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기산 (585m)
산행코스 : 천수원가든-과수원-안부삼거리-갈기산 정상-갈기능선-성인봉-월영봉-우곡교(산행시간 : 점심시간 포함 4시간50분)
소재지 : 충북 영동군 양산면, 학산면과 충남 금산군 부리면의 경계
산행일 : ‘09. 5. 9(토)
같이한 산악회 : 청계산악회
특색 : 바위가 많은 산.. 인근 천태산의 유명세에 가려졌지만 아기자기한 암릉은 천태산보다 더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같이 산행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거나, 엉덩이를 받쳐 주어야 할 수 밖에 없는 난코스가 많아, 새로운 연인으로 만나 스킨십이 필요한 커플들에게 권장하고 싶은 산이다.
⇩ 산행들머리는 청수원가든 옆의 시멘트도로(영동읍과 금산읍을 잇는 지방도상의 양산면 호탄리)
산행은 언제나 들뜨고 흥분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이 좋아 떠나는 나들이... 전국의 산을 찾아 떠돈지 벌써 10년, 산을 찾아 떠나는 설레임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다. 자~ 그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도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후 회장님의 배려로 청수원가든에서 한방오리백숙을 먹었는데 몇가지 약재로 우려낸 육수가 일미였다. 또한 주인 아주머니의 친절도 끝내주고...)
⇩ 관광농원으로 이어지는 시멘트도로를 따라가다, 도로의 끄트머리가 나올즈음 왼편으로 사립문이 보인다. 살짜기 밀고 산으로 들어간다. 마지막 사람이 문을 닫는 것은 필수... 남의 사유지를 지나가는 불청객들의 최소한의 예의일 듯... 사립문을 나서자마자 꿈틀대는 봄내음에 취해 숲 속을 박차고 봄볕에 묻어 내려온 토끼 한 마리가 눈에 띈다.
⇩ 산행의 초입은 완만하지도 그렇다고 급경사도 아닌 지그재그의 길이 주욱 이어진다.
요 며칠동안 아침운동을 거르며 주야장천 술을 마신 후유증인지 산행은 처음부터 힘에 부친다. 하물며, 항상 산에 오를 때면 처음 10분이 제일 힘이 드는 법인데... 코밑에 찬 숨을 다독여가며 쉬엄쉬엄 오르는데도 온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지 오래다.
⇩ 또하나의 '女深폭포'...
'꼭 뭣 같이 생겼죠? 전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서 가까이 가지 못했네요' 생김새가 묘해서 슬그머니 카메라에 담아봤는데, 이크~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같은 의미로 다가왔었나보다 ^^-*
⇩ 폭포를 지나고 나면서부터 등산로는 급한 경사면을 지그재그로 오르게 된다. 마악 진록으로 다가가고 있는 초록빛 향연... 킁~킁~ 싱싱한 삶의 기운은 볼을 간지르는 것 정도로는 서운하다며, 코끝까지 살며시 건드르며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있다. 아 젊음이여...
⇩ 참나무가 주종인 등산로 주변은 다래나무가 지천... 저렇게 조그만 다래열매가 한여름 더위에 시달리며 단맛으로 똘똘뭉친 후, 가을의 초입쯤에는 산행에 지친 우리들 입맛을 돋우어 줄 것이다
⇩ 쪽빛 하늘, 연록빛 향연, 바람 한줄기, 그리고 함께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 그 행복을 통채로 담아보고 싶은 여심일까?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이 차라리 경건하기까지... 나 또한 동심으로 돌아가, 그 여심까지 한꺼번에 렌즈에 담아본다.
⇩ 능선에 올라서면 주의가 필요하다. 앞을 가야할 길은 왼편이나, 정상은 오른편 암릉으로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힘들게 능선에 올랐다. ‘벌써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나이인가?’ 하도 힘들기에 슬그머니 흘렸더니, 집사람 눈초리에는 가소롭다는 메시지가 빨리도 담겨져 간다. ‘술 좀 작작 잡수시옵소서!’ ‘충성! 잘 알겠나이다.’ 능선에서 오른편으로 오솔길, 너덜 길, 암벽 길을 두어번 반복하다보면 정상에 다다른다.
⇩ 갈기산 정상은 특이하게 높은 바위위에 갈기산이라는 정상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정상정복 증명사진을 찍을 때, 좁은 공간이라서 사람들이 많을 경우 힘이 들수도... 서양 왕관과 비슷한 뽀족한 바위로 된 갈기산 정상은 조망이 좋다. 가히 일망무제...북쪽방향에 무주에서 발원하여 영동으로 흘러가는 금강의 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 어느 산이나 정상은 증명사진 촬영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능선 우측으로 붙어있는 밧줄을 잡고 오르면, 칼날바위 능선이 나타나지만, 약간우측으로 길이 나 있어 직접 칼날암릉(직접 넘어가도 많이 위험하지는 않음)으로 오르지 않아도 된다. 그 구간을 지나면, 위쪽은 한 줄인데 아래는 두 가닥으로 갈라놓은 밧줄, 가볍게 잡고 올라서면 저만치 조그만 암봉으로 된 갈기산 정상이 보인다.
⇩ 정상에서 내려다 보니, 뒤따라 오던 일행분들이 쉬고 있다. 정상은 여기인데...
갈기산의 빼어남은 금강과의 어울림이다. 금강의 푸른 물줄기, 그 옆에 강을 향해 내리꽂히는 천길 절벽, 그 절벽의 기암괴석, 벼랑에 선 낙락장송들... 푸른 숲에 둘러싸인 암릉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경관이다.
⇩ 정상에서 내려다 본 금강, 지난주에 다녀왔던 봉화산, 그곳에 펼쳐진 천상화원에서 난 얼마나 가슴이 터질 듯 뛰었던가... 오늘 만난 또 하나의 仙界, 老松이 휘감고 있는 묵빛 바위 위... 한줄기 바람을 안주삼아 얼음물 한 모금 삼키니 이게 바로 仙界가 아니런가?
⇩ 소나무 가지 아래로 비추이는 풍광에 눈을 뗄 수 없다. 싱그럽고 푸른 나무와 꾸밈없이 유연한 금강, 멀리 보이는 기기묘묘한 바위형상...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발아래 가까이로 양산면소재지... 푸르른 금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 정상에서 바라본 갈기능선
산을 오르면서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감정은 공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숨을 일부러 깊게 들이쉬고 내쉬고 하면서 폐속에 찌들어 있을 찌꺼기를 심호흡으로 걷어낸다. 조금 더 속도를 내는 것은 어제 마신 술의 찌꺼기를 땀에 포함시켜 배출해 보고 싶은 생각에서이다. 그런 후에는 땅에 대한 경외감을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 걸음속에 땅이 품은 기운을 담자.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짐으로서 삶의 여유로움이 없이 그저 내달려온 시간들을 되돌아보자.
⇩ 정상에 서면, 금강너머로 천태산과, 서대산, 남쪽, 동쪽으로는 백화산과 민주지산, 덕유산, 서쪽으로는 대둔산 등이 조망되나, 흐릿한 오늘의 시계는 겨우 천태산만이 보일 정도... 나머지는 가늠해 볼 수밖에 없다.
⇩ 계획된 산행을 마무리 지으려면 안부에서 정상까지 올라왔던 능선을 다시 되돌아 내려가야만 한다.
정상에서 오던 길을 되돌아, 밧줄을 두어군데 내려선 후 안부를 거쳐 582봉으로...582봉의 오른쪽 산허리를 돌아가면 본 능선으로 접어든다. 조금 더 진행하면 갈기능선에 들어서게 된다.
⇩ 오늘 찾은 갈기산의 concept은 바위와 소나무의 어울림에서 찾고 싶다.
奇奇妙妙한 바위와 어우러진 각양각색 소나무들의 아름다움은 차라리 경이로울 정도... 그 나무들도 같은 형상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제각각이다. 기목(奇木), 미목(美木), 나목(裸木)...
⇩ 기목(奇木), 소나무의 아름다움은 청정함을 나타내는 늘 푸른 잎, 얻음과 상실을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지그재그 형태의 나무줄기, 상승과 하강의 기운을 함께 나타내는 가지와 잎, 오랜 세월 동안 풍우설상(風雨雪霜)의 흔적으로 인해 잎과 가지와 줄기에 나타나는 파격의 멋일 것이다.
⇩ 줄기의 남성적 특성인 직선적 요소와 여성적 특성인 부드럽고 정교한 곡선적 대비, 융화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어울림이다. 몸통에 남은 상처가 치유되면서 만들어 내는 오묘한 형상, 자라는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기묘한 형상 또한 소나무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것이 벼랑이든, 포근한 풀밭이던, 아님 흙 한점 없는 바위틈이이든,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나 보다. 그러니 수백년, 아니 수천년의 세월을 그렇게 무심히 보내고 있겠지
⇩ 저렇게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소나무도, 자라는 환경은 결코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만은 않는다. 저 절벽 바위 위의 소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통과 했을까? 성공한 사람의 성공한 모습만 바라보고 성공하기 위해 겪어야 했을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시련은 바라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새삼 생각해 보게 만든다.
⇩ 美木, 나무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여인이 함께 함으로서 더욱 빛난다.
소나무라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美人(옛부터 진정한 미인은 얼굴보다 마음이 고와야한다고 했다)이라는 내형적인 아름다움이 있으니 아름다움은 완전무결 그 자체다. 어느 화창한 봄날 갈기산이 더 한층 아름다운 풍광에 둘러쌓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나 보다.
⇩ ‘진정한 사랑은 오로지 아름다움이라는 미끼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모든 생명체는 절대로 아름답지 않은 대상에게서 사랑을 느끼지 않는다.‘ 꼭 이외수의 詩 ’외뿔‘이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여인이 곁에 있으니 어떠한 사물이 아름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裸木, '벌거벗은 나무'
박완서 작가의 동명소설에선 주인공 이경이, 세월이 흐른뒤 한때 사랑했던 옥희도의 유작전을 찾아와서, 과거 자기가 보았던 '고목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이 이미 말라비틀어 죽어버린 '고목' 이 아니라 시대에 지쳐 벌거벗겨진 나무(裸木) 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나무가 잎을 떼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잎이 나무를 떠나버린 것일까... 고갈되어버린 이끌림의 에너지를 아쉬워하며, 또 다른 세상을 향하여 가녀린 소망 살포시 품어본다.
⇩ 사랑은 입술로만 행할 수 없어서 발가벗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일가? 무릇 모든 생명체들이 발가벗는 것을 두려워하겠지만, 사랑한다면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허례허식을 모두 벗어던져야 할 것이다.
‘뒤틀린 허리에 밴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어 -중략-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만히 ‘신경림’시인의 나목을 읊조려본다.
⇩ 능선 곳곳에 기암괴석과 노송, 고사목이 알맞게 늘어서 있어, 듣던 대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갈기산 정상과 갈기능선 부근을 휘돌아가며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는 듯하다. 다만 가스로 인해 시계가 그리 좋지 않는게 흠이라면 흠...
⇩ 감탄사를 뒤로 한 채 걷다보면 갈기능선이 나타난다.
바위로 된 능선 양 옆이 낭떠러지로 되어있다. 위에서 내려볼 때는 약간 오금이 저릴 정도... 그러나 조금만 주의하면 밑을 보지 않고도 능선을 통과할 수 있다. 다만 스릴을 느껴보고 싶다면 가장자리 보다는 좌우로 보폭을 넓혀볼만하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자신 있게 오르고 내리는 것이 중요 하다.
⇩ 갈기능선은 날카로우면서도 아기자기한 암릉으로 되어있다. 이 능선이 말갈기 같이 생겼다하여 갈기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단다. 능선은 온통 기암괴석과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기경을 이룬다. 작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말갈기 능선을 충북의 용아장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치 설악산의 용아장성을 연상시킬 정도로 암릉이 화려하다면서...
⇩ 갈기능선의 중간 한곳엔 기어올라야 하는 바위틈새가 있다. 갈기능선을 진행하면서 보면, 좌측 능선에 엄청난 절벽바위와 골짜기가 어울려 시원한 풍경을 제공하고 있다. 아마 계곡이 이곳 갈기산에서 제일 깊은 계곡일 것이다. 길은 곧 순한 능선길로 이어지며 야트막한 봉우리로 올라서게 된다.
⇩ 갈기능선에서 바라보면 갈기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봉우리는 소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조망은 별로 없다.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고, 그 땀은 흘러흘러 목에 두른 머플러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흐르는 땀을 한손으로 훔치며 뒤돌아 본 풍경, 가쁜 숨 사이로 보이는 산하는 어이하여 저리도 아름다울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나누어 주고 싶다.
⇩ 갈기산은 거대한 바위덩어리봉, 그 봉우리 곳곳을 흙으로 덮고 있는 듯 하다. 그 위는 노송들...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한다. 보는 위치에 따라,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변한다.
⇩ 어떤 사람들은 바위산을 오르면 머리가 맑아지고 찌뿌듯한 몸이 개운해지는 이유로 바위 자력론을 편다. 바위는 자력을 함유하고 있어 바위산을 오르면 바위에서 나오는 자력 기운이 혈액을 따라 뇌세포에까지 전달되어 머리가 맑아지고 찌뿌듯한 몸이 개운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을 찾는가 보다.
⇩ 갈기산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각종 기암괴석과 급경사 암벽 등으로 인해 산세가 매우 험하고 암산에서 자란 소나무가 마치 분재 같다
⇩ 산... 산을 찾는 이들은 귀천이 없다. 더함도 모자람도 없는 울긋불긋 등산복으로 에워 쌓인 너와 나...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는, 아니 잘난 사람인지도 못난 사람인지도 알 수 없는 우리들... 그런 우리들이니 미움도 원망도 계곡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에 띄워 보내버리고, 다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한데 묶어,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 말갈기 능선에서 우뚝하게 솟아있는 앞쪽의 봉우리로 올라가는 등산로도 사방을 조망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능선길이다. 잠시 내리막을 내려가 안부를 거쳐 암릉(작은 갈기능선)을 잠시 타고 오르면 545봉에 도착하게 된다. 545봉은 소나무가 우거져서 조망이 전혀 없는 봉우리... 우측으로 내려서면 안부 사거리, 소골재(차갑고개)이다
⇩ 聖人峰(성인봉) 정상은 공터 중간에 대리석으로 정상표시석이 세워져 있다. 그 한켠에는 조그만 돌탑... 사진을 촬영하고 돌아서니 집사람이 그 돌탑에 걸터 앉아있는데, 피로에 지쳐 힘들어하는 모습을 온몸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그대, 나, 그리고 우리...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되어 함께 가는 세상... 작은 기쁨도, 큰 슬픔도 함께 나누고, 언제나 한결같은 미소로서 맞아주자 우리...
⇩ 조망이 시원치 않은 자사봉은 그냥 지나치고, 쉬엄쉬엄 월영봉(안자봉)으로 향한다. 작은 봉우리 2개를 넘은 후, 능선을 힘들게 오르면, 시원스럽게 뚫린 등산로 왼편으로 작은 갈림길이 나타난다. 직진하여 능선에 올라선 후 좌측으로 능선을 따라 올라서도 될 것이지만, 조금이라도 덜 걷고 싶은 마음에 경사가 심한 왼편길을 택한다. 비탈길을 5분정도 오르면 앞에 커다란 바위가 가로 막으며 능선에 올라선다.
⇩ 노송을 머리에 이고있는 바위를 멀리서 당겨본다. 상큼하고 싱그러운, 아니 이미 여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봄날에 찾은 갈기산... 도심에선 결코 익숙하지 않은 새소리가 들린다. ‘활딱벗어’ 집사람의 해석에 의아해 하면서도 웃다보니 과연 그렇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름 모를 뭇 산새들의 지저귐 하나만으로도 살아 있는 오늘이, 그리고 갈기산이 고맙기 그지없다.
⇩ 월영봉(안자봉) 정상은 잡초와 싸리나무로 가득찬 공터이다. 주위는 나무들로 둘러쌓여 조망이 시원치 않다. 선두팀도 기다릴 겸 잠깐 앉아서 쉬기로... 잠깐이나마 안자서 쉬어가라고 이 봉우리 이름을 안자봉이라고 정했을까? 농담, 사실은 공자의 제자중 10철의 한사람인 안회(顔子)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 월영봉으로 오르는 등산로 주변에는 온통 절벽처럼 생긴 거대한 바위들이 널려있다. 넓게 깎아서 세워놓은 듯한, 바위 사이를 비집고 서 있는 소나무들이 간간히 보인다. 모질고도 끈질긴 생명력.... 능선을 따라 늘어선 길 다란 바위에 올라서면, 오늘 걸은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갈기산을 시작으로 우측으로 갈기능선, 성인봉, 자사봉... 능선들이 파도처럼 넘실대고 있다.
⇩ 산행날머리인 우곡교로 내려가는 계곡은 가뭄에 물이 흐르지 못하고 고여만 있다.
봄은 여러 가지 냄새로 감지된다. 그러나 긴 겨울을 건너와 이제 막 갈아엎어놓은 흙냄새 속에서 뽀얗게 피어나는 '단내'와 '구수'함을 어디에서 맛보랴 싶다. 어머니의 젖 냄새가 난다. 자작나무 속살냄새, 첫날밤의 신부냄새, 어린 아가의 볼 냄새가 난다. 킁킁... 숨쉬기가 편안하고 콧속이 아늑하며 살갗이 따스해오는 자연의 냄새이다.
조그만 여백이 남아있어, 한마디 더 해본다면...
생애 찬란한 한때가 지나간다. 봄날의 꽃구경처럼 아름다운 순간은 금방 과거형이 된다. 누군가 우리나라 산에는 철쭉이 없는 산이 없다고 했다. 고달픈 삶을 잠시 뒤에 두고 봄꽃도 구경할 겸 찾은 갈기산에는 꽃이 없었다. 아니 시들어버린 진달래 두어 송이와 제비꽃 두어 그루는 만났다. 혹시라도 위로받기 힘든 시절이 찾아올 때 철쭉꽃 만개할 때마다 “내 생애 찬란했던 그 때”를 두고두고 꺼내보려 했던 내 조그만 꿈은 물 건너 가버렸다.
그래도 난, 오늘의 산행이 좋다. 푸르름이 짙어가는 아름다운 산에서 함께한 아름다운 사람들, 그들이 나누어주는 훈훈한 정, 그 정으로 만들어 낸 소중한 추억 한아름 담아왔으니까... 위에서 말한 힘든 때에 그 추억 하나씩 꺼내본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 어디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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