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99코스(가현산 입구 – 대명포구)
여 행 일 : ‘26. 5. 2(토)
소 재 지 : 경기 김포시 양촌읍 및 대곶면 일원
여행코스 : 가현산 입구→학운산→창준전력→수안산성→승마산→대명포구(거리/시간 : 14.0km, 실제는 12.35km를 3시간 5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남파랑길·서해랑길·평화의길)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 08 : 30. 가현산 입구(김포시 양촌읍 대포리)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인천-김포) 대곶 IC에서 내려와 355번 지방도를 타고 검단신도시 방면으로 6km쯤 들어오면 ‘스무네미 고개’에 이르게 된다. 옛날 적어도 스무 명은 모여야 고개를 넘을 수 있었을 정도로 도둑이 많았다는 고개인데, ‘두루누비’는 이곳을 ‘가현산 입구’로 적고 있었다. 서해랑길(인천 99코스) 안내도는 고갯마루 위 동물이동 생태통로 동쪽 입구에 세워져 있다.

▼ 서해바다를 향해 김포의 내륙을 헤집으며 가는 14.0km의 여정. ‘서해랑길’에 어울리지 않게 산길과 마을(공단)길만 오롯이 걷는 코스이다. 볼거리도 종점인 ‘김포함상공원’말고는 없다. 이번 구간은 절반 이상이 산길이라서 집사람의 무릎을 감안 2km 남짓 단축하기로 했다. 지도에 표기된 ‘양촌읍’에서 동북향으로 그어진 검은 선을 따라가다 서해랑길과 만나는 지점(창준전력 앞)이다.

▼ 08 : 40. 실제 출발지는 ‘황금교(사진의 육교)’. 양촌읍 학운리의 나지막한 고갯마루에 놓인 육교(차도)인데 산악회의 배려로 버스로 이동할 수 있었다.

▼ ‘황금1로’에서 ‘황금1로228번길’이 분기하면서 육교로 올라간다. 그 초입에서 1차선 도로(유현삭시로) 하나가 오른쪽으로 갈려나간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 산비탈에 기대어 길이 나있다. 오른쪽은 공장지대이다.

▼ 08 : 47. ‘학운리’와 ‘유현리’의 경계에서 서해랑길을 만났다. 학운산의 능선이기도 한데, 고도를 높이면서 사라졌던 공장들이 유현리로 넘어가자마자 다시 나타난다.

▼ 이정표(종점까지 11.3km)는 시점에서 이곳까지를 2.5km로 적고 있었다. 산길샘(나들이) 앱은 0.5km를 걸었다고 뜬다. 그렇다면 오늘은 2km쯤 단축해서 걷는 셈이다.

▼ 잠시지만 ‘유현리(柳峴里)’의 공장지대(유현삭시로)를 걷는다.

▼ 08 : 50. ‘스카이산업’ 앞. 경기둘레길 이정표(함배·수안마을 버스정류장 1.4km)가 산속으로 들어가란다. 마을(공단)길과 산길의 반복, 서해랑길 99코스의 특징이다.

▼ 산길은 시작부터 가팔랐다. 그게 길지 않다는 게 다행이라고 할까?

▼ 08 : 54. 숨이 차오르기도 전에 능선에 올라섰다. 이정표는 없지만 왼쪽으로도 길이 또렷하다. 아까 이정표가 있던 삼거리에서 능선을 따라 곧장 왔어도 될 것 같다.

▼ 08 : 57. 다시 한 번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정상(고도계 76m)이다. 이름조차 없는 나지막한 산꼭대기에는 참호가 설치되어 있었다. ‘H 780’이라고 적힌 삼각점도 눈에 띈다.

▼ 하산 길은 무척 가팔랐다. 거기다 미끄럽기까지 해서 스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스틱을 펴는 게 귀찮아 맨손으로 내려가던 집사람이 무척 고생했던 구간이다.

▼ 09 : 04. 잠시 후, 유현리로 내려서니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보인다. 같은 마을이지만 공장 일색이던 아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하나 더. 두산백과는 유현리에 굿들개(또는 귓들개), 너먼사루지 등 2개의 자연마을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디를 이르는지는 알 수 없었다.

▼ 마을길(유현삭시로241번길)을 따라 북서진(北西進) 한다. 왼쪽이 대곶면(대능리)이고 오른쪽은 양촌읍(유현리)이니 읍면 경계를 따라간다고 보면 되겠다.

▼ 09 : 11. 간선도로라 할 수 있는 ‘대곶남로’로 올라섰다. 이어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벽리’ 방향으로 간다.

▼ 탐방로는 이제 ‘대곶남로’를 따라간다. 도로변에 인도가 따로 나있다.

▼ 3일만 있으면 입하(立夏)이다. 경칩에 시작된 농사일이 한층 더 분망해지는 시기다. 그러니 부지런한 농부가 한눈 팔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 09 : 18. 잠시 후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에 이른다. 참! 오는 도중 김포산업단지 갈림길(이정표 : 종점까지 9.8km)에서 도로를 횡단해 반대편으로 걸어왔다.

▼ ‘대능2교’를 지나면 ‘함배(含盃)’ 마을이다. 옛날에 주점이 있었는데 술잔 인심이 후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란다. 서해랑길은 다리 아래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 다리 아래는 ‘경기둘레길’의 주요 포스트이기도 한다. 59코스의 종점이자 60코스의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안내도와 스탬프함, 이정표(대명항 9.7km/ 김포 새솔학교 7.5km)를 세워놓았는가 하면, 벤치를 놓아 쉼터까지 겸하도록 했다.

▼ 잠시지만 고속도로와 함께 간다. 왼쪽으로 길(대곶남로513번길)이 나있다.

▼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인천-김포). 왼쪽에는 ‘수안터널’이 있다.

▼ 09 : 25. ‘수안터널’ 옆에서 산속으로 들어간다. 산길은 급할 것이 없다는 듯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 09 : 30. 능선에 올라섰다. 경기둘레길 팻말이 왼쪽을 가리킨다.

▼ 길이 상당히 가팔라졌다. 하지만 버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연록의 숲에서 보내오는 피톤치드의 효능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숲의 아름다움에 빠져 힘이 드는지도 몰랐을 것이고 말이다. 연록은 꽃보다도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던가.

▼ 집사람의 손길은 오늘도 분주하다. 내일 아침 밥상에 올리겠다며 산나물을 따느라 여념이 없다.

▼ 09 : 43.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간다. 그러다 시야가 뻥 뚫린 곳에 이른다. 대곶 들녘과 영종도 방면일 텐데 연무 때문에 확인할 수는 없었다.

▼ 오른쪽에는 국궁장인 ‘대호정’이 있었다. 김포시 관내 4개의 궁도장(대호정·태산정·금능정·분양정) 중 하나로 75년의 역사를 자랑한단다.

▼ ‘대호정’ 입구부터는 임도를 따라간다.

▼ 웬 방풍림? 가족묘원에서 심어놓은 것 같다.

▼ 이곳에서도 시야가 트인다. 대곶면 들녘과 인천시 서구 일대가 눈에 들어온다는 곳이다. 연무 때문에 어디가 어딘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지만.

▼ 수안산은 147m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무리 낮아도 산은 산이다. 자신의 정수리를 그냥 내줄 리가 없다. 막바지에 이른 산길이 저렇게 가팔라지는 이유다.

▼ 09 : 54. 헬기장.

▼ 09 : 56. 삼거리. 경기둘레길 이정표(대명항↑ 8.1km/ 수안산 정상←/ 함배·수안마을 버스정류장↓ 1.6km)가 왼쪽으로 50m쯤 비켜나 있는 수안산 정상에 잠시 들렀다가란다. 하지만 코리아둘레길 공식 앱인 ‘두루누비’는 곧장 직진하란다. 그렇다고 이를 따를 사람들은 없겠지만.

▼ 09 : 57 – 10 : 30. 수안산 정상. 웬만한 운동장만큼이나 널찍한 공터로 이루어져 있다. 낙조 명소답게 서쪽에 팔각정(守安亭)를 배치해 일몰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 ‘수안산성(守安山城, 경기도 기념물 제159호)’은 삼국시대(신라)에 쌓은 퇴뫼식 석축 산성으로 수안산(守安山, 147m) 정상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룬다. 성벽은 현재 685m가 남아있다고 했다. 하지만 훼손이 심하다고도 했다. 그래선지 산을 빠져나갈 때까지 성벽은 눈에 띄지 않았다. 참고로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이 지역은 고구려 수이홀(首尒忽)이었다. 신라가 점유하고 경덕왕대에 수성현(戍城縣)으로 개칭될 때까지 ‘수이홀현’으로 불리었다. 이후 고려 때 수안현으로 바뀌었다. 이로 보아 수안산성은 신라 수이홀현의 치소성으로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유물도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 조망도(眺望圖)도 눈에 띈다. 실물과 대조해가며 살펴보라는 모양이다.

▼ 하지만 짙은 연무로 인해 대조는 언감생심이었다. 그저 대능리와 대벽리 일원 민가 몇이 눈에 들어올 따름이다.

▼ ‘정상석’은 널찍한 잔디광장 맞은편에 세워져 있었다. 봉수대처럼 생긴 석탑도 눈에 띈다. 맞다. 이곳 수안산성 정상부에는 조선시대의 ‘수안산봉수터’가 남아있다고 했다. 수안산봉수는 강화 대모산성에서 정보를 받아 김포 백석산으로 전달했다.

▼ 10 : 00 – 10 : 28. 동쪽 끝에는 쉼터를 만들어놓았다. 덕분에 막걸리를 반주삼아 푹 쉬다 갈 수 있었다.

▼ 10 : 30. 삼거리로 되돌아와 길을 이어간다. 아니 정상 어림에 있다는 ‘도마(陶馬)뫼’라 불리는 무덤을 잠시 찾아보기도 했다. 옛날 도장군(陶將軍)이 타고 다니던 애마(愛馬)가 묻혀 있다는 얘기가 있어서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설화는 설화일 수밖에 없나보다.

▼ 守安山神靈之壇‘. 김포 시민들이 산신제를 지내는 제단이라고 한다.

▼ 접경지역에서 가까운 탓인지 군사시설이 곳곳에 들어서 있었다. 임무를 끝마친 시설은 기념물에 가깝다. 하지만 무심한 민심은 이를 쓰레기통으로 만들어버렸다.

▼ 임도는 널찍했다. 경사나 폭이 차량 통행도 가능할 정도다. 중간에 길이 나뉘기도 하지만 경기둘레길 이정표가 방향을 알려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 10 : 34. ‘수남초등학교’ 갈림길. 이정표(정상에서 260m)가 ‘약수터’ 방향으로 가라고 한다.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수안산숲길 종합안내도’을 참고하여 게이트볼장으로 가면 된다.

▼ 게이트볼장으로 내려가는 길, 가로수삼아 벚나무를 심어놓았다. 그게 봄이면 제법 화려하게 피어나는가 보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국립수목원 자료)에서 매년 벚꽃 개화시기를 예측해오고 있는데, 구청사(수원)·물향기수목원(오산)·남한산성(광주)·수리산(안양)·축령산(남양주) 등 벚꽃 명소와 함께 발표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 도중에 ‘약수터’까지 낀 체육공원을 스치듯 지나간다. 12가지나 되는 다양한 종류의 운동기구를 갖췄다.

▼ 10 : 40. 벚꽃나무길 끄트머리에는 ‘게이트볼장’이 있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영락없는 ‘파크골프장’이다. 그라운드에 숫자가 적힌 깃발이 펄럭이는가 하면, 손에 든 클럽도 분명 ‘파크골프용’인 것이다.

▼ 10 : 43. 잠시 후 ‘율생리(栗生里)’의 공장지대로 들어간다. 대곶면에 속한 자연마을로 성산, 구지(九芝), 구래동 등의 자연마을을 품고 있다고 했으나 어디를 이르는지는 알 수 없었다.

▼ 그 초입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시점과 종점이 똑 같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무척 낯설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분지가 온통 공장들로 빼곡한 것이다. 도시와 농촌이 혼합된 ‘半도(시)半농(촌)’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했다.

▼ 이후부터는 공장들 사이를 걷는다. 그렇다고 민가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민가와 농경지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주객전도(主客顚倒). 늦게 들어온 공장들이 주인인 농가를 몰아내고 있는 중이라고나 할까?

▼ 10 : 50. 2차선인 ‘대곶서로’에 이른다. 전신주에 매달린 경기둘레길 표지판이 왼쪽으로 가란다.

▼ 10 : 51. 50m 남짓 걸었을까 ‘상마리입구 버스정류장’ 앞에서 도로를 횡단한다.

▼ 탐방로는 이제 상마리(上馬里)로 들어간다. ‘신기마을’이라는데 공장 일색이던 풍경이 민가로 빼곡한 것이 오히려 낯설다는 느낌을 준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수안산’이 눈에 들어온다.

▼ Amazing village? 놀이 시설을 갖춘 캠핑장인 모양인데 얼마나 대단했으면 저런 상호를 거침없어 내걸었을까?

▼ 요즘 김포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 즉 빼곡히 들어찬 민가, 캠핑장, 펜션, 식당 등 도심에 가까운 농촌 풍경은 오래가지 못했다. 탐방로는 또 다시 공장지대로 들어간다.

▼ 이 정도 크기면 ‘상마리 공단’이라고 해야 하나?

▼ 하지만 아쉬운 풍경도 눈에 띈다. 공단 아니 주택가에까지 내건 저 현수막들은, 그만큼 매물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불난 집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트럼프란 인간은 관세폭탄으로도 모자라 전쟁까지 일으키며 세계경제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게 유가 폭등을 불러일으켜 우리 같은 수출주도형 국가들에 더 큰 피해를 주었고.

▼ 11 : 10. 185번길·89번길·159번길 등 ‘대곶서로’의 샛길을 따라 들어가길 한참, 공장지대가 끝나는가 싶더니 산속으로 들어간다. 89번길에서 159번길로 꺾이는 지점에 이정표(종점까지 5km)가 세워져 있다.

▼ 산길은 금방 끝났다. 100m도 채 되지 않았는데 또 다시 공장지대가 나타난다. 공장지대 사이에 섬처럼 남아 있는 야산이라고나 할까?

▼ 이번에는 ‘약암리(藥岩里)’의 공장지대이다. 길은 아직도 159번길·89번길 등 ‘대곶서로’의 샛길들이 계속된다.

▼ 11 : 16. 자동차전용도로인 듯한 ‘대곶검단로(84번 지방도)’는 굴다리로 통과하고 있었다. 굴다리 근처에 이정표(종점까지 4.4km)를 세워놓았다.

▼ 굴다리를 지나서도 공장지대는 한참이나 더 계속된다. 도로 이름도 ‘대곶서로89번 길’이다.

▼ 11 : 19. 주방가구제조업체인 ㈜아코퍼시스 옆에서 ‘승마산’ 임도로 들어간다. 임도는 완만하게 이어진다. 가파른 구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갈 지(之)’자를 그리며 경사를 누그러뜨린다.

▼ 11 : 33. 승마산(乘馬乘, 139.2m) 갈림길. 경기둘레길은 승마산 정상으로 향한다. 하지만 서해랑길은 그냥 직진이다. 승마산 정상은 김포의 숨은 명소로 유명하다. 북쪽의 문수산부터 서해 바다와 만나 황산도, 마니산, 영종도까지 시원스런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단다.

▼ 이정표에 말 조형물을 달아 놓았다. 하나 더. 승마산 정상에서의 조망을 즐기기 위해서는 640m쯤 더 걸어야 한다. 까짓 15분이면 넉넉하겠지만 오늘처럼 연무가 자욱한 날에는 헛걸음만 할 가능성이 높다. 그냥 지나쳐버린 이유이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산등성이, 군인들이 사용하던 옛 벙커가 지키고 있다. 아니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비해 놓았다. 하긴 우리야 평화통일을 외쳐대지만 김씨 왕조의 북한은 아직도 요지부동이다.

▼ 하산 길은 가파르게 시작된다. 침목을 깔았는데 이게 나선형을 이루며 멋진 모양새를 만들어낸다.

▼ 능선을 따라간다. ‘승마산’이란 이름처럼 ‘말등’과 같은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진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능선을 벗어나버린다.

▼ 이때만 해도 하산길인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울울창창한 참나무 숲속을 걸으며 ‘에코힐링’을 외쳤다. '에코 힐링'이란 게 본디 ‘자연 속에서 치유력을 회복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니 말이다.

▼ 11 : 45. 하지만 산길이 능선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그리고는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으로 변하고 있었다. 능선을 계속 따라갔으면 될 일을, 한참이나 내려가다 다시 올라가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 12 : 00. 산을 내려서면 ‘약암1리’이다. 승마산의 원래 이름은 ‘약산(藥山)’이었다. 약초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마을도 ‘붉은배 마을’이었는데, 약산에서 나던 붉은 물에서 유래됐다. 그러다 철종이 강화도에 행차하던 길에 이 물로 눈병을 고쳤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약암리’로 변했단다.

▼ 이후부터는 ‘약암로’를 따라간다. 이때 약암관광호텔이 눈에 띈다. 이곳 약암리는 물빛이 붉은 ‘홍염천’으로 유명하다. 약산의 붉은 바위에서 솟아난 신비한 약물로 전해지는데, 지금은 지하 460m 붉은 암반에서 용출되는 온천수를 이른다. 이게 철분과 염분 등 각종 무기질이 풍부해 처음 나올 때는 투명하지만 공기와 만나 10-20분이 지나면 산화돼 붉은색으로 변한다나?

▼ 길가 돌탑에 제사상이 차려졌다. 담장 안쪽(당집 마당인 듯)의 돌탑에는 더 많은 제물이 진설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명복이라도 비는 것일까? 이곳 약암리가 MBC 드라마 ‘수사반장’의 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실화의 무대’라고 했으니 말이다.

▼ 도로가 아예 주차장으로 변한 걸 보니 트레킹이 대충 끝나 가는가 보다. 종점인 대명항 근처의 초지대교가 시도 때도 없는 교통체증으로 유명한 곳이니 말이다.

▼ 앗! 싸도 너무 싸다. 만원에 참외가 한 상자. 사과도 10개가 넘는다. 저만한 크기면 우리 동네 할인마트에서는 세일 때도 4개 밖에 주지 않는데.

▼ 12 : 15. 약암리사거리. 약암로와 ‘대명항로’가 만나는 사거리인데, 대명항 방향으로 직진한다.

▼ ‘대명항1로’ 조금 못미처에 있는 다리를 건너기 직전 도로를 벗어난다. 이어서 호동천의 둑길을 따라 서진한다.

▼ 12 : 24. ‘대명교’로 ‘호동천’을 건넌다. 이어서 ‘대명항1로’를 따라 바닷가로 간다.

▼ 12 : 28. 대명항수산물타운(이정표 : 종점까지 0.7km).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간다. 하지만 왼쪽에 있는 대명포구를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 포구로 가는 길. 횟집과 튀김집은 물론이고 건어물, 젓갈 등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하지만 집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순무 김치’를 주워들었다. 참고로 대명포구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20여 가구가 농업과 어업을 겸하는 반농반어 형태의 소규모 마을이었다. 그러다 1970년대 후반부터 횟집과 식당이 들어서며 상업화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매일 수도권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 12 : 35. 대명포구(大明浦口). 김포시의 하나밖에 없는 포구로, 강화해협을 사이로 강화도와 마주보고 있다. 강화 초지리까지 운행하던 나루터이자 선착장의 기능을 하던 곳으로, 1911년 기록인 ‘한국수산지’와 ‘조선지지자료’에는 ‘전막(全幕)’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2000년에는 경기도 지방어항으로 공식 지정되었다.

▼ ‘초지대교(草芝大橋)’.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草芝里)와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藥岩里)를 잇는 아치형 다리로 2002년에 개통됐다. 길이는 1.2km, 폭 17.6m의 다리 위로 4차선의 ‘84번 지방도(초지로)’가 지나간다.

▼ 수산물타운. ‘대명항’은 초지대교가 놓이면서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2008년에는 수산물 직판장이, 2010년에는 젓갈시장이 차례로 준공되었다.

▼ 즐비한 횟집에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접근성이 뛰어난데다 가격까지 저렴하다니 어련하겠는가.

▼ 포장된 ‘생선회’를 손에 든 상인들이 1만5천원을 외친다. 둘레길 도반은 무척 싼 가격이라며 두 팩이나 주워들었다. 하지만 야외 벤치를 빼면 먹을 만한 곳이 없다는 점은 흠이었다. 주민들의 눈치도 만만찮았다. 벤치에서 생선회를 먹을 수는 있지만 반주는 금물이란다. 술 없이 생선회를 먹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 12 : 43. 김포함상공원. 62년간 바다를 지켜오다 2006년 퇴역한 군함(운봉함)을 활용한 수도권 최초의 함상 안보 체험장이다. 영상관, 선실 재현공간, 한국전쟁 홍보관, 한주호준위 추모관 등 다양한 전시관들이 꾸며져 있으며, 특히 상갑판을 지나 조타실·전탐실로 올라가면 군인들의 은밀한 생활상도 살짝 엿볼 수 있다.

▼ 멀티미디어 ‘분수’라고 했다. 하지만 공처럼 생긴 저 조형물의 정체는 알아낼 수 없었다. 예산까지 투입해가며 만들었다면 조형물에 대한 안내 정도는 기본일 것 같은데 말이다.

▼ 김포의 하나뿐인 ‘포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듯.

▼ 폐품을 재활용한 듯한 이 조형물은 ‘삼식이의 꿈’이라고 했다. 유난히도 주둥이가 큰 ‘삼식이’를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겨울이 제철인 삼식이는 인근에 있는 대명항어판장에서 회나 탕으로 즐길 수 있다.

▼ 그밖에도 1년 후에 편지를 전달해 준다는 ‘느린 우체통’, 고양이가 생선을 채가는 ‘호시탐탐’, 돛단배 등 조형물들이 여럿 있고, 군대에서 실제 사용하던 탱크, 장갑차, 초계기 등도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안보체험장으로 활용중인 군함(운봉함)은 안전점검을 한다며 문을 닫았다.

▼ 12 : 54. 함상공원을 빠져나가면 ‘대명항1로 92번길’. 그 끄트머리에서 평화누리길 입구를 만나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서해랑길(강화 100코스) 안내도도 입구에 세워놓았다. 오늘은 12.35km를 3시간 50분에 걸었다. 절반 이상이 산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은 셈이다.

▼ 오늘도 집사람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리고 둘레길 도반들은 물론이고 주민, 관광객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저서에서 ‘참된 삶은 만남이다’라고 했습니다.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는 항상 고독한 존재라면서요. 인간의 만남은 ‘나와 너’ 즉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돈·권력·배경에 집중하는 ‘나와 그것’의 만남이 되기도 합니다. 인생의 불행이 발생하는 길인데도 말입니다. 마르틴 부버가 말한 ‘나와 너’의 대표적인 사례가 둘레길 도반들과의 만남이 아닐까 싶습니다. 함께 걷는데 돈이나 권력, 배경이 필요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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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전망대 나래 아래, 시화호는 영락없는 바다이더라. 서해랑길 92코스(대부도관광안내소-배곧한울공원) (0) | 2026.04.23 |
|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섬 '구봉도'로 대변되는, 서해랑길 91코스(독도바다낚시터-구봉도관광안내소) (1) | 2026.04.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