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음식의 특징은 담백함에 있다. 조미료는 물론이고 양념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자연 본래의 맛을 낸다. 이는 전라도 음식이 젓갈을 많이 사용해 약간 짜다거나 경상도 음식이 매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극적이지 않아 먹으면 왠지 건강해질 것 같은 북한 음식을 맛본다.
▲ 이북 손만두의 평양식 만두
서울시청 뒤편 무교동에 있는 이북 손만두. 웬만한 어른 주먹에 비견될 만큼 푸짐한 평양식 만두를 내놓는 집이다. 접시만두를 주문하면 ‘달랑’ 만두 3개가 참기름이 살짝 뿌려진 채 나온다. 아삭아삭 씹는 맛이 일품인 살아 있는 숙주나물, 으깬 두부, 파를 고기와 함께 속을 꽉 채워 하나만 먹어도 배가 든든해진다. 왕만두에 미나리, 쑥갓 등 각종 야채에 육수를 붓고 얼큰한 양념으로 맛을 낸 만두전골도 별미. 저녁 시간이면 만두전골을 요기 겸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샐러리맨들로 가득하다.
이 집에서 빠뜨릴 수 없는 또 하나의 별미는 바로 김치말이밥. 심심한 김칫국물에 밥을 말고 송송 썬 김치에 얼음까지 동동 띄우고 마지막으로 참기름 몇 방울과 통깨를 넣는다. 가슴까지 시원한 맛이라는 게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한번 맛들이면 마약처럼 쉽게 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02)776-7350/손만두 6000원, 김치말이밥 5000원, 만두전골 대 3만원/주차 안 됨
▲ 남포면옥의 어복쟁반( 날짜별 동치미 독 눈길 끄는 냉면 전문집)
을지로입구 두산빌딩 후문 쪽에 있는 남포면옥은 평양냉면 전문점으로 근처 직장인들은 물론 그 맛을 잊지 못한 수십년 지기 단골 손님들로 그득하다.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전통 한옥 모습을 갖춘 점 역시 아련한 향수를 자아낸다. 식당에 들어서면 땅 속에 묻힌 수십 개의 동치미 독이 먼저 눈에 띈다. 일일이 담근 날짜를 항아리 위에 표시해 놓았는데, 이 동치미 국물은 냉면 육수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재료라고 한다. 동치미 국물과 육수의 절묘한 배합이 이 집 냉면 맛의 비결이기 때문.
어복쟁반 역시 이 집에 들르면 반드시 먹어 봐야 할 메뉴다. 특히 기름기 없이 담백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건강식을 찾는 요즘 더욱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놋쇠쟁반에 얇게 저며 삶은 양지머리와 버섯, 쑥갓, 대추 등을 올려놓고 거기에 붉은색 고추를 살짝 얹으면 그 색감 때문에라도 식욕이 되살아난다. 이 위에 역시 기름기를 쏙 뺀 고기 육수를 부어가며 먹는데, 중간중간 육수가 줄어들 때마다 다시 채워주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깊고 은은한 육수의 제맛을 즐길 수 있다. 편육과 야채를 건져 먹고 좀 모자란다 싶으면 취향에 따라 만두나 냉면 사리를 넣어 먹으면 알차게 어복쟁반을 즐긴 셈이 된다. 저녁 시간에는 술 안주로도 인기.
(02)777-2269/냉면 6500원, 어복쟁반 4만 5000원(3인분)/유료 주차
▲ 풍년명절의 한정식(황해도 전통 한정식…고기김치밥 별미)
서울 은평구 응암동 응암시장 안에 있는 풍년명절은 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황해도 전통 한정식 전문점이다. 황해도는 북부지방의 곡창지대로 쌀과 잡곡의 생산이 풍부하여 인심이 좋았다고 한다. 또 생활이 윤택하여 자연 음식도 양이 많고, 기교를 부리지 않아 구수하면서도 담백·정갈한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북한 음식점이 냉면이나 온반, 만두 등 비교적 간단하고 가벼운 음식이 주를 이루는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정식류가 주 메뉴다. 토속정식, 풍년정식, 명절정식, 특정식 등이 1만~3만원. 모든 정식에 탕평채, 생선조림, 찌개 등이 기본으로 나온다. 단품 식사류로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양념한 후 솥에 쌀과 함께 밥을 지어 양념간장에 비벼 먹는 고기김치밥이 별미다. 해주, 옹진, 황주, 남천, 연백 등 황해도 지방 이름을 딴 다섯 개의 방으로 나뉘어 토속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02)306-8007/특정식 3만원, 명절정식 2만원/주차장 무료 이용
▲ 을지면옥의 평양냉면(단골들 편육 반접시·소주 반병 '반반' 주문)
평양냉면의 참맛은 전혀 육수 같지 않은 밍밍한 국물 맛과 메밀이 듬뿍 들어 있어 뚝뚝 끊기는 면발에 있다. 거기에 송송 썬 파와 고춧가루 한 숟가락, 잘 삶은 수육 한 조각이 들어가야 진정한 평양냉면이다. 함흥냉면이 새콤달콤 자극적인 맛이라면 평양냉면은 전혀 자극이 없는 시원한 맛이다. 그래서 입맛을 들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이곳은 혼자 오는 손님이 특히 많다. 기왕 을지면옥에 왔으니 냉면에 편육 한 접시까지 먹고 싶은데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 많고…. 이럴 땐 오랜 단골만이 아는 노하우가 있으니, 바로 ‘반반’ 세트가 그것이다. 냉면 한 그릇, 편육 반 접시, 소주 반 병이 함께 나와 반반이라 한다. 껍질까지 붙은 편육을 젓국에 찍어 먹으면 쫄깃하고 잡냄새가 전혀 없다. 냉면처럼 무던히도 깨끗한 맛이다. 함흥냉면집에서 뜨뜻한 육수를 내는 것처럼 평양냉면집은 면 삶은 물을 내는데 그냥 먹어도 구수하지만 간장 몇 방울 타서 먹으면 진짜 단골처럼 보일 것.
(02)2266-7052/평양냉면 6500원, 돼지고기 편육 9000원/주차 안됨
▲ 오장동 함흥냉면(매콤 새콤한 회냉면에 뜨거운 육수 제맛)
만주 벌판에서 밀어닥친 삭풍이 두만강을 넘으면서 더욱 차가워져 살을 에는 듯한 추위로 다가오는 함경도. 함경도 음식은 맛 자체가 강하고 거칠다.
메밀을 사용하여 뚝뚝 끊기는 평양냉면의 면발과 달리 고구마 전분으로 만들어 이빨로 쉽게 끊어지지 않아 마치 쇠힘줄을 연상케 하는 면발, 매콤새콤한 맛을 내는 생선회, 뜨겁게 데워서 주전자에 담아 내오는 육수 이 세 박자가 맞아야 제맛이다. 함경도 출신들은 면을 가위로 자르지 않고 한 올은 배 안에 한 올은 입 안에 있어야 제맛이라고 말한다.
흥남집은 거칠고 투박하여 ‘남성적’이라는 평을, 오장동 함흥냉면은 날카롭지만 부드러운 ‘여성적인 맛’이라는 말을 듣는다. 손님들 면면을 보면 오장동 함흥냉면은 친구들과 같이 오는 할머니들 특히 여자 손님이 많고, 흥남집은 장년층의 남자 손님이 많다.
●오장동 함흥냉면(02)2267-9500/냉면5500원, 쇠고기 수육 1만 5000원(1인분)/무료 주차가능
●흥남집(02)2266-0735/냉면 5500원/무료 주차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