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산 (920m)
산행코스 : 복성이재→치재(철쭉군락지)→꼬부랑재→봉화산 정상→너럭바위→양치재→광대치→대안리(산행시간 : 휴식시간 제외하고 4시간 10분)
소재지 : 전북 남원시 야영면(흥부의 고향)과 장수군 번암면 경계, 하산지점인 대안리는 경남 함양군 백전면
산행일 : '09.5. 5(화)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결코 낮지 않은 산이지만 육산이라서, 등산로 전체가 오랫동안 쌓여온 낙엽 탓에 푹신하여, 오르고 내릴 때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봄이면 철쭉, 가을이면 억새가 장관... 정상까지 접근이 용이하므로 가족나들이에 적당... 그러나, 햇빛을 가리지 못하는 구간이 많아 여름산행지로는 적합하지 않다.
⇩ 산행 들머리는 복성이재
복성이재로 오르는 지방도는 느릿느릿 버스는 참으로 서서히 오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좁고 굽이가 심한 산간도로에 양옆으로 승용차들이 주차해있으니 당연지사... 행여 맞은편에서 오는 차라도 만난다면 낭패일텐데 다행이도 그런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들머리부터 넘치는 사람들로 인해 걷기조차 힘들다.
⇩ 복성이재에서 철쭉군락지인 치재까지는 성인걸음으로 20분 정도 걸으면 된다. 비록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지만... 그러나 오늘은 30분을 훌쩍 넘겨버렸다. 대구 번호판을 단 5대의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70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들... 같은 배낭에, 같은 등산복, 그리고 같은 머플러를 하고 있어 한눈에 같은 일행임을 알아 볼 수 있다. 쉬엄쉬엄 걷다, 한숨 돌리고 또 걸으니 부지하세월이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 정규 등산로를 버리고, 옆의 숲을 헤치고 올랐지만 10분 이상이 더 걸렸다. 갈길이 먼데.... 휴~~~
⇩ 고개를 드니 여린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이는 더 이상 오를 능선이 없다는 또 다른 표현의 하나일 것이다. 발걸음이 차차 빨라진다. 그만큼 어여쁜 꽃들을 보고픈 마음이 컸나 보다. 이내 도착한 봉우리, 봉화산 최대의 철쭉군락지가 발아래에 펼쳐져 있다. 치재로 내려서는 내리막길의 철쭉군락지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이정도만 되어도 감지덕지... 하여튼 이번 주말이면 절정을 이룰 것 같다.
⇩ 산등성이에 올라서면 치재 방향으로 철쭉군락지가 펼쳐진다. 철쭉터널 사이사이로 인파들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이게 바로 천국의 화원이 아닐까? 아직 덜 여물은 꽃들까지도 제각각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여기가 바로 동화속의 꽃 대궐... 치재는 아영면과 번암면을 연결하는 옛길이었다는데 지금은 철쭉나무만 빽빽이 들어차있다. 이곳의 철쭉나무는 어른이 철쭉군락 한 가운데로 들어서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키가 크다.
⇩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천국은 바로 마음속에 있다’ 어느 글에서 읽은 바와 같이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닐까? 꽃 속에 파묻히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다 천사가 되어버릴테니까... 모든 이들의 입가에 웃음이 맴돌고, 나 또한 날아갈듯 상쾌한 기분에 사로잡혀 내딛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부드러워진다. 아~ 천상의 화원! 이것이 꽃만이 가질 수 있는 신기한 마력일 것이다.
⇩ 어렵게 찾아온 꽃동네인데... 철쭉 속에 푹 빠져보고 싶다. 그러나 여긴 관광지... 나 혼자만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없다. 뒷사람에게 밀려 걸어 내려오며 틈틈이 철쭉의 향연에 푹 빠져 본다. 사람 키를 훨씬 넘기는 철쭉들은 꽃터널을 만들어 인간들을 꽃속에 가두어 버린다. 그러나 그 가둠은 구속이 아니라 차라리 세속으로부터의 해방... 환상의 나래를 펴게 만들면서 세속에 찌든 모든 잡념을 일시에 사라져 버리게 만들어버린다.
⇩ 비록 활짝 핀 꽃들은 아닐지라도 꽃은 꽃... 예쁘다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터널의 끝은 저만큼인데 결코 벗어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난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아쉬운 마음을 조금 꽃망울 속에 남겨 놓고 봉화산 정상을 향하여 길을 재촉한다.
⇩ 군락지 아래에 임시천막이 몇동 그 위로 애드벌룬이 띄워져 있다. 봉화산도 철쭉제를 열고 있다는 얘기이고, 올해가 벌써 14번째란다. 저 천막엔 대체 뭐가 있을까? 전국에서 몰려든 음식장사들 말고 좀 이쪽 지방에 맞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꽉 차 있기를 빌어본다. 내려가 보지는 못하고 능선상에서나마...
⇩ 하늘이 있다. 하늘 아래에 산이 있다. 그 산속에 철쭉이 자리잡고 있다. 늘상 그 자리에 있기에 그 모습은 값지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 한송이 한송이의 철쭉이 피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물들이 의미를 주었겠는가. 눈앞에 펼쳐진 철쭉만으로도 마음의 키를 한 뼘 더 키워보는 날이다.
⇩ 치재에서 봉화산 정상까지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백두대간 하늘 길답게 많은 리본들이 나무가지에 걸려 있다. 그렇게나 붐비던 인파는 다 어디로 가고 이리도 한적할가?. 붐비지 않는 한적한 산길을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느긋하게 걸어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유행가 멜로디... 집사람의 불만이 아니더라도 산에서만이라도 라디오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땀과 함께 어렵게 비워놓은 빈 자리를 결코 잡음으로 채워 넣을 생각은 없으니까...
⇩ 푸르름, 싱그러움, 초록과 연분홍이 어우러진 수채화, 만발한 철쭉동산의 나들이 속에 맘껏 즐겨보는 봄날... 아름다움이어야만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는 것, 보여지는 아름다움 속에서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찾아, 난 부유하고 있다.
⇩ 봉화산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막힘없는 조망이 전개된다. 정상의 조망도 그렇거니와 특히 5월 철쭉이 아니더라도 가을철에 이곳을 찾아도 넓게 드리워진 억새밭은 이웃한 지리산 만복대의 그것과도 견줄만하기 하단다. 봄이면 철쭉, 가을이면 억새... 혹여 주민들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환호성 때문에 잠을 설치지나 않을까? 정상석 뒷면은 우리나라 지도상에 백두대간길이 각인되여있었다
⇩ 봉화산 정상의 철쭉군락지
언덕 아래로 각양각색의 철쭉이 잔치를 벌이고 있다. 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온다. 그 언저리에 배어나온 눈물 한줄기 잠시 스쳐가는 햇살에 반짝이지 않을가 급히 훔치고 만다. 누가 볼세라... 아주 작은 순간에 아주 작은 감동일망정 그저 스쳐버린 인연이 아닌 가슴에 담아 두었다 다시 꺼내보고 싶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면 능선의 좌우 가까이에 잘 닦여진 임도가 있다. 등산로는 능선을 따라 지나간다. 전남과 전북의 경계, 또는 남원시와 장수군, 함양군이 경계를 이루기도 한다. 등산로 좌우는 시계가 트여 조망이 좋다.
⇩ 정상에서 20여분 걸으면 만나게 되는 임도의 백두대간 안내판
오늘 걷고 있는 이 길은 백두대간(백두산↔지리산) 마룻금이다... 백두대간중 북한지역에 위치한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구간(지리산 천왕봉↔진부령)을 38구간으로 나누었을 때, 제5구간(88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에서 중재까지)에 해당한다. 그러니 오늘은 5구간의 절반정도를 걷게 되는 샘이다.
2002년에도 나는 이 길을 걸어본 일이 있다. 물론 백두대간 종주 중에... 그러나 그저 걸었다는 기억뿐 주위의 경관이나 특성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다. 억지로 끄집어낸다면 그저 앞사람의 발뒤꿈치와 내 가쁜 숨소리뿐....
산에 오름이 세파에 찌든 찌꺼기를 비워내고, 그 빈자리에 뭔가를 채워가고픈 소망하나 마음에 담고 산을 찾았으련만, 이리도 곱고 이리도 청량한 기운을 담기는커녕 비우기조차 힘들어했으니, 나의 백두대간 종주는 아무래도 헛걸음이 아니었을까? 어쩜 백두대간의 기상은 느껴보지도 못하고 그저 발품이나 팔았던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 봉화산에서 광대치 방향 능선은 억새밭...
가을이면 억새가 장관일 것이다. 억새와 단풍이 크게 다른 점은 단풍은 바라보며 즐기는 것이고, 억새는 억새밭에 들어가서 그 일부가 되어 즐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가을의 억새는 여인들이 좋아한다는데,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산들바람에 흐느적거리는 억새들 사이에서 그들만의 예쁨을 자랑할런지...
⇩ 어우러짐... 비워진 자리에 채워짐이 어우러짐이다. 겨울을 비워낸 그 자리에 채워지는 것은 봄이고, 그 한켠에 철쭉이 있을 것이다. 겨울까지 가기 위해 봄부터 만들어가는 자연의 아름다움... 그건 천지조화다. 아름답다고만 느껴서는 안 되고 그 속에 스며있는 한점 진리를 함께 느껴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 능선에서 본 함양군 백전면 들판, 멀리 지리산이 있지만, 가스로 인해 조망은 불가
마루금에 올라서면 다시 내리막길... 평탄한 길을 지나 다시 오르막... 억새밭을 지나면 어느새 철쭉터널... 길가에는 가끔씩 멋스런 노송이 잠시 발길을 붙잡는다.
⇩ 꽃 속에 파묻히면 마냥 즐겁고 행복하고 기쁘기 그지없다. 다른 생각은 이곳에서는 전혀 할 시간의 여유를 주지 않고, 이곳에서 시간은 멈춰버린다. 별유천지...
천지의 무궁한 조화속에 피어나는 꽃들의 향연 속에서, 그 안에 담겨있는 무수히 많은 진리의 가르침도 함께 느껴보고 싶다. 느끼고 깨달아 가는 이 기쁨... 이게 바로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 봉화산을 넘으면 억새가 이어지다 싸리나무 군락이 나오고, 이어 잡목이 들어찬 바위등성이 길로 접어든다. 바위들이 날카롭고 제멋대로 흩어져 있어 길은 오르내리고 이리 돌고 저리 돌아 조금만 떨어져도 앞에 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 등산로는 소나무가 주종, 나머지 빈 자리를 떡갈나무와 싸리나무 등이 차지하고 있다.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곳은 산책로인지 산길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낙엽송이 쌓여 푹신푹신한 것이 마치 웰빙산행을 하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아~~ 치톤피트의 향기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 바위 능선을 더 진행하면 숲 사이로 마치 열차의 객차 지붕이 연상되는 크나큰 바위벼랑이 살그머니 얼굴을 내민다(숲이 가려 사진촬영은 불가), 동쪽으로 높은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는 이 바위벼랑의 위는 비스듬히 기울며 반반하다. 바위 사이사이에 핀 철쭉꽃의 아름다움에, 길가는 여심은 결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 산길은 봄 날씨 같지 않게 무덥다. 그나마 잊을만하면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이 있어 컨디션을 유지해 준다. 감로수 같은 바람결 따라 나타나는 철쭉꽃... 그 모습을 나타나면서 방긋이 웃기 시작하는데, 난 봄 소풍을 나온 어린아이인양 마냥 즐겁다. 함께 걷는 집사람의 얼굴도 미소가 떠나지를 않는다.
⇩ 파란 하늘가로 종달새 날아오르고, 이름모를 옆집 강아지 양지쪽 햇살을 찾는 계절. 그 한가함이 싫어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 그 오월이라는 여인을 찾아 길을 나섰고, 봉화산에 섰다. 난 여자를 좋아하니까... 세속의 탁한 숨소리를 잠깐이나마 피하고저 난 바람결따라 코끝을 움직여본다. 상큼하다. 능선에 늘어선 싱그런 연초록들이 젊음의 빛을 한껏 뿜어내고 있다.
⇩ 광대치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한번쯤은 밧줄을 잡아야만 한다.
누가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어느 글에선가 여류시인 노천명의 '푸른 오월' 이라는 시에 처음으로 그 표현이 나온다고 한다. 그나저나, 아스팔트 위에 뽀얗게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는... 내가 그리는, 먼 하늘가 어느 토담 밑에 피어난 철쭉 한 무리를 맴돌다 아쉬운 듯 떠나온 환영?
⇩ 날머리인 대안마을로 내려가는 하산길
광대치에서 하산길은 비록 비탈길이지만 길은 뚜렷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장된 임도에 다다른다. 이 임도는 대안 마을까지 이어지지만, 중간에서 우측 능선으로 진행하면 시간을 꽤 단축시킬 수 있다. 하산길도 오늘 걸은 대부분의 등산로와 마찬가지로 마치 양탄자를 걷는 기분이다. 아마 십여년 동안 쌓이고 쌓인 낙엽들이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보은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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