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거칠기는 하지만 별로 위험하지 않은 암릉, 거기다 조금만 경사가 심해도 쇠사슬로 양 옆을 매어 놓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걸어도 될 정도이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한참을 오르다보면 등산로 왼편이 훤하게 열리고 있다. 암반(巖盤) 위로 올라선다.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눈을 들어본다. 저 멀리 마이산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짙은 연무(煙霧, haze)까지도 자태를 완전히 가려버리지 못하는 것은, 가려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리라. 발 밑에는 바둑판 같은 백운 들녘이 손에 잡힐 것 같이 가깝다.

 

마이산

 

 

바위 전망대에서 조금 더 오르면 무인산불감시탑이 보이고, 암릉과 흙길이 번갈아 나타나는 오르막길을 500m쯤 치고 오르면 드디어 내동산 정상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아기자기한 암릉에서는 스테인리스 기둥에 쇠줄을 연결한 난간을 자주 만난다. 내동산으로 오르는 능선은 경사는 그리 심하지 않지만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이마에서는 땀이 비가 오듯이 쏟아지고 있다. 걷기에 지장을 줄 정도로 이마의 땀을 자주 훔칠 수밖에 없다. 여름은 이미 오래전에 우리 곁에 와있었나 보다.

 

 

봉서마을에서 올라오는 능선(동릉)

 

 

내동산 정상은 서너 평 남짓한 바위봉우리이다. (방화마을 3.26Km/ 동산마을 2.3Km/ 상염복 2.5Km) 정상의 한쪽 귀퉁이에 네모로 각진 말뚝 모양의 정상석이 박혀있고, 그 뒤를 이정표가 지켜주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두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원래의 내동산 정상은 거침없는 조망을 보여주지만 오늘은 짙은 연무(煙霧, haze) 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동쪽의 선각산과 덕태산, 남쪽 팔공산(장수), 그리고 북쪽의 운장산과 구봉산이 만들어내는 하늘금들을 마음속으로 그려볼 따름이다.

* 내동산(萊東山), 원래는 백마산(白馬山)이었으나, 일제가 내동산으로 바꾼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적에 산 근처에 귀골이 장대한 장수가 태어났는데, 누군가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자, 산에서 백말이 울면서 뛰어와 백마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1914년 일제가 내동마을은 경작하지 않는 묵정밭을 뜻하는 명아주래(萊), 동녘동(東)으로 고치고, 산 이름도 내동마을 뒤에 있다는 이유로 내동산으로 바꿔버렸단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은 암릉길, 내동산은 밋밋한 육산처럼 보이지만 남쪽은 거대한 바위절벽들이 도사리고 있는 산이다.

 

 

고덕산을 가기 위해 동산마을 방향을 향해 남릉으로 내려선다. 남릉을 5분 정도 내려가면 내동 폭포 갈림길이 나오고, 그 다음부터는 사람의 발길을 찾기 힘든 암릉이 시작된다. 조금만 벼랑이 높아도 밧줄을 매어놓았기 때문에 별로 위험하지는 않다. 아름답다는 느낌 보다는, 거칠다는 느낌이 더 강한 암릉 길은 40분이 넘게 이어진다.

 

 

 

 

암릉이 끝나면서 길은 얼마간 고운 흙길로 변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야(視野)가 확 트인다. 오른편 사면(斜面)이 벌목이 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벌목(伐木)이 진행 중인지라 산의 표면이 파헤쳐져 있어서 선두의 흔적을 놓쳐버린다. 몇 번을 두리번거리다가 앞에 보이는 고덕산을 목표로 삼고 이내 오른편 사면을 조심스레 내려선다. 엄청난 경사면(傾斜面), 만일이라도 미끄러질 경우에는 큰 부상을 입을 염려가 있으니 혹시 나중에라도 답사(踏査)하는 사람들이 내려서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벌목장(伐木場) 사면을 내려선 후,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장성동마을이다. 마을의 폐농가(廢農家)에 들어가 식수(食水)도 보충하고 뽕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오디도 따먹으면서 모처럼 여유를 부려본다. 장성동마을 앞을 2차선 아스팔트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30번 국도(國道) 너머로 우리가 가야할 고덕산과 삼봉산을 잇는 능선이 바라보인다.

 

 

 

국도(國道)와 개울을 가로지른 후, 건너편 능선을 향한다. 해 가파른 사면을 치고 오른다. 계곡을 따라 제법 넓은 농로(農路)가 나 있다. 농로의 주변의 밭들은 모두 묵밭,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사를 지었었는지 아직까지도 둑이 무너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묵밭 가운데 있는 커다란 뽕나무에는 시커멓게 익은 오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다들 가던 길을 멈추고 오디사냥에 매달린다. 묵밭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참고로 개울을 건너자마자 오른편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 능선을 치고 오르면 의미 없는 봉우리 하나를 생략할 수 있다.

 

 

 

 

506봉 부터는 서서히 바위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고덕산이 바위산이니만큼 고덕산에 가까워지고 있나보다. 흙으로 된 봉우리 위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덩그러니 얹혀있는 506봉에서 능선은 갑자기 고도(高度)를 낮추며 삼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삼봉리 갈림길이다.(이정표 : 고덕산 0.9Km/ 삼봉리 1.6Km)

 

고덕산 전위봉(535봉)

 

 

 

삼봉리 갈림길에서부터 본격적인 암릉길이 시작된다. 암벽을 기어오르다가, 옆으로 돌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바위 틈새를 넘다보면 고덕산 전위봉(前衛峰)인 535봉에 이르게 된다. 535봉 정상에 서면 진행방향으로 고덕산 정상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암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전위봉을 내려섰다가 다시 한 번 오르거나, 돌고, 또는 넘다보면 지능선 삼거리이다. 모처럼만에 만나는 흙길이 반갑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20분이면 고덕리에 이르게 된다. 오른편의 철제계단을 오른다. 계단은 사다리마냥 하늘을 향해 가파르게 서있다. 철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고덕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5시간20분을 훌쩍 넘겨버렸다.

 

전위봉에서 바라본 고덕산(8봉)

 

 

 

8봉의 정상은 서너 명이 앉으면 더 이상 남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은 암봉이다. 한쪽 귀퉁이에 ‘삼화상호신용금고’에서 세워 놓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네모난(四角) 기둥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다. 요즘 한창 물의를 빚고 있는 부산저축은행의 한 축이 삼화신용금고이다. 부산저축은행에 매각되었기 때문이다. 고덕산의 정상인 8봉은 고덕산 봉우리들 중에서 가장 조망이 뛰어나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성수지맥과 삼봉산, 내동산이 뚜렷하고, 진행해야할 방향에는 고덕산의 일곱 개 봉우리들이 올망졸망하게 늘어서 있대. 아쉬운 것은 남쪽 멀리에 있는 지리산의 능선과 덕태산, 선각산, 팔공산 같은 인근 명산들이 짙은 연무 때문에 그 자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성수지맥(聖壽枝脈) : 호남정맥 팔공산(1,151m)에서 섬진강 본류와 그 지류인 요천을 가르며 서쪽으로 내려선 산줄기는 마령치 다음의 펑퍼짐한 봉우리에서 두 개의 산줄기로 나뉜다. 바로 개동지맥과 성수지맥이다. 이중 '성수지맥(聖壽枝脈)'은 오수천의 서쪽 울타리를 이루면서 삼봉산, 고덕산, 무량산을 거쳐 순창군 적성면에 있는 구남마을의 어은정에 이르는 도상거리 56.8km의 산줄기이다.

 

고덕산으로 오를 때 지나왔넌 능선, 좌측의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내동산이다.

 

 

8봉에서 바라본 7봉, 8봉에서 남쪽 암릉으로 10m 정도 내려가면 왼편에 7봉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서면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뚫고 파란 하늘이 보인다. 바로 통천문이다. 구멍너머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계단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었다 가세요. 향기가 너무 좋답니다.’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는 어느 여성 등산객의 조언, 그분 말씀대로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있다. 갑자기 행복해진다. 아름다움은 곧 행복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마음씨에 아름다운 향기라니....

 

 

 

계단을 올라 6봉으로 가는 길에서 왼쪽으로 20m정도 비켜난 지점에 7봉이 있다. 등허리를 고추 세우고 있는 7봉의 남쪽은 수십 길 낭떠러지이다. 임실군에서 위험 경고판을 붙여 놓았으니, 경고를 따른다면 아무 탈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7봉에 올라서면 정상인 8봉의 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주변의 경관을 감상하면서 쉬었다 가라는 배려인지 통나무 의자까지 설치해 놓았다. 경고판 뒤의 암벽(巖壁)을 잡고 내려서면 8봉으로 곧바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구태여 모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이 늘어서 있고, 그 사이사이를 소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인가? 아님 고집불통(固執不通)? 조금만 아래로 비켜 내려선다면 질 좋은 토양을 만날 수 있을 터인데도, 구태여 이런 척박한 바위틈을 고집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여튼 불굴의 의지를 보이고 있는 소나무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7봉에서 4봉까지의 구간은 특별한 구경거리가 없는 구간이다. 특히 5봉과 6봉은 딱히 봉우리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능선과 구분이 잘 안 된다. 6봉에서 내려서서 제법 날카로운 바윗길을 올라서면 5봉이다. 5봉에서 조금만 더 내려서면 4봉이다. 4봉 정상에는 거대한 입석이 있다. 남성의 성기를 닮았다고 해서 남근석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결코 잘생긴 남근(男根)은 아닌 것 같다.

 

 

4봉을 넘어 3봉으로 가는 길목에 일명 해산굴이라고 부르는 곳이 나온다. 산부인과바위라고도 불리는데, 폭이 30Cm정도 되는 작은 바위틈이다. 배낭을 메고는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과하기 위해 벗어야만 하는 배낭을 산모의 뱃속에 있는 태아에 비유하고 있나보다. 배낭뿐만이 아니다. 배가 나온 남자들은 숨을 내뿜어 배를 홀쭉하게 만든 후에야 통과할 수 있단다. 조금 전에 만났던 바위가 남근바위였으니 구색을 맞춘 작명(作名)일까? 남성과 여성의 상징이 맞서 있으니 지나는 이의 가슴 또한 두근거림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무생물에까지도 짝짓기를 즐기는 인간의 악취미(惡趣味)...

 

 

 

2봉에 올라서면 진행방향에 머리위에 산불감시초소를 이고 있는 1봉의 꼭대기가 환히 내려다보인다. 1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야 한다. 계단은 사다리라고 부르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다 싶을 정도로 하늘을 향해 서슬이 시퍼렇게 서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구간은 로프를 이용해야만 오를 수 있었단다. 다행이 임실군에서 계단으로 바꾸어 놓은 덕택에, 비록 가파르기는 하지만 수월하게 2봉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1봉에서 바라본 2봉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1봉으로 올라서면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산 아래쪽으로는 고덕마을과 덕풍사가 나란히 누워있고, 오른쪽으로는 거칠고 우람한 산릉이 이어지고 있다. 1봉을 내려서기 직전, 너럭바위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른다. 경사가 얼마나 심한지 고덕마을의 집들이 서있는 발아래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숲속으로 들어서자마자 가파른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잠시 후 로프가 메어진 급경사 내리막길이 나타나더니 이내 통나무계단이 연이어 나타난다. 계단 등의 시설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급경사를 배겨낼 수 없기 때문인 모양이다.

 

 

 

산행 날머리는 고덕마을 주차장

통나무 계단이 끝나면서 고저(高低)가 없는 흙길이 나타나더니, 잠시 후 숲이 뚫리면서 고덕마을이 고개를 내민다. 고덕마을은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사방을 휘휘 둘러보아도 10가구가 채 안 되는 한적하기만 한 조그만 마을인데, 거기다 지붕은 60~70년대 새마을 운동 때 ‘지붕개량사업자금’으로 개량하였는지 모두가 슬레이트 지붕으로 통일 되어있다. 들에 일을 하러 나갔는지 아니면 주인이 도회지로 이사를 가버렸는지 낮인데도 불구하고 마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그러나 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회관이 지어진지 오래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은 이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음이 확실할 것이다. 비록 몇 명 되지 않을지라도... 마침 마을회관에 수도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서 손발을 씻는 김에 등목까지 하는 호사(豪奢)를 누렸다. 정상에서 고덕마을까지는 1.3Km이다.

 

고덕마을에서 바라본 고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