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31코스
여행일 : ‘19. 11. 2(토)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일원
여행코스 : 궁촌레일바이크역→동막교→부남교→덕봉교→맹방해수욕장→한재소공원(소요시간 : 15.8㎞/ 3시간45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원래의 거리가 9.8㎞이니 해파랑길 50개 코스 가운데 가장 짧은 구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해파랑길‘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모든 구간이 바닷가가 아닌 내륙의 도로를 따른다는 또 다른 특징도 갖고 있다. 옛 국도나 하천 둑방길, 또 나머지는 마을안길을 걷도록 길이 나있기 때문이다. 가슴에 담아둘만한 볼거리가 일절 없다는 자랑스럽지 못한 특징도 있다.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우린 한재소공원까지 거리를 늘려서 진행해봤다. 맹방해변과 한재 인근의 아름다운 바다풍경으로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31코스의 단점을 보완했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23㎞ 가까이나 되는 32코스에 대한 부담도 미연에 줄여놓았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의 결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참! 31코스의 단점들을 피하기 위해 코스를 변경한 일행도 있었다. 공양왕릉에서 대진항과 부남해변을 거친 다음 산길을 이용해 덕산해변까지 가는 방법인데 조금 더 힘은 들지만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을 실컷 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한다.(첨부된 사진 가운데 두어 장은 산사나이님과 뚜벅이님의 것을 빌려다 썼다)
▼ 궁촌 레일바이크역(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146-10)
동해(속초-삼척)고속도로 근덕 IC에서 내려와 7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다 궁촌교차로(삼척시 근덕면 매원리)에서 빠져나오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조금만 더 올라가면 31코스의 들머리인 궁촌레일바이크역이 나온다. 해파랑길 안내판과 스탬프보관함은 역사 앞 교통섬에 설치되어 있다.
▼ 일단은 레일바이크 역사부터 둘러본다. 이곳은 삼척시가 자랑하는 ’해양레일바이크‘의 역사(驛舍) 2곳 가운데 하나이다. ’삼척 해양레일바이크‘는 2010년 근덕면 궁촌리와 용화리 사이의 5.4㎞ 구간에서 운행을 시작했는데 바다를 낀 레일바이크로는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title) 덕분인지 관광객들의 호응이 아직까지도 식지를 않는단다. 아니 1시간여 동안 해저도시와 무지개터널, 빛의 향연터널 등 3개의 터널과 해송 숲을 거치며 해안절경을 즐길 수 있다는 매력도 한 몫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 관광지의 가장 큰 매력은 그곳의 풍광을 담은 기념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레일바이크 역사‘, 그러니 상징 조형물을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공양왕릉‘부터 다녀오기로 한다. 오른편에 ’궁촌마을‘을 끼고 걷게 되는데 ’궁촌‘이란 지명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가 이성계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원주와 간성을 거쳐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해서 '궁촌'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이 마을의 포구(궁촌항)는 국가어항으로 오징어를 비롯해 가자미, 넙치, 우럭, 대구, 방어 등 다양한 자연산 어종이 어획되며 관광 및 해양스포츠 장소로 복합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 터를 잡은 ’공양왕릉(恭讓王陵 : 강원도기념물 제71호)‘이 나타난다. 능(陵)은 석축굽을 돌린 큰 무덤과 그 옆과 앞의 작은 무덤 2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고분들은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恭讓王 : 34대, 재위기간 1389-1392) 3부자의 능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공양왕은 왕조의 몰락과 함께 폐위되어 왕자 석(奭), 우(瑀)와 함께 원주와 간성을 거쳐 삼척에서 조선조 태조 3년(1394)에 교살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공양왕릉은 이곳 궁촌리 외에도 경기도의 고양시(원당동)에 하나가 더 있다. 그럼에도 문헌의 기록이 부족하여 어느 쪽이 진짜인지 확실하지가 않단다. 다만 삼척시의 능이 민간에서 전해 내려온 반면, 고양시의 것은 조선 왕조에서도 인정한 능이라고 한다. 사적 제191호로까지 지정(1970년)된 이유일 것이다. 진위에 대한 다른 주장도 있다. 공양왕이 이곳에서 죽어 묻혔으나 그 후 경기도 고양시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곳 궁촌의 왕릉에 대한 기록으로는 현종 3년(1662) 삼척부사 ’허목‘이 쓴 ’척주지‘와 철종 6년(1855) 김구혁의 ’척주선생안‘이 있다. 또한 궁촌리에서는 3년마다 공양왕릉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 왕릉은 조선조 헌종 3년(1837)에 삼척부사(三陟府使) 이규헌(李奎憲)이 개축을 했으며 1977년에는 삼척군수와 근덕면장에 의해 새롭게 단장되었다.
▼ 궁촌역으로 되돌아와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한다. 옛 ’7번 국도‘를 따라 걷게 되는데 길이 산속으로 나있는 탓에 눈요깃거리가 일절 없는 지루한 구간이다. 하지만 이 길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재패했던 황영조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개최 해오는 ’황영조 국제마라톤 대회‘의 공인코스이기도 하다. 삼척 ’엑스포광장‘을 출발해 반환점인 ’황영조마을‘을 다녀오는 코스인데 중간 중간에 아래 사진과 같은 지점 표시를 해놓았다.
▼ 참 볼거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갯마루인 ’사래재‘를 넘다보면 가끔가다 붉은 옷으로 곱게 갈아입은 단풍나무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부지런한 놈들뿐이라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말이다.
▼ 가로수 대신으로 심어놓은 ’산딸나무‘도 볼거리라 할 수 있겠다.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를 보고 ’꾸지뽕나무‘라는 나에게 함께 걷고 있던 친구 ’형우‘군이 ’산딸나무‘라고 일러준다. ’모야 모‘라는 어플리케이션으로 확인까지 시켜준다. 맞다. 같이 올라와 있는 꽃망울과 연결시켜보니 심심찮게 보아오던 나무였다.
▼ 바로 옆에 널찍한 국도를 새로 내놓은 탓인지 차량 통행은 드문 편이다. 하지만 지나가는 차량마다 속도가 하도 빨라 위험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동해안자전거길‘을 겸하는 탐방로를 도로 가장자리에 만들어놓았지만 그저 라인으로만 나뉘어 있는데다 차량이 몸을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는데 어찌 소름끼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오늘도 가스공사의 공급시설을 만났다. ’사래재‘ 고갯마루를 너머에 위치한 ’친환경농산물 종합유통센터‘의 옆에 세워져 있었는데 위험시설물이라기 보다는 예술작품에 가까울 정도로 멋지게 만들어놓았다.
▼ 조금 더 걷자 ’427번 지방도‘가 교차되는 사거리가 나온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35분만인데 왼편은 태백, 그리고 오른편은 ’대진항‘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맞은편 코너에 ’동막리‘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버스정류장도 ’동막‘이라고 적혀있으니 이 마을의 이름이 ’동막골‘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행여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오는 마을이 아닐까 하여 꼼꼼히 살펴봤지만 마을의 분위기는 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영화는 태백산맥 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을 배경으로 삼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동막골‘은 우리에게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만들었던 장소다. 북한의 불장난으로 어수선한 요즘 같은 때는 한번쯤은 떠올려 봐도 좋을 동네가 아닐까 싶다.
▼ 동막마을 옆에는 마읍천(麻邑川)이 흐른다. ’동막교‘는 이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이다. 참고로 마읍천은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상마읍리 사금산의 문의재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마읍‘이라는 고을에서 이름이 유래했는데, 이 마을은 마읍(馬邑)·마라읍(馬羅邑)·말읍(末邑)·마읍(麻邑)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어 왔단다.
▼ 탐방로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둑방길을 따른다. 마읍천을 오른편에 낀 제방(堤防)의 위로 길이 나있다. 왼편의 농지에는 여물용으로 꾸려놓은 볏짚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그래 입동(11월8일)이 다음 주 금요일이니 추수가 이미 끝났음은 자명한 일이겠다.
▼ 제방의 왼편 아래에는 축산시설들이 즐비하다. 그러니 고약한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를 것은 당연하다. 해파랑길 31코스 가운데 가장 힘든 구간이라 하겠다.
▼ 부남리(府南里)에 들어서자 낯선 풍경이 눈길을 끌게 만든다. 노송(老松)들이 가득한 숲이 들녘, 그것도 하천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아래에는 당집까지 들어앉았다. 이 마을에서 신목(神木)으로 떠받들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잠시 후 탐방로는 또 다시 마읍천을 건넌다. 25분만인데 이번에는 부남교를 이용해서이다. 참! 이 부근에서는 낚시꾼들을 여럿 만났다. 2년 전엔가 이곳 마읍천에 연어 치어를 방류했다고 하더니 성어가 되어 돌아오기라도 했나보다.
▼ 다리를 건너면 ’부남1리‘다. 해파랑길은 이제부터 농로를 지나는가 하면 또 어떤 곳에서는 마을안길을 통과하기도 한다. 덕분에 대봉을 주렁주렁 매달은 감나무를 만날 수 있는가 하면 휘늘어진 가지가 멋들어진 노송도 만나게 된다.
▼ 부남1리를 지나면 ’교가1리‘, 오리마을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군내버스가 다니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만난다. 하지만 인도가 따로 없으니 오가는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래선지 해파랑길은 또 다시 마을안길로 들어서버린다. 참고로 교가리는 근덕면의 사무소가 있는 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수령이 천 년이나 되는 느티나무의 가지가 서로 상교(相交)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동막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돌린 마읍천은 이곳 교가리에서 노곡면 우발리 및 들입재(野入峙)에서 발원한 무릉천(武陵川)과 합류한다. 물길이 더 넓어졌으니 어류의 크기나 수량도 늘어났을 것이다. 이를 놓치기가 싫었던지 하천에 어망을 쳐놓았다. 물길의 양 옆을 그물망으로 감싸서 안으로 들어온 어류가 맨 안쪽에 있는 좁은 곳에 갇히도록 되어 있다. 전통적 어로(漁撈) 기법이라 하겠다.
▼ 탐방로는 또 다시 둑방길로 올라선다. 마읍천 너머로 보이는 마을은 근덕면 소재지인 ’교가리‘이다. 시골 마을인데도 불구하고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이유일 것이다.
▼ 잠시 후 근덕면소재 관공서들과 연결되는 ’덕산교‘를 지났다 싶으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덕봉교‘가 보인다. 다리 너머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건 육계도(陸繫島, land-tied island)인 ’덕봉산‘인데 근처 백사장은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적격이다. 마읍천의 맑은 담수 속에서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물길이 약한데다 깊지도 않아 어린이와 노약자가 물놀이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곳이란다.
▼ 둑방길이 끝나자 탐방로는 또 다시 도로에 내려선다. ’원전백지화 기념탑‘이 세워진 소공원의 앞이다. 2012년엔가 이곳 근덕면(동막리 일원)이 원자력발전소 건설 예정지역으로 지정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계획이 취소되었나보다. 그렇다면 이곳도 역시 찬·반 논란으로 주민들이 몸살깨나 앓았겠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위험시설이 들어오는 걸 좋아할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시설이니 어딘가에는 꼭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나라에는 그런 부지가 없다. ’탈원전(脫原電)‘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현 정부의 고뇌는 이런 점에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덕봉교‘ 입구에 있는 ’사거리‘이다. 직진하면 ’덕산해변‘, 오른편은 덕산항이다. 해파랑길 31코스가 종료되는 맹방해수욕장은 왼편에 보이는 덕봉교를 건너야 한다. 참고로 덕산해변(德山海邊)은 마읍천을 사이에 두고 맹방해변과 나누어진다. 해안사구를 따라 건설된 산책로 남쪽에 덕산항(남애포)이 위치하고 있는데,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회센타‘에라도 들를라치면 값싸고 싱싱한 활어회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스포츠센터에서는 윈드서핑도 즐길 수 있단다. 하지만 다녀오는 것까진 생략하기로 했다. 겨울의 초입인 요즘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는 지역 주민의 전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닷가는 여름에 찾아와야 제격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 다리를 건넌 뒤에는 또 다시 둑방길을 따른다. 아니 도로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겠다. 아무튼 이 부근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마읍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덕봉산(54m)‘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덕봉산(德峰山)은 해발고도 54m의 산이다. 과거에는 섬이었으나 현재의 덕산해변인 육계사주(육지로부터 돌출 성장하여 가까운 섬에 연결된 사주)에 의해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陸繫島)이다. <덕산도(德山島)는 삼척부 남쪽 23리인 교가역(交柯驛) 동쪽 바다 위에 있다.>고 기록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 그 증거라 하겠다. ‘해동여지도’와 ‘대동여지도’에도 섬으로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섬의 이름은 산의 생김새에서 유래했다. 물더덩(물독의 방언)과 흡사하여 ‘더멍산’이라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덕번산(德蕃山)을 거쳐 덕봉산(德峰山)이 되었단다.
▼ 기암괴석이 깔리다시피 한 덕봉산에다 무리지어 나는 철새 때라도 더할라치면 그 아름다움은 극치로 향한다. 어느 유명화가 있어 저런 풍경을 그림에 모두 담을 수 있을까 싶다. 그건 그렇고 내년이면 저 산은 새롭게 태어난다고 한다. 삼척시가 내년 말까지 해안 데크로드와 전망시설 등을 설치해 생태관광지로 만든다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짚라인과 군초소를 이용한 요새전망대, 대나무 숲길, 공예 체험장, 마읍천 수상 게스트하우스 등을 아우르는 종합 레저단지로 가꿀 예정이란다.
▼ 경관이 아무리 좋아도 덕봉산은 가보지 못했다. 맹방해수욕장과의 사이를 지나가는 마읍천에 ’섭다리‘처럼 생긴 다리가 놓여있으나 끝부분이 끊겨 있었기 때문이다. 물에 빠져가면서까지 다녀올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건 그렇고 덕봉산은 바다와 강을 한꺼번에 끼고 있다. 백사장은 덤이다. 거기다 검은색을 띤 크고 작은 기암괴석이 바다 쪽에 널려있어 마치 수석정원을 보는 듯하다. 대나무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는 섬으로 들면 바람과 파도 소리, 대나무가 서로 맞닿는 소리가 일품이란다. 특히 산 정상이 330여㎡(100여평)나 되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삼척항과 맹방, 덕산해안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단다.
▼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걷다보면 어느덧 맹방해수욕장(孟芳海水浴場)이다. 교가1리를 통과한지 40분만인데 31코스가 종료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악회에서는 32코스의 일부분을 연장해서 걷겠다고 한다. 밋밋했던 풍경에 대한 위로차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23㎞ 가까이나 되는 32코스의 일부분을 오늘 진행함으로써 다음 구간에 대한 부담을 줄여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참고로 ‘맹방(孟芳)’이란 향을 묻었던 마을이라는 뜻의 ‘매향방(埋香坊)’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옛날 이곳에는 ‘매향’이라는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향나무를 잘라다가 제를 지내고 그것을 민물과 바닷물이 합수하는 지점에다가 묻는 의식이다. 300년 후에 그것을 꺼내다가 피우면 향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관청에서는 포진(浦津)에 향나무를 묻는 매향의식을 해왔고 부유층들도 자기 나름대로의 매향을 했는데 자신의 땅에 묻고 최소한 100년을 묻혀 두었단다. 3대 이상이 걸린 셈이니 할아버지가 묻은 것을 그 손자 대에 꺼냈다고 보면 되겠다. 때문에 맹방 주변 해안을 매향을 행한 바닷가라는 뜻에서 매향안(埋香岸) 혹은 매향맹방정(埋香孟芳汀)이라고도 한단다.
▼ 탐방로는 해송 숲과 백사장의 사이로 나있다. 2차선 도로에 가까울 정도로 널찍하다. 아니 빈번하진 않지만 오가는 승용차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오른편에는 금빛 모래사장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백사장이 너른데다 수심이 얕고 경사까지 완만해 삼척 제1의 해수욕장으로 불린단다. 다른 해수욕장들에 비해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단다. 그건 그렇고 호젓한 바닷가에서의 산책은 맹방해변이 제격이 아닐까 싶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음향 엔지니어인 상우(유지태)와 라디오 PD인 은수(이영애)의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할 즈음, 소리채집을 위해 찾은 곳이 바로 맹방해변이다.
▼ 뒤따라오던 집사람이 뭔가를 가리킨다. 해수욕장에 웬 축구공이냐면서 말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저건 물탱크란다. 여름철 피서객들에게 물을 쏟아주는 기능을 하고 있단다. ’2002 월드컵‘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데 당시 경기가 열리지도 않았던 이곳 삼척에 ’기념탑‘이 세워진 이유까지는 모르겠다.
▼ 백사장 뒤편의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산책을 하며 즐기는 삼림욕 역시 맹방해수욕장이기에 가능한 즐길거리다. 많은 삼척 시민들이 삼척 제1의 해수욕장으로 맹방해수욕장을 꼽는 걸 주저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너른 바닷가 역시 즐길거리로 충분하다. 저 바닷가에는 조개가 많이 묻혀 있다고 한다. 얕은 바다 속에서 발가락으로 모래바닥을 후비기라도 할라치면 어렵지 않게 조개를 잡을 수 있단다. 온 가족이 잡아 온 조개를 모아 커다란 냄비에 담고 조개탕을 끓여먹는 즐거움은 이곳 맹방해수욕장의 자랑거리 중 하나라고 한다.
▼ 맹방해변에서 하맹방해변으로 넘어가는 곳에는 자그만 하천이 흐른다. 민물과 짠물이 만나면서 만들어낸 S자로 굽어진 모래톱이 인상적인데 엄청나게 많은 새들이 몰려있다. 조금 전에 지나왔던 마읍천 하류만 철새 도래지인줄 알았더니 이곳도 그 범위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고운 모래사장이 너무 아까워 비록 잠시지만 모래사장에 내려서본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눈앞에서 부서지고, 끊임없이 흰 포말을 토하며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아! 좋다. 이런 걸 보고 힐링이라고 하는가 보다.
▼ 맹방해수욕장이 끝났어도 모래사장은 계속된다. 국민관광지인 맹방해변이 하맹방해변과 상맹방해변, 한재밑해변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이가 4㎞에 달해 삼척시 해변 중 가장 길다고 한다. 특히 반달처럼 완만한 해안선을 끼고 있는 하맹방해변은 드라마 ‘불굴의 며느리’ 촬영지이기도 하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300년 전통의 종택 만월당에 사는 여인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인데, 주인공 영심(신애라)과 신우(박윤재)의 운명적 만남이 저 모래사장에서 이루어졌다. 그건 그렇고 해변이 하도 길다보니 보여주는 풍경도 어려가지다. 이번에는 바닷가 도로변을 아예 꽃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반대편은 ‘씨스포빌 리조트’에사 운영한다는 골프장일 것이다. 현재 골프장 6홀과 함께 콘도와 펜션을 운영하고 있단다.
▼ 해파랑길은 상맹방해변이 끝나기 전에 왼편으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차도까지 나간다음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벚나무 가로수길’을 따른다. 하지만 이를 놓쳐버린 우리 부부는 해변이 끝나는 곳까지 진행해 버렸다. 비록 잠시지만 길을 잃고 헤맸음은 물론이다. 지역 주민의 도움으로 ‘한재밑’ 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와 ‘7번 국도’의 굴다리를 통과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 해파랑길은 또 다시 옛 ‘7번 국도’를 따른다. 한재로 오르는 고갯길인데 뒤라도 돌아볼라치면 맹방해수욕장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하긴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따라 달리는 7번 국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풍경이라니 오죽 하겠는가.
▼ 트레킹 날머리는 한재소공원(삼척시 근덕면 상맹방리 산 30-11)
한재를 넘는 길은 텅 비어 있었다. 아니 맹방해안의 ‘항만 및 침수 친수공사’를 위한 중장비가 자주 오가기는 했다. 비록 레미콘공장에서 공사장까지의 짧은 구간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30분 조금 못되게 오르자 산자락을 휘돌아가는 모퉁이에 만들어놓은 ‘한재소공원’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총 15.8㎞를 걸었다. 31코스의 원래 길이가 9.8㎞이니 6㎞를 더 걸은 셈이다. 걸린 시간은 3시간 45분. 알맞은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 한재(漢峙)는 근덕면 상맹방리에서 삼척시 오분동으로 넘어가는 곳에 위치한 해발고도 102.6m의 고갯마루이다. 인근에서 가장 큰 고개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재의 능선이 동해로 들어가는 곳은 현재 암석해안으로 곶을 이룬다. 따라서 한재의 동쪽은 암석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 경관이 빼어난 이유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곳은 애환(哀歡)의 고개였다. 실직국(悉直國)이었던 이곳 삼척은 신라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때 신라에 복속되었고,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때 신라의 한 주(州)가 되었다. 그러니 지증왕에 의해 실직국의 군주로 임명된 이사부(異斯夫)도 한재를 넘어 삼척으로 갔을 것이다. 아까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들렀던 공양왕도 역시 이곳 한재를 넘었음이 분명하다. 누군가는 기쁨의 고개였던 반면에 또 다른 누군가에는 눈물의 고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고개가 지금은 한산한 고개가 되어버렸다. 7번 국도가 4차선으로 개통되면서 한치터널을 뚫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를 아쉬워한 삼척시에서 고갯마루에 작은 공원을 만들었으니 바로 ‘한재소공원’이다.
▼ 바다는 정면으로 바라볼 때보다 이렇듯 측면에서 바라볼 때가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화창한 가을날이어선지 바다는 더할 수 없을 만큼 반짝거렸다.
▼ 공원에서의 조망은 한마디로 뛰어나다. 북쪽으로는 삼척항과 삼척해안이 기다랗게 펼쳐진다. 바닷가에 널려있는 갯바위들만 해도 아름다운데 그 옆의 서슬 시퍼런 절벽 위에는 예쁘장한 건물들이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았다. 남쪽으로는 한재밑해수욕장과 맹방해수욕장의 흰 백사장이 길게 내려다보인다. 그 너머에 위치한 덕봉산은 아직도 싱싱한 초록빛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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