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이집트
여행일 : ‘20. 2. 21(금)-29(토)
세부 일정 : 카이로(1)→사카라→멤피스(야간열차 1박)→아스완(1)→아부심벨→콤옴보(1)→에드푸→룩소르(1)→후르가다(1)→카이로(1)
멤피스(Memphis)의 ’야외 박물관‘
특징 : 멤피스(Memphis)는 카이로 남쪽 25㎞ 지점 나일강 서쪽 연안에 위치하는 고대 이집트의 첫 번째 수도이다. 기록에 따르면 멤피스는 BC 2925년 무렵 메네스(Menes)가 세웠다고 한다. 그는 선사시대의 두 왕국인 상(上)이집트와 하(下)이집트를 통일한 인물로 알려진다. BC 2200년까지 수도로 발전해 왔으며 테베스로 수도를 옮긴 중왕국 시대에도 멤피스는 상업과 예술의 중심지로 남아 있었다. 신왕국 시대에는 왕족과 귀족 자제들의 교육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멤피스의 원래 이름은 ’이네브 헤지(Ineb Hedj/ 흰 담)‘이었다고 한다. 중왕국 시대에는 ’앙크 타위(ankh taui)‘라고 불리기도 했다. 의미는 두 땅의 생명이라는 뜻으로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 사이의 전략적인 요충지임을 강조하는 이름이었다. 신왕국 시대에는 ’멘네페르(mennefer)‘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콥트어로는 ’멘페‘였으며, 멤피스라는 현재의 지명은 여기서 유래했단다.
▼ 다음은 사카라에서 남쪽으로 3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멤피스‘이다. 멤피스는 전설 속의 파라오인 메네스(Menes)가 세웠다고 알려져 있으며 제3왕조의 조세르 통치하에 이집트의 수도가 됐다고 한다. 제4왕조에서 제6왕조 시대에 전성기를 이뤄, 이 시대를 멤피스 시대로 부른다. 이후 람세스 2세 시기에는 인근 국가와 먼 그리스에서까지 교류하는 국제적인 도시로 최고의 전성기를 이룬다. 하지만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급격히 쇠퇴하였으며, AD 640년 이슬람인들이 이집트를 정복하자 완전히 사멸해버린다. 거기다 서기 13세기 나일강둑 붕괴로 수많은 유적이 유실됐고 현재는 과거의 명성을 역사 저편에 묻어둔 채 종려나무 숲으로 뒤덮인 폐허가 되고 말았다.
▼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Entry Fees’에 대한 안내판이 보인다. 성인 기준 80이집트 파운드(EGP), 학생들은 반값이란다. 원화(KRW)에 대한 환율이 80원이니 6,400원쯤 되는 셈이다. 아무튼 여행을 해나가면서 알게 되었지만 이곳 이집트에는 공짜 관광지가 없었다. 그 안에 있는 화장실도 공짜는 아니었다. 심지어는 관광지 안을 배회하는 현지인들의 선심성 행위마저도 공짜가 없었으니 돈에서 시작해 돈으로 끝난다고 보면 되겠다.
▼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가자 ‘멤피스’의 내력을 적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 관광객들이 이곳 멤피스를 찾는 이유는 인근에서 발견된 높이 10m가 넘는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을 보기 위해서다. 야외박물관에 있는 유일한 2층 건물의 안에 모셔져 있는데, 누워 있는 석상은 1층과 2층에서 바라볼 수 있다. 참! 이곳에 모셔져 있는 석상과 함께 발견된 다른 하나는 카이로 중앙역 광장에 있다가 지금은 건설중인 대이집트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 1층에서 보는 석상은 볼품이 없다. 이게 과연 석상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애매모호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니 이 석상이 ‘람세스 2세’라는 것은 눈치조차 챌 수가 없다. 참고로 석상의 주인인 ‘람세스 2세’는 역대 파라오 중 가장 강력한 권세를 누렸던 인물이다. 투탕카멘 및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파라오’이기도 하다.
▼ 이층으로 오르자 드디어 석상의 정체가 파악된다. 전시관 1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석상은 2층에 올라서도 카메라 앵글에 한 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컸다. 이집트에서 만나는 모든 석상이 그러하듯이 ‘람세스 2세’ 역시 최상의 비율로 만들어진 젊고 늠름한 모습이었다. 조금 더 나아가 보자. 람세스 2세의 미라는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 누워있다. 하지만 썩 기분 좋은 모습은 아니다. 거무튀튀하게 변색된 살가죽에 앙상한 뼈마디의 해골이기 때문이다.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그의 치아는 태양의 아들 파라오가 말년에 여러 질병으로 고생한 노인이었음을 증명한다 하겠다. 그렇다고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지금 내 앞에 누워있는 저 석상을 보고 람세스 2세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되는 것을...
▼ 석상은 늪에 파묻혀있던 것을 1820년에 이곳으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왼쪽 다리와 팔 부분이 일부 잘려나간 것을 제외하고 너무도 매끈한 모습으로 여행객들을 맞는다. 수천 년 전의 유물임에도 몇 년 전에 만든 것이라 해도 믿을 만큼 놀라운 보존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튼 두 눈을 뜨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젊은 람세스의 모습은 마치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신비로웠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 파라오의 왕관은 상이집트가 희고 원추형으로 생겼으며 앞쪽에 코브라 모양의 휘장이 달려 있는 반면 하이집트의 왕관은 붉고 2개의 돌출부(뒤쪽의 높고 곧은 것과 앞쪽의 소용돌이 모양의 것)가 달렸고 모자처럼 생겼다. 파라오들은 종종 이 두 왕관이 합쳐진 '이중왕관'(Double Crown)을 쓰곤 했는데, 이는 양분된 이집트가 하나로 통합되어 신성한 왕의 통치를 받고 있음을 상징한다.
▼ 누워있는 람세스 2세의 거상(Statues of Ramses Ⅱ)은 길이가 무려 12m, 무게는 80ton이나 된단다. 강력한 왕권의 상징이었던 그는 3,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히 범접치 못할 아우라(aura)를 뿜어내고 있다. 참고로 신왕국 시대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파라오는 단연 ‘람세스 2세’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그의 재위기간이다. 그는 왕세자이던 14세 때 섭정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10년 후 왕위를 이어받은 후에는 67년간이나 재위했다. 19왕조의 존속기간이 110년이니 그가 2/3를 통치했던 셈이다, 당연히 지속가능한 발전을 통해 나라는 안정·발전되었을 거고,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그는 영토를 키워나갔을 것이다. 물론 지도자로서의 탁월한 능력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조형물을 많이 세웠다. 특히 자신의 조형물을 이집트의 구석구석까지 세웠다. 이번 여행 내내 수없이 많은 그의 석상들을 만나게 되는 이유이다.
▼ 하나의 큰 석회암을 깎아서 만든 석상의 어깨에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하던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일종의 문장이라 할 수 있는 ‘카르투시(cartouche)’이다. 그런데 이 문장이 ‘람세스 2세’가 아니라 ‘람세스 3세’의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가이드의 말로는 원래는 ‘람세스 2세’의 것이 새겨져 있었으나 ‘람세스 3세’가 깎아내고 자기의 것을 새겨 넣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종의 횡령이라 할 수 있으나 당시는 이런 일이 흔했단다. 더구나 이러한 횡령을 가장 많이 한 파라오가 ‘람세스 2세’였다니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 이젠 밖으로 나가볼 차례이다. 야외박물관의 한쪽에는 각종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이용하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진열되어 있는 조각품들이 너무 조잡해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싸다고 해도 자신들의 집에 놓아둘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 역시 호텔에서 람세스 2세의 좌상을 챙겼는데 이곳보다 무려 10배를 더 주고 샀다.
▼ 나머지 공간은 수많은 석조물들로 메꿔져 있다. 프타 신전이 있던 장소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인근에서 발견된 수많은 멤피스 유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 전시된 유물들 가운데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새겨진 것들도 여럿 보인다. 이집트인들은 제1왕조 때인 기원전 3100년 무렵부터 글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리스어로 '거룩한 기록' 을 뜻하는 ’히에로글리프(Hieroglyph)‘리고 불리는 이집트 글은 형상을 본떠 글자를 만들었다 하여 ’상형문자‘라고도 한다. 모두 850여 개의 기호를 사용하는 히에로글리프는 서로 다른 3종류의 기호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쓰이고 있는 알파벳처럼 발음에 따라 쓰이는 ’소리글자‘와 그림의 모양에 따라 의미를 전달해 주는 ’뜻글자‘. 그리고 단어 뒤에 붙여서 발음은 안 하지만 그 단어의 종류를 정해 주는 ’결정문자‘가 그 세 가지 체계이다. 히에로글리프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또는 위에서 아래로 쓰고 읽기도 하는데, 글자 중 사람이나 동물의 머리가 왼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것이다. 히에로글리프는 배우고 사용하기가 아주 어려운 문자로 신전이나 왕의 무덤에 기록을 할 때나, 공식적인 문서에만 사용했다고 한다. 일반 서민은 쓰지 못하는 신성한 문자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기원전 7세기경부터는 ’디모틱(Dempteic)‘이라 불리는 서민들의 흘림체 글이 사용되었다. 기원후 394년까지 약 3600여 년간 사용되던 히에로글리프는 이후 완전히 잊혀진 글이 되었다. 그러다가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프랑스의 언어학자 ’장 프랑수아 상폴리옹(Jean-Franois Champollion, 1790-1832)‘이 오랜 연구 끝에 히에로글리프를 읽는 데 성공했다.
▼ 밖으로 나와 야외에 전시된 유물들을 살펴본다. 맨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멤피스지역의 주신인 ‘프타(Ptah)’의 가족 석상이다. 프타를 가운데에 두고 오른쪽에 프타의 부인이자 전쟁의 여신인 세크메트(Sekhmet), 그리고 왼편에는 프타의 아들인 네페르툼(Nefertum, 농작물의 성장을 담당한다)으로 분장한 ‘람세스 2세(Ramses Ⅱ)’라고 한다. 누군가 이집트에서 돌을 던지면 셋 중의 하나는 람세스 석상에 맞는다고 하더니 맞는 말이었던가 보다.
▼ 아래 사진은 프타의 가족석상 뒷면이다. 프타(Ptah)는 이집트 종교에서 우주의 창조자이자 만물의 제조자, 장인들 특히 조각가들의 수호자로 섬겨져왔다. 이집트의 한 문헌에 따르면 프타는 마음과 말씀의 힘으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한다. 즉 인간이라는 개념이 창조주의 마음에서 만들어진 다음 신의 말씀 그 자체를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사랑과 음악의 여신인 ‘하토르(Hathor)’의 두상(Head)’도 보인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같은 종류의 여신인 그리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는 예쁘기만 한데 말이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하토르가 소의 귀를 가진 여인으로 표현되고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했다.
▼ 그밖에도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었고, 가이드는 몇 개의 유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고고학은 그저 곁눈질로만 알면 된다는 내 신조에 따라 나 혼자서 주변을 둘러봤다.
▼ 광장의 한가운데는 ‘스핑크스(sphinx)’ 석상이 웅크리고 있었다. 힘의 상징은 사자의 몸에 지혜의 상징인 사람의 얼굴을 가진 스핑크스이다. ‘멤피스의 스핑크스(Sphinx of Memphis)’ 또는 ‘알라바스타 스핑크스(The alabaster sphinx)’로 불리는데 기자의 스핑크스와는 달리 설화석고(알라바스타)로 만들어져 있다. 1912년 영국의 고고학자가 모래에서 삐져나온 밝은 돌을 발견했는데 이게 스핑크스의 꼬리였다고 한다.
▼ 스핑크스의 크기는 길이 4m에 높이가 2m라고 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스핑크스 가운데서 두 번째로 크다고 하지만 기자의 스핑크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하지만 전체적인 모양새는 훨씬 더 잘 생겼다. 균형미가 돋보이는데다 부드러운 선으로 이루어진 윤곽이 매력을 듬뿍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스핑크스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 대충 짐작이 가지 않을까 싶다.
▼ 광장의 가장 안쪽에는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입상이 버티고 있다. 높이가 7m에 이른다는데 왼쪽 발을 앞으로 내딛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살아있는 인간을 표현하는 기법이라니 그가 살아있을 때 이 석상을 만들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 석상은 상이집트의 상징인 흰 왕관을 쓰고 있다. 몸매는 군살 하나 없는 근육질로 표현했다. 이집트 최대의 왕국을 건설한 그의 강인함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참! 오른쪽 손목에 빨간색이 칠해져 있는 등 채색된 흔적도 눈에 띄었다. 이로보아 당시의 석상들은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옛날 이곳에는 이집트 신화에서 우주의 신으로 등장하는 ‘프타’의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옛 ‘헤케프타’ 유적 입구에 조그만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서 헤케프타는 ‘프타신의 영혼의 집’이라는 의미다. 그것도 야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멤피스 야외박물관((Memphis open Air Museum)’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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