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9코스

 

여행일 : ‘19. 9. 21()

소재지 : 강원 삼척군 원덕읍과 근덕면 일원

여행코스 : 임원항입구수로부인 헌화공원임원초등학교해신당공원장호항용화레일바이크역(소요시간 : 14.72/ 4시간) 본래 코스는 호산버스터미널에서 임원항입구와 아칠목재를 거쳐 용화레일바이크역에 이르는 18.3구간이다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해파랑길 50개 코스 가운데 가장 재미없는 구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구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닷길이 아니라 산길을 걷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눈에 담아둘만한 풍경이 드물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이 안타까웠던지 코스의 절반 정도에 변화가 주어졌다. 원래 산길을 지나도록 되어있던 중간지점인 임원리까지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옛 7번 국도를 이용 임원항을 경유하도록 바꾸어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임원항을 제외하면 바닷가는 밟아보지도 못하겠지만 말이다. 우리 부부는 아예 해파랑길을 외면하기로 했다. 무미건조한 임원항까지의 구간을 아예 생략해버렸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 구간도 산길이 아닌 바닷길을 따랐다. 덕분에 수로부인 헌화공원해신당공원이라는 명품 볼거리를 만날 수 있었고, 거기다 더해 월미도라는 절경까지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들머리는 호산버스터미널(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193-6)

동해(속초-삼척)고속도로 근덕 IC’에서 내려와 7번 국도를 타고 울진·영덕 방면으로 내려오면 호산교차로가 나온다. 국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만나게 되는 호산버스터미널이 해파랑길 29코스의 출발지이다.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는 터미널 앞 삼거리에서 호산1다리를 건너면서 트레킹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실제 들머리는 임원항 입구(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1208-114)

우리부부는 산악회버스를 이용 임원항 입구까지 이동했다. 출발지에서 8.6km가 떨어진 이곳 임원항까지의 구간은 볼거리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에 담아둘만한 얘깃거리도 없는 곳에서 시간을 소모하는 것보단 해파랑길에서 잠시 벗어나 수로부인 헌화공원이란 명품공원을 둘러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겠는가. 아무튼 다리를 건너 임원시가지로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300m 전방에 수로부인 헌화공원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트가 있음을 알려주는 조형물이 다리 입구에 세워져 있다.



임원항과 임원천 사이에는 횟집이 늘어서있다. 트레킹을 나서기 전에 꼭 들러야 할 장소이다. 이곳에서 회를 떠갖고 다니다가 트레킹 도중에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경관 좋은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둘러앉아 떠온 회를 안주삼아 반주를 곁들인다면 또 다른 낭만이 아니겠는가.



▼ ㎏ 단위로 파는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이곳은 마리나 접시 단위로 팔고 있어 계량단위에 익숙해진 우리를 다소 헷갈리게 만든다. 가격도 조금씩 다르기에 보다 더 저렴한 집을 찾다보니 끄트머리에서 두 번째 집인 연안부두 횟집(031-573-0392, 010-6767-5427)’까지 와버렸다. 이 집이 가장 친절하면서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히라시와 쥐치 그리고 오징어를 섞어서 4만원어치를 시켰는데 친구 부부를 포함한 일행 4명은 물론이고 다른 일행 두 명을 더 불렀는데도 실컷 먹을 수 있을 만큼 양이 넉넉했다.



횟집에서 돌아 나올 때는 임원항을 따라 걸었다. 긴 방파제에 둘러싸인 항구에는 꽤 많은 어선들이 정박해있다. 하긴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을 정도이니 어련하겠는가. 그러니 위판(委販)되는 어획량도 많을 게 당연하다. 싸고 푸짐한 횟감을 찾아 이곳으로 오는 여행객들의 숫자가 날로 느는 이유일 것이다. 횟감을 직접 낚아볼 수도 있단다. 임원항의 방파제가 돔 낚시터로 유명하다는 소문이 있으니 사실일 것이다. 임원항은 해돋이 전망이 아름다운 포구로 동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점도 기억해 두자. 다른 한편으로 이곳 임원항은 시멘트 적출이 주 기능이었다고 한다. 1995년 연안항에서 해제되고 1995'1종 어항' 으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에는 국가어항으로 항종 명칭이 변경되었다.




항구를 빠져나와 임원 시가지를 잠시 걷는다. 시골 마을치고는 제법 큰 규모이다. 하긴 원덕이 읍으로 승격된 1980년 이전만 해도 이곳에 면사무소가 자리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아무튼 임원(臨院)이란 지명은 조선조 때 이곳에 있었던 만년원(萬年院)’이라는 여행자의 숙박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과 가까운 마을이라고 해서 임원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수로부인 헌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남화산정상의 탐방은 50m 높이의 엘리베이터을 타면서 시작된다. 남화산(141m)의 아랫자락이 매우 가파른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노약자들에게 공원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을 게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그런 약점을 단숨에 해결해버렸다. 남녀노소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관광지로 탈바꿈시켜 놓은 것이다. 이런 게 바로 고객 편의주의에 선 진정한 행정이 아니겠는가. 삼척시청 공무원들에게 찬사를 보내본다. ! 매표소 건너편 벽면에 공원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헌화가(獻花歌)’를 만화로 그려 설명해 놓았으니 탐방을 시작하기 전에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그 옆의 수로부인 헌화공원 안내도도 함께 살펴보면서 말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자줏빛 구름다리가 길손을 맞는다. 터널형의 다리는 유리벽으로 외부를 차단해 웬만한 바람에도 끄떡없도록 했다. 유리벽으로 만들어 외부 조망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안정성에다 외부조망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셈이다. 그러니 관광객들의 시선이 여유로워졌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들은 머리맡에 시판(詩板)이 매달려있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된다.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권2에 실려 있는 향가(鄕歌 : 신라 때에 불리던 민간 노래로서 보통 향찰로 기록되었다)헌화가(獻花歌)’이다. ‘자줏빛 바윗가에/ 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목숨을 걸고 꽃까지 꺾어다 바친 걸 보면 그 부인 예뻐도 많이 예뻤나 보다.



고개를 돌려보니 임원항의 긴 방파제가 눈에 들어온다. 저기 좁고 긴 모래사장은 임원해수욕장이고 저 멀리 보이는 원통형 구조물은 호산항 LNG생산기지다. 7번 국도가 미끈하게 달리는 모습도 보인다. 조금 전 구름다리를 지날 때는 임원항이 보이기도 했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했다. 그만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구름다리를 건너면 남화산의 중턱이다. 이후부터는 비교적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산의 동쪽 방향으로 비스듬히 조금씩 오르는데 절반은 계단, 절반은 마대포장길 혹은 고무 카펫길이다. 길가에 만들어놓은 정자와 전망데크를 기웃거리다보니 산마루 흘러내린 곶의 가장자리에 올라앉은 수로부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언덕에 오르니 공원의 안내도와 함께 헌화가(獻花歌)와 해가(海歌)의 전문과 배경설화를 적어놓았다. 둘 모두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는 향가(鄕歌)로 수로부인의 남편 순정공이 강릉태수가 되어 부임해가던 중 일어났던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 때 사람인 순정공의 부인으로 절세미인이었다. 남편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던 중 수로부인이 사람이 닿을 수 없는 돌산 위에 핀 철쭉꽃을 갖고 싶어하자 마침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꺾어다가 바치고, 가사를 지어 바친 것이 4구체 향가인 '헌화가'. 행렬이 임해정에 이르렀을 때는 갑자기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다 속으로 끌고 갔는데, 백성들이 노래를 부르자 다시 수로부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노래가 신라가요인 '해가'. 둘 모두 수로부인 때문에 일어난 것을 보면 그녀의 미모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할 만큼 예뻤다는 얘기일 것이다.



부지가 26,870에 이르는 수로부인 헌화공원은 남화산의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수로부인조에 실려 있는 두 이야기를 모티브로 조성됐다. 이곳 남화산은 헌화가의 무대로 알려진다. 하지만 공원은 또 다른 이야기인 해가사(海歌詞)’를 보다 중점적으로 형상화해 놓았다. 해룡을 타고 오는 수로부인상을 공원의 대표적 조형물로 삼은 것이 그 증거라 하겠다.



해룡을 타고 지상으로 돌아온 수로부인 상은 공원의 상징이다. 천연오색 대리석으로 조각된 상은 높이가 10m도 넘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바다풍경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높이 10.6m에 가로 15m, 세로 13m. 중량은 500t에 달한단다.



수로부인상의 뒤편에는 전망대를 배치했다. 임원항과 호산쪽으로 이어지는 바닷가가 시야에 들오지만 날씨 때문에 화질이 별로여서 게재는 생략했다.



이젠 정상으로 향할 차례이다. 산마루에는 헌화정정자가 쉼터이자 전망대로 자리한다. 정자 서쪽에 해돋이 터널과 소망의 탑, 바람의 창 등의 조형물이 산책로와 함께 어우러져 있는가하면 등대 모양의 화장실도 보인다. 정자의 동쪽에는 바다와 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cafe ()’가 있다. 지난 7월에 준공된 카페는 노인행복일자리사업으로 운영되는데 삼척시청에 1호가 있고 이곳은 2호란다. 1호점에 12명의 어르신들이 바리스타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곳은 1호점보다도 더 많은 어르신들이 참여한다니 이보다 더 바람직한 사업이 어디 있겠는가. 100세 시대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말이다. 아무튼 삼척시청 공무원들 다시 한 번 파이팅!’이다.



카페 오른쪽에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서 울릉도까지 거리는 약 137, 동해상에서 울릉도와 가장 가까운 지점이라 한다. 날이 극도로 맑거나 3대가 덕을 쌓으면 육안으로도 울릉도를 볼 수 있단다. 실제로 보았다는 기록도 있단다. 그런데도 나는 보이지 않는다. 야외 망원경을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 쌓은 덕이 조금 부족했던가 보다. 그러니 나라도 좀 더 쌓아야 할까 보다. 그래야 내 자손들이라도 울릉도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헌화정의 옆에는 순정공의 동상을 세워놓았다. 해가사(海歌詞)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다. 순정공 일행이 임원을 떠난 이틀 뒤 삼척의 북쪽인 증산 바다에 도착했을 때 수로부인은 용에게 납치된다. 이에 백성들을 모아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니 용이 부인을 돌려주었다는 이야기다. 그때 부른 노래가 해가(海歌)’.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빼앗아 간 죄 그 얼마나 큰 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바치지 않는다면/ 그물을 넣어 사로잡아 구워 먹으리라.’



그 옆에는 해학적인 모습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도 세워놓았다. ! 이곳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는 막대로 땅을 두드리 있는 사람들도 보았었다. 장군도 병사도, 밭 갈던 농부와 고기 잡던 어부와 물질하던 해녀도, 마을의 아낙과 청년과 소녀도, 지나가던 당나라 상인과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선(神仙)조차도 모두 쿵쿵 땅을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며 수로부인이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명색이 관광지로 꾸몄는데 포토죤(photo zone)’이라고 만들지 않았을 리가 없다. 배경이 되어줄 인물은 당연히 수로부인이다. 그런데 수로부인의 미모에 놀라버렸는지 카메라에 잡힌 집사람의 얼굴이 흐리게 나와 있다. 아니 빗속에서 찍다보니 그랬겠지만 나에게는 하등 문제되지 않는다. 열 명의 수로부인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아까 트레킹을 시작했던 임원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해파랑길을 따른다. 임원천을 오른편에 끼고 걷는다고 보면 되겠다. ‘동해안자전거길의 표식인 파란색 선을 따라 잠시 걷자 원덕읍 임원출장소임원파출소가 나온다. ‘원덕면이었던 시절만 해도 면사무소였으나 읍으로 승격되면서 본청을 호산으로 떠나보내고 이젠 출장소의 역할만 수행하고 있다.



길가에 낭만가도(romantic Road of Korea)’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강원도에서 상표등록까지 한 국내 유일의 테마관광 도로인데,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가 이 길을 걷고 있는 모양이다. 강원도 최북단인 고성에서 최남단인 삼척까지 이어지는데 길이는 239.5km. 국도와 지방도가 섞여 있는 낭만가도는 해안선을 따라 시원하게 펼쳐지는 백사장과 푸른 바다를 항상 데리고 다닌다. 시작과 끝 지점인 고성, 삼척뿐 아니라, 중간중간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을 지나며 크고 작은 해안도시를 즐길 수 있어 여행의 목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임원삼거리를 출발한지 10분쯤 지나자 임원초등학교가 나온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학교 옆의 임원교다리를 건너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해파랑길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기 때문이다. 전신주에 검봉산자연휴양림이 3전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정표가 매달려 있으니 참조한다. 하지만 동해안자전거길은 계속해서 주도로를 따른다.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동해안자전거길을 따르기로 했다. 내륙으로 파고드는 무미건조한 해파랑길보다는 바닷가로 빠져나가는 자전거길이 훨씬 더 매력적일 게 뻔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관이 빼어나기로 소문난 월미도에다 볼거리가 넘치는 해신당공원과 장호항까지 둘러볼 수 있는 데야 어디로 갈지를 놓고 망설일 필요조차 없지 않겠는가.



이후부터는 지루한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볼거리라곤 일절 없는 무미건조한 길이 가도 가도 끝이 나지 않는 것이다. !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표현은 안 했을망정 결례를 범하기도 했다. 아까 임원초등학교 근처에서 해파랑길과 헤어져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만 기억해두었는데 그게 주도로(main road)였다는 것까지는 몰랐던 게 원인이었다. 한참을 더 걸어도 바다가 보이지 않자 길을 잘못 찾아든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솔솔 돋아났던 것이다. 친구의 핸드폰 앱을 살펴보니 이 또한 조금 이상하다. 앱에 깔려있는 해파랑길을 벗어나다 보니 핸드폰도 어리둥절 했나보다. 그나저나 리딩을 하고 있는 이대장을 원망하기까지 했으니 무지의 소치였다 하겠다. 비록 속으로 투덜대는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핸드폰 앱에다 해신당을 입력해놓고 다시 길을 떠난다. 임원재를 넘어서니 국도 7호선이 나온다. 임원초등학교를 지난 지 40분만이다.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해신당공원의 이정표가 제대로 왔다고 손짓을 보내온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신남마을이 얼굴을 내민다.



오른편에서 갈남마을(葛南里)이 얼굴을 내민다. 갯바위가 많아 예로부터 미역과 우뭇가사리 등의 해초류와 이를 먹고 자라는 전복과 성게, 해삼 등이 많이 잡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마을에 전복가공공장이 세워졌는가 하면, 1960~70년대에는 제주도의 해녀 50~60명과 머구리 잠수부 10여 명이 이곳으로 와 물질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잠시 후에 만나게 될 해신당 공원의 주인공인 애랑이도 해초를 따던 처녀였단다. 참고로 갈남(葛南이란 지명은 갈산(葛山)마을과 신남(薪南)마을이 합해진 이름이다. 바닷가의 야트막한 해산(海山, 또는 일산)’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는 갈남1리인 갈산마을, 남쪽에는 갈남2리인 신남마을이 있다. 그렇다면 눈에 들어오는 저 마을은 신남마을이 분명하다.



잠시 후 신남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에 이른다. 신남마을로 연결되는 오른편에는 홍살문을 닮은 대문이 만들어져 있다. 머리맡에 해신당 공원·‘어촌민속전시관이라는 지명과 함께 화살표식을 적어 넣어 이정표의 기능까지 겸하고 있으니 다목적 문이라 하겠다. 그나저나 이곳에서도 길 찾기가 요구된다.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해신당공원의 관람은 가능하지만 보다 알차게 구경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동선(動線)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이 경우 해신당과 어촌민속전시관, 해안산책로, 해신당공원 등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둘러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코스를 왕복해야 하는 시간 낭비까지도 줄일 수 있다.



우리 부부는 곧장 직진하기로 했다. 함께 걷고 있던 친구가 영동지역에서 기관장으로 근무를 했다는 이력을 들먹이며 우겨댔기 때문이다. ‘처삼촌 벌초 하듯이지나갔던 그 친구의 주장이 틀렸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쩌겠는가. 아무튼 20여분을 더 오르막길과 씨름을 하고나서야 해신당공원의 제2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앞에는 너른 주차장은 물론이고 파고라 쉼터와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입장권(3천원/)을 구입해 공원 안으로 들어선다. 공원 입구에 공원안내도와 함께 해신당과 애바위전설에 대한 설명판이 세워져 있어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해신당공원은 애바위 전설을 테마로 삼은 공원이다. 400년 전부터 처녀혼을 달래기 위해 전해져온 `남근(男根) 바치기' 행사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92규모의 공원에는 해신당과 남근조각공원, 어촌민속전시관, 습지생태공원, 전망대, 산책로 등이 들어서 있다. 참고로 신남마을의 남근목은 1999년 죽서제(현재 삼척정월대보름제)에서 남근목 깎기대회라는 이색행사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길이 3크기의 대형 남근목 깎기대회는 국내 언론은 물론 AP, 로이터,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명 외신들까지 현장 취재에 나설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큰 반향만큼 '성의 상품화' 등 반대 목소리도 거셌다. 그 이후 삼척시는 대형남근깎기행사를 중단해야 했고, 조성 계획이던 남근공원 이름도 '해신당'(海神堂)공원으로 바꿔야만 했다. 중단됐던 대형남근깎기대회는 2002년 삼척세계동굴박람회 부대행사로 다시 열렸다. 그리고 박람회가 끝난 후 작품들을 해신당공원으로 옮겨졌다.




산자락을 헤집으며 내놓은 산책로를 따라 다양한 크기의 남근(男根) 수십 개가 기립해 있다. 대부분 남근조각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작품들이라 한다. 빗줄기가 제법 거센데도 탐방객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여성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커다란 남근이 코앞에 있는데도 멋쩍어하는 여성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즐겁기만 한 모양이다. 참고로 해신당공원은 지금 보고 있는 남근조형물들 외에도 습지생태공원과 남근 모양으로 만든 12지 신상, 전통 어가(漁家)인 덕배의 집과 애랑의 집, 그녀와 그의 동상, 바다 품기 전망대, 우리나라 어업 변천사와 국내외 성 민속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어촌민속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원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남근들이 만들어져 있다. 양 다리 사이에 달려있는 것은 기본, 십이지신(十二支神)을 안에다 갈무리하고 있는 거대한 양물(陽物)도 보인다. 의자의 팔걸이가 된 양물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악어로 변형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돋보이는 건 양물 자체로 남아있는 조형물이라 하겠다. 독야청청(獨也靑靑), 잘생긴 자신의 허우대를 마음껏 으스대고 있다. 아무튼 해신당 공원은 이채로운 관광지다. 옛 부터 전해오는 남근숭배풍습과 지역에 전래되는 전설을 관광에 접목했다. 외설적인 느낌도 다소 들지만 예술과 역사 그리고 전통이 한데 어울린 독특한 문화가 형성돼 있는 곳이라 생각된다. 이는 그 지방의 정체성을 이어받은 설화나 전설을 소중하게 보존해온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까지도 남근을 형상화 했다. 십이지신상을 포함한 모든 조형물들이 보여주고 있는 퍼포먼스(performance)는 하나같다. 모두가 자신의 남근(男根)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거리낌 없이 남에게 내보일 수 있지 않겠는가. 참고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해를 따라 각기 를 가지고 있다. 이 띠는 열두 가지 동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을 십이지신이라고 한다. ‘12’라는 숫자는 112달을 의미하는 부호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시간과 방위의 개념이 결합되고 나아가 열두 가지 동물과 결합하면서 십이지간(十二支干)이 완성된다.



옛날 집도 복원해 놓았다. ‘애바위 전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애랑이 살던 집이란다. 조금 더 아래에는 다른 한 축인 덕배의 집도 복원되어 있다. 애바위의 전설은 대강 이렇다. 옛날 이곳 신남마을에 결혼을 약속한 덕배 총각과 애랑 처녀가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애랑은 해초를 뜯으러 바다 가운데 돌섬(애바위)으로 나갔다. 덕배는 애랑을 데려다주고 가며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정오를 넘어서자 잔잔했던 바다가 갑자기 사나워졌고 애랑은 그만 사나운 파도에 휩쓸려 죽고 만다. 이후 마을 어부의 그물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바다로 나간 어부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사고도 거듭되었다. 하루는 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에 벌컥 화가 난 한 어부가 뱃전에 서서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었다. 그러자 고기가 잡히기 시작했다. 풍어였다. 이후 이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이 되면 나무로 실물모양의 남근을 깎아 처녀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게 됐다. 지금도 이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음력 115)과 음력 10월 첫 오일(午日)에 남근을 깎아 매달아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단다.



애랑의 집 건너편에는 애랑의 동상도 만들어져 있다. 어딘가를 향한 간절한 손짓이 애절하기 까지 하다. 데려오기로 약속한 덕배를 향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아무튼 해학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남근 조각공원에서 몇 되지 않는 조형물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웃음바이러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바닷가 작은 언덕배기에는 아담한 해신당(海神堂)이 들어섰다. 해송들에 둘러싸인 신당의 내부에는 처녀의 초상이 걸려 있다. 그녀가 바로 애랑이다. 애랑의 초상 옆에 나무로 만든 남근이 굴비처럼 새끼줄에 엮여서 매달려 있다. 제단에 올려진 술은 벌떡주란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과 10월 첫 번째 오()일에 남성의 성기를 본딴 나무를 제작해 받치며 동제(洞祭)를 지낸단다. ()일은 12간지 중 성기가 가장 크다는 말()의 날이다. ! 덕배가 애랑의 꿈을 꾼 뒤 해풍을 맞고 자란 마을의 오래된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입구의 웅장한 향나무가 500년을 살았다 하니 그럴 듯도 하다.(사진은 남의 것을 빌려왔다)



2매표소로 되돌아와 다시 트레킹을 잇는다. ! 아까 임원항에서 떠온 생선회는 매표소 앞 파고라(pergola의 일본식 발음)’에서 먹었다. 맛있는 안주가 넘치는데 어찌 반주라고 없을까. 그게 좀 과했던가 보다. 이후부턴 얼큰하게 취해 트레킹을 이어갔으니 말이다. 그렇게 20분쯤 걸었을까 갈남항이 나온다. 아니 정확히는 갈남1리인 갈산마을이다. 이 마을은 월미도라 이름붙은 솔섬과 그 앞 갯바위들의 풍경이 저절로 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다. 동해 일출의 명소 중 한 곳이자 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덕분에 최근에는 멀리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점차 늘고 있단다. 다른 한편으로 저 마을은 작년부터 자립형 관광어촌마을로 조성되고 있단다. 마을 앞바다에 떠있는 월미도를 중심으로 해안의 절경과 해안 동굴, 마을박물관, 떼배, 서낭당 등 마을 자원을 주민 소득과 연계하는 사업이란다.



갈산마을의 보물섬인 월미도(越美島)’는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월미도의 아름다움은 달이 뜰 때 절정을 이룬다고 하는데 그 때의 풍경을 이르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마주 보고 서 있는 월미도는 밤도 아름답지만 낮달이 뜰 때는 더 황홀하단다.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멋진 풍경은 눈을 시원하게 한다. 이곳을 배경으로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된 이유일 것이다.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전망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갈남항에서 차지하는 월미도의 비중을 느끼게 해주는 풍경이라 하겠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월미도는 또 달라 보인다. 커다란 물고기가 입을 쩍 벌리고 먹이를 노리는데 그 뒤를 작은 물고기들이 쪼르르 따르는 모양새이다. 오늘은 17호 태풍인 타파가 우리나라로 들어온다는 날, 하지만 여기는 빗줄기만 거셀 뿐 바람은 아직까지 일지 않는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걷기는 좋았지만 덕분에 눈요깃거리는 놓치고 말았다. 파도가 몰아치면 점점이 흩어져 있던 바위들이 고개를 쑥 내밀었다가 이내 검푸른 바닷속으로 숨어드는 멋진 동영상을 만들어낼 텐데 말이다.




고개를 넘자 장호항에 이른다. 갈남항에서 15분 거리인데 우리나라 지도에서 호랑이 등처럼 생긴 부분에 위치하며, ()의 형상이 수컷 오리인 장오리와 흡사해서 장울리, 장오리라고 부르다가 장호리가 되었단다.



나폴리형 해안선을 끼고 있다는 장호항은 국가어항이다. 그래선지 정박되어 있는 배들이 꽤 많다. 하지만 작은 고깃배가 대부분이다. 연안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참고로 장호항은 삼척의 어항들 가운데 낚싯배가 가장 많은 곳이란다. 그래서 가자미나 대구 지깅((jigging )낚시를 즐기려는 낚시꾼들로 항상 붐빈단다. 새벽 무렵 경매에 바쁜 어판장 풍경도 볼거리 중 하나란다. 이때 싱싱한 해산물도 구입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장호항의 왼편에는 활처럼 크게 휘어진 장호해수욕장이 터를 잡았다. 이 일대는 동그랗고 새하얀 해안선이 아름답다고 해서 최근에는 '동양의 나폴리'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특히 2017년 개장한 장호 비치캠핑장은 스파 컨테이너 하우스 4동과 냉난방기와 화장실·씽크대·침대 등을 갖춘 유럽식 카라반 9, 오토 캠핑장 17, 소나무 숲에 조성된 일반 야영장 17면을 갖추고 있단다. 관리동과 샤워장, 화장실, 취사장, 편의점 등의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음은 물론이다.



탐방로는 다시 고개를 넘는다. 걷다가 고개라도 돌려볼라치면 장호항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 위에는 삼척의 자랑인 해상 케이블카가 지나간다. 용화리에서부터 장호리까지 바다를 건너 운행하는 해상 케이블카는 중간 철탑이 없어 시원한 전망에서 자연 절경과 청정해변을 방해물 없이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고개를 넘자 해안선이 아름답고 바닷물이 깨끗하기로 소문난 용화해수욕장이 있는 용화리(龍化里)가 나온다. 여름철만 되면 피서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시사철 손님맞이에 분주하단다. 삼척 해양케이블카가 이곳에서 출발하는가 하면 궁촌~용화 사이 5.4의 옛 철도부지에는 복선 해양 레일바이크가 설치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해안선을 따라가는 레일바이크이니 손님이 몰려들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날머리는 레일바이크 용화정거장입구

마을로 들어서자 해양레일바이크 용화정거장의 입구임을 알리는 조형물이 나온다. 해파랑길 29코스는 이곳에서 끝을 맺는다. ! 종료지점임을 알리는 해파랑길 스탬프보관함은 조금 떨어진 곳에 만들어져 있다지만 찾아보지는 않았다. 아니 얼큰하게 술에 취해 찾아볼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는 게 옳은 얘기일 것이다. 또한 부근에 있다는 용화해수욕장도 가보지를 못했다. 초승달 모양 해변과 투명한 에메랄드 빛 바다, 황금색 갯바위로 유명하다니 30코스를 시작하면서 꼭 들러봐야겠다. 거기다 시간이라도 조금 남는다면 스쿠버다이빙이나 투명카누, 스노클링 등의 해양레포츠도 즐겨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고 오늘은 14.724시간에 걸쳐 걸었다. 수로부인 헌화공원과 해신당공원을 둘러보느라 거리가 3정도 늘어났을 것이다.