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산 (715m)
산행코스 : 주차장→삼단폭포→은행나무→A코스(밧줄지대)→정상→D코스→영국사→망탑봉→주차장 (산행시간 : 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4시간50분)
소재지 : 충북 영동군 양산면과 충남 금산군 제원면의 경계
산행일 : '09. 4. 18(토)
함께한 산악회 :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산악회
특색 : 아기자기한 암릉을 끼고 있어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산.. 산행시간이 4시간이 채 못 되므로 가족들이 찾기에 알맞다.
⇩ 천태산 입구 주차장(입장료는 천원)
천지간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실개천 살얼음 밑을 숨죽여 흐르던 물줄기들도, 어느새 흥얼거림의 농도를 짙게 만들어 가고 있다. 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여~! 그 봄날에 내 사랑 또한 소생하기를... 나이 먹은 선남선녀들의 바램이 기지개를 켠다는 좋은 계절 봄! 봄! 봄! 그렇게 좋은 봄날이 온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고, 주차장 오르는 길에서 만난 뙤약볕은 여름의 초입까지도 이미 지나버린 듯 싶다.
⇩ 有備無患.. 위험한 암릉산행을 안전하게 오르기 위해서는 산을 오르기 전에 충분히 몸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소백산맥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천태산은 石山이다. 원래 소백산맥 자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맥이기 때문에, 천태산 역시 암릉이 많은 석산인 것은 당연...
⇩ 삼신바위...
우리나라 산과 들에는 많은 바위들이 분포되어 있고, 그 바위들이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에 시달리며 갖가지 형상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이한 모형의 바위들은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이 삼신바위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바위 밑자락에는 새까맣게 그을린 흔적들... 어느 아들 못 낳은 아낙의 간절한 소망 자국이겠지?
⇩ 삼단폭포...
겨우내 얼었던 흙들이 봄볕에 녹으면서 느슨하게 부푼 탓에 어쩌면 헐겁기도 하련만, 오랜 가뭄 탓에 먼지만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때는 바야흐로 곡우(穀雨) 봄비가 백곡(百穀)을 윤택하게 한다는 절기이다. 나무에 물이 오르는 시기이니, 봄볕에 머리를 쏘옥 내밀도 있는 풀들은 이미 양지바른 곳을 벗어나, 온 들녘을 푸르게 만들어가도 있다.
⇩ 영국사가 보일즈음... 고갯길 옆에 수천개는 됨직한 산악회 리본들이 매달려 있다. 형형색색의 리본들이 바람에 떠는 모습은 흡사 어느 영화에서 본 성황당의 모습과 흡사하다.
저 봄빛이 조금 더 짙어지면, 풀들의 푸르름은 나무를 타고 올라 연녹색 잔치를 준비할거고, 신록은 더욱 윤기 있는 생기를 더하고, 녹음방초는 더없이 무성해 지겠지...
⇩ 영국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
나이가 약 1,0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31m 정도라는데,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쌍벽을 이룰 듯... 군데군데 시멘트로 메꾸고 있으나 올봄에도 어김없이 새순을 키우려 기지개를 켜고 있다. 강인한 생명력... 아~ 나두 저렇게 오래지는 못할망정 십분의 일 정도는 살아보고 싶다. 그러면서 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해보고 싶다.
⇩ 오늘 산행은 A코스, 조금 위험하겠지만 긴장 끝의 쾌감을 위해서 난 밧줄을 잡지 않고 오를 것이다.
천태산은 등산로가 네 개 코스가 있다. A, B, C, D... A코스로 올랐다가 정상을 거쳐, D코스로 하산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코스이고, 산행시간도 제일 길다.
⇩ 소나무가 빼곡히 자란 사이로 뻗어 있는 오솔길이 A코스의 출발점이다. 숲을 빠져나오면 거대한 암벽이 나타난다. 밧줄이 하나 매달려 있는데,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누구나 수월하게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절벽만 보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초보 등산객들은 옆길로 돌아가소서~
⇩ 천태산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로프를 잡고 암벽을 오르는 것이다. 75m나 되는... 친절하게도 노약자들은 암벽을 타지 말고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나, 설마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사람은 없을 걸???
⇩ 밧줄을 잡고 오르는 것은 힘들고도 두렵다. 그러나 암벽을 오른 후에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경관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하다. 거기다 이마에 송글거리는 땀방울을 식혀주는 한줄기 바람이 있음에야... 여성들도 주저함이 없이 씩씩하게 로프에 매달려있다. 아~~ 兩性平等...
⇩ '암벽코스'와 '안전코스'로 구분돼 있지만 내가 알기론 '안전코스'라고 해서 바위와 밧줄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난이도에 차이가 있을 따름... 우회하고자 하는 집사람을 설득해서 암벽코스로 접어든다. 암벽에 어느정도 이골이 난 서방님이 받쳐준다는데 구태여 돌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지천명을 지나 회갑이 가까워지는 이 나이에도, 아직도 난 스무살 새색시의 치맛단에 가슴 설레이는 마음을 지니고 싶다. 이 화창한 봄날만이라도... 常春之節, 소음과 번잡을 피해 찾아든 산야... 저 싱그러운 녹음이 내 가슴에 평화와 안식을 심어주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낙원이 어디 있으랴...
⇩ 苦盡甘來... ‘구하는 자만이 얻을 것이다’... 정상에 오른 자만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음은 자명한 일... 백두대간의 아름다우면서도 장엄한 자태가 햇살아래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 암릉길을 다 올라 능선길에 오면 굴참나무 숲이다. 이곳부터는 평범한 산길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 천태산 정상이 있다. 정상의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앉으니, 멀리 서대산인 듯한 높은 산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 가끔 산에 오면 자신의 체력을 점검하는 기회가 된다. 그리 무리한 높이가 아니건만 오늘따라 숨이 턱에 찬다. 올초 담석제거 수술을 받고 운동을 게을리 했던 것이 이제야 나타나나 보다. 거기다 음주로 살을 찌우지 않았던가?
⇩ 어쩌다가 아름다운 경치를 볼 때면 가슴이 아리도록 감상에 젖을 때가 있다. 유유히 흐르는 세월 속에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나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 소유의 덧없음과 인생의 낭만과 허망함을 두루 체험 했으니 그 외에 무었을 더 원하랴, 그저 아름다우면 아름다운대로 그러지 않으면 그러지 않은 대로, 그저 그렇게 느끼며 살아가면 되는 것을...
⇩ 앗! 회장님 어디를 잡으시나이까?(정실장님의 후기에 나오는 임산부를 닮은 나무)
많은 회한과 아쉬움을 남기며 지내온 세월이나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삶! 돌이킬 수 없는 삶이라면 살아온 나날들에 안도하며, 그리고 남은 나날들을 담담히 받아들이자.
⇩ 정상 정복 기념사진 : 사진에 없는 사람은 정상을 밟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면 파란 하늘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어 좋다. 거기다 여긴 시원한 조망까지 겸비되어 있으니 금상첨화... 다만 좁은 정상에 많은 등산객이 몰린 듯 비좁은게 흠이다. 시원한 봄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 하나 가만히 훔쳐가 준다.
⇩ 천태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저멀리 거칠봉과 적성산을 좌우로 거느린 덕유산이 늠름하고, 남쪽으론 속리산..., 왼편은 서대산인데, 그럼 오른편은 민주지산???
⇩ 암릉에서 내려다본 영국사... 정상에 오름은 이러한 환희를 맛보기 위함이 아닐까? 무려 2~3시간 동안을 그렇게 고생하고 올라온 이유가... 신이 빚은 병풍에 둘러싸인 산들의 한 가운데에서 난 새로운 무언가를 가득 채워간다. 힘들게 오르며 비워냈던 내 가슴에 차곡차곡...
⇩ 결코 압도하지 않고 가만히 안아주는 산, 신비로운 기암괴석과 부드럽게 물결치는 능선, 오르느라 지친 등산객들에게 품을 내어주는 봉우리. 무심한 듯 다정한 한국인의 정서를 닮은 우리네 산은 어느 곳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 D코스 하산길은 다시 돌아 능선을 계속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하산길 곳곳에 화마의 상흔이 역력... 2005년쯤의 화마가 이곳 능선에 까지 다녀갔나 보다. 아름다운 산이 많이도 황폐되었다. 자주 마주치는 암릉과 시야가 확 트이는 조망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 ‘숲’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우선 서늘함이 떠오른다. 그 서늘함에 묻혀 따라오는 향기... 그 향이 솔향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천태산의 이끼 낀 숲속 계곡 가장자리에서 그 향기와 서늘함을 느껴본다. 흠~ 흠~ 계곡물을 따라 난 등산로는 평소에는 호젓했으련만... 오늘은 토요일, 등산객들로 가득 차 있다.
⇩ 쉬어가라는 쉼터는 빠짐없이 쉬어가는 모범 산악회
빼어난 암릉에 낙락장송이 어우러졌으니 한폭의 산수화로 승화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혹자는 천태산을 충북의 설악산이라고도 부른단다.
⇩ 아직 봄을 완전히 느끼기엔 좀 이르겠으나 며칠만 지나면 늦은 봄이라고 하겠지... 세월은 그렇게 우리 곁을 너무 빨리 지나가니까...
⇩ 아! 구름에 달 가듯이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다니는 언제나 위태로운 에뜨랑제! 바람 따라 물결 따라 황막한 광야에서 방황하는 고독한 보헤미안.......!
⇩ 그리고 언젠가 물거품처럼 흔적도 없이 그렇게 떠나고 싶다. 인생은 한번 살아볼만한 한바탕 달콤한 꿈이었노라고 외치면서...!
⇩ 영국사는 천년고찰... 비록 일주문 하나 없고 대웅전은 작지만, 부처님은 아름다웠다. 보물을 4개(532호인 부도(浮屠), 533호인 삼층석탁, 534호인 원각국사비<사진>, 535호인 망탑봉 3층석탑)나 지니고 있는 고찰답지 않게 초라한 규모... 하다못해 탐방객을 위한 찻집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 영국사 (寧國寺)
신라 문무왕때 원각국사가 창건한 절로 법주사의 말사. 고려 공민왕 때는 홍건적이 개경까지 쳐들어옴에, 왕이 이곳으로 피난하여 국태민안 기도를 드렸고, 개경이 수복되자 왕이 부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 이름을 국청사에서 영국사로 바꿨단다. 평소에 나라를 잘 다스렸더라면 피난갈 일도 없었을 것을... 박정희 대통령 曰 ‘有備無患’
⇩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과는 다른 망탑을 경유...
작은 봉우리 암반 위에 쌓은 3층석탑(보물 제535호)이 봄 햇살아래 반짝인다. 다른 탑들과는 달리 이 탑의 기단은 원석으로 되어 있다. 아무래도 그런 점이 특이해서 보물로 지정이 된 모양.... 문화부 지정 문화재 해설자의 말로는 공민왕이 피난와 있을 때, 신돈이 그의 애첩을 이곳에 숨겨 두었단다.
⇩ 천태산의 흔들바위는 암놈?
다른 곳에 있는 흔들바위들은 모두 밀어야만 움직이는데 이곳의 것만 유독 잡아당겨야 흔들린단다.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주듯이 넉넉하게... 그냥 위에서 눌러줘도 흔들리기는 매한가지...(지정 해설가 말씀임)
⇩ 영동의 일미는 뭐니뭐니해도 어죽
프라이팬에 비잉~ 드러누운 빙어가 온 전신을 붉게 물들여 찾는 이들을 유혹하고 있는데 어찌 그까짓 체면이 문제랴~ 도리뱅뱅이로 입맛을 돋운 뒤, 어죽으로 넘어가지만... 그 많던 어죽도 금방 동이나 버린다.
도리뱅뱅이의 씹히는 느낌은 환상적이고, 혀끝에 닿는 어죽의 맛은 가히 일품이다. 산과 하늘, 그리고 그 속에서 어울리는 반가운 사람들... 거기다 이런 먹거리까지 있으니, 이맛에 산을 찾는거나 아닐는지... 그러나, 千慮一失, 식당의 서비스는 음식맛의 뛰어난 수준에 한참 못미치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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